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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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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1일 13시 51분 등록

곡성과 여수를 거쳐 나주, 잠시 장흥에 들러 다시 나주에 머물고 있습니다. 나흘째 객지에 있습니다. 내가 그분을 만나 두 끼의 밥을 함께 먹은 곳은 이곳 나주의 한 리조트입니다. 오늘 아침 함께 밥을 먹다가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라는 그 남자, 크지 않지만 단단한 체구에 다부진 인상, 깊게 파인 얼굴의 주름, 입 주변으로 연결하여 귀에 꽂고 다니는 블루투스 휴대전화 송수화 장치, 시원시원한 말투, 어딘지 모르게 소년의 눈빛이 살아 있는 느낌

 

엊저녁 교육생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까지도 나는 그분이 그냥 관광버스 기사인줄만 알았습니다. 오늘 아침 밥상에서 그는 자신을 가수라고 했습니다. 22년 동안 4집까지 앨범을 냈고 올 겨울에 5집 앨범을 낼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분 이야기에 깊은 흥미를 느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분은 내게 명함을 건넸습니다. 보통 명함 두 장을 합친 크기 명함에는 자신이 소유한 두 대의 관광버스와 한 대의 미니버스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위쪽으로는 백두산 천지에 올라 비상하듯 양팔을 벌리고 서서 찍은 사진이 박혀 있었습니다. 명함 뒷면에는 태국의 어느 유명한 곳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서 허리춤에 양손을 각 잡고 폼을 낸 사진이 있었습니다. 명함은 자신을 여행사와 고속관광버스 회사 대표이사로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관광버스 무사고 22년의 메들리 가수가 운전한다는 광고 문구도 박혀 있었습니다.

 

지금 그분은 분명한 자기 세계 하나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의 인생 여정을 물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출을 했지요. 염소 두 마리를 팔아놓은 부모님 돈을 훔쳐 부산으로 갔어요. 노래를 따라 청소년기의 삶을 운전했어요. 부산 한 방송국 주최 가수선발대회에서 3등을 했어요. 그때 1등한 사람이 지금 그 유명한 트로트 가수 ○○○이예요. 그는 서울로 올라가 곧 음반을 취입했고 나는 5백여만 원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밤무대를 돌며 살았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부산이 아니라 서울로 튀었더라면 내 삶은 크게 달랐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는 곡절 많은 삶을 살다가 목포로 넘어와 부인과 함께 음악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학원에서 부부가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판단에 3년 된 중고 버스를 사서 지금 일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자기 하늘을 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지난주 고1 때 동거를 시작한 친구 이야기를 전하며 그 친구도 참 멋진 자기 세계 속에 사는데, 사장님도 그렇군요. 그 친구도 그렇게 되기까지 아버지 무덤을 뜯으며 피눈물을 흘린 날이 있었는데 사장님은 그런 날 없으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왜 없었겠어요? 말로 다 못하지요. 1992, 1998, 2000. 이렇게 세 번 나는 내 버스를 경매로 빼앗겨야 했어요. 지입차량으로 들어갔던 회사의 사장이 무너지면서 겪어야 했던 억울하고 억울한 일들이었지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몰라요. 하늘이 무너진 것 같고 너무너무 막막한!” 그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주었습니다. “음악이 나를 살렸어요. 그 두렵고 막막한 국면을 음악이 버티게 해줬어요. 나는 음반을 DVD로 제작해요. 해외 여행객을 직접 모시고 나갈 때마다 찍어둔 해외의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삼고 노래를 녹음하지요. 전국에 45천 정도의 관광버스가 있는데, 음반마다 대략 3만장 정도씩 팔려요. 노래는 어려울 때 작지만 생계가 되고 절망스러울 때 위로와 희망이 돼 주었지요.”

 

그분은 내가 저술과 강의로 참여했던 청산도에도 깊은 인연이 있다고 했습니다. “청산도 2천여 명 주민 중에 내 차 안타본 사람이 거의 없을 거예요. 아마! 청산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워서 내가 노래를 하나 헌정했어요. 그곳 사람들은 그 곡을 청산도 애국가라고 부르시더라구요. 하하. 내년에는 청산도로 가는 배에서 보고 들을 수 있게 DVD를 제작해서 기증할 생각입니다. 청산의 아름다운 배경과 내 노래를 담은 DVD!”

 

식사를 마쳤고 우리는 각자의 일정 때문에 헤어져야 했습니다. 나는 강의를 위해 남고 그분은 통영으로 교육생을 태운 차를 몰고 떠났습니다. 아침 밥상 함께 하는 그 짧은 시간에서 나는 또 한 분의 가르침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당당히 자신의 명함에 무명가수라고 새기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가수로 살지는 못했으나 그분은 노래를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노래로 자신을 지켰으면서 또한 노래로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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