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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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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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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5일 09시 22분 등록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세요? 저는 비교적 씩씩한 성격이지만 그래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슬럼프가 없진 않은데요, 가만히 보면 슬럼프가 왔다가 멀어지는 과정을 정례화할 수도 있겠어요. 슬럼프는 찾아 올 때나 극복될 때나 특별한 계기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시작될 때 작은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심신의 컨디션이 좋을 때는 얼마든지 흘려버릴 수 있는 것에 어느날 덜컥 발목이 잡히는 거지요.

 

저는 주로 제 기질적인 문제나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우울해지거든요. 단순하고 급하고 자기본위라서, 엄벙덤벙 하고 싶은 일은 다 저지르며 살아오는 동안 상처를 입힌 사람들이나, 아직도 하고 싶은 일만 많지 정작 해 놓은 일은 없다는 것 때문에 가라앉는 것인데, 이런 문제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닌데도 어떤 때는 그것들이 사정없이 나를 고문하기 시작합니다.

 

불청객이 찾아오면 저는 그냥 시달려 줍니다. 우선 읽고 쓰는 것을 할 수 없고, 집안일도 엉망인 채로, 술도 한 잔 하고, 낮잠도 자면서 실컷 자기혐오에 빠져 듭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한없이 죽어가지요.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살림도 단출해서 일상을 직무유기하기에 편한 조건이라 우정 늘어져 버리면, 어느 순간 발이 바닥에 닿았다는 느낌이 오지요. !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이 꼴이 뭐냐 싶으면서 주섬주섬 일어나 목욕을 하고 산책을 갑니다. 이맘때처럼 다채로운 구름과 화사한 햇살과 칼라풀한 나무에 눈길을 빼앗기면 성공입니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누리면서 살아보자,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는 시간이 아깝지도 않아?

 

슬럼프가 찾아 왔을 때 섣불리 털어버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깊숙이 빠져 버림으로써 반동에너지를 획책하는 것이 제 노하우라면 노하우입니다만, 제게는 아직 슬럼프 타령인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절망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동대문구에 살던 최모씨가 목을 매 숨졌는데, 국밥값을 남기고 갔다고 하네요.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이렇게 쓰인 편지봉투까지 인터넷에 올라 와 있는 것을 보며 참 할 말이 없었습니다. 70세의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일용직으로 살아가다가 얼마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시신을 처리해 줄 사람에게 국밥값을 준비하는 마음이 어땠을지 가슴이 먹먹하고, 더 이상 생을 지속할 의지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너무 안쓰러워서 수시로 그 분 생각이 났습니다. 잠시 마음을 고르고 적막하고 고단했을 한 생애의 명복을 빌어드리면서 암울한 기분이 됩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것에 상관없이 이같은 사태가 상당히 많이 퍼질 것 같은 전망에서입니다. 아시다시피 전무후무한 고령사회가 오고 있고, 삶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호기심을 갖지 못하는 것은 독거노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니까요.

 

가벼운 슬럼프로 시작해서 극단적인 사태까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두 가지 사이에 펼쳐지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좌절에 대응하는 자세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 분처럼 단정하고 경우 바른 분이 그런 최후를 맞이한 것이 내내 가슴이 아팠던 것입니다. 비슷한 소식에 접할 때마다 남은 시간을 생각합니다.  우선은 나의 삶을 끝까지 존엄하게 지키는 것이 제 할 일이겠구요,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희망 한 줄기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까지 저를 붙들어주는 것은 이런 구절입니다. 비록 칼잡이의 근성도 갖지 못했지만, 그러나 자세만은 내 인생의 챔피언을 지향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구선생님께서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자기경영의 요체라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나네요.

 

 

보통 사람이 헤밍웨이 같은 상태였다면 감히 글을 쓸 배짱 따위 없었을 겁니다. 나도 분명히 쓰지 않았을 거예요. 그게 챔피언과 칼잡이의 차이예요. 챔피언도 자기에게 있는 무엇을 순간이든 영원이든 잃어버릴 수 있고 장담할 순 없어요. 하지만 챔피언은 더 이상 스트라이크 존에 높고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할 땐, 자기 심장을 대신 던집니다. 무언가를 던지죠. 그저 마운드를 빠져나가서 울어 버리지 않아요.

<레이먼드 챈들러,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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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30.10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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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6 10:02:13 *.254.118.78

아~ 70세분의 자살소식에 마음이 찡하네요..열심히 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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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6 21:44:39 *.230.103.185

예, 저도 며칠 동안 계속 생각나서 혼났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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