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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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생기지 않는 이유
(반복착상실패 검사)
개똥아, 산아
가을 볕이 너무 좋다. 서북쪽과 동남쪽에 각각 작은 베란다가 있는 우리집. 여름에는 서북쪽 베란다에 해가 비치는 시간이 길더니, 어느 순간 남동쪽 베란다 해자리가 깊고 넓다. 요즘은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해. 병원에서 햇볕을 쬐면서 운동하라고 했거든. 용산고등학교, 미군부대를 지나 힐튼호텔을 왼쪽으로 끼고 남대문시장까지 왕복한다. 빈 베낭을 메고 가서, 야채가게에서 한 두 가지 사 온다. 방울토마토를 사온 날은 청량고추, 마늘, 토마토를 넣어 스파게티를 만든다. 호박 2개를 천 원에 산 날은 반달썰기를 해서 새우젓으로 볶는다. 아빠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을 하셨어. 지금 암막 친 방에서 주무시고 계시지. 이 편지를 써두고 산책을 갈 생각에 설렌다. .
오늘은 반복착상실패검사 했던 이야기를 할까 한다. 시험관 3차를 실패하고 나니 원인을 파악하고 싶었어. 2번 채취해서 냉동까지 3번 이식을 했는데 세 번 다 수치가 0이었어. 수정란은 3개, 2개, 2개를 이식했지. 단 한 번도 착상이 안 된거야. 나이 말고도 착상을 방해하는 요인이 있다면 걸림돌 격파를 해얄 것 같았어. 휴직기간이 내년 2월까지라 느긋하게 기다릴 시간이 내겐 없거든. 휴직기간보다 더 다급한 건 43세라는 내 나이지. 병원이 문제는 아니겠지만 병원도 바꿔볼까 싶었어. 베이직한 접근을 하는 병원 말고 적극적으로 처방하고 배양기술이 좋은 병원을 알아봤어. 라헬과 대구마리아가 꼽히더라. 일단 진단검사에 이름이 난 라헬여성병원에 갔어. 우리집에서 지하철 3코스거든. ‘착상을 도와주는 방법’에 대한 난임강좌를 들으러 갔다가 덜컥 진료를 보았어.
반복착상실패 검사 항목은 습관성유산검사 항목과 비슷해. 구체적으로 보면 아내의 1차검사는 피검사야. 7대롱을 뽑았어. 호르몬(AMH. FSH, TSH), 자가항체, 갑상선 자가항체, 엽산대사, 호모시스테인, S단백질과 C단백질, 비타민 D, 3개월간의 혈당변화 헤모글로딘 AIC 검사가 있어. 2차는 질분비물, 자궁경부암 검사와 진단내시경이었어. 작은 내시경을 넣어 자궁을 직접 보면서 염증, 유착, 폴립 여부를 보는 거야. 남편은 정액검사를 해. 정액의 양, 기형정자의 유무, 정상 정자의 양, 수정력 등을 분석하지. 우린 성병검사까지 다 했어. 유쾌한 과정은 아니었어. 진단내시경을 하는 수술실에 누워서 차가운 기구가 들어올 때 눈물을 흘렸다. 난임은 말기암환자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 가장 큰 스트레스는 언제 이것이 끝이 날 지 알 수 없다는 거지.
나는 ‘원인 불명’ 이 나오길 기대했어. 돈 들여 검사를 하더라도 장애물이 없다는 걸 발견하면 더 좋겠지. 내가 대처할 수 없는 커다란 문제가 발견될까봐, 여자 혼자 덤태기 쓸까봐 무서웠어. 아이의 성을 결정하는 건 남성 정자의 Y염색체인데도 아들 낳으라고 며느리를 압박하고, 난임에 있어서는 ‘네가 몸이 차다’거나 ‘밭이 문제여서’라고 심지어 남성원인의 난임일때도 주로 나이든 어른들이 여자의 전적인 잘못인 것처럼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어. 누군가가 그리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내가 나이가 많아서 이렇게 간절히 기다리고, 열심히 준비하는 데도 아이를 못 갖나’ 하는 의기소침은 내 안에서도 창궐했어. 검사결과에서 명징하게 ‘내 탓’에 방점이 찍히면 과잉죄책감의 오류를 범하곤 하는 나로서는 타격이 클 것 같았어. 유전자 검사 결과 나오는데 2주 걸렸어.
결론은 이러하다. 기형정자 2.5%에 수정력이 34%였어. 기형정자 2.5%라는 건 정상정자가 적다는 거야. 4%미만이면 시험관이 필요하다고 병원에서는 인공수정 절차없이 시험관 진행을 권해. 우린 시험관이 필요한 상황이었어. 기형정자들도 수정능력이 있다는 게 문제겠지. 자연의 선발 시스템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적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수정란의 유전적 문제가 생기는 거지. 지하에서 일하고 교대근무를 하면서 술담배를 오래 많이 했던 생활이 영향이 있을까? 기형정자와 수정의 문제는 시험관을 하면 해결이 가능해. 시험관은 정자와 난자를 채취해서 체외에서 수정시켜서 3일이나 5일 배양시켜 포배기나 낭배기의 배아를 자궁에 이식시켜 주는 거잖아. 어차피 정자는 가장 튼튼하고 건강한 것으로 난자 수만큼만 필요한 거거든. 난자가 10개 채취되면 10마리만 있으면 되지. 활동성이 좋은 정상정자만 현미경 아래에서 배양연구원이 선발하지. 심지어 고환에서 주사기로 채취를 해서 냉동해 두는 이들도 몇 마리의 정자를 가지고 임신에 성공하거든.
문제는 자궁이 어떻게 수정란을 받아들여 품어내느냐지. 그래서 나는 착상과 관련된 검사와 자궁상태를 본 거고. 나에게는 엽산대사 이상, 비타민D 부족, 자가면역 양성, 갑상선기능항진의 소인이 좀 보이고, 자궁에 몇 개의 폴립이 있어서 제거가 필요했어. 난소에 남아있는 난자의 양을 말해주는 AMH 수치는 3.0으로 30대 중반 정도로 좋았어. FSH 수치가 13으로 높았어. 다른 호르몬 이상은 없었어. 의사선생님은 고용량 엽산 복용, 비타민D 2000iu 하루 섭취, 내분비내과와 류마치스 내과 방문을 권고했어. 시술 직전 달에 시험관 병원에서 자궁경을 해서 폴립을 제거하라고 했어.
엽산 대사 이상과 관련해서는 내가 엽산대사를 방해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거야. 돌연변이가 있는 거지. MTHER(C677T) 유전자가 태어날 때부터 T677T로 되어있대. 그래서 피 속에 호모시스테인이 높아진대. 호모시스테인은 B12, B6, 엽산의 대사과정에 보조인자로 작용하는 거래. 고호모시스테인혈증은 혈관을 두껍게 해서 혈관질환, 신경관의 문제, 알쯔하이머, 기분장애 등을 유발하는 요소라는구나. 무섭지? 특히 생식에서는 엽산 대사 이상으로 인해 신경관결손과 태반조기박리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대. 게다가 그 유전자와 상호작용하여 엽산 대사 이상을 가져오는 유전자 wild type(1298AA)이 같이 발견되었어. 임신을 준비하는 이들이 다른 건 다 안 먹어도 꼭 먹어야 하는 게 바로 엽산이야. 요즘 전국의 보건소에서도 임신을 준비한다고 하면 600짜리 엽산을 전에 3개월치, 임신확인 후 3개월치를 공짜로 주어. 나도 결혼 직후부터 꾸준히 먹었지. 신경관 결손을 가진 채 태어난 아이들을 나는 많이 만나 보았다. 특히 중증장애 학생들에게서 말이야. 숨이 훅 멈춰지더라.
한 가지 망치가 더 있었어.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말했어.
“시험관 성공률을 보통 30% 정도로 보는데, 40대가 되면 10% 정도이고, 나이가 만 43, 44세가 되면 5% 미만이예요. 들이는 비용, 노력하는 에너지에 비해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없어요. 저희도 시험관에 대해 긍정적으로 권해드릴 수 없어요. 다른 선택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병원에서 받아주면 KTX를 타고 가는 대구 마리아에 안 가고 거기서 시술을 할 작정이었지. 혈소판 수혈을 받고서 채취를 해야 하는 내 안전 때문에 거기보다는 종합병원에서 시술을 받는 게 좋겠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검사결과를 듣는 중이었어. 마음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어. 무사가 갑옷을 챙겨입는 기분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곱게 하고 갔어. 기분이 좋아야 할 것 같았거든. 나는 웃으며 대답했어.
“상위 5% 안에 들어야 합격하는 시험인거지요? 대학시험, 취직시험보다 어려운 시험이네요. 선생님. 워낙 결혼이 늦어서 어려움은 각오하고 있었어요. 비용대비 효과가 떨어진다고 해도 저는 해볼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아쉬움이나 미련이 안 남을 것 같아요.”
아무렇지 않지 않았어. 괜찮지 않아. 며칠 마음이 볶이더라. 의무기록사본을 떼서 오는 그날 바로 비타민D를 샀어. 남편과 결과지를 놓고 꼼꼼히 메모해온 걸 공유했어. 남편은 약을 먹으면 되고, 진료를 받으면 되니까 커다란 결함은 없다고 안심하는 눈치였어. 나는
그럼 10번 안에는 되지 않을까? 내년에도 휴직은 계속할 거다. 내년까지 집중해서 준비해볼 생각이거든. 그리고 아이만을 위해 그 시간을 보내지 말고 안식년을 안식년답게 보람차고 즐겁게 보내겠다고 다짐했구나. 재충전을 제대로 해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을 때 일터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사랑한다. 2014년 10월 13일. 엄마가
Ps. 부처님 관세음 보살님, 그리고 기도를 들으시는 고운 님들께 기도드립니다. 반복착상실패 검사를 했어요. 배란일을 받으러 다니다가 과배란 자연임신 시도, 인공수정, 시험관 거쳐 여기까지 왔어요. 넘어온 봉우리가 제법 되네요. 처음 결과지를 받았을 때 엽산 대사 이상이 유전자의 문제에서 기인하고, 장애의 위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에 놀랐고요. 나이만도 버거운데 왜 이리 장애물이 많나 답답했어요.
며칠동안 곱씹는 동안 새로운 발견이 있었어요. 엽산을 꾸준히 먹었지만 내게 장착된 엽산 대사 시스템의 개성때문에 남보다 엽산을 흡수하지를 못했고 몸에 쟁여놓지도 못했죠. 엽산 부족은 착상을 방해하죠. 그런데 만약 착상이 되었다고 쳐요. 엽산 부족인데도 만약 임신을 했었다면 아이가 신경관결손을 유발하는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에 노출되었을 테죠. 그럼 유산확률이 높았을 겁니다. 그럼 큰 아픔을 겪었겠지요. 무사히 태어나더라도 신경관결손을 가진 채라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임신하지 않았던 것이 돌보심일 수도 있구나 싶었죠. 자가면역항체의 문제라면 아마 채취할 때부터이든 이식할 때부터이든 면역 관련 처방을 주시겠지요. 이 주사는 벌써 맞아본 경험이 있어요. 2차 냉동 이식할 때 선생님이 크렉산 처방해주셔서 배주사 맞았거든요. 갑상선에 대한 건 진료를 다녀와보면 알테구요. 착상이 안된 원인을 알게 되어 감사했어요. 넘어야 할 산 하나를 만났어요. 언제나 그렇듯이 정체를 모를 때의 불안보다 알고 있을 때가 훨씬 대처하기 편해요.
나와 남편의 염색체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도 감사했어요. 만약 한 사람에게라도 염색체 이상이 발견되었다면 수정란에 대한 유전검사를 한 뒤 정상수정란만 이식하는 PGD, PGS를 해야 하거든요. 실제로 이런 이유로 습관성유산의 아픔을 겪거나, 돌연변이유전자로 인한 병을 가진 이들은 훨씬 어려운 길을 갑니다. 나이의 짐에 그것까지 지고 간다면 우리 부부의 짐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부모의 마라톤을 뛰는 분들도 계시지요.
AMH가 높아져 기뻤어요. 결혼 직후에 검사했을 때 3.4였다가 1.89로 떨어져 동동댔지요. 2.4이더니 3.0으로 높아졌어요. 휴직하고 쉬니까 몸이 편해서인가봐요. 난임을 사유로 질병휴직할 수 있어서 고맙고 다행스러웠어요. 다만 난포자극호르몬 FSH가 난소기능저하처럼 높아져 있었어요. 그래서 내분비내과와 류마티스 내과 진료를 권하나봐요. 다 저를 돕는 손들입니다. 가보겠습니다.
그래도 시도할 기회가 있음이 기쁘고 감사해요. 5%든 10%든 가능성의 여지가 있는 게 감사해요. 당신을 보며 저는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어요. 이번 가을방학을 행복하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족을 지켜보아 주시고 옹호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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