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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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매니아 열전2, 차백성편_구달칼럼#31
“자전거여행은 여행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인 도구를 가지고 적당한 속도로 가보고 싶은 곳에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자전거여행은 삶의 축소판입니다, 이 여행은 자신만을 위한 여행이 아닌 남들에게 어떤 정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가 더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자전거 여행을 지속하는 목적이나 의미, 이유가 됩니다.”라고 말하는 차백성은 연봉 1억 원의 상무 자리와 25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선택한 남자다. 1951년생이니 올해 63세로 자전거에 몸을 싣고 전 세계10만km 이상을 달려온 지 올해로 14년째다. 그는 우리나라 1세대 자전거 여행가이자 자전거 여행 작가, 칼럼니스트다. 현재 여행은 물론 책과 칼럼 집필, 강연으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자전거 라이딩 이력은 그가 쓴 3권의 책에 오롯이 다 담겨있다.
차백성이 첫 여행에서 ‘극기(克己)’를 주제로 시애틀에서 샌디에고까지 3,000km를 하루 100km씩 한 달 동안 달려 미국 서부 해안을 종주했다. 바람, 고독과 싸우고 가도 가도 끝없는 지평선뿐인 길을 달리며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웠다. 휘몰아치는 태평양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장 먼저 이겨야 할 대상은 바로 ‘자신’이었다. 2막 인생의 초두에서 자신과의 진솔한 만남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혼자다. 그는 북미대륙과 하와이의 7천㎞ 자전거 여행기를 담은 책 <아메리카 로드>를 2008년에 내 놓았는데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일본도 자전거로 섭렵한다. 일본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5000㎞를 80일간 종주하며 일본 속에 있는 한민족의 흔적을 찾아가는 ‘역사 순례’를 테마로 삼았다. 쓰시마섬을 돌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숨결을 찾아내고, 조선시대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 루트를 따라가기도 했다. 또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도예가의 14대 후손인 심수관 옹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2010년에 일본 자전거 여행기인 <재팬 로드>를 펴냈고, 이어 유럽으로 무대를 옮긴다.
그는 올해 2014년 6월에 <유럽 로드>를 펴냈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아일랜드,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8개국 6,000km를 100일 동안 자전거로 달리며 문화, 예술,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유럽을 돌아보며 ‘우리’를 반추하는 ‘진짜 여행’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열정과 도전, 사색과 성찰이 있는 여행, 깨알 같은 여행의 재미와 지적 호기심을 동시에 채워주는 이번 여행의 테마는 문화기행이었다.
그는 내년엔 아프리카 자전거 종단을 계획하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까지 1만3천㎞의 6개월 걸리는 여정이다. “자전거 여행을 위해 여정을 꾸리려면 심장이 ‘꿍꿍’ 뜁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온몸을 감싸곤 해요.” 영원한 청춘인 그의 말이다.
차백성은 이미 미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뉴질랜드, 유럽등을 여행했다. 특히 여행을 계획할 때 마다 한 가지씩의 컨셉을 잡아 자신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여행담을 담아오는 여행 방식은 그의 전매특허다. '테마가 있는 세계 자전거 여행'이 곧 ‘차백성’표 자전거 여행의 차별성이다. 자기 세계를 가진 그는 말한다. “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좋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 더 기대됩니다. 인생 후반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진심일 것이다.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13년 전이었다. 당시 나이 50. 대우건설 공채 1기로 입사해 직장생활 25년을 하며 연봉 1억 원의 상무이사였다. 나이에 밀려서 직장생활을 마치는 ‘비참함’을 미리 피하고 싶었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꿈꾸던 ‘나만의 행복’을 찾고 싶었다. 바로 자전거를 타고 하는 세계일주였다. 더 이상 늦추었다가는 다리 힘이 빠져 시도도 못할 것 같았다. 다행히 가족들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6개월을 준비했다. 첫 번째 목표는 미국 대륙 남북 종단이었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시애틀부터 시작해 남쪽으로 내려와 멕시코 국경인 샌디에고까지 3000㎞의 대장정이다.”
차백성의 인생전환 스토리이다. 그는 고교 1학년 때 서울에서 고향인 대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본 적이 있다. 자갈투성이였던 비포장 국도를 타고 3박4일 동안 달렸다. 가슴속에 한가지 꿈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언젠가는 자전거로 세계를 누벼야지.’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멋지게 잘 살다가 후회 없이 잘 죽어야 한다는 다짐도 한몫 했다. 무언가 조금 빠르다 싶을 때, 아직 좀 부족하다 싶을 때, 시작하거나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함은 인생사의 철칙입니다.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입니다. 회사를 그만둘 무렵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일 가까운 이들과 상의하고 설득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밀어부친 꿈은 의미 없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태껏 직장에 매여있다가 인생 2막을 펼치려는 중년의 전환코드로 자전거 여행가만한 것도 드물 것이다. 물론 자신의 자전거 여행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남들과는 차별화된 자전거 여행가가 되는 것이 관건이다. 내 여행의 컨셉을 무엇으로 가져 갈 것인가? 이것이 핵심이다.
한 때, 내가 자전거 여행가가 되겠다고 말했을 때 한명석 선생님이 차백성을 거론했다. 이제야 비로소 그의 책을 읽고 그의 인생전환 이야기를 소상히 접하게 되니 그와 내가 무척 많이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려서 김찬삼 세계여행기를 읽고 여행가가 되겠다고 작정한 것이나, 고등학생일 때 서울서 대구까지 자전거로 여행한 것(난 부산서 경주까지 자전거로 갔다.)까지.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지금 그는 여행가이지만 나는 여전히 몽상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김찬삼 여행기를 읽고 세계여행을 꿈꾼 자가 어찌 우리뿐이겠는가? 수 없는 청소년들이 같은 꿈을 꾸어도 그 꿈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차백성과 같은 극소수의 사람에 불과하다.
그의 열정과 실행력에 접속한 것이 그에게 배운 최고의 가치다. 여행을 가기 전에 테마를 정하고 관련된 공부를 무지 한 다음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여행작가로서 배워야 할 필수 대목이다. 그가 나이 들면 체력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여 49세 되던 해에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길에 올랐는데 그 후 14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는 여전히 강력한 체력의 보유자로 6개월 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자전거는 타면 탈수록 나이와는 상관없이 체력이 강해지나 보다.
그래도 내가 그에게 감탄하며 앞으로 행해질 나의 여행에 풀어야 할 문제가 3가지 있다. 첫째가 30kg의 짐을 지고 수없이 반복되는 업힐을 넘어가는 강력한 체력과 텐트를 치고 야영할 때의 추위를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문제다. 국내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업힐은 맨몸으로도 넘기 힘든 고역이었다. 그리고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텐트 속의 야영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그의 체력은 가히 상상이 안 된다. 둘째로 길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종이 지도도 필요하지만 GPS활용법을 배워가야 할 것이다. 실크로드 사막 오지에서도 GPS 하나로 거뜬하게 길을 찾아간 전설의 라이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끝으로 오지에서 홀로 지내는 담력의 문제이다. 한 번도 혼자 야영해 본 적이 없으니 이것도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야생동물이나 개의 습격에 대처하는 것들은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재미있었지만 당시 당한 저자로서는 생사의 문제였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잘 참작하여 내게 맞는 여행방법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