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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30일 20시 43분 등록

회사에서의 나를 돌이켜보며 우리XX가 달라졌어요‘X물농장이 떠올려본다. 프로그램을 두 부분으로 나눠 전반부에는 문제 상황을 보여주고, 후반부에는 전문가와 함께 문제를 고쳐나가는 종류의 솔루션 프로그램 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전반부에 있다는, 그런 생각이 계속 든다.

 

연말이 다가온다. 예전 같으면 흥겨운 송년회 분위기로 들떠 있었을 시기에 요즘은 시간 관념을 잊어버릴 정도로 회사에서 보내고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그러나 마지막 퇴근버스가 떠나는 시간을 넘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마음이 무겁다.

 

그렇다. 나는 내 커리어 중 처음으로 중대한 지식 근로자로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전 조직에서 내가 수행해왔던 경력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사업 전반에 대한 빈약한 지식들, 문제의 핵심을 단번에 파악해내지 못하는 무른 질문들, 그리고 고객의 욕망에 대한 낮은 이해도가 극복해야 할 당면 과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에서는 너무나 명백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본들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 자꾸 놓이게 된다. 우선순위를 도저히 매길 수 없게 전부 중요한 업무들뿐, 여러 업무를 번갈아 가며 해내야 하는데 며칠 밤을 새워도 다 해낼 수 없는 양이다. 누구의 문제라기 보다는 업무에 치여서 서로 피드백이 잘 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개선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피터 드러커 선생을 초빙하여 프로페셔널의 조건식 해결책을 접목해야 할 현장이었다. 그러나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달고 있는 모든 과제들을 전부다 성심성의껏 수행해볼 수가 없었다. 일단은 시간관리부터 들어갔다. 그의 일단 며칠간 야근하면서 했던 업무들을 시간크기로 큼직큼직하게 적고, 그것들을 작은 숙제들로 쪼갰다. 그리고 중요도를 매긴 뒤 좋아하는 것들을 체크했다. 그러고 했더니 불필요한 작업들에 쏟았을지 모를 시간이 훨씬 절약되었다.

 

두 번째로 기술적 내용을 일일이 검수 받아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보고만 끝나면 자주 이야기되고 있는 IT용어들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고, 재료별 생산지와 특징을 리스트 업 해두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일을 잘할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잘 만든 컨셉 하나가 일을 줄이겠다고 판단을 내리고는 이를 구해내기 위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틈은 잘 나지 않고 있지만, 아직 최종 컨셉을 완성할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있어서 그 것을 최대한도로 활용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기획 교육과 트렌드 조사를 마쳤고 인간의 행동에 대해 학습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이렇게 하면 거기 답이 있을까? 내가 납득할만한, 만족할만한 해결방안이 거기 있을까? 오히려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학생 때 이후 다시 꺼내든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좀더 피부에 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는 내가 되어야 할 이상향의 구체적인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목표에 의욕을 불태우는 대신, 솔직히 말해서 깔끔하고 훌륭하며 높은 자아 존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반열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먼저 들었다. 자신에 대한 관리를 스스로 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스스로 세운 목표가 조직의 목적과 일치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나는 이곳에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구체화되지 않은 불안감과 질문들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어려운 일이다.

 

인류 역사상 이미 극복된 지식근로자의 생산성 한계라 생각했던 것들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고, 나는 거기 결착되어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상하게도전히 책 속의 발전된 이상향과 현실의 나 사이에는 일치될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나에게 주어진, 내 몫의 벽이다. 누구든 이 길을 들어선 사람은 반드시 넘어야 하는 그 문. 이상적인 지식 근로자의 길은 멀기만 하다. 다만 알 때까지 다시 한번, 이 것밖에는 수가 없다. 견디자.

IP *.50.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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