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232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꽃씨
문병란
가을날
빈손에 받아 든 작은 꽃씨 한 알!
그 숱한 잎이며 꽃이며
찬란한 빛깔이 사라진 다음
오직 한 알의 작은 꽃씨 속에 모여든 가을
빛나는 여름의 오후,
핏빛 꽃들의 몸부림이며
뜨거운 노을의 입김이 여물어
하나의 무게로 만져지는 것일까.
비애의 껍질을 모아 불태워 버리면
갑자기 뜰이 넓어 가는 가을날
내 마음 어느 깊이에서도
고이 여물어 가는 빛나는 외로움!
오늘은 한 알의 꽃씨를 골라
기인 기다림의 창변에
화려한 어젯날의 대화를 믿는다.
-----
꽃씨를 거두었다. 토종 씨앗을 모아 보려는 의도이고 봉지봉지 담아 나눠줄 생각이다. 분꽃의 씨앗은 팥만한데 폭탄을 축소해 놓은 듯 생겼고, 나팔꽃은 꽃을 본 기억보다 더 많은 씨앗을 맺어 당혹스럽게 한다. 맨드라미와 채송화 씨앗은 손금 안에 들어가면 사라질 정도로 존재감 없지만 훌륭한 씨앗이다. 씨앗을 거둔다는 것은 이미 아름다운 초원을 가진다 것.
씨앗, 고녀석! 나도 한동안은 모든걸 싸 들고 씨앗 속에 들어가 잠자듯 나를 품고 있고 싶다. 그러다 늦되더라도, 때가 되면, 언젠가는, 반드시, 싹을 틔우고 마는 씨앗처럼 나오고 싶다.
11월 13일, 이십여 년 전 그날처럼 날이 참 좋다. 그러니 얘야, 꽃씨를 따는 심정으로 활자 사이를 거닐길 바란다. 이미 너는 훌륭한 씨앗이고 아름다운 꽃밭을 가진 것이니.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06 | [영원의 시 한편] 환영사 | 정야 | 2014.11.05 | 2017 |
205 | [영원의 시 한편] 보이지 않는 파동 | 정야 | 2014.11.06 | 1884 |
204 | [영원의 시 한편] 시간 | 정야 | 2014.11.07 | 1971 |
203 | [영원의 시 한편]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 정야 | 2014.11.08 | 2183 |
202 | [영원의 시 한편]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 정야 | 2014.11.10 | 2435 |
201 | [영원의 시 한편] 그리움의 시 | 정야 | 2014.11.11 | 2635 |
» | [영원의 시 한편] 꽃씨 | 정야 | 2014.11.12 | 2323 |
199 | [영원의 시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만나라 | 정야 | 2014.11.13 | 2145 |
198 | [영원의 시 한편] 히말라야의 독수리들 [1] | 정야 | 2014.11.15 | 2396 |
197 | [영원의 시 한편] 산길에서 만난 여우 [2] | 정야 | 2014.11.15 | 2097 |
196 | [영원의 시 한편] 와유臥遊 | 정야 | 2014.11.17 | 2315 |
195 | [영원의 시 한편] 세 송이의 꽃 | 정야 | 2014.11.18 | 2209 |
194 | [영원의 시 한편] 낙화유수落花流水 | 정야 | 2014.11.19 | 3217 |
193 | [영원의 시 한편] 따뜻한 슬픔 [2] | 정야 | 2014.11.20 | 2341 |
192 | [영원의 시 한편] 호수 1 | 정야 | 2014.11.21 | 2333 |
191 | [영원의 시 한편] 목마와 숙녀 [2] | 정야 | 2014.11.22 | 2404 |
190 | [영원의 시 한편] 후회하는 나 | 정야 | 2014.11.25 | 3346 |
189 | [영원의 시 한편] 도망가는 연인 | 정야 | 2014.11.26 | 2336 |
188 | [영원의 시 한편] 인연서설 | 정야 | 2014.11.27 | 2439 |
187 | [영원의 시 한편] 11월의 나무 | 정야 | 2014.11.28 | 22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