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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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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4일 11시 40분 등록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 La Confrerie des Eveilles

 

자크 아탈리 지음, 이재룡 옮김, 사월의 책, 2010.

 

1. 저자에 대하여

 

■ 자크 아탈리 Jacques Attali ■

출생/사

1943.11.1 알제리 알제

활동분야

경제학자, 교수, 작가,

 

• 발 자 취 •  

• 저 서 •

1956. 14세에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

파리공과대학, 파리고등정치학교, 국립행정학교 등 프랑스 명문 교육기관 졸업

파리소르본느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1974. 프랑수와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고문을 맡아 정치에 입문

1981~1991.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 프랑스 정부 국정 자문

1991~1993 유럽부흥개발은행 설립, 총재

1998~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소액 금융 기관 지원 국제 비영리 조직)

현재, 컨설팅회사 ‘아탈리 & 아소시에’ 운영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자크 아탈리, 더 나은 미래

위기 그리고 그 이후

미래의 물결, 인간적인 길, 합리적 미치광이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21세기 사전

마르크스 평전, 미테랑 평전,

등 40여 권

 

……

"유럽 최고의 석학"


“아탈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식인이다” 

- 앨빈 토플러

……




 

■ 부럽군

 

 알제리 출생의 프랑스인이라고 하면 카뮈와 뫼르소가 먼저 떠오른다. 내게 각인된 알제리의 느낌은 그렇게 연유한다. 자크 아탈리는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인, 그리고 유대인. 이방인의 느낌이 강하게 와 닿으려는데, 그는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로 이름이 드높다. 자크는 오랜 시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었다. 이방인의 느낌이 조금씩 지워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14세에 프랑스로 이주한 자크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프랑스의 명문 교육기관을 두루 섭렵했다. 그래서 그에게 시험 성적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당연 대통령이 되었을 거라는 농담이 프랑스에서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아무도 그를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배척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처럼 쓰여진 저 문구를 나혼자 오래 들여다보고 있을 뿐.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지식을 가진 아탈리는 이러한 자신의 지식과 통찰력을 사회변화를 파악하고 전망하는데 활용한다. 이 책 속에서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종교를 음악으로 비유하는 주인공을 사람들이 비난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크는 음악에도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피아노 연주를 즐긴다고 하고  <Bruits>란 에세이를 통해 음악의 중요성과 음악의 경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Grenoble 대 오케스트라를 감독한 적도 있다. 쌍둥이라고 하는데 그와 같은 모습을 가진 이가 한명 더 있다는 것인데, 지식의 깊이도 같을까. 세상에 많은 지식인이 있다는 것은 굳이 나쁜 일은 아니니까. 자크처럼 다방면의 지식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재능까지 있는 이들을 보면, 참 부럽다.

 

참고자료

 

http://www.attali.com/biographie/biographie-de-jacques-attali

•알라딘, yes24 저자소개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들어가며 

 

p7 이 이야기는 역사상 딱 한 번 있었던 일로서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20년 동안의 시절에 관한 것이다. 역사상 딱 한 곳(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고 찬양하며 서로에게서 자양분을 섭취하는 길을 택했다. 위대한 사상가들은 그리스 철학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들에 관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학문과 종교가 사이좋게 지내던 시절이었다.

⇒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그 시작은 같은 뿌리.

   유대교는 유대교는 민족의 역사와 함께 성장, 형성된 유대 민족의 종교다. 유대교는 유대인의 민족 종교이며, 유대교를 믿고 개종하는 자도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유대교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의 다신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일신교를 성립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유일신은 아브라함과 만나고 모세와 계약을 맺은 신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점에서 전능자(샤다이Shadai)로 불려진 적도 있다. 뒤에 성립된 기독교, 이슬람교도 이 유대교에서 만들어진 종교다. 유대교는 이른바 권위적인 '교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대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신의 개념을 갖고 있고, 원래 정통이나 이단의 구별은 하지 않는다. 유대교의 성전은 구약성서, 특히 최초의 「창세기」부터 「신명기」('구약성서' 편 참조)까지 다섯 권의 책을 '모세5', 일반적으로는 '토라(Torah)'라고 부르며 가장 중요시한다. 그리고 기원전 2세기경부터 4백 년간에 걸쳐 학습, 전개되어온 구전 율법 미슈나(Mishnah)와 기원 5~6세기에 걸쳐 편찬된 탈무드(Talmud)가 있다. 탈무드는 토라에 관한 해석 및 주석을 집대성한 책이다. 구약성서(Old Testament) '구약'이란 모세와 신과의 계약을 의미한다. , 이 구약이라는 말은 기독교도들이 쓰는 언어이며, 유대교도에게 '계약'은 단 하나뿐이기 때문에 '성서'라고만 칭한다.

    유대 민족의 역사는 기원전 2000년경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서아시아에서 아프리카 북동부에 걸쳐 거주하고 있던 셈족의 한 집단을 족장 아브라함이 인솔하고, 메소포타미아의 우르(현 이라크 남부)에서 서쪽을 향해 유목 여행을 계속하다가 가나안(지금의 팔레스타인)에 정착했다. 아브라함은 다른 부족 집단과는 달리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유일한 신'을 숭배했으며, 신과의 약속(계약)에 의해 가나안을 자손들의 '약속의 땅'으로 정했다. 한편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별명은 이스라엘)은 나중에 이스라엘 열두 부족의 조상이 되는 열두 자녀를 낳지만 기근 때문에 이집트로 이주한다. 그후 그들의 자손이 이집트의 노예가 되어 노역에 종사할 때 신의 음성을 들은 모세는 이집트 탈출을 계획하고 이집트군의 추적을 피해 시나이(현 이집트 동북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모세는 신과 계약을 맺는다. , 신이 내린 십계명을 준수하는 대신에 신은 유대 민족을 지켜주고 이스라엘 땅을 보증한 것이다. 마침내 신은 이스라엘의 '주인'이 되고 이스라엘 민족은 주인의 '선택받은 민족'이 되었다. 그리하여 시나이의 방랑 40년 후(기원전 13세기 말),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 정착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생활을 농경생활로 바꾸고 비교적 평화스러운 생활을 2천 년 동안 영위했으나, 펠리시테인(소아시아계의 전투적인 민족. 해양 민족으로서 연안 지대를 영토로 가짐)의 위협을 받음과 동시에 부족들이 서로 협조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기원전 1000년경, 유대족 출신의 다윗왕이 펠리시테를 무찌르고 왕정을 확고히 하여 국가 번영의 초석을 구축했다. 다윗이 인솔한 유대 왕국은 시리아·팔레스타인 전역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다.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은 외국 무역에 주력하는 한편, 금속 기술 등 국내 산업의 발전에 진력해 경제적 기반을 더욱 확고히 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죽자 부족이 분열하고 왕국이 남북으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결국 북쪽은 아시리아군, 남쪽은 바빌로니아군에 의해 멸망했다. 북쪽의 열 부족은 추방당하고 난 뒤 역사에서 모습을 감추었지만, 남쪽의 주민은 바빌로니아에 연행되어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기원전 586~기원전 538년의 일이다. 유대인의 조국 귀환이 실현된 것은 바빌로니아 왕국이 페르시아에 정복되면서다. 신전이 재건되고 방벽도 쌓아올려진 예루살렘은 위엄을 다시 회복했다. 물론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후 그리스계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관습이 금지된 것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기원전 166년에 '마카베오의 봉기'를 계기로 유대 국가는 독립한다. 그러나 기원전 60년부터는 강대한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서기 30년 예수의 처형 이후 로마제국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서기 70, 1년 반에 걸친 공방전 끝에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조국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의 '유랑'이 시작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창시된 계시 종교이다. 일신교인 유대교를 모체로 하여 만들어진 종교지만 차이가 있다. 많은 종파가 있는데, 크게 나누어 로마가톨릭교회, 동방교회(그리스정교),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세 대교단이 있다. 기독교는 예수를 중심으로 성립된 종교다. 예수의 행동 자체가 그의 예언대로 신앙의 중심적인 상징으로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유대교는 유일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반면, 기독교는 삼위일체라는 사상을 기본으로 한다. 유대교에서는 신을 무형이며 볼 수 없는 존재로,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빌린 신으로서 예수를 인정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형상에 예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유대교에서 예수란 인간에 지나지 않는 존재다. 원죄에 대한 사고방식은 유대교의 경우는 각 개인의 노력에 의해 구제받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원죄를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련된 것으로서 중요시하고 메시아(구세주)의 희생 없이는 구제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로서 출현했다고 믿는 기독교에 반해, 유대교가 주장하는 메시아란 다윗의 자손이며 왕국을 재건해 헤어진 유대인을 모이게 하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존재다. 따라서 유대교에서 믿는 메시아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도들은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라고 부르지 않는다. 신과의 '계약'에서 유대교에서 신과의 계약은 신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의 계약이었기 때문에 영원불변한 것이며, 이것은 토라에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출현함으로써 신이 전 인류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고 믿는다. 신약성서의 '신약'이란 새로운 계약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대교도는 신약성서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기독교도는 구약성서도 인정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아랍의 예언자인 무하마드(Muhammad : 570~632)가 만든 일신교로서, 서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대륙,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6억의 신자를 갖고 있는 세계적인 종교다. 이슬람(Islam)을 직역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인도한다'는 의미로, '유일신인 알라(Allah)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원래는 '이슬람교'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이슬람'이라는 말 자체가 그 종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슬람교의 신자는 아라비아어로 무슬림(Muslim)이라고 한다. 이들은 분파 활동도 왕성하여 오늘날에는 최대 세력인 수니파를 비롯해 시아파, 알라위파, 드루즈파 등 그 사상과 주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천사, 2000.3.31, 도서출판 들녘)

 

p8 여기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은 이 시대의 이념에 충실하다. 파란만장한 삶도 전부 실화이며, 그들이 한 말들도 실제 대화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특히 오늘날 서구에서 아베로에스라고 불리는 아부 알 왈리드 무하마드 이븐 루시드는 정말로 위대한 이슬람 철학자이며, 마이모니데스라고 불리는 모세 벤 마이문 역시 위대한 유대교 사상가이다. 소설에서처럼 이 두 사람은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살다가 1149년 그곳을 떠나 모로코로 들어갔다가 1165년에 다른 곳으로 떠났다.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이 시기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렇듯이 이 위대한 이슬람 철학자와 유대교 사상가가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눴을 공산이 매우 크다.

⇒ 모세스 마이모니데스, 본명은 모세스 벤 마이문(Moses ben Maimum, 1135.3.30~1204.12.13). 아랍명 아부 임란 무사 이븐 마이문 이븐 우바이드 알라(AbūχImran Mūsā ibn Maymūn Ibn ubayd Allāh). 에스파냐 코르도바 출생. 이븐 루슈드와 함께 칭송되는 유럽 중세의 최대 학자. 무와히드 왕조의 그리스도교 ·유대교의 박해 때문에 일가는 모두 각지로 방랑하였고, 끝으로 후스타트(카이로의 한 지구)에 정주하여 생계를 위해 의업(醫業)에 종사하였으며, 후에 살라프알딘과 그 아들 말리쿨이지즈의 시의(侍醫)가 되었다. 카이로의 유대교단을 주재하였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 팔레스티나의 디벨리아스에 묻혔다. 그의 저작은 일부를 빼면 모두 아라비아어로 씌었다.

   철학에서는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가 유명하다. 이것은 이슬람교단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유대신학을 조정하고자 한 것으로서, 유대교의 보수적인 정통파와 신비주의자에게는 배척을 받았으나, 일반인으로부터는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의학 분야에서는 《의학 원리의 서》,《보건론(保健論), 해독약·천식·치질·성교 등에 관한 논문도 썼다. 천문학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周轉圓)과 편심원(偏心圓)의 이론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반()하는 것이라 하여 배척하였다. 헤브라이어로 쓴 《율법재설》은 모세와 율법교사들의 모든 율법을 처음으로 완전분리하여 성문화한 서적이다. 그의 사상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J.에크하르트, 니콜라우스 쿠사누스 등에 영향을 끼쳤다.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p8 ‘깨어 있는 자들의 결사단’과 『절대적 영원에 대한 논고』라는 책,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삶 중에서 수수께끼 같은 기간에 관련된 내용은 거의 허구에 가깝다. 그러나 이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 에 대한 이러한 소문은 오랫동안 도처에 널리 퍼져 있었다.

  

1장 죽음의 날 - 서기 1149 5 27일 목요일

 

p13 바로 그날 저녁, 모스크 첨탑에서 저녁 기도를 알리는 노래가 울려 퍼진 직후, 코르도바 시민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장엄한 구경거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코르도바의 새로운 주인이자 침략자인 알모아데 왕의 명에 따라, 투구를 쓴 기사들과 베르베르족 보병부대가 푸른 제복을 입고 입성하는 행진을 보며 그들은 겁에 질려 말문이 막혔다.

⇒ 스페인 코르도바의 모스크 첨탑을 둘러싼 기운이 생각난다. 알모아데 왕은 북아프리카에서 번성한 이슬람 왕조. 코르도바는 지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제국의 수도였다. 모든 상인들이 지나는 덕분에 상업중심지, 모든 종교가 만나는 교차로, 서방 세계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가 되었다.

 

p13~14 서력으로 첫 번째 밀레니엄이 시작하기 훨씬 전, 유럽의 기독교 왕국들이 여전히 혼돈에 빠져 있던 시절, 아바스의 세력에 밀려난 동방의 우마이야 왕족들은 베르베르족과 예맨족을 이끌고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상륙하여 북쪽 툴레도까지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당시에는 중국과 견줄 만큼 세계에서 가장 큰 왕국이었고 부유하기까지 했다. 코르도바의 금화는 교역의 주요 화폐로 통용되었다. 그들은 또한 너그러웠다. ‘디미’ 즉 피보호인이라 불린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은 세금을 내고 살아야 했지만 존중을 받았다. 신부들은 교회에서 미사를 올릴 수 있었다. 예수 탄생 6세기 전에 이미 시작된 유대교당에서 경전을 강의할 수 있었다. 기독교 세계가 무질서한 혼란에 빠져 있는 것과 달리 회교도 왕국은 아주 세련된 통치 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선단은 지중해를 장악했다. 그들은 툴레도에 투명 정원을 만들고, 그라나다에 알람브라 궁전을 짓고, 그리고 코르도바에 천 개가 넘는 기둥의 원형지붕을 받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스크를 세웠다.

⇒ 아마스, 이슬람 세계를 지배한 칼리프 왕조. 우마이야, 아랍 세계를 다스린 첫 번째 이슬람 왕조.

 

p15 이 이야기가 시작하기 약 150년 전, 제국은 스무 개의 작은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제국이 몰락하고 90년이 지나자 사하라 사막의 모리타니 지방에서 알 무라비툰 혹은 알모라비데라는 베르베르 왕조가 생겨나더니 그들의 군대가 유수프 이븐 타크핀의 지위로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에 상륙했다. 검은 대륙에서 목재, , 상아를 약탈하여 돈을 모은 이븐 타크핀은 이제 자칭 도덕군자가 되어 모로코 회교의 타락상을 개탄했고, 안달루시아와 툴레도가 분열과 몰락을 거듭한 끝에 기독교의 수중으로 들어간 것을 모두 불경스러운 시와 음악 탓으로 돌렸다. 이 침략자들은 발렌시아를 점령한 뒤 카스티야 왕을 짓밟고 1091년 마침내 코르도바에 입성했다. 바로 그 무렵 저 멀리 동쪽에서는 타타르족이 바그다드를 침공해서 아바스 왕조를 몰락시켰다. 2년 후, 알모라비데 왕조는 기독교도에게서 툴레도를 탈환하여 제국을 재건했다.

 

p17 이번에도 안달루시아 땅은 정복자를 정복하고 말았다. 이 땅을 죄악으로부터 정화하겠다고 달려온 알모라비데 사람들은 금세 코르도바의 감미로운 삶에 빠져들었다. 세 개의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방치했다. 세상 어디에도 종교인과 학자, 의사와 장사꾼이 모두의 행복을 위해 이토록 자유롭게 교류하는 곳은 없었다. 비록 기독교인들에게 밀려서 다시 툴레도를 빼앗기긴 했지만 그들은 이런 식으로 반세기가 넘도록 대서양에서 리비아까지, 코르도바에서 세네갈까지 지배했다.

⇒ 이전에는 종교가 전쟁의 원인이다. 십자군 원정도 있었지만. 코르도바의 평화로운 정경이 느껴진다. 이처럼 알모라비데 사람들이 정복당할 때 알모아데족이 등장한다. 알모아데는 '신의 일체성을 주장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븐 투마르트(1130 죽음)의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에 이슬람 국가를 세운(1130~1269) 베르베르인 연합체이다. 엄격한 도덕적 개혁과 신의 일체성(tawsid)이라는 절대적인 개념에 대한 이븐 투마르트의 주장에 따라 1120년 무렵 모로코의 아틀라스 산맥에 있는 틴멜에 세워졌다. 1121년 이븐 투마르트는 자신을 '마디'(세상을 구원하도록 예정된 인물)라 칭하고 정신적·군사적 지도자로서 알모라비데인들과 전쟁을 시작했다. 이븐 투마르트를 계승한 아브드 알 무민은 1147년 알모라비데 제국을 무너뜨리고 마그리브 지역을 정복하는 한편 마라케시를 점령해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알모라비데의 영토인 스페인 남부지방 안달루시아는 칼리프인 아부 야쿠브 유수프(1163~84 재위) 때에 와서 비로소 정복했다. 유수프는 1172년 세비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고 이로써 알모아데의 영토는 스페인의 나머지 이슬람교도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아부 유수프 야쿠브 알 만수르(1184~99)의 통치 시절에는 아랍인들의 반란이 거세게 일어나 제국의 동쪽 지역이 황폐화하기도 했다. 한편 스페인에서는 알 만수르가 알라르코스에서 승리(1195)를 거두었으나 그리스도교도들의 위협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뒤이어 벌어진 라스나바스데톨로사 전투(1212)에서 알모아데인들은 레온·카스티야·나바라·아라곤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도 연합 세력에게 큰 패배를 당하고 북아프리카 지방으로 물러났다. 얼마 뒤 하프스 왕조가 튀니스에서 권력을 잡았고(1236) 아브드 알 와디드 왕조는 틸림산(지금의 알제리 틀렘센)을 점령했으며(1239) 마라케시도 1269년 마린 왕조에게 넘어갔다.

   알모아데 제국은 부족의 위계 질서를 그대로 유지해 정치적·사회적 틀로 이용했다. 제국의 건국자와 그 후손들은 귀족 계급을 형성했으며 이와 함께 스페인식 중앙 집권적 정부 조직도 도입했다. 이븐 투마르트의 엄격한 교리는 곧 잊혀지고 그 자리를 이은 아브드 알 무민 시대 때부터 알모라비데인들을 따라 많은 돈을 들여 복잡한 장식의 안달루시아풍 건물을 세우는 선례가 시작되었다. 마라케시에 있는 북셀러스 모스크를 비롯해 타자에 있는 모스크 건물 가운데 오래된 부분은 알 무민의 시대까지 지어진 연도가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인 이슬람 교리로 돌아가려는 운동은 더이상 계속되지 못했으며 수피교도들의 신비주의 운동과 이븐 투파일 및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로 대표되는 철학 학파는 모두 알모아데 제국의 왕들의 보호를 받으며 번성했다.

   알모아데 제국의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였던 라바트는 특히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한 도자기로 유명했다. 이 도기들은 색상이 다채롭고 화사하며 대개 황갈색 바탕에 노란색, 녹색, 그리고 밝은 청색이 칠해졌다. 그러나 이 도자기들은 시리아나 이집트, 그리고 페르시아의 것들처럼 예술적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며 대부분 '순수한' 예술이라기보다는 '민중들의' 작품으로 여겨질 뿐이다. - 브리태니커

 

p20~21 몇몇 신부와 이맘(회교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공동 의식이 아무런 효과도 없을 거라고 투덜거렸다. 그들은 유대교도가 마술 주문을 외운 탓에 지진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유대교 예배당은 이 재앙을 멀쩡히 견뎠고 유대인 거주 구역에서는 집이 한 채도 부서지지 않았다고 했다. 가장 작아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유대교회 바르 코크바의 랍비들이 지진 발생 바로 전날 유대교도들에게 집 바깥에서 밤을 새우라고 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회교도 이맘들은 죽은 시체 중에 유대교에서 회교도로 개종한 이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예전에 유대교도들이 ‘바람개비’ 즉 히브리말로 ‘억지로 끌려간 자’라고 경멸해 부르던 자들이었다.

⇒ 광신도라 불리는 알모아데의 대군이 코르도바로 진격하며 기독교인과 유대교도를 강압적으로 개정시키는 상황. 이들이 코르도바에 입성하고 사흘째 지진이 일어나 수백만의 목숨을 잃었다.

 

p23~24 압드 알 무민은 관리, 법과, 교수, 번역가들에게 기독교, 회교, 유대교 중에서 어느 종교를 믿은 모두 ‘타우히드(이슬람교에서 신의 유일성), 즉 이븐 투마르트의 법에 순종하겠다는 서약을 하도록 강요했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요구하면 누구라도 매번 “나는 가장 위대한 권력에 복종하며 가장 완벽한 일체감에 따라 타우히드의 형제들에게 인도했음을 고백합니다”라는 신앙고백문을 암송해야 했다. 압드 알 무민은 안달루시아 및 아랍의 음악과 페르시아의 수학을 금지한다고 공표했다. 그럼으로써 과거에 알모라비데족이 그러했듯이 안달루시아의 통합을 이루고 기독교도에게 빼앗겼던 땅을 회복하려 했다.

 

p27 혹시 개종 문제로 목숨을 위협받는다면 임기웅변으로 위장 개종을 해서 ‘억지로 개종한 자’라는 뜻의 ‘아누심’이 될 수도 있었다. 엘리파르처럼 위장 개종을 하는 것은 전혀 신성 모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이슬람교는 모든 유일신교 중에서 가장 순수한 종교였다. 돌과 나무로 세운 모스크에는 기독교 교회와는 달리 아무런 우상도 없었다.

 

p31 도시의 세도가 중 한 명으로 왕의 뒤쪽 세 번째 줄에 앉은 스물세 살의 젊은이가 사형수 행렬이 당도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부 알 왈리드 무하마드 이븐 루시드, 일명 아베로에스였다. 그는 본인의 재능뿐 아니라 대법관의 아들이라는 점까지 고려되어 최근 법관으로 임명된 터였다. 그의 아버지이자 도시의 거물 인사인 아부 알 카심 아메드 이븐 루시드도 왕의 곁에 자리했다. 이 젊은이는 더 나아가 술탄 알리의 고문관이자 주치의였던 위대한 무하마드 벤 아메드 벤 루시드의 손자였으며, 그의 증조부는 코르도바의 위대한 정복자 유수프 이븐 타크핀의 주치의였다. 루시드라는 이름은 ‘진리’와 ‘독실함’을 상징했으며, 두 세기 전 바그다드의 위대한 칼리프였던 아른 알 루시드를 떠올리게 했다.

⇒ 이븐 루슈드(1126~1198). 에스파냐 코르도바 출생. 저명한 법조가 가문 출신으로 처음에는 신학과 법학을 공부하였고 뒤에 철학과 의학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27세 때 이븐 투파일의 소개로 무와히드 왕조의 칼리프이며 문화 애호가인 아부야쿠브 유수프 1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유수프 1세의 장려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저작에 주석 (註釋)을 붙이는 일에 종사하는 한편, 세비야와 코르도바의 법관으로도 임명되었다. 그러나 야수프 1세가 서거하고, 그 아들 아부 유수프만수르가 즉위하자 이븐 루슈드의 철학설이 이슬람 정통신앙에 위배된다는 혐의를 받아 코르도바 근처 엘푸사나에 감금되는 등 박해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풀려난 그는 모로코로 옮겨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에게는 방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석 외에도 14가지 저작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파괴의 파괴》이다. 이것은 정통 신학파인 가잘리의 철학자를 공격한 책 《철학의 파괴》에 반론을 제기한 것으로서, 그리스 합리사상의 최후의 빛을 번득인 것이다. 또 의학서로는 잘 알려진 《의학 개론》이 있으며, 천문학 책으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의 요약이 있고, 이 속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이심원·주전원설에 반대하였다. 그렇지만 서유럽과 라틴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 앞에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이었으며, 이것에는 대·중·소 3종류가 있어 각기 《상해(詳解)》《요해(要解)》《약해(略解)》라 불린다. 그의 이 주석은 서유럽 세계에 새로운 철학적 사색의 기반을 부여하게 되었으며, 13세기 이후 라틴 세계에 아베로에스파()라는 학파를 탄생시켰는데, 이 파는 1516세기에 파도바대학을 중심으로 매우 융성하였다. 이 파의 자연주의적 경향은 그 후의 경험과학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p32~33 하지만 새로운 정권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과거의 정부는 부패한 정부였다. 그리고 정부가 바뀌면 새로운 정권이 유화정책을 쓰기 전까지 잠깐 동안 가혹한 시절을 겪어야 함도 알았다. 이븐 루시드는 알모아데족도 바그다드와 코르도바의 영광인 학문과 철학을 오랫동안 금지하지는 못하리라고 확신했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을 검열할 수는 없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리스 철학 없이는 이슬람이 진보할 수도 없고 세계를 정복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슬람이 진보할 수도 없고 세계를 정복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슬람 발전을 위해 안달루시아가 감당해야 할 본질적인 역할을 새 군주에게 설득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이븐 루시드는 자신이 안달루시아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회교도인 것도 자랑스럽지만 그보다도 안달루시아 사람인 것이 더욱 자랑스러웠다.

 

p33 코르도바의 다른 재판관들처럼 이븐 루시드도 몇 주 전에 도시의 새 주인에게 충성서약을 해야 했다. 그리고 충성의 증거로서 「이만 마디의 신앙고백에 대한 주석」과 「국가에 종교를 도입하는 양태에 관한 논고」를 썼다.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이런 아첨을 했는데, 앞으로 다가올 진짜 투쟁은 신앙의 순서성이 아니라 학문의 개방성을 놓고 벌어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의 큰 정치적 사건은 회교와 기독교간의 충돌로, 하지만 교리보다는 뱃사람들 사이의 충돌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것은 영혼의 통제보다는 교역로의 통제를 위한 싸움이며, 세속의 권력자들이 탐내는 조력자였다가 결국 희생양이 되는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싸움의 첫 번째 열쇠가 될 터였다. 유럽에서 회교를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상이나 기술, 상업적 혁신에 대해 항상 개방적이고 호의적이며 관용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했다.

 

p35 코르도바는 적어도 천칠백년 전에 유대인이 세운, 기독교도들이 세는 방식에 따르면 예수가 탄생하기 오백 년 전에 우리들이 세운, 유대인들의 도시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세네카 그리고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유대 조상들이 살아왔던 곳이라고 했다. 예루살렘보다도 더욱 유대인인의 고향 같은 곳이 바로 코르도바였고, 그 어떤 침략자도 유대인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못했던 유례없는 도시였다. 그리스인, 로마인, 카르타고인, 반달족, 수에비족, 서고트족 그리고 비잔틴과 프랑스에서 온 모든 민족들이 그저 스쳐 지나갔지만 오로지 유대인만은 꿋꿋하게 남았다.  

 

p36~37 랍비 마이문은 아들에게 『탈무드』의 신비와 그 해석도 가르쳤다. 뛰어난 기억력을 타고난 모세는 금세 학문의 재능을 보였다. 유대교는 관용과 개방의 종교라서 누구라도 간절히 원하면 입교할 수 있다고 아버지는 설명했다. 개종자라 하더라도 원래 유대인으로 태어난 사람보다 열등하지 않으며, 유대교인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흐르는 피가 아닌 상징적 혈통에 따른 것이며, 또 신에 대한 봉사에 힘을 집중하는 유대 민족의 가장 큰 유대감은 신성한 의무의 구체적이며 가시적인 현상인 계율이 준수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리고 계율에는 아무런 마술적 힘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에 대한 봉사가 목적 그 자체이며 그것이 곧 보상이라는 것이다.

 

p37 마이문은 아들에게 유대교와 회교는 동일한 축제와 동일한 전통, 동일한 음악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대교와 회교의 말씀은 여러 상황에서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전해졌지만 그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낸 신은 결국 똑같은 신이며, 유대교도와 회교도는 같은 신에게 기도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 영생에 대한 믿음, 할례 관습 그리고 섭생의 원칙 등에 있어서도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들의 언어까지도 우리의 근친성을 웅변하고 있다고 했다

 

p37~38 하지만 마이문은 유대인과 회교도는 어느 정도 다르다고 결론지었다. 유대인들은 신과 각별한 계약을 맺고 있는데, 이것은 회교도들도 인정하는 바라는 것이다. 이슬람의 영토는 지상 전체이며 회교도는 신의 군인이었다. 회교도들도 신성한 장소를 갖지만 그것에 속박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신성한 장소에 속박받았다. 그래서 회교도들은 절대적으로 보편적인 유일한 종교를 믿는다 할 수 있으며, 그들의 그런 점을 우리 유대인들은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회교는 유대교에게 위협적인 종교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회교도는 권력을 잡은 모든 곳에서 세금을 징수하고 돈을 관리하고 교역을 하고 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유대인들이 필요했다.

 

p38~39 마이문은 백 년쯤 전 코르도바의 유대인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유명한 토론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학자들의 견해는 세상은 오로지 신앙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쪽과 신도 이성을 통해서 말씀을 한다는 쪽으로 양분되었다.

    첫 번째 쪽에 선 위대한 유대 시인이자 형이상학자 이븐 가비롤은 생각하지 말고 믿고, 진실이 아니라 선을 생각해야 하며, 신에게 전적으로 귀의하고, 직접적 회개와 고해를 통해 신의 용서를 구하면서 자만심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세도 이런 구절을 좋아했다. “말은 혀 끝에 있고 이해는 가슴 속에 있으며 기도는 육체에 있고 집중은 영혼에 있다.” 마이문은 친구인 예후다 할레비의 이야기도 했다. 코르도바에서 툴레도로 갔다가 다시 코르도바로 돌아온 예후타 할레비는 그리스인들을 증오했고 자신이 피조물에 무심한 ‘영원한 나르시스’ 철학자의 신을 경멸했다. 그도 생각하지 말고 믿어야 하며 신에 대한 복종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고 신 앞에서 겸허한 것이 지상의 영광이라고 단언했다. 코르보다 유대인들의 추앙을 받으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서방에 살지만 마음은 동방에 있다.”고 쓴 그는 십여 년 전 커다란 빈자를 남기고 신성한 땅으로 떠나버려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다.

    두 번째 부류인 합리주의자들 중에서 마이문은 바야 이븐 파쿠다를 거명했다. 그에게 있어 신을 사랑하는 가장 훌륭한 길은 우주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p42~43 엘리파르는 어린 조카에게 우주는 부동의 수학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그 법칙은 인간 정신으로 파악이 가능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가르쳤다. 천체와 인간 마음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 동인’ 혹은 가끔 ‘지적 인자’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 일종의 정교한 체계를 고안했다는 말도 해주었다. 그리고 우주는 절대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이 어떻게 추론했는지도 설명했다. 이 현학적인 푸줏간 주인은 조카에게 아리스토텔레스란 사람이 유대인들처럼 넉넉한 사유를 했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의 제일 동인은 일종의 절대 정신으로서 유대인들이 ‘신’ 혹은 이 세상을 통치하는 임무를 띤 ‘대표자’라고 지칭하는 대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엘리파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수께끼 같은 말을 자주 들려주며 결코 잊지말라고 강조했다. “토끼가 사자에게 법을 부과할 수 없다.

 


p44 생각한다는 것은 유대인에게나 회교도에게나 위험한 일이었다. 엘리파르는 침통한 어투로 세비야의 저명한 철학자인 이븐 와히드에 관한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죽음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모든 지적 활동을 포기하고 누구와도 대화하기를 거부했다.

 

p46~47 이 책(‘절대적 영원성’이나 ‘미프타 알 가이브’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여는 열쇠’라고 불리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대인 제자가 썼거나, 혹은 유대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코르도바에 왔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라고 했다.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실은 코르도바의 유대인이었는데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그리스로 이주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 책은 인간이 쓴 수많은 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임에 틀림없는데, 왜냐하면 우주와 시간의 진정한 속성에 대한 답을 주기 때문이었다. 특히 사유의 불멸성과 물질의 불안정성 사이의 타협 가능성, 더 나아가 물질을 정신만큼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열쇠를 건네는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도 전복적인 개념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제 거의 한 부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렸으며, 이 책을 입수해 한번 훑어본 사람들도 모두 비명횡사했고, 그것을 손으로 베낀 사람들도 암살당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엘리파르는 조카에게 이 책이 불행을 부른다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로부터 교묘하게 숨겨 놓은 원고가 극소수 남아 있다고 말했다.

 


p54~55 그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져도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p55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던 간에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사랑하는 도시와 주민들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이 역시 잠시 동안일 것이다. 결국엔 지성이 야만을 누를 테고 코르도바는 다시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전능한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p58 개종이란 오로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으로 언젠가 떠나기 위한 준비 작업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떠날 수 있다면 개종하지 말고 떠나십시오. 지금이건 나중이건 어떤 경우라도 두려움과 압박 없이 토라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는 이곳을 떠나십시오. 주께서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기신 종교가 훨씬 더 소중합니다. 책과 신성한 두루마리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십시오.

 

p65 모세는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떠나야만 할까? 개종만 하면 괜찮을 텐데 왜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 걸까? 우리는 안달루시아 사람이고 아랍 나라에 살고 있으며 우리 이웃도 우리와 같은 신을 믿고 있는데, 이곳을 떠나야 할 만큼 유대인으로 남는 것이 중요할까?

⇒ 중요하겠지. 선택받으신 민족이니까.

 

p67 우리의 시간은 아우구스트력보다 3040, 기독교력보다 3102년 앞서 시작했습니다. 회교도의 달력도 우리보다 622년 후에나 시작했지요. 따라서 우리야말로 세계의 개척자들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인류의 최전선에 서서 인류의 미래를 관리하도록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은 우리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장래가 너무 걱정돼 낮에는 밤이 오라고, 밤에는 낮이 오라고 기도했습니다. … 우리의 선조가 이집트와 예루살렘, 바빌론에서 떠났듯이 이제 우리도 코르도바를 떠나려 합니다. 순교자는 떠나도 유대정신은 남을 것입니다.

 

2장 첫 번째 시험 - 서기 1162 1 6일 수요일

 

p76 남부 지방의 중심지인 코르도바에서 유대인들이 천오백 년 넘게 움직이지 않고 살아온 반면, 로마제국 몰락 후 툴레도를 점령한 서고트족은 툴레도의 유대인들을 모두 쫓아냈다. 로마 교회를 등지고 자기 방식대로 기독교도가 된 서고트족은 유대인들을 유례가 없을 만큼 핍박했다. 서고트족은 약 삼백 년 동안 권력을 잡았다. 전설에 따르면 712년 종려주일(부활주일, 수난주일)에 훗날 샤를마뉴의 어머니가 되는 툴레도의 공주와 카를 마르텔의 결혼식이 치러진 직후, 신도들이 이 도시의 순교 성녀인 레오카디아를 기리는 행진을 하기 위해 성문을 열었는데, 이 틈을 타서 코르도바에서 온 우마이야 회교도들이 성을 점령했다고 한다. 기독교도들은 이 사건을 그들의 왕이 죄를 저질러 신이 벌하신 것으로 보았다.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아랍어로 생활하는 것을 배우고 일곱 개의 교회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주인인 회교도의 보호를 받으며 툴레도에 남아서 살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같은 종교 의식을 행하는 코르도바의 기독교인들과는 가깝게 지내지 않았는데, 이에 분노한 로마 교황청은 툴레도의 신자들을 부를 때 경멸의 뜻을 담아 ‘모자라브’라고 했다, 당시 코르도바에서 유대인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툴레도는 수도에 견줄 만한 제2의 수도가 되었다.

 

p77 툴레도의 기독교도가 코르도바의 회교도를 증오하는 것만큼이나 툴레도의 회교도도 코르도바의 기독교도에 적대적이었다. 우마이야 왕국의 두 번째 도시인 툴레도는 수도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번창했다. 기독교도와 유대교도는 모스크 옆에 새로운 예배당과 유대교당을 세웠다. 도시는 유럽 대장장이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칼날, 도끼, 미늘창, 육분의, 천문의, 펌프, 물시계, 물방아, 사이펀 등은 어디서나 자랑거리였다. 당시에는 대장장이가 마술사로 통했으니 툴레도는 곧 마술의 진원지가 되었다.

 

p77~78 알폰소 7세는 예전 코르도바의 회교도 왕들처럼 스스로를 ‘세 종교의 왕’이라 선포하고 유대인에게 자신의 종교에 충실하라고 권장했다.

    누구도 자기 동네에만 갇혀 살지 않았다. 도시의 상업 중심지인 알카나 시장에는 유대인들이 몰려 살았고, 그 근처에 기독교도와 회교도들이 얽혀 살았다.

 

p79 그러다가 기독교 왕들이 차츰 완고하게 변했다. 그들은 몇몇 회교당을 교회로 바꾸었고 이름도 라틴어로 개명했다. 회교 대예배당이 성 마리아 성당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코르도바에서는 인도 숫자, 툴레도에서는 아랍 숫자라고 불리는 영(0)의 사용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툴레도 시민들은 로마 숫자를 사용해 셈하도록 강요받았다. 또한 한 주를 이레로 하고 일요일은 반드시 안식일로 지키도록 법으로 정했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하여 회교도들은 금요일에 쉬거나 자신들의 설날을 쇠었고, 설령 기독교도들이 유대인의 결혼식이나 성년식에 참석해도 경찰은 못 본 척 눈감아 주었다. 툴레도 유대인 공동체에서 가장 부유한 이븐 슈산 가문은 마이문과 아들이 도착한 바로 그 무렵에 새로운 유대교회를 건립하기까지 했다. 기독교도들이 버린 교회를 유대교당으로 개조해 쓰기도 했다.

 

p82 너의 가족과 동포 그리고 모든 인간을 위해, 네가 지금 찾고 있는 사람을 더 이상 찾지 마라.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네가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끔찍한 불행이 닥쳐 죽음에 이를 것이다. 불행이라면 이미 충분히 겪었을 터.

                                                            깨어 있는 자들로부터

 

p84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지식을 학문에 의거하여 분류한 뒤 신앙심에 따라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p84~85 혼자서 신학, 철학, 천문학, 혹은 의학을 공부하다가 지치면 모세는 그 또래의 다른 청년들은 꿈도 꾸지 못할 난처한 질문으로 아버지와 랍비들을 귀찮게 했다. 암울한 희생제의는 왜 합니까? 우유와 고기를 섞어 먹지 못하게 금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공연히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사람들은 각기 다르죠?

⇒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대면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마치 정치에서의 그들처럼.

 

p85~86 그는 유대교의 율법은 너무 복잡하며, 계명을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너무 많아서 설득력이 없다고 여겼다. 특히 ‘디아스포라’ 이후 유대교의 고결한 종교적 권위를 지켜야만 할 바그다드의 랍비들이 앞뒤가 맞지 않는 교리를 퍼뜨리는 것에 분통이 터졌다. 모세는 모든 율법을 명료하게 요약한 글을 써 볼까도 궁리했다. 그러면서도 삶과 죽음과 자유의 문제에 관해 끊임없이 되풀이해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문제는 이것이었다. ‘인간의 존재는 무슨 쓸모가 있을까?

 

p86~87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인간 정신이 도달한 극대점을 보았다. 물질과 형상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은 자신의 종보다 훨씬 복잡한 상태를 가진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대목을 읽고 희열을 느꼈다. 가장 낮은 단계에는 형상 없는 물질인 흙이 있고, 가장 높은 단계에는 물질이 없고 형상만 있는 신이 있다. 외삼촌이 ‘대스승’이라고 부른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마주친 모든 동물과 식물의 형상을 이토록 상세하게 묘사했으니 필경 뛰어난 관찰자였을 것이다. 그는 모세가 찾던 답을 찾은 사람이었다. 이 그리스인에게 있어 욕망도 결핍도 없는 순수 행위에 이르러 영원성에 접근하는 것이다

 

p90 세상의 모든 왕국도 귀한 술 한 잔만 못하니! 인간의 모든 책과 학문이 감미로운 술 향기만 못하노라! 모든 사랑의 찬가도 술 따르는 소리에 비할까!

 

p91~92 “이스라엘을 다시 세상의 왕으로 세우고 정의롭고 폭력 없는 사회의 전범으로 만들 거야.

    “네가 말하는 메시아가 겨우 그런 일을 한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네! 나는 그가 인간을 영생불사하게 하고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고 믿었거든. 지상에 나라 하나를 보태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하찮은 일! 너도 공부는 때려치우고 나와 노는 게 나을 것 같다. 밤새워 놀고 난 다음 날 아침에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너도 알게 될 거야!

    “넌 사는 게 뭔지 몰라! 사는 거란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어 여자를 유혹하고 친구와 더불어 저녁 내내 노래를 부르는 거야. 그게 사는 거야. 지금, 여기에 천국이 있는 거야!

    “나는 시라면 질색이니까. 시나 음악이나 마찬가지야. 감정에 호소해서 신앙과 감동을 헛갈리게 만들 뿐이야. 그만큼 거짓된 것도 없어!

    “터무니없는 소리! 감동, 열정, 음악 그리고 시가 진짜 천국의 지도를 그리는 거야. 나의 시인을 다시 인용하자면 ‘풀밭에서 포도주 한 병과 사랑하는 연인의 입술, 내 욕망과 회한. 이것이 나의 천국이자 지옥.’이라는 거지.

    “인간의 영혼은 그 결점이 어떠하든 간에 공통의 영혼 속에 합류하리라 믿어.

    “공통이 영혼이라? 모호한 표현이고 미래치고는 그리 즐겁지 않네. 회교도가 제대로 사는 법을 더 잘 알지! 그들은 전쟁에 나가는 사람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기 위해 칠십 명의 처녀를 허락할 뿐 아니라 최후 심판의 날 ‘나우자’에 부활하기 전에 알라돠 개인적 대화를 할 기회를 갖는다고들 하지……. 물론 나는 부활이라는 개념을 좋아하진 않지만. 수천 년을 기다려 부활해 다시 오는 곳이 겨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 세상이란 말이야? 끔찍하잖아! 동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차라리 더 낫지.

    

p93~94 “신앙인들에게 가장 나쁜 위험은 믿음이 비이성적인 길로 일탈하는 거야.

       “그게 왜 위험하지? 누구에게도 해코지하는 사상이 아니잖아!

       “율법을 알고 현실 세계와 냉철히 대면하는 우리 정체성의 본질을 위협하게 될 거야. 그래서 교활한 종파를 키우고 유대교당을 비우는 데 일조할 것이거든.

 

p95 “인간이 철학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뜻이야 철학자들은 필멸하는 존재에 불과해. 신의 영감을 얻지 못한 자들이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언자가 아니야! 아무 근거도 없이 너무 조급하게 엉터리로 사유하는 산책가였어. 그는 공부하지 않고 스스로를 천재로 자처하면서 아무것도 믿지 않았지. 술주정뱅이 네 친구만도 못한 작자였고…….

 

p96 그는 자신만의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신을 믿어요. 그에게 있어 신은 곧 삶이에요. 그것도 신에 관한 훌륭한 정의가 아닐까요?

 

p97 그게 ‘스쳐 가는 사랑’이라 더욱 걱정되는 거다. 기독교도들은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날 돌연 아무 이유 없이 등을 돌린단다. 혹은, 우리 등에 칼을 꼽으려고 우리가 등을 돌리길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더구나 다비드가 그들과 외상거래를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p97 라시의 손자 탕이 했던 해석을 최근에 읽은 적이 있어요. 그에 따르면 비유대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이자를 붙인 대부 행위를 하면 그것을 통해 차용인들이 합리적 결정을 내리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래요.

 

p104 저들이 보이는 호의는 환상에 불과해. 기독교인들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받아들이지만, 권력자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우리를 증오하게 될 거야. , 여기에서 멀지 않은 바르셀로나의 경우에 주교는 곳곳에 이런 금지의 방을 내붙였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은 신앙이 미신에 오염되지 않도록 유대인과 사라센인의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하지 말 것이며 위반 시에는 파문당할 것이다.’고 했지.

 

p112~113 아무것도 거칠 것 없다고 느낀 이븐 루시드는 더욱 대담해졌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진리의 원천이며, 코란은 과학적 논고가 아니라 단지 과학에 존재하는 진리에 접근하는 방도에 불과하며, 사유와 배움과 창조의 즐거움은 믿음의 의무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하면 사람들은 분개한 표정을 감추어야만 했다. 또한 시간은 그 하류인 미래뿐 아니라 상류인 과거에도 영원했다고 감히 주장하기도 했다. 가장 단순하며 가장 덜 물질적인 본질인 신은 우주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제일 동인에 불과한 어떤 대표적 존재에게 그 운영을 위임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이 사유를 통해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신과 동격이 될 수 있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듣고만 있었다. 심지어 인간이 진실로 사유하는 것에 성공하는 아주 드문 순간에는 신만이 항구적으로 누리는 지복의 감정을 얼핏 느낄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이븐 루시드는 감히 알모아데의 사상적 지도자이자 알 가잘리의 제자로서 우주의 창조가 없다면 신도 없다고 주장한 마디마저 조롱했다. 신은 자신이 세운 집의 유별한 건축가가 아니라 그 작품이 계속 존재하도록 쉼 없이 연주해야 하는 음악가라고 반박했던 것이다.

 

p116~117 이븐 투파일은 믿지 못할 정도로 과감한 『깨어 있는 자의 살아 잇는 아들 하이 이븐 야크잔의 이야기』란 책을 쓴 적이 있었다. 이븐 루시드는 몇 달 전에 아버지의 서재에서 이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어릴 적에 난파당해 무인도에서 49년을 살면서 홀로 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신과 대화를 나눈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그는 어떠한 종교나 의식, 교회를 통하지 않고 기도와 명상과 환희와 평정심과 교감의 길을 혼자 개척했다. 근처 섬에 사는 뱃사람에 의해 발견된 그는 순순히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그가 신을 믿는 자신만의 방식을 설명하자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 역시 그들에게 아주 적합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진 신의 개념은 아주 추상적이며 보편적이며 자연스러워서 여러 교회의 신의 개념과 충돌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남들처럼 기도하고 경전에 손을 얹고 서약하라고 강요하자, 그는 신과 자신만의 독대를 위해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무인도로 떠났다.

 

p119~120 당신이 여기까지 보인 과감함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고집을 부리면 무지가 곧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대여, 이 책의 주인공과는 달리 나는 무인도가 아니라 인간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역할은 그 인간들에게 믿음의 필연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바다 한가운데가 아니라 코르도바에서 우리 예언자의 말씀을 갖고 자유를 너무 만끽했더군요.

 

p122 그리스 철학의 뿌리를 뽑고 측근 율법학자의 입을 빌려 그 철학을 고발하고 모든 철학서를 불태웠던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과 제논을 알고 있다니!

 

p122~123 그리스 철학을 안다고 해서 코란을 해석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믿는 자들은 예언자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실천해야만 한다. 마디가 서거한 이래 그 누구도 코란을 해석할 권리는 없다.

 

p123~125 "코란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코란을 이해하기 위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학문은 신의 말씀을 반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진리를 반박할 수 없습니다. 이성은 신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신의 피조물입니다.

    “그렇다면 그대 생각에는 이성이 종교보다 우월한 진리의 형태라는 말인가?

    “종교는 진리의 부차적 표현입니다. 직관으로 파악할 수 없는 우월한 형식은 오로지 철학과 과학의 엘리드들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오로지 학자들만이 태양이 겉보기에는 지구보다 훨씬 작지만 사실은 지구보다 매우 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성이 종교의 단순 해석을 반박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이 예언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예언자의 이름을 들먹이며 만들어 낸 오류를 반박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종교는 종교라는 미명 하에 거짓말을 해서 득 볼 것이 없습니다. 거짓말이 들통나면 결국 사람들이 종교를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책 어느 부분에서 해석의 오류가 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를 들어 경전을 보고 우주가 한순간에, 혹은 여드레 동안 창조되었다고 읽어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단 우리의 경전뿐 아니라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는 창조된 적이 없습니다. 우주와 동질 관계에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주 ‘이전’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시간 이전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이전’이란 것은 이미 시간에 속ㅎ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와 시간이 한순간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지. 여기에 알 가잘리의 답변, 우주가 영원하다면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은 불필요하게 된다.

   “가잘리의 생각은 근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신이 끊임없이 우주를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신이 잠깐이라도 잊는다면 우주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우주가 영원함을 입중하지는 못하네. 신이 우주를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다가 그냥 어느 순간부터 생각했을 수도 있지.

   “그런 경우에도 ‘이전’, 다시 말씀드려 시간이 생기기 전에 시간이란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p127~129 "회교를 단순한 신비주의로 바꿔 버릴 위험이 있는 자들과 싸우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공식적 사상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멍청한 극단주의자들은 수행에만 집착한 나머지 학문의 발전에는 귀머거리인제, 만약 그런 자들이 득세한다면 회교는 죽음을 맞이할 테죠. 상업적 부의 축적이 없다면 정치적 힘도 없고, 기술적 발명이 없다면 상업적 부도 생기지 않으며, 학문이 없다면 이성도 사라집니다.

   “선생님이 지목하는 극단주의가 어떤 극단주의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극단주의자라고 생각합니까? 언젠가 진짜 극단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짓밟는 개종자들을 용납하지 않지만, 회교는 학문을 포함한 적들의 모든 무기를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코란에 근거한 순수하고 합리적인 신앙으로 뭉친 강력한 나라를 세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용납하기를 금하는 모든 과격주의도 배격할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기독교인들도 만나야 합니다.

   “기독교도 중에는 아주 학식이 깊은 사람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지요. 당신이 툴레도로 가주면 좋겠습니다.

 

p133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성서를 알고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창세기가 그의 『자연학』에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합니다. 예언자 에제키엘이 묘사한 천상의 마차에 관한 이야기는 필경 그의 『형이상학』의 기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주의 영원성에 대한 개념도 아마 성서에서 착안했을 것입니다.

 

p134 창세기 2절과 3절에는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며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땅과 이 세상 모든 것의 창조에 관해 말하기 ‘이전에’ 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 창조 이전에 물질과 물과 시간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주는 영원한 것이고, 창세기는 은유적 말씀에 불과합니다.

 

3장 프랑스의 현자 - 서기 1162 3 5일 수요일

 

p152 이븐 루시드는 돌연 마음이 차분해졌다. 헤라클레스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에 대한 예언처럼 느껴졌다. 해협을 통과하고, 세계를 어깨에 메고 있다가, 죽음의 왕국에 가서 머리가 셋 달린 개를 데리고 나오는 것이 지금의 임무와 같은 것은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찾아 가져가는 것, 이것이 그의 노역이었다.

 

p154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단에 엄격한 기독교는 다른 일신교에 대해서는 다른 종교들보다 한결 관대했다.

 

p160~161 “하지만 신앙심이란 위협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증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아하니 당신은 세속 학문의 위력을 믿는군요. 유대교는 그런 학문이 필요 없습니다. 인간이 알아야만 하는 모든 것을 우리는 경전을 통해 배웁니다. 신이 글자와 형상에 숨겨 놓은 모든 것을 경전에서 추론하는 겁니다.

 

p162 "신은 추상적인 존재입니다. 신의 모습은 신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는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표음문자는 본질적으로 단어를 숨기기만 할 뿐입니다. 그것이 의미하지 않는 바를 말하는 것은 무익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사상에 오염되지 않은 프랑스와 독일의 위대한 랍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철학에 대한 답은 카빌라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빌라는 인간에게 세 가지 기막힌 능력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자신의 미덕으로 신의 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죽은 뒤에 한 인간에게서 다른 인간으로 이주할 수 있다는 능력이 그것인데…….

 

p163 "창세기에서 신이 신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창조했다는 대목은 육체적 형상이 아니라 정신의 유사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신의 ‘등’에 대한 대목도 신께 대한 복종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의 ‘눈’도 글자 그대로의 눈이 아니라 신의 섭리를 지칭하는 것이죠. 신은 추상입니다. 완벽한 추상.

   “자네는 정말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군. 우리는 사물을 지칭하는 것만으로도 신의 기적을 실현할 수 있는 걸세. 그러나 이를 위해 신의 학문은 특별한 지식을 요청하고 있지. 아주 긴 시간의 수련을 통해 얻은 이 특별한 지식을 통해 우리는 신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거야. 이 길은 자네가 말하는 ‘과학’이나 ‘철학’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네. 이 길은 바로 문자, 천사, 빛의 길을 통해서 가는 걸세.

 

p164 "제 생각에는 오로지 이성만이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성은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조타수와 같습니다. 이성을 통해서만 배는 빠르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습니다. 팽이와 쟁기를 만들어 더욱 많은 밀을 소출하게 된 것도 이성 덕분입니다. 우리가 쇠를 제련하는 것도, 툴레도의 검이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게 된 것도 모두 이성 덕분입니다. 따라서 세상이 발전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이성의 힘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성이란 그리스적인 것이죠. 원래 유대적이었으나 예루살렘 함락 이후 그리스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인 죽에서도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다른 모든 위인들과 마찬가지로 숭상되어야 마땅한데.

   “그런 것과 이성은 무관한 걸세. 쇠는 연금술로 만드는 거고, 배가 움직이는 것은 신의 숨결 덕분이며, 농업도 생명을 부여하는 학문이 없다면 불가능하지. 생명이란 신의 말씀이 들어 있는 카발라에 있는 것이지. 자네가 그토록 숭상하는 그리스인들에게 있는 게 아니고.

 

p167 회교든 유대교든 간에 코르도바의 다른 위대한 사상가들 중에서 신은 이성을 통해 이야기하고, 오직 이성만이 신에게 인도하며, 이성은 어떤 점에서도 신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잇습니다. 제가 이성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그건 신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우주가 신의 행위로 창조된 것이 아님을 이성을 통해 밝혔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랍비님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을 빌려 어떤 말장난이자 미로를 통해서 제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면 그것은 증명 불가능한 예언에 불과할 터입니다.

 

p175~176 방대한 세계는 우주에 떠도는 한 점의 먼지에 불과하네. 인간의 모든 학문은 말에 불과하네. 일곱 계절의 사람과 짐승과 꽃도 모두 그림자일 뿐. 기나긴 명상의 유일한 결론은 허무라네.  -오마르 하이얌

 

p182~183 "기독교도는 그래도 봐줄 만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백년 전 프랑스의 트루아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우리 스승 라시도 비슷한 생각을 했죠. 그는 회교와 기독교가 같은 일신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이스라엘 민족이 도망쳐 와서 살고 있는 이 나라들은 무로부터의 창조, 엑소더스 그리고 다른 본질적 관점들을 모두 인정하고 있죠. 라시는 이들 나라가 오로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만을 경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종교가 진리를 직시해야만 하고, 학문이 제공하는 것과 공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과 같은 기독교도들은 언젠가 깨닫게 될 겁니다. 당신들도 교리와 진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테지요. 그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의 교회는 지구가 평평하지 않으며 우주가 엿새 만에 창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파문하고 태워 죽일 겁니다.

 

p183 이성이 순수해질수록 그 덕분에 인간은 무지몽매에서 벗어날 수 있지. 그리고 이 삶도 살 만하고, 행복과 불행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으며, 슬픔도 기쁨도 모두 우리 상상 속에 있는 것이라서 마치 어둠이 물러가듯 사라지니 그리 슬퍼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깨닫게 될 걸세.

 

p191~192 울긋불긋한 황톳길을 회교도도 아니고, 신자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가난뱅이도 아닌 누군가가 걷고 있다네. 신도 율법도 숭배하지 않는다네. 진리도 믿지 않는 사람이라네. 아무것도 잘라 말하지 않지요. 쓸쓸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울긋불긋한 황톳길을 걷고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일까?

 

4장 제국의 상인 - 서기 1163 9 6일 화요일

 

p196~197 이븐 루시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했다. 그는 왕자가 요청한 대로 회교 교리와 합치하는 과학 사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코란 사이에 존재하는 일관성을 보여 주는 글을 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유럽의 장점으로부터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회교도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문제야말로 그가 어린 시절부터 곰곰이 답을 찾던 것이었다. 유럽의 회교도 사회는 기독교 세계나 아랍 세계보다 뛰어나며, 따라서 회교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그는 확신했다. 그리고 진리는 아랍어 코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자의 책에도 들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일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희열이었다.

 

p197~198 그는 자기보다 아홉 살 아래인 모세 벤 마이문이 제기한 문제들과 비슷한 주제를 사유하기 시작했다. 모세는 신성모독을 범하지 않고도 우주의 창조 진리를 찾는 것이 가능한가, 이성적 방식으로 신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가, 유일신을 믿지 않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유일신교 사이에 타협점은 있는가. 인간의 자유는 전지전능한 신과 모순되지 않는가. 상상력과 영혼은 불사할 수 없는가, 인간이 악을 저지를 것을 알면서도 신께서 인간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리는 모든 대중에게 알려야 하는가, 아니면 일부 엘리트만 알고 있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를 놓고 그의 아버지, 그리고 나르본의 유명한 랍비 두 명과 더불어 논쟁을 했다.

 

p200 전지전능한 알라신과 그의 첫 번째 노예 칼리프 압드 알 무민의 이름으로, 우리 총독부는 여성의 능력이 더 정당한 인정을 받아야 하며, 오로지 출산의 의무만을 지닌 존재로 인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여인들이 오로지 남편에게 봉사하고 출산과 수유와 교육의 일에만 매달리는 것은 정당하지도 않고 코란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여인들이 화초처럼 취급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제국의 이익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여인은 남자의 짐이며, 국가의 부담만 될 뿐이라서 제국을 빈곤하게 만들 따름이다. 따라서 이 도시의 모든 여인은 모든 분야, 특히 철학 분야에서 남자와 동등한 교육을 받을 것을 명령하는 바이다. 교육비는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부유층에게서 거둔 세금으로 충당할 것이다.

 

p217~218 우리의 종교는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완벽합니다. 유대인의 경전은 모호하고 오류투성이입니다. 한 민족의 종교 경전인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유일신교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세 개체를 신 안에서 하나로 합치시킨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큰 오류를 범했습니다. 만약 신이 삼위일체라면 누군가, 혹은 그 무언가가 세 개체를 하나로 만들어야 하며, 그렇다면 이 무언가가 삼위일체를 이루기 전의 신, 즉 진정한 조물주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다신교인 셈입니다. 우리의 코란은 명증성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기적입니다. 그 자체로 명증하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이기도 합니다. 코란이 명시적 해석을 권유하는 경우, 코란을 해석하는 것, 다시 말씀드려 겉으로 드러난 하나의 의미에만 매달리지 않는 것은 부당한 것이 아닙니다. 이 경우,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p220 이성이 오류로 인도한다고 해서 이 오류 때문에 사유를 금지한다는 것은 마치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갈증으로 죽게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성 때문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성이 악을 위해 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진보를 위한 이성의 사용을 금할 수는 없습니다. 신이 물질에 앞서 첫 번째로 창조한 것이 바로 이성입니다. 신은 오성의 훈련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불변의 수학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를 고안하셨습니다. 따라서 지식은 불신도 아니며, 신의 피조물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신이 원하신 법칙에 대한 이해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런 법칙을 연구하는 철학은 이성과 우주에 대한 사색을 할 수 있는 권리의 표현입니다. 예술작품이 우리를 예술가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듯 철학은 영원한 신에게 접근하도록 해줍니다. 반면에 이성 없이 신과 우주의 신비에 다가갈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를 미신과 광신으로 이끌며, 이것은 전능하신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p222 이성적인 것이 계시적인 것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의 바깥에 있기 때문이죠. 그것들은 다른 쪽의 영역을 해치지 않으면서 각기 고유한 정당성을 지닙니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비록 새로운 진리라서 금지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라서 저는 ‘아클(이성에 의한)’ 즉 성찰을 ‘나클(계시에 의한)’ 즉 모방보다 선호합니다.

 

p224~225 이 대목이 제 강의의 요점입니다. 우주를 이해하고, 진리를 추론하는 것. 이를 위해서라면 철학자의 출신지가 어디건 간에 그의 사유를 이용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그리고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분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 각기 다른 종교. 그러나 뿌리는 같은. 어떻게 같은 뿌리에서 갈라서게 되었는지. 종교로서 종교를 박해하는 인간들. 선후가 바뀐듯한 종교의 본질.

 

p228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인간은 진화하지 않는다! 땅이 침팬지가 되고 침팬지가 인간으로 된다는 진화를 믿는 것은 아닐 테지? 너는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든 인간의 개별성을 인정하는가?

    이븐 루시드는 평생 이토록 큰 위험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 신의 손으로 창조된 유일한 존재의 기원을 문제 삼는 것은 신앙에 대한 가장 큰 죄악이었다. 하지만 이제 결말을 지을 시간이 되었다.

   “우주는 신을 향한 진화 과정에 있습니다. 저는 이성이 제게 믿으라고 말하는 것을 믿습니다. 특히 이성이 신의 기획에 감탄할 근거를 제공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5장 두 번째 시험 - 서기 1164 12 5 

 

p261 그에게는 생각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었다. 사유란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는 제약 없는 즐거움이었다. 또한 우주의 존재를 우해 우주를 생각하는 신과 같은 삶을 잠시 동안 사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사고한다는 것은 신이 영원히 느낄 법한 것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얼핏 느끼는 것이었다.

 

p275 신에게 선의, 질투심, 분노, 자존심, 정의감, 자비심, 권능 등의 속성을 부여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신의 본질은 모든 인간적 범주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신앙과 이성은 공존할 수 있으며, 고유한 이유로 스스로 존속하는 신은 자신의 부재를 결정할 수도, 자신의 구유한 법칙을 변경할 수도 없다는 것이 두 사람의 판단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이성이란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었다. 부패할 수 있는 물질만이 악이며, 영원불멸한 정신은 선이었다. 또한 보편적 섭리란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활용한 물리학 법칙이 적용된 것에 불과했다. 인간이 신의 계율을 멀리하고 악으로 빠지는 이유는 오로지 자유의지 탓인데, 하지만 어느 것도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추론이었다. 그들은 기도란 신에게서 원하는 바를 얻어 내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명상의 한 형태라고 생각했다.

⇒ 두 주인공의 견해가 어긋나지 않고 동일한 지점을 향해 있다는 것.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겠지.

 

p275~276 대체로 이븐 루시드가 모세보다 더 과감했다. 이븐 루시드는 시간과 무관하게 영원한 우주의 존재에 있어 신이 하는 역할은 전혀 없고, 신은 단지 우주에 대한 생각을 멈춤으로써 우주의 속성을 변경시킬 수 있을 따름이라고 과감하게 공언했다. 모세는 이런 과감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만약 학문이 물질의 영원성을 증명한다면 성경은 이런 생각과도 양립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가끔 배짱이 두둑할 때 창세기를 읽다 보면 우주 창조 이전에 물질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모세는 신이란 순수 추상이라고 선언하며 이븐 루시드보다 더 과감해지고 했다. 이븐 루시드는 만약 신이 비물질이라고 제시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며, 그래서 신은 빛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p287 자살은 재채기처럼 올 수도 있어. 그 순간만 지나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었을 거야.

⇒ 재채기처럼 순간에 온다는 어떤 구절이 있었는데, 당장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재채기에서 연상하는 이미지가 비슷한듯.

 

p294~298 첫 번째 질문. 세 개의 유일신교를 대립시키는 게 무엇인가?

     “종교적 차이점은 없습니다. 우리는 같은 것을 믿습니다. 유대인도 회교도처럼 신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라고 믿습니다. 신은 인간 앞에 나타나서 인간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신은 인간을 돌보며 인간의 행동을 배려합니다. 신은 인간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합당한지를 가르쳐 줍니다. 신은 인간의 행동과 당신의 계명에 복종하는 방식에 따라 인간을 심판합니다. 더구나 유대교의 아홉 원리는 회교와 병존할 수 있습니다. 조물주의 존재, 예언자들의 말씀,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받은 율법, 율법의 불변성 그리고 신의 편재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유대인에게 있어 모세는 예언자 중 가장 위대한 예언자인 반면, 마호메트는 예언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언자라면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마호메트는 읽을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예언자는 군대의 우두머리가 되지 않고 백성을 인도하는 데 반해, 마호메트는 군대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마호메트는 예수나 마리아, 혹은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처럼 신성한 임무를 띤 인간에 불과합니다.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고 걸으며 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유대교에서 악이란 무지인 반면, 회교에서는 무자비입니다. 히브리어로 악마란 횡설수설하는 자를 뜻하지만 회교에서 악마란 인간을 질투하는 귀신을 뜻합니다. 예컨대 파라오 시대 「에스델서」의 인물인 하만을 되살렸고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세와 아론의 누이인 미리암과 혼동합니다. 또한 예수를 ‘이사’라고 부르면서 이삭의 아들 중 한 명인 에사오를 예수와 혼동하고 있습니다. 코란에서는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 제물이 되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유대인이 보기에는 회교는 가장 순수한 일신교이며, 저는 회교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기독교는 다른 경우입니다. 기독교는 일신교가 아닙니다.

   “우리 회교도 역시 가장 완벽한 종교인 유대교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마호메트의 종교인 회교는 유대교와 너무나 비슷해서 메디나의 우상숭배자들은 유대인이 가로챌까 두려운 나머지 서둘러 예언자 마호메트의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더구나 아브라함의 이름은 코란의 스물다섯 절에서 예순아홉 번 등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의 정체성에 대해 유대인과 똑같은 개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신이란 빛이지만 그들에게는 추상입니다. 더구나 회교는 보편적입니다. 유대인처럼 하나의 민족이다. 기독교처럼 한 인물을 통해서 전파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며, 저는 ‘수우비야’ 즉 모든 회교도의 평등함을 믿습니다. 회교도는 창조된 우주만으로 신을 보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코란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유일한 기적이며 신의 유일한 표현입니다. 또한 진실한 예언의 유일한 징표입니다. 이것이 특정한 방식으로 쓰여진 까닭은 다른 종교를 빼앗긴 아랍 민족을 위해 보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p299~300 두 번째 질문. 무엇이 우주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가?

    “우주는 신이 우주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사라집니다. 신은 어느 순간 우주를 원했으니 어느 순간 원하는 것을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믿듯이 신의 뜻과 무관하게 우주가 영원히 존재하기도 하지만, 또 언제라도 신은 우주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를 창조하기 전에 물질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단서가 창세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영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이 우주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우주를 끝장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p300~301 세 번째 질문. 진리는 예언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현시될 수 있는가?

    “똑같은 진리가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마호메트에게 현시되었고, 신의 발현으로 철학자들에게도 현시되었습니다. 신성한 빛, 신성한 말씀의 표현이 곧 지적 인자인 셈입니다. 철학과 과학은 우주의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성은 예언자들이 신으로부터 받았던 것과 똑같은 진리에 접근하는 길을 인간에게 열어 줍니다.

    “신은 여러 민족에게 그 민족의 성향, 관습, 문화에 맞는 다양한 계시를 통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언젠가 유대인이 아닌 예언자도 생길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 따르면 성전이 파괴된 후로 오로지 아이와 미친 자만이 예언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도 아니고 미치지도 않았지만 가끔 예언자처럼 말하는 누군가를 알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p303 "이성의 역할은 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신은 오로지 정돈된 세계만을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철학의 목표는 수학이나 법과 마찬가지로 신의 작품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며 폭력을 제거하는 데 있습니다.

⇒ 이 책의 반복된 질서. 이성은 이성대로 종교는 종교대로의 역할.

 

6장 랍비의 수수께끼 - 서기 1165 4 8

 

p317 "우리를 가깝게 한 것은 인간들의 폭력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더라도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인간이 만 년을 산다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테지요.

 

p325 종교전쟁의 허구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네. 전쟁의 문제는 서로 싸운다는 것보다 힘의 과시라는 데 문제가 있네.

 

p337 우주 법칙을 설명하면서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이 신의 말씀이며 신은 종교뿐 아니라 이성을 통해서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대단한 폭로입니다.

 

p337 신은 과학을 통해 이야기하며 종교는 이성 앞에서 사라져야만 한다고 주장한 사람, 우주의 법칙을 전수받았던 비유대인 예언자, 그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면. 용납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군요!

 

7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 - 서기 1165 4 18

 

p347 나쁜 소설만이 자전적이네. 좋은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쓰이지. 그리고 그 본성이란 허구 속에서만 찾을 수 있고.

 

p368 나는 세비야에 정착해서 글을 쓸 생각이야. 어떻게 코란을 포기하지 않고 과학을 이용할 수 있는지 증명하고,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야만임을 소리 높여 외치고, 신의 뜻은 우리 개개인의 마음에 있으며, 왕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행동하지 않고, 누구도 ‘이것은 모두 내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며, 각자가 신에게서 받은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나라를 위해 싸울 거라네.

 

그들은 누구인가?

 

p371 모세 벤 마이문. 일명 마이모니데스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1135년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설에서처럼 1149년에 코르도바를 떠났다. 그의 흔적은 1162년의 페스에서에 찾을 수 있는데, 필경 그곳에서 의학을 강의했을 것이다. 그 사이에 툴레도와 나르본을 거쳤을 것이란 가정을 배제할 수 없다. 그가 소설에서처럼 개종을 거부한 랍비 이븐 슈산이 처형된 지 열흘 후인 1165 4 8일에 페스를 떠났다는 것은 입증된 역사적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 시기에 마이모니데스가 회교로 개종했다고 주장한다.

 

p372 이븐 루시드. 일령 아베로에스는 1126년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가 소설에서처럼 툴레도에서 잠시 체류한 다음, 1161년에 세우타 총독의 비서가 되었다. 또한 소설에처럼 페스의 알 카라위인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세비야의 판사로 임명되었다.

 

p372 이븐 투파일도 책에서처럼 작가이자 고문관, 장관 그리고 재상이었다. 또한 이 책의 주체가 언급된 소설인 『깨어 있는 자의 살아 있는 아들 하이 이븐 야크잔의 이야기』의 실제 작가이기도 하다.

 

p372 크레모나의 제라르도도 이탈리아에서 툴레도로 와서 오랫동안 영국인 제자를 키운 번역가였다.

 

끝나고 다시 시작된 이야기

 

p377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회교 왕궁인 그라나다는 1492년에 함락당했다. 카를로스 5세의 명령에 따라 코르도바의 모스크 ‘메스키타’는 성당으로 바뀌었지만, 나중에 그는 후회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디에나 있는 건물을 위해 여기에만 있는 건무을 부수고 말았구나!

 

 

3. ‘내가 저자라면’

 

■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들어가며 

1장 죽음의 날 - 1149년 5월 27일

2장 첫 번째 시험 - 1162년 1월 6일

3장 프랑스의 현자 - 1162년 3월 5일

4장 제국의 상인 - 1163년 9월 6일

5장 두 번째 시험 - 1164년 12월 5일

6장 랍비의 수수께끼 - 1165년 4월 8일

7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 - 1165년 4월 18일

그들은 누구인가?

끝나고 다시 시작된 이야기

감사의 말

참고도서



 “이 이야기는 역사상 딱 한 번 있었던 일로서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20년 동안의 시절에 관한 것이다. 때는 역사상 딱 한 번, 딱 한 곳에서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고 찬양하며 서로에게서 자양분을 섭취하는 길을 택했다(p7.)

 

 역사상 딱 한번, 딱 한곳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어우러졌던 곳은 12세기 스페인이다. 당시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코르도바는 이슬람교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하던 평화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북아프리카 알모아데족이 스페인으로 침입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개종이 요구되고 처형이 난무한 종교박해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을 피해 이븐 루시드와 모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절대적 영원에 대한 논고』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 책은 신이 우주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주는 이미 시간 전에 있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슬람교도인 이븐 루시드는 이슬람 제국의 왕의 의중에 따라 재상이 명령하는 대로 이 책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유대인 모세는 처형당한 외삼촌이 남긴 유언으로 이 책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종교와 이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이어지고 책을 찾는 여정 속에 목숨을 위협받기도 하고 살인 사건도 벌어진다. '깨어 있는 자들'이 등장하며 책을 찾지 말라는 위협과 찾는 일을 방해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책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왜 그들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고민하는 두 사람은 스페인의 현자로서 끊임없는 질문에 부딪치고 사상을 피력한다.

 

p8 여기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은 이 시대의 이념에 충실하다. 파란만장한 삶도 전부 실화이며, 그들이 한 말들도 실제 대화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특히 오늘날 서구에서 아베로에스라고 불리는 아부 알 왈리드 무하마드 이븐 루시드는 정말로 위대한 이슬람 철학자이며, 마이모니데스라고 불리는 모세 벤 마이문 역시 위대한 유대교 사상가이다. 소설에서처럼 이 두 사람은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살다가 1149년 그곳을 떠나 모로코로 들어갔다가 1165년에 다른 곳으로 떠났다.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이 시기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렇듯이 이 위대한 이슬람 철학자와 유대교 사상가가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눴을 공산이 매우 크다.

  

 자크 아탈리는 역사적인 인물과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여 공통의 분모를 이끌어낸다. 여기에 허구적인 상상을 더해 이 글을 완성해냈다. 실존 인물들을 통해 재현해 낸 이 이야기는 소설적인 구성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철학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자크 아탈리 자신이 ‘프랑스 최고의 석학’으로 불리며 정치, 경제, 인문, 예술 등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 책은 단순한 삶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인문학적인 내용을 소설이란 형식으로 풀고 있을 뿐이다.

 소설은 미스테리적이며 여행기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형식으로 자크 아탈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종교와 이성의 조화이다. 이야기 속에는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많은 현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종교와 이성에 대한 많은 대화, 담론들을 나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철학적인 논쟁이 가득하다. 이런 철학적인 담론을 이론적인 형태로 풀어냈다면 지루하거나 어렵거나 했을 터인데 미스테리 형식의 소설 속에서 강연으로, 대화로 풀어 가기에 조금 더 쉽게 느껴질 수 있는 듯하다. 또한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이므로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허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주인공의 삶에 대한 몰입을 더할 수 있다.

 

■ 감동적이었던 장절

  

 매우 유명한 학자인 저자가 소설을 썼다기에 궁금했다. 어떤 내용인지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소설책이라는데 두께가 제법 된다. 정말 소설일까. 과연 학자라는 사람이 쓸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철학자에 관한 책을 쓴 저자가 철학적 주제와 내용을 전하는데 소설 형식을 택했고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한마디 한다

 

  "나쁜 소설만이 자전적이네. 좋은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쓰이지. 그리고 그 본성이란 허구 속에서만 찾을 수 있고."

 

 자크 아탈리는 좋은 소설을 쓴 것일까.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좋은 소설이라 할 것이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 종교전쟁, 종교가 매개가 된 전쟁을 보건대 ‘종교전쟁의 문제는 서로 싸운다는 것보다 힘의 과시’라는 말이 오늘날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책 속에서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을 계속 되묻게 된다.

 세 개의 유일신교를 대립시키는 게 무엇인가? 무엇이 우주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가? 진리는 예언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현시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진리의, 비밀의 책을 찾는 두 주인공이 각각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종교와 신, 종교와 이성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물음과 모순과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기를 알 수 있는 물음이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영원케 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적으로 몰아갈 수 있음을, 종교적 갈등이 초래한 비극적인 역사의 한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논쟁들이 많이 제시되었다.

 마침 스페인 여행의 뒤라서 주인공들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온전히 상상이 아니라 직접 본 장소를 그리며 쫓아갈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스페인에 세 종교가 공존했던 그 시기처럼 반목하지 않은 종교에 대한 바램, 종교가 종교답기를, 종교인이 종교의 교리의 본질을 잘 실천하기를 실로 바라는 마음으로 책의 여정을 함께 했다.

 

■ 보완점

 

 일단, 소설이다. 미스테리한 구조와 여행기가 보태지면서 흥미를 높여 준다. 그런데 소설적 구성을 갖추고 있지만 소설적 재미는 조금 약하다. 비슷한 형태의 소설과 비교하여 봤을 때 지루한 감이 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나 종교와 이성에 대한 물음과 질문들을 대화나 강연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그 강연과 대답은 결국 같은 주제로 일관되어야 하기에 반복적인 패턴으로 나타난다. 철학적 개념과 사상을 대화식으로 풀어 좀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측면은 있다.

 ‘실화소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등에 사람들의 관심을 쏟듯이 현존한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였기에 흥미를 배가시키는 부분은 있다. 그들의 인생을 재현하고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에 상상을 가미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부분에서 흥미를 더할 수 있다. ,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선택했지만, 양념이 첨가되지 않은 담백한 느낌이다. 이 담백이 나쁘지 않게 느껴지긴 한다. 그저 다분히 학자의 냄새가 풍긴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프랑스에서는 이 책이 유명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저자의 다방면의 글쓰기의 능력이 모자람이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책의 완성은 저자가 지닌 다방면의 지식과 이미 세계적으로도 드높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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