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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일 09시 16분 등록

자전거다큐여행(국어교사 한상우의)_구달칼럼#33

 

 “ 몇 번 길로 나가보니 원체 가벼웠던 주머니는 흥부네 쌀독 마냥 바닥을 보였다. 햇빛과 물, 공기만 가지고 밥을 짓는 식물이 나는 진정 부러웠다. 명색이 동물인데 부러워만 할 수 없는 노릇에 어서 자전거를 구했다. 자전거를 타니 교통비는 몸이 냈다. 나는 몸에 대해 빚지며 길을 달리긴 했지만, 이 빚은 얻을수록 부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자전거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식물을 부러워하지 않는 동물이 되었다. ”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에 여행기를 이런 문체로 쓸 수도 있구나! 당장 글의 주인공을 추적했다. 30대 중반의 국어교사 한상우, 그에게 세상은 넓었고, 더 자유롭고 싶어 자전거를 구했다. 그는 틈만 나면 여장을 꾸리고 페달을 밟아 길 냄새를 찾아 다닌다. 마치 이번 생은 멀리 언덕 너머 일몰을 바라보며 자전거에 앉아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자전거 다큐 여행- 국어교사 한상우의.jpg

 

왜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냐고?
페달에 발을 올려 놓을 때의 설렘
,
첫 페달을 꾹 밟을 때에 얼굴에 와 닿는 바람
,
살짝 놀아진 눈높이
,
몸에 적당히 맞는 속도감
,
길과 지도 간의 숨바꼭질

오르막의 긴장과 내리막의 청량감,
물 한 모금의 소중함

거친 숨과 함께 마침내 얻게 되는 평화.

 

이 모든 낭만이 자전거 한 대에 들어 있는 걸.
이번엔 내가 물을 차례야

 

넌 왜 자전거를 안 타니?”

 

자전거 타는 맛이 이토록 소소한 기쁨에 있을 줄은.. 그는 역시 자전거의 낭만을 아는 시인이다. 자전거 상에서 만나는 바람, 햇빛, 스치는 풍경과 지형에 반응하는 몸의 상태, 이 모든 것들이 자연과의 교감이며 길의 속삭임이다. 그 진한 맛을 이미 알아버린 여행자에게 자전거는 탈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몸의 연장이 된다.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길의 언어를 받아 적으려 몸부림치지만 길의 목소리는 너무 희미했고 또 항상 더디 왔다. 글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는 카메라를 들었다. 다행히 사진은 길 위에 펼쳐진 시간과 공간을 붙들어 매었고, 글을 이끌어내는 착한 마중물이 되어 주었다. 그의 책 “자전거 다큐여행에서 핵심은 다큐다. 자전거 위에서 카메라가 포착한 다큐멘터리 같은 사진 한 장에서 그렇게 깊은 자연과 역사의 이야기가 샘물처럼 솟아날 줄은 몰랐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진이 그와 함께 자전거로 여행하듯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아무리 사진이 좋다 해도 국어 교사답게 한상우의 매력은 잘 빚어진 그의 글에 있었다.

 

복어회를 떠낸 듯 얇은 꽃잎은 반투명하여 오래 들여다보기 민망하였는데, 그 야릿한 꽃잎을 연분홍으로 물들여 입은 치맛자락은 양귀비의 몸 쪽은 하얗고 세상 쪽은 붉었다. ..한가로운 바람이 슬쩍 양귀비를 건드리면, 치맛자락은 모르는 척 뒤집어졌다.”

 

참으로 훔치고 싶은 문장이다. “, 나도 이런 문장으로 여행기를 쓸 수 있다면 …”, 부러웠다. 그는 내게 여행 에세이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온통 글로 된 그림이며 시적 은유와 비유로 점철되어 있다. 어쩜 그렇게 자기 삶을 여행에서 만나는 풍경과 사물에 투영해 볼 수 있는지 신기하다

 

여행을 꿈꾸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새롭게 보고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 집과 회사 등 항상 똑 같은 장소를 전전하다 보니 사람이 고인 물같이 정체되기 쉽다. 이럴 때 여행은 삶에 신선한 충격이 되어 감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는 그러한 기회 포착의 달인이었다. 그의 자전거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났지만 그가 본 것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전율을 느낀 건 한상우 만의 시선이었다. 시인의 시선과 같은 전혀 새롭고 신선한 그의 시각과 참신한 언어를 자전거 여행기에서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짧고 간결하게 적어 내려간 문장은 그 단순함으로 인해 의미는 더욱 깊어졌다. 자전거로 만난 세상과의 교감이 자전거 위에서 느끼는 바람처럼 피부에 와 닿았다.

 

나는 한상우를 통해 자전거 여행기의 새로운 시각을 배웠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책을 쓸 때 책의 컨셉트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알았다. 그래서 기존에 나와 있는 자전거 여행기를 보면서 몇 명째 인물탐구 중이다. 그들 중 그 누구보다 한상우는 특이했다. 그는 자연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시적이고 감성적인 문체로 승부했다. 책을 쓰려면 자기만의 강점, 즉 자신의 개성이 돋보이도록 컨셉트를 잡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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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2014.12.01 18:46:13 *.113.77.122

오히려 구달님이 한상우보다 잘 표현하시는 것 같은데요. 

구달님도 구달체로 쓰시면 개성이 아주 돋보일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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