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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7일 14시 45분 등록

<영혼의 자서전 ()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1.   저자에 대하여

생략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그의 30대 이후를 회고한다. 특파원 자격으로 구약성서의 성지인 시나이산을 순례했다 조르바와 함께 펠로폰네소스에서 갈탄을 캐려고 한 건 34세다. 스위스에서 니체의 발자취를 순례한 건 35, 공공복지부 장관이 되어 카프카스에서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될 위기에 처한 15만의 그리스인을 11개월간 송환한 건 36세였다. 38세에 독일을 여행했다. 40세는 빈과 베를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41세에는 이탈리아에서 3개월 보냈는데 특히 아시시와 폼페이를 방문했다. 아시시에서 <붓다>를 썻다. 42세부터는 오디세이아를 썻다. 46세때는 혼자서 러시아를 여행했다. 49세 때는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소제목은 도시나 사람이름인데 그닥 중요하지는 않다. 일상을 기록하는 걸 허섭쓰레기라 여기므로 주로 영혼의 투쟁이나 깨달음,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 구원을 위한 노력을 다루었다.  

. 

2)   장점 및 보완점

 

이 책을 가지고 한 편의 칼럼을 쓴다면 무엇에 대해 쓸까? 하나는 오름이라는 주제, 그리고 나비가 되려는 유충과, 바다 위로 날으려는 날치의 투쟁을 버무려 나의 투쟁에 대한 걸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 것이 중요한 건 아니고, 그걸 쓰는 과정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투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그를 이해하고 싶다는 건. 나를 이해하고 싶다. 고전 읽기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고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 배웠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수많은 영적인 탐색에 성심을 다했던 그의 투쟁의 역사는 간증처럼 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틀이 되어준다. 자꾸 숙제를 준다. ‘영혼과 육체에 대한 질문’, ‘구원은 내세에서 이루어지는 건지 이번에 완료되는 건지’, ‘나의 투쟁은 그처럼 거대하지 못하다. 개울물도 졸졸거리며 바다로 흘러간다. 또 하나는 작가인 그가 글을 쓰는 과정에 대해 적어둔 걸 정리해 두고 싶었다. 첫사랑 에이레 아가씨 집을 배회하던 날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조르바, 붓다, 오디세이아를 창작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창작자의 수기가 나온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글을 썼다. 거인 같은 아버지의 일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할리스 대장>을 쓰고, 자신의 사타구니에서 큰 함성을 지르는 에게해 해석 할아버지들에게 호응하여 <오디세이아>를 쓰고, 잠깐 만났지만 누구보다 큰 영향을 끼친 조르바를 부활시키기 위해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다. 차잔차키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카잔차키스의 작가론은 유추해볼 수 있을까? 작가, 반짝이고 설레는 단어를 만지기 위해서다. , 희곡, 소설을 썼던 작가의 글은 흥미로운 묘사나 함축적인 표현이 많았다. 영적으로 의미깊어 보이는 우화들도 많았다. 72살에 쓰기 시작한 자서전을 마무리하고 그는 74세에 돌아갔다. 자서전을 읽으면 나의 생은 뭔가?’ 생각하게 된다.  

 

3)   감동적인 장절

 

(1)   그의 생의 가장 주요한 단어를 오름이라고 할 수 있는 고민과 순례의 기록들

 

362 이렇듯 끓어오르는 가마 속에서 40년 동안 구워 낸 한 민족이 어찌 멸망하겠는가?

시나이산으로 가는 사막을 순례하며 감상. 어려움, 연단의 의미다. 아이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내가 겪는 어려움이나 쉽지 않은 여정 또한 나를 굽는 가마이리라. 갑자기 힘이 생기네. 나의 사막은 무엇인가?

 

396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평생 닻을 내리기 위한 항구가 아니라, 앞바다로 나가서 거칠고도 광포한 파도를 만나 신의 품 안에서 닻을 내리기 위해 평생 투쟁하려고 그곳을 떠나야 하는 항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스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는 어서 오라고 환영하지 않고 잘 가라고 배웅했다. 

 

397 젊은 시절부터 나의 가장 큰 고민과 모든 기쁨과 슬픔의 샘은 정신과 육체의 끊임없고 무자비한 싸움이었다. 고뇌는 격렬했다. 나는 내 육체를 사랑해서 그것이 사멸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영혼을 사랑해서 그것이 썩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조르바에게 보내는 찬사는 이런 고민 아래서 일어났다.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은 서양에서 더 심했다. 황소로 변한 제우스를 타고 건너간 에우로페의 후손의 섬 크레타인이었던 카잔차키스는 서양과 동양의 다리인 그리스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것의 조화가 문명의 것이 개인에게 드러났다 할 수 있을 지도.   

 

400 인간은 켄타우로스여서, 말굽은 땅을 밟지만 몸의 가슴부터 머리까지는 무자비한 함성에게 속박되어 고통을 당한다. 그는 동물적인 칼집에서 칼처럼 자신을 뽑아내려고 또다시 영겁에 걸쳐 투쟁해 왔다. 그는 또한 인간의 칼집에서 자신을 뽑아내려는 새로운 투쟁도 벌였다.

인간을 켄타우로스로 본 시각이 신선. 반인반수가 모두 인간의 상태를 비유하는 것일수도. 육체와 정신 사이에서 투쟁해온 저자이기에 가능한 통찰.

 

404 골방은 너무 좁아서 그의 손이 양쪽 벽에 닿을 지경이었다. “여기가 내 고치 속이랍니다. 나는 애벌레처럼 이 속에 스스로 갇혀 삽니다. 나는 나비가 될 날을 기다리죠.”

수도사의 골방. 시간이든 장소든 자신의 성소도 고치이리라. 나에게 새벽시간 역시 고치.

 

405 “나는 어릴 적부터 줄곧 싸움을 해왔어요.”

누구하고요?” 나는 주저했다. 갑자기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누구하고요?” 수사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몸을 수그리며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신하고요?”

이것은 병일까요? 신부님? 나는 어찌해야 병이 나을까요?”

영원히 병이 낫지 않기를 기구합니다.”

여기에 대해 나사렛의 소년인 예수가 12살에 찾아왔다가 병을 고쳐 멀쩡한 나사렛의 목수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반어 사례 사용. 

 

415 “난 신과의 싸움을 멈추고 싶지 않아요. 나는 신 앞에 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싸움을 계속하겠습니다. 난 그것이 내 숙명이라고 믿어요.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라서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욕심은 부리지 않고 투쟁만 계속할 따름이죠

신과의 싸움을 절대로 중단하지 말아요. 그보다 더 훌륭한 수련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더 자신감을 가지고 싸우겠다며 마음 속의 검은 뿌리인 본능을 뽑아버릴 생각은 집어치워요. ..유혹을 정복할 방법은 하나뿐이니 그것을 껴안고, 맛보고 경멸할 줄 알게 되어야 해요. 그러면 그것은 다시는 유혹을 하지 않아요. 그러지 않으면, 백 년을 산다고 해도 여자들을 즐기지 못하면, 그들은 당신이 잠들었거나 깨었거나 언제라도 찾아와 꿈과 영혼을 더럽히죠.”

그는 이런 싸움을 해 본 적이 있는 이이기 때문에 젊은이가 눈에 보이고, 이런 조언 가능

 

416 성공 여부는 묻지 말아요. 가장 중요한 건 성공 여부가 아니죠. 그것을 더 키우겠다는 당신의투쟁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신은 우리들에게 투쟁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우리들이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건 신이 따질 일이지 우리 일이 아니에요.

별에게 닿지 못해도 닳을 별이 있다는 건 다행

 

418 “속세로 돌아가요.” 요아힘 신부가 소리쳤다. “지금은 속세가 수도원이니, 그곳에서 성자가 되어야 해요.”

동감. 매우 중요한 결론

 

420 “당신은 카론을 때려눕힐 힘이 남았어요. 할아버지그를 격려하려고 내가 말했다.

그가 웃었다. “그건 벌써 다 해봤어. 내가 멋지게 때려눕혔지. 어떻게 그랬냐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물리친 거야. 안녕 젊은이. 내 축복을 받고 너도 죽음을 물리치거라.”

우리들이 죽음을 정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정복이 가능하다.

왜 그는 이 책을 마지막 순간에도 읽었던 걸까?

 

424 주여 지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제가 어찌 천국을 즐기겠습니까? 주여, 저주받은 자들을 불쌍히 여겨 천국으로 들여보내든가, 아니면 저를 지옥으로 보내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소서. 저는 지옥으로 내려가 저주받은 자들을 위로할 질서를 세우겠나이다. 그리고 만일 그들의 통을 덜어 줄 수 없다면, 저희들은 지옥에 남아 그들과 고통을 나누겠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프란체스코의 기도는 지장보살의 기도와 비슷하다. 비슷한 원형인 듯

 

439 순례의 길.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안개 속을 배회하며 그대가 태어난 마을의 좁고 진흙투성이인 길에서 그대를 찾아 헤맸다. 그런 다음에 나는 훌륭한 고딕 성당이 있는 이웃의 자은 도시에서 그대의 어머니가 살던 집을 찾아냈다. 그대는 열병이 심할 때면 마음의 평화를 얻고 다시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그곳으로 자주 찾아갔다.

니체의 자취 순례중. 좋아하는 이들과 관련된 곳으로의 여행. 순례. 나의 여행도 이런 것이었으면. 나는 스위스에 가고 싶다. 엘리자베쓰 퀴블러로스 씨네 가족처럼 알프스를 트레킹하고 융이 말년을 보낸 그 호숫가 마을의 성과 탑을 보고 싶다. 가장 끌리는 곳은 프랑스다. 파리에서 일주일 이상 살고, 모네의 지베르니 붉은 양귀비 꽃밭과 성프란체스코의 아시시와 프로방스의 평온한 공기가 있는 수도원에 가고 싶다. 캠벨이 좋아했던 노트르담 대성당. 티벳과 부탄.   

 

452 때때로 나는 파리의 밤나무들 밑이나 유명한 강가를 거닐 때면 내 옆에서 서성거리는 그의 그림자를 불현듯 느꼈다. 우리들은 해가 질 때까지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 그는 항상 숨이 찼고 헐떡이는 숨결에서는 유황 냄새가 났다. …나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내 모습을 찾아냈다. 하지만 고뇌는 전염이 된다. …어느날 저녁 해가 지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나에게 얘기를 했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디오니소스랍니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저자의 순례를 하다 보면 저자가 말을 걸어올 때가 있으리라. 참으로 가슴 설레는 여행이리라. 전작주의 작가의 전작주의가 끝이 나면 나는 순례길에 오르리라. 마음에 들어온 작가의 책을 모조리 읽고, 그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작가를 읽으라는 건 조셉 캠벨의 독서법이었다. 전작을 읽지 않더라도 떠나봄직하다.

 

466 초인은 또 하나의 천국, 가엾고 불행한 인간을 기만하고 그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견디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신기루일 따름이었다.

그래도 어떠냐? 삶과 죽음을 견디게 하면 되지. 그게 구원 아닌가?

 

476 인도에서는 하루의 일이 끝나고 지붕과 마을의 골목과 사람들의 가슴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나이 먹은 기도사가 오두막을 나서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닌다. 그는 마술의 갈대 피리를 입에 물고 이 집 저 집을 찾아 다니며 영혼을 달래는 주문처럼 감미롭고 살랑이는 곡을 불어준다. 그것은 하루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이른바 호랑이의 곡이다.

나의 저녁기도는 이런 마술 피리를 부는 호랑이 기도사의 일이리라.

 

503 그날 저녁의 춤은 내가 억눌렀던 옛 샘을 터뜨렸다. 나는 크레타인의 내면은 쉽게 비워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 몸 속에서는 한껏 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시지 못했고, 원하는 만큼 많은 여자들과 접하지 못한 무서운 조상들이 이제 나를, 그리고 그들 자신을 죽지 않게 막으려고 맹렬하게 날뛰었다.

그는 자기 피 속의, 해적이었던 크레타인 할아버지의 피를 알아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또는 보고서의 형식으로 자서전을 썼다. 내 속에서 불쑥 나오는 피는 어떤 것인가?

 

504 나를 괴롭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때마다 나는 항상 어김없이 해답은 새로운 의문을 낳으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는 했었다그리스도는 붓다의 씨앗을 깊은 곳에 감추어 두었다. 그렇다면 붓다가 누런 승복 깊숙이 싸서 감춘 씨앗은 무엇일까?

해답이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질문은 대답보다 중요하다.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대답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 이런 질문들이 바른 이정표, 길잡이가 되리라.

 

604 같이 항해한 사람들이 서로 나누어 갖게 될 황폐한 땅을 둘러보니 내 눈에는 사람과 과수원과 물이 풍족한 광경이 선하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미래의 성당에서 울리는 종과, 운동장에서 뛰놀며 웃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었고 내 앞에는 아몬드나무 꽃이 피었으니, 손을 뻗으면 만발한 가지를 하나 꺾을 수도 있으리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믿음으로써 우리들은 그것을 창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란 우리들이 충분히 갈구하지 않았으며, 비존재의 음산한 문턱을 지나 전진하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들의 피를 쏟아 붓지 못한 무엇이다.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카프카스 유민을 그리스로 이주시키는 일을 하면서 한 생각. 내가 미래의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 10대 풍광의 이유, 아침마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면서 그걸 공감각적으로 느껴보려는 이유. 타당한 도전

 

662 나에게는 미덕이 내 본성의 열매가 아니라 투쟁의 열매였다. 신은 그것은 나에게 그냥 주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칼로 정복하기 위해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나에게는 미덕의 꽃이란 변형된 똥 무더기였다. 이런 전쟁은 절대로 끝이 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완전히 패배를 당하지도 않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다. 나는 끊임없이 투쟁한다. 아직도 나는 심연 위의 아슬아슬한 다리를 건너는 중이다.

 

670 평생 동안 나는 오직 하나의 길만이, 오름길만이 신에게로 이끌어 감을 분명히 알았다. 밑으로 내려가거나 평탄한 길이 아니라 오직 오름길만이. …나는 자주 주저했지만 신에게로 올라가는 길, 그러니까 인간 욕망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향한 길에 대해서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670 그뿐만 아니라 나는 신의 세 가지 피조물인 나비가 되려는 벌레와, 본성을 초월하려고 물에서 뛰어오르며 나는 듯한 물고기와 배 속에서 비단실을 뽑아내는 누에에게 늘 매혹되었다. 나는 항상 내 영혼이 가야 하는 길으 상징한다고 상상했던 그들과 언제나 신비로운 일치감을 느겼다. 

 

671 나에게는 나비가 되려고 하는 유충의 열망이 항상 유충에게는, 그리고 인간에게는 가장 절박하면서도 정당한 의미로 여겨졌다. 신은 우리들 유충을 만들고, 스스로 노력하여 나비가 되어야만 한다.

 

682 그는 심호흡을 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구원으로부터 구원이 되었군요. 당신은 구원으로부터 구원되었으니, 그것이 인간의 가장 큰 공훈이죠. 당신이 거쳐야 할 희망과 두려움의 과정은 끝났으니, 당신은 심연 위로 몸을 내밀고는 거꾸로 비친 세상의 환영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소중한 친구인 우리들은 함께 심연 위로 몸을 내밀고도 무서워하지 않았죠. 기억이 납니까?”

무서운 여행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고, 바다가 마구 울부짖으며 기억이 더 널리 뻗어 나가자, 우리들이 아들과 아내와 조국과 안락한 생활을 뿌리치던 광경과, 우리들이 미덕과 진리를 남겨두고 신의 칼립디스와 스킬레 사이를 무사히 지나고, 망망대해로 나가 돛을 잔뜩 펼치고 용감하게 심연을 향해 나아가던 광경이 거듭거듭 난에 보였다.

멋진 여행이었더요. 우린 이제 도착했군요. 그건 이제 우리들이 떠나리라는 뜻입니다. 우린 떠납니다. 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육체도 없이. 자유롭게요. 아니죠. 자유로부터 자유가 되어. 그 너머로. 자유를 넘어서 말이예요. 용기를 내요.”

난 당신을 따르기가 두렵습니다. 내 힘은 거기까지만 미치고, 더 이상은 못 가요.”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맡은 바 의무를 제대로 수행해서 당신보다 훌륭한 아들을 낳았어요. 당신은 여기 남아 부표 노릇을 해요. 난 더 나아갈 테니까.”

그는 미소지었고 목소리는 다정하고 장난스러웠다.

“40년 동안이나 헤매어도 신을 찾지 못했던 고행자가 있었죠. 어떤 시커먼 물체가 가운데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어요. 하지만 어느 날 아침에 알고 보니 그가 너무나 좋아해서 선뜻 버릴 마음이 없었던 낡은 털옷이었지요. 그것을 버리자 그는 당신 앞에 나타난 신을 보았어요. 이봐요. 당신이 나에게는 낡은 털옷이죠. 잘 가요

그는 꿈 속에서 그의 영혼과 대화를 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곧 죽으리라는 사망예고를 받았다. 그를 준비시킨다.

 

(2)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 또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460 내 삶이 항상 지나치게 단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위험할 만큼 복잡하다고 생각했다.

규칙적으로 먹고, 자고, 산책하고 오입질 하지 않는 작가도 가능

  

619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내 투쟁에 도움이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첫번째 인물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기운을 되찾게 하는 광채로 우주 전체를 비추고 태양처럼 평화롭고 찬란하게 빛나는 눈이었으며, 붓다는 세상 사람들이 빠졌다가 구원을 받는 한없이 깊은 새까만 눈이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에 해답을 얻지 못했던 나를 괴롭히는 철학의 온갖 문제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으며, 니체는 새로운 고뇌로 나를 살찌게 했고, 불운과 괴로움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도록 가르쳤으며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힌두교에서 이른바 구루라고 일컫고, 아토스 산의 사사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주어졌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선택했으리라. 그 까닭은 글 쓰는 사람이 구원을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그가 갖추었으니, 화살처럼 허공에서 힘을 포착하는 원시적인 관찰력과, 마치 만물을 항상 처음 보듯 대기와 바다와 불과 여인과 빵 따위의 영구한 일상적 요소에 처녀성을 부여하게끔 해주며 아침마다 다시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과, 영혼보다 우월한 힘을 내면에 지닌 듯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과, 신선한 마음과 분명한 행동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라한 한 조각의 삶을 안전하게 더듬거리며 살아가기 위해 하찮은 겁쟁이 인간이 주변에 세워놓은 도덕이나 종교나 고향 따위의 모든 울타리를 때려 부수려고 조르바의 나이 먹은 마음에서 회생의 힘을 분출해야 하던 결정적 순간마다 인간의 뱃속보다도 더 깊고 깊은 샘에서 쏟아져 나오는 야수적인 웃음을 그가 지녔기 때문이다. 굷주린 영혼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책과 선생들에게서 받아들인 영양분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에게서 얻은 꿋꿋하고 용맹한 두뇌를 돌이켜보면, 나는 격분과 쓰라린 마음을 견디기가 힘들다.   

<그리스인 조르바> 를 읽을 때 저자의 책 소개를 참고하리라.

나도 조르바가 필요한가? 아니면 내 안의 조르바를 활성화 시켜야하나?

조르바는 글쓰는 남성, 또는 이성, 아폴론에 치중하여 자신의 야성(디오니소스, 아레스)을 살려내지 못하고 있는 남성에게 자극이 되는 인물인 듯 하다. 여성에게 늑대 어머니 원형 같은 역할 같다. 나에게도 이런 살아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637 나는 밤새도록 생각했다. 죽음을, 그의 죽음을 몰아내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마음의 뚜껑이 열려 분노한 추억들이 뛰쳐나와 나를 서둘러 둘러싸려고 서로 밀치며 싸웠다. 그들은 땅과 바다와 대기에서 조르바를 불러다가 다시 살려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것이 마음의 의무가 아니던가? 사랑하는 이들을 부활시키고 그들을 다시 살려놓으라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신은 우리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을까? 그를 부활시켜야 한다.

그는 부활되었다. 조르바는 세상에게 그가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677 나는, 아니 내가 아니라 내 손으로 빚는 오디세우스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고, 더 이상 자신을 부끄럽게 행동하지 않았다. 나는 심연을 차분히 맞게끔 그를 창조했고, 그를 창조하면서 나는 그를 닮으려고 노력했다. 나 자신이 창조되는 중이었다. 나는 내 모든 열망을 오디세우스에게 맡겼으니 그는 인간의 미래가 흘러 들어가도록 내가 파내는 틀이었다.

 

667 앞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지는 나도 몰랐다. 나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마음 속에서 신화를 펼쳐 내며 기다렸다. 나는 이성의 지시가 없이 글을 썼으며, 머리가 아니라 사타구니 근처에 자리잡은 다른 힘이 나를 지배했다. 그 힘이 내 손을 이끌었고, 두뇌는 뒤를 따라가며 질서를 이룩했다.

나는 그토록 깊은 공감을 느끼며 누에의 말없는 고민과 안도감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누에가 먹은 모든 뽕나무 잎사귀들이 드디어 변화를 일으켜 비단실이 되면, 창조의 과정이 시작된다.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누에는 발작적인 경련을 일으켜 꽁무니를 내밀고는 가느다란 비단실을 한 가닥 한 가닥 뽑아서 인내와 신비로운 지혜로 하얗고 황금빛인 자신의 관을 짠다.

벌레 전체가 비단실로, 육체 전체가 영혼으로 변하는 과정보다 더 절박한 의무나, 더 감미로운 고민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또한 신의 일터를 지배하는 법칙을 그보다 더 충실하게 따를 길도 없다.

 

668 창조를 하는 동안 작가는 줄곧 배 속의 아들에게 영양분을 주는 여인처럼 입덧을 하게 된다. 나는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소리가 나도 온몸이 떨렸고, 아폴론에게 태형을 당한 듯 벗겨진 신경은 공기에 닿기만 해도 상처를 받았다.

 

669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든 문제와 자기보다 훨씬 우수한 본질과 싸움을 벌인다. 우리들의 가장 깊은 비밀, 표현할 참된 가치를 지닌 유일한 비밀은 표현되지 않고 항상 그대로 남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승리자까지도 패배자로 나타난다.

마르시아스와 오르페우스 이야기와 비슷. 닿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멀리 가버린다.

 

669 슬프다. 우리들에게는 유일하게 불멸의 부분인 !’를 인류에게 전할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어휘! 어휘! 슬프다. 나에게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었다. 내가 거느리는 군사라고는 스물네 개의 글자, 스물네 개의 납 인형 병사들뿐이었다. 나는 전원 동원령을 내려 군대를 일으켜서 죽음과 싸우리라고 생각했다.

(3)   카잔차키스에게 아버지는 매우 거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소설 미할리스대장을 썼다.

어쩌면 나의 첫 책 역시 그런 목적일 지 모르겠다. 탑 때문에 그늘이 진다고 투덜대던 소나무가 제 안에서 힘을 내서 키를 키우는 과정의 증거물. 상대를 탓하기 보담 나를 성장시키려는 것

 

660 아버지는 밑둥이 단단하고, 잎사귀가 거칠며, 열매가 쓰고, 꽃이 피지 않는 떡갈나무였다. 아버지는 주변의 모든 힘을 삼키고, 그의 그늘에서는 다른 모든 나무가 말라죽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그늘에서 시들었다.

 

661 나는 평생에서 오직 한 사람, 아버지만을 두려워했다. 이제 내가 두려워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렸을 때 눈을 들어 보면 그는 거인처럼 느껴졌다. 자라는 동안에 내 주변에 사람들과 집과, 나무들 그리고 모든 사물이 줄어들었다. 아버지만이 어릴 적에 본 그대로 항상 거인으로 남았다. 내 앞에 우뚝 솟은 아버지는 내가 받을 몫의 햇빛을 막아섰다.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 사자의 굴에서 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소용 없었다. 비록 내가 갈팡질팡하고, 떠돌아다니고, 힘든 지적인 모험에 몸을 던져도 아버지의 그림자는 항상 나와 빛 사이를 막아섰다.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일식 밑에서 항해했다.

나의 내면에는 많은 어둠이, 많은 부분의 아버지가 존재한다. 이 어둠을 빛으로 한 방울의 빛으로 바꿔보려고 나는 평생 결사적으로 싸웠다. 그것은 연민이나 휴식도 없는 가혹한 투쟁이었다. 단 한 순간이나마 잔혹성이 중단되게 내버려 두었다면 나는 파멸했으리라.

그래서 이 사람은 소설 <미할리스 대장>을 썼구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자기만의 영역을 갖기 위해서. 이 방법도 좋겠다. 너무 거대한 대상에 대해 글을 쓰는 것.

 

(4)   언젠가 어디에선가 쓸 수 있을 것도 같은 사례와 우화들

 

아니마의 사례라고 추측하는 사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시나이 산이 있는 사막의 수도원에서 어떤 목소리와 대화한다.

 

374 사막에 지은 신의 성에서 보낸 첫 날 밤을 어찌 내가 잊을 수 있겠는가? 침묵은 유령처럼 내 주변과 위로 솟았고, 나는 캄캄하고 말라붙은 우물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침묵은 갑자기 음향이 되었고, 내 영혼은 전율하기 시작했다.

너는 이곳 내 집에서 무엇을 원하느냐? 너는 순수하지도 않고, 정직하지도 못하다. 네 시선은 갈팡질팡하는구나. 난 너를 믿지 않아. 넌 당장이라도 배반할 놈이야. 네 신앙은 거룩하지 못한 많은 신앙을 꿰어 맞춘 누더기지. 너는 모든 길의 끝에 하느님이 앉아서 기다린다는 진실을 몰라서 항상 조급한 마음에 중간에서 용기를 잃고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잖아. 평범한 사람들은 세이렌을 보거나 그 노래를 듣지 못해. 장님에 귀머거리가 된 그들은 세상에서 노예처럼 쭈그리고 앉아 노를 젓지. 하지만 보다 출중한 선장들은 그들 내면에 존재하는 세이렌인 영혼의 소리를 듣고 용감하게 그 목소리를 따라가지. 어떤 다른 요소가 과연 인생을 보람있게 만든다고 생각해? 하지만 불쌍하고 재앙에 빠진 선장들은 세이렌의 소리를 듣고도 믿지 않아. 신중함과 비겁함 뒤에 구덩이를 파고 숨어서 그들은 평생 민감한 시금 저울로 이리저리 달아보며 살아가지. 그리고 그들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야 할 지 모르는데, 그들이 지옥을 장식하거나 천국을 더럽히는 꼴을 보기가 싫은 하느님이 그들에게 부패와 청렴의 중간쯤,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살아가라고 명령하지.”

목소리가 멈추었다. 부끄럽고 화가 나서 불처럼 새빨개진 나는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자 사막으로부터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선가 나는 힘을 얻어 머리를 들고 반박했다.

나는 끝에 도달했지만, 모든 길의 끝에는 심연뿐이었어요.”

너는 더 나아갈 힘이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깨달았어. 우리들은 건너지 못할 대상은 무엇이나 심연이라고 불러. 심연이나 길의 끝은 없고, 자신의 용감성이나 비겁함에 따라 모든 대상을 이름짓는 인간의 영혼만 존재할 따름이야. 그리스도, 붓다, 모세는 모두 심연을 발견했어. 하지만 그들은 다리를 놓고 건너갔지.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인간의 무리는 그들의 뒤를 따라 건너 가고 있어.”

어떤 사람들은 신의 뜻을 따라,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투쟁을 해서 영웅이 됩니다. 나는 투쟁을 하죠.”

내 주변과 내면에서 무시무시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웅이라고? 하지만 영웅이 된다는 말은 한 인간의 개인적인 양상을 초월하는 율동에 자신을 종속시킨다는 걸 의미해. 너는 아직 불안과 초조로 가득 찼어. 자신의 내면에서 혼돈을 억누르고 하나의 완전한 말씀을 창조할 능력이 없어서 너는 기존의 모든 형식은 너무 답답하다고 핑계를 대며 칭얼거려. 하지만 보다 높은 차원의 사상이나 행동을 향해서 더 나아갔더라면, 너는 너와 같은 영혼이 열 명이라도 편안하게 조화를 이루며 일하는 영웅성의 터전 언저리에 도달했을 거야. 만일 알려진 묵시적 상징으로부터 추진력을 받았다면 너는 나름대로의 종교적 실험을 밀고 나가(추구는 하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현대적인 형태를 신과 인간의 오랜 정열에 부여할 수도 있었겠지.”

당신은 옳지 않아요. 당신의 마음은 연민을 모릅니다. 갈 길을 선택하려고 갈림길에 설 때마다, 오 무정한 목소리여, 나는 당신 얘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넌 도망칠 때마다 앞으로도 항상 내 목소리를 듣게 되겠지.”

난 도망친 적이 없어요.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버리고 항상 전진하기만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언제까지 그럴 셈이냐?”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요. 그런 다음에 나는 쉬겠어요.”

정상은 없고 언덕뿐이야. 휴식은 없으며 투쟁뿐이고, 왜 놀라? 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나를 노려보지? 넌 아직 나를 모르나? 넌 내가 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겠지? 아냐. 난 네 목소리야. 난 항상 너와 함께 여행하고, 절대로 네 곁을 떠나지 않아. 너를 한 번이라도 혼자 남겨 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언젠가 내가 화를 내며 네 배 속에서 튀어나왔을 때, 네가 나한테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어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어. 나는 너의 여행 반려자 암호랑이야.”

목소리가 멈추었다. 그러자 나는 안심이 되었다. 왜 나는 이 암호랑이를 무서워하나? 우리들은 항상 함께 여행한다. 우리들은 모든 사물을 함께 보고 함께 즐겼다. 우리들은 외국 땅에서 함께 먹고 함께 마셨으며,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도시와 여인과 사상을 함께 즐겼다. 전리품을 잔뜩 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조용한 우리 골방으로 돌아가면 암호랑이가 소리 없이 은신처를 제공하는 내 머리를 발톱으로 파헤치고 들어간다. 암호랑이는 내 두개골에 착싹 달라붙어서 발톱으로 내 두뇌를 움켜잡고, 우리들은 어휘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우리들이 본 모든 대상과, 아직 보기를 갈망하는 모든 대상들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의 아니마를 암호랑이로 표현한 건 아닐지. 아니마는 남성에게 있어 영혼, 감정을 담당하니.

 

나그네를 대접하는 성직자의 이야기. 바우몬영감과 비우키스 내외도 이런 예

 

429 “내 아내는 몸이 좀 불편하니까 양해하시기 바래요. 하지만 내가 요리를 하고, 저녁상을 차리고, 당신의 잠자리를 마련하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무겁고 근심에 찼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무척 창백했고, 울기라도 한 듯 두 눈은 충혈되고 퉁퉁 부었다. 하지만 나는 불길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식사를 하고 잠을 잤으며, 아침에 성직자는 나에게 빵과 치즈와 우유를 쟁반에 담아 가져다 주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작별인사를 했다. ..”어제 아침에 그 집아들이 죽었죠. 외아들이요. 여자들이 곡하는 소리를 못 들었어요?” “내실에 시체를 눕혀 두었죠. 당신이 듣고 당황해할까봐 울음소리를 참았던 모양이군요. 즐거운 여행하세요.”

나그네를 대접하는 성직자의 집.

 

 

해뜰 때와 해 질 때, 영묘한 시간

 

476 인도에서는 하루의 일이 끝나고 지붕과 마을의 골목과 사람들의 가슴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나이 먹은 기도사가 오두막을 나서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닌다. 그는 마술의 갈대 피리를 입에 물고 이 집 저 집을 찾아다니며 영혼을 다래는 주문처럼 감미롭고 살랑이는 곡을 불어준다. 그것은 하루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이른바 호랑이의 곡이다.

나의 저녁기도는 이런 마술 피리를 부는 호랑이 기도사의 일이리라.

 

 

성 프란체스코를 사랑하는 이유.

 

521 두 가지 이유에서 나는 그를 사랑하죠. 첫째 그는 르네상스 이전의 가장 위대한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어요. 신의 가장 하찮은 피조물에게까지도 그는 허리를 굽혀 귀를 기울이고는 그들이 지닌 불멸성을 노래로 들었어요. 둘째는 사랑과 고행의 수련을 통해서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과 비웃음과, 불의와, 추악함 따위의 (날개가 없는 인간들이 현실이라 일컫는) 현실을 자신의 영혼으로 정복했고, 현실을 진리보다도 더욱 참된 현실적이고 기쁜 꿈으로 변형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를 사랑합니다. 그는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찾으려고 애썼던 비결을, 가장 천한 금속까지도 순금으로 만들어 놓는 방법을 발견했죠. 왜냐고요? 프란체스코에게는 현자의 돌이란 인간이 구하기 어려운 외적인 어떤 요소이기 때문에 자연법칙을 어겨야만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신비한 연금술의 기적을 통해 그는 현실을 안정시키고 인류를 필연성으로 해방시키고, 내적으로는 그의 육체를 모두 혼으로 바뀌었어요. 나에게는 성 프란체스코가 인간의 무리를 무조건 승리로 이끄는 위대한 장군입니다. 그래요. 장군과 시인 그게 전부에요.

성 프란체스코에 대한 이야기

 

 

장미를 피워낼 수 있는 이유

 

659 고대의 랍비 나흐마은 내가 입을 열어 얘기하고, 펜을 들어 글을 쓸 때가 과연 되었는지를 어떻게 알아내는지에 대해 여러 해 전에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는 소박하고 명랑하고 훗날 성자가 될 인물이었는데, 제자들에게 그들 또한 소박하고 명랑하고 성자가 되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은 모두 그의 발 밑에 꿇어 엎드려 불평을 늘어놓았다.

존경하는 랍비여, 당신은 어찌하여 랍비 자디그처럼 얘기하시지 않고 사람들이 입을 멍청하게 벌리고 얼이 빠져 귀를 기울이게끔 위대한 사상들을 열거하며 위대한 이론을 수립하시지 않습니까? 기껏 해야 할머니처럼 쉬운 말을 써가면서 옛날 애기밖에 못하시나요?”

마음 착한 랍비가 미소를 지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는 대답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어느 날 쐐기풀이 장미넝쿨에게 물었느니라. “장미넝쿨 부인, 당신의 비결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시지 않겠어요? 어떻게 장미꽃을 만들어내죠?” 그래서 장미넝쿨이 대답했지. 내 비밀은 아주 간단하답니다. 쐐기풀아가씨. 겨우내 나는 참을성 있게 믿으면서 사랑을 지니고 흙을 일구는데, 머릿속으로는 장미꽃 한 가지만을 생각해요. 빗발이 나를 후려치고, 바람이 잎사귀를 벗기고, 눈이 쌓여 무겁게 짓눌러도, 내 마음 속에는 장미꽃에 대한 생각뿐이랍니다. 그것이 내 비결이에요. 쐐기풀 아가씨.”]

무슨 소린지 모르겟습니다. 스승님제자들이 말했다.

랍비가 웃었다. “사실 나도 잘 이해를 못 하겠어.”

그럼 뭐예요? 스승님

아마 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나봐.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오랫동안 말없이 끈기있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다듬고 가꾸지. 그러다가 내가 입을 열면 (얘들아 정말 이상하기도 하지) 생각은 옛날이야기가 돼버려. 그는 한 번 더 웃었다.

우리 인간들은 그걸 옛날얘기라 부르지만, 장미넝쿨은 그걸 장미꽃이라고 부른단다.” 그가 말했다.

 

 

3.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351 보복과 벼락으로 가득 찬 생생한 성경을 접할 때마다 나는 그것이 태어난 살벌한 산으로 찾아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지고 싶다는 불타는 욕망을 느꼈다.

 

353 “신이 어떻게 자기 얘기를 하는 지 알아? 인간과 산들이 어떻게 신의 손아귀에서 녹아버리고 왕국들이 그의 발 밑에서 어떻게 먹혀 버리는 지 아니? 인간은 소리치고 울고, 애원하고, 굴 속에 숨고,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며 도망치려고 애쓰지. 하지만 여호와는 단검처럼 그의 가슴에 박혀서 뽑히지 않아.”

다시 한 번 처녀는 침묵을 지켰고 나도 그랬다. 그러나 가슴 깊이 박힌 단검이 느껴졌다. 신이 사막으로 지나가기 위해 터놓은 강바닥을 만지고 보려는 욕망이, 사자의 굴로 들어가려는 인간의 욕망이 처음으로 불붙은 때는 바로 그날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수에즈로, 수에즈에서 아라비아 페트래아의 항구 라이토로, 거기에서 다시 신이 밟았던 시나이로 떠나야 하는 내 여로는 덧없는 하나의 꿈, 불타는 매혹의 환상이었다.

 

354 거친 모래를 디딘 내 마음은 춤을 추었다.

 

355 나는 히브리 사람들이 홍해를 건넌 다음 이곳의 자그마한 마을에서 발견했다고 성서에 밝힌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에 대해서 수도원장과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외국에 사는 다정한 친척들의 안부를 묻듯이 스무 개의 샘물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나는 종려나무 숲이 아직도 그대로이며, 샘들이 마르지 않았다는 그의 얘기를 듣고 기뻐했다.

 

355 사랑과 마찬가지로 친절도 받는 자보다는 베푸는 자가 더 행복하다.

 

357 낙타의 율동에 몇 시간씩 몸을 맡기다 보니 나는 왜 아나톨리아 사람들이 낙타 등에 올라앉은 듯 몸을 앞뒤로 흔들며 코란을 읽는지 이해가 되었다.

 

357 눈이 닿는 끝까지 우리들 앞에는 장밋빛 폭풍 같은 광활함이 뻗어 나갔다. 나는 그것이 바다라고 생각했다.

 

358 모래가 솟구쳐 우리들의 얼굴과 손을 때려 상처를 냈다. 낙타들은 더 이상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비록 고통스러운 여행이 3시간이나 계속되었지만 나는 무서운 사막의 회오리바람까지도 경험하게 되었기에 은근히 기뻤다.

 

359 낙타들은 밖에서 새김질을 했고, 나는 그들이 우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사막 전체가 낙타처럼 되새김질을 했다.

 

359 이튿날 동틀 녘에 우리들은 인간을 증오하고 쫒아내는, 황량하고 고독한 산들 사이로 여행을 시작했다. 시커먼 바위 틈에서 가끔 잿빛 메추라기가 쇳소리를 내며 날개를 쳤고, 우리들에게서 송장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덤벼들려고 까마귀가 원을 그리며 우리들의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359 우리들은 3천 년 전에 이집트의 풍요한 당으로부터 히브리 사람들이 도망쳤던 길을 따라갔다.

 

360 인간은 은총을 받기 위해 첫아들이나 외동딸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신에게 제물로 바쳐야만 했다.

 

360 수백 년에 걸쳐 번영과 더불어 민족은 서서히 개화하고 나약해졌다. 신 또한 개화하고 나약해졌다.

 

361 우리들이 횡단해야 하는 나무도 없고, 황량하고, 살벌한 골짜기는 여호와의 무서운 칼집이었다. 이곳을 신은 함성을 지르며 지나갔다.

 

362 이렇듯 끓어오르는 가마 속에서 40년 동안 구워 낸 한 민족이 어찌 멸망하겠는가?

어려움, 연단의 의미다. 아이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내가 겪는 어려움이나 쉽지 않은 여정 또한 나를 굽는 가마이리라. 갑자기 힘이 생기네. 나의 사막은 무엇인가?

 

362 사막에 힘입어 유대인들은 계속 생존했고, 그들이 지닌 미덕과 악덕을 통해 세계를 지배했다.

 

364 나는 이들 사막의 자손에게서 진심으로 감동을 느꼈다. 대추야자 몇 개와, 옥수수 한 줌과, 커피 한 잔만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라. 그들의 몸은 유연하고 종아리는 암염소처럼 갸날프며, 눈은 매처럼 날카롭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면서도 가장 온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비록 굶주려도 그들은 한껏 먹지 않고 나그네에게 줄 커피와 설탕과, 대추야자를 조금 남겨둔다.

 

364 베두인의 첫사랑은 낙타이다. 나는 어느 낙타가 조금이라도 신음 소리를 낼 때마다 타에마나, 만수르나, 아우아의 섬세한 귓바퀴가 초조하게 쫑긋거려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멈춰서서 안장을 바로잡고, 배와 발굽을 살펴보고, 마른 풀잎을 닥치는 대로 주워다가 먹였다. 저녁이면 그들은 안장을 내리고 털 담요를 덮어주고는 땅바닥에 헝겊을 깔고 곡식에 섞인 불순물을 조심스럽게 골랐다.

 

365 시나이 수도원이 나타났다. 나는 이 순간을 무척 원했지만 너무나 고생해서 얻은 결실이라 이제 소란은 떨지 않고 조용히 기뻐했다.

 

366 나는 환희를 억제하기 무척 힘들었다. 이곳 성서의 산봉우리들, 구약 성서의 높은 고원 한가운데 나는 서 있다. 왼쪽에는 모세가 놋쇠 뱀을 묻은 지혜의 산이다. 그 뒤로는 아말렉족의 나라와 아모리테 산맥, 북쪽으로는 케달과 이두미아와 타이만 산맥을 거쳐 모아브 사막에 이른다. 남쪽으로는 파란 곳과 홍해, 마지막으로 서쪽으로는 모세가 신과 얘기했던 거룩한 산봉우리가 우뚝한 시나이 산맥, 그리고 더 멀리 성 카테리나 수도원, 태양과 눈 속에서 수도원의 꽃밭이 반짝였다. 올리브나무들이 조용히 바스락거렸고, 말끔한 잎사귀들 틈에서 오렌지가 빛났으며, 칠흑처럼 새까만 삼나무들이 고행자처럼 솟았다. 꽃이 만발한 아몬드나무의 향기가 신의 숨결처럼 규칙적으로 천천히 와서 콧구멍과 마음을 기쁨으로 들뜨게 했다.

구약성서에서 감동을 받던 이는 사막을 지나 시나이산으로 순례여행을 간다. 나에게 이런 곳은 어디일까?

 

369 “사도 루가도 화가였어요.” 모든 예술가를 옹호하려는 뜻에서 내가 말했다.

루가? 루카스loukas, 공동번역성서에는 루가, 개역판한글에서는 누가로 번역됨.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편집자. 사도 바울로의 주치의이자 제자로 간주됨. 기독교 회화에서 그의 상징은 소인데 이는 침착하고 강인한 성품을 표현한 것이다. 

 

372 나는 수도원장에게 내가 위기를 맞았으니 내 영혼이 집중된 명상을 통해서 결론을 얻게끔 수도원에서 며칠 묵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신은 하느님을 찾고 싶으신가요?”

나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나는 어느 길을 따르라고 신이 얘기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곳 사막에서만 영혼이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니까요.”

사막에서는 모든 목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서로 분간이 가지 않는 신과 악마의 목소리가 특히 잘 들리죠. 조심해야 합니다.”

 

374 창자는 지치고 패배해서 아버지의 평화로운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밤 그가 잠을 자려고 푹신한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조용히 문이 열리더니 막내 남동생이 들어온다. “난 떠나고 싶어요.” 그가 말한다. “아버지의 집은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요.” 패배해서 방금 돌아온 형은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기뻐한다. 그는 동생을 껴안고 어떻게 해야 하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는 지를 알려주고, 자기보다 용감하고 자존심이 강해서 아버지의 외양간’(그는 아버지의 집을 그렇게 불렀다.)으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는 문까지 동생을 배웅하고는 악수를 하며 생각에 잠긴다. 혹시 동생은 나보다 더 강해서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르지.

돌아온 탕자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

 

아니마의 사례라고 추측하는 사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시나이 산이 있는 사막의 수도원에서 어떤 목소리와 대화한다.

 

374 사막에 지은 신의 성에서 보낸 첫 날 밤을 어찌 내가 잊을 수 있겠는가? 침묵은 유령처럼 내 주변과 위로 솟았고, 나는 캄캄하고 말라붙은 우물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침묵은 갑자기 음향이 되었고, 내 영혼은 전율하기 시작했다.

너는 이곳 내 집에서 무엇을 원하느냐? 너는 순수하지도 않고, 정직하지도 못하다. 네 시선은 갈팡질팡하는구나. 난 너를 믿지 않아. 넌 당장이라도 배반할 놈이야. 네 신앙은 거룩하지 못한 많은 신앙을 꿰어 맞춘 누더기지. 너는 모든 길의 끝에 하느님이 앉아서 기다린다는 진실을 몰라서 항상 조급한 마음에 중간에서 용기를 잃고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잖아. 평범한 사람들은 세이렌을 보거나 그 노래를 듣지 못해. 장님에 귀머거리가 된 그들은 세상에서 노예처럼 쭈그리고 앉아 노를 젓지. 하지만 보다 출중한 선장들은 그들 내면에 존재하는 세이렌인 영혼의 소리를 듣고 용감하게 그 목소리를 따라가지. 어떤 다른 요소가 과연 인생을 보람있게 만든다고 생각해? 하지만 불쌍하고 재앙에 빠진 선장들은 세이렌의 소리를 듣고도 믿지 않아. 신중함과 비겁함 뒤에 구덩이를 파고 숨어서 그들은 평생 민감한 시금 저울로 이리저리 달아보며 살아가지. 그리고 그들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야 할 지 모르는데, 그들이 지옥을 장식하거나 천국을 더럽히는 꼴을 보기가 싫은 하느님이 그들에게 부패와 청렴의 중간쯤,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살아가라고 명령하지.”

목소리가 멈추었다. 부끄럽고 화가 나서 불처럼 새빨개진 나는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자 사막으로부터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선가 나는 힘을 얻어 머리를 들고 반박했다.

나는 끝에 도달했지만, 모든 길의 끝에는 심연뿐이었어요.”

너는 더 나아갈 힘이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깨달았어. 우리들은 건너지 못할 대상은 무엇이나 심연이라고 불러. 심연이나 길의 끝은 없고, 자신의 용감성이나 비겁함에 따라 모든 대상을 이름짓는 인간의 영혼만 존재할 따름이야. 그리스도, 붓다, 모세는 모두 심연을 발견했어. 하지만 그들은 다리를 놓고 건너갔지.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인간의 무리는 그들의 뒤를 따라 건너 가고 있어.”

어떤 사람들은 신의 뜻을 따라,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투쟁을 해서 영웅이 됩니다. 나는 투쟁을 하죠.”

내 주변과 내면에서 무시무시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웅이라고? 하지만 영웅이 된다는 말은 한 인간의 개인적인 양상을 초월하는 율동에 자신을 종속시킨다는 걸 의미해. 너는 아직 불안과 초조로 가득 찼어. 자신의 내면에서 혼돈을 억누르고 하나의 완전한 말씀을 창조할 능력이 없어서 너는 기존의 모든 형식은 너무 답답하다고 핑계를 대며 칭얼거려. 하지만 보다 높은 차원의 사상이나 행동을 향해서 더 나아갔더라면, 너는 너와 같은 영혼이 열 명이라도 편안하게 조화를 이루며 일하는 영웅성의 터전 언저리에 도달했을 거야. 만일 알려진 묵시적 상징으로부터 추진력을 받았다면 너는 나름대로의 종교적 실험을 밀고 나가(추구는 하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현대적인 형태를 신과 인간의 오랜 정열에 부여할 수도 있었겠지.”

당신은 옳지 않아요. 당신의 마음은 연민을 모릅니다. 갈 길을 선택하려고 갈림길에 설 때마다, 오 무정한 목소리여, 나는 당신 얘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넌 도망칠 때마다 앞으로도 항상 내 목소리를 듣게 되겠지.”

난 도망친 적이 없어요.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버리고 항상 전진하기만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언제까지 그럴 셈이냐?”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요. 그런 다음에 나는 쉬겠어요.”

정상은 없고 언덕뿐이야. 휴식은 없으며 투쟁뿐이고, 왜 놀라? 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나를 노려보지? 넌 아직 나를 모르나? 넌 내가 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겠지? 아냐. 난 네 목소리야. 난 항상 너와 함께 여행하고, 절대로 네 곁을 떠나지 않아. 너를 한 번이라도 혼자 남겨 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언젠가 내가 화를 내며 네 배 속에서 튀어나왔을 때, 네가 나한테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어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어. 나는 너의 여행 반려자 암호랑이야.”

목소리가 멈추었다. 그러자 나는 안심이 되었다. 왜 나는 이 암호랑이를 무서워하나? 우리들은 항상 함께 여행한다. 우리들은 모든 사물을 함께 보고 함께 즐겼다. 우리들은 외국 땅에서 함께 먹고 함께 마셨으며,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도시와 여인과 사상을 함께 즐겼다. 전리품을 잔뜩 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조용한 우리 골방으로 돌아가면 암호랑이가 소리 없이 은신처를 제공하는 내 머리를 발톱으로 파헤치고 들어간다. 암호랑이는 내 두개골에 착싹 달라붙어서 발톱으로 내 두뇌를 움켜잡고, 우리들은 어휘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우리들이 본 모든 대상과, 아직 보기를 갈망하는 모든 대상들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의 아니마를 암호랑이로 표현한 건 아닐지. 아니마는 남성에게 있어 영혼, 감정을 담당하니.

 

377 나는 사막을 거닐고 싶은 초조감 때문에 새벽에 일어났다.

 

378 미치광이와 선지자 분명히 두 종류의 사람만이 그런 사막에서의 삶을 견디어낸다.

 

신을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 방법

378 두 선지자가 사막을 여행하다가 논쟁을 벌였다. 한 사람은 신이 불이고, 다른 사람은 신이 벌집이라고 주장했다. 서로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질러 댔지만 그들은 상대방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결국 첫번째 선지자가 화가 나서 앞에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만일 내 말이 사실이라면 저 산이 흔들릴 겁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산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증거가 되지 못해요.” 두번째 선지자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만일 내 말이 사실이라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내 발을 씻어줄 거예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쭈그리고 앉아 발을 씻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선지자는 머리를 젓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건 증거가 되지 못해요.” 그가 말했다.

만일 내 말이 사실이라면 신이 그 말이 옳다고 소리칠 거예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이 옳다!”

하지만 두번째 선지자는 다시 머리를 젓기만 했다. “그건 증거가 되지 못해요.” 그가 말했다.

바로 그때 엘리야가 하늘을 지나가게 되었다. 신이 웃는 모습을 보고 그가 가까이 가서 물었다. “왜 웃으시나이까?”

신이 대답했다. “마음이 즐겁기 때문이지. 엘리야. 저 아래 땅에서 두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어봤는데, 그들은 참된 내 아들들이다.”

계속해서 길을 가는 동안 선지자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아들들을 둘 만큼 훌륭한 아버지는 행복하리라. 신의 밀림에서 나온 그런 사자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사막은 행복하리라.

무척 흥미로운 사례. 나는 신이 왜 행복했고, 신의 밀림에서 나온 사자를 보았기 때문에 사막이 행복했으리라했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이건 신을 믿고 보는 방식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이든 벌집이든 상관이 없이 그저 열렬히 자기만의 길로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는?  

 

380 사람들이 정상에 이르기를 무서워하던 시절에는 고해 신부가 이곳에 앉아서 그들의 고해를 들어주었다. 신의 산을 오르는 사람은 누구나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순결해야 했으니 그러지 않았다가는 정상에서 죽음을 당했다. 지금은 출입문이 버림을 받았다. 더러운 손과 죄많은 마음도 이제는 정상이 죽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 놓고 지나갈 수가 있다.

 

382 눈과 손을 그토록 탐욕스럽게 놀리는 사람을 여태 나는 별로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남은 자그마한 뼈들까지도 모아 앞에 쌓아놓고는 빨아먹기 시작했다…”만약 성령이 비둘기였다면 당신은 신도 먹어치웠겠어요.”  

시나이산 정상에서 식사할 때 수사의 모습. 이 장면이 여기 들어간 건 꼭 신성, 인간성 명징한 앵커처럼 느껴진다.

 

384 일이 잘 돌아가 나는 돈을 벌었죠. 그러데 돈을 잘 번다는 건 무얼 뜻하냐? 그건 신을 잊는다는 의미입니다. ..돈만 없어지면 당장 수사가 되겠다고 나는 자꾸만 혼자 다짐했죠. 그랬더니 하느님이 날 불쌍히 여겼어요. 난 주식 장난을 하다가 돈을 몽땅 날렸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난 말했어요. 난 줄을 끊고 떠났습니다….무한한 신의 은총이 내 손을 잡고 이 곳으로 데리고 왔어요. 오기는 했지만 난 아직 젊고 까다로웠죠.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나는 아직 피가 끓었어요. 나는 팔짱을 끼고 멀거니 앉아 있지를 못했죠. 기도를 해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 나는 일을 시작했어요. 나는 길을 닦았죠. 우리들이 거쳐온 길들은 모두 내가 닦아 놓은 거에요. 이곳에서 내가 맡은 일은 길을 내는 것이고, 그게 내 천직이죠. 만일 천국으로 간다면, 난 내가 닦아놓은 길로 갈 겁니다.   

일수행의 정의 격인 말.

 

자신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신의 명령에 따르는 선지자 사무엘

 

386 반발했다가 신의 두 손에 동댕이질을 당한 백발의 선지자 사무엘을 생각하니 마음이 슬퍼졌다. 나는 마음을 달래려고 종이를 가져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슬픔을 쫒아 버리기 위해서 벌써부터 도피하던 비겁한 방법이 바로 이렇듯 글을 쓰는 것이었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말

 

사무엘아, 물주전자에 예언의 기름을 가득 채우고 베들레헴으로 가거라. 입도 열지 말고 아무도 동반하지 말고, 이새의 집 문을 두드려라.”

그를 보는 순간에 네 마음은 송아지처럼 고함치리라. 네가 선택할 사람은 그 사람이니라. 그의 머리카락을 헤치고 머리 정수리를 찾아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정해 기름을 바르거라.”

아닙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 때문에 저는 갈 수가 없나이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준 사람은 저입니다. 저는 그를 제 아들보다도 사랑했나이다. …”

..”아직도 그래로더이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그래요소년이 대답했다. “아직도 주님과 싸우고 있어요.”

사무엘은 마음이 소리 지르기를 기다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여 왜 말이 없나이까?’ 그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러자 그의 머리 속에서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그렇게 투덜거리느냐? 네 영혼이 그에게 반한 모양이구나. 그래도 나는 그를 원하지 않는다..“

둘째 아들이 왔지만 선지자의 마음은 그대로였고, 내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는 주님의 종 사무엘이요. 주님이 가라기에 나는 왔고, 주님이 소리를 치라기에 나는 소리를 쳤소. 나는 주님의 발이요, 입이니까요. 주님의 손이요 그림자에요.”

나는 당신을 증오하고, 당신을 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오. 하지만 주님의 바람이 내 머리 위로 지나갔고, 보다시피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손을 들어 예언의 기름을 당신 머리에 붓고 있소.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소.”그는 성스러운 병을 바위에 던져 깨뜨려 버렸다. “주여 당신은 제 마음을 저렇게 깨뜨려 버렸나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396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평생 닻을 내리기 위한 항구가 아니라, 앞바다로 나가서 거칠고도 광포한 파도를 만나 신의 품 안에서 닻을 내리기 위해 평생 투쟁하려고 그곳을 떠나야 하는 항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스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는 어서 오라고 환영하지 않고 잘 가라고 배웅했다. 

 

396 내 마음을 매혹시키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더 많은 용기를 주었던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인간이 어떻게 벅찬 투쟁과 만용과 미친 듯한 희망을 품고 신에 도달해서, 신과 한 덩어리 한 몸이 되려고 노력했느냐 하는 사실이었다. 신에게 이르는 길은 이것뿐이었다. 그리스도의 피투성이 발자취를 따라 우리들은 우리 내면의 인간을 혼으로 바꿔 놓아 신과 한 몸이 되도록 해야 한다.

 

397 젊은 시절부터 나의 가장 큰 고민과 모든 기쁨과 슬픔의 샘은 정신과 육체의 끊임없고 무자비한 싸움이었다. 고뇌는 격렬했다. 나는 내 육체를 사랑해서 그것이 사멸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영혼을 사랑해서 그것이 썩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조르바에게 보내는 찬사는 이런 고민 아래서 일어났다.

 

400 인간은 켄타우로스여서, 말굽은 땅을 밟지만 몸의 가슴부터 머리까지는 무자비한 함성에게 속박되어 고통을 당한다. 그는 동물적인 칼집에서 칼처럼 자신을 뽑아내려고 또다시 영겁에 걸쳐 투쟁해 왔다. 그는 또한 인간의 칼집에서 자신을 뽑아내려는 새로운 투쟁도 벌였다.

인간을 켄타우로스로 본 시각이 신선. 육체와 정신 사이에서 투쟁해온 저자이기에 가능한 통찰.

 

400 신성한 고적함(고독감) 속에서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사이에 내 마음은 차분해졌다. 해답들이 마음 속에 가득차는 듯 싶었다. 확신을 얻는 나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401 내 피는 점점 더 신의 맥박을 지니게 되었다. 아침기도와 성찬식과 만과와 성가 영창과 아침에 솟아오르고 저녁에 지는 태양과 수도원 위에 밤마다 샹들리에처럼 매달리는 성좌 모두가 영원한 법칙에 따라 왔다가 가고, 인간의 피에 똑같이 평온한 맥박을 베풀었다.

나도 사막의 수도원에서 며칠 지내보고 싶다.

 

401 나는 날마다 몇 시간씩 사막을 방황하며, 아직 섣불리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비밀의 결심이 서서히 마음 속에서 무르익어 감을 의식했다. 저녁에 돌아가면 나는 골방 밖으로 나온 수사들을 만났다.

 

403 나는 신과 함께 지내고 싶으며 이곳 사막에서 나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그를 훨씬 가깝게 느낍니다. 하지만 나를 속세에 묶어놓은 뿔들이 아직 다 뽑히지 않은 듯 싶어요.

 

404 골방은 너무 좁아서 그의 손이 양쪽 벽에 닿을 지경이었다. “여기가 내 고치 속이랍니다. 나는 애벌레처럼 이 속에 스스로 갇혀 삽니다. 나는 나비가 될 날을 기다리죠.”

시간이든 장소든 자신의 성소도 고치이리라.

 

405 “나는 어릴 적부터 줄곧 싸움을 해왔어요.”

누구하고요?” 나는 주저했다. 갑자기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누구하고요?” 수사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몸을 수그리며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신하고요?”

이것은 병일까요? 신부님? 나는 어찌해야 병이 나을까요?”

영원히 병이 낫지 않기를 기구합니다.”

 

406 한 달이 지나자 예수는 완전히 병이 다 나았어요. 그는 이제 하느님과 싸우지 않고 남들처럼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는 갈릴래아로 떠났고 나중에 소문을 들으니 나자렛에서 가장 훌륭한 목수가 되었다더군요.

 

411 물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우선 내가 누구인지 알려줘야 했어요. 그래야만 당신은 내가 하려는 얘기를 이해하고, 그런 얘기를 해줄 권리가 나한테 있다는 걸 깨닫게 되겠죠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의무죠.

 

411 엄청난 기쁨과 모욕을 맛보았고, 전능한 신에 도전하는 교만을 과시했다.

 

412 저주받을 일이지만, 그토록 많은 세상의 기쁨들 가운데 젊음이 가장 소중하다고 난 생각합니다. 위험에 빠진 젊은이를 보면 나는 신의 선봉자가, 실로 삶 전체가 위험에 빠진 셈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젊은이가 멸망하지 않게, 그러니까 길을 잃어 꽃이 지고 때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려고 힘껏 달려나가죠. 내가 오늘 밤 당신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그것이에요.

 

한 주일 동안 나는 불나방처럼 신의 불꽃 주의를 맴도는 당신을 지켜보았어요. 난 당신이 타 없어지기를 바라지 않아요. 다시 얘기하지만 당신이 아니라 젊음 말이예요.

 

413 당신 마음 속에는 굉장한 걱정이 도사리고 있어요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불안감은 당신을 광증이나 완전성으로 이끌어가니까요. 성직자에 대한 불안요. 겁내지 말아요. 당신은 그것을 겪는 중이기 때문에 직접 의식하지는 못하죠. 내가 왜 당신한테 이런 얘기를 할까요? 그건 당신이 어떤 길을 택했는지 어떤 방향을 선택했는 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죠….당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우선 모든 작은 욕망들부터 채운 다음에라야, 육체와 권력과 황금과 반항에 대한 열망을 경멸하는 길을 터득해야 해요. 내 얘긴, 우리들이 젊음과 남자다운 모든 욕정의 삶을 한껏 살아보고 모든 우상들을 때려부숨으로써 그것들이 바람과 꺼풀로만 가득 찼음을 알아내고, 되돌아보아도 절대로 유혹받지 않을 만큼 우선 속을 비우고 깨끗해져야 한다는 거죠. 그런 다음에야 우리들은 신 앞에서 나서게 되는데 참된 투쟁자는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의견이로군. 이 문단을 읽으며 나는 젊은이는 아닌데싶었다.

 

난 신과의 싸움을 멈추고 싶지 않아요. 나는 신 앞에 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싸움을 계속하겠습니다. 난 그것이 내 숙명이라고 믿어요.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라서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욕심은 부리지 않고 투쟁만 계속할 따름이죠

신과의 싸움을 절대로 중단하지 말아요. 그보다 더 훌륭한 수련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더 자신감을 가지고 싸우겠다며 마음 속의 검은 뿌리인 본능을 뽑아버릴 생각은 집어치워요. ..유혹을 정복할 방법은 하나뿐이니 그것을 껴안고, 맛보고 경멸할 줄 알게 되어야 해요. 그러면 그것은 다시는 유혹을 하지 않아요. 그러지 않으면, 백 년을 산다고 해도 여자들을 즐기지 못하면, 그들은 당신이 잠들었거나 깨었거나 언제라도 찾아와 꿈과 영혼을 더럽히죠.”

 

416 성공 여부는 묻지 말아요. 가장 중요한 건 성공 여부가 아니죠. 그것을 더 키우겠다는 당신의투쟁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신은 우리들에게 투쟁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우리들이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건 신이 따질 일이지 우리 일이 아니에요.

 

416 멀리서 자칼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들 또한 사랑이나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417 나는 목이 말랐었고, 요아힘 신부의 말은 한 잔의 시원한 물이었다. 시원함이 내 척추의 골수로 퍼져나갔다.

 

418 “속세로 돌아가요.” 요아힘 신부가 소리쳤다. “지금은 속세가 수도원이니, 그곳에서 성자가 되어야 해요.”

동감. 매우 중요한 결론

 

420 “당신은 카론을 때려눕힐 힘이 남았어요. 할아버지그를 격려하려고 내가 말했다.

그가 웃었다. “그건 벌써 다 해봤어. 내가 멋지게 때려눕혔지. 어떻게 그랬냐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물리친 거야. 안녕 젊은이. 내 축복을 받고 너도 죽음을 물리치거라.”

우리들이 죽음을 정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정복이 가능하다.

 

423 나는 리비아 해를 굽어보는 수도원에서 사흘을 보냈다. 나는 수사들이 교활하거나 졸음에 겨운 눈에, 포식했거나 굶주린 배로 호미나 삽을 쥐었다가 곧 성배나 성방르 들고, 고대의 맥박으로부터 지배를 받는 수도원의 시대착오적인 삶을 항상 좋아했다. 나는 향 냄새와, 동틀녁 예배와, 예배가 끝난 다음 퀴퀴한 올리브기름과 찌꺼기의 악취가 나는 식당, 말구유로 나아가는 행렬을 좋아했다. 그리고 수도원 앞에서의 숨죽인 저녁 대화와 세상의 머나먼 메아리로 가득찬 답답한 침묵을. 우리들은 그리스도 얘기를 가끔 한마디씩만 했다. 그리스도는 종들이 염치없이 식품실로 들어가 포도주 지하 창고로 내려가서 고양이가 없는 동안 춤을 추며 푹신한 침대에 길게 눕도록 내버려 두고 천국으로 가버려 자리를 비운 엄격한 주인이나 마찬가지였다. , 하지만 그는 불쑥 문간에 나타나 탁자를 뒤집어 엎고 수사복을 입은 추종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신의 활줄이 요란히 튕기리라.

 

424 주여 지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제가 어찌 천국을 즐기겠습니까? 주여, 저주받은 자들을 불쌍히 여겨 천국으로 들여보내든가, 아니면 저를 지옥으로 보내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소서. 저는 지옥으로 내려가 저주받은 자들을 위로할 질서를 세우겠나이다. 그리고 만일 그들의 통을 덜어 줄 수 없다면, 저희들은 지옥에 남아 그들과 고통을 나누겠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424 참회가 넘치는 감격스러운 기도를 드리는 단조롭고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새벽 기도에 나갔다.

 

427 마을에 들어서니 벌써 밤이 깊어지던 참이었다. 문은 모두 닫혔고 마당에서는 개들이 나그네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429 “내 아내는 몸이 좀 불편하니까 양해하시기 바래요. 하지만 내가 요리를 하고, 저녁상을 차리고, 당신의 잠자리를 마련하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무겁고 근심에 찼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무척 창백했고, 울기라도 한 듯 두 눈은 충혈되고 퉁퉁 부었다. 하지만 나는 불길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식사를 하고 잠을 잤으며, 아침에 성직자는 나에게 빵과 치즈와 우유를 쟁반에 담아 가져다 주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작별인사를 했다. ..”어제 아침에 그 집아들이 죽었죠. 외아들이요. 여자들이 곡하는 소리를 못 들었어요?” “내실에 시체를 눕혀 두었죠. 당신이 듣고 당황해할까봐 울음소리를 참았던 모양이군요. 즐거운 여행하세요.”

나그네를 대접하는 성직자의 집.

 

 

430 힘이 생길 때까지는 크레타에 머물러도 즐겁다. 그러나 몇 달 만에 나는 또다시 압박감을 느꼈다. 길들이 좁아졌고, 집이 답답해졌으며, 마당의 박하나무와 금잔화는 향기를 잃었다. 옛 친구들이 눌러앉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431 나는 모자라는 것이 없으면서도 모든 것이 모자랐다. 나는 아직도 젊음의 탐욕과 오만에 시달렸고, 여행을 해서 세상을 넓혔던 위대한 항해자들과 절대성을 추구하던 테바이의 은자들이(아직까지도 그렇지만) 내 마음 속에서 충동질을 했다.

 

433 아버지는 불안하고 신기한 듯 가끔 나에게 곁눈질을 해가면 항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보아하니 할아버지를 닮은 모양이야부둣가에 다다르자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외할아버지 말고, 해적이었던 우리 아버지 말이다.” 잠깐 침묵을 지키고 나서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하지만 할아버지는 배를 쳐부수고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재산을 모았지. 넌 뭐야! 넌 무슨 배를 쳐부술 생각이냐?”

이 소설의 대화체가 흥미롭다. 따옴표와 서술이 교차한다. 장면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436 그것은 내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 중 하나였다. 미지의 대학생이 끼어들었던 덕택에 내 운명은 생트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기습을 당했다. 그것에서는 온통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위대하고 격렬한 투사인 그리스도의 적이 나를 기다렸다.

 

437 날마다 나는 소르본의 수업이 어서 끝나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집주인이 와서 불을 지핀 다음, 내 책상에 잔뜩 쌓인 책들을 펼치고 니체의 투쟁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와 격한 숨결과 고통의 외침에 점점 익숙해졌다. 나는 그리스도 못지 않

게 그리스도의 적이 투쟁하고 괴로워하면, 때로는 절망의 순간에 그들의 얼굴이 똑같아 보인다는 사실을 여태껏 모르고 살다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의 말은 불손한 모독이요, 초인은 신의 암살자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 반항아는 신비한 매력을 지녔다. 그의 말은 어지럽게 도취시키는 유혹의 마술이어서 심장이 뛰게 만들었다. 정말로 그의 사상은 인간과 초인의 비극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의기양양하게 울려 퍼지는 찬가 같은 디오니소스의 춤이었다비록 내가 뚜렷하게 의식하지는 못했을지언정,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적은 서서히 내 머릿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438 증오가 모습을 바꾸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투쟁은 포옹이 되었다. 나는 이해와 자비와 공감을 차례로 거치는 사이에 증오가 사랑으로 변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그토록 실감나게 경험한 적이 없었다.

 

439 순례의 길.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안개 속을 배회하며 그대가 태어난 마을의 좁고 진흙투성이인 길에서 그대를 찾아 헤맸다. 그런 다음에 나는 훌륭한 고딕 성당이 있는 이웃의 자은 도시에서 그대의 어머니가 살던 집을 찾아냈다. 그대는 열병이 심할 때면 마음의 평화를 얻고 다시 어린아이가 되기 위해 그곳으로 자주 찾아갔다.

좋아하는 이들과 관련된 곳으로의 여행. 순례. 나의 여행도 이런 것이었으면. 나는 스위스에 가고 싶다. 엘리자베쓰 퀴블러로스 씨네 가족처럼 알프스를 트레킹하고 융이 말년을 보낸 그 호숫가 마을의 성과 탑을 보고 싶다. 가장 끌리는 곳은 프랑스다. 파리에서 일주일 이상 살고, 모네의 지베르니 붉은 양귀비 꽃밭과 성프란체스코의 아시시와 프로방스의 평온한 공기가 있는 수도원에 가고 싶다. 캠벨이 좋아했던 노트르담 대성당. 

 

440 그대가 하찮은 자들의 눈에는 순교로 여겨지는 기쁨을, 영웅들의 쓰라린 기쁨을 맛보며 앞에 놓인 심연을 보고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나아갔기 때문이다.

 

441 언젠가 산에서 폭우를 만났을 때 그대는 이렇게 썼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도덕적 가르침에 대해서 무슨 관심이 생기겠는가? 도덕적 가르침을 지니지 않은 자유로운 힘인 번개와 폭풍과 우박은 얼마나 다른가? 사고의 방해를 받지 않는 이런 힘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우렁찬가?

 

442 예술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443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비극을 탄생시킨 성스러운 한 쌍이었다. 

 

446 예술은 이제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을 위한 투쟁에서의 짤막한 유예다.

 

447 그대는 고뇌의 황홀경으로 몰입했다.

 

447 한참 기쁨의 고뇌를 겪고 있던 그대를 루 살로메가 보았다. 흥분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고 날카로운 이성을 지닌 정열의 슬라브 여인은 그대 앞에 머리를 조아렸고, ..그대가 그토록 믿으면서 마음을 터놓고 여자들이 자극하는 혼돈과 창조력을 누리며, 묵직한 갑옷 밑에서 부드럽게 마음이 녹아내림을 느끼는 것이 얼마만이었던가

 

448 그대는 밤에 찾아온 숲 같아서 그대의 어둠 속에서 그녀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자기에게 미소짓는 어린 신을 보지 못했다. 병들고 버림받고 침묵하는 그대의 순교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451 어둠이 재빨리 그대의 이성을 집어삼켰다. 어둠은 그대가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계속되었다. 때때로 그대는 책을 손에 들고 물었다.’나도 훌륭한 책을 쓰지 않았던가?’ 그런 다음에 바그너의 사진을 보고 그대는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을 무척 좋아했다.

니체를 다시 읽고 싶어진다. 다시 읽는다면 니체의 책과 함께 니체를 무척 사랑했던 한국 작가의 책을 같이 읽으리라. 그리고 나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읽고 싶다.

 

452 때때로 나는 파리의 밤나무들 밑이나 유명한 강가를 거닐 때면 내 옆에서 서성거리는 그의 그림자를 불현듯 느꼈다. 우리들은 해가 질 때까지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 그는 항상 숨이 찼고 헐떡이는 숨결에서는 유황 냄새가 났다. …나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내 모습을 찾아냈다. 하지만 고뇌는 전염이 된다. …어느날 저녁 해가 지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나에게 얘기를 했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디오니소스랍니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저자의 순례를 하다보면 저자가 말을 걸어올 때가 있으리라. 참으로 가슴 설레는 여행이리라. 전작주의 작가의 전작주의가 끝이 나면 나는 순례길에 오르리라. 마음에 들어온 작가의 책을 모조리 읽고, 그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작가를 읽으라는 건 조셉 캠벨의 독서법이었다. 전작을 읽지 않더라도 떠나봄직하다.

 

453 칭기즈칸의 쇠반지에는 두 단어가 새겨졌다. Rasti rousti (힘이 정의다) 우리들의 시대도 그와 똑 같은 반지를 끼었다.

 

455 당신은 씨를 뿌렸습니다. 한데 무엇을 거두었는지 보세요.

 

455 나의 젊은 시절 중 가장 중대하고, 가장 굶주린 순간에 니체는 나에게 견실하고 용맹한 자양분을 주었다. 나는 푸짐하게 기름을 발랐고, 인간이 스스로 몰락한 상태와 인간에 의해 몰락한 그리스도의 상태에 대해서 너무나 답답함을 느꼈다. …비겁한 자와 노예가 된 자와, 서러움을 받는 자로 하여금 위안을 주어 주인 앞에 참고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들이 유일하게 확신하는) 현세의 삶을 인내하게끔 만들기 위해 내세의 보상과 벌을 심어놓은 종교는 얼마나 교활한가?

 

456 어느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평생 동안 꿈은 나에게 항상 틀림없는 길잡이였다. 내 이성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들이 꿈 속에서 정화되었다.

<나는 바닷가에서 서서 멀리 내다보았다. 시커먼 바다는 분노에 넘쳐 들끓었으며, 하늘도 마찬가지로 시커멓고 무겁고 음산했다. 하늘은 점점 더 내려앉아서, 당장이라도 바다에 닿을 기세였다. 바람 한 점 없었고, 침묵과 정적은 무서웠다. 하늘은 숨을 못 쉬고 질식했다. 아직 하늘과 바다 사이에 벌어진 좁다란 틈바구니에서 갑자기 하얗고 투명한 돛이 번개처럼 나타났다. 터질 지경으로 돛이 부풀어 나오고, 스스로 빛을 내는 작은 쪽배가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서 빠른 속도로 내리지르는 두 어둠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쪽으로 팔을 벌리며 내 마음이로구나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나는 잠이 깨었다.>

그날의 꿈은 평생 동안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평생 동안 도움이 되는 꿈이 내겐 뭐가 있지? 어릴 때 많이 꾸던 꿈 두 가지는 바다거북이가 나를 찾아와 벽을 문으로 만들어 가는 것하고 엄마를 찾아 다니는 꿈이었다. (이건 요새 좀 덜 꾼다), 할머니와 밥을 하거나 약을 고는 꿈, 애기들을 가족에게 데려다 주는 꿈, 최근의 똥통 꿈, 팔찌받는 꿈. 나의 주제는 무엇일까?

 

459 당신은 저녁마다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데도 손님이라고는 찾아오는 적이 없고, 자정이 넘도록 불을 켜놓더군요.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461 파리에서의 3년동안 나는 그렇게 살았으니, 평화롭고 정열적이며, 행동적인 모험은 하나도 없었고, 학생다운 폭주도 없었으며, 정치적이거나 지적인 음모도 없었다. 결국은 집주인까지도 나에게 익숙해지게 되었다. 내 비밀을 파헤쳤다고 믿은 그녀는 마침내 전에는 그토록 이해하지 못했던 내 삶의 순수성과 허세를 용서하기에 이르렀다. “아마 자기 나라의 무슨 종교 종파에 가입했나봐요.”

…”떠나기 전에 내 딸에게 키스나  해줘요. 입에다 말이에요. “ 나는 몸을 숙여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아테나 대학을 마친 후 1년간 여행을 하고 또다시 파리로 왔다. 카잔차키스는 매우 범생 같은 삶을 산 듯. 마치 속세의 수도사같군.  

 

460 내 삶이 항상 지나치게 단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위험할 만큼 복잡하다고 생각했다.

  

462 파리를 떠나기 전 어느 날 나는 오후 늦게 노트르담 성당에 작별을 고하러 갔다.

 

464 나는 파리를 떠날 터였다. 십자가에 매달리느라 생긴 손과 발과 옆구리의 상처들은 모두 아물었지만 온통 피투성이에 반항심이 가득 찬 영혼이 대신 가슴 속에서 솟구쳐 나를 무섭게 괴롭혔다.

 

465 성직자들이 가꾸어 온 그리스도의 교회가 나에게는 갑자기 겁에 질린 수천 마리의 양떼가 밤낮으로 울부짖으려 서로 몸을 기대고 그들을 쳐죽이려는 칼과 손을 핥으려고 목을 내미는 울타리처럼 여겨졌다.

 

466 초인은 또 하나의 천국, 가엾고 불행한 인간을 기만하고 그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견디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신기루일 따름이었다.

그래도 어떠냐? 삶과 죽음을 견디게 하면 되지. 그게 구원 아닌가?

 

467 육체는 너무 피로하고, 영혼은 초긴장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기차에서 지나가는 시골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눈을 뜨지도 못할 지경이어서, 그냥 감은 채로 여행했다. 하나의 신전에서 다른 신전을 연결시키려고 활을 너무나 당겼기 때문에 내 마음 속에서는 끊어질 정도로 팽팽해진 활줄이 울렸다. 

 

472 빈은 매력적이고 유혹적인 도시여서, 사람들은 항상 빈을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기억한다. 아름답고, 손에 잡히지 않으며, 귀여운 여인 빈은 어떻게 옷을 입었다가 벗고, 어떻게 아낌없이 몸을 바치고, 증오나 사랑 때문이 아니라 장난 삼아서 어떻게 배반해야 하는 지도 안다. 그녀는 걷는 대신 춤추고, 소리쳐 부르는 대신 노래한다. 그녀는 도나우 강둑에 길게 눕는다. 비가 그녀를 촉촉이 적시고, 눈이 그녀를 덮고, 햇살이 그녀를 따뜻하게 해준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그녀를 보고 너는 소리친다. 탈리아, 아글라이아, 에우프로시네 

(전원시의 무사이)(빛이라는 이름의 우아전미 여신)(희열의 우아전미 여신)

빈이 이렇게 밝은 도시란 말인가? 나는 정보가 가득한 여행기보다 에세이식 여행기에 동뜨인다.    

 

473 나는 적어도 그 무렵에는 인간이 형이상학적인 동물이라 생각했다. 웃음과 태평함과 노래는 교만과 반역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웃음을 오만의 한 형태라고 여겼던 아버지의 생각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웃는 이유를 알았고, 그런 점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보다 한 걸음 앞선 셈이었다.

웃음과 태평함과 노래가 더 진화된 것에 동감

 

475 붓다! 그때 그의 목소리는 뱀과 어지러운 난초들로 가득 찬 어두운 숲에서, 아시아의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매혹적이고 이국적인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나는 어지러워하지 않았다. 지극히 다정하고 친근한 또 다른 목소리가 자꾸만 마음 속에서 나를 불렀고, 나는 그것을 맞으러 자신있게 나갔다.

 

476 인도에서는 하루의 일이 끝나고 지붕과 마을의 골목과 사람들의 가슴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나이 먹은 기도사가 오두막을 나서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닌다. 그는 마술의 갈대 피리를 입에 물고 이 집 저 집을 찾아다니며 영혼을 다래는 주문처럼 감미롭고 살랑이는 곡을 불어준다. 그것은 하루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이른바 호랑이의 곡이다.

나의 저녁기도는 이런 마술 피리를 부는 호랑이 기도사의 일이리라.

 

 

478 이제 와서야 나는 인간이 죽음에 동의하고, 부가항력을 사랑하며, 우주의 흐름과 마음을 조화시키고, 물질과 이성이 서로 뒤쫒으며, 합치고, 잉태하고, 사라짐을 깨닫고는 내가 원하는 바가 그것이다라고 말하게끔 붓다가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79 나는 속이 비었으며, 이성은 누런 옷을 걸쳤다.

 누런 옷? 황색 가사?

 

480 나는 붓다에 탐닉했었다. 내 마음은 노란 해바라기요 태양은 붓다였으며, 나는 떠오르고 정상에 이르렀다가 사라지는 그를 지켜보았다.

 

483 “구원으로부터라니요?” 사리푸트라가 외쳤다. “구원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요? 스승님,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484 구원이란 모든 구세주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고하며 숭고한 자유이니, 인간은 거기에 이르면 숨이 찬다. 너는 인내하겠느냐?

 

485 내 옆에는 젊은 여자가 앉았다. 그녀의 숨결에서는 계피 냄새가 났다. 나는 숨을 쉬느라고 들먹이는 그녀의 젖가슴을 의식했다. 가끔 그녀의 무릎이 내 무릎에 닿았다. 나는 떨렸지만 다리를 치우지는 않았다. 그녀는 얼굴을 돌려 나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어둑어둑한 속에서 미소를 짓는 듯 싶었다. 여름밤은 꿈처럼 달콤했으며, 라일락은 향기로왔다. 사람들이 짝을 지어 지나다니고, 포옹하고, 잔디밭에 누웠다. 라일락 숲에 깊이 숨은 지빠귀가 머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나는 심장이 멎는 듯 했다…”프리다, 나하고 밤을 같이 보내겠어요?” 여자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오늘 밤은 안돼요. 내일 그러죠.”…끔찍한 살의 가면이 얼굴을 덮었고, 피부가 터져 누르스름한 진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악마였다…’오늘 못가겠으니 내일 가겠음이라는 전보를 2주일간 쳤다.    

사랑의 표현. 그러나 그는 프로이드의 제자 빌헬름 슈테켈을 찾아갔다.

 

489 보아하니 불교적 세계관에 빠진 당신의 영혼, 이른바 영혼이라는 것은 여자와 자는 걸 대죄라고 믿죠. 그런 까닭에 육체가 그 죄를 범하지 못하게 막아요. 육체에 그토록 심한 영향을 끼치는 영혼은 우리 시대에는 희귀하죠.

그는 속세의 수도사. 그리스 정교회든 로마 카톨릭이든, 유대교, 개신교, 불교가 별로 안 중요하다.

 

492 붓다는 가능한 한 여러 나라와 여러 바다를 보려는 내 갈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 만무을 처음 보듯 반가이 맞으며, 만사를 마지막으로 보듯 작별을 고하는 능력을 부여했다. 

 

492 시뻘건 심장의 고동이 그대로 남았고, 그것은 끈질기게 맥박 치며 붓다가 나를 완전히 차지하지 못하게 막았다. 내 마음속에서는 크레타인이 반란의 손을 들고 평화로운 정복자에게 동전 한 닢도 공물로 바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493 회색이나 검정 양복 저고리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오렌지 빛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에게 끌렸다….’나는 너와 함께 살고 길을 가기가 창피하다. 붓다는 너를 용서할 지 모르지만 나는 그러지 않겠다. 오렌지 빛 함정에 다시는 빠지지 마라’…강당이 추워서인지 짙은 올리브 빛까의 허름한 머리수건을 두르고 닳아빠진 털옷의 깃을 세웠다. 그녀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대리석 조각처럼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몸은 더욱 작아지고 등이 굽었으며 속으로 오그라 들었다. 불쌍해서 가슴이 아팠으므로 나는 그녀의 잔등 위쪽을 잡고 앙상한 어깨를 더듬었다. 그녀는 만족하면서도 고통스러워 소리를 질렀다. 

사랑이라고 결론처럼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가 사랑 또는 호감이구나알게 한다.

 

497 증오란 앞장 서서 걸어가며 주인님이 지나가도록 길을 청소하는 하인이죠.

 

498 당신은 어린 양이고, 나는 상처를 입은 암늑대여서 우린 절대로 어울리지 않아요. 우리는 입술을 맞대기 전에 그걸 이해하는 게 좋겠어요.

 

498 우리들은 헐벗은 나무 밑을 거닐었다. ..잠깐 그녀에게 곁눈질을 한 나는 증오로 가득찬 눈길을 보고는 겁이 났다. 저토록 증오에 차서 얘기하다니, 이 여자는 얼마나 심한 고생을 했을까? 아마도 그녀는 적진의 남자와 사랑에 빠질까봐 잠깐 동안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입술은 추워서 파래졌고, 이는 덜덜 떨렸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나는 털외투를 벗어서 그녀가 미처 몸을 피하기 전에 재빨리 걸쳐 주었다. 그녀는 화가 나서 외투를 벗어버리려고 했지만, 나는 꽉 붙들고는 그냥 걸치라고 애원했다. ..나는 내 몸의 열기가 외투에서 그녀의 몸으로 천천히, 깊이 스며든다고 느꼈다…”따뜻하니까 좋아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인생이 달라지는 기분이예요.” 눈물을 글써이며 나는 생각했다. 약간의 따뜻함, 약간의 빵, 몸을 의지할 지붕, 친절한 말 한마디에 증오는 사라지고

 

502 여름 발정기의 수컷 곤충처럼 이상하고 아찔한 장신구와 황금빛을 띤 초록색 의상을 몸에 걸친 거무튀튀하고 몸집이 섬세한 젊은이가 가무잡잡하고 뼈대가 가느다란 작은 여자 앞에서 춤을 추었다.

 

503 그날 저녁의 춤은 내가 억눌렀던 옛 샘을 터뜨렸다. 나는 크레타인의 내면은 쉽게 비워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 몸 속에서는 한껏 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시지 못했고, 원하는 만큼 많은 여자들과 접하지 못한 무서운 조상들이 이제 나를, 그리고 그들 자신을 죽지 않게 막으려고 맹렬하게 날뛰었다.

 

504 나를 괴롭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때마다 나는 항상 어김없이 해답은 새로운 의문을 낳으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는 했었다그리스도는 붓다의 씨앗을 깊은 곳에 감추어 두었다. 그렇다면 붓다가 누런 승복 깊숙이 싸서 감춘 씨앗은 무엇일까?

 

505 나는 인류의 참된 얼굴을 벗겨내지 않으려고 자제했다. 나는 인간의 얼굴을 믿는 척함으로써 다른 인간들과 함께 겨우 살아가게 되었다.

 

508 그녀는 며칠 전에 러시아에서 돌아왔고, 온통 사랑과 야수적인 증오로 들끓었다. 처음에는 반박하려 했지만 인간의 이성보다 높은 단계에서 신념이 지배하기 때문에 이성이 그것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511 “기도시간에는 기도를 해요.” 그녀가 말했다. “메추라기 시간에는 메추라기를 먹고요.” 그녀는 육체와 영혼에 양분을 공급하는 두 행위에 똑 같은 열성을 보이며 충실했다. 이트카는 밤이 새도록 나와 희롱했지만, 날이 밝으면 이맛살을 찌푸리며 증오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515 이탈리아 순례 기간 동안 처음 아시시의 좁다란 골목에 들어서서 자그마한 성 클라라 수녀원과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종루에서 저녁 기도 시간에 유쾌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행복감을 느꼈다.  

 

494 그렇다면 우선 죄를 짓고, 나중에 회개해서 당신이 섬기는 무시무시한 신 여호와에게 용서를 받읍시다.

 

515 이탈리아 순례 기간 동안 처음 아시시의 좁다란 골목에 들어서서 자그마한 성 클라라 수녀원과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종루에서 저녁기도시간에 유쾌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행복감을 느꼈다. 나이 많은 에리체타 백작 부인의 저택에 묵게 된 나는 거룩한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아 여러 달을 머물렀다. 영혼이 조금 더 높이 솟으려고 투쟁하는 어려운 시기에 내 마음이 열려 아시시로 달렸다.

아시시는 이탈리아, 프로방스는 프랑스?

 

516 나는 육체에 대해 가혹하고 인간의 아늑한 거처와 게으르고 지극히 퇴폐적인 쾌락에 대해서 무자비한 프란체스코의 가난을 주변에서 한껏 의식했다. 하지만 그런 궁핍은 프란체스코적이어서  스스로 지닌 풍요함과 속에 숨겨 가며 준비하는 신비로운 봄과 과일이 풍성한 여름을 굳게 믿었다….나는 봄과 성 프란체스코의 동일성을 그토록 깊이 경험했던 적이 없었다. 아시시의 봄은 필연적으로 기꺼이 프란체스코의 형태를 갖춘다.

 

517 수백년이 지났지만, 프레체스코는 세상을 항상 새로운 눈으로 보는 첫 사람이었다. 중세의 무겁고 부자유스러운 학문의 갑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육체와 영혼은 발가벗은 채로 봄의 모든 떨림을 전해 주었다.

 

517 전혀 의식적으로 애를 쓰지 않았는데도 나는 다시금 프란체스코의 기본적인 교훈 가운데 세 번째인 순종의 심오한 의미를 경험하게 되었다. 준엄한 손짓에 순종하고,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주변과 내면의 높은 힘에 확신을 지니고 몸을 맡기며, 그런 힘들은 모든 것을 알지만 우리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굳은 신념- 이것이 비옥한 땅으로 인도하는 단 하나뿐인 길이었다. 다른 모든 길은 어느 곳으로도 이끌어 가지 못하고, 다만 헛되고 주제넘은 방황 끝에 초라하고 저주받은 자아로 되돌아오게 할 뿐이어서 거짓된 불모지이다.

 

519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투쟁과 고통이 뚜렷하게 얼굴에 나타난 모양이어서, 어느 날 아침 성 클라라 문을 지나 도시를 벗어나려는 나를 금발이 허옇게 변하기 시작한 호리호히하고 키가 큰 남자가 붙잡아 세웠다. ..우리들은 길에서 만나면 공손하게 서로 미소만 짓고는 말도 걸지 않고, 마치 상대방의 고독감과 평온함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다는 듯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곤 했다…”함께 걸을까요?”

 

521 두 가지 이유에서 나는 그를 사랑하죠. 첫째 그는 르네상스 이전의 가장 위대한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어요. 신의 가장 하찮은 피조물에게까지도 그는 허리를 굽혀 귀를 기울이고는 그들이 지닌 불멸성을 노래로 들었어요. 둘째는 사랑과 고행의 수련을 통해서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과 비웃음과, 불의와, 추악함 따위의 (날개가 없는 인간들이 현실이라 일컫는) 현실을 자신의 영혼으로 정복했고, 현실을 진리보다도 더욱 참된 현실적이고 기쁜 꿈으로 변형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를 사랑합니다. 그는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찾으려고 애썼던 비결을, 가장 천한 금속까지도 순금으로 만들어 놓는 방법을 발견했죠. 왜냐고요? 프란체스코에게는 현자의 돌이란 인간이 구하기 어려운 외적인 어떤 요소이기 때문에 자연법칙을 어겨야만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신비한 연금술의 기적을 통해 그는 현실을 안정시키고 인류를 필연성으로 해방시키고, 내적으로는 그의 육체를 모두 혼으로 바뀌었어요. 나에게는 성 프란체스코가 인간의 무리를 무조건 승리로 이끄는 위대한 장군입니다. 그래요. 장군과 시인 그게 전부에요.

성 프란체스코에 대한 이야기

 

 

522 “당신은 내 투쟁에서 나를 도와주겠다는 얘기인가요?”

난 당신을 돕지 못해요.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 길을 찾아 자신을 구원해야 합니다. 무엇으로부터냐고요? 덧없는 것으로부터요. 덧없음에서 자신을 구원하고 영원한 대상을 찾아야 해요.”

 

523 나는 관능과 정열과 해학이 가득 찬 소설을 썼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술은 나를 너무 구속한다고 느꼈어요. 과학으로 관심을 돌린 나는 진화론과 온갖 반기독교적인 사상의 광신적 주창자가 되었죠. 나는 교회와 국가와 도덕 모든 속박을 때려부수고 싶었어요. 나는 자신을 삶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왕좌에 앉혔죠. 나는 케케묵은 적에 대한 선전 포고를 했어요.”

 

525 이건 고백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당신보다 나이가 많기도 하지만, 도움이 될 고백은 그런 형태의 고백뿐이기 때문에 아랫사람에게 고백하기를 좋아합니다.

 

526 나이 들고 귀족적인 그녀의 얼굴에서는 정말로 광채가 났고, 벨벳처럼 까맣고 커다란 눈에는 지나간 세월의 자취가 없었다.

  

527 나는 프란체스코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지만, 그는 달려와서 나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528 문을 두드리니 우리 시대의 성 프란체스코가 손수 문을 열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운명이 미소를 짓는 순간이었다. 우리들은 서로 마음을 터놓았다.

 

529 작은 개미 한 마리가 그의 저고리의 옷깃을 따라 기어갔다. 그는 보기 드문 다정함을 보이며 그것을 집더니 사람들이 밟지 않을 만한 길섶 땅바닥에 놓아주었다. 비록 입조차 열지 않았지만 아시시의 조상들이 쓰던 다정한 인사말처럼 개미 형제라는 말이 그의 혀 끝에 감돌았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529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알베르트 슈바이처 그들은 형제처럼 너무나 비슷했다.

 

530 자비와 연민에는 고통받는 자, 고통을 함께 하는 자 이렇게 둘이 존재한다완전한 사랑은 서로 오 나 자신이여라고 불러도 되는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한다.

 

532 희망을 통해서만 희망 너머의 무엇인가를 성취하게 된다고 나에게 가르쳐 준 두 영웅에게 신의 축복이 내리길 바란다. 

 

535 우리들의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변형시켜 놓고 나서 당신은 다 잊어버리죠. 인간의 고통을 잊게 만드는 그까짓 아름다움이 뭐에요.

작가들에 대한 비판. ‘진실에 진실한 작가가 피로 쓰는 글이라면 고통을 고통으로 그려야. 

 

537 함께 지낸 많은 밤 고마웠어요. 우린 육체에 대한 의무를 아주 철저하게 수행했어요. 우리들이 몰아냈으니 붓다는 끝장이 났어요.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요? 후회하세요..

후회해요. 당신은 나에게서 붓다를 몰아냈고 내 마음은 허전해요.”

섬길 주인인 필요하다는 얘기군요?”

그래요. 난 무정부주의보다는 섬기는 편이 낫죠. 붓다는 내 삶에 맥박을 목적을 부여했어요. 그는 내 속의 악마들에게 재갈을 물렸어요. 하지만 이제는..”

당신 마음은 텅 비고 깨끗해졌으니 준비를 갖춘 셈이에요. 그건 내가 바라던 바예요. 난 당신을 믿으니까. 화가 났을 대 내가 한 얘기는 흘려 버리세요. 당신은 정직하고 불안한 남자에요. 난 당신을 믿어요.”

 

540 어느 날 저녁 나는 책상에 웅크리고 앉아, 이른 아침부터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괴로워했 끔찍한 모든 광경을 잊기 위해 르네상스 미술에 관한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술이나 사랑, 그리고 사상보다는 못하더라도 예술은 인간을 달래고 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예술은 의무를 대신해서 덧없는 대상을 영원한 무엇으로 바꿔놓고 인간의 고뇌를 아름다움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싸운다.

 

541 전보는 위대한 혁명의 10주년 기념 행사에 그리스의 지성인을 대표하여 나더러 모스크바로 와서 참석해 달라고 초청하는 내용이었다. 전 세계의 순례자들이 서둘러 붉은 메카로 모여드는 중이라고 했다.

546 슬라브의 영혼과 서양의 영혼 사이에는 거대한 간격이 벌어졌다. 유럽인의 합리성으로는 모순되는 내적인 반발들을 러시아인은 조화시킬 줄 안다….러시아인은 합리성을 넘어 난폭하고 무책임한 정열로 인간을 밀어내는 어둡고, 풍요하고, 상충하고, 섬세한 힘인 영혼을 모든 가치의 위에 놓는다. 러시아인은 맹목적인 창조력이 아직 이성의 체계로 순화되지 못했다. 러시아인은 아직도 흙에 바싹 달라붙어 살아가고, 그이 마음은 대지와 세계를 잉태하는 어둠으로 가득하다.  

 

548 초록이나 황금빛 둥근 지붕의 성당들, 마천루. 성당 건물들과 전차와 기거리 여기저기에 나붙은 표어는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이고, 거대한 성당 벽에는 붉은 페인트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이 모든 무질서한 소음을 이겨내며 둔중한 러시아 종소리가 끈질기게 살아남은 저녁 기도를 알리느라고 지극히 감미롭게 갑자기 울린다. 혼돈-모스크바의 첫인상은 그것이었다.

두번째는 두려움이다. 세상의 어느 도시에서도 이처럼 경직되고 단호하고 음울한 얼굴과 불타는 눈과, 꽉 다문 입술과, 긴장과 격렬한 열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552 레닌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표어랍니다. 그는 인간의 속성을 잃었고, 전설이 되었어요.

레닌이 예수와 같은 일, 구원자가 되려고 했다고 그는 이해했다. 레닌은 오히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구원을 가져오려고 시도했다고

 

562 나는 모스크바의 호텔에서 묵던 그의 방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투쟁의 의미를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인해 정말로 기뻤다. …우리들은 더듬이로 서로를 탐색하는 개미들처럼 무엇인가 알아내려는 듯 상대방을 관찰했다.

 

567 내가 케팔리니아 출신의 그리스인이라는 소릴 몇 번이나 해야 되겠어요? 난 소리를 지르고 포옹하고, 속을 털어놓죠. 원한다면 당신은 영국인처럼 존경심을 표현해도 좋아요.

 

567 담배꽁초를 입에 문 고리키가 층계참에 나타났다. 그는 몸집이 크고 뼈마디가 굵었으며, 턱이 내려앉고, 광대뼈가 우뚝하고, 작고 푸른 눈은 초조하고 고뇌에 찼으며, 입은 벅찬 괴로움을 나타냈다. 그토록 많은 아픔을 나는 인간의 입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그의 씁쓸한 미소는 평화로운 얘기에 집중된 비극의 분위기를 부여했다. 그에게서는 많이 인내했으며, 앞으로도 많이 인내할 인간을, 끔찍한 장면을 너무 많이 보았기에 아무것도, 심지어는 그가 누린 명예와 영광까지도 그것을 지워버리지 못할 인간의 인내가 느껴졌다. 그의 푸른 눈에서는 차분하고 치유가 불가능한 슬픔이 넘쳐흘렀다.

 

569 나눈 무엇보다도, 삶이죠. 나는 굉장히 괴로워했고,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무척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것뿐입니다. 

 

575 이 곳 러시아의 대기 속에서 나는 세계를 창조하는 두 원시적인 힘이 드러내 놓고, 거의 눈에 보일 정도로 충돌하고 있음을 느꼈다. 주변의 전쟁 분위기는 어찌나 깊고 파고 들었던지 싫든 좋든 사람들은 세계를 창조하는 그 두 힘 가운데 한 쪽에 서서 함께 싸우거나, 아니면 다른 편에 서서 대항해야만 했다. ..그것은 똑 같은 빛과 어둠이라는 영원한 적들이 벌이는 똑 같은 투쟁, 완전 동일한 싸움이었다. 이렇듯 나의 투쟁은 러시아의 투쟁과 하나가 되었다내가 내적으로 마침내 이런 동일시에 이른 순간부터 러시아의 운명은 나의 운명이 되었다.

 

577 러시아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중이었다. 러시아는 한 알의 밀알처럼 하나의 위대한 사상처럼, 비슷한 고통을 거치는 중이었다.

그는 혁명을 십자가에 못 박히고 다시 사는 걸로 이해했다.

 

581 아직 새 껍질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추워서 몸을 따스하게 데우려고 양지쪽으로 기어가는 뱀처럼, 내 영혼은 새로운 태양 속으로 파고들었다.

 

582 그렇게 3개월을 지나고 다시 베를린에 들었다가 그리스로 돌아가는 길에 빈에 들렀을 때는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583 나는 폼페이를 다시 보려고 약간 돌아 가기로 작정했다.

이 와중에도 생생히 살아있는 여행욕

 

585 새로운 사상이란 가장 굶주리고 움켜잡는 힘이 센 짐승이다.

 

589 나는 아직 이탈리아에 머물 때 아테네의 사회복지부로부터 총무국장의 직책을 맡고 10만 명 이상의 그리스인들이 위기를 맞은 카프카스로부터 떠나게 하는 특별 임무를 받아들이겠느냐는 전보를 받았다. 이론이나 사상, 그리스도나 붓다와의 투쟁 대신에 살아 숨쉬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들과 함께 싸우며 행동에 참여할 기회를 나는 평생 처음으로 얻게 된 셈이었다. 나는 기뻤다. 나는 의문을 품고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며 해답을 찾지 못하고 그림자와의 싸움을 벌이는 데 싫증을 느꼈다. 나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도 동의했는데, 프로케테우스의 산맥인 카프카스에서 또다시 위기를 맞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히려는 내 민족에 대해 동정심을 느꼈던 것이다.

사회복지국장으로 일했던 사유를 밝힌다. 다분히 종교적인 이유.

 

593 그들은 내가 구원을 가져다 주기를 기다렸다. “우린 모두 같은 운명이니까 나는 여러분과 더불어 구원을 받거나 버림을 받을 겁니다.”

 

596 황폐해진 우리의 옛 땅 마케도니아와 트라케에 도착하여 뿌리를 내리게 도리 부지런한 그리스인들이 벌써 눈에 선했다. 그들은 그 곳의 땅을 밀고, 담배와 어린 그리스인들로 뒤덮으리라.

 

598 배는 자신들의 땅에서 뿌리가 뽑힌 인간들로 가득했으며 나는 그들을 그리스에 심으로 가는길이었다. 사람들, , , 쟁기, 요람, 이부자리, 성상, 성서, 곡괭이, ..모두가 볼셰비키와 쿠르드인들로부터 도망쳐 자유의 그리스로 여행하는 중이었다. 내가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조금도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는다. 나는 마치 내가 켄타우로스이며, 거대한 집단을 태운 배는 내 몸의 아랫부분이라고 느꼈다. 카프카스는 밀려난 환상으로 노인들의 깊은 눈동자 속에서는 그들에게 낯익은 산맥이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고향 땅으로부터, 산과 바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초라하고 작지만 사랑하던 집으로부터 영혼이 완전히 물러서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영혼은 낙지이고, 이들 모두가 흡반이다.

 

601 아내만 훌륭하면 가난하고 헐벗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할아버지의 말은 옳았다.

 

604 같이 항해한 사람들이 서로 나누어 갖게 될 황폐한 땅을 둘러보니 내 눈에는 사람과 과수원과 물이 풍족한 광경이 선하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미래의 성당에서 울리는 종과, 운동장에서 뛰놀며 웃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었고 내 앞에는 아몬드나무 꽃이 피었으니, 손을 뻗으면 만발한 가지를 하나 꺾을 수도 있으리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믿음으로써 우리들은 그것을 창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란 우리들이 충분히 갈구하지 않았으며, 비존재의 음산한 문턱을 지나 전진하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들의 피를 쏟아 붓지 못한 무엇이다.  

 

605 외국에서 여러 해 동안 방황하고 투쟁한 다음 남자가 고향으로 돌아가 조상들의 바위에 몸을 기대고는 토착 혼령들과 어릴 적 추억과, 젊은 시절의 갈망이 짙게 깔린 낯익은 땅을 둘러보면 식은 땀이 나게 마련이다. …내 마음 속에서는 이런 돌아옴이 죽음을 미리 맛보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나는 삶의 방탕과 모험을 겪은 다음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조상의 땅으로 돌아오는 기분이었으며, 피할 길이 없는 지하의 음흉한 군대가 한 남자에게 특수한 공격 임무를 맡겼다가, 돌아오는 그를 보고는 땅이 통째로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 듯 싶었다. 너는 공격을 수행했느냐? 네가 해놓은 일을 보고하라.

 

613 자유를 사랑하기 때문에 천국과 바꿔준다고 해도 영혼의 종속을 용납하지 않는 거부, 사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초월하는 험난한 승부, 더 이상 수용력이 없어지면 아무리 지성하더라도 옛 형태를 때려 부수기, 이것이 크레타의 세 가지 위대한 외침이다.

 

614 산들바람, 향기, 바다는 영원한 젊음을 지녔고, 집들과 옛 친구들만이 나이를 먹었다. 나는 많은 친구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디서 본 듯 싶지만 생각이 나지 않아 그들은 잠깐 동안 나를 응시했다. 기억을 더듬는 것이 귀찮아지면 그들은 그냥 지나가 버렸다. 나를 보고 놀라 걸음을 멈추며 팔을 벌린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617 내 민족의 사나운 힘은 내 마음 속에서 없어졌고, 증조부의 해적선은 침몰했고, 행동은 어휘로 피는 잉크로 몰락했으며, 창을 들고 전쟁을 벌이는 대신 나는 작은 펜을 들고 글을 썼다. 사람들과의 접촉은 짜증스러웠고, 내 힘과 사랑을 감소시켰다. 홀로 인간의 운명을 명상할 때만 내 마음은 사랑과 연민이 넘쳤다.

 

619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내 투쟁에 도움이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첫번째 인물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기운을 되찾게 하는 광채로 우주 전체를 비추고 태양처럼 평화롭고 찬란하게 빛나는 눈이었으며, 붓다는 세상 사람들이 빠졌다가 구원을 받는 한없이 깊은 새까만 눈이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에 해답을 얻지 못했던 나를 괴롭히는 철학의 온갖 문제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으며, 니체는 새로운 고뇌로 나를 살찌게 했고, 불운과 괴로움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도록 가르쳤으며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힌두교에서 이른바 구루라고 일컫고, 아토스 산의 사사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주어졌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선택했으리라. 그 까닭은 글 쓰는 사람이 구원을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그가 갖추었으니, 화살처럼 허공에서 힘을 포착하는 원시적인 관찰력과, 마치 만물을 항상 처음 보듯 대기와 바다와 불과 여인과 빵 따위의 영구한 일상적 요소에 처녀성을 부여하게끔 해주며 아침마다 다시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과, 영혼보다 우월한 힘을 내면에 지닌 듯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과, 신선한 마음과 분명한 행동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라한 한 조각의 삶을 안전하게 더듬거리며 살아가기 위해 하찮은 겁쟁이 인간이 주변에 세워놓은 도덕이나 종교나 고향 따위의 모든 울타리를 때려 부수려고 조르바의 나이 먹은 마음에서 회생의 힘을 분출해야 하던 결정적 순간마다 인간의 뱃속보다도 더 깊고 깊은 샘에서 쏟아져 나오는 야수적인 웃음을 그가 지녔기 때문이다. 굷주린 영혼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책과 선생들에게서 받아들인 영양분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에게서 얻은 꿋꿋하고 용맹한 두뇌를 돌이켜보면, 나는 격분과 쓰라린 마음을 견디기가 힘들다.    

<그리스인 조르바> 를 읽을 때 저자의 책 소개를 참고하리라.

 

627 평화로운 집에서 글쓰기에 몰두한 나는 이토록 무서운 책임감이 머릿 속에서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분명히 태초에는 말씀이 있었다. 행동 이전에 말이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는 잉태의 말이, 신의 아들이, 독생자가 존재했다.

10대 풍광을 미리 적어두는 이유

 

628 글을 더 많이 쓰면 쓸수록 내가 작품에서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깊이 깨달았다. 진실한 작가와는 달리 나는 구원을 추구하며 고통스럽게 투쟁하는 인간이어서, 미사여구를 지어내거나 멋진 운을 맞추려는 데서는 기쁨을 얻지 못했으며, 나 자신의 내적인 암흑으로부터 해방되어 암흑을 빛으로 바꿔 놓고, 내면에서 고함치는 무서운 조상을 인간으로 바꿔놓고 싶었다. 나는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인간 영혼의 능력을 보며 용기를 얻으려 했고, 그런 까닭에 가장 숭고하고 힘든 시련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위대한 인물들을 소생시키기를 원했다.

 

629 전쟁이 터지자 나는 평화나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찮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어려운 시절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부심을 찾아야 하겠기에, 다시 크레타의 산으로 갔다.

 

632 한 가운데서 날치 한 마리가 갑자기 작은 지느러미를 펼치고는 공기를 마시려고 바다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노예적인 물고기에 비하면 날치의 본성은 너무나 컸고, 평생 물 속에서 살기에는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것은 갑자기 숙명을 뛰어넘고 자유로운 공기를 숨쉬고, 견딜 수 있는 한 짤막한 순간이나마 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했으니, 자유로운 순간은 곧 영원이었다. 나는 수천 년 전에 지은 궁전 벽화의 물 고기가 나 자신의 영혼이라기도 한 듯 굉장한 흥분과 우애를 느끼며 쳐다보았다.

 

637 나는 밤새도록 생각했다. 죽음을, 그의 죽음을 몰아내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마음의 뚜껑이 열려 분노한 추억들이 뛰쳐나와 나를 서둘러 둘러싸려고 서로 밀치며 싸웠다. 그들은 땅과 바다와 대기에서 조르바를 불러다가 다시 살려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것이 마음의 의무가 아니던가? 사랑하는 이들을 부활시키고 그들을 다시 살려놓으라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신은 우리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을까? 그를 부활시켜야 한다.

그는 부활되었다.

 

637 조르바는 평생 사랑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내가 자기를 가장 사랑했음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유령들을 밀어제치고 뚜벅뚜벅 걸어 나와 맨 앞으로 나섰다.

 

639 조르바의 신화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은 대동맥에서 피가 더 빨라지기 시작하는 듯 싶은 새로운 장단에 맞춘 음악적 흥분이었다. 마치 원하지 않는 어떤 외적인 실체가 내 혈관으로 들어온 듯. 나는 풀기 어려운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현기증과 열기를 느꼈다. 내 몸 전체가 그것을 몰아내려고 공격했지만 외적인 요소는 저항하고, 애원하고 뿌리를 뻗고, 기관들을 하나씩 장악하면서 좀처럼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단한 하나의 밀알이 되었으며, 속에 든 곡식과 빵이 위기에 처했다고 느껴서인지 그것이 죽지 않게 하려고 결사적으로 싸웠다. 나는 들판으로 나가 몇 시간씩 거닐었고, 바다에서 헤엄을 쳤으며, 거듭거듭 크노소스로 돌아갔다헛된 일이었다. 씨앗은 끈임없이 새 뿌리를 뻗고 자리를 잡았다.

창작 과정의 묘사가 흥미롭다.

 

644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날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내가 심한 고통이나 기쁨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되찾는 유일한 길은 어휘의 마력으로 고통과 기쁨을 흘리는 것임을 나는 여러 해 전부터 잘 알았었다. 적도 지역에서는 지극히 가늘고 실처럼 생긴 벌레가 인간의 피부로 뚫고 들어가 살을 파먹는다. 그러면 무당을 부른다. 그가 마술 피리를 불면 벌레가 홀려서 조금씩 몸을 펴면서 밖으로 나온다. 예술의 피리도 그렇다.

 

647 나는 지는 해를 지켜보았고, 앞의 무인도는 입맞춤을 받은 뺨처럼 기분 좋게 장밋빛으로 변했다.

 

648 여행을 하면 기다리는 참을성이 생기리라. 밀월여행 같은 항해가 2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바닷가의 작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성은 자리 잡았고, 마음은 차분하게 고동쳤다. 내 삶의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해적 그리스도와 붓다는 사라지지 않았고, 환희에 찬 의미를 지니고 장식적인 상형 문자들처럼 기억의 여명 속에서 빛났다.

 

650 꽃과 새와 사람은 수놓은 휘장, 정말로 그것이 신이리라. 내가 한 때 믿었듯이 세상은 신이 몸에 걸친 의상이 아니라 그것은 신 자신이다. 형태와 실체는 동일하다. 나는 이런 확신을, 이 값진 전시품을 가지고 에게해 순례에서 돌아왔다. 조르바는 그 진실을 알았지만 말로 표현할 줄 몰랐다.

 

655 밤에 잠자리에 들면 나는 잠 속에서 여행을 계속했는데, 밤하늘에 펼쳐지던 꿈의 여행들이 다른 점이라면, 진실의 무게를 벗어나서 보다 가볍고 훨씬 귀중한 물질로만 이루어졌다는 것 뿐이었다.

 

659 고대의 랍비 나흐마은 내가 입을 열어 얘기하고, 펜을 들어 글을 쓸 때가 과연 되었는지를 어떻게 알아내는지에 대해 여러 해 전에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는 소박하고 명랑하고 훗날 성자가 될 인물이었는데, 제자들에게 그들 또한 소박하고 명랑하고 성자가 되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은 모두 그의 발 밑에 꿇어 엎드려 불평을 늘어놓았다.

존경하는 랍비여, 당신은 어찌하여 랍비 자디그처럼 얘기하시지 않고 사람들이 입을 멍청하게 벌리고 얼이 빠져 귀를 기울이게끔 위대한 사상들을 열거하며 위대한 이론을 수립하시지 않습니까? 기껏 해야 할머니처럼 쉬운 말을 써가면서 옛날 애기밖에 못하시나요?”

마음 착한 랍비가 미소를 지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는 대답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어느 날 쐐기풀이 장미넝쿨에게 물었느니라. “장미넝쿨 부인, 당신의 비결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시지 않겠어요? 어떻게 장미꽃을 만들어내죠?” 그래서 장미넝쿨이 대답했지. 내 비밀은 아주 간단하답니다. 쐐기풀아가씨. 겨우내 나는 참을성 있게 믿으면서 사랑을 지니고 흙을 일구는데, 머릿속으로는 장미꽃 한 가지만을 생각해요. 빗발이 나를 후려치고, 바람이 잎사귀를 벗기고, 눈이 쌓여 무겁게 짓눌러도, 내 마음 속에는 장미꽃에 대한 생각뿐이랍니다. 그것이 내 비결이에요. 쐐기풀 아가씨.”]

무슨 소린지 모르겟습니다. 스승님제자들이 말했다.

랍비가 웃었다. “사실 나도 잘 이해를 못 하겠어.”

그럼 뭐예요? 스승님

아마 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나봐.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오랫동안 말없이 끈기있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다듬고 가꾸지. 그러다가 내가 입을 열면 (얘들아 정말 이상하기도 하지) 생각은 옛날이야기가 돼버려. 그는 한 번 더 웃었다.

우리 인간들은 그걸 옛날얘기라 부르지만, 장미넝쿨은 그걸 장미꽃이라고 부른단다.” 그가 말했다.

 

660 아버지는 밑둥이 단단하고, 잎사귀가 거칠며, 열매가 쓰고, 꽃이 피지 않는 떡갈나무였다. 아버지는 주변의 모든 힘을 삼키고, 그의 그늘에서는 다른 모든 나무가 말라죽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그늘에서 시들었다.

 

661 나는 평생에서 오직 한 사람, 아버지만을 두려워했다. 이제 내가 두려워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렸을 때 눈을 들어 보면 그는 거인처럼 느껴졌다. 자라는 동안에 내 주변에 사람들과 집과, 나무들 그리고 모든 사물이 줄어들었다. 아버지만이 어릴 적에 본 그대로 항상 거인으로 남았다. 내 앞에 우뚝 솟은 아버지는 내가 받을 몫의 햇빛을 막아섰다.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 사자의 굴에서 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소용 없었다. 비록 내가 갈팡질팡하고, 떠돌아다니고, 힘든 지적인 모험에 몸을 던져도 아버지의 그림자는 항상 나와 빛 사이를 막아섰다.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일식 밑에서 항해했다.

나의 내면에는 많은 어둠이, 많은 부분의 아버지가 존재한다. 이 어둠을 빛으로 한 방울의 빛으로 바꿔보려고 나는 평생 결사적으로 싸웠다. 그것은 연민이나 휴식도 없는 가혹한 투쟁이었다. 단 한 순간이나마 잔혹성이 중단되게 내버려 두었다면 나는 파멸했으리라.

그래서 이 사람은 소설 <미할리스 대장>을 썼구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자기만의 영역을 갖기 위해서. 이 방법도 좋겠다. 너무 거대한 대상에 대해 글을 쓰는 것.

 

662 나에게는 미덕이 내 본성의 열매가 아니라 투쟁의 열매였다. 신은 그것은 나에게 그냥 주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칼로 정복하기 위해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나에게는 미덕의 꽃이란 변형된 똥 무더기였다. 이런 전쟁은 절대로 끝이 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완전히 패배를 당하지도 않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다. 나는 끊임없이 투쟁한다. 아직도 나는 심연 위의 아슬아슬한 다리를 건너는 중이다.

 

664 햇빛을 마주 받으려고 창 앞에 다가앉은 나는 원고지 위로 몸을 수그렸다. 그것은 백지가 아니라 내 얼굴이 보이는 거울이었다. 나는 내가 쓰는 모든 글은 고백이 되리라고 믿었다. 이것은 중대한 시간, 최후의 심판이었다. 보이지 않는 심판자 앞에 서면 마음은 스스로 지은 죄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나는 내면에서 마음의 외침을 의식했다. 내 마음은 불만이 많았고, 신과 충돌했으며,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분노와 고통에 대해 신ㅇ게 바칠 보고서를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어쨎든 세월이 흘러갔고, 나도 세월과 더불어 흘렀으니, 얘기를 다 하기 전에 흙이 내 입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죽기 전에 하늘에 대고 외칠 소리가 있으니, 중간에 방해받지 않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665 봄이 왔지만 나는 아직도 어휘라는 야생 암말을 길들이려고 싸우며 고생했다.

 

667 앞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지는 나도 몰랐다. 나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마음 속에서 신화를 펼쳐 내며 기다렸다. 나는 이성의 지시가 없이 글을 썼으며, 머리가 아니라 사타구니 근처에 자리잡은 다른 힘이 나를 지배했다. 그 힘이 내 손을 이끌었고, 두뇌는 뒤를 따라가며 질서를 이룩했다.

나는 그토록 깊은 공감을 느끼며 누에의 말없는 고민과 안도감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누에가 먹은 모든 뽕나무 잎사귀들이 드디어 변화를 일으켜 비단실이 되면, 창조의 과정이 시작된다.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누에는 발작적인 경련을 일으켜 꽁무니를 내밀고는 가느다란 비단실을 한 가닥 한 가닥 뽑아서 인내와 신비로운 지혜로 하얗고 황금빛인 자신의 관을 짠다.

벌레 전체가 비단실로, 육체 전체가 영혼으로 변하는 과정보다 더 절박한 의무나, 더 감미로운 고민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또한 신의 일터를 지배하는 법칙을 그보다 더 충실하게 따를 길도 없다.

 

668 창조를 하는 동안 작가는 줄곧 배 속의 아들에게 영양분을 주는 여인처럼 입덧을 하게 된다. 나는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소리가 나도 온몸이 떨렸고, 아폴론에게 태형을 당한 듯 벗겨진 신경은 공기에 닿기만 해도 상처를 받았다.

 

669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든 문제와 자기보다 훨씬 우수한 본질과 싸움을 벌인다. 우리들의 가장 깊은 비밀, 표현할 참된 가치를 지닌 유일한 비밀은 표현되지 않고 항상 그대로 남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승리자까지도 패배자로 나타난다.

마르시아스와 오르페우스 이야기와 비슷. 닿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멀리 가버린다.

 

669 슬프다. 우리들에게는 유일하게 불멸의 부분인 !’를 인류에게 전할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어휘! 어휘! 슬프다. 나에게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었다. 내가 거느리는 군사라고는 스물네 개의 글자, 스물네 개의 납 인형 병사들뿐이었다. 나는 전원 동원령을 내려 군대를 일으켜서 죽음과 싸우리라고 생각했다.

 

670 글을 써가면서 나는 원하지 않아서 피하려고 했던 두 단어가 자꾸만 떠올라 사라지려고 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오름이라는 단어였다. 

 

670 평생 동안 나는 오직 하나의 길만이, 오름길만이 신에게로 이끌어 감을 분명히 알았다. 밑으로 내려가거나 평탄한 길이 아니라 오직 오름길만이. …나는 자주 주저했지만 신에게로 올라가는 길, 그러니까 인간 욕망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향한 길에 대해서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670 그뿐만 아니라 나는 신의 세 가지 피조물인 나비가 되려는 벌레와, 본성을 초월하려고 물에서 뛰어오르며 나는 듯한 물고기와 배 속에서 비단실을 뽑아내는 누에에게 늘 매혹되었다. 나는 항상 내 영혼이 가야 하는 길으 상징한다고 상상했던 그들과 언제나 신비로운 일치감을 느겼다. 

 

671 나에게는 나비가 되려고 하는 유충의 열망이 항상 유충에게는, 그리고 인간에게는 가장 절박하면서도 정당한 의미로 여겨졌다. 신은 우리들 유충을 만들고, 스스로 노력하여 나비가 되어야만 한다.

 

672 때는 8월로 가장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달이었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포도밭 그리스에서 영원히 포도주를 짜는 사티로스는 포도주를 만드느라고 침전물이 여기저기 튄 모습으로, 턱이 둘이고 뱃가죽이 세 겹이며 꼬리를 꼿꼿하게 세운 거룩한 모습으로, 턱이 둘이고 뱃가죽이 세 겹이며 꼬리를 꼿꼿하게 세운 거룩한 모습으로, 달콤한 과일을 한 아름 안고 포도밭과 참외밭을 산책하면서, 건장한 가장답게 은혜를 베푼다. 우리들의 참된 불멸의 토박이 신들은 이런 모습이다.

 

676 갑자기 해답이 머릿속으로, 또한 마음과 사타구니로 스며들었다.

 

677 나는, 아니 내가 아니라 내 손으로 빚는 오디세우스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고, 더 이상 자신을 부끄럽게 행동하지 않았다. 나는 심연을 차분히 맞게끔 그를 창조했고, 그를 창조하면서 나는 그를 닮으려고 노력했다. 나 자신이 창조되는 중이었다. 나는 내 모든 열망을 오디세우스에게 맡겼으니 그는 인간의 미래가 흘러 들어가도록 내가 파내는 틀이었다.

 

679 크레타의 바닷가에서 내가 오디세이아를 쓰는 동안에 지옥의 힘들은 두 번째의 커다란 전쟁을 준비했다. 인류에게 광증의 바람이 불어닥쳤고, 지구의 기초가 삐걱거렸으며, 원고지 위에 엎드려 파도와 사람드과 지옥의 힘들이 내는 소리르 들으며 나는 공포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소중한 목숨을 살리기 위해 나의 영혼에 매달렸다. 나는 살육과 눈물, 그리고 오늘날의 유인원 너머에서 살았던 인간을 찾아내어 정리가 잘 되고 조화를 이루는 단어로 유혹하려고 애썼다. 비록 그는 공중에 매달린 유령처럼꼼짝하지 않았어도, 나는 몸을 수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내 피가 그에게 흘러감을 느꼈다. 나는 속이 비어가고, 그는 가득 찼으며, 그의 몸은 조금씩 단단해져 움직이며 나에게 오기 시작했다.

 

680 나는 하루 종일 일하고 밤새도록 잤다. 나는 해시계나 마찬가지여서 평생 밤에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꿈과 침묵이 이어지고 내 마음 속에서 컴컴한 문을 여는 밤은 이튿날 일을 하도록 나를 준비시킨다.

 

680 이럴 때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은 시간이다. 쓸데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낭비하거나 공연히 돌아다니며 빈둥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길모퉁이로 가서 거지처럼 손을 내밀고는 구걸하고 싶다. “선량한 기독교인들이여, 적선하는 뜻에서 1시간이건 2시간이건 마음 내키는 대로, 여러분이 잃어버리는 시간을 조금씩만 나에게 적선하십시오.”

 

682 그는 심호흡을 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구원으로부터 구원이 되었군요. 당신은 구원으로부터 구원되었으니, 그것이 인간의 가장 큰 공훈이죠. 당신이 거쳐야 할 희망과 두려움의 과정은 끝났으니, 당신은 심연 위로 몸을 내밀고는 거꾸로 비친 세상의 환영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소중한 친구인 우리들은 함께 심연 위로 몸을 내밀고도 무서워하지 않았죠. 기억이 납니까?”

무서운 여행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고, 바다가 마구 울부짖으며 기억이 더 널리 뻗어 나가자, 우리들이 아들과 아내와 조국과 안락한 생활을 뿌리치던 광경과, 우리들이 미덕과 진리를 남겨두고 신의 칼립디스와 스킬레 사이를 무사히 지나고, 망망대해로 나가 돛을 잔뜩 펼치고 용감하게 심연을 향해 나아가던 광경이 거듭거듭 난에 보였다.

멋진 여행이었더요. 우린 이제 도착했군요. 그건 이제 우리들이 떠나리라는 뜻입니다. 우린 떠납니다. 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육체도 없이. 자유롭게요. 아니죠. 자유로부터 자유가 되어. 그 너머로. 자유를 넘어서 말이예요. 용기를 내요.”

난 당신을 따르기가 두렵습니다. 내 힘은 거기까지만 미치고, 더 이상은 못 가요.”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맡은 바 의무를 제대로 수행해서 당신보다 훌륭한 아들을 낳았어요. 당신은 여기 남아 부표 노릇을 해요. 난 더 나아갈 테니까.”

그는 미소지었고 목소리는 다정하고 장난스러웠다.

“40년 동안이나 헤매어도 신을 찾지 못했던 고행자가 있었죠. 어떤 시커먼 물체가 가운데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어요. 하지만 어느 날 아침에 알고 보니 그가 너무나 좋아해서 선뜻 버릴 마음이 없었던 낡은 털옷이었지요. 그것을 버리자 그는 당신 앞에 나타난 신을 보았어요. 이봐요. 당신이 나에게는 낡은 털옷이죠. 잘 가요

그는 꿈 속에서 그의 영혼과 대화를 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곧 죽으리라는 사망예고를 받았다. 그를 준비시킨다.

 

685 내 고백은 끝났으니 당신이 심판하라. 나는 날마다 살아가는 자질구레한 얘기를 회고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허섭쓰레기니까

 

686 위대한 세이렌들과 그리스도와 붓다와 레닌처럼 죽은 다음에도 불멸한 자들만이 나를 매혹시켰다. 젊었을 적부터 나는 그들의 발치에 안장 사랑이 넘치는 그들의 유혹적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전혀 거부하지 않으면서, 이들 세이렌들로부터 구원을 받으려고 평생 투쟁했으며, 서로 싸우는 그들의 세 가지 소리를 결합시켜 조화롭게 변형시키려고 노력했다.

 

688 우리들의 중심은, 할아버지시여, 눈에 보이는 세계를 휩쓸어 용맹과 책임감의 높은 단계로 상승시키려던 중심은 신과의 싸움이었다. 어느 신 말인가? 우리들이 끊임없이 다다르려고 하지만 항상 벌떡 일어나 더 높이 올라가 버리는 인간 영혼의 험악한 산봉우리가 신이다. “인간이 신과 싸운다는 건가?” 어느 날 친지 몇 사람이 비웃듯이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대답했다. “아니, 그럼 누구하고 싸워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은 전체가 상승, 절벽, 고덕이다. 우리들은 많은 동료 투쟁자와, 많은 사상과, 거대한 일행과 함께 출발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올라가도 정상이 이동하여 자꾸 멀어지면 다른  투쟁자들과, 희망과, 사상은 숨이 차서 더 높이 올라갈 마음이나 능력이 없어져, 우리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움직이는 정상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우리들만 남았다. 우리들은 언젠가는 정상이 움직이지 않아서 우리들이 거기에 다다르게 되리라는 순진한 확신이나 교만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그곳에 도달한다 할지라도 높은 그곳에서 행복과, 구원과, 천국을 찾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우리들에게는 올라간다는 행위 바로 그 자체가 행복이요, 구원이요, 천국이기 때문에 올라간다.

 

689 육체의 본질과는 달리 우리들의 내적인 불길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강렬하게 타오른다는 진리를 당신은 나에게 가르쳤다.

 

710 “당신은 비정한 재판관입니다. 당신은 영혼을 구하려고 육체를 괴롭히고 죽입니다.”

나는 육체를 사랑해요. 육신도 신이 내려 주셨으니까 역시 신성하게 생각되죠. 그리고 또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화를 내지는 마세요. 육체는 영혼에게서 광채를 받고, 영혼은 육체에서 얻은 솜털이 났어요. 그것들은 좋은 이웃이나 친구로 지내는 두 젊은 여인들처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함께 살아요. 당신은 이런 성스러운 균형을 깨뜨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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