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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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1■
도미노
“닮았어. 그 주인공을 보면 네가 생각나.” “글쎄, 그래?” 친구가 말한 주인공에 무덤덤했던 난 가슴 떨리는 환호를 하진 않았다. 딱히 무엇이 그런 생각을 들게 했는지 묻질 않은 채 그저 그 애가 그즈음 그 책을 읽었겠거니 했다. 이후로 몇 번 그 책을 읽었는데,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인지 주인공은 나와 더욱 더 멀어보였다. 굳이 무엇이 나와 닮았는지를 찾을 필요까지야. 그렇게 무엇과, 누구와 닮았다는 이야긴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한번씩은 듣는 이야기인걸. |
“네 이번 생은, 실패구나” “그래.” 내 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도, “웃기고 있네!”라고 쏘아주지도 않은 채 그렇다라는 대답이 튀어나갔다. 글로 쓰여진 ‘그래’는 너무도 단정적이어서 올곧이 실패를 뒤짚어 쓴 기분이다. 분명 말과 말이 오간 사이에는 자조적인 대답이었을 테지만, 역시 조금의 부정섞인 반항도 있었던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이번 생의 모습이 규정되어버리는 건가. |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마침 흘러나오는 노래가사에 멈칫하면서도 괜시리 시비를 건다. 그럼, 당연하지. 네가 누구인지 다른 사람이 말해 줄 의무는 없는 거지. 물론, 이렇다 저렇다 말하려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긴 하지. 그들은 또 그것을 진정으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술자리에서의 가벼운 안주거리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를 잘 아는 것은 나여야 하지. 왜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입을 통해 알려 하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우선 나여야 하는. |
어릴 적, 도미노 게임을 즐겼다. 게임을 할 수 있는 블록이 가득했던 것도 아니지만, 지우개 몇 개를 모아, 세울 수 있는 것들을 모아 모아, 끌어다 세웠다. 블록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러나 그만큼 더디다. 세워야 하는 블록이 많은 만큼 실수는 잦아지고 인내는 길어진다. 바짝 긴장한 채 숨 한번에도 날라가는 블록을 지키기 위해 작은 아이의 손가락은 더욱 세심해졌다. 그리고, 최후의 한방. 손가락을 튕기면 촤르르 쓰러지는 블록들을 보며 통쾌함을 재미를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게임보다 피자 이름이 더 먼저 생각나는 도・미・노. |
모든 것은 순환. 인생, 것도 순환.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지배한다. 삶은 끝없는 연속성. 내가 세운 블록 하나 하나가 나의 전체 도미노를 좌우한다. 나는 어디에 얼마만큼의 간격으로 어떤 모양으로 블록을 놓을 것인지를 게임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알아간다. 지금 나는 어디쯤에 와 있는가. 조금 더 살다 보면 어디에 생의 조각을 놓아야 할지 더 잘게 될까. 아닌 듯해도 어떤 말들은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뒤를 따르고 있었을 것이다. 도미노 블록같은 생의 단면들을 돌이키며 내가 놓는 블록의 위치를 되새겨본다. 일상을 살아가다 문득 네 삶이 실패라고 말한 목소리가 누구였던가. 소설 속 여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던 친구가 느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정말 나는 알아채지 못했던가. |
지금에 와서야 소설 속 여주인공과 나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명확히 느낀다. 그리고 과거의 내가 그녀와 닮아 있음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알 듯하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내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음을. 나는 여전히 도미노 게임을 하는 모양이다. 제 손으로 쓰러뜨리기 위해 다시 일으켜 세우는 블록. 오늘 내가 놓고 있는 이 블록은, 쓰러짐의 한방을 위한 것일까. 인내를 모아가기 위한 하나일까.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지만, 굳이 쓰러뜨리자고 블록을 다시 세우고 깔끔이 쓰러뜨리는 것이. 게임 승리의 공식인 것에 흔들, 건들해진다. 통쾌함을 느끼고 싶다면, 지난 실패의 블록만을 모아다 세워봄이 어떨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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