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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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2■
서
마냥 시를 외어대던 시절에는 분명 감성적이었을 거다. 사춘기 그리고 여학생 때의 그것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깊고 알 수 없었을 거다. 그렇기에 온갖 종류의 시 중에서도 암송되는 시구詩句들은 단조의 은율이 배어 있었을 거다. 여전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시들은, 그랬다. 헌데 그 와중에서 오래도록 나를 떠나지 않는 시가 아니라 시구가 있었으니……. 그 시의 첫 행만을 되씹고 있는 것은 이해를 하지 못함에서 오는 집착일까. 그렇게 되어 버릴 운명에 대한 불안이었을까.
빗물이 부딪혀 마찰음을 내는 새벽에 방 안은 환해지려 하지 않았다. 빗물을 내보내기 위한 구름은 잿빛으로 단장하여 단단하게 결속을 하고 있었으니까. 어둠을 보다가 어둠으로 증폭된 소리를 듣다가 아침이 계속 어두울 것을 알았다. 해야 할 리뷰와 칼럼이 있음에도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내 속의 어둠과 증폭된 소리들은 심장마비가 걸릴 정도로 급박하진 않았으나 조금 길고 대책이 없었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주차장의 차들이 그 빗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세다가 의아한 점을 발견했는데 오늘따라 주차장의 차들이 반 이상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10시를 넘어서고 있음을 감안하면 차량이 너무 많았다. 이들이 단체로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인가, 연가를 낸 것인가. 이토록 평범한 11월 넷째주의 월요일에. 빗방울 소리에 단체로 늦잠이라도 잤을까. 어쩌면 출근시간을 9시로 생각하고 있는 나의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출근시간이 오후일지 모른다. 아직 남아 있는 차량의 주인공들 모두 인근의 자영업자들, 굳이 출근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이들일지 모른다. 우선 나부터도 12시가 다가옴에도 아직 출근(?)하지 않고 있잖은가. 나의 출근 시간은 좀 더 있어야 될 것 같다. 이것은, 정말이지 회피로 보인다. 문장, 책, 글쓰기에서 찾던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까마득하다.
자크 아탈리의 소설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에서처럼 비밀의 책이 있다면 목숨 따위 생각않고 찾으러 달려갈 것인가. 그랬던 시절도 있었다. 부족했더라도 마냥 책읽기에 몰두했던 시절과 여전히 독서가, 지식의 습득이 삶의 길목마다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들이. 이제 그 어떤 지식들로도 여전히 길목에 머무르고 있는 멈추어버린 발걸음을 보게 된다. 곱씹고 곱씹던 시구는 여기서 나타나 멈춤 발걸음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준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지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모자란 지식일 것이라는 생각이 내가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랄까. 그러나 책을 읽어도 지식이 저장되지 않고 포르르 날아가는 것도 아닌, 어딘가로 질질 새어나가는 것만 같다. 그렇게 책읽기를 통해서도 글쓰기를 통해서도 삶이 위안이 되지 않는 시절들이 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삶의 넉다운을 하소연해대던 이들에게 내가 풀어주던 말들을 내게 한다면 ‘닥쳐라’라고 내뱉을 수 있을까. 시간을 돌이켜보니 그 어떤 순간에도 표정과는 다른 말들을 내뱉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고 싶은,보다 그래야만,하는 삶을 살던 폐해다. ‘하는’이 ‘싶은’을 삼켜버렸다. ‘싶은’의 소리가 존재하지 않은 듯이 흩어져 버렸다. 닥치고 외어야만 했던 영어 문장처럼 삶의 감정과 분리된 언어가 귓자리에 맴돈다. 오래도록 구겨진 인상을 하고 아픈 배를 감추며 내뱉었어야 할 저 문장들처럼 삶을 산다는 것이 하나의 매뉴얼이 되어버렸다.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크 아탈리가 그가 쓴 소설에서 "나쁜 소설만이 자전적이네. 좋은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쓰이지. 그리고 그 본성이란 허구 속에서만 찾을 수 있고."라고 말했을 때 나는 “나도 인간의 본성을 알고 싶어요”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은 나의 본성일 터인데가 어쩔 수 없이 뒤미처 따라온 생각이다. 허구이든 실제이든 이해하고 위안받을 수 있는 삶의 글들을 찾으러 떠난 이들처럼 나도. 글속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그 세계로 되돌아가 그 때보다 더 잠기고 싶다.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How are you?"
매뉴얼이 되어 버린 많은 것들. 그것들이 난무하는데 삶이라고 그럭 저럭 살아간다고 매뉴얼에 쓰여진 대로 느끼고 있다.
다음장을 넘기면
"I'm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쓰여 있으면 좋겠다. 매뉴얼 대로라면 그래야 한다. 하지만 just so so 다. 늘 대답은 just so so 다.
그러니 매뉴얼도 이제 매뉴얼이 아니다.
사막으로 가자 사막에는 모든 길이 에움길이니
매뉴얼에 있는 길도 없겠지
사막에으로 가자 밤 하늘 별빛만으로 한낮의 햇볕만으로 우리는 알겠지
지나온 길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지금 이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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