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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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오프수업이 포항으로 정해지면서 먼 거리와 낯선 동네에 대한 마음에 부담감이 생겼다. 하지만 11월 수업 내용은 개인의 미래 풍광을 그리고 키워드를 찾아가는 내용으로써 주변환경도 중요하므로 포항이라는 곳은 우리의 수업 내용과 아주 적합한 장소라는 결론이 났다. 그렇지만 먼 거리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이제껏 오프 수업을 할 때마다 시간이 항상 부족했기에 포항이라는 곳을 가면 아무리 1박 2일이라 하더라도 시간이라는 놈과의 싸움은 여전히 숙제로 남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염려 반 기대 반이었던 오프수업은 다가왔다. 오프수업이 있는 주는 백수가 과로사 할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만든 주였다. 그래서 숙제도 부랴부랴! 물론 틈틈이 생각해 놓은 것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더 깊은 몰입을 할 수는 없었다. 겨우 과제를 정리해서 올리고 난 뒤에도 여전히 미래의 5대 풍광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포항으로 출발하는 당일 날, 어찌 모닝페이지는 썼지만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어머님의 모닝콜이 아니었으면 기차시간을 놓칠 뻔 했다. 겨우 차려주는 밥을 먹고, 남편이 전철역까지 데려다주는 수선을 떨고서야 제 시간에 서울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늦은 것에 대한 후회는 뒤로하고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교감쌤이 일등으로, 찰나언니가 2등으로, 달자님, 구달님 등의 순으로 서울역에 도착했다. 나도 겨우 도착을 했고, 서울에서 출발하는 8명이 다 모이고 나서야 기차에 탑승을 시작했다. 수업을 하러 가는 것인지, 놀러 가는 것인지…어차피 수업이 노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거리에 대한 부담은 어느새 즐거움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신경주역까지의 짝꿍은 달자님이 되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의자에 머리를 붙일 틈도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래의 5대 풍광 중에 다섯 번째 풍광, 1년에 2달 여행하며 사는 삶을 사람에 대해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 대상은 성공한 사람부터 노숙자까지 대상에 차별을 두지 않고 하고 싶었다. 그것이 달자님의 생각과 일치를 했고 우리는 수다삼매경에 빠져 2시간 5분을 10분으로 바꾸는데 성공!
드디어 포항에 도착을 했다. 같이 가는 일행의 얼굴에서 어릴 적 소풍 가는 아이들의 표정이 살아났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이들한테 이렇게 해맑은 표정이 있는지 모르겠지! 리무진을 타고 35분을 이동해서 포항의 생아구탕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에는 스승님의 추모식 때 한 번 뵌 기억이 있는 1기의 오옥균선배님과 예상치도 못한 그의 아우들이 있었다. 오선배의 아우들은 같은 회사 동료로서 주말을 반납하고 우리가 펜션으로 들어가는 곳까지 운짱을 해주실 분들이며, 그 대가로 수업을 참관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감동이 밀려왔다. 이분들의 참여는 연구원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오선배님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과 애정이 곁들여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인연과 끈끈함이 너무도 멋졌다. 부러운 관계다. 그분들의 관계에 대한 선망이 녹아 든 생아구탕은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지만 탁월함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포항은 처음부터 예기치 못한 감동을 선물해 주었다.
식사를 하고 난 후 3대의 차는 펜션으로 향했고, 피울님과 나는 마트에서 간단하게 장을 보기로 했다. 해언과 녕이가 조르르 달려와 같이 가자고 했다. 그녀들의 합세로 장보기 팀의 평균연령이 확 낮아졌다. 잠깐의 이동이지만 우리는 입을 잠시도 쉬지 않았다. 마트에 갔는데 감동의 점심을 먹었고, 포항수업에 대한 설레임이 한층 배가가 되어 그런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넷이 닥치는 대로 주워담는 장을 보고는 펜션으로 향했다. 피울의 아티스트적(?)인 운전 솜씨와 멋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시골길을 달리는데, 오른쪽에 넓은 모래사장과 파도가 빽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들어왔다. 바다내음이 코의 점막을 자극하는 순간부터 감탄은 시작이 되었고, 우리는 도저히 빨리 가야한다는 의무감에만 매달릴 수가 없었다. 운전대를 틀어 해수욕장 앞에 차를 잠깐 세웠다. 끓는 피 어니언이 먼저 바닷가로 뛰어간다. 우리는 잠깐이지만 빨리 오라는 메세지를 무시하고 우리만의 사진을 남겼다. 10분의 소극적인 일탈이 짜릿했다.
펜션에 도착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한 침묵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펜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다 전체가 보이는 전면유리창은 수업 중에도 시선을 자꾸만 바다로 잡아 끌었고, 바람도 없는 날씨에 찰싹거리는 파도소리는 창문 틈으로 들어와 마음을 간질였다. 풍광은 최고, 수업집중을 방해하는데도 최고의 장소였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챈 교장쌤은 ‘빨리하고 놀자. 중언부언하지 말고 명료하게 이야기 하고, 서로 키워드를 주어라.’라고 말씀하셨다. 최초로 시도하는 1명당 30분의 발표시간은 기준을 세운 것이 무색할 만큼 번번이 어겨졌다. 설레는 마음을 수업으로 다독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입과 머리는 한시도 쉬지를 않았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우리의 수업 중에 가장 창조성이 요구되는 수업이었다. 아들의 맹장수술 때문에 오지 못한 종종의 빈자리가 아쉬울 때였다. 모든 것에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지시는 창선배님의 빈자리 또한 크게 느껴졌다.’ 종종이 왔다면 강아지처럼 날뛰었을 것이고, 창선배님이 같이 했다면 투덜거림 속에 감동을 만나셨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니언은 자신의 미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의 키워드는 손에 쥐었고, 구달님은 역시 자전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자전거로 전환에 성공한 사나이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우리가 준 키워드로 구달님은 계를 타셨다. 피울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재주가 많은 만큼 욕심도 많고 수준도 높다. 그가 그려낸 미래풍광 중에 ‘복합문화공간 피울’이 그를 가장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은 꿈 많은 소녀 녕이의 과제는 즐거움을 주었다. 이게 미래풍광인가 버킷리스트인가 싶을 정도로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그녀였다. 평생을 해도 벅찰 것 같은 그녀의 열정이 현실과 조합을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언제나 길었던 에움의 과제 발표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을 예약한 관계로 짧게 끝이 났다.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녀의 미래풍광은 그녀를 정확히 말해주었다. 거기서 그녀의 키워드를 잡아냈으면 좋겠고, 키워드에 근접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느껴진다. 에움이 누구보다도 꿈이 많은 소녀였다는 것이. 에움을 끝으로 우리는 식사를 하러 갔다. 펜션 주인장이 직접 안내해준 식당이었다. 바다에 나가 그물을 통해 직접 고기를 잡는 횟집이었다. 덕분에 포항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자연산 회를 실컷 맛볼 수 있었다.
식사와 함께 음주를 곁들인 후, 다시 펜션으로 향했고, 나의 발표시간이 되었다. 나의 키워드는 명확했다. 그 동안의 탐색을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다만 마지막에 바꾼 풍광 인터뷰하는 장면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왜 노숙자들 인터뷰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코멘트들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희동이 했다. 하루를 맛과 요리로 표현한 그의 아이디어는 아주 좋았다. ‘하루 레시피’가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찰나 언니는 역시나였다. 우리는 그녀를 보살, 장군등으로 부른다. 그녀와 불교와 명상, 치유 등은 분리할 수 없다. 그녀는 1년에 두 권의 책을 쓰겠다고도 했다. 그 동안의 그녀의 행로를 보아 충분히 실천력이 있는 발표라는 것에 모두 공감했다. 그녀의 행동력이 부러운 시점이다. 앨리스의 꿈은 현실을 향하고 있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꿈을 현실과 접목시키는 것을 배웠다. ‘책 읽어 주는 할머니’의 풍광은 3대째 전통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지만, 건강하게 아이들과 오래 같이 하고 싶다는 그녀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녀의 풍광 중에 이것만 되면 나머지는 다 이루어진 것이다.
종종은 겁도 없이 새벽 1시에 도착을 했다. 부산에서 막차를 타고 바람 같이 달려왔다. 수업 중간에 서로 주고 받은 카톡에서 그녀가 얼마나 이 시간을 우리와 같이 하고 싶어하는지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마르셀은 도저히 안 갈 수 없는 상가집을 서울로 갔다고 했다. 마르셀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종종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언제부턴가 훨씬 밝아졌고, 데카상스에 대한 애정도가 상승을 했고, 이지적이고 통통 튀는 여성에서 감수성 풍부한 소녀로 변신이 되어 있었다. 그날 밤에 온 종종은 소녀였다. 겁 없이 질주하는 10대 모습을 하고 왔다. 지면을 통해 마르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녀의 발표는 헤어지기 전에 신경주역에서 2분 정도 진행이 되었다. 발표를 했다고 할 수도 없고, 안했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
과제 발표가 끝난 후 우리는 시간이 가는 아쉬움에 이 밤을 적시기에 딱 좋은 구달님에게 노래를 요청했다. 그렇게 노래는 한 바퀴를 얼추 돌았는데 창선배님 대신 우리에게 창을 날리시는 분이 있었으니 그 분의 이름은 미스터 네가티브, 오선배의 추종자였다. 놀지 못한다는 핀잔과 꿈이 얼마나 절실한지 궁금하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미스터 네가티브는 포항의 창이다. 짧은 시간 같이 하셨지만 어쩌면 우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같이 온 귀여운 그 분은 아기 곰을 연상케하는 율동과 노래 솜씨로 잊을 수 없는 밤을 만들어 주셨다. 우리는 그렇게 잠자기가 아쉬운 밤을 만났고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 김치콩나물해장국을 끓여 먹고는 짐을 챙겼다. 얼굴도 보지 못한 선배가 한 박스 보내주신 과메기가 우리가 떠나올 때까지 같이 했다. 변경연을 통해 맺어진 보이지 않는 인연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점심으로는 모리국수를 먹었다. 종종이 소개한 곳을 가고 싶었지만 줄이 길어 다른 곳으로 갔다. 목청 크고 할말 다하시는 사장님한테 혼나가며 먹은 모리국수는 종종이 이야기한 것처럼 일품이었다. 이 국수 맛을 또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오선배와 포옹의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신경주역에서 종종을 먼저 보내고 우리는 기차로 올라왔다. 골아 떨어질 줄 알았던 기차에서는 승호선배 덕분에 동승자 좌석에 앉아 즐거운 수다시간을 가졌다.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1박 2일 동안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알았다. 간 밤에 물에 빠진 희동과 4시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던 콩두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미스테리 언니는 포항의 오브라더스한테 강한 인상을 남기고는 새벽에 미스테리하게 먼저 갔다. 너무도 아쉬운 시간들이 찰나처럼 지나가 버렸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 포항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포항은 나에게 그리운 이름이다. 터미널까지 함께 해주신 오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특히 수험생을 싣고 다니는 차를 우리를 위해 키를 받아오신 마음에 또 한번 진한 감동을 받았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오선배님의 건배사 중에 있던 ‘예, 형님!’은 오선배가 포항의 큰 형님임을 진심으로 받아 들이게 하는 부분이었다. 조직에서나 통용되는 줄 알았던 ‘예, 형님!’은 우리 데카상스의 마음을 후비고 들어왔을 것이다. 잘 먹고 잘 놀고 갑니다. 형님!
PS. 데카상스에게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교육팀, 미스테리님, 콩두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좋은 추억과 함께 통장 잔고가 늘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부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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