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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6일 09시 30분 등록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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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고 따라 적어 보고 또 읊조려 보는 것도 기도하는 것이다. 그대를 생각하고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도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하기를 100번째가 되었다. 100일은 이 땅의 여인들에게 아주 오래된 기도이다. 처음 마음은 무작정 100일 동안 100편의 시를 올려보리라 생각했다. 꾸준히가 부족한 나에게 100일은 마늘과 쑥을 먹던 호랑이가 동굴을 뛰쳐나간 것처럼 견디어내기 힘든, 긴 시간으로 여겨졌었다. 그걸 이겨냈으니 그럼 나는 이제 웅녀가 되는 건가?

 

돌이켜보니 시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한 것은 무작정이 아니었다. 사랑이 오려고 그랬던 것이다. 시가 말을 걸어왔기 때문도 아니고 알 수 없는 사랑을 맞이하려는 진통이었던 것이다. 맥 빠진 가슴에 사랑이 꽃피려고 시가 절절하게 읽혔나 보다. 이건 아마도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를 파동의 부딪힘이며 기적이고 아주 오래된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짐작해보니 별, 그대를 사랑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내가 읊조린 모든 시가 그대에게 기쁨이었기를.


이 영광을 나에게 별이자 시가 되어 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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