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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1일 11시 54분 등록

어제까지의 세계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제레드 다이아몬드 저, 강주헌 역, 김영사, 2013.



1. 저자에 대하여


■ 제레드 다이아몬드 Jared Mason Diamond ■

출생/사

1937.9.10 미국 보스톤

활동분야

문화인류학자, 문명연구가, UCLA 지리학과 교수, 작가

 

• 발 자 취 •  

• 저 서 •

∙1958. 하버드대학교 학사

∙1961. 케임브리지 대학교 생리학 박사

∙1964~ 뉴기니를 배경으로 조류 조류생태학 연구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의 의과대학 생리학・지리학 교수

∙생리학뿐만 아니라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으로 자신의 영역을 점점 확장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수개국어 구사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수여되는 영국의 과학출판상과 미국의 LA타임즈 출판상 수상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미국과학아카데미, 미국철학협회 회원으로 선정

∙미국지리학회에서 주는 상 수상

∙1988. 퓰리처 상 수상, <총, 균, 쇠>

∙<네이처.>, <Natural History>,<디스커버discover> 의 과학지에 기고 및 논설위원

1991. The Third Chimpanzee

1997. Guns, Germs, and Steel

2005. Collapse

2012. The World Until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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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를 캤다. 다이아몬드를 위해 그곳 원주민들을 죽이고 괴롭혔다.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광물들을 편하게 가지기 위해 개척이란 이름으로 원주민들의 문명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서구적 문명을 이식시켰다. 그렇게 다이아몬드는 전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고 좋은 일에 쓰이기도 하였고 늘 사치와 탐욕의 절정에 올라 있다.

 광물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인간 다이아몬드는 문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문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어울려 다이아몬드를 강제로 이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몸짓으로 다이아몬드의 생각과 삶을 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쏟고 공부하였고 수개국어를 구사하는 남자. 곳곳의 원주민말까지 생각하면 그가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정말로 많을 것이다. 진실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문명’은 참 끌리는 단어인데 오랜 문명의 역사를 먼저 공부해주는 이들이 있어 문명의 흐름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된다. 이 역할을 다이아몬드가 정열적으로 맡았다. 그는 과거 문명사회가 몰락한 역사적 원인을 찾아내고 그러한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볼 것을 이야기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문명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모습들을 살펴보고 메시지를 전한다.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총, 균, 쇠』도 인류 역사와 문명의 이야기였다. 그는 미국 UCLA 지리학과 교수이다. 정말 현재도 그러한지를 계속 찾아봤다. 그의 나이가 이미 여든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이미 정년이 오래 지난 ‘노인’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단순 노인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그를 잘 알아 여전히 학교에 있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인류 탄생 이전부터 내려오는 수억년의 역사를 연구하며 문명의 발생, 이동, 몰락을 세밀히 살펴온 세계적 지성이며 남은 생을 지구의 생명이 지속 가능하도록 이어가는 데 쏟겠다고 선언한 활동가다1).

 

다이아몬드 인터뷰 전문


안희경 = 선생께서는 2006년 <문명의 붕괴(Collapse)>를 출판하며 지구별은 이제 시한폭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4월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구별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단지 1000년뿐이다.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경고했고요. 우리 현대문명은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다이아몬드 = 스티븐 호킹은 틀렸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우리에겐 1000년의 시간이 있지 않아요. 고작해야 50년뿐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풀든지 망치든지 할 수 있는 시간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 이 별을 망쳐놓고 다른 행성을 찾아나선다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살 만한 별이라면 분명 이 태양계 말고 다른 은하계일 텐데, 그 먼 별에 도달하려고 불가능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별을 망가뜨리지 않는 데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안 = 50년이라는 시간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다이아몬드 =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50년 뒤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생선을 참 좋아하죠? 안타깝게도 세계 대부분의 어장이 50년을 못 버팁니다. 알래스카 연어 어장이 속한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만, 나머지는 어려워요. 참치는 고갈되고 있습니다. 황새치는 대서양에서 사라졌고 태평양에서도 사라져가고 있죠. 또 다른 예는 목재입니다. 한국은 열대우림의 목재를 엄청나게 수입합니다. 이대로라면 세계 대부분의 숲은 30년 안에 사라집니다. 쉽게 꺼내 쓰던 화석 연료도 고갈되니까 바다로 더 멀리 나가고 더 깊이 파들어가죠. 또 다른 예는 물이에요, 담수. 소금물을 가져다 염분을 제거해서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럼 또 고갈되는 화석연료를 써야 하니까 안되고요. 지금 세계 강물의 85%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머지라고 해봐야 아이슬란드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주 외딴곳이니까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물전쟁이 터질 만큼 위태롭습니다. 다뉴브강을 두고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충돌했고, 시리아와 터키도 그랬어요. 중국과 베트남, 태국까지 히말라야 고원에서 오는 물 때문에 갈등이 깊어질 조짐입니다.


안 = 마지막 물고기를 잡고서야 돈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라는 인디언의 예언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불 붙은 집 안에서 이윤과 성장을 담보로 한 내기장기에 정신이 팔려 있구나 싶은데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비관적인 예측 아닌가 싶어요. 그동안 현대문명은 기술 발전을 통해 많은 해법을 제시해 왔습니다.

다이아몬드 = 그래요. 기술은 많은 것을 해결합니다. 에너지를 예로 들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기술도 나왔죠. 덴마크에서는 20%의 에너지를 바람으로 만들고, 독일 서부와 스페인 북부에서도 풍력 발전의 양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80% 가까운 에너지를 핵발전으로 생산하고, 캘리포니아 남부는 태양열 에너지 발전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염 문제도 풀고 있죠. 하지만 이는 기술이 갖는 좋은 면일 뿐입니다. 이에 비해 나쁜 면이 있습니다. 바로 부작용인데 세상에 완벽하게 좋은 기술은 단 한번도 개발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냉장고에 쓰는 냉매가 유독해서 가스가 새어나오면 사람이 죽었어요. 밤에 자러 가면서 걱정을 했죠. ‘냉장고가 새면 내일 아침에 깨어날 수 없을 텐데’ 하고요. 그 와중에 굉장한 기술적 진보가 일어났습니다. 1940년대에 프레온이 발견된 겁니다. 사람이 죽을 일이 없어진 거예요. 기술 혁신입니다. 그런데 이 신념이 뒤집혔어요. 그것도 20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프레온 가스가 태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위험한 물건입니다. 프레온 가스는 금지됐습니다. 자, 이제 제 답을 내놓을 차례입니다. 우리에겐 더 이상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을 지속 가능하게 작동시킬 에너지 발전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바람이나 태양, 핵발전처럼 더욱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겁니다.


안 =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가운데 핵발전을 거론하셨는데요. 대기 오염을 유발하지 않고 발전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 많은 정부들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방사능이 유출되면 치명적입니다. 최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식품 오염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면서 탈핵 요구 등 저항감이 높습니다.

다이아몬드 = 후쿠시마 인근 주민들에게 건강 문제가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사고 역시 비극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렸습니다. 이 비극 속에서도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그곳에 핵발전소가 없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요? 화석연료를 태웠겠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고 끔찍한 대기 오염을 유발합니다. 중국의 오염된 바람이 한국까지 불어오잖아요. 저는 후쿠시마의 비극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생활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에 사는 사람들이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결과물로 고통받고 있어요. 베이징 도로에서 일하는 경찰관의 평균수명이 42세입니다. 거리에서 들이마시는 공기 때문에 폐 관련 질환으로 죽어가죠. 부정적인 면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안 = 핵발전소가 필요하도록 조장하는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말씀인데요. 에너지 소비가 감소되면 자연히 발전량은 줄어들게 되겠죠.

다이아몬드 =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쓰는 에너지의 반만 소비합니다. 미국인들이 유럽인들을 닮을 수 있다면 미국의 화석연료 소비는 반이 될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정치적 결단입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환경정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안 = 나쁘다고 정의되는 일들이 세상에 기여해 온 업적도 있습니다. 수많은 파괴를 동반한 산업화의 결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싼 가격으로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다른 결핍에서도 벗어났죠. 저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여는 있다고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값싼 소비를 통해 생활의 편리를 얻을 수 있었죠. 중국은 대기 오염을 줄이고자 철강 생산에 제동을 건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생산 감소로 미국 철강회사의 이윤이 늘고 값도 올랐어요. 중국 대기가 맑아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한국의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소비재 가격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서민의 부담이 커집니다. 1%와 99%가 대결하는 갈등 구조 속에서 함께 감내해야 하는 불편은 수치로만 평등합니다. 실제 고통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약자의 등을 먼저 휘게 만들죠.

다이아몬드 = 그래요, 우리 삶의 표준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어요. 당신과 나는 농사를 짓지 않아도 하루 세 끼를 먹습니다. 소수의 농부들이 키워주고 있죠. 미국에서는 인구의 2%인 농부들의 생산성이 매우 높아서 98%를 다 먹이고도 세계로 수출을 합니다. 현대인들은 항생물질 덕분에 병에 걸려도 죽지 않고 치료가 될 거예요. 내 이야기는 우리가 현대문명을 배척하거나 항생제를 버리고 다시 감기나 천연두로 죽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경제를 받아들이자는 겁니다.


안 = 지속 가능한 경제란 무엇을 말하나요.

다이아몬드 = 생산에 맞춰 소비하는 겁니다. 알래스카 연어 어장이 예가 되겠죠. 미국 자연산 연어는 거의 알래스카에서 잡힙니다. 연어잡이 어부들은 정부가 알려주는 어획량만큼만 잡습니다. 매년 야생 연어의 숫자는 비슷하게 되죠. 반대의 예는 지중해 참치입니다. 참다랑어라 불리는데 일본에서 최고의 횟감으로 큰 건 1억원이 넘습니다. 자, 이쯤되면 일본 사람들이 참치초밥을 무척 사랑해서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하지만 아닙니다. 유럽에서 지중해 참치 어장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자고 토론할 때 일본 사람들은 앞장서서 반대했습니다. 그 결과 앞으로 5년이나 10년 안에 일본은 참다랑어를 먹지 못할 겁니다. 세상 모든 어장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한다면, 우리는 스티븐 호킹 말처럼 앞으로 1000년은 넉넉한 해산물을 갖게 될 겁니다.


안 = 제가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생수를 마실 수 있는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산소탱크를 사서 오염 안된 공기를 흡입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구조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는 소득에 따라 삶의 질이 굉장히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시장의 논리라면 물건값은 큰 폭으로 상승할 거고요. 기존 소비자들의 불만은 정책 결정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욕망은 그대로인데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있을까요.

다이아몬드 = 맞아요. 부자는 참다랑어를 더 오래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5년 안에 끝납니다. 당신의 질문은 바꿔 말하면 ‘부자들이 더 많은 것을 누리지 않을까’인데요. 네,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부자들도, 가난한 이들도 즐기지 못할 것들이 늘어갑니다. 이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1%의 미국인들이 80%의 부를 가졌습니다. 나라들 간에도 비슷해요. 한국은 1인당 평균 소득이 대략 2만5000달러인데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는 500달러죠. 한국의 수입이 가난한 나라의 50배라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훌륭한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고 풍부한 해산물을 즐겨요. 수도꼭지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죠.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계화가 상황을 변화시켰습니다. 과거에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 화났다고 미국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민중이 분노한다고 해서 미국에 지장을 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2001년 9·11 이후 더욱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의 가슴에 분노가 일렁인다면 이는 반드시 부자 나라에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한 가지 예가 소말리아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고 정부마저 무너졌어요. 그들이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배들이 지나가는 겁니다. 유럽의 상선들, 미국의 상선들…. 그리고 그들은 해적이 되었습니다.


안 = 한국의 배도 여러 차례 납치를 당했습니다.

다이아몬드 = 소말리아 사람들이 한국에 문제를 일으켜 돈 챙기는 법을 발견한 거죠. 소말리아인의 공격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원조입니다. 그들 스스로 배고픔을 해결하도록 돕는 거죠. 한국 배를 잡아 인질을 삼는 대신 정직하게 일하며 먹고살도록 이끄는 겁니다. 부자가 자신이 살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좋은 이기심이 이것입니다. 이제 가진 것을 지키려면 나눠야 해요.

안 = 1% 지배층의 자기 보호 방법은 ‘함께 살자’는 99%의 요구를 들어주는 거네요. 그렇죠. 함께 살자는 생각이 권력의 카르마(업)를 멈출 수 있겠네요. 그 누구보다 긴 역사를 다루어 왔는데 역사적으로 문명이 몰락하는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지요. 절정에 오른 문명이 극적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왔습니다. 문명 자체가 고도의 발전인데 급격한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역설적입니다.

다이아몬드 =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역사 속에서 왜 어떤 사회는 몰락하고 어떤 사회는 그렇지 않았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을 이뤘던 마야 사람들이 대단한 천문학과 문자, 사원 등을 가졌을 때 왜 무너졌을까요. 마야 왕들이 뿌려놓은 인과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계속 굶주리고 헐벗어 가는데도 그들의 생활은 품격이 있었어요. 결국 지친 마야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타도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선거에 몰두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잠깐은 괜찮아도 사회를 몰락으로 이끄는 과업을 피할 수 없습니다. LA에서 제 평생에 두 번 시민 소요를 봤습니다. 하나는 1960년대 LA 다운타운 흑인 동네에서 일어난 왓스 폭동이고, 또 하나는 방화와 파괴가 넓게 자행됐던 1993년 로드니 킹 폭동입니다. 특히 많은 한국 상점들이 화염에 휩싸였죠. 가난한 사람들이 빈민 지역에서 뛰쳐 나왔습니다. 비벌리힐스의 부자들은 집이 불에 탈까봐 두려움에 떨었고요. 경찰은 뭘 했을까요. 길에다 노란 폴리스라인을 둘러치더군요. 그래도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진짜로 비벌리힐스를 불태우려 했다면 했을 겁니다. 그때는 분노가 충분히 타오르지 않았기에 소강되었습니다. 만약 100만명의 시민이 나선다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최상위 1%에 맞서 99%가 일어난다면 비벌리힐스는 사라집니다. 답은 지도자들의 역할에 있습니다. 자기들만을 위해 살겠다면, 권력을 잡은 1%만 행복하고 99%가 불행하다면, 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다시 말합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사회의 안녕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모두가 안녕해야 합니다. 그들만 안녕해서는 안됩니다.


안 = 선생께서는 문명사에 대한 저술을 발표하다 어느 시기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데 생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낳은 다음 더 민감하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는데 지구 살리기 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이아몬드 = 나는 쌍둥이를 두었어요. 1987년에 태어나서 26세입니다. 언젠가 지금 우리 둘이 나누는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2050년에는 세상이 어떻게 될까’, 그러는 거예요. 2000년은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내가 예순셋일 테니까요. 2050년은 상상 속 숫자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AD 3200년처럼요. 그런데 아들들이 태어나니까 2050년이 현실로 와 닿았습니다. 내 아들들이 예순셋이 되는 실제상황인 거죠. 당신에게 적용해 봅니다. 딸이 여섯 살이잖아요. 2007년에 태어났겠네요. 2050년이면 마흔셋이고 우리가 다 파괴하지 않으면 살아있을 거예요. 그래도 2050년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아이티처럼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하수시설도 없을지 몰라요. 아니면 소말리아 사람들이 자동소총으로 배를 해적질하는 대신 핵무기를 들고 한국이나 미국에다 핵폭탄을 떨어뜨릴지도 모르고요. 큰 기업들의 지도자들이 요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습니다. 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그래서 물어봤어요. 쉐브론 최고경영자한테 언제부터 신경 쓰게 된 거냐고. 딸 이야기를 합디다. 집에 가니 열세 살 딸이 묻더랍니다. “엄마는 환경을 위해 오늘 무슨 일을 하셨어요?” “환경? 난 그 말만 나와도 괴롭다. 환경이 뭐가 중요한데. 시간낭비 말고 공부해라.” 딸이 퍼붓더랍니다. “엄마는 한심해. 엄마가 세상을 망치고 있어. 엄마랑 말 안 해.” 그래서 바뀌었대요. 많은 경제계 인사들이 같은 말을 합니다. 자식의 미래를 지키려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걸 가슴으로 느낀 거죠. 당신의 한국 지도자들, 신문을 읽을 경제를 책임지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식이 있다면 그 아이들이 살 50년 뒤의 세상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당신들이 지금 안녕한 생활을 하든, 지중해산 참다랑어를 음미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안녕할 것인지 그걸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 자료


•알라딘, yes24 저자소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312345125&code=210100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프롤로그_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아서


p20 전통 사회는 대다수의 문화적인 풍습에서 현대 산업사회보다 훨씬 다채롭다 이런 다양성이란 스펙트럼에서, 현대 사회의 많은 문화적 규범이 전통적 규범에서 훌쩍 벗어나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띤다.


p21 전통 사회는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자연 상태의 실험장이라 할 수 있다. 전통 사회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고, 그 방법들은  Weird한 현대 사회가 채택한 해결책들과 사뭇 다르다. 그들의 해결책―예컨대 전통 사회가 아이들을 키우고 노인들을 대하는 방법, 건강을 유지하고 대화를 나누며 여가 시간을 활용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이 제1세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보다 낫다고 내가 생각하듯이, 독자들도 그들의 해결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그런 전통적인 관습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상당한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우리 현대인은 부적응자이다. 우리 몸과 관습이 진화를 겪으면서 적응한 환경과 다른 환경에 지금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p25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가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가장 평등하다는 스칸디나비아의 민주국가들에서도 시민들은 정치・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어떤 국가에나 명령을 내리고 법을 만드는 소수의 정치 지도자가 있고, 다수의 대중은 그 명령과 법을 따라야 한다. 또 국민들은 저마다 경제적 역할이 다르고, 역할에 따라 임금도 다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불평등을 최소화하려는 이상적인 노력들―예컨대 카를 마르크스의 공상주의 이상,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은 한결같이 실패하고 말았다.


p26 우리에게 익숙한 국가 사회와 전통 사회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p26 모든 인간 사회가 저마다 독특하지만, 문화적인 패턴이 있어 그런대로 일반화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적어도 네 가지 부분―인구 규모, 생존 방법, 정치의 집중화, 사회의 계층화―에서 일정한 상관관계가 찾아진다. 인구 규모와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식량을 비슷한 생필품의 획득이 증대되는 경향을 띤다.


p27 이 책에서 엘만 서비스의 분류법을 받아들여 인구 규모, 정치의 집중화, 사회의 계층화를 기준으로 인간 사회를 무리, 부족, 군장사회, 국가라는 네 유형을 분류할 것이다.


p31 군장사회는 무리사회와 부족 사회에는 없던 두 가지 새로운 문제에 부딪친다.


p51 “전통사회는 인간의 삶을 체계화하기 위해서 수만 년 동안 지속된 자연적인 실험들이 집약된 공간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실험을 시도한 사회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전통적인 삶의 특징들에 대해 배울 때 우리는 어떤 특징들을 떨쳐낸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우리 사회를 더 고맙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특징들을 찾아내면, 그 특징들을 상실한 것을 아쉬워하며,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우리에게 맞게 개조하는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사회의 사람들이 삶을 꾸려간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하며 내가 느낀 감흥을 독자 여러분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1부 친구와 적


1장_공간과 경계, 이방인과 장사꾼


p71 계절적으로 어떤 자원이 넘치도록 풍부한 환경도 비배타성을 유도한다. 자신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식량을 생산할 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이웃들의 접근을 차단해서 그들을 화나게 해서 좋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p72 배타적이든 비배타적이든 땅과 자원을 사용하라는 권리는 소유권을 뜻한다. !쿵족의 경우, 한 무리의 영역은 누구의 소유일까? 무리의 카우시가 주인이다. 카우시는 핵심 장로 집단, 혹은 가장 오래전부터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의 후손 중 연장자를 뜻한다. 그러나 무리의 구성은 유동적이고 매일 변한다. 구성원들이 다른 영역에 있는 친척들을 자주 찾아가고, 계절적인 요인에 따라 물웅덩이나 식량을 찾아 다른 영역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p76 '이방인‘은 멀리 떨어져서 자신이 속한 무리와 거의 접촉이 없는 무리에 속하는 미지의 사람을 가리킨다. 소규모 사회에 속한 사람이 이방인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혹은 전혀 없다. 전혀 모르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낯선 땅으로 여행하는 건 자살행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영역에서 이방인을 만나면 당신은 그 사람을 위험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방인은 당신 무리를 기습하거나 죽이기 위해 정찰하는 것이고, 아니면 결혼할 만한 여자를 납치하거나 당신 영역의 자원을 사냥하고 훔치기 위해서 몰래 침범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p79 우정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좋아하고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이지, 소속된 잡단이 정치적으로 제휴 관계에 있느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식의 우정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나는 뉴기니에서 수년을 작업한 후에야 한 사건을 통해 뉴기니의 전통적인 소규모 사회에서는 우정을 다른 식으로 해석한다는 걸 깨달았다.


p81 소규모 사회에서도 개인적인 관계를 받아들이는 적극성이 사람마다 다르다. 소규모 사회가 점점 커지거나 비전통적인 외부 세계의 영향에 노출되면, 우정에 대한 생각을 비롯해 전통적인 관점도 바뀐다. 대규모 사회와 소규모 사회에서 생각하는 우정은 대체로 다른 듯하다. 서구의 생활방식과 뉴기니의 전통적인 생활방식 모두에 능통한 한 뉴기니 친구가 나에게 설명했듯이, “뉴기니 사람들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누군가를 방문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누군가를 만나서 일주일 동안 함께 지냈다고 해서 그 사람과 어떤 관계나 우정을 맺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에 반해서, 서구화된 대규모 사회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고 빈번하게 이동하기 때문에, 지리적인 우연으로 함께 보낸 어린시절, 혈연과 결혼보다 우정이란 개인적인 인연에 근거해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커진다.


p81 군장사회나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수천에서 수백만까지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계급 사회에서는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낯선 사람을 만나도 위험하지 않고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p82 소규모 전통 사회에서 세상을 자신이 속한 집단과 우호적인 집단은 친구로, 적대적인 이웃은 적으로, 멀리 떨어진 집단은 이방인으로 구분했다는 사실은 세상을 무척 협소하게 보았다는 뜻이다.


p96 전통 사회 사람들이 우리 시장경제를 보고 놀랄 만한 두 번째 특징이라면, 우리가 뭔가를 사는 과정이 순전히 교환으로만 여겨진다는 점이다. 구매자가 넘겨주는 무엇, 즉 돈은 상호적인 선물이 아니라 물건값이다. 거의 언제나 구매자가 물건을 구입하는 즉시 돈을 지불하며, 나중에 지불하거나 할부로 지불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가격에 대해 합의를 본다.


p97 시장경제에서 거래는 다양한 형태를 띠지만, 그 다양한 형태의 거래에서 구매자와 판매자는 개인적인 관계를 거의 혹은 전혀 맺지 않는다. 그들은 전에도 서로 본 적이 없고, 다시 거래를 맺을 가능성도 없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반복해서 거래하는 경우에도 거래 자체가 중요하지 관계는 이차적인 관심사이다. 시장경제의 이런 기본적인 사실이 독자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지겠지만, 소규모 전통 사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전통 사회에서는 당사자들이 전문적인 판매자도 아니고 구매자도 아니기 때문이며, 양 당사자의 관계는 꾸준히 지속되어, 교환을 통해 더욱 돈독해지는 관계에 비하면 교환되는 물건은 하찮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p98 물질적으로 ‘불필요한’ 사치품이라고 무작정 쓸모없는 것이라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 사치품이 높여주는 품격과 지위는 물질적인 이득이 보장된 사업 기회나, 젊고 예쁜 아내나 남편을 맞는 기횔ㄹ 안겨줄 수 있다. 한편 ‘유용성’에 관련된 회색지대는 초기의 무역에서도 존재했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된다.


p104 미국의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가 말했듯이, “경제사회의 논의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어가는 불합리하고 그릇된 오해 중에서 최악을 꼽자면……생물학적이고 육체적인 생존이란 관점에서 해석되는 효용성과 유용성이 인간의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BMW 승용차는 분명히 사치품이고 신분의 상징이지만, 식료품점에 가기 위해서 사용될 수도 있다. BMW 승용차가 투영하는 이미지는 그 소유자가 사업상 거래를 체결해서 돈을 벌고 짝을 유혹하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 시아시속의 아름답게 조각된 목제 그릇도 마찬가지이다. 그 그릇은 잔치에 채소를 담는 데도 사용되지만, 비티아즈 해협 지역에서 부인을 사는 데 반드시 필요한 신분의 상징이기도 하다. 뉴기니에서 돼지는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귀중한 신분의 상징이다. 그 때문에 토머스 하딩도 이렇게 말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돼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몹쓸 짓이 돼지를 먹는 것이다.”


P109 원재료의 불균형한 분포로 인해, 이웃하지만 다른 환경을 차지한 집단들이 자신에게는 많은 반면에 상대에게는 한정된 자원을 공급하는 일반적인 패턴이 조성된다. 해안지역과 내륙 간의 거래가 대표적인 예이다.


P113~114 관례적인 독점을 유지하는 목적, 그리고 쉽게 자급할 수 없는 물건만을 거래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는 무의미하게 보이는 짓, 즉 화살과 화살을 주고받는 목적이 무엇일까? 물론 전통적인 거래에는 경제적인 기능만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기능까지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품목을 얻기 위해서라도 거래하지만, 사회정치적인 목표를 진작하기 위해서도 거래한다. 이런 거래의 최우선의 목적은 필요한 경우에 요청할 수 있는 동맹이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2부 평화와 전쟁


2장_사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보상


p120 평화 협상에는 ‘보상’이란 것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p129 전통적인 보상 협상의 목적은 분쟁을 신속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양쪽의 감정까지 화해시켜 과거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다. 단순하면서 자연스러운 방법이라 여겨지며, 우리 사법체제의 목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 있고 매력적으로도 여겨진다.


p131 뉴기니의 전통적인 보상 협상은 과거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분쟁 당사자들이 가능성은 있었지만 서로에게 해코지하지 않았던 ‘무관계’에 있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p131~132 뉴기니 사람들에게, 손상된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사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나 최대한 분노의 기운을 씻어내고 과거처럼 지낼 수 있게 된다. 관계의 회복을 탄탄히 보장해주는 보상금이 이제 파푸아뉴기니에서 영어로 ‘compensation'으로 불리지만, 이 단어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엄격히 말하면, 보상금은 과거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상징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A가 B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손실에 따른 B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도 보상의 일부이다.


p133~134 서구의 국가 사회들에 비해서 전통적인 뉴기니사회들에서는 사회적 관계망이 중요하고 지속적이기 때문에 분쟁의 영향이 직접적인 당사자들을 넘어, 서구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정도까지 확산되기 일쑤이다. 한 씨족 사람의 채마밭이 다른 씨족 사람의 돼지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두 씨족 간의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서구 사람들에게 어처구니없게 여겨지겠지만, 뉴기니 고원지대 사람들에게 그런 결과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뉴기니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한 중요한 관계들을 평생 유지하는 편이다. 그런 관계를 바탕으로 그들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지만, 많은 사람을 도와야 하는 의무까지 짊어진다.


p134~135 전통 사회에서는 사회적 관계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강조하는 반면에, 현대 국가 사회, 특히 미국에서는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강조하는 편이다. 우리는 개인이 성공을 추구해서 성공하고,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이득을 취하는 걸 허용할 뿐 아니라 실제로 권장하기도 한다. 또한 대다수의 상거래에서 우리는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삼기 때문에, 우리가 상대에게 안겨주는 상실감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어린아이들의 게임까지 승패를 가르는 경쟁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전통적인 뉴기니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현상이다. 그곳에서 어린 아이들의 놀이는 승패보다 협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p139 반목이 지속되면 한 가족이 다른 무리로 옮겨가거나 아예 새로운 무리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에서, 수렵채집인처럼 이동이 잦은 유목 사회에서 분쟁이 벌어지면 분쟁 당사자들이 집단을 떠나며 집단이 분열된다는 일반화된 현상이 설명된다. 정착 생활을 하며 채마밭에 많은 노력을 투자한 농경인의 경우에는 이런 선택을 하기가 힘들다. 물론 일자리와 주택에 얽매여 하는 서구 사회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어렵다.


p144 누에르족 사회에서 분쟁을 해결하려는 목적은 잘잘못을 가리는 게 아니라, 모두가 서로 알고 지내는 사회에서, 두 구성원 사이에 악감정이 지속되어 사회 전채의 안정이 위협받을 경우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누에르족 부족장들의 이런 한계들은 인구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폴리네시아의 큰 섬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처럼 인구가 많은 군장사회에서 군장은 정치적이고 사법적인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무력의 사용에서 독점권을 주장하며, 국가 정부의 초기 형태에 접근하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준다.


p145 분쟁 해결에서 국가와 비국가 사회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방법을 택한다. 하나는 분쟁 당사자들이 상호합의에 도달하는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다툼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법이다. 비국가 사회에서는 상호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보상 협상이 실패하면 폭력으로 치닫기 일쑤이다. 비국가 사회에는 불만을 가진 당사자가 폭력적인 수단으로 목적을 이루려는 행위를 억제할 만한 중앙 국가기구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기 때문에 폭력이 단계적으로 확대되어 상습적으로 비국가 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국가 정부의 주된 관심사는 시민들이 서로 폭력을 행사하는 걸 차단함으로써 공공의 안정을 보장하고 개선하는 것이다. 내적인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의 중앙 정치권력이 보복을 행사할 권리를 거의 독점한다. 따라서 국가와 경찰만이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 시민에게 폭력적인 보복 조치를 행사할 수 있다.


p145 시민은 두 가지 이유에서 폭력을 사사로이 행사하는 걸 단념한다. 하나는 국가의 막강한 힘에 대한 두려움이며, 다른 하나는 사사로운 폭력이 불필요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국가가 제정한 사법체제가 적어도 이론적으로 공정하다고 인식되고, 모든 시민의 신체와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며, 타인의 안전을 침범한 사람을 범죄자로 분류하여 처벌하기 때문이다.


p148 국가 사법체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개인적인 정의 행사를 강제로 대신하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국가 사법체제의 다른 모든 목적들은 이 목적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특히 국가는 소규모 비국가 사회의 사법체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p154 로버트 야지 수석 재판관의 말을 빌리면, “서구식 재판은 어떤 일이 일어났고 누가 그 행위를 했느냐를 따지지만, 나바호의 화해 과정은 그 사건의 결과를 따진다. 누가 상처를 받았느냐? 피해자는 그 사건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p161 


p164 범죄는 개인에게만 행해지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게도 행해지는 것이다.


p165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인간에 대한 투자와 우선순위가 뒤바뀌고, 나쁜 경제정책이라는 이유로 교정 시스템에 막대하게 쏟아붓는 예산을 반대한다. 오히려 사소한 범죄로 범죄자를 오랫동안 가두어두는 데 돈을 덜 쓰고, 범죄자들의 갱생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서 그들을 신속하게 생산적인 일자리에 복귀시키고, 선량한 캘리포니아 시민들을 교육시켜 고급 일자리를 채울 수 있게 한다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캘리포니아의 경제 침체를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미국의 가혹한 처벌이 범죄를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3장_작은 전쟁에 대하여


p181 이른바 부족 전쟁은 다른 부족끼리의 전쟁보다, 같은 부족 내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고 일반적이다. 문화적으로 유사하거나 동일하더라도 적은 때때로 인간 이하로 악마화된다. 남자는 어린시절부터 싸우는 법과 방어하는 법을 훈련받는다. 동맹들에게 협력을 얻는 게 중요하지만 동맹관계는 수시로 변한다. 폭력의 악순환에는 복수가 주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칼 하이더는 반복되는 폭력의 동기를 최근에 죽은 동료들의 혼을 달래려는 욕구라고 설명했다).


4장_많은 전쟁들


p204~205 현대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통적인 전술은 속임수 잔치이다. 아노마미족과 뉴기니에서 확인된 전술로, 이웃들을 잔치에 초대하고는 그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먹고 마시는 데 열중하면 급작스레 그들을 공격해서 죽이는 전술이다. 현대인들은 아노마미족이 과거에도 그런 속임수가 있었는데 어쩌자고 다시 그런 술책에 말려드는지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잔치가 명예롭고 우호적으로 끝났고, 초대를 받아들여야 동맹 관계를 구축하고 식량을 공유하는 데 크게 유리했으며, 초대자들이 자신들의 의도를 호의적으로 보이려고 무진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p206 우애를 다지려고 마련한 모임이 예기치 않게 폭력으로 치닫는 경우가, 이웃들이 간혹 드물게 만나는 전통 사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불만을 해소하지 못해 복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고, 무력을 독점할 수 있는 지도자나 ‘통치자’가 없어 성급한 사람들을 억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적인 국가 사회에서는 개인의 충동적인 다툼이 조직화된 군대의 전쟁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969년 6월과 7월 사이에 있었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의 이른바 ‘축구 전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p209 국가의 전쟁은 간간이 일어나는 예외적인 현상인 반면에 부족전쟁은 사실상 끊임없이 계속된다. 20세기에 독일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또 1939년부터 1945년까지 10년 동안만 전쟁을 치렀다. 나머지 90년 동안에는 전쟁으로 인한 사망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다니족은 전통적으로 매년 매달 전쟁 중이었다.


p211 국가보다 전통 사회에게 동맹은 훨씬 더 중요하다. 현대 국가들은 군사 기술 수준에서 큰 편차를 보인다. 따라서 작은 국가도 더 많은 동맹국보다 우월한 기술과 지도력을 바탕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전쟁은 비슷한 기술과 비슷한 지도력을 지닌 집단들 간의 전쟁이다. 따라서 동맹을 동원하는 데 수적으로 우세한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p212 전통적인 전쟁과 국가 전쟁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살인의 심리학에서 분명한 차이 하나가 드러난다. 현대전에서도 군인은 적을 마주보는 경우가 있지만, 그 적은 거의 언제는 이름없는 사람, 전에 만난 적도 없었고 개인적인 원한도 없는 사람이다. 반면에 소규모 전통 사회에선 모두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만이 아니라, 적으로 상대하는 대다수의 전사들까지 얼굴도 알고 이름도 아는 사이이다. 동맹 관계가 변하고, 결혼을 통해서 이웃 부족까지 개별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p213 또 하나의 심리적 차이는 자기희생이다. 현대전에는 자기희생이 높게 평가받지만, 전통적인 전쟁에서 자기희생이란 단어는 없다. 현대 국가에서 군인들은 훤히 트인 벌판을 지나 철조망까지 진격하라는 명령, 요컨대 자살행위와 다름없는 작전을 수행하라는 명령을 종종 받는다. 조국을 위해서, 또 전우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고리가 뽑힌 수류탄에 몸을 던지며 자신을 희생하는 군인들도 있다.


p215~216 전통적인 전쟁과 국가 전쟁의 가장 커다란 두 가지 차이점 중 하나는 전면적과 국지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인들은 전면전이라 하면, 미국 남북전쟁 기간 동안 윌리엄 티컴시 셔먼 북부군 장군이 도입한 새로운 개념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와 대규모 군장사회는 주로 제한적인 목적에서 전쟁을 행한다. 다시 말하면, 적의 군사력과 전투력을 섬멸하지만, 적의 땅과 자원 및 민간인까지 파괴하지는 않는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것들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셔먼 장국은 내륙의 본거지 애틀란타에서 시작해서 남부연합의 심장부를 관통하고, 다시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지나 북쪽으로 대서양까지 행군할 때 전면전이라는 전략을 구사해서 유명해졌다. 요컨대 군사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모조리 파괴했다. 셔먼의 이런 행동은 계산된 전쟁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쟁 철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쟁은 잔혹한 것이다. 우아한 전쟁이란 없다. 우리는 악의적인 군대하고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악의적인 사람들과도 싸워야 한다. 따라서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전쟁의 잔혹함을 처절하게 느끼게 해줘야 한다. (…) 우리가 남부 사람들의 심장을 바꿔놓을 수는 없지만 소름끼치는 전쟁을 시도해서…… 전쟁에 넌더리를 내도록 만들면 몇 세대가 지날 때까지 다시는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셔먼은 남부 민간인들까지 죽이지는 않았다. 투항하거나 체포된 남부 군인들을 죽이지도 않았다.


p217~218 메소포타미아 국가들, 북서태평양 연안의 부족들과 칼루사족보다 단순한 사회들에게 패배한 적은 살려둘 가치가 전혀 없었다. 다니족, 포레족, 알래스카 북서부의 이누이트족, 안다만 섬사람들 등 대다수의 부족에게 전쟁의 목적은 적의 땅을 빼앗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적을 절멸시키는 것이었다.

    1966년 6월 4일 다니족이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죽인 대학살이 대표적인 예이다. 딩카족을 침략한 누에르족처럼 적을 선별적으로 살해하는 전통 사회도 있었다. 누에르족은 딩카족 남자들을 거침없이 죽였고, 아기와 늙은 여자도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그러나 결혼적령기에 이른 여자들은 고향으로 끌고 가 누에르족 남자와 강제로 결혼시켰고, 젖을 뗀 어린아이들도 고향으로 데려가 누에르족 전사로 키웠다. 아노마미족도 비슷한 이유에서, 즉 짝짓기의 상대로 이용하려고 적의 여자들을 죽이지 않았다.


p220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대중이 지도자와 관료들에게 지배받는 게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합리적인 결정의 결과로 정부가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p221 인류학자 스털링 로빈스는 뉴기니 고원지대의 아위야나족 남자들에게 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삶이 더 나아졌다. 어깨너머로 경계하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고, 아침에 일어나 화살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없이 집에서 나와 소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적들과 싸울 때 두려웠다고 한목소리로 인정했다. 내가 정부의 이점에 대해 질문을 하자 그들은 나를 정신장애자인 게 아니냐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적과 싸우는 동안 동료들로부터 고립되어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는 악몽을 한두 번 꾼 게 아니라고도 인정했다.”


p223 고고학적 증거와, 유럽인이 도래하기 전의 전쟁에 대한 구전적 설명을 고려하면, 사악한 유럽인이 찾아와서 전통 사회에 충격을 주기 전까지 전통 사회 사람들은 원래 평화적이었다는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기 힘들다. 유럽인과의 접촉과 여러 형태의 국가 정부가 장기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거나 크게 줄인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어떤 국가 정부도 영토의 통치를 방해하는 전쟁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지학적으로 관찰된 사례들을 연구하면, 유럽인과 접촉한 초기에는 유럽인들이 가져온 무기와 질병, 거래의 기회 및 식량 공급의 증감 등을 이유로 단기적으로 전쟁의 중감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p224~224 유럽과의 접촉으로 전쟁이 단기적으로 증가한 사례는 뉴질랜드에 정착한 폴리네시아인, 마오리족의 사회에서 발견된다. 1642년 뉴질랜드에 처음 들어간 유럽 탐험가들과, 1790년대에 처음 뉴질랜드에 정착한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마오리족은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했지만 유럽인들을 죽이기도 했다. 약 1818년부터 1835년까지, 유럽인들을 통해 도래한 두 물건 때문에 마오리족 전쟁의 사망률이 일시적으로 폭증했다. 뉴질랜드 역사에서 머스켓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사건이다. 몰론 하나의 물건은 머스켓총이었다. 마오리족은 이 총을 사용하게 되면서 몽둥이만을 사용하던 과거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적을 죽일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바로 감자였다. 감자가 어떻게 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감자가 도래하기 전까지, 마오리족이 다른 마오리족을 공격하기 위해서 구성하는 파견대의 규모와 기간은 전사들을 먹일 식량의 양 때문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오리족이 원래 주식은 고구마였다. 원래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였지만 유럽인에 의해 도래한 감자는 고구마보다 뉴질랜드 토양에서 더 생산적이어서 먹고 남을 정도였다. 따라서 고구마에 의존했던 과거의 마오리족보다 더 오랫동안, 또 규모가 더 큰 습격 부대를 파견할 수 있었다. 감자가 도래한 후, 다른 마오리족을 노예로 만들거나 죽이기 위해서 카누에 몸을 실은 마오리족 파견대는 과거의 모든 기록을 깨뜨렸고, 심지어 1,600킬로미터까지 항해하기도 했다.


p228 나는 원주민의 학대에 분노한 학자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전쟁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이유로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이 아니다. 정치적인 목적이 갸륵하다는 이유로 어떤 현상의 존재를 부인하는 전략을 쓴다면 그 전략이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원주민을 학대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원주민에게 호전적이란 거짓된 딱지가 씌워진 때문이 아니라, 학대 자체가 부당한 짓이기 때문이다. 의견이 분분해서 지금도 관찰하며 연구하는 많은 현상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전쟁에 대한 진실이 언젠가는 결국 밝혀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요컨대 전통적인 전쟁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면, 학자들이 갸륵한 정치적인 이유로 전통적인 전쟁을 부인해왔더라도 그 갸륵한 정치적 목적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원주민들의 권리는 진실에 근거하지 않아 언제든지 논박받을 수 있는 주장으로 보호할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이유에서 보장돼야 마땅하다.


p230 리처드 랭엄의 주장에 따르면 전쟁을 행하는 사회적 동물과 그렇지 않은 사회적 동물 사이에는 두 가지 뚜렷한 차이가 있다. 하나는 치열한 자원 경쟁이며, 다른 하나는 규모가 큰 무리가 수적으로 우세해서 별다른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안전하게 공격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무리나 혼자인 동물을 만날 때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p231 대부분의 인간 사회가 평화적이지 않지만 일부 사회가 평화적으로 살아가는 데는 외적인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현대 국가 사회가 근대의 많은 전쟁에 연루됐지만 소수의 국가 사회가 어떤 전쟁에도 휘말리지 않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예컨대 중앙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는 근래에 전쟁을 전혀 치르지 않았고, 1949년에는 군대까지 없애 버렸다. 인구 분포와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민주적인 전통이 확립된 덕분이었고, 이웃한 국가(니카라고와 파나마)도 위협적이지 않은 데다 주변에 파나마 운하를 제외하고는 정복할 만한 대단한 가치를 지닌 표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코스타리카가 파나마 운하를 공격하려고 군대를 양성하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면 미국이 넋 놓고 있겠는가.


p232~233 인구밀도가 무척 낮고 환경이 척박해서 행동반경이 넓어도 목숨을 걸고 지키고 획득할 만한 자원도 거의 없는 사회, 또 다른 무리사회로부터 상대적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유목 수렵채집인들의 소규모 무리사회들에선 정쟁이 보고된 사례는 없었다. 전쟁의 역사가 없는 농경인으로는 페루의 마치겡가족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회가 탐내지 않는 숲의 가장자리에 살았다. 전쟁을 치르면서라도 빼앗거나 지켜야 할 만큼 생산성이 좋은 땅이 없는 곳이다. 지금도 인구밀도가 무척 낮은데, 고무 생산이 급격히 증가한 기간에 인구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어떤 사회는 본래부터, 즉 유전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반면에 어떤 사회는 선천적으로 호전적이라는 주장은 성립되는 않는다. 어떤 사회나 전쟁을 도발해서 이익이냐 아니냐에 따라, 또 다른 쪽에서 도발한 전쟁에 맞서 싸워야 할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전쟁이란 수단을 동원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회가 전쟁을 치렀지만 소수의 사회는 전쟁을 겪지 않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선천적으로 얌전하다고 알려진 종족들도 같은 무리 내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살인을 저지른다. 이른바 전쟁이라 정의되는 다른 무리를 향한 폭력을 조직적으로 감행할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을 뿐이다. 대체로 얌전하다고 알려진 세망족이 1950년대 영국군에 징집되어 말레이 반도에서 공산주의 반란자들을 색출해서 죽이는 임무를 맡자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죽였다고 하지 않는가. 따라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냐 협력적이냐를 따지는 건 헛수고일 뿐이다. 어떤 인간 사회에나 폭력과 협조는 동시에 존재하며, 환경에 따라 하나의 특성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하다.


p234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그렇듯이, 전쟁에서도 전통 사회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전쟁을 도발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 그럼 그들은 대체로 무엇을 전쟁의 동기라고 주장할까?


p234 복수가 끝없이 계속되는 전쟁의 주된 동기라면, 전쟁이 처음 시작되는 동기는 무엇일까? 뉴기니 고원지대에서 흔히 듣는 대답은 ‘여자’와 ‘돼지’이다. 뉴기니 남자들에게 여자는 불륜을 범하거나 불륜의 피해자로써, 남치와 강간, 신부값 등으로 분쟁을 일으키는 갈등의 씨앗이다. 야노마미족을 비롯해 많은 다른 종족에서 여자가 전쟁의 주된 원인으로 밝혀진 사례가 적지 않다.


p235 뉴기니에서 돼지가 여자에 버금가는 전쟁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뉴기니 사람들에게는 돼지가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돼지는 부와 권위를 뜻하는 중요한 재산이었고, 신부값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어서 여자로 전환가능한 것이었다. 또 여자처럼 돼지도 싸돌아다니고 자신의 ‘주인’을 저버리는 경향을 띠며, 쉽게 납치와 도둑질을 당해서 끝없는 분쟁을 유발하는 도화선이었다.


p236 전통 사회 사람들이 전쟁의 동기로 자주 언급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마법이다. 뉴기니를 비롯해 많은 소규모 사회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우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하는 질병이나 죽음)이 닥치면 적의 마법사가 꾸민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따라서 그 마법사를 찾아내서 죽여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이웃이 본래 주정하고 악의적이며 인간 이하여서 근래에 특별한 악행을 저질렀던 않던 간에 공격받아 마땅하다는 일반화된 생각이다.


p240 중요한 것은 인구밀도 자체가 아니라, 자원밀도에 대비한 인구밀도이다. 이런 상대적 인구밀도가 높으면 현실적으로나 잠재적으로 자원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유사한 자원을 지닌 유사한 생활 환경에서 유사한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전통 사회들을 비교하면, 인구밀도에 따라 전쟁의 빈도가 증가한다.


p240~241 전통적인 전쟁을 설명하는 데 제시되는 또 다른 궁극적인 요인은 사회적 요인이다. 전통 사회들은 골칫거리인 이웃들을 멀리 떼어 놓기 위해서, 그런 이웃을 아예 없애 버리기 위해서, 혹은 호전적이라 명성을 얻음으로써 무력하다고 알려진 무리를 서슴없이 공격하는 이웃들의 공격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인다. 이런 사회적 해석은 땅과 자원을 근거로 한 앞의 이론과 모순되지 않는다. 이웃을 멀리 떼어 놓는 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땅과 자원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목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과 거리를 두려는 욕망은 자원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필요한 행동보다 훨씬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게 만달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요인은 자원적 요인과 별개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


p241~242 또 다른 궁극적인 요인은 개인적인 이득이다. 호전적인 행동은 사회적 집단에게도 이익지지만, 개인에게도 크게 유리하다. 호전적인 사람이나 전쟁 지도자는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며, 전쟁에서 공훈을 세워 명성을 얻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공훈을 세우면 더 많은 부인을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자식을 부양할 수 있다.


p243~244 국경을 맞댄 국가가 많을수록 장기적으로 전쟁에 개입한 횟수가 많았다. 다시 말하면, 전쟁의 수는 인접한 국가의 수에 거의 비례했다. 이웃한 국가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느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p244 리처드슨은 무역 관계가 전쟁의 확률에 미치는 영향까지 통계적으로 조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쟁은 이웃한 국가들 사이에 빈번하고, 이웃한 국가들은 서로 무역 상대국이 될 가능성이 확연히 높기 때문에, 무역관계와 전쟁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적어도 추론적으로는 무역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그렇지 않은 국가들볻 더 자주 전쟁을 벌이는 듯하다.


p246·247 무리사회와 부족사회에서 종족 간의 결혼이 야기하는 전쟁의 이유는, 무역협정이 틀어지며 야기되는 전쟁의 이유와 유사하다. 어떤 부족에서 여아가 태어나면 곧바로 다른 부족의 연상인 남아의 신부로 보내기로 약속하고 신부값을 받지만, 사춘기에 이른 후에도 넘겨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신부값이나 지참금은 일종의 빚이어서 분납으로 처음에는 착실하게 지불되다가 제대로 분납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도 ‘상품’에 대한 질에 대한 분쟁(예컨대 간음, 배우자의 유기, 요리와 밭일과 땔감 준비를 못하거나 거부하는 행위)은 신부값의 반환을 요구하는 빌미가 되지만, 신부값으로 받은 물건은 이미 필아버렸거나 (돼지인 경우) 먹어버렸기 때문에 그 요구는 거부된다.


p248 현대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복수의 갈망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 감정에서 복수심은 우리가 끊임없이 입에 올리는 사랑과 분노, 슬픔과 두려움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 현대 국가 사회는 우리에게 사랑과 분노, 슬픔과 두려움이란 감정을 마음껏 표현해도 좋다고 허락하고 권장까지 하지만 복수심의 표현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복수심이 원시적이고 부끄러운 감정이므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감정이라고 배우며 자란다. 우리가 개인적인 복수를 획책하려는 마음을 꺾어놓으려고 우리 사회는 그런 믿음을 어린 시절부터 심어준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복수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따라서 징벌의 권한을 국가에게 맡기지 않으면, 같은 나라의 시민으로서 평화롭게 공존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대부분의 비국가 사회처럼 끝없는 전쟁에 시달리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 국가가 죗값을 치르게 하는 문명 사회에서도 개인적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고통은 여전하다. 예컨대 강도들에게 누이를 잃은 내 친구 하나는 국가가 강도들을 체포해서 법정에 세우고 감옥까지 보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분한 마음을 씻지 못하고 있다.


p249 국가 사회와 종교와 도덕률은 우리에게 징벌권을 포기하라고 설득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복수는 나쁜 것이란 생각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그러나 복수심에 사로잡힌 행동은 억제하더라도 복수심이란 감정을 인정하는 분위기는 허용되고 권장돼야 한다.


p253 복수심은 바람직한 감정이 아니지만 묵살해버릴 감정도 아니다. 복수심은 이해되고 인정받고, 실제의 복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소돼야 한다.


3부 어린아이와 노인


5장_어떻게 키우는가


p261~262 브라질의 피라항족도 산모가 거의 언제나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아기를 낳는 사회이다. 언어학자 대니얼 에버렛은 언어학자 스티브 셀던의 경험을 인용해서 이런 문화적 이상을 향한 피라항족의 신념을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피라항족이 인간은 강해야 하고 혼자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젊은 여자를 도와주지 않고 혼자 죽게 내버려두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p264~265 !쿵족은 산모가 분만과 동시에 영아살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학자 낸시 하월은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혼자 분만해야 하는 풍습 덕분에 산모에게 영아살해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분만과 동시에, 대체로 아기의 이름을 짓기 전, 아기를 마을로 데려가기 전에 산모는 아기에게 선천적 장애가 있는지 면밀히 살핀다. 만약 장애가 발견되면 아기를 죽이는 게 산모의 의무이다. !쿵족은 분만이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유아살해는 살인이 아니다. 분만 후에 아기에게 이름을 주고, 아기가 마을로 돌아와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부터 준/와(!쿵족 사람)로서 삶이 시작된다. 그 전까지, 영아살해는 산모의 특권이고 책임이다. 문화적으로 규정된 선천적 장애를 지닌 아기와, 쌍둥이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p265 영아살해가 전통 사회이 보편적인 현상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선의의 무시(아기를 적극적으로 죽이지 않고, 수유를 아예 중단하거나 젖을 거의 먹이지 않음으로써 혹은 거의 씻기지 않음으로써 아기가 죽게 방치한다는 뜻의 완곡한 표현)’로 죽는 아기보다 적은 편이다. 예컨대 앨런 홀름버그는 볼리비아의 시리오노족과 함께 살면서, 그곳에 유아살해와 낙태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p266 유목생활을 하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모유를 떼는 연령과 분만 간격은 평균 2년 6개월인 반면에 정주생활을 하는 농경 사회와, 농경인과 거래하는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그 평균이 2년으로 줄어든다. 농경인에게는 모유를 대신할 수 있는 가축의 젖과 부드러운 곡물죽이 있기 때문이다.

    

p267 젖을 떼는 연령이 이처럼 늦는다는 것은,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어머니가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에너지를 한껏 쏟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서구의 관찰자들은 !쿵족 아이가 어머니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어머니의 보살핌을 수년 동안 독점하여 어린시절 정서적인 안정을 꾀할 수 있고, 그런 안정감은 !쿵족 성인의 정서적 안정감으로 이어질 거라는 인상을 받는다.


p278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닌 돌봄이는 양육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현대 서구 사회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주도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한다. ‘대리 부모’, 즉 생물학적 부모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돌봄이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수십 년 전부터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p281 소규모 사회에서는 자식에 대한 책임이 생물학적 부모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분산된다는 점이 소규모 사회와 대규모 사회의 주된 차이이다. 대리 부모는 추가로 식량과 보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물질적으로도 중요하다.


p284 수렵채집 사회의 아이들을 관찰한 학자들의 공통된 보고에 따르면,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부모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우는 아이를 모른 척해야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보다 그 아이가 더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까?


p287 체벌의 편차는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 생존경제의 차이와는 관계없는 것이 분명하다.


p288 일반적인 추세를 정리하면, 대부분의 수렵채집 무리사회는 아이를 최소한으로 체벌하고, 다수의 농경사회는 약간의 체벌을 사용하며, 목축사회는 유난히 체벌에 관대한 듯하다.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한다면, 수렵채집 사회에서 어린아이의 못된 행동은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하는 정도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수렵채집인들에게는 소중한 소유물이 거의 없는 데다 아이가 어른을 해칠 숟 없지 않은가. 그러나 농경인, 특히 목축인들은 가족 전체에 닥칠 악영향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체벌한다. 예컨대 아이가 목초지 출입문을 닫지 않는다면 소중한 젖소와 양이 도망칠 수 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동이 잦고 평등주의가 팽배한 수렵채집인에 비해서 정착 생활을 하는 사회에는 개개인마다 권한 차이가 있고 성과 연령에 기반한 불평등이 심해서 공경심과 존경심의 학습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에서 아이들을 체벌하는 게 아닌가 싶다.


p294 어린아이가 얼마나 자유를 누리느냐는 환경이 얼마나 위험하느냐, 혹은 환경이 얼마나 위험하다고 인식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환경이 어린아이에게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도 있지만, 환경 자체가 위험하거나 타종족의 위협 때문에 위험한 곳도 있다.


p307 소규모 사회에서 교육은 사회적 삶을 통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반면에, 일부 현대 국가에서는 기초적인 사회적 삶까지도 노골적인 교육이 필요한 지경이다. 예컨대 일부 미국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이웃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고, 복잡한 교통과 납치의 가능성 및 인도의 부족으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걷지도 놀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엄마와 나’라는 수업을 통해서 다른 아이들과 노는 법을 배워야 한다.


p308 모든 국가 사회들 사이에는 기본적이 유사점이 있고, 국가 사회와 비국가 사회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모든 국가 정부는 자국의 어린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고유한 목적이 있지만, 그 목적이 부모의 목적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소규모 비국가 사회도 고유한 목적이 있지만, 국가 사회의 목적이 훨씬 더 명시적이고, 중앙에 집중된 상의하달식 리더십에 의해 관리되며, 명확한 집행기관에 의해 뒷받침된다. 모든 국가는 어린아이가 유용하면서도 순종적인 시민과 군인과 노동자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국가는 장래의 시민이 태어나기 무섭게 죽거나, 불에 화상을 입은 걸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장래의 시민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그들에게 어떤 성관념을 심어줘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방향이 있다. 국가들은 이런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어린아이에 대한 정책들이 수렴하는 경향을 띤다. 그러나 비국가 사회의 양육법은 국가 사회의 양육법에 비해 훨씬 다채롭다. 예컨대 수렵채집 사회들은 해당 사회의 고유한 압력에 영향을 받는다. 여하튼 수렵채집 사회들의 양육법은 기본적인 면에서 서로 유사하지만, 하나의 집단으로서 접근할 때 수렵채집 사회들은 국가들과 확연히 다르다.


6장_노인의 대우


p315 사회마다 물질적인 환경이 달라 사회를 위한 유용성에서 노인의 위치가 달라지고, 노인을 부양할 젊은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노인의 대우가 달라질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사회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적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p316 자연선택은 궁극적으로 유전자의 전달이다. 인간은 자손을 매개로 할 때 자신의 유전자를 가장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유전자가 부모를 자손의 생존과 번식에 증진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려면 자연선택은 부모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문화선택도 마찬가지다. 문화선택은 학습된 행동의 전달에 관련된 것이어서, 부모는 자식에게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해서, 심지어 목숨까지 자손의 생존과 번식을 증진할 수 있다면 부모의 희생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자식에게는 없는 자원과 지위, 지식과 능력이 노부모에게 축적돼 있다. 자식은 부모가 그런 자원과 지위, 지식과 능력을 전달함으로써 자식을 돕는 게 유전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부모에게 이익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젊은 세대가 자신들과 문화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노년층을 돌보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하다고 여긴다.


p318 노인이 집단 전체의 안전을 중대하게 위협하는 장애가 되는 사회라고 보고된 사례가 의외로 많다. 이런 결과는 대체로 두 가지 상황에서 일어난다. 첫째는 거주지를 자주 옮겨야 하는 유목형 수렵채집 사회이다. 짐을 나르는 가축이 없는 유목민은 모든 짐을 등에 지고 이동해야 한다. 이런 짐에 노인과 병자까지 더해지면 무리 전체가 걸어서 이동하는 게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둘째는 자연환경에서 비롯되는 상황이다. 특히 북극권과 사막에서는 심각한 식량 기근이 주기적으로 닥치고, 그런 기근의 시기를 견디기에 충분한 잉여식량을 축적할 수 없다. 모든 구성원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식량, 더 나아가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는 식량이 없다면 사회는 가장 덜 소중한 구성원, 혹은 가장 덜 생산적인 구성원을 단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의 생존이 위험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p325 세월이 지날수록 능력도 커져가는 또 다른 분야로는 의학과 종교, 여흥 관련 일, 정치가 있다. 전통 사회에서 마법사와 성직자, 예언자와 주술사가 흔히 노인이듯이 산파와 의료인도 대부분 노인이다. 노래와 놀이와 춤 여흥을 주도하고, 입문식을 인도하는 지도자도 노인이다. 노인은 인간관계를 구축하며 평생을 보낸 까닭에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망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며, 자식들을 그 관계망에 소개할 수 있다.


p328 사회가 노인을 돌보는 이유와 노인을 포기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노인의 유용성에서 찾아진다. 노인을 공경하느냐 멸시하느냐는 사회의 가치관도 그 이유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두 이유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인이 유용한 역할을 할수록 구성원들에게 존중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인간 문화의 다른 많은 분야에서 확인되듯이, 유용성과 가치관의 관계는 느슨하다. 달리 말하면, 경제적으로 유사하지만 노인을 상대적으로 더 존중하는 사회가 있다.


p331~332 가부장적인 전통 사회에서 노인은 오랫동안 높은 지위를 누리지만, 현대 미국 사회에서 노인의 위치는 정반대의 상황에 처해 있다. 카우길이 현대 미국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듯이 “우리는 노년을 유용성의 상실, 노쇠, 질병, 망령, 빈곤, 성욕의 상실, 비생산성, 죽음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띤다.” 이런 사고방식이 노인의 일자리 기회와 의료 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의무적인 정년이 얼마 전까지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었고, 유럽에서는 지금도 일반화된 현상이다. 고용주들은 노인을 자기만의 방식에 굳어져서 관리하고 가르치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상대적으로 융통성 있어 쉽게 배운다고 여겨지는 젊은 직원들에게 투자하고 싶어 한다.


p332 현대 미국사회에서 노인의 지위가 크게 떨어진 데는 적어도 세 가지 가치관이 원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첫째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강조한 노동 윤리이다. 베버는 칼뱅의 종교개혁과 관련지어 노동 윤리를 강조했다. 물론 베버는 독일을 중심으로 말했지만, 넓게는 현대 서구 사회에도 적용되는 노동 윤리이다. 그는 노동을 삶의 중심이고,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안겨주는 원천이며, 인격 형성에도 유익한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은퇴해서 일하지 않는 노인은 사회적 지위까지 상실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p333 둘째로 미국인의 가치관은 개인을 강조하는 사고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개인주의는 사회가 강조하는 대가족과는 대척점에 있다. 미국의 자존심은 개인적인 성취로 측정되지, 개인이 속한 대가족의 집단적인 성취로 측정되지 않는다.

p334 독립심과 개인주의, 독립독행과 사생활이란 가치관이 뒤얽힌 미국인의 생활방식에서 노인을 공경하고 돌보기는 힘들다. 갓난아기는 어떤 면에서도 독립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이의 의존성은 인정하지만, 수십 년 동안 혼자 힘으로 살아온 노인의 의존성은 마뜩잖게 여긴다.


p334~335 셋째로 유난히 젊음을 강조하고 예찬하는 미국의 가치관이 노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듯하다. 물론 우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젊음의 예찬을 문화적으로 선호한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젊음의 예찬은 철저하게 자의적으로 결정된 가치관이 아니다. 기술이 급속히 변하는 세계에서 젊은 세대가 새로운 교육을 받아 첨단지식으로 무장함으로써 일자리와 일상의 문제 등 중요한 일들에 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젊음은 예찬하는 미국 문화를 부추기는 또 다른 외적인 요인은 경쟁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이 때문에 속도와 인내력, 근력과 민첩성 및 신속한 반응력을 지닌 젊은 세대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p343 노인이 재산권을 무기로 우리 사회에서 누리는 힘에 비추어보면, 전통 사회에서 노인들이 음식부터 어린 아내의 확보권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하는 데 성공한 현상에 우리가 처음에 놀랐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게 쉽게 이해된다. 나는 처음 이런 관계의 존재를 처음 들었을 때, 무엇보다 “왜 젊은 부족민이 골수와 사슴고기처럼 맛있는 음식을 움켜쥐고 먹지 않는 것일까? 40세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아름답고 젊은 여인과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부모의 뜻을 어기며 부모의 재산을 빼앗는 경우가 거의 없는 이유와 똑같다. 그럼 왜 모든 젊은 부족민이 동시에 반발하며 일어나 “우리가 관계를 바꿀 겁니다. 이제부터 우리 젊은 사람들도 골수를 먹을 겁니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일까? 전통 사회의 젊은 부족민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의 모든 젊은이가 반발하며 상속의 관계를 바꾸지 않은 이유와 똑같다. 어떤 사회에서나 기본적인 관례를 바꾸기 위해서는 힘든 과정을 오랫동안 거쳐야 한다. 게다가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노년층이 관계를 바꾸는 걸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노인을 공경하고 존중해야 하는 학습의 결과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p346 인구 피라미드의 역전에서 비롯되는 또 다른 부정적인 결과는 노인들이 숙련된 다양한 경험으로 사회에서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더라도 똑같은 가치를 지닌 노인이 많아짐에 따라 노인 개개인의 가치는 떨어진다는 점이다.


p349 먼 과거에는 수도원과 수녀원이 노인을 떠맡아 보살폈지만, 노인들만을 위한 공공시설은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시대에 오스트리아에 처음 등장했다.


4부 위험과 대처


7장_건설적인 편집증


p362 그들의 편집증은 터무니없는 과민 반응이 아니라,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그들의 편집증을 ‘건설적인 편집증’이라 생각한다.


p401 내가 ‘건설적인 편집증’이라 일컫는 조심스런 태도가 뉴기니 사람들에게 흔히 목격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우유부단하고 행동마저 머뭇거리는 사람들이란 오해를 남기고 싶지는 않다. 어느 사회에나 그렇듯이, 뉴기니에도 신중한 사람과 부주의한 사람이 있다. 또한 조심스런 사람들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할 수 있다. 위험한 걸 뻔히 알면서도 어떤 행동을 취하지만, 시시때때로 경계심을 품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


p407 뉴기니에서 수다는 사회적 관계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기능도 한다. 사회적 관계는 서구 사람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뉴기니 사람들에게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8장_사자와 다른 위험들


p411 평균수명에서도 드러나듯이, 전통 사회의 생활방식이 서구의 생활방식보다 전반적으로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평균수명의 차이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하지만 평균수명의 차이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p412 대부분의 전통 사회에서, 환경적인 위험은 죽음의 원인에서 질병과 인간의 폭력 다음으로 세 번째에 불과하다. 그러나 환경적인 위험이 질병보다 인간의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환경적인 위험의 경우에는 인과관계가 훨씬 신속하고 명확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p420 어디에나 존재하는 기아의 위험처럼, 환경에 따른 위험도 사망자와 부상자의 수에서 추론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위험을 줄이려고 행동을 조심하기 때문에 사망자의 수는 상당히 적은 편이다.


p422 어떤 위험한 환경에서나 경험이 축적되면 위험을 최소화하는 행동 법칙이 암묵적으로 구축된다. 외부인에게는 과민반응으로 보이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따르는 게 훨씬 나은 행동 법칙이다.


p422 사고는 예방이 중요하다. 어떤 특정한 행동을 어떻게 언제 어떤 환경에서 행하고 행하지 않아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개인의 생존과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자연환경에 관련된 행동이나 기술의 급격한 변화는 극단적으로 위험한 짓이라 여겨진다. 올바른 행동의 폭은 상당히 좁다. 그 폭을 넘어서면 발밑의 지표가 갑자기 꺼지고, 나무가 느닷없이 쓰러지면서 자신을 덮치며, 반대편 강둑으로 가려고 강을 건널 때 급격히 불어나는 위험이 닥칠 수 있다. 그 밖에도 자연환경과 관련된 많은 금기가 있었다.“ -제인 구달


p425 전통 사회마다 인간의 폭력에 의한 사망의 빈도와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인간의 폭력은 전통 사회에서 대체로 첫 번째 사망 원인이거나 질병 다음으로 두 번째 사망 원인이다. 이런 편차의 주된 요인은 폭력을 억압하고 저지하려는 국가와 외부의 간섭이다. 폭력의 유형은 다소 자의적이지만 전쟁과 살인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p430 !쿵족 사회에서 대부분의 살인은 살인이 살인을 낳고, 그 살인이 다시 살인을 부르는 반목과 불화의 일부였다. 이런 보복의 악순환이 전통 사회 전쟁의 특징이다. !쿵족 사회에서 복수 다음으로 간통이 살인의 주된 동기로 자주 언급된다.


p431 국가 정부와 경찰이 없는 전통 사회에서 구성원들을 끊임없는 폭력의 위험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켰을까? 첫째로는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건설적인 편집증이다. 대부분의 전통 사회에서 확인되는 제1의 원칙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공격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또 하나의 전술은, 방어하기 적합하고 주변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곳에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p436 만연하는 감염병의 유형은 수렵채집에 의존하는 유목민이나 가족 단위의 농경 사회처럼 소규모 집단과, 현대 사회와 상대적으로 최근에 서구화된 사회 및 전통적으로 인구가 과밀했던 구세계의 농경 사회처럼 대규모 집단 간에 다르다. 수렵채집 사회의 주된 질병은 말라리아를 비롯해 절지동물이 옮기는 열병과 피부 감염이다. 서구의 방문객들에게 감염이 된 적이 없는 수렵채집인들에게 정착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감염된 적이 없는 수렵채집인들에게 정착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질병, 예컨대 디프테리아와 독감, 홍역과 볼거리, 백일해와 풍진, 천연두와 장티푸스는 두려운 질병이 아니다. 만성적으로 상존하거나 갑작스레 나타났다가 갑작스레 사라지는 수렵채집 사회의 감염증과 달리, 인구가 밀집한 사회의 질병들은 급성 전염병으로 확산된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단기간에 많은 병에 걸리고 신속하게 회복되거나 사망하며, 그 질병은 지역적으로 1년 남짓 후에 사라진다.


p437 전염병이 급성으로 발병하는 것은 환자가 감염되고 수주 내에 사망하거나 회복된다는 뜻이다. 전염역이 강하고 질병이 급성으로 발병한다는 것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모두가 짧은 기간 내에 그 질병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거나 회복된다는 뜻이다. 살아남은 사람이 평생의 면역력을 획득한다는 것은, 그 전염병의 공격을 전혀 받지 않은 아기들이 태어날 때까지 그 지역에서 누구도 그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끝으로, 어떤 전염병이 인간에게만 국한되어 발병한다는 것은 그 전염병이 동물이나 토양에서 자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전염병이 소멸되면, 먼 곳에서 다시 확산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특징들이 복합되면, 인간에게만 국한되더라도 인구수가 많기 때문에 전염병들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다님으로써 어떤 곳에서는 소멸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며 존속할 수 있다. 홍역의 경우, 최소한으로 필요한 인구 규모는 수십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전염병은 “인간 집단에게 면역력을 갖게 하며 급속히 확산되는 감염성 질병”. 즉 간단히 말해서 ‘대중성 질병’으로 요약될 수 있다.


p438 인간에게 국한된 대다수 혹은 대부분의 대중성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들은 돼지와 소 같은 가축의 대중성 질병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약 1만 1,000년 전 야생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하며 그런 동물들을 자주 가까이에서 접촉함으로써 병원균들이 짐승에서 인간으로 전이되는 이상적인 조건을 제시한 셈이다.


p441 질병의 원인을 받아들이는 관점과, 그에 따라 취해지는 예방책과 치유책은 전통 사회마다 다르다. 모든 전통 사회에는 아니지만, 일부 사회에는 질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치유자가 있다. 그런 치유자를 서구에서는 ‘샤먼’이라 칭하고, 그 지역 사람들은 특별한 호칭으로 부른다.


p443 전통 사회에서 사망의 원인으로 흔히 인정되고 언급되는 사고와 폭력과 질병에 비교할 때, 울러스턴이 목격한 기아로 인한 사망은 그다지 자주 언급되지 않는다. 소규모 사회는 식량을 공유하기 때문에 굶주림으로 한 사람만이 사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따라서 기아에 의한 사망은 집단 사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는 사망의 원인으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p446 리처드 리는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사회에서 직접 목격한 이런 해결책을 설명했고, 모든 대륙과 모든 환경의 수렵채집인들에게 확대해 일반화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식량을 가족끼리만 먹지 않는다. 식량은 함께 살아가는 무리, 심지어 30명 이상의 무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항상 공유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중 일부만이 매일 숲으로 나가 채취하고 사냥하지만, 매일 사냥한 고기와 채취한 식량은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나눈다. 한마디로, 사냥하고 채취하는 무리사회는 공유하는 사회이다.” 리가 수렵채집인의 사회에서 찾아낸 공유와 공평의 원칙은 소규모 목축 사회와 농경 사회에도 적용된다.


p451 골란드가 찾아낸 단서는 매년 밭마다 수확량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확량의 변화는 밭의 고도와 경사와 방위 등과 같은 환경적인 요인들, 그리고 농부가 조정할 수 있는 노동에 관련된 요인들에서 극히 일부만이 예측가능할 뿐이다.


p453 통계학이나 수학적 분석을 사용하지 않고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안데스의 농부들은 수확량이 지역별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들쑥날쑥한 까닭에 기아의 위험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밭을 분산하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아냈다. 농부들의 전략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지 말라”는 격언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p470 인간은 위험을 습관적으로 잘못 평가한다. 심리학자들이 광범위하게 연구했듯이, 적어도 서구 세계는 그렇다. 미국인들에게 오늘날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테러리스트, 항공기 추락, 핵발전소 사고를 언급하지만 이런 위험들로 사망한 미국인을 모두 합해도 자동차나 알코올이나 흡연으로 사망한 미국인보다 훨씬 적다.


p471 나는 얼마 전에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폭이 1,500미터가 넘는 잠베지 강이 108미터 아래의 좁은 틈새로 떨어지고, 그보다 훨씬 좁은 협곡을 따라 ‘끓어오르는 솥’이라 불리는 웅덩이로 몽땅 흘러들어간다. 폭포의 굉음, 검은 바위벽, 틈새와 협곡을 완전히 뒤덮은 안개, 폭로 아래에서 거세게 휘감기는 물을 보고 있으면, 지옥이 정말 있다면 지옥의 입구가 바로 그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끓어오르는 솥’ 바로 위로 협곡은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다.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이 잠베지 강이어서, 관광객들은 그 다리로 두 나라를 오갈 수 있다.


p472 보수적인 다른 사회보다 위험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있다. 이런 차이는 제1세계 국가들에서도 확인되며,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뉴기니 부족들 사이에서도 관찰된다.

     요컨대 모든 인간 사회는 위험에 부딪치지만, 지역에 따라, 또 생활방식에 따라서 사회가 직면하는 위험은 다르다.

 

5부 종교와 언어 그리고 건강


9장_전기뱀장어는 종교의 진화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p477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인간 사회에는 ‘종교’, 더 정확히 말하면, 종교와 유사한 것이 있었다. 종교가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를 채워준다는 뜻이고, 종교가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본성의 일부에서 탄생한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그 욕구가 무엇이고, 인간 본성에서 그 일부가 무엇일까? 또 ‘종교’를 실질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신앙 체계가 종교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하나이든 다수이든 신에 대한 믿음, 요컨대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다른 무엇도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p479 경제학자들이 용어를 빌리면, 종교는 ‘기회비용’을 초래한다. 달리 말하면, 더 많은 곡물을 생간하거나 댐을 쌓고 정복을 위해 더 많은 군인을 양성하며 한층 유익한 행위에 투자됐어야 할 시간과 재원이 종교에 투자된 것이었다. 종교가 이런 기회비용을 상쇄할 만큼 실질적인 이득을 안겨주지 않았다면, 우연히 어딘가에서 탄생한 무신론적인 사회가 종교적인 사회들을 압도하며 세계를 정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세계는 무신론적인 사회가 되지 않은 것일까? 도대체 종교가 분명히 우리에게 안겨주는 이익이 무엇일까? 요컨대 종교의 ‘기능’은 무엇일까?


p483 어떤 학자도 널리 확산되고 잘 알려진 행위를 종교로 인정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예컨대 불교와 유교와 신도를 종교로 여겨야 하느냐에 대한 오랜 논쟁이 종교학자들 사이에서 있었다.


p483~484 종교를 정의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우리가 종교로 뭉뚱그리는 현상에는 종교와 사회에 따라, 또 종교의 진화 단계에 따라 강하거나 약하게 나타나고, 혹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으니, 종교를 판단할 때 조심하라는 뜻이다. 종교는 때땔 희석되어 부분적으로만 종교와 관련된 속성을 지닌 현상으로 서서히 변한다. 이런 이유에서 일반적으로 세계 4대 종교의 하나로 여겨지는 불교가 정말로 종교인지 아니면 삶의 철학에 불과한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종교는 흔히 다섯 가지의 속성을 지녀야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1) 초자연젹인 존재에 대한 믿음, 2) 사회운동이라 생각하며 그 운동에 동참하는 회원들, 3) 비용이 많이 드는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줘야 하는 헌신, 4) 행동을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규칙들(즉 ‘도덕률’), 5) 초자연적인 존재와 힘을 현실의 삶에 개입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믿음(즉 기도)이다. 하지만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종교를 이 다섯 가지 속성의 총체적인 결합으로 정의하고, 하나라도 빠진 현상은 종교가 아니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합당하지 않다. 그렇게 한다면 많은 사람이 종교라고 인정하는 현상까지 배제되기 때문이다.


p484 나는 이렇게 말했다. “종교는 우리가 오감으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를 직접 제시할 수 없지만 오감으로 확증되는 현상들을 설명해달라고 간구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다.” 이런 정의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로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종교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 중 하나라는 걸 인정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종교의 주된 기원과 초기 기능 중 하나가 설명이었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다. 대부부의 종교는 신, 혼령 등 ‘초자연적’이라 일컬어지는 존재를 가정한다. ‘초자연적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는 그 존재들, 혹은 그런 존재가 입증되는 결과가 자연세계에서는 직접 인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초자연적인 세계의 존재, 즉 우리가 이 땅에서 죽은 후에 옮겨가는 천당과 지옥 같은 사후 세계의 존재까지 상정한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확신하며, 혼령이나 유령을 보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는 신앙인도 적지 않다.


p485 내가 종교를 정의하며 범한 가장 큰 잘못은 두 번째 속성―종교란 믿음을 굳게 공유하는 사람들의 사회운동―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점이다. 신을 믿지만 자신이 구상한 교리를 믿는 사람들, 또 안식일이면 방에 혼자 않아 신에게 기도하며 자신이 직접 썼지만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책을 읽는 사람은 종교 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혼자 살면서 기도에 열중하는 은둔자이다.


p486 많은 종교에서 발견되는 세 번째 속성은, 신봉자들이 비용이 많이 들고 고통스러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집단에 헌신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첫째로는 시간의 희생이다. 둘째로는 교회에 기부하는 돈이나 재산의 희생이다. 셋째로는 몸의 안락이나 진실한 마음을 포기하며 금식하고, 손가락 관절을 끊어내며, 성기의 포피를 잘라내거나 세로로 길게 자르기도 한다.


p487 종교의 네 번째 속성은, 신과 초자연적인 존재가 인간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다. 이런 행동 규칙들은 사회의 유형에 따라 법, 도덕률, 금기, 의무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종교에 이런 행동 규칙이 있지만, 이 행동 규칙들이 종교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세속적인 현대 국가 정부, 무수한 비종교적인 단체 및 무신론적이거나 불가지론적인 시민들도 자신들만의 행동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p487 끝으로 다수의 종교에서 초자연적인 존재가 규칙을 준수하는 고결한 사람에게는 보상을 주고 규칙을 위반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응징하지만, 기도와 현금과 희생으로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을 유도해서 현실의 삶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달라고 간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p490~491 종교는 우리 조상이었고, 그 위로 동물 조상이었던 생명체들이 지녔던 어떤 능력들의 부산물로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 능력들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영향을 미치며 점진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획득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에서 파생된 접근법의 결론이다.

    나와 같은 진화생물학자의 판단에, 종교의 기원에 대한 두 접근법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두 단계이다. 생물학적 진화도 비슷하게 두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 개체 간의 차이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재조합으로 발생한다. 둘째, 자연선택과 자웅선택 때문에 개체들마다 생존하고 번식하며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방법이 다르다. 다시 말하면, 어떤 기능을 행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다른 개체들보다 뛰어난 개체들이 있다.

    진화심리학자들도 이와 유사하게 생각하며, 종교를 인간의 두뇌가 지닌 어떤 특성의 부산물이지, 피라미드를 쌓거나 사별한 친척들을 위로하려는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에서 생겨난 것이라 주장한다. 진화생물학자의 생각에, 종교의 탄생은 당연한 것이고 조금도 놀라운 것이 아니다. 진화의 역사는 처음에는 어떤 기능을 위해서 선택되지만 점차 발전해서 결국에는 다른 기능을 수행하도록 선택되는 돌연변이와 부산물의 연속이다.


p499 현대 과학도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중단하는 게 낫다”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만족스런 해답을 주지 못하는 사건들까지 인과관계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p500~501 우리가 지금 종교라 칭하는 것은 인간이 뇌를 이용해서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예측해보려는 집요한 노력의 부산물로 탄생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오랫동안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이 구분되지 않았을 것이고, 종교와 삶도 구분되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가 인간 진화의 과정에서 생겨났다면, 우리 뇌가 점진적으로 복잡하게 발달했듯이 종교도 점진적으로 생겨났을 것이라 추축해볼 수 있다.


p502 특정한 종교의 초자연적인 믿음들


p503 초자연적인 종교적 믿음은 초자연적인 비종교적 믿음과 다를 바가 없는 무지한 미신에 불과하며, 인간 두뇌가 자신까지 기만하며 어떤 것이든 쉽게 믿는다는 걸 입증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얼토당토않은 초자연적인 비종교적 믿음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p505 어쩌면 종교적인 미신이 검은 고양이를 흉조라 믿는 비종교적인 미신보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비합리적인 종교적 미신을 헌신적으로 믿는 종교의 시종일관한 특징이란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일부 종교 학자들이 최근에 제시한 해석에 따르면, 종교적 미신을 믿는 행위가 자신의 종교에 헌신하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p507 세계 전역에 존재하는 미신은 인간이 이론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임의적인 미신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파스칼 부아예의 표현을 빌리면, “하느님은 한 분밖에 없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하지만 하느님은 수요일에만 존재하신다”와 같은 교리를 주장하는 종교는 없다.

 

p508 종교의 원래 기능은 설명이었다. 과학이 도입되지 않은 전통 사회들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지만, 오늘날 과학자들이 현실적이고 과학적이라 평가하는 설명과 초자연적이고 종교적이라 평가하는 설명을 구분하는 능력은 없다. 전통 사회 사람들에게는 과학적인 설명이나 초자연적인 설명이나 모두 설명이며, 이후에 종교적이라 평가된 설명도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p510~511 종교의 두 번째 기능은 초기 사회에서 가장 뚜렷한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 추정되는 기능이다. 요컨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과 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완화하는 종교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해냈을 때가 기도와 의식에 의지하며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신탁과 샤먼에게 조언을 구하며, 징조를 읽고 금기를 준수하며 주술을 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때이기도 하다. 이런 행위들을 과학적으로 아무런 효과도 없어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다. 하지만 거짓이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가 아직 무력한 존재가 아니어서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하고 있다고 확신함으로써,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떨쳐내고 뭔가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p517 삶이 힘겨울 때 위안과 희망 및 의미를 부여하는 종교의 기능이다.


p518 대부분의 종교는 죽음의 현실을 효과적으로 부인하고, 육신과 맺어진 영혼을 위한 사후세계가 있다고 상정함으로써 위안을 준다. 영혼은 원래의 육신을 본뜬 모형과 함께 천당 혹은 다른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초자연적인 곳으로 가거나, 새나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서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간다. 이처럼 사후세계를 주장한 종교들은 간혹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후세계를 들먹이며 죽음 자체를 부인할 뿐 아니라 죽음 후에는 훨씬 나은 것, 예컨대 영생,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결합, 근심으로부터의 해방, 신주, 아름다운 처녀 등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기도 한다.


p519 위안이라는 종교의 기능은 인류의 진화사에서 초기에 등장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깨닫고,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에 의문을 품을 정도로 똑똑해졌을 때였을 것이다. 수렵채집인들은 사후에 혼령으로 생존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위안의 기능은 이른바 세상을 거부하는 종교들, 즉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목적은 구원을 받아 사후세계를 준비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종교들이 등장한 후로 크게 확대됐다. 세상을 거부하는 현상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및 불교의 일부 종파에서 강하게 드러나지만, 플라톤 철학을 비롯한 세속적인 철학, 즉 비종교적인 철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p520 복잡한 대규모 사회에 비해서, 소규모 사회들은 세상의 거부와 구원과 사후세계를 크게 강조하지는 않는다. 이런 차이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평등하던 소규모 사회가 복잡한 대규모 사회로 발전되면서 사회의 계급화와 불평등이 심화된 때문이다. 사회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왕과 귀족, 상류층과 부자들이 다수를 이루는 가난한 농부들과 노동자들을 지배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당신만큼 고통받는다면 불공평하다고 불평할 이유가 없고, 열망해야 할 좋은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본보기도 없다. 그러나 일부가 당신보다 훨씬 안락한 삶을 누리며 당신을 지배한다면, 설명하고 위안을 구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바로 그런 것을 종교가 제공한다.


p521~522 종교가 사라질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집요함 때문인 듯하다. 우리 인간은 무의미하고 공허하며 덧없게 여겨지는 삶에서, 또 예측할 수 없는 불행한 사건들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과학이 도래하며, ‘의미’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우리 개개인의 삶은 자기증식만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유전자 집합체에 불과해서 정말로 무의미하고 공허하며 덧없는 것이라 말해주는 듯하다.


p524 식량의 이런 분배는 어떻게 처음 시작됐을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분명한 사실이 겹치면서 어떤 딜레마가 야기됐을 것이다. 첫째, 인구가 많은 사회가 소규모 사회에게 이길 가능성이 크다. 둘째, 인구가 많은 사회에는 지도자와 관료가 필요하다. 셋째, 지도자와 관료를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


p526 국가 사회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소규모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종교의 또 다른 특징은 신도들에게 이방인을 대하는 도덕적인 행동 규범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모든 세계 종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된 것이며,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종교와 도덕의 이런 관계, 특히 이방인을 대하는 행동에 관련된 규범은, 내가 경험한 뉴기니의 여러 사회에는 무척 미약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의무는 무척 미약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의무는 인간관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무리사회나 부족사회의 구성원은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 아는 사이이고, 상대의 인간관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무리사회나 부족사회의 구성원은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 아는 사이이고, 상대의 인간관계까지 알고 지낸다.


p527·528 인간관계의 유무를 불문하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 사이에는 우호적인 행동 규범이 강요됐다. 정치 지도자들, 즉 군장과 왕은 대리인들을 앞세워 그런 규범을 강요했고, 그 규범을 종교의 새로운 기능으로 받아들여 정당화했다. 요컨대 신과 초자연적인 존재가 그 규범으로 만들었다고 여겨지며, 공식적인 도덕률로 성문화됐다.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어린시절부터 행동 규범을 따르도록 가르쳤고, 규범을 위반하면 즉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 신의 뜻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엄한 벌로 다스려졌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경우에는 십계명이 대표적인 예이다.


p530 공정하게 말하면 이런 세계관은 신약성서보다 구약성서에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신약성서의 도덕률은 이방인을 대하는 행동 규범의 방향을 크게 바꾸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바꾸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유럽의 그리스도교 식민주의자들이 비유럽인들에게 인류의 역상서 가장 무차별적인 대량학살 사건들을 저지르고도, 구약성서만이 아니라 신약성서까지 들먹이며 그런 만행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지 않았던가.


p531~532 세속인은 지금까지 나열한 종교의 특징들에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럽기도 할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비합리적인 초자연적인 믿음과의 관련성이다. 그런데 모든 종교가 자신들의 그런 믿음은 강력하게 고수하면서도 타종교의 믿음은 고려할 가치도 없다며 묵살한다. 비용이 많이 들고, 심지어 자해와 자살까지 번질나게 권장하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종교를 등지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도덕률을 가르치고 보편성을 주장하면서도 타종교인들에는 똑같은 도덕률을 적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죽이라고 부추기는 명백한 위선도 마찬가지이다.


p535 윌슨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 집단을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종교를 믿는 집단은 경쟁 관계에 있는 집단이 된다. 종교의 상대적 성공을 측정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신도의 수이다. 윌슨의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종교의 신도수는 신도수를 늘이는 경향을 띤 과정들과 신도수를 줄이는 경향을 띤 과정들의 균형 여부에 영향을 받는다. 신도가 자식을 낳아 자식에게 성공적으로 종교적인 믿음을 심어주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종교를 믿지 않던 사람이 개종하면 신도수가 증가한다.


p538~539 고결한 도덕률을 설교하면서도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죽이라고 부추기는 종교의 근본적인 위선에 대해 윌슨을 어떻게 말할까? 윌슨은 이 문제에 관련해서, 종교의 성공 여부는 상대적이어서 타종교들의 성공과 비교해서 판단돼야 한다고 말한다. 싫건 좋건 간에, 종교는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강제로 개종시킴으로써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왔다. 윌슨을 인용하면 “나는 종교에 관련해서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무수한 악행들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종교 집단이 타종교 집단에 가한 끔찍한 행위이다. 이런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적응성을 띤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적응성을 생태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어렵지 않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용서되지 않더라도 진화적 관점에서는 설명될 수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p541 종교는 어떤 특성들의 집합체로, 그 특성들을 공유하는 인간 집단을 구분한다. 특히 세 가지 특성-초자연적인 설명, 통제할 수 없는 위험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의 완화, 고통스런 삶과 예견된 죽음에 대한 위안의 제공-중 하나 혹은 그 이상, 때로는 세가지 모두가 언제나 공유돼야 한다. 초기 단계 이후에 종교는 규격화된 조직, 정치적인 순종, 자신과 같은 종교에 속한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는 아량, 타종교를 믿는 집단과 벌이는 전쟁의 정당화를 꾸준히 지원해왔다.


p541 종교는 무엇보다 개인의 삶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하는 덕분에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겠지만, 종교가 부여하는 의미는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의미의 추구에 대한 과학계의 반응이 맞더라도, 따라서 종교에서 말하는 의미가 착각에 불과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과학계의 반응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세계인이 빈곤의 늪에서 허덕인다면, 더구나 세계 경제와 생활수준 및 평화가 악화된다면, 종교의 모든 기능, 심지어 초자연적인 설명 기능까지 되살아날 수 있다. 종교의 미래에 대한 답은 내 자식 세대에 가서야 정확히 밝혀질 것이다.


10장_여러 언어로 말하기


p544 대부분의 언어가 소멸될 운명에 처하며, 그로 인해 우리 문화 유산까지 대부분 조만간 사라질 수 있다는 비극의 그림자가 오늘날 우리를 뒤덮고 있다.


p547 개별언어와 어떤 언어의 방언은 어떻게 다른가? 이웃한 집단들 간의 언어 차이는 점진적으로 달라진다. 따라서 이웃한 집단들은 서로 100퍼센트, 92퍼센트, 75퍼센트, 42퍼센트를 이해할 수도 있고,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언어와 방언의 경계는 임의적이지만 70퍼센트를 상호 이상 알아들으면, 그들은 똑같은 언어의 다른 방언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70퍼센트 미만으로 이해하면 그들은 별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j것으로 여겨진다.


p548 유럽의 언어들은 형태가 지역적으로 확연히 다른 경우가 많다. 물론 해당 국가의 정부는 그처럼 다른 지방어들을 당연히 방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사자들은 지역이 다르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내 친구들을 예로 들면, 북독일 친구들은 바이에른 시골 지역 사람들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북이탈리아 친구들은 시칠리아에서 길을  잃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지방어들은 자체의 육군과 해군을 갖지 못한 까닭에, 그들의 중앙정부는 상호 이해 가능성이란 기준을 무시하고 그런 지방어들을 방언으로 분류한다.


p551 동일한 언어집단에서 파생된 두 언어집단이 지리적으로 떨어진 탓에 수세기 동안 독자적으로 변하면, 두 언어집단은 서로 알아듣기 힘든 방언을 만들어낸다.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의 미세한 차이, 퀘벡 프랑스어와 프랑스 프랑스어의 큰 차이, 아프리칸스어와 네델란드어의 훨씬 더 큰 차이를 생각해보라. 2,000년 동안 분화되면 언어집단들이 서로 알아듣기 힘들 정도가 되지만, 언어학자들의 눈에 그 집단들은 여전히 관련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ㄹ이다. 예컨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와 루마니아어는 라틴어에서 파생됐고, 영어와 독일어와 그 밖의 게르만계 언어들은 원시 게르만어에서 파행됐다. 하지만 1만 년이 지나면 그 차이가 너무 현격해서, 대부분의 언어학자가 그 언어들에서 눈에 띄는 관련성을 찾을 수 없어 별개의 어족에서 속하는 것이라 판단할 것이다.


p554 언어 다양성과 상관관계가 있는 생태적 요인으로는 위도, 기후 변화, 생물학적 생산성, 지역별 생태학적 다양성이 주로 언급된다. 첫째, 적도에서 극지로 갈수록 언어 다양성은 감소한다. 다른 모든 조건이 똑같다고 할 때, 동일한 면적에서 고위도 지역보다 열대 지역에 언어가 더 많다. 둘째, 동일한 위도에서는 기후 변화가 계절 변화에 따라 일정하든 해마다 예측할 수 없이 변하든 간에 심한 지역일수록 언어 다양성은 감소한다. 예컨대 계절적으로 변하는 열대 사바다 지역보다 연중 내내 축축한 열대우림에서 언어 다양성이 높다. 셋째, 생산성이 높은 환경일수록 언어 다양성은 증가하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사막 지역보다 열대우림 지역의 언어 다양성이 더 높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이런 결과는 사막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비생산적인 환경이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일 수 있다. 끝으로, 생태적으로 다양한 지역일수록 언어 다양성은 증가한다. 특히 평평한 지역보다 험준한 산악 지역에서 언어 다양성은 높게 나타난다.


p556~557 생태적 요인들 이외에, 사회경제적이고 역사적인 요인들도 언어 다양성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수렵채집인 언어집단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농경인 언어집단보다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듯하다. 두 번째 요인은 정치조직이다. 무리사회에서 국가로 발전할수록 정치는 복잡해지며 언어집단의 인구와 면적이 증가하면 언어 다양성은 줄어든다. 정치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언어 다양성이 줄어드는 결과는 역사적 요인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세계 곳곳은 역사적으로 ‘언어 압살’에 의해 몸살을 앓았다.


p559 언어학자 조애나 니컬스의 용어를 빌리면, ‘언어 확산 지역’과 ‘잔여 지역’의 지리적 조건은 확연히 다르다. 언어 확산 지역은 침략하기 쉬운 지역인 반면에, 레퓨지아(생태학 용어로 빙하기와 같은 대륙 전체의 기후 변화기에 비교적 기후 변화가 적어 다른 곳에서는 멸종된 것이 살아 있는 지역)인 잔여 지역은 산악지역처럼 외부 집단이 침략하기 어려운 지형이어서, 그곳의 언어들은 오랫동안 살아남아 분화되지만, 원래의 어족으로 유지된다.


p569~572 이중언어 사용자는 실행 기능에서 특수한 문제를 겪는다. 단일언어 사용자는 어떤 단어를 들으면, 그 단어를 하나의 단어 창고와 비교하고, 어떤 단어를 말할 때는 그 단어를 하나의 단어 창고에서 꺼내면 된다. 그러나 이중언어 사용자는 두 언어를 따로따로 유지한다. 따라서 어떤 단어를 들으면, 그 소리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 어떤 언어의 창고를 사용해야 하는지 즉각적으로 알아내야 한다. 이중언어 사용자는 뭔가를 말하고 싶을 때마다 현재의 대화에서 사용되는 언어로부터 적절한 단어를 생각해내야 한다.

    요컨대 이중언어나 다중언어 사용자들은 끊임없이 무의식적으로 실행조정 기능을 행하는 셈이다. 그들은 말하거나 생각할 때마다,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마다 실행 조정을 행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끊임없이 실행 기능을 작동해야 한다.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행위, 즉 훈련은 어떤 실력을 향상시킬까?

     최근의 연구들은 이런 의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서, 3세부터 80세까지 이중언어 사용자들과 단일언어 사용자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비교하는 시험법을 고안해냈다. 종합적인 결론에 따르면, 모든 연령에서 이중언어 사용자는 한 가지 특수한 문제, 즉 규칙들이 예측할 수 없이 변하기 때문에, 혹은 현혹시키고 쟁점 자체와 관계가 없지만 무시해야 마땅한 그럴듯한 암시가 있기 때문에 무척 헷갈리는 과제를 해결하는 문제였다.

     규칙을 바꾸거나 혼란스러운 정보를 제공하는 시험에서 이중언어 사용자의 이런 우위는 언어와 관련된 과제에서만 나타날 거라는 예상이 처음에는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중언어 사용의 이점은 상당히 포괄적이어서, 공간과 색과 양과 관련된 비언어적 과제에서도 나타난다는 게 입증됐다. 그렇다고 이중언어 사용자가 모든 면에서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규칙이 바뀌지 않은 과제, 무시해야 할 현혹시키는 암시가 없는 과제의 수행 능력에서는 두 집단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우리 삶은 현혹시키는 정보와 변화무쌍한 규칙으로 가득하다. 위의 사소한 시험에서 나타난 이중언어 사용자의 이점이 혼란스럽고 변덕스런 실생활에도 적용된다면, 이중언어 사용자가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유리하다는 뜻이 된다.  


p577 대부분의 신체기관은 사용하면 기능이 향상되고, 사용하지 않으면 기능이 떨어진다. 이런 이유에서, 운동선수들과 예술가는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그런 이중언어 사용이 뇌를 끊임없이 훈련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p590 BBC에서 시청자 의견을 남긴 사람들은 두 가지 주된 이유에서, 세계에 존재하는 언어들의 대부분이 멸실되는 걸 찬성한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에게는 서로 원활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서 하나의 공통된 언어가 필요하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모두가 원만하게 의사소통하려면 공통된 언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소수집단의 언어를 없앨 필요까지는 없다. 소수집단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중 언어 사용자가 되면 그만이다. 예컨대 덴마크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부유한 국가이지만 덴마크어를 말하는 사람은 500만 명에 불과한 덴마크 사람들뿐이다. 거의 모든 덴마크 사람이 영어와 다른 유럽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사업에 활용한다. 덴마크 사람들이 부유하면서도 행복한 이유는 덴마크어를 말하기 때문이다. 덴마크 사람들이 덴마크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자가 되려고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건 순전히 그들의 몫이다.


p592 소수집단이 평화를 위해서 고유한 언어를 포기하고 다수의 언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소수집단이라는 이유로 종교와 민족성 및 정치적 견해를 포기하면서까지 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느냐고 묻고 싶다. 종교의 자유, 정체성의 자유, 정치적 견해의 자유는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에 속하지만 언어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쿠르드족과 프랑스계 캐나다인은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스탈린과 폴포트, 르완다와 옛 유고슬라비아만이 아니라 그 밖에도 많은 역사적 사례가 우리에게 단일언어가 평화의 파수꾼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p593 작은 언어가 큰 언어에게 굴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만다린을 모두가 받아들여 영어도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논리적인 결론이다.


p594 언어는 인간 정신이 창조해낸 가장 복잡한 작품이다. 언어마다 소리와 구조가 다르고 사고의 패턴이 다르다. 따라서 한 언어가 사라지면 언어 자체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문학과 문화 및 많은 지식이 언어로 표현된다. 언어를 상실하면 그 언어로 표현된 문학과 문화와 지식도 대부분 상실한다. 언어마다 숫자체계, 기억장치, 공간의 방위체계도 다르다. 예컨대 숫자는 영어보다 웨일스어나 만다린으로 세는 게 더 쉽다. 전통 사회는 주변에서 자생하는 수많은 식물과 동물의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 사회의 언어가 사라지면 민족생물학적 정보가 담긴 백과사전이 사라지는 셈이다.


11장_염분과 당분, 비만과 나태


p610 소금은 세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거래되고 가장 많은 세금이 걷히는 상품이 됐다. 로마 병사들은 소금으로 급여를 받았다. 따라서 ‘급여’를 뜻하는 ‘salary'는 라틴어에서 ’돈‘이나 ’동전‘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소금‘을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됐다. 소금 때문에 전쟁을 벌인 경우도 한두번이 아니었고, 소금에 붙여진 세금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다.


p621 인류의 역사에서 소금통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인간이 소금을 얻기 힘든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신장에 염분을 효과적으로 보유하는 사람이 땀의 발산이나 설사로 염분을 잃는 경우를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소금을 언제든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런 기능을 지닌 신장은 유해물이 되고 말았고,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과도한 염분 축적과 고혈압으로 이어졌다.


p643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당뇨병의 궁극적인 원인인 만성적인 고혈당이며, 임상 결과도 부분적으로 유사하다. 그러나 생활방식 요인들이나 개체군들의 유전자가 인도와 서구가 다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면들에서는 인도의 당뇨병은 서구 세계에 알려진 당뇨병과 다르다.


p648 당뇨병의 권위자 폴 지메트는 이처럼 당뇨병을 유발하는 제1세계의 생활방식이 제3세계로 확산되는 현상을 ‘코카 식민지화’라고 칭했다.


p651 모든 인간이 전통적으로 공유했던 풍요와 기아의 생활방식이 자연선택으로 결국에는 절약 유전자형 가설에 맞아떨어지는 유전자를 선택했고, 그 유전자 덕분에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식량의 풍요가 계속되는 서구화된 환경에서는 그 유전자가 실질적으로 모든 개체군을 당뇨병의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p655 유럽의 기근 종식에 오점을 남긴 유명한 예외적인 사태는 1840년대 아일랜드에 닥친 감자 기근이었다. 아일랜드 사태는 예외적이지만, 유럽의 다른 지역들에서는 기근을 종식시킨 처음 세 요인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닥칠 수밖에 없는 불행을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위의 원칙들을 입증해준 사태였다. 아일랜드 감자 기근은 유럽에서는 예외적으로 감자라는 하나의 작물에 의존했고, 감자의 질병이 확산된 때문이었다. 다른 섬이 민족지학적으로 다른 정부가 지배하며, 아일랜드의 기근에 비효율적이고 시큰둥하게 대응한 결과로 아일랜드 섬에 기근이 닥쳤던 것이다.


p658~659 똑같은 비전염성 질병들이 전통 사회에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전통 사회로부터 삶과 죽음의 가치에 대하여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전통 사회에서 배워야 하는 ‘전통적으로 사는 방법’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전통적인 삶에도 우리가 결코 모방하고 싶지 않은 면들이 있다. 폭력의 악순환, 작은 기근, 감염병으로 인한 짧은 수명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통 사회 사람들을 비전염성 질병들로부터 지켜주었던 부분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런 바람직한 부분들 중 일부는 이미 명백하게 밝혀졌지만, 여전히 논란이 분분한 부분들도 적지 않다.


p659~660 비전염성 질병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질 수밖에 없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우리 인간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낸 유일한 생명체이다. 따라서 순전히 우리 힘만으로 생활방식을 바꿀 수 있다. 특정한 유전자와 특정한 질병의 관계를 연구해서 어떤 특정 유전자가 우리 개개인을 특정한 질병에 걸리게 하는지 알아내려는 분자생물학의 연구에서 큰 도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_마침내, 문명 대탐사의 종착지에 서다


p665 미국과 뉴기니를 오가며 50년을 보낸 덕분에 나는 어느덧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나름의 타협책을 찾아냈다. 물리적으로 미국과 다른 산업국가에서 내 시간의 약 93퍼센트를 보내고, 뉴기니에서 나머지 7퍼센트를 보낸다. 정서적으로는 내 몸이 미국에 있을 때에도 내 시간과 생각의 많은 부분을 뉴기니에 쏟는다. 뉴기니의 강렬한 인상은 떨쳐내고 싶어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예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뉴기니에 있을 때는 잠시나마 세상을 생생한 천연색으로 보는 기분이다. 바깥 세상은 희색이지만…….


p666 전통적인 삶을 절대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대 세계에도 막대한 장점이 있다. 서구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금속 연장과 건강, 물질적인 안락, 국가가 강요하는 평화로부터 떼지어 탈출해서, 목가적인 수렵채집인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오리혀 전통적인 생활방식대로 살아가던 소규모 사회의 수렵채집인들과 농경인들이 서구화된 생활방식을 알게 된 후에는 현대 세계에 어떻게든 들어오려고 애쓰는 게 현실이다. 그들이 현대 세계의 일원이 되려고 애쓰는 이유는 자명하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보장해주는 물건들과 삶의 시설들, 교육을 받고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기회, 의사와 병원이 제공하는 양질의 건강과 효과적인 의학 다른 사람의 폭력과 환경적인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인 안전, 안정된 식량 공급과 장수, 유아의 낮은 사망률 등이 이유이다. 물론 현대화된 모든 전통 마을과, 도시로 이주한 모든 전통 사회 사람이 그처럼 원하던 이점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일부가 그런 꿈같은 소망을 이루지만, 많은 마을 사람이 그 일부가 누리는 혜택을 보고, 자신들도 그런 꿈을 이루기를 염원한다.


p667~668 전통 사회의 불안정과 위험과 불편함을 몸으로 겪으며 살았던 사람들이 언급한 서구식 생활방식의 분명하고 구체적인 장점들이다.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이미 충족된 마을에서 자라며 그런대로 교육받은 뉴기니 친구들은 미국식 삶의 다른 부분들을 동경하며, 구체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장점들까지 언급했다. 그들은 정보의 접근성,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여성의 권리 등을 언급했다. 한 뉴기니 친구는 미국식 삶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익명성’이라고 말하며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 친구는 뉴기니의 삶을 정서적으로 충만하게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개개인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사회적 유대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뜻하는 게 익명성이라고 말했다. 그 친구에게 익명성은 혼자 있는 자유, 사생활을 즐기는 자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자유,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자유,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하는 자유, 주변의 압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를 뜻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의 노천 까페에 앉아 있어도 지인들이 달려와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아 편안히 신문을 읽는 자유를 뜻한다. 익명성은 뉴기니 사람들처럼 자신의 소득을 모든 친척과 공유해야 한다는 의무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자기계발을 인정하는 미국의 자유를 뜻한다.


p668~669 가장 자주 언급되는 동시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평생 지속되는 사회적 유대감이다. 외로움과 소외는 전통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이다. 전통 사회 사람들은 태어난 곳에서, 혹은 그 부분에서 평생을 보내고, 친척들과 어린시절 친구들이 언제나 주변에 있다. 구성원이 수백 명을 넘지 않는 부족사회와 무리사회 같은 소규모 사회에는 낯선 사람이 없다.


p669 아프리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한 미국인 친구는 “아프리카의 삶은 물질적으로 빈곤하지만 사회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풍요롭다. 그러나 미국의 삶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사회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빈곤하다.”라고 말했다. 시간의 압박, 일정의 제약, 스트레스 수준, 경쟁도 전통 사회보다 서구 사회에서 심하다고 자주 거론되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전통 사회의 특징들이 현대 산업사회의 많은 부부에, 특히 농촌 지역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농촌 지역에서는 지금도 모두가 서로 알고 지내며, 대부분이 태어난 곳 근처에서 평생을 보낸다.


p672~673 여기 미국에 와서 정말 히든 건 끊임없이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입니다. 오후에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즐길 여유도 없습니다. 그런 여유는 돈을 벌 기회를 낭비하는 것이어서 죄책감까지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커피 한 잔을 즐기지도 못한 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저축하지는 않습니다. 돈이 많이 드는 사치스런 삶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끝없이 더 많이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미국은 일과 휴식, 혹은 여유에서 균형을 찾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뉴기니에서는 한낮에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늦은 오후가 돼서야 다시 문을 엽니다. 미국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p673 나는 미국에서 동료들에게 도덕적 기준이 없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다원적 사회여서 옳고 그른 것을 가릴 만한 분명한 기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뉴기니에서는 옳은 것이 존재하고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됩니다.


p674 미국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다른 세상을 알고 이해하려는 면에서는 젬병입니다. 조심스레 세우고, 스스로 선택한 무지의 벽에 안전하게 갇혀 지내는 것 같습니다.


p675~676 어제의 세계에는 우리에게 반감을 일으키지 않는 특징들, 오히려 닮고 싶은 특징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저녁 식탁에서 음식에 소금을 뿌리지 않는 관습 같은 특징들은,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든 간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쉽게 적용해볼 수 있는 특징이다. 반면에 우리가 부럽게 생각하지만, 사회 전체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특징들도 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을 미국식으로 키우는 환경에서 내 아이만을 뉴기니 아이처럼 키울 수는 없지 않은가. 전통 사회의 바람직한 특징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결정과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이처럼 우리가 어제의 세계에서 동경하는 특징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개인의 결심만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결심이 필요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먼저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있다.


p677 사회 전체가 변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전통 사회의 장점을 본받아 우리가 개인적으로 혹은 집안에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자식들을 이중언어 사용자나 다중언어 사용자로 키우는 것이다. 많은 미국인이 마음만 먹으면 자식을 이중언어 사용자로 키울 수 있었지만, 두 언어를 동시에 들으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 때문에 자제해왔다. 이중언어 사용은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기는커녕 아이들의 사고력을 향상하고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게 밝혀졌다.


p679 종교에 대한 자세도 우리가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야이다. 많은 사람이 삶의 과정에서 어려운 시기를 맞으면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재평가한다. 이런 경우에는 종교의 선택이, 단순히 우리가 진실이라고 판단한 형이상학적 믿음을 받아들인 것이거나 거짓이라고 판단한 믿음들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한층 넓고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p681 노인의 위상도 개인적인 결정과 사회적인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노인이 점점 증가하는 세계에서, 노인은 손자들을 정성껏 돌봄으로써 일하는 자녀에게 양육의 부담을 덜어주고 손자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자신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다. 현재 30세에서 60세 사이에 있는 부모들 중에는 노인이 되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자식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대할까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늙은 부모를 어떻게 보살피는지 자식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보살핌을 주는 연령을 주는 연령을 지나 보살핌을 받는 시기가 되면, 우리 자식들은 우리가 늙은 부모를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해낼 것이고, 우리를 본보기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p682 사회 전체가 변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당장이라도 개별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전통 사회의 특징, 즉 천천히 먹고 유아기에 이중언어를 가르치는 방법과 달리, 전통 사회 사법제도의 장점과 국가사법제도의 장점을 결합하려면 사호적인 결정이 필요하다. 나는 앞에서 회복적 사법가 중재라는 두 가지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물론 어느 것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둘 모두가 어떤 상황에서는 유용하지만, 전혀 적용되지 않는 상황도 있다. 전통 사회의 장점인 회복적 사법과 중재를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면 우리 사법체제의 정책적인 결정이 필요하다. 당신이 두 메커니즘에서 유용한 가치를 보았다면 당신의 역할은 두 메커니즘을 우리 사법체제에 도입하는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지, 혼자서 도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이 언젠가 사적인 분쟁에 휘말린다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중재와 감정의 해소 및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는 뉴기니 방식을 혼자서라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 ‘어제까지의 세계’목차 및 전체적 뼈대


프롤로그_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아서

 

1부 친구와 적

1장_공간과 경계, 이방인과 장사꾼: 경계선│상호배타적인 영│비배타적인 땅의 사용│친구와 적과 이방인│첫 접촉│무역과 장사꾼│시장경제│전통적인 거래 형태│전통적인 거래 품목│누가 무엇을 거래하는가?│초소형 국가들

 

2부 평화와 전쟁

2장_사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보상: 어떤 사고│의식(儀式)│협상의 여러 가정들│국가의 역할│뉴기니의 보상 방법│평생의 관계│다른 비국가 사회들│국가의 권한│민사사법│민사사법의 결함│형사사법│회복적 사법│국가 사법제도의 강점과 결함

3장_작은 전쟁에 대하여: 다니족의 전쟁│전쟁 시간표│전쟁의 사망자 수

4장_많은 전쟁들: 전쟁의 정의│정보의 출처│전통적인 전쟁의 형태들│사망률│유사점과 차이점│전쟁은 어떻게 끝나는가│유럽과의 접촉이 미친 영향│호전적인 동물들, 평화적인 사람들│전통적인 전쟁의 동기│궁극적인 원인│누구와 싸우는 것인가?│진주만을 잊어라

 

3부 어린아이와 노인

5장_어떻게 키우는가: 양육법의 비교│분만│영아살해│젖떼기와 분만 간격│언제 수유하는가│아이와 어른의 접촉│아버지와 대리 부모│우는 아기를 어떻게 대하는가│체벌│아이의 자주성│복합연령 놀이집단│놀이와 교육│그들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6장_노인의 대우: 누가 노인인가?│노인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왜 버리거나 죽이는가?│노인의 유용성│사회의 가치관│사회의 관례│오늘날은 어떤가, 더 나아졌는가 더 나빠졌는가?│노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4부 위험과 대처

7장_건설적인 편집증: 위험을 대하는 자세│한밤의 방문객│보트 사고│땅바닥에 꽂힌 나뭇가지의 정체│위험을 무릅쓰고│위험과 수다

8장_사자와 다른 위험들: 전통 사회의 삶에서 위험한 것들│사고들│경계심│인간의 폭력│질병│질병에 대한 대응│기아│예측할 수 없는 식량난│생산지의 분산│계절적 특징과 식량난│식용 식품의 확대│결집과 분산│위험에 대한 대응

 

5부 종교와 언어 그리고 건강

9장_전기뱀장어는 종교의 진화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종교에 대한 여러 의문들│종교의 정의│종교의 기능과 전기뱀장어│인과관계를 찾아서│초자연적인 믿음│종교의 설명적 기능│불안감의 완화│위안의 제공│조직과 순종│이방인을 대하는 행동 규범│전쟁의 정당화│헌신으로 얻는 ‘훈장’│종교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종교의 기능 변화

10장_여러 언어로 말하기: 다중언어│세계의 언어들│언어는 어떻게 진화하는가?│언어 다양성의 지형도│전통 사회의 다중언어│이중언어의 이점│알츠하이머병│사라지는 언어들│언어는 어떻게 사라지는가?│소수집단 언어는 해로운가? │왜 언어를 보존해야 하는가?│어떻게 해야 언어를 보호할 수 있을까?

11장_염분과 당분, 비만과 나태: 비전염성 질병│염분 섭취│염분과 혈압│고혈압의 원인│염분은 어디에 있는가│당뇨병│당뇨병의 유형│유전자와 환경 그리고 당뇨병│피마족과 나우루 섬사람들│인도의 당뇨병│유전자와 당뇨병│왜 유럽인들은 당뇨병 유병률이 낮을까?│비전염성 질병의 미래

 

에필로그_마침내, 문명 대탐사의 종착지에 서다

옮긴이의 글_인류의 희망에 관한 보고서

참고문헌


『어제까지의 세계』는 저자가 남태평양의 뉴기니섬에서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까지 전 세계 곳곳을 탐사하며 어제와 오늘의 세계, 전통과 현대 사회를 비교분석한 책이다. 저자가 이 책에 대한 주제와 이 책의 구성에 대해 소개한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주제는 지난 50년간 내 연구의 주된 목표였다. 1964년부터 나는 뉴기니 섬에서 연구를 했다. 그곳에는 중앙 정부도 없고, 법정도 없으며, 우리의 삶의 방식과는 매우 다른 전통 사회의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들은 분쟁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며, 위험에 대해 다른 태도들을 취하며, 아이들을 다른 방식으로 키우며, 노인들을 다르게 대우하며, 건강을 대하는 태도 또한 매우 달랐다. 그 방식들 중 어떤 것들은 나를 소름끼치게 했다.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매우 훌륭했다. 이 책은 내가 뉴기니에서 나의 친구들에게 배운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한 내 연구의 해답이 그곳에 있었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이 책은 5부 11장으로 구성되고 에필로그가 더해졌다. 1부는 1장으로만 이루어지며, 전통 사회가 어떻게 공간을 분할하는지 설명함으로써 뒤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의 기초적인 발판을 놓는다.

 2부는 2~4장으로 이루어지며 분쟁 해결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중앙집권화된 국가 정부와 사법제도가 없기 때문에 소규모 전통사회들은 두 방법 중 하나로 분쟁을 해결한다. 국가 형태를 띤 사회의 분쟁 해결 방법에 비하여 하나는 더 타협적이고 다른 하나는 더 폭력적이다.

 3부는 5장과 6장으로 구성되며 인간의 생명주기에서 양극단에 위치한 어린시절(5장)과 노년(6장)이 다루어진다. 전통 사회의 양육방식은 대부분의 국가 사회에서 용납되는 수준보다 억압적인 관습을 지닌 사회부터 다소 방임적인 관습을 지닌 사회까지 무척 다양하다. 하지만 전통 사회의 양육법을 조사한 자료들에서 자주 언급되는 관습들이 있다. 노인의 대우에 대해 살펴보면, 일부 전통 사회, 특히 유목 사회 혹은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회는 노인을 등한시하거나 버리고,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반면에 서구화된 사회보다 노인에게 더 만족스럽고 생산적 삶을 제공하는 전통 사회도 있다.

 4부는 7장과 8장으로 이루어지고, 여기에서는 위험과 그에 대한 반응이 다루어진다. 7장에서는 저자가 뉴기니에서 실제로 겪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세 가지 위험한 경험이 소개되고, 아울러 전통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일반적인 마음가짐으로부터 배운 교훈을 더붙인다.

 마지막 5부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현시대에 들어 급속히 변하는 세가지 주제인 종교, 언어의 다양성, 건강이 차례로 다루어진다.

 에필로그에서는 프롤로그를 시작했던 공항에서의 감정적인 회상을 기술했다.


■ 감동적인 장절


 마지막 5부, 10장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현시대에 들어 급속히 변하는 주제인 언어의 다양성을 다루고 있다. 세계의 언어가 왜 다양한 특징을 가지는가, 그리고 다중언어와 이중언어, 단일언어 들에 대해 살퍄보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소멸해가는 소수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언어가 소멸되는 것이 당연하가를 묻고 있다. 이중언어 사용이 필요하고 그것이 인간에게, 뇌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한들 소수민족만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이유로 그것의 효용성이나 필요성을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그들의 생활방식이고 사고방식이다. 인간의 언어는 단순한 소통을 넘어서는 부분이다. 이런 언어가 세계의 빠른 흐름을 위해 편리에 의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논리인가.

 그가 접근하는 전통사회의, 소수민족의 언어에 대한 논의는 언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입장에서, 소수(?)언어가 되어 내 모국어가 사라질까봐 염려스러운 나의 마음을 불질러 놓는다.

 

■ 보완점


 이 책의 결론은 단순하다. 미래의 삶을 지속가능한 가치를 찾아 가기 위한 방법을 전통 사회의 가치에서 찾는다. 한마디로 어제의 세계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저자는 그가 직접 체험한 원주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꺼내든다. 사례가 들어간 이야기는 조금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되고 또한 호기심을 가지게 한다.

 저자는 자신이 가본 전통사회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나 그 애정을 맹목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 세계에 대한 자신의 주관과 객관을 적절하게 버무리고 있다. 그리하여 맹목적인 전통 사회의 동경을 주고 있진 않다. 또한 전통 사회를 낭만으로 바라볼 것이 아님을 경고하는 것도 있지 않고 있다.

 방대한 분량에 비해 책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그러면서도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있다. 이야기가 모지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전통 사회의 이야기들도 생각보다 작게 버무러져 있다. 보다 알지 못한 전통 사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저자는 자시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속에 적절하게 끌어다 사례를 소개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저자가 경험한 세계에 대한 맹목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고 저자가 주장하는 가치를 설명하기 위한 소재의 예로 녹여들 뿐이다. 그 지점이 감칠맛 난다.

 그런데 우리가 미래 사회 속에서 좀더 숙고하기 위한 가치를 전통 사회 속에서 찾아내는데 그가 정리하고 있는 이야기의 목차는 왜 이런가 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니까 싶지만 그 구성이 용두사미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가. 각 장이 독립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좀 어색하다. 삶의 방식의 문제의 중요성이 자의적이긴 하지만, 저자가 바라보는 중요성과 내가 바라보는 중요성이 차이가 있다. 왜 저자는 하필 이런 것들을 뽑았을까, 의문이 든다. 그리고 필요하고 중요한 이야기가 빠진 듯한 느낌도 든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맥락을 사회적인 가치와 내면적인 가치, 가족적인 부분 등으로 정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 스스로도 이야기했듯이 얘기를 하자면 2천페이지가 넘을 거고 그러면 아무도 안 읽을 거라서 추렸다고 했는데 그가 인류에게 필요한 핵심적인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더 열거되어 제대로 정리가 되었으면 한다. 4장의 위험과 대처라는 부분 역시도 전쟁의 위험, 건강의 위험 이런 부분들과 엮일 수도 있다. 내용의 초점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논의의 전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1) 안희경

IP *.85.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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