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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6일 05시 5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2.18-1957.10.26)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크레타의 수도)에서 태어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 74세를 일기로 생을 마침. 묘비명을 자신이 생전에 준비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어떤 시대였나?

크레타그리스 13주 가운데 하나이며, 그리스에서는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는 5번째로 큰 섬. 그가 태어날 즈음 크레타는 몇몇의 그리스도교도의 반란이 일어났고, 1898년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으로 있다가 1913.12월에 그리스 영토가 된다. 후에도 세계 제2차대전 동안 섬은 전투(크레타전투: 1940 2차대전 초기 독일군이 그리스 공방전에서 그리스 본토를 점령하고 남은 동부 전선 지역의 근거지인 크레타 을 공략해 발칸 반도 지역을 완전히 점령한 전투)의 무대였다.

1970년대 전까지 크레타 경제는 농업 목축 중심이었다. 기후는 지중해성으로 온화하다. 공기는 상당히 습하고,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겨울에도 꽤 따뜻하다. 11월에서 5월 사이 산에는 눈이 흔하지만, 특히 해안 등 낮은 지역에는 드물며 몇 분, 몇 시간만 지나도 땅에 금방 눈이 사라진다. 여름은 평균 기온이 섭씨 20도 후반에서 30도 초반 정도이며, 가장 더울 때는 섭씨 30도 후반에서 40도 중반이다.

고대사에서 크레타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 땅에는 미노아 시대 크노소스파이스토스의 유적, 고르티스 유적, 하니아항과 베네치아의 옛 도시, 레팀노의 베네치아 성과 사마리아 협곡 등 다양한 유적이 있다.

<그러나 학교와 선생들보다 훨씬 더, 세상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느꼈던 기쁨과 두려움보다도 더 깊이, 내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준 것은 정말로 독특한 면에서 내 마음을 움직였던 크레타와 터키 사이의 투쟁이었다>….83

어떤 사람인가? (성과 양육, 기질, 가풍, 교육)

아버지 미할리스는 바르바르출신으로 곡물과 포도주 중개상.

1897(14) 크레타에서 두 번째 반란이 일어나고 자치권을 얻음. 그의 가족은 안전을 위해 닉소스 섬으로 가고 그곳에서 프랑스 수도사들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님. 프랑스어에 대한 사랑이 시작.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나는 거칠고 쉴 곳 없는 자유의 오름 길에 올랐다>….84

그의 삶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위의 글이 잘 말해준다.

<나 자신을 굽어보고 나는 전율한다. 아버지 쪽의 내 조상들은 바다에서는 피에 굶주린 해적들이었고, 땅에서는 투사들이어서 신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어머니 쪽은 하루 종일 흙 위에 몸을 굽혀 씨 뿌리고, 태양과 비를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추수를 하고, 저녁이면 집 앞 돌로 만든 긴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신께 희망을 걸었던 선량한 농민들이었다.>

<조상들>이라는 소제목이 있는 첫머리이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의 조상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도 두려워하지 않는 피에 굶주린 해적이었다라고. 어머니는 선량    한 농민이었음을.

그는 수많은 꿈 이야기를 한다. 다음은 그 대목 중 하나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누구였을까? 내 뱃속이 그토록 깊고 계시적으로 노출된 적은 없었다. 그날 밤 이후로 나는 마침내 여러 해 전부터 추측하던 바를 확신하게 되었으니, 우리들의 몸 속에는 쉰 목소리들이, 굶주린 털북숭이 짐승들이_어둠이 겹겹이 숨어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말인가? 원시의 배고픔과, 목마름과, 고난과,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모든 밤과 달은 우리들이 살아 있는 한 우리들과 함께 살고 배고파하며, 우리들과 함께 목말라하고 고통을 받으리라. 나는 창자 속에 담고 다니던 무거운 짐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는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렸다. 나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인가? 내 뱃속은 영원히 깨끗해질 수 없을 것인가?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그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 융은 어릴 적 꿈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꿈을 통하여 집단무의식을 설명한다. 저자의 꿈도 그가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내재된 무의식의 세계를 설명한다.

아버지는 말이 별로 없었고, 웃거나 싸움에 끼어드는 적도 절대 없었다. 아버지는 이를 갈거나 주먹을 불끈 쥐기만 할 따름이었고, 마침 껍질이 단단한 아몬드를 쥐고 있었다면 그것은 부스러져 가루가 되었다.

어머니는 성자 같은 여인이었다. 50년 동안 곁에서 사자의 강렬한 숨결과 탄식을 느끼면서도 상심해서 괴로워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인가? 어머니는 대지의 다정함과, 끈기와 인내를 지녔다. 어머니 쪽의 조상은 모두 땅 위에 엎드리고, 흙에 달라붙고, 손과 발과 마음이 흙으로 가득한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땅을 사랑했고, 모든 희망을 거기에 걸었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흙과 한 덩어리가 되었다. “….저자의 글31 36쪽에서

<나에게는 최초의 큰 욕망이 자유였다.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 나를 괴롭히는 두 번째 욕망은 성직에 대해서였다. 영웅성을 지닌 성인, 그것인 인류의 가장 숭고한 본보기이다. 어릴 적에도 나는 이 본보기를 담청색 하늘에 아로새겼다.>….89

무엇을 했나?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험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1908(25)파리로 건너간 그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게 된다. 그의 삶과 작품에 영향을 준 다른 하나는 여행이었다. 1907년부터 유럽과 아시아지역을 두루 다녔고, 이때 쓴 글을 신문과 잡지에 연재했다가 후에 여행기로 출간. 1917(34)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사업을 함. 1919(36) 베니젤로스 총리를 도와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일함. 1922(39) 베를린에서 조국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그는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인 행동주의와 불교적인 체념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함. 1955(72) 앙티브(프랑스 동남부)에 정착했다가 중국정부의 초청으로 다녀온 뒤 얼마 안되어 백혈병으로 사망.

27(1910)에 이라클리온 출신의 작가인 갈라테아 알렉시우와 아테네에서 동거시작.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와 고전 그리스어를 번역하여 생계를 유지. 이듬해(1911) 그녀와 결혼. 엘레니 사미우와 1945년 두 번째 결혼.

무엇을 남겼나?

아테네 대학교에서 법률공부. 파리에서 철학자 베르그송에게 공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문학과 미술공부. 스페인, 영국, 러시아, 이집트, 이스라엘, 중국, 일본 등지를 두루 여행. 철학논문과 희곡(비극)과 여행기. 서사시, 서정시 등 작품이 풍성함.

소설

[향연] , [토다 라바],  [돌의 정원] , [알렉산드로스 대왕],  [크노소스 궁전],  [그리스인 조르바],  [수난] , [미할리스 대장],  [최후의 유혹] , [성자 프란체스코],  [전쟁과 신부]

여행기

[스페인 기행], [지중해 기행], [러시아 기행], [모레아 기행], [영국 기행], [일본, 중국 기행]

서사시, 희곡, 자서전

[오디세이아], [붓다], [소돔과 고모라], [영혼의 자서전], [카잔차키스의 편지]

[미할리스 대장][최후의 유혹]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교회로 맹렬히 비난 받고 1954년 금서가 되기도 함.

그는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두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작가로 추앙 받고 있음. 그가 크레타에서 태어나지 않고 러시아나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참고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옮김. 열린책들

http://ko.wikipedia.org/wiki/%EB%8B%88%EC%BD%94%EC%8A%A4_%EC%B9%B4%EC%9E%94%EC%B0% A8%ED%82%A4%EC%8A%A4

<나에게 이 책은>

Report to Greco 영혼의 자서전의 원제(原題)이다.

난 이 책의 저자를 안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몇 년 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이다. 물론 그때의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상황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감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재미있는 책 하나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많은 지식인들의 추천도서에 올라오는 책이라서 읽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라면 믿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내게는 있다. 누군가 해당 분야를 잘 안다고 판단하거나 책 속에 묻혀 사는 사람들에게 한 권의 책이 되어준 것이라면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이 있었지만 더 자세히 작가를 파고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한 남자의 병실에서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중환자실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상태로 누워있는 남자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남자. 두 남자의 공간에 내가 살짝 문을 밀게 되었다. 병문안을 가서 보는 일반적인 광경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의 공기였다. 책을 읽던 남자는 내려놓고 문 쪽으로 온다. 병원 복도에서 기다리는 내게로 나온 것이다. 환자는 지금 잠이 들었다고 했다. 잠든 환자를 깨울 일이 아니라서 그냥 돌아섰다. 무슨 책을 읽는 거냐고 물었더니 [영혼의 자서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어 달라고 해서 읽어주는 중이라고 했다. 병문안을 갔지만 환자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돌아 나오는 길. 그가 생의 마지막일지 모르는 지점에서 읽고 있는 책. 읽기보다 듣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책 읽어 주는 남자라는 영화가 있었다. 물론 원작의 소설도 있다. 맑으면서 저음의 남자 목소리로 들려주는 글은 꽤 매력적이다. 그 남자가 읽고 그 남자가 듣던 책을 샀다. 병원으로 나오면서 첫 번째로 보이는 서점에 들어가서. 다행히 서점에는 책이 있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첫머리에 나오는 영혼의 기도를 읽었다. 수첩에 옮겨 적어 놓기도 했다. 이렇게 내 손에 잡힌 글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를 읽다가 손에서 놓아둔 상태였다. 2년이 흐른 지금 다시 책을 잡았다. 동기들과 함께 읽기로 했다. 번역자의 의도를 감지한다. 영혼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영혼이 느껴지는 자서전임에 분명하다. 부단히 오름을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생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감지하면서 쓴 글이다. 어떤 영혼의 소유자였음을 잘 보여준다. 또 삶이 끝나감을 감지하는 한 남자가 병상에서 듣고 싶어 했던 글이 이 책이었는지도 알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그의 삶이 한 평생 이렇게 치열했는데 그 치열했던 삶을 글을 읽는 것만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언젠가 다시 책을 잡을 날이 있을 것 같다.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날이 있겠지.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작가노트

7 인간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모든 인간은 십자가를 지고 그의 골고타를 오른다.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두 걸음 나아가다가 여로의 중간에서 숨을 몰아 쉬며 쓰러지기 때문에 골고타의 정상에, 그러니까 의무의 정상에 이르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여 다른 자들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십자가의 처형이 두려워 그들은 마음이 약해지고, 부활애로의 길이 십자가뿐임을 모른다. 다른 길은 없다.

8 내 생애에 항상 나를 괴롭히고 채찍질을 한 단어는 언제나 [오름]하나뿐이었다.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

첫째,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힘껏 당겨 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프롤로그

11 시각(視角),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지성_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를 생각할 때 그는 아직 피곤하지 않다라고 적고 있다. . 나는 벌써 지친 기분인데 그때가 되면 달라질는지, 시간을 구걸이라도 하고 싶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이렇게 적고 있다. 피곤하지 않다라고.

나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누구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는가? 산과 바다와 발코니 위로 포도가 무겁게 얹힌 격자 울타리에게? 미덕에게? 죄악에게? 신선한 물에게?...덧없도다! 이 모두가 나와 더불어 무덤으로 내려가리라.

, 내가 없어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 세상의 모든 것. 우주

12 정열적으로, 조용히, 나는 크레타의 흙을 한 줌 꼭 쥔다. 나는 이 흙을 방황의 시절에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벅찬 고뇌의 순간에는 손으로 그 흙을 꼭 쥐며, 마치 아주 다정한 친구의 손이라도 잡은 듯 힘을, 큰 힘을 얻었다.

나는 무엇을 쥐고 삶을 살고 있나!

13 나는 내 임무를 다했다.

잘 있거라!

손을 내밀어 문을 열고 떠나기 위해 나는 이 땅의 빗장을 찾지만, 빛이 찬란한 문간에서 잠깐 동안 머뭇거린다. 세상의 돌멩이와 풀밭과 헤어지려니 내 눈과 귀와 마음은 어려움을, 무척 심한 어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만족했으니 마음이 평화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의무를 완수했으므로 당장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은 저항한다. 돌멩이와 풀을 움켜잡으며 마음은 애원한다. [잠시만 더 머물게 하라!]

우리는 매를 맞고 눈물을 흘리는 노예가 아니라 배불리 먹고 마셔서 이제는 아쉬운 바가 없는 왕처럼 이 땅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도 가슴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소리지른다. [잠시만 더 머물게 하라]

잠시 마음을 설득하여, 서슴없이 <그러마>라고 양보하도록 타이른다. 우리들은 매를 맞고 눈물을 흘리는 노예가 아니라, 배불리 먹고 마셔서 이제는 아쉬운 바가 없는 왕처럼 이 땅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도 가슴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소리 지른다 <잠시만 더 머물게 하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문화를 만들었다. 이 말은 <죽음>이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얻어 들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성장의 동력이었다고 하는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말은 대부분 자신이 아직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젊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고 느낄만한 나이의 인터뷰가 없는걸 보면 분명히 죽음이란 인간에게 있는 두려움과 공포의 근간임에는 틀림없는 듯. 그럼 죽음이 그리 공포라고 느끼지 않는 나는 내 안의 실체에 대하여 아직 모른다는 반증?

18 머리카락이 백리향 뿌리로 뒤엉킨 불굴의 조상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명령이 가득 찬 꿋꿋한 외침이 시나이 산 꼭대기에 남았으며, 대기는 떨렸다.

손에 닿지 않는 것을 잡아라!”

나는 깜짝 놀라 잠이 깨었다. 어느새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가서 포도 넝쿨이 무겁게 얹힌 격자 울타리로 나아갔다. 이제 비는 멎었고, 돌멩이들은 반짝이며 웃었고, 나무 잎사귀들은 눈물을 묵직하게 머금었다. “손에 닿지 않는 것을 잡아라!” 그것은 당신의 목소리였다. 이 세상에서는 만족할 줄 모르던 할아버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이 구절이 생각난다.

20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 곳은 떠나라크레타의 격언

조상들

21 나 자신을 굽어보고 나는 전율한다. 아버지 쪽의 내 조상들은 바다에서는 피에 굶주린 해적들이었고, 땅에서는 투사들이어서 신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어머니 쪽은 하루 종일 흙 위에 몸을 굽혀 씨 뿌리고, 태양과 비를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추수를 하고, 저녁이면 집 앞 돌로 만든 긴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신께 희망을 걸었던 선량한 농민들이었다.

우리의 일생이란 짤막한 섬광이지만, 그로써 충분하다.

22 어느 날 밤 나는 친구와 함께 눈 덮인 높은 산을 걸었다. 우리들은 길을 잃고 어둠을 만났다. 하늘에는 구름 한 조각 없고 침묵하는 보름달이 머리 위에 걸렸으며, 우리들이 길을 가던 산등성이로부터 저 아래 평원에 이르기까지 백설이 새파랗게 반짝였다. 침묵이 불안하게 굳어 버려 참을 수가 없었다. 영겁에 걸쳐 달빛에 씻긴 밤들은 항상 이러했을 터여서, 신도 그런 침묵을 견디다 몸해 흙을 집어 인간을 빚었다.

23 그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누구였을까? 내 뱃속이 그토록 깊고 계시적으로 노출된 적은 없었다. 그날 밤 이후로 나는 마침내 여러 해 전부터 추측하던 바를 확신하게 되었으니, 우리들의 몸 속에는 쉰 목소리들이, 굶주린 털북숭이 짐승들이_어둠이 겹겹이 숨어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말인가? 원시의 배고픔과, 목마름과, 고난과,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모든 밤과 달은 우리들이 살아 있는 한 우리들과 함께 살고 배고파하며, 우리들과 함께 목말라하고 고통을 받으리라. 나는 창자 속에 담고 다니던 무거운 짐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는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렸다. 나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인가? 내 뱃속은 영원히 깨끗해질 수 없을 것인가?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그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 융은 어릴 적 꿈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집단무의식을 설명하는 구절이었는데, 저자의 꿈도 그가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내재된 무의식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26 비록 처음에는 이 계시들을 우발적이라고 생각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결국 눈에 보이는 세계의 목소리와 비밀스러운 내면의 목소리들을 혼합시킴으로써, 이성의 밑바닥에 깔린 원시의 암흑을 뚫고 닫힌 문을 열어서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속을 보게 된 순간부터 내 영혼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처럼 계속해서 굽이치지 않았고, 광채를 발산하는 중심둘레에서 어느 얼굴이, 내 영혼의 얼굴이 엉겨 짙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짐승으로부터 내가 피를 물려받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항상 병하는 길을 따라 왼쪽으로 그러고는 오른쪽으로 가는 대신, 나는 나의 참된 얼굴과 하나뿐인 의무를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 있게 나아갔으니, 그 의무란 가능한 한 모든 인내심과 사랑과 기술을 동원해서 이 얼굴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일을 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얼굴을 불꽃으로 바꿔 놓고, 죽음이 오기 전에 시간이 있다면 이 불꽃을 빛으로 바꾸어서 카론이 나에게서 빼앗아 갈 것이 하나도 없게 함을 뜻했다. 죽음이 가져갈 것이라고는 몇 개의 뼈 이외에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으려는 것이 내 가장 큰 야망이었다.

27 이 확실성에 이르도록 무엇보다도 더 나를 도와준 것은 아버지 쪽의 조상들이 태어나고 자란 땅의 흙이었다. 아버지 집안은 메갈로카스트로(그의 출생지인 이라클리온의 옛이름이다)에서 2시간 거리인 바르바르라는 마을에서 비롯되었다. 비잔티움의 황제 니키포로스 포카스는 10세기에 아랍인들로부터 크레타를 다시 빼앗은 다음 몇 개의 마을에서 학살로부터 생존한 아랍인들을 따로 한곳에 몰아 놓고 그 마을을 바르바르라 일컬었다. 아버지 쪽 조상들이 뿌리를 박은 곳은 그런 마을이었다. 그들은 모두 아랍인의 기질을 지녔다. 자부심이 강하고, 고집스럽고, 모질고, 검약하고, 비사교적이다. 분노와 사랑을 가슴속에 몇 년 동안이나 간직하면서 전혀 한마디 말도 없다가 갑자기 악마에게 씌우면 발작적인 감정을 터뜨린다. 그들에게 가장 숭고한 혜택은 삶이 아니라 정열이다. 그들은 선하지도 않고 다루기 쉽지도 않으며, 그들이 곁에 있으면 참지 못할 만큼 압박감을 느낀다. 내면의 악마가 그들의 목을 조른다. 숨이 막히면 그들은 피를 흘리고 안도감을 찾기 위해 멍한 혼란 상태에서 스스로 팔뚝을 칼로 찌르거나 해적이 된다. 그런가 하면 사랑하는 여인에게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그녀를 죽이기도 한다. 아니면 줏대가 없는 자손인 나 같은 사람은 어두운 짐을 영혼으로 바꿔 놓기 위해 땀흘려 일한다. 야만적인 조상들을 영혼으로 바꾸다니,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가장 숭고한 시련을 거치게 함으로써 그들을 말살시켜 버림을 뜻한다.

아버지

31 아버지는 말이 별로 없었고, 웃거나 싸움에 끼어드는 적도 절대 없었다. 아버지는 이를 갈거나 주먹을 불끈 쥐기만 할 따름이었고, 마침 껍질이 단단한 아몬드를 쥐고 있었다면 그것은 부스러져 가루가 되었다.

어머니

36 어머니는 성자 같은 여인이었다. 50년 동안 곁에서 사자의 강렬한 숨결과 탄식을 느끼면서도 상심해서 괴로워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인가? 어머니는 대지의 다정함과, 끈기와 인내를 지녔다. 어머니 쪽의 조상은 모두 땅 위에 엎드리고, 흙에 달라붙고, 손과 발과 마음이 흙으로 가득한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땅을 사랑했고, 모든 희망을 거기에 걸었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흙과 한 덩어리가 되었다.

37 외할아버지는 항상 검은 장화를 신고, 짙은 쪽빛의 헐렁헐렁한 외출용 바지에 파란 얼룩무늬의 하얀 목도리를 둘렀다. 그리고 손에는 항상 똑 같은 선물인 솥에다 구워 레몬 잎사귀로 싼 젖먹이 돼지를 들고 왔다. 웃으면서 외할아버지가 꾸러미를 벗기면 온 집안이 향기로 가득했다. 외할아버지는 구운 돼지와 레몬 잎사귀와 완전히 하나여서, 그때부터 구운 돼지고기 냄새를 맡거나 레몬 과수원에 들어서기만 하면 내 머릿속에는 항상 생전의 유쾌한 외할아버지가 구운 새끼 돼지를 손에 들고 들어서는 모습을 떠올랐다. 그리고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외할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몸 속에서 외할아버지가 살아갈 터이기에 나는 기쁘다. 우리들은 함께 죽으리라. 내 속의 죽은 자가 죽지 않도록,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죽지 않기를 바라게 한 사람은 이 외할아버지였다. 그 후로 떠나가 버린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내가 죽지 않는 한 그들도 계속해서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외할아버지 생각을 하면 내 마음은 죽음의 정복이 가능하다는 의식으로 힘을 얻는다. 그토록 등잔불처럼 상냥하고 고요한 광채가 얼굴을 감싼 사람을 나는 평생 본 적이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소리를 질렀다. 헐렁헐렁한 바지에 넓고 빨간 허리띠를 두르고, 빛나는 둥근 얼굴에 유쾌한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방금 축축한 풀 냄새를 풍기며 과수원에서 튀어나온 흙의 혼령이나 물의 요정 같았다.

사람이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터.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 유일한 방법이란 것이 속담으로 남은 흔적.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은 남긴다.”

38 [훌륭한 아내만 곁에 있다면 가난과 헐벗음은 아무것도 아냐.] 외할아버지가 가끔 말하곤 했다.

또 언제인가 나는 외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어린 돼지를 잡아야 하거나, 우리들이 그걸 먹으면 기분이 언짢아지지 않나요?” “하느님께 맹세컨대, 난 정말 마음이 아프지’” 외할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어린 것들이 너무나 맛이 좋아서 말이야!” 뺨이 발그레한 이 늙은 농부를 회상할 때마다 흙과 흙에서 하는 인간의 노동에 대한 나의 믿음은 더욱 깊어진다. 외할아버지는 세상이 떨어지지 않도록 어깨에 올려놓고 버티는 기둥들 가운데 하나였다.

42 어머니와 아카시아와 카나리아는 내 머릿속에서 영원히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한 덩어리가 되었다. 나는 아카시아의 냄새를 맡거나 카나리아의 소리를 듣기만 하면 어머니가 무덤에서 내 심장에서 솟아올라 그 향기와 카나리아의 노래와 한 덩어리로 합쳐지는 기분을 느낀다.

내가 사랑하는 생각이나 사람들은 모두 떠나려고 머릿수건을 찾고 있음을 아는 까닭에, 나는 고뇌를 느끼며 그들을 살펴본다.

머릿수건과 선녀의 옷은 같은 상징?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감추는 바람에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살던 한 여인과 저자의 어머니가 머릿수건을 찾지 못해 50년동안 한 남자의 곁에서 머무른다는 발상. 사람은 그가 어느 곳에 살고 있건 어떤 조상에서 비롯되었건 하나임을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43 창문과 문틈으로 비와 번갯불이 스며들었고, 바람은 오렌지와 흙 냄새를 풍겼다.

집 밖에서는 신이 아직도 고함을 질렀다. 천둥이 더 심해졌고, 마을의 좁은 골목들은 강이 되었으며, 돌멩이들이 마구 웃어 대면서 굴러 내렸다. 신은 격류가 되어 대지를 껴안고, 물을 주고, 비옥하게 했다.

바닷가의 자갈 돌과 파도가 속삭이는 소리….돌멩이들이 마구 웃어 대면서 굴러 내렸다.

44 창가로 가서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나는 쏟아져 내려 흙을 파먹는 빗발을 응시했다.

한옥을 음식점으로 사용하는 곳. 선술집 툇마루에 앉아 댓돌 아래 땅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본다. 잠시 지나갈 것 같은 빗줄기가 그치질 않는다. 빗발에 땅이 페이고 페인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흙들. 그 기세가 조금만 더 가면 땅을 어디까지 파고들어갈지 모를 것 같은 태세였던 기억들.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맞이한 비와 영월 나들이 때 점심을 먹으러 들렀던 장터에서 만났던 빗줄기에 대한 기억. 내 삶은 기억 속에 살아있는 몇몇 장면으로 이어진 필름.

46 작고 빨간 불빛들이 꺼졌고, 춤추는 여자와 그녀 머리 위에 떠오른 별들 이외에는 광활한 밤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꼼짝도 않으면서 그들 또한 춤을 추었다. 우리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갑자기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 여인은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춤을 추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에게 아양을 떨며 함께 희롱하는 우리들의 영혼, 바로 그것이었다.

아들

50 개념이 나에게 이르려면 따뜻한 육체가 되어야 한다. 냄새 맡고, 보고, 만질 때_그때가 되어야 나는 이해한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도 어려운 개념들이 넘쳐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52 내가 좋아하는 어느 비잔티움 신비주의자가 말했다. “현실은 바꿀 수가 없을 터이니 현실을 보는 눈을 바꾸자어렸을 때 나는 그랬고, 지금도 삶에서 가장 창조적인 순간들에는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다.

53 아이의 세계는 진흙으로 만들어 굳어 버린 것이 아니라, 구름으로 이루어졌다.

55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우리들은 양말을 벗고 우리들은 양말을 벗고 누워서 발바닥을 서로 꼭 대었다. 우리들은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나는 에미네의 따스함이 내 발바닥으로 전해지고, 다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무릎과 배와 가슴으로 올라와 온몸을 가득 채우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경험한 기쁨은 어찌나 강했던지, 기절할 지경이었다. 평생 동안 그토록 엄청난 즐거움을 나에게 주었던 여자는 다시 없었으며, 여자의 몸이 지닌 따스함의 신비를 내가 그토록 깊이 느꼈던 적도 없었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눈을 감으면 에미네의 따스함이 발바닥으로부터 올라와 온몸에, 영혼 전체에 퍼지는 감촉을 느낀다.

식물에도 체온이란 것이 존재할까? 동물만이 가지는 특징인지사람의 체온에는 마음, 영혼? 이라는 것이 함께 한다. 단지 온도가 따뜻함을 전해주지는 못하는 것을 보면.

초등학교

69 “조용히 하세요, 선생님그가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하셔야 새소리를 듣죠.”

그 놈 멋진걸….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시끄러워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아이에 대하여 선생을 가엾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저자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음을 말해준다. 우린 때론 중요하지 않은 것에 매몰되어 중요한 것을 가벼이 흘려버리곤 한다. 새소리처럼.

76 “가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가난뱅이야. 나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아.”

외할아버지의 죽음

79 아들 한 사람이 일어섰다. 그는 새까만 수염이 덥수룩했다.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는 석류를 가지고 나와서 아버지가 하데스로 가지고 가도록 손에 쥐어 주었다.

그들은 석류를 손에 쥐고 하데스로 가는 풍습이 있구나. 하데스에게 납치된 페르세포네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때 하데스가 전해준 것이 석류. 명계의 음식을 먹지 않아야 지상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음을 잠시 잊고 먹어버린 것이 석류 한 알. 이 신화와 크레타의 장례의식과의 연관성이 있나 보다.

79 “젊은이들아, 잘 있거라.” 외할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내 몫의 빵을 다 먹었으니 이제는 가겠다. 나는 마당 가득히 자식과 손자들을 두었고, 항아리 가득히 기름과 꿀을 채웠으며, 술통은 포도주로 가득 채웠으니 아무 불평도 없구나. 잘들 있거라!”

80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귀를 기울여 내 마지막 지시를 들어라. 예들아. 소와 양과 당나귀_짐승들을 잘 돌보거라. 짐승들도 인간이고, 우리들처럼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가죽을 쓰고 말을 못 할 뿐이니까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마라. 그들도 옛날에는 인간들이었으니까 배불리 먹이거라. 그리고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잘 돌보아라. 열매를 얻고 싶으면 거름과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하느니라. 나무들도 옛날에는 인간이었는데, 너무 오래 전이라 그런 줄 모르고 살아갈 뿐이란다. 하지만 인간은 기억을 하니, 그래서 인간이 아니겠느냐……”

크레타와 터키

83 그러나 학교와 선생들보다 훨씬 더, 세상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느꼈던 기쁨과 두려움보다도 더 깊이, 내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준 것은 정말로 독특한 면에서 내 마음을 움직였던 크레타와 터키사이의 투쟁이었다.

84 연약한 어린 시절의 내 마음은 열망과 증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싸움을 벌일 각오가 선 나는 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맞선 양편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하며 내 의무가 무엇인지 잘 알았고, 할아버지와 어버지의 뒤를 이어 전쟁을 할 만큼 어서 자라고 싶었다. 이것이 씨앗이다. 이 씨앗으로부터 내 삶의 나무가 싹트고, 움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내 영혼을 처음으로 뒤흔든 것은 공포나 고통이 아니었고, 쾌감이나 장난도 아니었으며,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다. 나는 자유를 찾아야 했지만, 무엇으로부터, 누구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말인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나는 거칠고 쉴 곳 없는 자유의 오름 길에 올랐다. 우선 터키인들로부터 찾아야 하는 자유, 그것이 첫 단계였고, 그 다음에는 내면의 터키인인 교만과 악의와 시기로부터, 공포와 게으름으로부터, 눈을 멀게 하는 헛된 사상으로부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사랑과 흠모를 받는 대상들까지도 포함한 모든 우상들로부터 자유를 찾으려는 새로운 투쟁이 시작되었다.

성인의 전설

89 나에게는 최초의 큰 욕망이 자유였다.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 나를 괴롭히는 두 번째 욕망은 성직에 대해서였다. 영웅성을 지닌 성인, 그것인 인류의 가장 숭고한 본보기이다. 어릴 적에도 나는 이 본보기를 담청색 하늘에 아로새겼다.

92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한 다음에 나는 이런 비밀스러운 조작이 <창작>이라고 일컬어짐을 깨달았다.

도피하려는 열망

95 그 시절에는 세월이 느릿느릿 무료하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신문을 읽지 않았고, 라디오와 전화와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며, 삶은 말없이 진지하게 띄엄띄엄 이어져 나갔다.

99 내 몸 속에서는 크레타의 피가 끓어올랐다. 크레타의 피를 확실히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나는 참된 인간이란 아무리 곤경에 처했어도 신의 앞에서까지도 저항하고, 투쟁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정을 내렸다.

102 자신을 아끼는 영혼이라면 이 목표에 다다르자마자 곧 그것을 더 멀리 밀어 놓는다. 달성이 아니라, 오름을 절대로 쉬지 않아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삶에 숭고함과 단일성을 부여한다.

104 크레타에는 일종의 불꽃이 있는데, 삶이나 죽음보다도 더 강렬한 그것은 차라리 <영혼>이라고 불러야 하리라. 자존심과 집념과, 용기 이외에도 형언하거나 헤아릴 길 없는 무엇이 존재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임을 기뻐하면서도 전율하게 만든다.

대학살

113 글을 쓰는 사람은 억압되고 불행한 숙명을 산다. 그것은 그가 맡은 일의 본질이 어휘를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면 내적인 격렬한 흐름을 정체시켜야 함을 뜻한다. 모든 어휘는 위대한 폭발적인 힘을 내포하는 견고한 껍질이다. 그 의미를 찾아내려면 인간은 내면에서 폭탄처럼 그것이 터지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안에 갇힌 영혼이 해방된다.

낙소스

119 이곳에서는 자유가 존재하므로, 자유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존재하지 않았다.

122 “전 가톨릭 신부님들이 무서워요.” 내가 말했다. “나도 그래. 참된 인간은 두려워하지만, 그러면서도 두려움을 정복하지. 난 너를 믿는다.” 아버지는 잠깐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이 한 말을 수정했다. “아니, 난 너를 믿는 것이 아니라, 네 핏줄 속에서 흐르는 크레타의 피를 믿겠어.

123 이웃에 사는 페넬로페 부인이 어느 날 어머니에게 말했다. “항상 구름만 쳐다보더군요.” “걱정 말아요. 페넬로페.” 어머니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살아가다 보면 저 애가 눈을 떨구게 될 날이 올 테니까요.”하지만 아직도 그런 때는 오지 않았고, 성채로 오르면서 나는 구름을 보며 거듭거듭 감탄했다. 나는 자꾸만 고꾸라지고 미끄러졌다. 아버지는 나를 붙잡아 세우려는 듯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구름은 그만 쳐다봐. 떨어져 죽고 싶지 않으면 발 밑의 돌이나 살펴보라고.”

125 무엇보다도 나는 시()라는 방법을 통해 고통과 노력이 꿈으로 변형되기도 하며, 아무리 덧없는 고뇌라고 해도 시가 영원한 노래로 바꿔 놓기도 한다는 커다란 비밀을 이제야 의식하게 되었다…..나는 사춘기 초기에 모든 인류의 고뇌와 아픔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127 나는 완전히 얼떨떨해졌다. 누구의 말이 옳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두 길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가? 이 문제가 여러 해 동안 나를 괴롭혔고, 어느 길이 옳은지를 마침내 알게 되었을 때, 내 머리는 백발이었다.

사춘기의 어려운 문제들

142 나는 젊은 시절의 흔한 어려움들에 시달리며 사춘기를 보냈다. 커다란 두 마리의 야수가 내 몸속에서 머리를 들었으니, 하나는 육체라는 표범이요, 또 하나는 인간의 내장을 파먹으며 먹으면 먹을수록 배고파하는 이성이라는 독수리였다.

육체가 없는 존재를 꿈꾸던 때가 내게 있었음을 기억하게 만든다.

149 정말로 끔찍한 첫 번째 비밀은 우리들이 믿던 바와는 정반대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태양과 별이 총총한 하늘은 지구의 둘레를 얌전하게 매암을 돌지 않았다.

에이레 아가씨

167 키츠와 바이런의 시를 따라가며 그녀 위로 몸을 숙이며, 나는 그녀의 겨드랑이에서 나는 후끈하고 시큼한 체취에 마음이 혼탁해졌으며, 키츠와 바이런은 사라지고, 한 사람은 바지를 입고, 또 한 사람은 치마를 걸친 초조한 두 동물만 자그마한 방 안에 남았다.

아테네

174 젊음은 눈멀고 사리를 분별치 못하는 야수이다. 젊음은 먹이를 탐하지만 먹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하며, 발길에 채는 행복을 마음만 먹고 주우면 되는데도 줍지 않고, 샘터로 가서 시간이라는 물을 쓸데없이 흘러 말라 버리게 그냥 내버려 둔다. 스스로 야수인 줄을 모르는 야수_그것이 젊음이다.

175 나는 계속해서 외국어를 배웠다. 내 이성이 젊어진다는 의식은 굉장히 기뻤지만, 항상 이상하고 미적지근한 젊음의 바람이 곧 불어오고, 모든 기쁨은 시들어 버렸다. 나는 여자와 배움 이상의 무엇을, 아름다움 이상의 어떤 선()을 열망했지만_그것이 무엇이었던가?

176 어느 날 나는 새가 우는 소리를 들었고, 강철처럼 파란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자 지나가던 농부를 붙잡아 세웠다. “이봐요. 저건 무슨 새죠?”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그런 건 알아서 무얼 하려오?” 그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잡아먹지도 못하는 새인데.”

돈벌이가 아니면 일이 아니고 돈벌이가 되는 일이 아니면 존재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우리들. 그때나 이제나 돈, 먹는 것. 입이 문제로구나.

177 한쪽에서는 호메로스의 말처럼 갈기가 하얀 파도들이 호메로스의 신선한 시처럼 시원하게 물결쳤고, 다른 쪽에서는 기름과 빛이 가득 찬 아테나의 올리브나무와 아폴론의 월계수와 모든 술과 노래의 기적을 일으키는 디오니소스의 포도가 펼쳐졌다.

178 나는 젊은 여인의 얼굴 뒤에서 미래의 쪼글쪼글한 노파를 미리 찾아보려는 시도가 잘못이며, 오히려 노파의 얼굴에서 이제는 사라져 버린 소녀의 신선함과 젊음을 재창조하고 다시 이룩해야 된다고 믿었다.

180 나는 파르테논이 24처럼 짝수라고 생각했다. 나는 짝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숫자들의 삶은 너무 편안하게 마련되어서, 위치가 너무 견고하고, 위치를 바꾸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만족하고, 보수적이고, 걱정이 없었으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욕망을 실현하며, 차분해졌다. 내 마음의 맥동(脈動)에 맞는 것은 홀수였다. 홀수의 삶은 전혀 편안하지 않다. 홀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것을 바꿔 보고, 보태고, 더 밀어 보려고 한다. 그것은 한쪽 발로 땅을 딛고 다른 발은 떼어 떠나려고 한다. 어디로 갈까? 잠깐 멈춰 숨을 돌리고 새로운 추진력을 얻기 위해 다음 짝수로 간다.

크레타로 돌아오다_크노소스

189 구슬프게 떨리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날 밤 나는 사랑과, 죽음과, 신이 하나이며 똑같다고 느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는 심연과 우리 마음속에서 그리고 혼돈의 심연 속에서 숨어 기다리는 무서운 삼위일체를 더욱 깊이 의식하게 되었다. 사랑과 죽음과 신은 하나이다.

190 고뇌는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은 고뇌라기보다 마음 한가운데 맺힌 응어리였고, 입 맛은 독처럼 썼다. 마당 한가운데 선 아카시아와, 열매가 묵직하게 달린 나무와, 수를 놓는 여동생과, 힘든 집안일의 멍에를 지고 소리 없이 드나드는 어머니를 창문으로 물끄러미 내다보려니까, 응어리가 가슴에서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나는 목이 졸리었다. 나는 천국에서 추방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 추방이 아니라, 나는 스스로 천국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도망쳤고, 닫힌 문밖에서 내가 저지른 행동을 후회하며 풀이 죽어 방황하는 기분이었다. 나흘째 되던 날 나는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뚜렷한 목적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생애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그날 아침, 아마도 그렇게 함으로써 내 마음속의 고뇌가 문을 열고 빠져나갔는지도 모른다.

193 인간은 저마다 맞서 싸울 적의 정체를 결정짓는다. 비록 그것이 파멸을 뜻할지언정, 나는 신과 싸우게 되어서 기뻤다. 그는 흙을 빚어 세상을 창조했고, 나는 어휘를 빚는다. 신은 지금처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인간을 만들었고, 나는 꿈을 이루는 공기와 상상력으로 시간의 횡포에 항거하는 인간을, 보다 영적인 인간을 빚어내리라. 신의 인간은 죽지만, 내가 창조한 인간은 살리라! 이토록 악마적인 나의 교만함을 돌이켜보면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젊었고, 젊다 함은 세상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다 훨씬 훌륭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뻔뻔스러움을 소유했다는 뜻이다.

195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팔에 낀 바구니를 덮은 잎사귀 두세 개를 들추더니 노부인은 무화과 두 개를 꺼내 나한테 주었다. “저를 아세요, 할머니?”내가 물었다. 노부인은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단다. 얘야. 모르는 사람한테 뭘 주면 안 된단 말이냐? 너는 인간이지? 나도 그래.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아?”

205 춤은 자아를 제거하고, 일단 자아가 제거되면 신을 만나지 못하게 막는 모든 장애물이 없어지기 때문이죠.

그리스 순례

210 그리스의 여러 지역은 두 가지 본질을 지녔고, 거기에서 파생하는 감정도 두 가지 본질을 나타낸다. 가혹함과 부드러움은 나란히 서서 성교를 하는 남자와 여자처럼 서로 돕는다. 그런 부드러움과 가혹함의 원천으로는 스파르타가 있다. 앞에는 절벽투성이인 딱딱하고 교만한 타이게토스가 버티고 섰으며, 사랑에 빠져 발 밑에 길게 누운 여자처럼 저 아래에는 열매가 풍성하고 유혹적인 평원이 펼쳐진다. 그리스의 시나이 산인 타이케도스에서는 민족의 무자비한 신이 지극히 준엄한 계명을 내린다. 삶은 전쟁이고 세상은 싸움터이니, 네 임무는 오직 승리뿐이니라. 잠을 자거나 몸치장을 하거나, 웃거나, 떠들지 마라. 네 삶의 목적은 투쟁뿐일지니 싸우라! 그런가 하면 타이게토스의 발치에는 헬레네가 있다. 네가 야만스러워져서 대지의 부드러움을 꾸짖으려 하면, 갑자기 꽃이 만발한 레몬나무처럼 헬레네의 숨결에 네 마음이 비틀거린다.

224 삶이 기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약간의 여유를 누리기 시작하는 순간에 문명은 태어난다.

기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 이것은 인간의 한계이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삶. 현실에 발을 디딜 힘조차 없는 다리는 문명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법. 이 간단한 명제를 너무 빨리 알아버린 사람, 또는 너무 늦게 알아버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 세상인 듯. ..? 후자가 아닐런지

이탈리아

237 수도원장이 아버지를 찾아와서 내가 선생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일을 기억하는가? 내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그에게 대답했다. “난 저 애가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얻어맞을 때에만 걱정을 합니다. 그 두 가지 경우에만 말예요. 다른 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어야죠!” 아버지의 말을 나는 깊이 새겼고, 이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으리라고 믿는다. 아들을 키우면서 아버지는 갓 태어난 새끼를 키우는 늑대의 어둡고 빈틈없는 어떤 본능에 따른 듯싶다.

238 나에게는 부족한 바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몸과 마음과 영혼, 이 세 가지 광포한 야수는 다 같이 환희를 느꼈고, 다 같이 만족했으며, 그들의 굶주림은 다 같이 사라졌다. 영혼과의 신혼여행 기간 동안 줄곧 평생 처음으로 나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같은 흙으로 빚어졌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인간은 늙거나 병들거나 불운이 닥칠 때만 그런 요소들이 내면에서 서로 분열하고 맞서 싸운다. 때로는 육체가 지배하고 싶어 하며, 때로는 영혼이 반란의 깃발을 올리고 도망치려 한다. 그리고 이성은 무감각하게 물러서서 붕괴의 과정을 지켜보고 점검한다. 그러나 인간이 어리고 튼튼할 때는 그 세가지가 같은 젖을 빨면서 세 쌍둥이처럼 우애로 단결되지 않던가!

239 나는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림과 조각품과 성당과 궁정들. 얼마나 엄청난 탐욕과 갈망이었던가! 내 굶주림과 갈증은 풀어질 줄 몰랐다. 사랑스러운 산들바람이 내 이마를 자꾸만 스쳤다. 여인이나, 사상이나, 신과의 접촉에서 나는 평생 그런 기쁨을 다시는 맛보지 못했다. 아직은 추상적인 고민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나는 보고, 듣고, 만지는 쾌감을 발견했다. 내면의 세계는 바깥 세계와 하나가 되었다. 이 무렵 나에게 신을 창조하라고 했다면 나는 뺨에 솜털이 잔뜩 나고, 무릎이 꿋꿋하며, 가슴이 가냘프고, 고대 코로스(건장한 청년을 조각한 그리스 미술품)처럼 세계를 어깨에 걸머졌으며, 사춘기의 몸을 지닌 신을 만들어 냈으리라.

241 모두가 어린애처럼 너무나 단순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으며, 삶의 사과 속에는 벌레가 들어 있지 않았다. 겉만 봐도 만족스러워서 나는 그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242 여자들은 남자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고, 그보다도 골칫거리나 그냥 필요한 존재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50도 더 먹어서 결혼한 어떤 사람은 이런 핑계를 대었다. “글쎄, 별수 없잖아? 다른 사람들처럼 내 베개에도 곱슬 머리카락이 좀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결혼이란 이렇게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 거행해도 별 문제없는 것이거나, 아니면 영혼의 파트너를 찾는 어렵고 실행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거나.

244 따스함처럼 행복감이 발에서부터 종아리로, 허벅지로, 가슴으로 번져 올라옴을 느꼈다. 나는 탐욕스럽게 솥에서 올라오는 김을 들이마셨다. 콩을 구워 음식을 마련하는 모양이었는데, 향기가 그윽했다. 행복이 인간에게 어울리려면 어느 정도로 속되어야 하는지를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천국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대상은 희귀한 새가 아니다. 행복은 자기 집 마당에서 발견되는 새이다.

250 나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어서, 내가 행복감에 점점 길이 들어서 강렬함과 영광을 몽땅 상실하느냐, 아니면 그런 감정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전과 마찬가지로 항상 그것을 대단하게 생각하며 완전히 자아를 상실하느냐 하는 것이었죠. 난 언젠가 꿀에 빠져 죽은 벌을 보고는 교훈을 얻었어요.

나의 벗 시인_아토스 산

253 산과, 바다와, 도시와, 사람들_세계라는 육체로부터 영혼을 단절시키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영혼은 낙지이고, 이런 모든 것은 흡반이다. 이탈리아는 내 영혼을 차지했고, 내 영혼은 이탈리아를 차지했다. 우리들은 이제 한 덩어리로 이루어 서로 분리가 되지 않는다. 세상의 어떤 힘도 인간의 영혼처럼 제국주의적이지는 못하다. 영혼은 점유하기도 하고 점유를 당하기도 하지만, 항상 제국이 너무 좁다고 느낀다. 답답해진 영혼은 자유롭게 숨 쉬기 위해 전 세계를 정복한다.

256 나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웃어 대기만 하는 계집아이로구나, 나는 내 영혼에게 자주 말했다. 그래, 계집아이지, 한심한 영혼아, 너는 굶주렸지만 포도주를 마시고 고기와 빵을 먹는 대신 하얀 종이를 꺼내어 <포도주, 고기, >이라는 단어들을 써 넣고는 그 종이를 먹는다.

259 자네는 구원의 길을 찾았다고 믿으며, 그렇게 믿음으로써 자넨 구원을 받는데, 나는 구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지.

287 수사가 한숨을 지었다. “아뇨, 난 그럴 덕망을 전혀 쌓지 못했어요. 우리 몸의 눈만으로는 부족한가 봐요. 영혼의 눈도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내 영혼은 근시랍니다.

300 수사들은 판토크라토르(천상에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한 칭호, 모든 것의 통치자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를 가리켰다. “저 글자들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서로 사랑하라>그 말을 막대기에다 하면 꽃이 피지만 인간에게 하면 꽃이 피지 않아요. 우린 모두 지옥에 떨어질 운명입니다. “

304 오름의 길, 한 계단씩 올라가는 거야. 배부름에서 굶주림으로, 축인 목구멍에서 목마름으로, 기쁨에서 고통으로. 신은 굶주림과, 목마름과, 고통의 정상에 앉았고, 악마는 안락한 삶의 정상에 앉았어. 선택을 해야지.

310 그래, 좋다.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니 신을 보지 못하게 하라. 하지만 단 한 순간이라도 환희를 느끼고, 내가 기독교인이며 수도원에서 보낸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끔 신의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게 해다오.

세월의 헛됨. 이는 누구나 자신이 소비한 시간에 대한 보상을 원하기 때문 아닐까.

예루살렘

323 <너는 선하고 평화롭고 참아야 하며,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주어야 하며, 현세의 삶은 가치가 없으며, 참된 삶은 천국에서 찾아야 한다>고 성서가 가르쳤다. <너는 강해야 하며, 포도주와 여자와 전쟁을 사랑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부심을 드높이기 위해 죽이고 죽어야 하며, 이 땅의 삶을 사랑하고, 하데스의 왕이 되느니 살아서 노예가 되라>고 그리스의 할아버지인 호메로스가 말했다.

338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혼도 겸양을 알아서 남들 앞에서는 옷을 벗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남게 되자마자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가거라, 가거라! 황야로! 그곳에서는 타오르는 바람처럼 신이 불어올지니, 나는 옷을 벗고 신으로 하여금 내 몸을 태우게 하리라! “영혼이라는 이름의 부인이여, 떠나지 마오.”신이 말했다. “나에게서 무엇을 바라시나이까?” “나는 당신이 옷을 벗기 바라오, 영혼 부인” “저한테서 어찌 그것을 바라시나이까? 저는 부끄럽습니다.” “영혼 부인, 우리들 사이는 아무리 얇은 베일일지언정 아무것도 가로막아서는 안 되오. 그러니 부인, 당신은 옷을 벗어야 하오.” “됐나이다. 저는 옷을 벗었습니다. 저를 가지세요.”

346 해답을 찾아 나서면 안 되고, 그것이 당신을 찾아올 겁니다. 찾아올 테니 내 말을 듣고 마음을 편히 가져요. 언젠가 윗사람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답니다. <어느 수사가 평생 동안 신을 추구했는데,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야 그는 줄곧 신이 그를 찾아 다녔음을 깨달았느니라>

사막_시나이

355 피곤한 여행 끝에 한 잔의 차가운 물, 수수하고 편한 안식처, 따뜻하게 낯선 이를 기다리며 세상의 한구석 화롯가에서 남모르게 살아가는 시원스러운 인간의 마음_나는 살아가면서 이와 비슷한 행복감을 자주 맛보았다. 그러다가 길거리 끝에서 낯선 이가 나타나면 마음은 인간을 발견했기에 두근거리고 기뻐한다! 사랑이나 마찬가지로 친절도 받는 자보다는 베푸는 자가 더 행복하다. 나는 그에게 커다란 도시들과, 현대인의 불신과 고뇌, 돈 많은 자들의 교만과 가난한 자들의 무기력, 명예로운 자들의 무감각함, 그리고 러시아에서 진행되던 대변혁에 대한 얘기를 했다.

384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수사복을 입고 싶은 굉장한 열망에 사로잡혔죠. 하지만 내가 가려고 하는 길에 악마가 장애물들을 만들어 놓았어요. 무슨 장애물이냐고 물으시겠죠. 그러니까 이거예요, 일이 잘 돌아가서 난 돈을 벌었죠. 그런데 돈을 잘 번다는 건 무엇을 뜻하나요? 그건 신을 잊는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청부업자여서 다리와 길을 놓고, 집을 짓고, 돈을 잔뜩 벌었어요. 돈만 없어지면 당장 수사가 되겠다고 나는 자꾸만 혼자 다짐했죠. 그랬더니 하느님이 날 불쌍히 여겼어요. 난 주식 장난을 하다가 돈을 몽땅 날렸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난 말했어요. 난 줄을 끊고 떠났습니다. 비행선의 줄을 끊으면 하늘로 솟아오르는 거 아시죠? 난 바로 그렇게 속세를 떠났어요. 주식은 자주 돈을 몽땅 날리는 예로 등장한다. ….

397 인간은 누구나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어서, 정신과 육체를 모두 다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비는 단순히 특정한 교의(敎義)를 위한 시비가 아니라 보편적인 개념이다. 신과 인간 사이의 투쟁은 타협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모든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나. 이 투쟁은 대부분 무의식적이고 잠시 동안만 계속된다. 나약한 영혼은 오랫동안 육체에 항거할 인내력이 없다. 영혼은 무거워져서 육체가 되고, 대결은 끝난다. 하지만 숭고한 의무를 밤낮으로 의식하고 책임감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육체와 정신 사이의 분쟁이 무자비하게 터져 죽을 때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영혼과 육체가 강할수록 투쟁은 그만큼 수확이 많고, 최후의 조화는 더욱 풍요하다. 신은 나약한 영혼이나 흐물흐물한 육체를 사랑하지 않는다. 정신은 힘차고 저항력이 넘치는 육체와 씨름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항상 배가 고픈 맹금(猛禽)이고, 육체를 먹어 치워 한 몸이 되어서 사라지게 된다. 육체와 정신의 투쟁, 반발과 저항, 타협과 순종, 그리고 결국은 투쟁의 숭고한 목적인 신과의 결합, 이것이 그리스도가 행했고, 그의 피투성이 발자취를 따라 우리들이 행하기를 바라는 오름上昇이다.

411 하지만 만일 내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난 삶을 즐겼고, 단물을 다 빨아먹고는 삶을 레몬의 속씨처럼 내버렸어요.

414 당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더 낫지도 않고, 더 못하지도 않은 인간일 뿐이에요. 당신에게는 날개가 아니라 다리가 달렸어요. 그래요. 인간의 궁극적 욕망이 성스러움이라는 건 나도 알아요. 다 좋습니다만, 우린 우선 모든 작은 욕망들부터 채운 다음에라야, 육체와 권력과 황금과 반항에 대한 열망을 경멸하는 길을 터득해야 해요. 내 얘긴, 우리들이 젊음과 남자다운 모든 욕정의 삶을 한껏 살아보고, 모든 우상들을 때려 부숨으로써 그것들이 바람과 꺼풀로만 가득 찼음을 알아내고, 뒤돌아보아도 절대로 유혹 받지 않을 만큼 우선 속을 비우고 깨끗해져야 한다는 거죠. 그런 다음, 그런 다음에야 우리들은 신 앞에 나서게 되는데….참된 투쟁자는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크레타

418 나는 피곤해졌다. 여전히 나는 젊었고, 젊음의 끝없는 욕구가 부담스러워졌다. 젊음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 만큼 겸손하지 않고, 능력은 적지만 추구하는 바가 많다.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노력했고, 그래서 투쟁에 지친 나는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왔다.

423 그는 눈썹이 없는 불타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얘야, 인생이란 냉수 한 그릇과 같더구나” “아직도 목이 마르신가요, 할아버지?” 그는 저주를 내리려는 듯 손을 높이 들었다. “세상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의 할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저자도 죽음이 다가왔을 때 구걸을 해서라도 10년만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한다.

427 그 후 몇 년이나 흘렀을까? 40? 50? 수도원은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고, 대신 어머니의 둥글고 하얀 불멸의 젖가슴만이 리비아의 바다 위에서 빛났다. 우리의 삶은 몇 장의 선명한 사진으로 이루어진 사진첩인지도 모른다.

파리_위대한 순교자 니체

443 디오니소스는 개체성을 파괴하고, 현상들의 바다에 몸을 던져 무섭고도 현란한 물결을 따른다. 인간과 짐승은 형제가 되고, 죽음 자체도 삶의 한 가면으로 보이며, 온갖 형태를 지닌 착각의 거짓된 장막이 둘로 갈라지고, 우리들은 진리와 밀착하게 된다. 어떤 진리인가? 우리들은 모두 하나이며, 우리들은 다 함께 힘을 모아 신을 창조하고, 신은 인간의 조상이 아니라 후손이라는 진실.

458 누에는 가장 야심이 큰 벌레이다. 그것은 입과 배만 달린 몸을 끌고 다니며 먹고, 똥을 누고, 또 먹는, 구멍만 둘 달린 더러운 대롱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먹은 것이 모두 비단실이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천국과 지상이 빛나고, 인간이 고귀한 비단을 입힌 사상도 역시 빛나는데, 갑자기 거대한 발이 나타나 기적을 행하는 벌레를 짓밟아 버린다.

464 우리들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불확실성은 새로운 확실성의 어머니이다.

_나의 병

473 위안(慰安)에 굴복하지 말라고 내가 가르치지 않았더냐? 노예와 겁쟁이들만 희망을 간직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은 사탄이 파놓은 함적이고, 신이 파놓은 함정이다. 미끼를 물지 마라. 차라리 굶어 죽어라! 그러고는 보다 다정한 목소리로 은근하게, “나는 비겁해졌기 때문에 실패했다. 너는 성공하라!”

477 지상의 모든 고통이, 하늘의 모든 고통이 그의 고통이었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서, 피와 뼈와 골과 살과 진물과 정충과 땀과 눈물과 배설물의 덩어리 속에서 어찌 행복할 사람이 있겠는가? 시기와 증오와 거짓과 두려움과 고뇌와 굶주림과 갈증과 질병과 늙음과 죽음이 지배하는 육체 속에서 어찌 행복할 사람이 있겠는가? 식물과 곤충과 짐승과 인간_모든 것이 멸망을 향해 나아간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자들을 뒤돌아보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을 내다보라. 인간은 곡식처럼 영글고, 곡식처럼 떨어지며, 다시금 싹이 튼다. 가없는 바다가 말라붙고, 산들이 무너져 내리고, 북극성이 기울고, 신들이 사라진다…>

484 구원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순간에 그의 말과 행동이 지닌 가치를 계산하기 때문에 노예입니다. <나는 구원을 받을까, 아니면 저주를 받을까?>그는 떨면서 묻습니다. <나는 천국으로 가는가,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가?>….희망을 간직하는 영혼이 어찌 자유로울 수 있겠나이까? 희망을 간직한 자는 현세의 삶과 내세를 모두 다 두려워하고, 공중에 애매하게 매달려 행운이나 신의 자비를 기다립니다.

484 인류를 구원으로부터 행방시키는 자가 구세주이니라.

488 정상적인 사람은 살고, 투쟁하고,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어디서 어디로 왜 따위를 묻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아요.

490 그날 이후로 나는 인간의 영혼이 무섭고 위험한 용수철임을 깨달았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은 모두 살과 비계 속에 굉장한 폭발물을 담고 다닌다.

베를린

499 “따뜻하니까 좋아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인생이 달라지는 기분이에요.”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생각했다. 약간의 따뜻함, 약간의 빵, 몸을 의지할 지붕, 친절한 말 한마디에 증오는 사라지고….

내 마음은 송충이가 가득 찬 자루 속 같았다.

501 나는 커다란 출입문의 화려한 불빛과 <자바의 춤>이라고 쓴 알록달록한 간판을 보았다. 안에서 정열이 넘치는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들어갔다. 평생 동안 본 모든 광경 가운데 별들이 총총한 하늘과 무도회가 항상 가장 훌륭했다. 이 두 가지만큼 몸과 마음과 영혼을 완전히 열광케 한 술이나, 여자나, 사상은 없었다. 그토록 여러 날을 고행자의 금욕 속에서 지내고 난 다음인 그날 밤, 나는 육체뿐 아니라 같은 길을 가는 반려자들인 마음과 영혼까지도 나른함을 떨쳐 버리며 환희한다고 느꼈다.

503 나는 가로등 불빛 속에서 휘몰아치는 눈송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는데, 눈송이는 그날 저녁에 본 자바의 남녀와 추구와 투쟁, 그리고 욕망의 춤을 추며 결국은 한 몸이 되어 불멸성을 이룩하려는 수많은 남녀를 연상시켰다. 불멸성에 대한 갈망은 죽음에 대한 갈망보다 훨씬 물리치기가 힘들다.

508 저녁이 되었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차츰 드물어지고 불들이 커졌다. 집들과 사람들과 나무들은 불빛이 비친 빗발 속에서 목욕을 하는 듯 보였다.

511 수도원에서 함께 지내던 수녀들은 어는 날 구운 메추라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그녀를 보았다. 순진한 수녀들은 놀랐지만 성녀 테레사는 웃었다. “기도시간에는 기도를 해요.” 그녀가 말했다 메추라기 시간에는 메추라기를 먹고요.” 그녀는 육체와 영혼에 양분을 공급하는 두 행위에 똑 같은 열성을 보이며 충실했다.

515 마음속 깊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알았지만, 섣불리 그것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 길은 내 본성에 맞지 않는 듯싶었고, 사랑과 노력으로 인간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초월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그토록 많은 창조력을 지녔을까? 만일 그렇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태만해서 그의 한계성을 때려 부수지 못했을 때는 아무런 정당한 구실도 찾지 못하리라.

522 “그렇다면 당신은 내 투쟁에서 나를 도와주시겠다는 얘긴가요?” 나도 모르게 약이 올라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때때로 우리들은 영혼이 미처 육체를 다스릴 틈을 주지 않고 얘기해 버린다. “이러지 말아요요르겐센이 말했다. “난 당신을 돕지 못해요.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 길을 찾아 자신을 구원해야 합니다. 무엇으로부터냐고요? 덧없는 것으로부터죠.. 덧없음에서 자신을 구원하고 영원한 대상을 찾아야 해요.

529 밤이 되자 우리들은 마침내 헤어졌다. 나는 고독으로 되돌아갔지만, 8월의 그날은 내 마음의 수평선 밑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531 알자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기적을 본 내 손가락들은 벌써 잉크로 얼룩졌고, 인생을 어휘와 비유와 운율로 바꿔 놓으려는 신성 모독적인 광증에 휩쓸려(아직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나는 글쟁이로 몰락했다. 나에게 벌어진 일은 내가 가장 비웃었던 바였으며, 나는 고픈 배를 암염소처럼 종이로 채웠다.

535 시선을 조금 낮추기만 하면 당신 발 밑에서 죽어가는 아이가 보일 텐데요! 그녀는 잠깐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시를 쓰죠.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뻔뻔스럽게도 가난과, 압박과, 악행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요. 우리들의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변형시켜 놓고 나서 당신은 다 잊어버리죠. 인간의 고통을 잊게 만드는 그까진 아름다움이 뭐예요!

러시아

547 나를 보더니 그녀는 웃었다. “당신은 함정에 빠졌지만 무서워하지는 말아요. 커다란 함정이라 아무리 돌아다녀도 철창은 없을 테니까요. 자유란 바로 그런 것 이랍니다. 잘 왔어요!”

570 옛날에 어느 이슬람 나라의 토후(土侯)가 아끼던 사람이 전쟁에 나가서 죽었을 때, 토후는 부족 사람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어요. “그랬다가는 너희들의 슬픔이 가벼워질지 모르니까, 울거나 소리를 지르지 마라!” 슬픔을 참는 그런 행위는 인간이 스스로 짊어지는 가장 자랑스러운 수련이에요. 파나이트, 그렇게 때문에 난 고리키를 그토록 좋아했죠.

576 모든 인간은 저마다 십자가를 지며,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죽을 때까지 그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 자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어깨에 메고 한없이 가기만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부활할지니, 오직 그만이 행복하다. 러시아는 십자가에 못박히는 중이었다. 여러 공화국들과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나는 거룩한 경외감으로 전율했다. 그런 투쟁을,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런 고뇌를, 그토록 많은 희망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인간이 오래된 습성을, 과거의 신을, 과거의 사랑을 정복하기 위해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비록 이 모든 대상이 한때는 인간으로 하여금 높이 오르도록 부추기는 정신이기도 했었지만, 그것들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납덩이처럼 무거운 짐이 되어 길을 반쯤 가다가 주저앉게 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창조의 숨결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매달렸다.

581 나는 이유도 모르면서 고통을 받았다. 그러다가 이런 꿈을 꾸었으니, 붓다는 낡은 옷이요 에파포스(제우스와 이오를 부모로 한)는 새 옷이었다. 환상보다는 육체를 더 좋아하고, 속담에 나오는 늑대처럼 배를 채우는 문제라면 남들의 약속은 믿지 않는 촉감의 신 에파포스. 그는 눈이나 귀를 믿지 않고, 인간과 흙을 만지고 움켜쥐기를, 그것들의 따스함이 자신의 체온과 뒤섞여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심지어 그는 만지기 쉽게끔 영혼까지도 육체로 바꾸고 싶어한다. 땅 위를 걷고, 땅을 사랑하고, <자신의 모습을 따서 그대로>땅을 다시 만들어 놓기를 바라는 가장 믿음직하고 부지런한 신_그것이 나의 신이었다.

카프카스

589 이론이나 사상, 그리스도나 붓다 와의 투쟁 대신에 살아 숨 쉬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들과 함께 싸우며 행동에 참여할 기회를 나는 평생 처음으로 얻게 된 셈이었다. 나는 기뻤다. 나는 의문을 품고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며 해답은 찾지 못하고 그림자와의 싸움을 벌이는 데 싫증이 났다. 질문들은 끊임없이 새로워졌으며, 해답은 자꾸만 달라졌다. 뱀과 뱀처럼 질문이 질문의 꼬리를 물었고, 칭칭 감아 나를 질식시켰다. 풀어지지 않는 추측의 매듭의 칼로 베어 자른다는 행동만이 해답을 찾는 길인지를 실험할 때가 무르익었다.

탕자 돌아오다

606 더할 나이 없이 늙을 때까지 자신의 젊음을 믿지 않으려는 마음을 거부하고, 꽃피는 사춘기를 과일이 풍성하게 맺히는 나무로 키우기 위해서 평생 투쟁을 계속하려는 자세_나는 그것이 충만한 인간의 길이라고 믿는다. (자주 잊어버리는 척하기는 해도)영혼은 아버지다운 대지에 보고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나는 <조국>이라 하지 않고 <아버지다운 대지>라 부르고 싶다. 아버지다운 대지는 훨씬 깊고, 보다 겸손하며, 보다 듬직하고, 해묵어 가루가 된 뼈로 이루어졌다.

613 자유를 사랑하기 때문에 천국과 바꿔 준다고 하더라도 영혼의 종속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거부, 사랑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초월하는 험난한 승부, 더 이상 수용력이 없어지면 아무리 지성(至聖)하더라도 옛 형태를 때려 부수기_이것이 크레타의 세 가지 위대한 외침이다.

조르바

619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내 투쟁에 도움이 된 사람을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첫 번째 인물은_내가 생각하기에는_기운을 되찾게 하는 광채로 우주 전체를 비추고 태양처럼 평화롭고 찬란하게 빛나는 눈眼이었으며, 붓다는 세상 사람들이 빠졌다가 구원을 받는 한없이 깊은 새까만 눈이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에 해답을 얻지 못했던 나를 괴롭히는 철학의 온갖 문제들로부터 해방시켜주었으며, 니체는 새로운 고뇌로 나를 살찌게 했고, 불운과 괴로움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도록 가르쳤으며,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힌두교에서는 이른바 구루導師라고 일컫고, 아토스 산의 수사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주어졌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으리라. 그 까닭은 글 쓰는 사람이 구원을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그가 갖추었으니, 화살처럼 허공에서 힘을 포착하는 원시적인 관찰력과 마치 만물을 항상 처음 보듯 대기와 바다와 불과 여인과 빵 따위의 영구한 일상적 요소에 처녀성을 부여하게끔 해주며 아침마다 다시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과 영혼보다 우월한 힘을 내면에 지닌 듯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과, 신선한 마음과 분명한 행동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라한 한 조각의 삶을 안전하게 더듬거리며 살아가기 위해 하찮은 겁쟁이 인간이 주변에 세워 놓은 도덕이나, 종교나, 고향 따위의 모든 울타리를 때려 부수려고 조르바의 나이 먹은 마음에서 회생의 힘을 분출해야 하던 결정적 순간마다 인간의 뱃속보다도 더 깊고 깊은 생에서 쏟아져 나오는 야수적인 웃음을 그가 지녔기 때문이었다. …….조르바에 이야기는 끝없는 지평선처럼 그렇게 이어진다.

622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전보를 받았다. <정말 아름다운 초록빛 보석 발견. 당장 오시오. 조르바>그것은 이미 세상을 뒤흔들기 시작한 제2차 세계 대전이 멀리서 휘몰아치던 무렵의 일이었다. 다가올 굶주림과 살육과 광증을 예견하고 수백만 명이 공포에 떨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모든 악마들이 피에 굶주려 머리를 들었다. 그렇게 독기가 서린 시절에 나는 조르바의 전보를 받았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세계는 파멸하는 중이어서, 명예와 인간의 영혼과 삶 자체가 위기에 처했는데, 하필이면 아름다운 초록빛 보석을 찾았으니 나더러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해서 구경 오라는 전보를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름다움이 어쨌다는 말인가! 아름다움은 비정해서, 인간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분노는 이미 사라졌고, 나는 조르바의 비인간적인 외침에 내 존재 속의 또 다른 외침이 응답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 마음속의 야수적인 독수리가 날아가려고 날개를 퍼득였다. 하지만 또다시 용기가 나지 않아 나는 떠나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떠나지 않았고, 신성하고 야수 같은 외침을 따르지 않았으며, 과감하고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않았다. 이성의 냉정한 인간적 목소리를 따라 나는 펜을 들어 조르바에게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그가 답장을 보냈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만, 왕초님, 당신은 글쟁이에 지나지 않아요. 이곳에 왔더라면 아름다운 초록빛 보석을 구경할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얻었을 텐데, 못 보게 되었군요. 가끔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으면 혼자 앉아서 지옥이 있나 없나 궁리를 해보죠. 하지만 어제 편지를 받고 보니 어떤 글쟁이들은 진짜로 지옥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에 한번뿐인 기회를 얻을 기회는 늘 우리 곁에 머물고 기다린다. 선택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626 글쓰기는 평온한 다른 시대라면 재미있는 놀이였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은 그것이 중대한 의무이다. 글쓰기의 목적은 동화로 이성을 즐겁게 해서 현실을 망각하도록 돕는 일이 아니라, 우리들의 과도기에 아직 살아남은 빛나는 모든 힘에 대해서 동원령을 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짐승의 차원을 초월하도록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것이다.

글쓰기가 재미있는 놀이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느끼기 위한 도구 중 하나가 아닐까. 시대의 문제가 아닌 한 인간차원의 문제가 아닐런지

629 내가 글을 썼다면, 투쟁을 돕는 유일한 수단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크레타와 터키, 선과 악, 빛과 암흑은 내 아픔 속에서 한없이 싸웠고,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의식하게 된 내 글쓰기의 목적은 크레타와, 선과 빛을 최선을 다해 도와서 이기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내 작품의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이러한 투쟁이 어찌나 심했던지, 그리고 도움의 필요성이 어찌나 뚜렷했던지, 나의 개인적인 투쟁과 현대 세계의 투쟁을 곧 동일시하게 된 시대에 태어났다. 세계는 과거의 사악한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나는 어둠의 조상들로부터, 이렇게 세계와 나 둘 다 똑같이 암흑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투쟁했다.

632 수많은 물고기가 꼬리를 들고 장난치며 즐겁게 물속에서 돌아다니는데, 한가운데서 날치 한 마리가 갑자기 작은 지느러미를 펄치고는 공기를 마시려고 바다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노예적인 물고기에 비하면 날치의 본성은 너무나 컸고, 평생 물속에서 살기에는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것은 갑자기 숙명을 뛰어넘고, 자유로운 공기를 숨 쉬고, 견딜 수 있는 한 짤막한 순간이나마 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나 그 정도로는 충분했으니, 짤막한 한 순간은 곧 영원이었다.

637 밤새도록 나는 생각했다. 죽음을, 그의 죽음을 몰아내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마음의 뚜껑 문이 열리고 분노한 추억들이 뛰쳐나와 나를 서둘러 둘러싸려고 서로 밀치며 싸웠다. 그들은 땅과, 바다와, 대기에서 조르바를 불러다가 다시 살려 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것이 마음의 의무가 아니었던가? 사랑하는 이들을 부활시키고, 그들을 다시 살려 놓으라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신은 우리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을까?

그를 부활시켜야 한다!

<오디세이아>의 싹이 내 안에서 열매를 맺을 때

645 불쌍하고 가련한 바닷새들이 마음 놓고 알을 낳아 바위에 얹어 놓으라고 신과 그의 무한한 선()이 겨울의 심장으로 스며드는 때인 1, 햇살 가득한 평화로운 계절이 왔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을 쳐서 열을 내고는 밖으로 나와 햇빛에 몸을 말렸다. 그런 육체적인 안도감과 정신적인 환희를 나는 평생 동안 그다지 자주 맛보지 못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내 피리인)펜을 들고 조용히 떨면서 원고지 위로 몸을 수그렸다. 나는 글을 썼고, 지웠다. 나는 적당한 어휘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때로는 따분하거나 영혼이 결핍되었으며, 때로는 점잖지 못하게 화려했고, 또 어떤 때에는 따스한 체취가 없이 추상적이고 속이 비었다. 시작할 때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알았지만, 제멋대로 떠오르는 어휘들이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어 가기도 했다. 내 계획은 고리타분한 화려함으로 만발했고, 내가 뜻했던 범주를 넘쳐 벗어나 뻔뻔스럽게 다른 공간과 시간을 침범했다. 글은 달라지고, 또 달라졌으며, 나는 윤곽을 바로잡을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내 영혼도 그에 따라 변하고, 또 변했으며, 그것 또한 나는 걷잡을 능력이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을 쓸데없이 화려하게 꾸며 비틀어 버리지 않을 어휘를, 누덕누덕 장식품을 주워 모으지 않은 간결한 어휘를 찾으려고 헛되이 애를 썼다. 물을 길어 마시려고 우물로 두레박을 내려 보낸 목마른 이슬람교도 신비주의자는 누구였던가? 그는 두레박을 끌어올렸다. 거기에는 황금이 가득했다. 그는 황금을 쏟아 버렸다. “신이여, 당신이 보물을 잔뜩 소유했다는 사실은 저도 압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마실 물만 주십시오. 저는 목이 마릅니다.”그는 다시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마셨다. <말씀>은 그런 것, 장식이 없어야 한다.

647 인간은 서두르지만 신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작품은 불확실하고 불완전하지만, 신의 작품은 결점이 없고 확실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영원한 법칙을 다시는 어기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나무처럼 나는 바람에 시달리고, 태양과 비를 마음 놓고 기다릴지니, 오랫동안 기다리던 꽃과 열매의 시간이 마침내 오리라.

655 모든 멈추는 지점은 저마다 무의미한 우연의 장난이 아니라 운명의 계획이 그대로 실천됨을 뜻한다. 내 모든 여행은 인간으로부터 시작되어 희망의 숭고한 정상인 신에 이르기 위해 오르는 하나는 붉은 줄이 되었다.

658 나는 평생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죽음에도 새로운 의미를 주며,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올 위대한 사상을 이룩하려고, 찌걱거리다 못해 찢어질 정도로 내 이성을 잡아 늘이기 위해 투쟁했다.

그런데 이제 보라! 시간과, 고독과, 꽃 피는 레몬나무의 도움을 받아 사상은 이제 하나의 이야기로 변했다. 그 기쁨이란! 축복의 시간이 왔으니, 벌레는 나비가 되었다. ()의 시간

659 마음 착한 랍비가 미소를 지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는 대답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어느 날 쐐기풀이 장미넝쿨에게 물었으니라. “장미넝쿨 부인, 당신의 비결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지 않겠어요? 어떻게 장미꽃을 만들어 내죠?” 그래서 장미넝쿨이 대답했지. “내 비밀은 아주 간단하답니다. 쐐기풀 아가씨 겨우내 나는 참을성 있게 믿으면서 사랑을 지니고 흙을 일구는데, 머릿속으로는 장미꽃 한 가지만을 생각해요. 빗발이 나를 후려치고, 바람이 잎사귀를 벗기고, 눈이 쌓여 무겁게 짓눌러도, 내 마음속에는 장미꽃에 대한 생각뿐이랍니다. 그것이 내 비결이에요. 쐐기풀아가씨!”

아마 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나 봐_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오랫동안 말없이 끈기 있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그것을 다듬고 가꾸지. 그러다가 내가 입을 열면(얘들아, 정말 희한 하기도 하지!)생각은 옛날얘기가 되어 버려. 그는 한 번 더 웃었다. “우리 인간들은 그걸 옛날얘기라 부르지만, 장미넝쿨은 그걸 장미꽃이라고 부른단다.”그가 말했다.

663 나는 생쥐보다 더 역겨운 짐승이나, 박쥐보다 더 역겨운 새를 알지 못하며, 인간의 육체보다 더 역겨운 살과, 털과, 뼈 조직은 없다. 하지만 모든 똥이 날개를 키우는 씨앗인 신을 몸 속에 심으면 어떻게 변형되고 신성해지는지를 생각해 보라.

667 벌레 전체가 비단실로, 육체 전체가 영혼으로 변하는 과정보다 더 절박한 의무나, 더 감미로운 고민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또한 신의 일터를 지배하는 법칙을 그보다 더 충실하게 따를 길도 없다.

크레타의 섬광

670 하지만 평생 동안 나는 오직 하나의 길만이, 오름길만이 신에게로 이끌어 감을 분명히 알았다. 밑으로 내려가거나 평탄한 길이 아니라 오직 오름길만이. 사람들이 너무 자주 사용해서 더럽혀진 <>이라는 어휘의 내용을 조금도 선명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무능력 때문에 나는 자주 주저했지만 신에게로 올라가는 길. 그러니까 인간 욕망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향한 길에 대해서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나는 신의 세 가지 피조물인 나비가 되려는 벌레와, 본성을 초월하려고 물에서 뛰어오르며 나는 듯한 물고기와, 배 속에서 비단실을 뽑아내는 누에에게 늘 매혹되었다. 나는 항상 내 영혼이 가야 하는 길을 상징한다고 상상했던 그들과 언제나 신비로운 일치감을 느꼈다.

680 쓸데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낭비하거나 공연히 돌아다니며 빈둥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길모퉁이로 가서 거지처럼 손을 내밀고는 구걸하고 싶다. “선량한 기독교인들이여, 적선하는 뜻에서 1시간이건 2시간이건 마음 내키는 대로, 여러분이 잃어버리는 시간을 조금씩만 나한테 적선하십시오.

마치 배 속이 비어 버린 듯, 마치 피를 모두 쏟아 버린 듯, 마치 알에서 깨어날 때 올리브나무 줄기에다 귀뚜라미가 남겨 놓는 딱딱한 투명 껍질처럼 안도감만 느꼈을 뿐이다.

683 별 하나가 굴러 나와 눈물처럼 밤의 빰을 타고 흘러내렸다.

에필로그

686 위대한 세이렌들과 그리스도와 붓다와 레닌처럼 죽은 다음에도 불멸한 자들만이 나를 매혹시켰다. 젊었을 적부터 나는 그들의 발치에 앉아 사랑이 넘치는 그들의 유혹적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전혀 거부하지 않으면서, 이들 세이렌들로부터 구원을 받으려고 평생 투쟁했으며, 서로 싸우는 구들의 세가지 소리를 결합시켜 조화롭게 변형시키려고 투쟁했다.

713 그래도 되기는 하겠지만, 너하고 나는 달라. 세 종류의 인간이 세 가지의 기도가 존재하니까.

첫째,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한껏 당겨 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스스로 하라구!

714 모든 나무는 십자가를 만들 수 있기에 모든 나무가 참된 십자가에서 온다. 마찬가지로, 모든 육체는 활이 될 수 있기에 모든 육체가 거룩하다. 내 생애 전체는 비정하고 만족을 모르는 손에 들린 활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들이 얼마나 자주 그 활을 부러질 지경으로 당기고, 또 힘껏 당겼는가! “부러져라!”그때마다 나는 소리쳤다. 어쨌든 당신은 나에게 선택하라고 명령했으며, 할아비지시여, 나는 선택했다.

[영혼의 자서전]에 대하여

720 그는 정직했고, 꾸밈이 없었고, 결백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했으나 자신에게만은 가혹했다. 그가 고독에 빠져 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그가 해야 할 일이 막중했고, 죽음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뼈대와 목차에 대하여

작가가 살아온 시간순서대로 적어 나갔다. 아주 어릴적 기억부터. 자신의 조상들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가 평생 지니고 다녔다는 크레타의 흙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뿌리에 대하여 어떻게 받아들이며 삶을 살았는지를 설명한다. 조상,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어린시절의 기억과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다섯 사람의 인물에 대하여도 적는다. 호메로스, 붓다, 니체와 베르그송, 조르바이다. 위대한 시인, 성인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고 살면서 영향을 받은 세 사람. 이들의 영혼과 교류하며 생을 살다간 저자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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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프롤로그

조상들

아버지

어머니

아들

초등학교

외할아버지의 죽음

크레타와 터키

성인의 전설

도피하려는 열망

대학살

낙소스

해방

사춘기의 어려운 문제들

에이레 아가씨

아테네

크레타로 돌아오다_크노소스

그리스순례

이탈리아

나의 벗 시인_아토스 산

예루살렘

<>

사막_시나이

크레타

파리_위대한 순교자 니체

_나의 병

베를린

러시아

카프카스

탕자 돌아오다

조르바

[오디세이아]의 싹이 내 안에서 열매를 맺을 때

크레타의 섬광

에필로그

[영혼의 자서전]에 관하여

옮긴이의 말

니코스 카잔차키스 연보

IP *.39.13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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