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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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레시피"를 들고 출발한 11월 오프 수업은 긴장의 연속이었던 몇 주간의 업무와 일상을 떠나 하루를 온전히 나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하루 레시피"의 절박함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나에게 필요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하루! 이 시간은 열리지만 곧 닫힌다. 여는 것도 나이고 닫는 것도 나이다. 하지만 그 동안 나의 하루를 열고 닫아 왔던가? 나는 오늘도 나의 하루와 시름하고 있다.
하루는 무수히 많은 만남과 관계와 사건들 그리고 나의 감정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은 누구였으며 그 관계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사이 벌어진 사건들은 왜 일어났고 그 사건 속에 나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난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이 모든 것들이 나의 하루의 맛이고 내가 말하고 싶은 하루 요리이다.
11월 오프 수업은 어떤 요리였고 맛이었을까? 우선 흠뻑 취했으니 술을 곁들인 만찬이었고 서로의 미래를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잔칫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요리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모두 선물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근사한 요리를 선물 받는 나로서는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흠뻑 취하였다.
하루 요리의 중요한 부분은 '하루'라는 시간에 있다. 나의 하루는 정확히 24시간이다. 그러니 그 시간 안에 모든 요리는 끝나야 하고 먹었던 설거지도 마쳐야 한다. 하루가 끝나지 않으면 요리가 식어 맛이 없듯이 나의 하루도 맛이 없어진다. 오프 수업이 늦게 시작한 탓에 늦게까지 이어진 수업과 저녁과 곁들인 술로 인해 나는 하루를 마무리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하루를 맞이 하였다. 이건 시간의 과식이다. 그리고 시간의 만취이다.
하지만 오도 앞바다는 나를 흠뻑 적셔 주었다. 나는 마음 속에 쌓여 있던 그간의 스트레스를 오도 앞바다에 모두 쏟아 내었다. 밀려 오는 파도를 맞으며 이야기 하였다. 나 아직 살아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말한 나의 미래를 꼭 이루어 보리라고 말이다. 바다는 따뜻했다. 잘 먹고 난 다음 마시는 잘 끓인 숭늉 맛이었다. 하루 참 잘 먹었다. 하지만 하루를 너무 과식하였고 너무 취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지난 밤 어질러 논 부엌과 설거지 거리들을 챙긴다. 시작할 시간에 마무리를 하려니 기분이 개운치 않다. 그래서 계속 궁시렁 거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며 지난 밤의 늦은 식사와 마무리 하지 못해 어질러진 나의 식탁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궁시렁거리며 어제의 요리를 마무리하고 나니 이제 다시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늦게 들어선 부엌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우선 먹을 거리를 만들어 보려고 할 때처럼 마음만 급하다. 그렇게 하루를 떠나 하루에 도착했다.
'하루 레시피'를 들고 떠났던 11월 오프 수업에서 얻어온 레시피는 다름 아닌 '절제'였다. 하루를 맛있게 요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맛있게 먹고 잘 정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요리를 하고 맛있게 먹고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해내는 자기 책임이다. 하루는 늘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는 내가 어떻게 열고 어떻게 닫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고 애써 잘 보낸 하루를 잘 갈무리 하지 못하면 애써 만들어 놓은 의미를 놓치고 만다.
'절제'와 '자기 책임'이 없는 요리는 자유를 가장한 쓰레기가 된다.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어도 이를 맛있는 요리로 만드는 것은 무턱대고 칼질하고 소금치고 삶고 굽는 것이 아닌 재료를 요리에 맞게 잘 다듬고 재료들을 잘 배합하여 순서에 맞게 요리에 적합한 조리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하루를 사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 중 하나이다. 이 자유를 진정한 자유로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를 낭비하지 않고 절제와 자기 책임하에 요리로 잘 만들어 내야 한다. 어떤 요리를 만들지는 자유다. 하지만 그 요리는 결국 내가 먹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먹을 수 있어야 요리다. 제대로된 요리가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그 자유의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 만든 요리는 오감을 깨우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먹는 사람을 충만하게 만들어 삶을 긍정하게 한다. 하루는 맛있게 먹자 그리고 건강하게 살자. 나는 11월 오프 수업을 통해 나에게 이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깨닫고 돌아 올 수 있었다.
이번 11월 오프 수업은 1기 오옥균 선배님과 벗님들께서 많은 선물을 주신 하루였다. 비록 오프 수업 준비를 많이 하였으면 더 나은 나의 모습를 보여 드렸을 것인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커다란 상에 잘차려진 음식들을 마련해주신 오옥균 선배님의 많은 배려와 도움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같이 오신 벗님들께 다신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같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좋은 말씀도 나눠주시고 함께 식사도 하고 술잔을 나누었으니 이제 식구가 아니겠습니까? 다음에 자리가 있으면 더 좋은 말씀 나누며 가까이 지낼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1박2일 오프수업 여행을 이끌어주신 교육팀, 콩두 선배님, 미스테리 선배님 모두 감사합니다. 이제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가 되어 이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