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참치
- 조회 수 2362
- 댓글 수 4
- 추천 수 0
시끌벅적하고 사람 냄새 나는 시장을 나는 좋아한다. 사람 많고 번잡한 것을 싫어하지만 이상하게도 재래시장은 재미가 있다.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재래시장은 작지만 내가 거의 매일 들락거리는 곳이다. 한 바뀌를 다 도는데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후딱이니 시장치고는 아담하다. 그런데 이 작은 시장에 과일 집이 6곳, 생선가게는 4곳, 정육점은 2곳, 야채가게도 5~6곳, 손수 만들어 파는 두부집이 3곳, 시장이면 빠질 수 없는 뻥튀기집이 1곳이 있다. 그 이외에도 풀빵을 파시는 분, 호떡을 파시는 분, 옷을 파시는 분 등이 이곳을 생활터전으로 하고 있으니 작지만 삶의 적나라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의 표정에서 삶의 고단함과 기대감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하고, 싱싱한 과일, 야채, 생선 등을 보면서 제철을 실감하기도 한다. 시장에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물건들이 계절을 말해준다. 요즘은 사과와 단감철이다. 생선은 오징어와 낙지가 물이 좋다. 조개와 홍합도 많이 나와있다. 나는 이런 수수한 새색시와 억척스런 아줌마의 모습을 같이 하고 있는 이 시장이 좋다.
어제는 시장을 돌다가 입을 삐쭉이 내밀고 있는 모시조개가 눈에 들어왔다. 참고로 우리 집 반찬으로 생선이나 해산물, 고기 등은 잘 올라오지 않는 편이다. 통통하게 입 밖으로 내뱉은 조개의 살들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가 선뜻 산다. 나도 덩달아 사버렸다. 그릇에서 봉지로 옮겨지는 순간 통통한 살들이 쏙 들어가 자취를 감춘다. 그 이외에 여러 가지를 샀지만, 살아 있는 무엇인가를 들고 집으로 가는 맛이 예전의 장을 볼 때와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집에 와 주섬주섬 봉다리를 정리하는데 갑자기 난감해졌다. 조개를 보며 관상용으로 샀는지 조리용으로 샀는지 나의 의도가 그제서야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자이지 싶다. 어렸을 때 잡았던 조개에 대한 향수, 며칠 전에 부산에서 종종과 피울과 먹었던 조개구이에 대한 아련함이 조개 살들의 유혹에 빠지게 한 것 같다. 그릇에 소금을 풀어 얼른 담가놓았다. 나는 그 놈들이 뱉어내는 뽀얗고 통통한 살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한참을 들여다 보아도 내미는 놈들이 없다. 혹시 나는 관음증인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어 웃음이 났다. 장소가 옮겨져 새로운 곳에서 자기 살을 보여주는 것이 이 놈들한테도 부끄러운 일인가? 아니면 소금의 양이 적은 것일까?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더 넣기도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이튿날 아들 밥을 위해 3층으로 올라갔다. 어머니가 난리가 나셨다. 조개들이 밤새 물을 뿜어내어 싱크대 위가 물 천지란다. 어머니께서는 벌서 행주질을 하고 계셨다. 휴~~~ 소금의 농도가 맞지 않아 죽은 줄만 알았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어머님의 잔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더 큰 그릇으로 귀여운 놈들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밤새 잘 견딘 이 놈들을 쓰다듬고 싶었지만, 나의 이런 마음이 전달될 리 없기에 속으로만 ‘잘했어!’라고 칭찬을 날렸다.
나는 조개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찾지 않는 성격이다. 그렇지만 조개를 보면 반갑고 좋다. 어린 시절 저수지 앞에서 제일 많이 한 것이 조개를 잡은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고향집 앞에는 낚시의 고수들만이 아는 저수지가 있었다. 백곡저수지. 저수지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깊어지기 때문에 나는 항상 몇 미터 안에서만 놀았다. 더 멀리 나가고 싶었지만, 수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한 번은 ‘수영 그게 뭐 대수야?’ 하면서 동네 남자아이들을 따라 저수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가 물을 옴팡 먹은 기억도 있다. 다행히도 그 저수지에는 더 먼 곳을 동경하는 나를 달래줄 것들이 있었는데, 조개와 우렁, 새우였다. 그 중에 나는 조개 잡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그냥 물 속에서 걷어 올리는 우렁과 새우와는 달리 조개는 자기의 흔적을 남긴다. 모래위로 꽉 다문 입술이 지나간 흔적에 실선이 하나 생긴다. 선을 따라 가다 보면 선은 끊기고 조개는 보이지 않는다. 끝나는 지점에서 몸통을 모래 바닥에 숨겼다. 그 곳에 손을 넣으면 곧 조개가 나온다. 선의 굵기에 따라 조개의 크기가 가늠이 된다. 항상 선 끝에서 조개를 잡는 일은 나에게 기대감과 설렘을 안겨 주었다. 기대하시라! 고적대의 작은 북소리가 연주를 해주고 나는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 손을 집어 넣는다. 작은 아기조개가 잡힐 때도 있지만, 큰 어른 조개가 잡힐 때도 있다. 나는 경쟁이 아닌 그런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성취를 느꼈다. 내가 필요한 만큼 잡는 재미. 우리 집 식구들이 나로 인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장만했다는 것, 이것을 갖고 가면 할머니께서는 칭찬을 해주시겠지? 하는 기대감이 잡는 기쁨을 더하게 했다. 그렇게 조개를 잡아오면 바로 해캄을 시키기 위해 물에 담가놓는다. 깨끗한 물이 금방 모래물로 변한다. 이 놈들이 치열하게 산 흔적이구나 싶다. 나의 기쁨은 거기까지이다. 가끔 씹히는 모래의 바스락하는 질감이 싫어서 조개를 잘 먹지 않았다. 그래도 조개만 보면 항상 잡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어제 시장에서 본 조개는 그런 조개였다. 어쩌다가 하나 바스락거려 싫지만 맛보다도 추억을 음미하고 싶은 재료였다. 내가 조개를 먹을 때는 추억을 먹는 것이다. 저수지에서의 추억, 그리고 얼마 전에 보태진 부산에서의 조개구이. 그 전에도 먹어 보았던 조개구이이지만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맛이 좌우되는 것을 보면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은 아닌듯하다. 조개는 나에게 추억이다. 그래서 시장 바닥에 삐쭉 내민 조개 살에 나는 유혹을 당했다. 그 놈들은 아직 우리 집 싱크대 위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나는 그 놈들을 먹고 오늘도 추억 속으로 잠기게 할 것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372 | 11월 오프수업 후기_포근한 항구도시 포항에서 [2] | 앨리스 | 2014.11.11 | 3101 |
4371 | 11월 오프수업 후기 [3] | 녕이~ | 2014.11.11 | 1966 |
4370 | 11월 오프수업 과제 | 녕이~ | 2014.11.11 | 1889 |
4369 | 11월 오프 수업 과제 - 희동이 | 희동이 | 2014.11.11 | 1957 |
4368 | 11월 오프 수업 후기 - 잔칫상 [4] | 희동이 | 2014.11.11 | 1876 |
4367 | 11월 과제_어니언 | 어니언 | 2014.11.11 | 1947 |
4366 | 11월 오프 과제_후기 어니언 [3] | 어니언 | 2014.11.11 | 1948 |
4365 | 11월 오프수업 과제_찰나 | 찰나 | 2014.11.10 | 2049 |
4364 | 11월 오프수업 후기_나의 미래직업_찰나 칼럼#29 [2] | 찰나 | 2014.11.10 | 2074 |
4363 | 11월포항수업후기_구달칼럼#30 [2] | 구름에달가듯이 | 2014.11.10 | 2191 |
4362 | 11월수업_구달의필살기_구달칼럼#29 | 구름에달가듯이 | 2014.11.10 | 1980 |
4361 | 11월 오프수업 과제 | 왕참치 | 2014.11.10 | 1894 |
4360 | 11월 오프수업 후기-형님과 함께한 포항 나들이 [2] | 왕참치 | 2014.11.10 | 2096 |
4359 | 열폭의 이유 [1] | 녕이~ | 2014.11.03 | 2022 |
4358 | 유전자에 새겨진 입맛 [2] | 종종 | 2014.11.03 | 2290 |
4357 | 이런 웰빙! [3] | 에움길~ | 2014.11.03 | 2077 |
» | 음식은 추억이다 [4] | 왕참치 | 2014.11.03 | 2362 |
4355 | 강점 테마와 마음_찰나칼럼#28 [7] | 찰나 | 2014.11.03 | 2167 |
4354 | 좋은 기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법 [7] | 어니언 | 2014.11.03 | 2122 |
4353 | #28 通信敎 (통신교) [3] | 희동이 | 2014.11.03 | 19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