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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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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1일 09시 28분 등록

숨가쁜 하루 하루가 계속되고 있었다. 매달 새로운 과목로 리셋되는 시스템인 나의 학교는 늘 매 시간 과제가 있고 거의 매주 시험이 있거나 혹은 발표를 해야하는 등 바쁘기로 유명하다. 학기 첫 달은 학교 생활 자체에 적응하느라 그저 정신없이 흘러갔고, 지난 달에는 학비가 아깝다며 개설된 모든 과목을 수강하다가 혼쯜이 나는가 싶더니, 이번 달에도 또 욕심껏  수업을 들으면서 동시에 학교에서 주최하는 여러 활동에 참여하다보니 더욱 정신이 없었던 상태였다. 갈수록 적응이 되면 더욱 수월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갈 수록 힘들었다. 특히 최근 어떤 과목에 대해 일부 친구들이 D이하의 성적이 나오는 희대의 사태가 벌어지고 그로 인한 일련의 사태들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모두가 마음이 무거워져야만 했다. 나는 이렇게 대학원에 와서까지 성적에 목을 메야 한다는 사실이, 서로의 이해관계로 인한 동기들끼리의 분위기도 옥신각신 안 좋아진다는 사실이 매우 허무해지던 찰나였다. 또한 오프수업 바로 다음에 있을 시험, 오프 수업 전에 모두 마무리하기를 바랬으나 결국 반도 못 끝냈을 뿐더러 팀웍도 삐그덕 거리는 팀 과제의 진행은 나의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번주의 책인 '어제와 다른 세계'는 근래 보기 드물게 그 두께가 어마어마 하여, 진도가 쉬이 나가지 않는 독서는 나의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했다. 모든 일이 왜 이렇게 한 번에 몰려오는 것인지, 또 미리미리 더 준비하고 노력하지 않았던 나에 대한 후회와, 왜 이렇게 많은 일을 벌리었는가 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괴롭기만 했다.  


결국 오프수업을 가는 날 아침까지 피곤함에 지쳐 겨우 일어난 나는 허겁지겁 짐을 싸야 했고 결국 갈아입을 양말 등을 모두 빼놓은 채로 기차에 몸을 싣었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하루 정도는 꾀죄죄해도 괜찮겠지. 라며 데카상스들에게는 살짝 미안하지만 더러운 녕이가 되기로 한다. 설상가상으로 일요일 밤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자리에 앉자 마자 노트북을 폈다. 생각보다 기차는 심하게 덜컹거렸고 멀미가 날 것 같은 마음에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렇게 하염없이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  따사로운 햇살과 어디론가 놀러간다는 느낌에 잠시나마 행복감이 느껴졌다. 결국 왠지 너무나 하기 싫어진 과제는 뒤로 미룬 채 데카상스를 위해 준비해온 빼빼로에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KTX로 갈아타면 더욱 편안한 승차감이 담보될 줄 알았는데 이건 왠걸 새마을 기차 보다 2배는 더 진동이 느껴졌다. 오랫만에 써보는 손글씨와 메시지 쓰기가 왠지 어색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써야 하나, 잘 써야 하는데 왜 이렇게 밖에 못쓰나 고민 스럽기만 했는데 그냥 편안히 쓰자 라고 마음먹다보니 어느새 나는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칸이 모자랄 지경이기도 했다.


몇 시간 여를 달려 왔는데 조금의 지겨움을 느낄 새도 없이 어느새 기차는 신경주역에 나를 내려주었다. 반가운 얼굴을 한가득 보고 있자니 잘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얼굴 표정들이 좋다. 많은 걱정들을 뒤로하고 마음을 밝게 하자며 자꾸 주문을 걸어 보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향하는 길, 옆에서 들려오는 에움언니의 상큼한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언니들과 신나게 놀고 싶은데 자꾸 감기는 눈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힘을 내어 수다를 시작했다. 앨리스 언니와 에움언니는 볼 때 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이다. 그 매력은 단단한 자기 중심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드디어 포항에 도착하여 오옥균 선배님을 만날 수 있었고 우리는 맛집이라는 그 곳에서 아구탕을 먹었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바로 맛집을 다니는 것이다. 아구찜 매니아인 나는 아구로 탕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여로를 모두 풀어주는 듯한 아구탕의 시원한 맛에 흠뻑 취할 수 있었고 배도 든든해져 왔다. 매번 고생하는 우리의 살림꾼 참치언니를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어 장을 보러 가는 데에 끼었다. 사실 나는 백화점에 가는 것 보다 마트에 가는 것이 더욱 좋다. 다양한 먹을 거리들을 고를 생각에 더욱 신이 났다. 동네의 조그마한 마트 같은 그 곳에 없는 것은 없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실 밤이기에 아낌없이 담았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나오지 않아 더욱 놀랐다. 담은 것도 별로 없는데 늘 많은 금액을 기록하던 서울에서의 나의 장보기랑은 사뭇 느낌이 달랐다. 포항! 참 좋구나 너! 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다.


많은 짐을 싣고 더욱더 풍요로워진 마음으로 펜션으로 향하는 길, 우리는 많은 차들이 서 있는 한적한 해변을 발견했다. 칠포 해변이라고 했다. 우리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잠시 멈추자!라며 입을 모았고 어니언은 젊은 피 답게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닷가로 뛰어갔다. 그녀의 생기 넘치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파한다. 참치언니와 어니언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그 1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 내게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아니었나 한다. 마침 날씨가 어둡고 바랍도 세게 불었지만 몰아치는 파도는 오히려 답답했던 내 마음을 모두 씼어주는 것만 같았다. 잠시잠깐이지만 바닷가에서의 일탈은 내게 왠지 자유를 주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주 오프수업은 우리의 미래 모습을 그리는 것이었다. 아직 버킷 리스트 수준인 나와는 달리, 모두의 미래는 우와 정말 그 사람의 온전한 모습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생생한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여전히 나의 미래가 오리무중인 나는, 그렇지만 조금 더 나의 가슴에 귀를 기울이고, 또 기회가 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늘 많은 일을 벌리고, 그래서 제대로 해내지를 못하고,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는 나이지만, 그 속에서 또한 배우는 것들이 있으리라..라는 위안을 해보기도 했다. 학교에 있는 친한 동생이 어느 날 나에게 이야기했다. 자기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할 것 같은데 왠지 자꾸 멋 부리는 데에만 신경이 쓰이고 관심이 간다고 말이다. 늘 고3 수험생같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학교에 가는 나와는 달리 그 동생은 늘 패션 모델처럼 완벽하게 꾸미고 학교를 오곤 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왠지 그렇게 꾸미고 다닐 마음은 나지 않았다. 싱글 때는 나름대로 이것저것 신경쓰고 다녔던 것 같았는데 그저 편한 것이 최고인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그 친구에게 한 마디 했던 기억이있다. 멋 부리는 것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마음껏 부리라고 말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또 지금의 나처럼 그런 마음이 아예 들지 않을지 모른다고. 갑자기 그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분명 누군가는 대책 없는 나의 모습이 부산스럽고 괜히 바쁜 것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고 싶고 또 행동하게 되는 지금을 즐겨보기로 했다. 그러나 너무 번아웃 되지는 않도록 나를 관리해가면서 말이다. 수업이 끝나고도 나를 향한 데카상스 식구들의 조언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부족한 나에게 관심을 갖고 또 마음에서 우러나는 피드백을 공유해주는 언니들께 감사한다.


팀 과제로 인해 계속해서 팀원들과의 카톡이 이어지면서, 나의 마음은 바닥으로 곤두박칠 쳤다. 시험 공부도 제대로 못해서 불안해 죽을 것 같은 마음인데, 믿었던 팀원들과 팀 과제는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대학교에서도 팀 과제 때문에 나는 괴로운 적은 많이 없었다. 그러나 학교에 와서, 나름 우수하다는 팀원들과 함께, 왜 이렇게 우리는 헤매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 내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내가 더 희생하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 또한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 공헌 하는 분량을 정확히 나누기 위하여 애를 썼고 결국 공헌 분량이 작은 사람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폭발을 했고 그렇게 팀은 분열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미래 풍광을 그리고 서로 포항 밤바다를 보며 낭만을 나눌 이 시간에, 팀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괴롭기만 했다. 결국 과메기를 뒤로하고 나는 방으로 가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애썼으나 이내 나 또한 그들에게 화가 났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과제를 하고 또 공부를 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가 않아 뒤숭숭한 포항의 밤을 그렇게 보냈다. 방 밖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웃음소리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바닥으로 가라 앉은 나의 마음은 수면 위로 떠오를 줄을 몰랐다. 데카상스 식구들에게도 왠지 미안했다. 이번에는 포항 오선배님과 두 분의 멋진 후배도 오셨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선배님들인 콩두 선배와 미스테리 선배님까지 다 참여해주셨는데, 종종언니는 새벽에 도착하기 까지 했는데, 그 마음이 괴롭기 짝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또 어두운 마음을 하고 모두의 흥겨운 잔치 자리에 쉽게 나갈 수 없었고 나는 영어 아티클들과 씨름해야만 했다.    


아침바다의 시원한 기운도 느끼고, 간 밤의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들으며, 그 명성에 딱 맞는 기똥찬 맛을 자랑하던 모리국수도 먹고, 이제 집으로 향해야 했다. 남편과 내가 연애하면서 처음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갔던 경주, 그리고 거기서 너무 맛있어서 흠뻑 빠진 황남빵을 들고 집에 향하는 길, 또 팀원들로 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고 나는 정말 화가나서 폭발할 것만 같았다. 아마도 호르몬의 영향으로 더욱더 나의 마음은 요동쳤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데카상스 멤버들에게 나는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렇게 아쉬운 작별을 했다. 과제고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내가 포항까지 다녀오면서 이게 무얼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다 최선을 다하고 싶었는데 이제 한계가 오는가 보다 싶기도 한 허무함이 몰아쳤다. 혼자 기차를 갈아타는 대전에서 고향에 와도 고향에 가질 못하는 서러운 마음을 담아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데 왠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전화를 하며 플랫폼에 서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나의 모습을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실연당한 여자인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 왠지 웃음이 나기도 했다. 늘 바쁘게 지내는 나에게 엄마는 또 한 마디 한다. 그냥 좀 쉬라고 말이다. 남편이나 잘 챙기라고. 다급히 남편 생각이 나서 또 눈물이 더욱 흘렀다.


애써 마음을 추스리며 집에 돌아오니 이번엔 남편이 이야기 한다. 주말 내내 청소, 빨래를 도맡아 하고 혼자 밥을 차리고 먹고 집에서 내내 있자니 내 인생이 왜 이런가 싶었다고 말이다. 갑자기 모두가 나에게 왜 이러나. 하면서도 남편의 마음이 십분 이해 가기에 나는 면목이 없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장으로서 한층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고,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 앞으로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해 하는 그가 매번 내가 없는 주말을 혼자 보내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결국 나는 다시 마음을 굳게 다지기로 했다. 내게 소중한 것에 더욱 시간을 많이 쏟겠다고 말이다. 미래 풍광의 나는 더 없이 행복한 나를 추구하고 그 속에는 가족이 항상 함께있다. 그러나 또 성과 주의에 신경을 쓰다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오프 모임에 가서 나는 마음처럼 흠뻑 취하지 못했다. 그러나 푸르른 바다와 데카상스로 부터 위안을 받았고, 또 나의 생활을 많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연구원 생활을 더욱더 잘 마무리하는 일, 이것 또한 나의 과제일 것이다. 우선은 지금 닥친 하루의 과제들에 또 빠져들 시간이다. 소중한 가치는 잊지 않는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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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2 05:48:41 *.255.24.171

녕이! 항상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돼.

깔끔하고 스마트한 웃음 뒤에 있는 진짜 녕이가 보고 싶어.

그래야 녕이도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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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2 21:18:12 *.128.229.20

완전 공감! 

언니가 불편해한다면 할 수 없지만... 

사회라는 정글에서 요구하는 '건설적인 편집증'일랑 내려놓아주어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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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2 23:10:23 *.222.10.47

우리 식구지요. 같이 밥먹고 떠들고 웃고 즐기는. 그러면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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