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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8일 15시 27분 등록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 열린 책들

 

1.   저자에 대하여

 

생략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조르바를 만나 갈탄 광산을 위해 크레타섬으로 들어가서 이런 저런 일을 겪고, 헤어지고, 편지를 주고 받고, 나중에는 죽었다는 편지와 산투르를 남겼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를 기록하고 싶은 욕망을 실현한 이야기를 적었다.

 

2)   장점 및 보완점

 

조르바가 그리울 것 같다. 단순하고 따뜻하고 행동하는, 땅에 두 발을 딛고 선 생명력 가득한 사나이.

 

3)   감동적인 장절

 

8기 동기들과 같이 읽기로 해서 <영혼의 자서전을 우연히 읽었다. 그 자서전이 <그리스인 조르바>에게 내 손을 넘겨주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이 소설을 읽었다. 이 시점에 조르바가 나에게 해 주는 말은 무언가? 나는 조르바가 몸과 땅과 현세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추상적이고 멀리 떨어진 아폴론적인 남성과는 매우 다르다. 두 가지 관점에서 조르바를 보았다. 남성 안의 두 가지, 서로 만나고 회복되어야 할 남성 중 하나. 또 하나는 굳이 성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현재에 충실한 사람현존하는 사람이었다. 첫 책에 대한 고민이 있어 내게는 조르바와 만나 갈탄광산을 일구는 동안 카잔차키스가 써내려간 소설 붓다의 창작과정이 눈에 띄었다. 감동적인 장절을 꼽자면 주로 그 두 부분이다. 현재에 충실한 조르바의 모습, 그리고 창작 과정

 

391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고 있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다른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 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부불리나가 살아 있을 동안 말입니다. 어느 카나바로도 나만큼 그 여자를 기쁘게 해 준 사람은 없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니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 훈장이나 마누라나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

 

398 지금까지 나는 내 속에 든 악마가 하는 대로 내버려뒀습니다. 무슨 짓을 하건 그냥 뒀지요. 혹자는 나를 엉큼하다, 혹자는 정직하다, 어느 놈은 날보고 게으르다, 어느 놈은 솔로몬처럼 지헤롭다고 하는 건 다 그 때문이지요. 나는 그치들이 말한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일겁니다.

 

 

22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그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나는 곡괭이와 산투르를 함께 다룰 수 있는 그의 손을 보았다.

 

139 그는 울타리 곁을 지나다 갓 핀 수선화 한 송이를 꺽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그 꽃을 들여다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수선화를 생전 처음으로 보는 사람처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더니 한숨까지 쉬었다. 그는 꽃을 내게 건네주었다.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52 “시장하지 않으시다. 하지만 아침부터 아무 것도 안 들지 않았어요?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그걸 가엾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 먹을 걸 좀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나는 당시 육신의 쾌락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가능하면, 먹어도 부끄러운 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먹어 치웠다.

 

77 매일밤 조르바는 나를 그리스, 불가리아, 콘스탄티노플 구석구석으로 데려다 준다. 나는 눈을 감고 본다. 그는 난장판이 된 발칸 반도를 돌아다니며 늘 경이로 반짝이는 조그만 실눈으로 모든 것을 샅샅이 보고 온 사람이다. 우리에게 버릇 들게 된 것들, 예사로 보아 넘기는 사실들도 조르바 앞에서는 무서운 수수께끼로 떠오른다.

 

108 나라는 놈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어요. 내 속에는 소리치는 악마가 한 마리 있어서 나는 그놈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면 이 놈이 소리칩니다. “춤취그러면 나는 춤을 춥니다. 그러면 숨통이 좀 뚫리지요. 칼키디체에서 우리 꼬마 디미트라키가 죽었을 땝니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조금 전처럼 춤을 추었지요. 친척과 친구들이 시체 앞에서 춤추는 나를 말렸어요. “조르바가 돌아버렸다. 미쳐 버렸다.” 그 사람들이 웅성거리더군요. 하지만 춤을 추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미치고 말았을 겁니다. 너무 슬퍼서죠. 그게 내 첫아들인데다, 세 살 때 죽어 나로서는 견딜 수가 없었지요.

춤을 추어 기쁨과 슬픔을 다 표현할 수 있구나. 노래도 그러리라. 그러니 슬픈 이들에게서 노래와 춤 등 공연을 모두 제거하는 건 가혹한 일이었다.

 

111 나는 벌떡 일어서는 조르바를 보았다. 그는 옷을 벗어 자갈밭에다 던지고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희미한 달빛으로 나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그의 커다란 머리를 볼 수 있었다. 이따금 그는 소리를 지르다 개처럼 짓다 말처럼 힝힝거리다 수탉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이 텅빈 밤에 그의 영혼은 동물과 친화한 것이었다.

 

193 나는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며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것(여자, , , 고기, )이 유쾌학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215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두목 이따금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를 당신에게 보여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래입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기왕 갈 바에야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223 어린 아이처럼 그는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소리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 그리고 새의 신비는?”

 

259 어느라 롤라와 팔짱을 턱 끼고 산책을 나갔지요. 말이 팔짱이지 실은 손깍지를 끼고 말이요. 그런데 손바닥만한 것들이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이 잡것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이봐요. 할배, 거기 가는 할배, 여자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저 할배 유괴범 아냐?’ 롤라가 얼마나 창피했는가는 당신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나도 창피했지요. 그래서 그날 밤에 이발소로 달려가 털을 까많게 물들였습니다물을 들인 날부터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거에요. 당신도 내 머리가 아예 검어졌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따금 내가 여기 등이 쑤신다고 한 적이 있죠? 말씀히 나았어요. 그날부터는 아프지 않은 겁니다.

그는 롤라에게 돈을 밀어넣는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25살 정도된 여자와 결혼한다.

 

112 “오늘 새 갱도를 엽니다. 내가 아주 근사한 광맥을 잡았어요. 진짜 검은 다이아몬드예요.” 나가면서 그가 한 말이었다. 

나도 붓다에 대한 원고를 열었고, 나 역시 내 갱도를 파들어 갔다. 나는 하루 종일 썼다. 쓰면 쓸수록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내 감정은 안도, 긍지, 혐오감으로 착잡했다. 그러나 나는 원고를 끝내면 묶고 봉해 버리면 된다는 생각에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96 나는 급히 갈겨썼다. 붓다는 나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는 상징으로 가득 찬 푸른 댕기가 내 뇌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것을 확인했다. 댕기는 빠른 속도로 풀려 나왔다. 나는 따라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나는 썼다. 모든 것은 극히 간단했다. 쓰는 게 아니라 받아 적는 것이었다. 연민과 거부와 대기로 이루어진 전 세계가 내 앞에 나타났다. 붓다의 집, 후궁의 여인들, 황금마차, 세 번의 숙명적인 만남, 출가, 금욕 생활, 포교, 해탈, 땅은 노란 꽃으로 뒤덮였다. 가사를 입은 왕자들과 거지들, 나무와 육신은 가벼워졌다. 영혼은 바람이 되고 바람은 정신이 되었으며 정신은 무가 되었다….손가락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도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환상은 살같이 지나가며 사라졌다. 나는 그 환상을 따라잡아야 했다. 아침에 조르바는 원고에다 머리를 처박고 자는 나를 깨워야 했다.

받아적는다, 창작자가 아니라 창작의 도구로서 작가가 기능한다는 말을 여기서 또 듣네.

 

15 마침내 나는 준비를 했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원고 나부랭이를 뒤지던 내 눈에 미완성 원고가 들어왔다. 나는 그 원고를 집어 읽으며 망설였다. 2년간 내 존재의 심연에서는 하나의 욕망, 한 알의 씨앗이 태동해 왔다. 나는 내 내부를 파먹으며 익어 가고 있는 그 씨앗을 내 장부로 느껴 왔다. 씨앗은 자라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밖으로 나오려고 내 몸의 벽에 발길질을 시작했다. 내게 그것을 파괴할 용기는 더 이상 없었다. 정신적인 낙태는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언젠가 어디서인가 쓸모가 있을까 하여 네모 쳐둔 사례가 몇 개 있었다.

 

 

3.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5 마침내 나는 준비를 했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원고 나부랭이를 뒤지던 내 눈에 미완성 원고가 들어왔다. 나는 그 원고를 집어 읽으며 망설였다. 2년간 내 존재의 심연에서는 하나의 욕망, 한 알의 씨앗이 태동해 왔다. 나는 내 내부를 파먹으며 익어 가고 있는 그 씨앗을 내 장부로 느껴 왔다. 씨앗은 자라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밖으로 나오려고 내 몸의 벽에 발길질을 시작했다. 내게 그것을 파괴할 용기는 더 이상 없었다. 정신적인 낙태는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22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그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나는 곡괭이와 산투르를 함께 다룰 수 있는 그의 손을 보았다.

 

24 “기분 내키면 치겠지요. 내 말 듣고 있소? 마음 내키면 말이요.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제임케키코, 하사피코, 펜토잘리도 출 수 있소.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34 그렇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그때는 내 피가 뜨거웠어요. 도무지 라든지, ‘어째서같은 걸 생각해 볼 수가 없었어요. 사물을 제대로 보고 생각하려면 나남없이 나이 처먹어 분별이 좀 생기고 이빨도 좀 빠져야 합니다. 이빨 하나 없는 늙은이라면 안돼, 얘들아, 깨물면 못써하고 소리치긴 쉽습니다. 그러나 이빨 서른두 개가 말짱할 때는…. 사람이란 젊을 동안은 아주 야수 같은가 봐요. 그래요. 두목, 사람 잡아먹는 야수 말이요.

 

36 조르바가 주목으로 식탁을 치며 외쳤다. “그러면 씨앗은? 식물이 싹으로 돋아나려면 씨앗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내장 속에 그런 씨앗을 집어넣은 건 누구지요? 이 씨앗이 친절하고 정직한 곳에서는 왜 꽃을 피우지 못하지요? 왜 피와 더러운 거름을 필요로 하느냐는 겁니다.

 

49 걸음을 멈추었다. 나를 보자 처녀들의 웃음소리가 멎었다. 낯선 남자를 보는 그들의 표정은 불신으로 굳어졌다. 머리 끝에서 발치까지 그들의 태도는 돌연 방어 자세를 취하며 손가락은 팽팽하게 단추를 채운 블라우스 섶을 짜증스럽게 움켜잡았다. 공포가 그들의 피 속에서 출렁거렸다. 수 세기 동안 사라센인들로 이루어진 코르세르 해적은 이슬람 국가 정부의 승인 아래 이 아프리카에 면한 크레타 해안을 기습하여 기독교인드르이 양과 여자와 아이들을 납치하지 않았던가. 해적들은 붉은 혁대로 전리품을 묶어 선창에 처넣고는 알제리, 알렉산드리아, 베이푸트 등지에서 팔아넘겼다. 그 해변에서 물이 빠진 일이 없었으니 수 세기 동안 크레타 여자들의 곡소리는 끊일 날이 없었을 터이다. 나는 다가오는 처녀들에게서 밀집 대형의 장벽을 이룬 방어벽을 보았다. 옛날에 어쩔 수 없었지만 불필요해진 지금도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일종의 본능적인 방어행위였다. 과거의 필요가 여전히 그들의 행동 리듬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처녀들이 내 앞을 지나갈 때 나는 재빨리 길을 비쳐주며 웃어주었다. 그러자 처녀들은 그 턱없는 공포는 수백 년 전의 일이며 지금은 다른 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밀집 대형을 풀고는 상냥하게 인사까지 하고 지나갔다. 마침 수녀원의 종소리가 들려 주위를 즐거운 소리로 가득 차게 했다.

 

52 “시장하지 않으시다. 하지만 아침부터 아무 것도 안 들지 않았어요?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그걸 가엾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 먹을 걸 좀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나는 당시 육신의 쾌락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가능하면, 먹어도 부끄러운 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먹어 치웠다.

 

64 조르바는 후끈 달아 있었다. 왼손으로는 수염을 꼬고 있었고 오른손은 술과 추억에 취한 여가수를 더듬었다. 말은 더듬었고 눈은 게슴츠레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쪼글쪼글하고 늙고 화장이 천박한 늙은 여자가 아니라 그가 입버릇처럼 여자를 부를 때 쓰는 암컷이었다. 인격으로서의 여자는 사라지고, 젊든 늙든, 아름답든 추하든(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식에 불과했다.)용모는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여자 뒤에는 위엄이 있고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조르바가 보고 말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얼굴이었다. 오르탕스부인은 덧없는 순간의 투명한 가면에 지나지 않았고 조르바는 이 가면을 찢고 영원한 입술에 키스하는 것이었다.

모든 여인의 뒤에서 아프로디테를 볼 수 있다면, 모든 남자의 뒤에서 아레스 등 자신이 끌리는 신을 볼 수 있다면

 

71 ”할매는 왜 토요일마다 호도나무 잎사귀를 입술에다 칠하지? 왜 가르마를 타지? 우리가 좆아다니는 건 크리스탈로에요. 할매는 뭐 냄새가 풀풀 나는 송장이나 마찬가지인 걸

두목 못 믿을 겁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여자라는 게 어떤 건지 알았습니다. 할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할마시는 강아지처럼 잔뜩 움츠렸습니다. 턱도 덜덜 떨더군요. “그래요. 우리가 따라다니는 건 크리스탈로에요. 크리스탈로!” 나는 할마시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귓가에 다가가 소리쳤지요. 젊은 것들이란 참 잔인한 짐승이예요. 사람도 아니에요. 뭘 모른다니까요. 할마시는 바짝 마른 팔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어요. 그리고 뭐라는 지 아시요? “내 심장 밑바닥부터 너를 저주한다.” 이렇게 부르짖는 거예요. 바로 그날부터 할마시는 눈에 띄게 쇠약해지더군요. 기력을 찾지 못하더니 두 달 뒤에는 오늘 내일 하더군요. 할마시는 숨이 막 넘어갈 즈음에 나를 봤어요. 자라처럼 식식거리며 그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나를 잡으려고 합디다. “나를 끝장낸 건 바로 너다. 알렉시스, 저주를 받아라. 내가 받은 고통을 다 물려받기를         

모든 여자는 25살 정도의 마음으로 산다는 거

 

75 크레타 섬의 꽤 큰 마을에 사시던 내 외조부에겐 매일 저녁 등불을 들고 거리를 다니면서 혹 갓 도착한 나그네가 없나 찾아보는 버릇이 있었다. 있으면 집으로 데려와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는 안락의자에 앉아 길쭉한 터키식 장죽에 불을 붙이고는 나그네(이 양반에게 음식값을 치를 때가 된)를 내려다보며 지엄한 분부를 내리는 것이었다.

말하소!’

무슨 말을 하라는겁니까? 무스토요르기 영감님?”

자네 직업이 무엇이며, 자네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자네가 본 도시와 마을이 무엇 무엇인지 깡그리, 그렇지 깡그리 이야기해 주게. 자 말을 해보소.”

이렇게 되면 나그네는 있는 말, 없는 말, 겪은 일 안 겪은 일을 되는 대로 주섬주섬 주워섬겼고, 우리 외조부는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장죽을 문 채 귀를 기울이며 이 나그네를 따라 여행길로 나서는 것이었다. 혹 나그네가 마음에 들라치면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자네, 내일도 우리 집에서 묵게. 가선 안되네. 자네에겐 할 이야기가 더 있는 것 같으니까.”

할아버지는 마을을 떠나신 적이 없었다. 칸디아나 카네아에도 가보신 적이 없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왜 그 먼 곳까지 가? 이곳을 지나가는 칸디아나 카네아 사람들이 있어서 칸디아와 카네아가 내게로 오는 셈인데, 내 뭣하러 거기까지 가?”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외조부의 그런 기벽을 완성하고 있는 셈이다. 나 역시 등불을 들고 나가 나그네 하나를 발견한 셈이다. 떠나지 못하게 할 참이다. 저녁 한 끼 대접하는 것보다는 훨씬 돈이 드는 나그네지만 그 나그네는 그럴 가치가 있다. 밤마다 나는 일을 끝내고 오는 그를 기다려 내 맞은 편에 앉히고는 저녁을 먹는다. 그가 저녁값을 치러야 할 때가 오면 나는 이렇게 소리친다. “이야기 하세요.”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듣는다. 내 나그네는 이 세상 구석구석, 인간의 영혼 구석구석을 누빈 사람이다. 나는 듣는 데 싫증을 느끼는 법이 없다.

이야기 하세요. 조르바. 뭐든 이야기 하세요.”

재미난 할아버지에 재미난 손자. 화자는 자신의 피 속에 든 여러 할아버지의 혈액과 스토리를 구별해서 듣는다. 이런 관점이 내겐 무척 재미나다. 나는 여성이어서인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때가 자주다.

 

77 매일밤 조르바는 나를 그리스, 불가리아, 콘스탄티노플 구석구석으로 데려다 준다. 나는 눈을 감고 본다. 그는 난장판이 된 발칸 반도를 돌아다니며 늘 경이로 반짝이는 조그만 실눈으로 모든 것을 샅샅이 보고 온 사람이다. 우리에게 버릇 들게 된 것들, 예사로 보아 넘기는 사실들도 조르바 앞에서는 무서운 수수께끼로 떠오른다.

 

81 두목,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짐승이라도 엄청난 짐승이에요. 그런데도 두목은 이걸 알지 못해요. 당신에겐 이 인간이라는 것, 세상사라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모양인데, 내게 물어봐요. 짐승이라고 대답할게요. 이 짐승을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해요.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고 뽑아갈 거요. 두목, 거리를 둬요. 놈들 간덩이를 키우지 말아요. 우리는 평등하다, 우리에겐 똑같은 권리가 있다, 이 따위 소리는 하면 안돼요. 그러면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 권리까지 빼앗고 당신 빵을 훔치고 굶어 죽게 할 거요. 두목, 좋은 걸 다 걸고 충고하건대, 거리를 둬요.

 

92 “만의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보여줄 수 있어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 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보랏빛 바람(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에 둘러싸인 구름이 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들려줄 수 없다. 암호가 모호할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조르바가 비웃음을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골이 났다.

있어요. 나는 보다 나은 세계를 줄 수 있어요.” 내가 대답했다.

있어요? 어디 들어봅시다.”

설명할 수는 없어요. 설명해 봐야, 조르바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보여줄 게 없으니까 그러는 거지! 젊은 두목, 날 돌대가리로 보시 마쇼. 누가 당신에게 날 타고난 멍청이라고 했다면 그건 아주 잘못된 거요. 나도 아나그노스티 영감보다 더 배운 것은 없지만 어디로 보나 영감처럼 멍청한 건 아니랍니다. 그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당신이 그 멍청이와 돌대가리 여편네에게 기대하는건 뭔가요? 이 세상의 수많은 아나그노스티는 또 어떻게 하고요? 당신에게는 있는 것, 그들에게 보여 줄 것이 기껏해야 그것뿐이라는 말인가요? 그 사람들,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요. 새끼 낳고 손자도 보고. …그자들은 편한 겁니다. 그대로 놔두고 아무 소리 하지 말아요.”

  

95 호랑이의 노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몸서리가 쳐졌다. 인도에서 밤이 깔리고 나면 나지막한 소리, 먼 곳에서 육식동물이 하품하는 듯한 느리고 야성적인 노래가 들리는데 이것이 호랑이의 노래란다. 사람들은 이어서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로 가슴을 두근거린단다.

 

96 나는 급히 갈겨썼다. 붓다는 나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는 상징으로 가득 찬 푸른 댕기가 내 뇌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것을 확인했다. 댕기는 빠른 속도로 풀려 나왔다. 나는 따라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나는 썼다. 모든 것은 극히 간단했다. 쓰는 게 아니라 받아 적는 것이었다. 연민과 거부와 대기로 이루어진 전 세계가 내 앞에 나타났다. 붓다의 집, 후궁의 여인들, 황금마차, 세 번의 숙명적인 만남, 출가, 금욕 생활, 포교, 해탈, 땅은 노란 꽃으로 뒤덮였다. 가사를 입은 왕자들과 거지들, 나무와 육신은 가벼워졌다. 영혼은 바람이 되고 바람은 정신이 되었으며 정신은 무가 되었다….손가락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도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환상은 살같이 지나가며 사라졌다. 나는 그 환상을 따라잡아야 했다. 아침에 조르바는 원고에다 머리를 처박고 자는 나를 깨워야 했다.

받아적는다, 창작자가 아니라 창작의 도구로서 작가가 기능한다는 말을 여기서 또 듣네.

 

98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몸으로 살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조르바는 두목같은 사람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사람이다. 갈탄광의 성공여부가 아니라 그런 사람과 같이 사는 게 두목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그는 여전히 그로서 남아 붓다를 쓴다. 그리고 조르바와의 생활을 즐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매우 다르면서 매우 유용한 짝 같은 느낌

 

98 아침이면 바다에선 수박냄새가 났고 정오에는 안개에 덮인 채 조용했는데 조용히 일렁거리는 파도는 흡사 덜 익은 젖가슴 같았다. 저녁이 되면 바다는 한숨을 쉬면서 장밋빛이 되었다가 자줏빛, 포도주빛, 그러고는 짙푸른 색깔로 변하는 것이었다.

오후면 나는 알이 고운 모래를 한 줌 쥐었다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을 즐겼다. 손은 우리의 인생이 새어 나가다 이윽고 사라지고 마는 모래시계였다. 손 그 자체도 사라져 갔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조르바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런 순간은 관자놀이가 뻐근하도록 행복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한다. 각자가 서로의 배경색으로 잘 어울린다. 아폴론과 디오니수스처럼

 

99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제 조르바가 돌아와 불을 지피고 우리 나날의 의식인 요리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먹는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깨달았다. 조르바는 두 개의 바위 사이에다 불을 피우고 음식을 장만했다. 먹고 마시면서 대화는 생기를 더해 갔다. 마침내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온 조르바는 먹고 마시기 전에는 사람이 둔하고 하는 말에도 힘이 없었다. 그럴 때는 내가 그에게 말을 채근해야 했다. 그의 동작도 굼뜨고 거북살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엔진에 연료를 채유고 삭이면 그의 몸이라는 기계는 다시 생기를 되찾고 속력이 붙어 다시 일을 시작했다. 눈에는 불이 켜지고 지난 일들이 다시 그의 기억으로 되돌아왔으며 발에는 날개가 달린 듯이 춤을 추었다.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는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 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로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 과히 나쁠 것도 없겠지요.”

그는 장난기 있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떠트렸다.

두목, 당신은 말이요.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먹는 걸 하느님께 돌리려고 애를 쓰는 것 같소만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에요. 까마귀에게 일어났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까마귀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르바?”

말씀드리지요.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젊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압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 게지요. 그 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을 몽땅 까먹어 보였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기껏해야 어기적거릴 수 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오.”

 

108 나라는 놈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어요. 내 속에는 소리치는 악마가 한 마리 있어서 나는 그놈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면 이 놈이 소리칩니다. “춤취그러면 나는 춤을 춥니다. 그러면 숨통이 좀 뚫리지요. 칼키디체에서 우리 꼬마 디미트라키가 죽었을 땝니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조금 전처럼 춤을 추었지요. 친척과 친구들이 시체 앞에서 춤추는 나를 말렸어요. “조르바가 돌아버렸다. 미쳐 버렸다.” 그 사람들이 웅성거리더군요. 하지만 춤을 추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미치고 말았을 겁니다. 너무 슬퍼서죠. 그게 내 첫아들인데다, 세 살 때 죽어 나로서는 견딜 수가 없었지요.

춤을 추어 기쁨과 슬픔을 다 표현할 수 있구나. 노래도 그러리라. 그러니 슬픈 이들에게서 노래와 춤 등 공연을 모두 제거하는 건 가혹한 일이었다.

 

109 나는 러시아 친구 하나를 사귀었지요. 철저한 볼세비키였답니다. 우리는 매일 밤 항구의 술집으로 갔지요. 둘이서 보드카 몇 병을 까고 나면 세상이 돈짝만 해집니다. 한 번은 배가 맞아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했지요. 그 놈은 러시아 혁명 중에 있었던 일을 내게 이야기하고 싶어했고 나도 그때까지 일을 그 친구에게 하고 싶었지요. 우리는 잔뜩 마시고 형제 사이처럼 다정해졌습니다.

우리는 손짓 발짓으로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지요. 이 친구가 먼저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알아들을 도리가 있어야지요. 내가 소리를 지릅니다. 내가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이 친구는 벌떡 일어나 춤을 추기로 한 거예요. 두목 내 말 알아듣겠어요? 그 친구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춤으로 추는 겁니다. 나도 똑같이 했지요. 우리는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손으로 배로, 하이, 하이, 호플라, 호하이 따위의 장단으로 표현하기로 한 것이지요.

러시아 친구 차례였습니다. 어쩌다 총을 들게 되었는지, 전쟁이 어떻게 터졌는지, 어쩌다 노보로시스크로 굴러 들어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겁니다. 알아들을 도리가 없었죠. 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만둬라고요. 러시아 친구가 펄쩍 뛰어올라 춤을 춥니다. 꼭 미친놈처럼 추더군요. 그 손과 발과 가슴과 눈을 보고 있으면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지요….나는 내 불행을 춤으로 추었습니다. 내 편력을 말입니다. 내가 몇 번 결혼한 사람인지, 내가 한 짓(돌장이, 광부, 행상, 옹기장이, 비정규 전투 요원, 산투르장이, 볶은 호박씨 장수, 대장장이, 밀수꾼) 감옥에 들어간 사연, 탈출한 이야기, 러시아로 굴러 들어온 경위 등등.. 맹한 친구였지만 내가 표현한 건 모조리 알아들었어요. 내 발 내 손이 말을 했고, 내 머리카락, 내 옷도 이야기를 했지요. 허리에 차고 있던 나이프까지 말을 했어요. 우리는 또 한 번 보드카를 철철 넘치게 따랐지요. 그러고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답니다. 날이 샐 무렵 우리는 떨어져 비틀거리며 잠자리로 들어지요. 그러고는 밤에는 또 만났습니다.  

두 사람이 비슷한 사람인 듯 하다. 이런 춤 춰보고 싶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가능한 지 궁금하네. 섹스는 가능한 듯 하다.

 

111 내 인생은 한갓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걸레를 찾아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깡그리 지우고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진짜 알파벳을 배울 수 있다면……내 인생은 얼마나 다른 길로 들어설건가? 내 오관과 육신을 제대로 훈련시켜 인생을 즐기고 이해하게 된다면

! 그러자면 달음박질을 배우고, 씨름을 배우고, 수영을, 승마를, 배를 젓는 것, 차를 모는 것, 사격을 배워야 한다. 내 정신을 육신으로 채워야 했다. 내 육신을 정신을 채워야 했다. 그라면 내 내부에 도사린 두 개의 영원한 적대자를 화해시켜야 한다.

조르바는 땅, 육신을 위주로 화해시킨 자, ‘는 두 가지 사이의 싸움을 평생 해 간 자, 두 사람의 방식이 다 의미있고 실제적이지 않나?

 

111 나는 벌떡 일어서는 조르바를 보았다. 그는 옷을 벗어 자갈밭에다 던지고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희미한 달빛으로 나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그의 커다란 머리를 볼 수 있었다. 이따금 그는 소리를 지르다 개처럼 짓다 말처럼 힝힝거리다 수탉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이 텅빈 밤에 그의 영혼은 동물과 친화한 것이었다.

 

112 “오늘 새 갱도를 엽니다. 내가 아주 근사한 광맥을 잡았어요. 진짜 검은 다이아몬드예요.” 나가면서 그가 한 말이었다. 

나도 붓다에 대한 원고를 열었고, 나 역시 내 갱도를 파들어 갔다. 나는 하루 종일 썼다. 쓰면 쓸수록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내 감정은 안도, 긍지, 혐오감으로 착잡했다. 그러나 나는 원고를 끝내면 묶고 봉해 버리면 된다는 생각에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114 조르바가 산투르를 싼 천을 벗길 때의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놀림은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았다. 그는 자줏빛 무화과 껍질이나 여자의 옷을 벗기는 것처럼 곰살맞았다….그는 겁을 먹은 얼굴로 산투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하고 싶지 않다는 군요. 하고 싶지 않대요.”

그는 산투르가 사나운 짐승이어서 행여나 물릴세라 조심스럽게 다시 싸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일어나 다시 벽에다 걸었다. 그러고는 다시 중얼거렸다.

하고 싶지 않대요. 그러니 억지로 시키지는 말아야지요.”

 

122 여자의 귀고리, 여자의 장신구, 향기 좋은 비누, 작은 라벤더 향수를 포기하게 되다니 말이나 되는 노릇입니까? 여자가 그런 걸 포기하면 세상은 끝나는 겁니다. 그건 공작새 깃털을 홀랑 뽑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요. 안됩니다.

저 사람은 오늘 치마 걸린 방에서 자겠구나. 이게 출옥하는 이의 등을 보며 한 말이었다. 어떨 땐 남성처럼 하려고 하지 말고, 나의 여성성을 피워내는 게 모두에게 좋은 일일텐데.

 

123 가는 길에 여자는 내가 자기를 내 걸로 만들려 한다는 눈치를 채더군요. 러시아 말이라고는 딱 세 마디 밖에 몰랐습니다. 다만 이런 일에는 그 세 마디도 필요없지요. 우리는 눈과 손과 무릎으로 말을 했어요.

 

124 여자는 맑은 샘물과 같습니다. 거기 들여다보면 모습이 비칩니다. 마시면 되는 겁니다. 뼈마디가 녹신녹신할 때까지 마시면 되는 겁니다. 이윽고 목이 마른, 다음 사람이 옵니다. 그 사람도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마시면 되는 겁니다. 세 번째 사내가 오겠지요. 맑은 샘물, 소핑카도 바로 그것이었어요. 소핑카도 여자였으니까.

 

126 슬라브 여자들은 그리스 여자들과 달라요. 뭐든지 듬뿍 줍니다. 잠잘 때도 그렇고, 사랑할 때도 그렇고, 먹을 때도 그렇습니다. 슬라브 여자들은 야수에 가깝고 대지와도 밀착해 있는 셈이죠.

 

126 “나도 당신이 좋아요.” 더 이상 피차 할 말이 없었어요. 필요없으니까. 순간 어떤 이해에 도달한 겁니다.

 

136 위대한 스승이라면 자기를 능가하는 제자를 만드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네.

 

139 그는 울타리 곁을 지나다 갓 핀 수선화 한 송이를 꺽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그 꽃을 들여다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수선화를 생전 처음으로 보는 사람처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더니 한숨까지 쉬었다. 그는 꽃을 내게 건네주었다.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140 소낙비가 내리자 마을에 유쾌한 소동이 벌어졌다.

 

141 우리는 앉았다. 낯선 사람을 본 시골 양치기는 제 껍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142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밖을 향했다. 바로 그 순간 숱 많은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검은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채 빗속을 달려가는 여자가 보였다. 탄탄하고 둥그스럼한 몸배가 비에 젖어 달아붙은 옷 위로 드러났다. 나는 놀라고 말았다. ‘저것은 육식동물의 모습이 아닌가나는 생각했다. 여자는 내게 남자를 잡아먹는 나긋나긋하고 위험한 동물로 보였다.

 

144 시골에는 바보가 하나씩 있는 법이다. 없으면 심심풀이로 하나씩 만들어 내기도 한다. 미미코가 그런 마을의 전속 바보였다.

 

149 두목 수컷을 불명예스럽게 하지 마시오. 신과 악마가 이 기찬 음식을 당신에게 내린 겁니다. 당신에게 이가 있지요? 그럼 이를 박아요. 손을 내밀어 저 과일을 따 먹어요. 조물주가 손을 뭇하라고 달아 놓았겠어요. 손을 내밀어 취하라고 달아 놓은 거지. 그러니까 잡아요. 살아오면서 별별 여자를 다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저 망할 년의 과부는 교회 뾰족탑도 족히 흔들어 놓을 것 같습디다.

 

149 내가 짜증을 낸 것은, 내 내부의 욕망 역시 암내를 풍기며 지나간 그 탄탄한 몸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50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라면 나는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150 손수건을 꺼내어 2~3파운드를 거기다가 싸요. 되도록 금화로 해요. 지폐는 반짝거리지 않으니까. 그래 가지고 미미코 인편에 과부에게 보내세요가서 과부에게 길을 잃었다고 해요. 드러니까 등을 좀 빌릴 수 있겠느냐고 넌지시 부탁하는 겁니다. 아니면 갑자기 눈앞이 어지러워졌으니까 물을 좀 마실 수 없겠느갸고 부탁해도 좋아요. 제일 좋은 방법은 암양을 한 마리 사서 끌어다 주는 겁니다잘 들어요. 두목, 그러면 과부는 상을 주려고 하는 겁니다. 들어가는 거예요.

 

151 오두막으로 돌아오자 조르바는 다리를 꼬고 앉아 산투르를 무릎 위에 올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깊은 명상에 빠져 들었다. 흡사 머리를 가슴에다 묻은 채 수많은 노래를 듣고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처절한 노래를 고르려는 것 같았다.

 

161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탄맥을 바라보았다. 수백만 년 전 어마어마한 숲을 삼켰을 것 같았다. 대지는 그 숲을 소화하고 자식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나무는 갈탄이 되고 갈탄은 석탄이 되고, 조르바가 오고..

 

164 순식간에 음식을 요절냈다그는 달다 쓰다 한마디 없이 우적우적 먹었다 .호리병을 집어 고개를 젖히고 포도주를 목구멍으로 쏟아붓기도 했다마음 같아서는 인부들은 털석 조르바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손에다 입을 맞추고 싶겠지만 조르바의 괴상한 성미를 아는 지라 그럴 용기를 못내고 있는 것이었다.

 

 

166 나는 화덕 앞 바닥에 앉아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붓다의 노래를 베끼고 있었다. ..나는 유혹자가 붓다 앞에 어떤 형상으로 나타났는지, 그 상황을 베껴 썼다. 어떻게 하여 여자의 형상을 취했으며 통통한 젖가슴으로 이 금욕주의자의 무릎을 누른 경위, 붓다가 위험을 느끼고 전력을 다해 악령을 물리친 경위를 베껴 썼다.

 

168 당신은 젊고 힘이 있고 잘 먹고 잘 마시고오늘 밤에 그 집으로 가요시간 낭비 말고, 세상은 간단한 겁니다. 간단한 걸 가지고 자꾸 복잡하게 만들어 헤깔리게 하지 말래도!

 

169 이것봐요. 크리스마스랍니다. 서둘러 교회 가기 전에 여자를 만나요. 두목, 예수가 오늘 밤에 태어납니다. 당신도 가서 당신 기적을 연출해요.

 

170 오늘부터 겨울에 격퇴당한 빛이 승리의 반격을 시작한다. 이 빛도 이날 밤에 태어난 아기 신인듯이. 성서에서 오늘 빛이 났도다라고 했더라면 사람들의 가슴은 그렇게 뛰지는 않았으리라. 그랬더라면 기독교 사상은 성스러워지지도 않았을 거고 세계를 정복할 리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기독교의 사상은 한갓 정상적인 물리적 현상으로밖에는 기술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의 상상력 즉 우리의 영혼에 불을 붙이지도 않았으리라. 그러나 죽음의 겨울에서 태어난 빛은 아기가 되고 아기는 하느님이 되면서 스무세기 동안 우리들의 영혼은 그 젖줄을 빨게 되었을 터였다.

동감. 동지와 크리스마스가 한 가운데 있는 이유다.

 

173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게걸스럽게 접시를 비우고 포도주를 마셨다. 육신이 만족하자 영혼은 기쁨으로 전율했다.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176 홀린 듯이 노래를 듣고 있던 조르바는 벌써 아이들의 템버린을 빼앗아 미친 듯이 두들기고 있었다.

 

178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무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 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179 올리브 나무 아래로, 검은 머릿 수건을 두르고 붉은 옷을 입은 과부의 날씬한 자태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여자의 탄력 있는 걸음걸이는 정말 흑표범의 걸음걸이 같았다. 사향 냄새가 공기를 휘저어 놓은 것 같았다.

 

185 이윽고 그이 표정에 변화가 왔다.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는 세이렌 옆에 무릎을 꿇고 무릎을 감싸 안고는 다정스럽게 속삭였다.

, 우리 예쁜 마술사여, 먹지 않으면 큰일이에요. 자 꼬마 돼지 새끼를 불쌍히 여겨 이 귀여운 다리를 뜯어줘요.” 그러고는 버터를 발라 구운 애저 다리를 부인의 입에다 넣었다. 그러다 두 팔로 부인을 안아 바닥에서 일으켜 세운 다음 우리 둘 사이에 놓인 의자에다 앉혔다. 그러고는 얼렀다. “먹어요. 자 먹어요.내 보물단지. 그래야 성자 바실이 우리 마을로 오시지. 알겠지. 먹지 않으면 안 오실거야. 우리 마을은 들르지 않고 곧장 고향 카에사리아로 가버리실거야뿔로 만든 잉크병과 종이, 12일절 과자, 새해 선물, 애들 장난감, 심지어는 이 귀여운 애저구이도 가져가실거야. 그러니 입을 벌려요. 우리 부불리나, 그리고 먹어요.”

그는 손가락을 부인의 겨드랑이에 넣어 간지럼을 먹였다. 늙은 세이렌은 하도 간지러워 까르르 웃고는 빨갛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애저 다리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늙은 여자의 어린양을 다 받아낸다. 그녀의 어린애까지 다 존중해서

 

192 얘야. 여자를 조심해라. 여자는 에덴동산에서 사과를 훔쳐 보디스에 넣고 다녔단다. 여자 가슴이 불룩해진 건 그 때문인데 요새는 보란 듯이 흔들고 다니는구나……나는 할배가 하시던 대로 했지요. 악마에게 곧장 달려간 겁니다.

 

193 우리 뒤, 잠든 마을에서는 개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 달을 보고 짖어 대었다. 우리도 까닭 없이 목을 뽑고 달을 보며 짖고 싶은 기분이었다.

 

193 나는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며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것(여자, , , 고기, )이 유쾌학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197 불경을 베껴 쓴다는 것이 더 이상 문학을 위한 공부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 내부에 도사린 무서운 파괴력과의 생사를 건 싸움이며, 내 가슴을 말리는 위대한 부정과의 결투였다. 이 결투이 결과에 내 영혼의 구원이 걸려 있었다. 나는 단호하게 원고를 잡았다. 내 목표를 정한 이상 찔러야 할 곳을 알게 되었던 셈이다. 붓다는 최후의 인간이었다나는 나 자신에게 말하며 쓰기 시작했다. 아니 쓰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이었다. 무자비한 추격전, 포위 공격, 은거로부터 괴물을 불러내기 위한 주문이었다.

 

199 내심 놀랍고도 기뻤다. 아무렴 무릇 위대한 환상가외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212 두목 겁나는 게 무엇인고 하니 나이 먹는 것이에요. 하늘이 우리를 지키소서. 죽는다는건 아무것도 아닙니다늙는다는 건 챙피한 노릇입니다사람들이 그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별짓을 다 하는 거지요. 뛰고 춤출 때는 등이 아프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뛰고 춤춥니다.

 

213 두목, 내 속에도 악마 같은 게 들어 있어요. 나는 그 악마를 조르바라고 부릅니다. 속에 있는 조르바는 나이를 먹는 걸 싫어해요.

 

215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두목 이따금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를 당신에게 보여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래입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기왕 갈 바에야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215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하지만 지혜가 듬뿍 담긴 옛날 책을 많이 읽어 이런 표현이 실례가 될 지 모르지만 약간 구식이 되어 있어요.

 

223 어린 아이처럼 그는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소리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 그리고 새의 신비는?”

 

226 시간은 조르바와의 만남에 새로운 흥취를 더했다. 조르바와의 시간은 외부 사건의 수학적인 연속도 내부의 해결할 수 없는 철학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결이 고운, 따뜻한 모래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모래를 감촉할 수 있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조르바에게 복 있을진저.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장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있는 육체를 부여했다.

 

227 나는 바다에 면한 바위에 기대어 글을 쓰고 있었다. 그날 첫 제비를 본 나는 행복했다. 붓다의 주문이 거침없이 종이 위로 흘러나왔다. 붓다와의 싸움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어 있을 즈음이었다. 나는 더 이상 전처럼 필사적으로 서둘지는 않았다. 포위망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 터였다.

 

231 조르바는 천의 얼굴이었다. 터키인이었으며 유럽인이었다. 조르바를 안음으로써 오르탕스 부인은 축복받은 저 수많은 애인들을 한꺼번에 끌어안은 셈이었다.

 

242 나는 서너시간 걷는 피로가 봄이 불러일으킨 내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245 나는 고개를 들고 소년 시절부터 나를 매혹하던 장엄한 광경을 목도했다.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고 돌아온 해오라기 때들이 전투대형으로 날고 있었다.

 

246 지구의 네 가지 얼굴, 생자필멸, 이 모든 사실이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조여왔다. 해오라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경고였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 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246 동생이 있어서 둘이서 웃고 떠들다 보면 파도와 새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새와 파도가 말을 걸지 않는지도 모른다. 둘이서 수다의 구름 속을 거니는 걸 보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지도 모른다.

 

247 나는 그제야 수녀원에 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달동안 나는 바다 가까이에 수녀들을 위해 지은 수녀원으로 가고 싶었지만 마음을 작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날 오후에 내 몸이 그렇게 작정해 버렸던 것이었다.

 

251 어린 시절의 신비스러운 정열이 미학적 즐거움으로 변질한 것잉ㅆ다. ..마찬가지로 종교는 내 내부에서 변절하여 예술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257 그는 화덕 위의 브리키를 내려 내 컵으 태우고는 칸디아에서 사온 줌발스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꿀바른 할바를 내밀었다.

 

259 어느라 롤라와 팔짱을 턱 끼고 산책을 나갔지요. 말이 팔짱이지 실은 손깍지를 끼고 말이요. 그런데 손바닥만한 것들이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이 잡것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이봐요. 할배, 거기 가는 할배, 여자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저 할배 유괴범 아냐?’ 롤라가 얼마나 창피했는가는 당신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나도 창피했지요. 그래서 그날 밤에 이발소로 달려가 털을 까많게 물들였습니다물을 들인 날부터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거에요. 당신도 내 머리가 아예 검어졌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따금 내가 여기 등이 쑤신다고 한 적이 있죠? 말씀히 나았어요. 그날부터는 아프지 않은 겁니다.

 

261 “조르바 내 몸땅 당신에게 주고 말게요. 당신이 한 짓, 여자 꿰차고, 머리를 물들이고, 돈을 쓰고 한 거, 당신이 다 가져요. 노래나 부릅시다.”

그는 다시 한 번 힘줄이 선 목을 쑥 뽑았다.

용기! 빌어먹을! 모험! 올 테면 와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289 카디아에서 나는 꼭 써야 했던 금액 이상을 날리고 왔어요.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롤라가 내 돈 정확하게 말하면 당신 돈을 너무 삼켜 버렸단 말입니다….나는 임야 값에서 그만큼 깍아 내겠다 이겁니다. 롤라 값을 수도원장과 수도승과 성모 마리아가 내는 것이지요. 갚아야지요. 갚아야 하고 말고요. 봐요. 하느님이 나 조르바를 만들면서 몇 가지 연장을 주었어요. 무슨 연장인지 당신은 알겁니다.

 

299 악마가 우릴 돕고 있는 겁니다. 악마가 대가리를 내밀었다 이겁니다. 두목, 총소리가 이 수도원에 어느 정도의 값을 치를 지 아시오? 자그마치 7천 드라크마는 될 것이오.

 

305 저 원대한 희망(결혼)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며 빛을 발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늙은 세이렌은 매력을 깡그리 상실한 것이었다더 이상 화장도 하지 않았고, 맵시를 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부인은 있는 그대로, 결혼하고 싶어하는 가련한 여자의 모습만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었다.

 

306 조르바는 고개를 들고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에겐 여자의 볼멘소리를 들으면 꼼짝 못하는 데가 있었다. 여자가 흘린 한 방울 눈물도 그를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할 수 있었다조르바의 무릎은 천 번하고도 한 번 더 난파했던 그 가엾은 여자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한 치의 땅이었다.

 

313 서방을 얻고 아이를 가져야지..이것은 오랫동안 꾸어온 부인의 꿈이었다.

 

317 어서 오너라, 조르바, 이 불쌍한 것, 가서 네 선배 제우스 옆에 누워라. 위대한 순교자여. 불상 한 것, 너는 땅에서 네 몫을 다했다. 내 너를 축복하지 않고 어쩌겠느냐?

제우스가 여자가 불쌍해서 오입질을 했다는 의견. 어쨎든 창조적인 신화해석.

 

상상력 속에도 함정이 있어서 그는 이따금 거기 빠지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신바람 나게 지어낸 이야기를 실제로 믿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신바람 나게 지어낸 이야기를 실제로 믿기 시작했다.

 

320 할배 역시 나와 똑 같은 난봉꾼이었지요. 그러나 이 늙은 난봉꾼께서는 성지를 순례하시고 하지가 되었답니다. 이유야 누가 압니까? 할배가 돌아오시자 평생 좋은 일 한 토막 해 본적이 있기는 커녕, 알아주는 염소 도둑인 엣 친구 한 분이 그러셨다나. “그래 이 친구야 성지를 다녀왔으니 내 몫으로 성스러운 십자가 한 조각이라도 뜯어 왔으렸다?” ”그래 이 친구야. 우리가 어떤 사이라고 빈 손으로 왔겠나? 오늘 밤 우리집으로 오되 신부님도 모시고 오게나. 내가 자네에게 이 성스러운 물건을 건넬 때 함께 축복해 주시도록 말일세. 그리고 애저구이 한 마리랑 포도주도 한 통 가져오게. 그래야 재수가 있다네.”

그 날 밤 할배는 집으로 오셔서 벌레 먹은 문설주에서 나무를 조금 떼어냈지요. 쌀알 하나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이걸 보드라운 천 조각에 싸시더니 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뜨리고는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문제의 사나이가 애저구이와 포도주를 들고 신부님과 함께 왔습니다. 신부님은 스툴을 꺼내 입을시고 축복했습니다. 할배는 이 귀한 나뭇조각의 양도 의식을 덕하니 치른 뒤에 애저구이를 뜯기 시작했습니ㅏ. 거짓말이 아닙니다. 문제의 사나이는 이 귀한 나뭇조각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는 끈으로 꿰어 목에다 걸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날부터 영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는 산으로 들어가 아르마톨과 클레프트 산적 데에 가담하여 터키 마을을 불태우는 데 일익을 맡았습니다. 뿐입니까? 겁없이 총탄의 소나기 속을 누볐습니다. 무서워할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성지에서 가져온 거룩한 십자가 쪼가리를 목에다 턱 걸고 있는데 총알인들 그를 다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낸 나뭇조각도 성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324 밤이 되니까 이 자는 법복을 벗고 양치기 복장으로 갈아입더니 총을 들고 이웃 그리스인 마을로 가는 거였어요. 이 자는 새벽에 진흙과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와서는 다시 신도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한답히고 교회로 갑디다. …나는 이놈을 덮쳐 멱을 따버렸습니다….구걸하는 아이들 게집아이가 셋이고 둘은 사내아이였습니다. 제일 큰 놈은 열살이 넘었을까요? 어린 것은 갓난 아이였어요. …신부댁 아이들입니다. 아버지는 며칠 전 마구간에서 목이 잘렸답니다몽땅 털어주었지요. 마을을 빠져나오자 나는 셔츠 앞을 헤쳐 애써 땋은 성 소피아 성당 장식을 떼어내어 갈기갈기 찢어발기고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지요. 지금도 도망치고 있습니다.

 

나는 멱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습니다불가리아 놈 터키놈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터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 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338 우리가 꼭 비둘기 한 쌍처럼 여기 죽치고 앉아 어쩌자는 겁니까? 가서 춥시다. 먹어 치운 양에게 미안하지도 않소? 그럭저럭 방귀로 빠지게 할 셈이요? 갑시다 가요. 가서 방귀가 아닌 노래나 춤이 되게 합시다. 조르바는 다시 태어났도다!

 

338 이봐요 그리스도가 다시 태어났어요. 내가 당신만큼 젊었다면 어디든 한 번 이 대가리를 처넣어 볼 겁니다. , 포도주, 사랑, 뭐든 말이요. 나 같으면 하느님도 악마도 두렵지 않을 겁니다. 젊음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343 그날 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영혼이 곧 육체, 다소 변화무쌍하고 투명하고 더 자유롭긴 하지만 역시 육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소 과장되어 있고 긴 여행으로 지치고 물려받은 lal 짓눌려 있기는 하나 육체 또한 영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355 과부는 일어났다. 그러고는 앞으로 달려 나가려고 전신의 힘을 모았다. 그러나 달려 나갈 시간이 없었다. 늙은 마브란도니 영감이 민첩한 매처럼 과부를 덮쳐 땅바닥에 쓰러뜨리고는 검은 머리카락이 치렁거리는 목을 끌어안고는 단도로 단숨에 목줄을 따버렸다. ‘이 죄악은 내가 책임진다.’ 마브란도니는 이렇게 소리치며 잘라낸 과부의 목을 교회 문턱에다 팽개쳤다. 그리고는 성호를 그었다.

 

358 그날 내가 내린 구역질 나는 결론은 일어난 사건은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359 그날 밤 조르바는 잔뜩 지친 모습으로 옷은 넝마 조각이 된 채 돌아왔다. 그는 해변으로 내려와 내 옆에 앉았다. 좀체 입을 열지 않았지만 열었다 하면 목재, 케이블, 갈탄 이야기였다. 그의 말투는 영락없이 그곳을 깡그리 때려 부숴 주지를 맞출 대로 맞추고 훌쩍 떠버리려는 청부업자의 말투였다.

그는 아파한다.

 

368 앵무새의 눈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앵무새가 흔히 보아온 여주인이 남자와 사랑을 벌이면서 터뜨리는 환희로 주름진 한숨도, 늙은 비둘기의 부드러운 교성도,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도 아니었다. 여주인의 얼굴 아래로 떨어지는 식은 땀방울, 관자놀이에 달라붙은 감지도 빗지도 않은 삼 부스러기 같은 머리카락, 침대 위의 발작적인 움직임그런 것은 처음 본 광경이어서 앵무새에게는 무척 거북살스러웠다. 앵무새는 카니발로, 카니발로를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자꾸 목구멍에 걸렸다.

애처로운 여주인은 끙끙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쪼그라지고 시들어 버린 팔로 자꾸만 시트를 올리려 하고 있었다. 숨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얼굴에는 화장기가 없었고, 뺨은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미 부패가 시작되기라도 한 듯이 고약한 땀 냄새와 살냄새가 났다. 부인의 발치, 침대 아래에는 모양이 일그러진 궁정화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볼수록 가슴이 아팠다. 신발은 임자의 모습보다 더욱 애처로왔다.

 

370 먹고 싶은 게 있거든 훔쳐서라도 먹어라. 갖고 싶은 게 있거든 훔쳐서라도 가져라. 이게 우리 친정어머니의 교훈이지요. 우리도 빨리 만가를 읊어 버리고 쌀 한 움큼, 설탕, 냄비..워든 좀 들고 나가 저 여편네 추억을 기려야지요. 부모도 자식도 없는데 누가 저 닭, 저 토끼를 잡아먹겠수? 포도주는 또 누가 마시겠우? 이 무명옷과 빗과 과자는 누가 상속할까요? 하느님도 우리를 용서하실 거예요. 세상이 다 그런 거예요. 나도 뭔가 좀 가져가야겠어요.

 

379 조르바는 생각했다. 한 줌 흙이로구나 배고파 할 줄 알고 웃기도 하고, 키스도 하는 한 줌의 흙, 한 덩어리 흙이면서도 사람을 울리던 것, 지금은우리를 이 땅에 데려다 놓은 악마는 어느 놈이고 이 땅에서 데려가는 악마는 또 어느 놈인고?

 

386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낸 게 무엇이요?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387 우리 가슴이 부풀지요 끔찍한 나락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도 몸도 마음도 공포로 떨고 맙니다. 그 순간에 시작되는게..

나는 말을 멈추었다. 나는 그 순간에 시작되는 게 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조르바가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아 말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조르바는 시를 살고 있는 걸

 

391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고 있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다른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 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부불리나가 살아 있을 동안 말입니다. 어느 카나바로도 나만큼 그 여자를 기쁘게 해 준 사람은 없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니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 훈장이나 마누라나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

 

398 지금까지 나는 내 속에 든 악마가 하는 대로 내버려뒀습니다. 무슨 짓을 하건 그냥 뒀지요. 혹자는 나를 엉큼하다, 혹자는 정직하다, 어느 놈은 날보고 게으르다, 어느 놈은 솔로몬처럼 지헤롭다고 하는 건 다 그 때문이지요. 나는 그치들이 말한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일겁니다.

 

416 나는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소.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돼요. 춤으로 보여드리지.

 

426 조르바 나는 외국으로 나갈까 해요. 내 배 속에 든 염소는 아직 종이를 더 씹어야 성이 차겠대요. 나도 당신 방법을 채용해 볼까 합니다. 당신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요.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429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 지 모릅니다. 그것 뿐이오.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436 두목, 이런 말을 해서 어떨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가망없는 펜대 운전사올시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그 아름다운 녹석을 봐야 하는 건데 당신은 보지 않았어요. 젠장 일이 없을 때 나는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지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나 어제 당신의 편지를 받고 나는 두목 같은 펜대 운전사에게는 지옥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437 나는 이따금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를 했다.

 

441 나는 그와 더불어 크레타 해안에서 함께 보냈던 생활을 재구성하고 기억을 더듬어 조르바가내 마음에다 뿌렸던 말, 절규, 몸짓, 눈물, 춤을 모아 보존하고 싶다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욕망이 어찌나 격렬했던지 겁이 났다. 나는 이 욕망을 이 지구 어느 곳에선가 조르바가 죽어가고 있는 징후로 파악했다.

 

443 고인은 자주 선생님 말씀을 했고 자기의 사후에는 산투르를 선생님께 드리어 정표를 삼겠다는 분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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