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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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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7일 11시 56분 등록

■칼럼19■

Blown Save 


 9회말 2아웃, 만루.

 “당신이라면 타석에 혹은 마운드에 서고 싶습니까?”


 가을이 깊어가는 주말 나를 달뜨게 한 소식은 LG의 플레이오프 진출보다 야신의 귀환이었다. 프로야구 감독을 사퇴한 해의 겨울, 코코아 광고 속 야구하고 싶다는 꼬마 옆에서 “나도”라고 읊조리던 할아버지. 광고임을 알면서도 애잔함을 느끼게 했던 70세 넘은 할아버지,  그가 돌아왔다. 전직 프로야구 감독, 아니 이제 현직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 된 김성근, ‘야구의 신’, ‘야신’이 돌아왔다.

 스포츠는 경쟁이다. 이런 경쟁의 판인 스포츠 중 유일하게 나는 프로야구를 즐긴다. 월드컵, 올림픽 같은 경우야 우리들 모두 가지고 있는 프레임 때문에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하는 경기이고 프로 스포츠 중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야구를 본다. 공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이 난리부르스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게 모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매년 야구 시즌이 되면, 드라마보다도 야구 채널을 틀어 놓고 있는 나다. 그런데 내가 야구를 즐기는 것이 맞는가. 긴장의 순간이 되면 무서운 장면도 아닌데 채널을 돌리거나 딴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스포츠가 주는 스릴을 견뎌내지 못하면서 왜 야구를 지켜보고 있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나는 광신도 동네인가 싶었던 롯데 팬의 동네인 마산에서 홀로이 LG를 응원하는 사람이었고 이제 NC로 넘어간 사람들 틈에서 여전히 LG를 응원하며 구박을 받으며 적이 되어 치열한 채널 전쟁을 벌이며 야구를 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야구를 즐긴다고 해야 할지, 관심을 두는 지점은 늘 한결같았던 듯하다. 아니, 왜 저 사람이 욕을 먹고 있지?

 그래서 그 사람을 한번 더 보고 또 보고 했다. 그렇게 남들이 욕하는 선수들을 쳐다보게 되니 그 선수가 나왔을 때가 승패와 연결되는 상황, 기회 혹은 위기라면 바짝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그들이 못했다고 눈물 줄줄 흘리기까지야 하지는 않지만, 맘이 늘 아리게 되며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청을 부리다 그 상황이 지나서야 상황을 복기할 때도 있다. 야구 경기는 한해 중 세 계절을 거치는 시간 동안이나 이루어지는데, 내내 내 아들도 연인도 아닌 이들이 잘 하기를, 욕먹는 일이 없기를 애달프게 기원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 별 관심없어 보인다고 궁시렁거리는 이들 틈에서 내가 응원한 이는 페널티킥을 실축하거나 욕먹은 이들이었다. 가끔씩 그들이 지금은 잘하고 있나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렇게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것이지, 뭐. 그래서, 야신이 LG감독에서 퇴출되었을 때 선수가 아닌 ‘감독’의 뒤를 쫓는 내가 있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줄줄줄 쏟아지는 야신에 대한 비난 기사와 댓글을 무수히 보면서도 야신을 응원했다. 기사나 댓글로 야신을 파악할 수 있을 뿐, 개인적으로 알 길이 전혀 없지만 야신의 야구에 대한 진정성과 야구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능력있는 자가 개인이 가진 ‘소신’의 확고함을 이유로 아니, 가진 자의 입맛에 구슬려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쉴 새 없이 우롱받고 내쳐지는 것이 안타깝고 분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야신은, 능력있는 자가 능력을 펴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세상 속에서 꾸준히 자기의 길을 가며, 자신이 잘하고 사랑하는 것을 더욱 잘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알아달라고 굽신거리지 않으며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분노하지 않으며 말이다. 어쨌든, 능력있는 자가 돌아온 과정은 눈물겹다. 여전히 마뜩찮아 하는 기득권의 비난과 거짓 언론몰이 속에서 야신을 원하는 강렬한 열망들이 그를 다시 야구감독으로 이끌게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또 늘 꼴찌만 하는 한화가 당장 내년에 성적을 못 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어쨌든, 중요한 건 야신이 다시 야구감독을 한다는 거다. 이런 세상이 될 수 있어야 능력을 개발하고 또 개발할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

 다시 숨을 고르고~. 세상을 원망만 하며 강점도 못 찾고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찾아온 기회라는 것, 남이 만들어 준 기회가 아니라 세상에 그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긴 하다. 무엇보다 이 세상을 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능력 하나 정도는 키워야 할 것이라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힘들다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강점찾는 데서부터 빌빌거리는데...

 

 수없이 되돌려 저 질문을 한다. 아마도 ‘아니요’라고 할 나. 아직 강점부터 빌빌거리고 있으니까. 야구를 보다보면 저 상황에서 캐스터는 투수에게는 주무기인 공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그리고 타자에게는 어느 공을 잘 받아치니 그것을 노리라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겠지만. 암튼, 공 하나가 던져지고 공중에서 공과 배트가 만날지 안 만날지 모르지만, 각각의 선수들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타석과 마운드에 서 있다면 말이다. 타석과 마운드에 들어서지 못한 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저 상황에서 들어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늘 꾸준히 연마한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피어날 것이고. 그러니, 블론 세이브를 혹은 삼진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나는 아직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으니까. 타석에 들어서지 못했으니까.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자, 타석에 오르지 못한 내가 필요한 것은 그 상황에서 필요한 능력과 그곳을 들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갖추는 일뿐이다.




IP *.85.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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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7 23:45:21 *.124.78.132

우왕! 단순 야구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마운드에 올라설 수 있는 용기로 끝 맺는 이 감동!

언니의 관심분야는 너무도 다양하네용~ 역시 다채로운 매력의 원천은 그 것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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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07:49:11 *.50.21.20

9회말 만루 투아웃 쓰리볼 투 스트라이크 상황의 팽팽한 긴장감. 

어디로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잘 알지. 

최악의 장면과 최고의 장면이 교차하는 그 자리. 

오너라 공이여 ! 

맞서주마! 


크 이게 야구를 보는 묘미죠. 같이 함 직관 가면 좋겠네요. 에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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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11:21:40 *.255.24.171

나는 야구를 보는 재미를 모르지. 야구 시즌만 되면 사람들이 응원하기 바쁠 때,

축구를 좋아하는 나는 한번 응원을 보낸 사람에게 에움이 느끼는 것들을 느끼며 안타까워 하지.

너무 쉽게 응원하고 너무 쉽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나! 어쩜 저렇게 빨리 변할 수

 있는지. 변한다는 것이 이런 양면성을 갖고 있군.


그런데 그게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올림픽인지, 월드시리즈인지  9회말 2아웃에서

멋지게 홈런을 날려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 짜릿함을 느끼며 이래서 야구는 9회말 2아웃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생겼구나 싶었어.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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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12:35:24 *.94.41.89

난 투수 할래요 ~

마운드의 중심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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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13:29:41 *.196.54.42
"무엇보다 이 세상을 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능력 하나 정도는 키워야 할 것이라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힘들다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강점찾는 데서부터 빌빌거리는데..." - 으잉! 강점을 손에 지고도 모르셨나요? 에움은 에움체란 게 있잖아? 글 맛나게 쓰는 재주에 세상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 있으니 헤매지 말고 바로 책 쓰기에 돌입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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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14:52:46 *.65.152.130

야구까지!! 다방면을 즐기는 에움일세~~~

난 당신이 추천해 준 것들이 다 좋다네....

개인적으로 '작가 에움의 서재' 또는 '작가 에움의 책들' 모 그런.... 칼럼이 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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