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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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_구달리뷰#34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민음사
1. 저자에 대하여
1. 업적
창업 이후 잡스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라는 이름의 클럽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이 개발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1을 공개했다. 애플1은 모니터도 없고 디자인도 투박했으나 의외로 큰 반응을 보이며 판매에 성공했고 그에 힘입어 1980년에는 주식을 공개했다. 1984년에는 IBM에 대항하여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탑재한 애플 리사를 내놓았다. 그러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실패하였고, 또 매킨토시 프로젝트가 경쟁사 IBM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도 했다. 그리고 응용 소프트웨어 또한 부족하자 또 다시 실패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 세계 대부분 사람들이 PC를 사용하게 된 큰 사건이었다. 결국, 잡스는 존 스컬리에 의해 1985년에 애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사를 세워 세계 최초의 객체 지향 운영 체제인 넥스트 스텝을 개발하였고 1986년 이혼 문제 때문에 자금이 필요했던 조지 루커스 감독의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인수하였다. 잡스는 회사 이름을 픽사로 바꾸고 10년간 6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할리우드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로 키워냈다. 픽사는 여러 번 단편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오스카상을 받았으며 그 뒤로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는 디즈니사에 합병되었다. 그 후 1997년 넥스트는 애플에 인수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그는 애플로 돌아왔다. 그 해 7월 애플의 최고 경영자로 복귀하였으며, 1997년 10억 달러의 적자를 낸 애플을 한 해 만에 4억 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내게 하였다.
이와 같은 잡스의 업적과 영향력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일부 그의 팬들은 예수를 빗대어 추켜세우기도 했다.
2. 아이팟 신화
그렇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01년 그는 아이팟을 세계시장에 선보였는데, 이 MP3플레이어는 아이튠즈와의 연동작전이 성공하면서 아이리버 등의 제품들을 제치고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대히트를 치게 된다. 노하우와 함께 경험도 경험이니만큼 전반적인 기술력 자체는 아이리버가 뛰어났으나, 터치 기술과 함께 디자인 등의 새로움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아이팟은 무려 1억 대나 넘는 물량을 팔아치웠다. 아이튠즈는 아이팟에 넣을 수 있는 MP3음원을 판매하고 있으며, 1억 5000만 곡 이상의 노래를 매년 팔아치우고 있다.
그리고 2004년 애플의 CEO로 완전히 복귀했다. 2004년 제품 설명회에서의 CEO 취임 선언. 사실 잡스는 설립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애플의 CEO 직함을 가진 적이 없었다. 젊은 잡스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이사회에서 그에게 CEO 자리를 맡기지 않았고, 자신도 CEO를 맡는 것을 원치 않아 했다고 한다. 이때서야 처음으로 애플의 CEO가 된 것이다.
이런 전성가도를 달리던 도중 잡스는 2004년 8월에 췌장암 시한부 선고라는 청천벽력을 맞게 된다. 온갖 역경을 넘어 다시 우뚝 섰다 싶었던 잡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특히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가장 나쁜 암으로 애초부터 발생 자체가 희귀할 뿐만 아니라 발견시기도 보통 늦기 마련이어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잡스의 췌장암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췌장암 중에서도 희귀한(약 1%) 섬세포암이었다. 잡스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한동안 잘 살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이후의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문서를 조금만 더 읽어보자.
스탠퍼드 대학 졸업축사 중
(진단을 받은 바로 그 날) "나는 목으로 내시경을 넣어 위와 창자를 거쳐 췌장의 종양에서 조직을 떼어내는 검사를 받았습니다. 나는 약으로 잠든 상태였는데, 같이 있던 아내가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보고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암은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췌장암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술을 받았고, 이제 괜찮습니다."
그리고 iMac 등의 출시로 데스크탑 시장에서도 착실하게 시장을 점유하고 있으며, Mac OS X도 이번에 레오파드가 새로 출시되었다. 전임자들과는 달리 매킨토시에 인텔의 CPU를 쓰고, 부트캠프 같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윈도우와의 호환성을 확보하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3. 경영 철학
프레젠테이션의 귀재로 유명하다.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소개하는 데에 아주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발표방식을 쓰면서 많은 발표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경영 철학은 다음과 같다.
1. 경영은 기존 질서와 철저히 다르게
2.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해 직접 몸으로 뛰어라
3. 항상 새로운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포기하지 마라
4. 기술력을 과신하기보다 소비자 눈 높이에 맞춰라
5. 간단하고 단순하게 하라.
스티브 잡스는 철저한 제품 위주의 경영을 하였다. 제품이 중심이며,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게 애플의 신념인 것이다.
4. 인간성 논란
잡스가 따분한 IT계의 인물인데다가 일반인들이 그다지 존경하기 쉽지 않은 기업가라는 측면에서 잡스의 대중적인 인지도는 독특한 일이다. 이것은 "나름 혈통은 좋은 출생 - 서민 가정에 입양 - 특유의 기질로 성공 - 성격과 개인의 결함으로 나락으로 추락 - 전과 다른 면모로 화려하게 부활"이라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삶을 실제로 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잡스의 인간성은 인생의 굴곡만큼이나 변화가 많았다.
어린 시절 잡스는 누구의 눈에나 띄일 정도로 대단한 아이는 아니었고, 성격도 어른이 안 된 사춘기 소년 같았다. 그는 풍족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내심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려고, 서부에서 등록금이 비싸기로는 탑을 다투는 리드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경제적 부담을 이용해서 부모를 포기시키려 한 것이다. 그래도 부모가 희생해서 학비를 마련해 준다고 하자, 실용성하고는 담을 쌓은 철학과를 선택한다. 그래도 부모는 그를 대학에 보냈다. 자신의 의도가 좌절된 것이 너무 화가 나서 잡스는 대학으로 떠나올 때 인사는 커녕 부모의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 잡스 전기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한다. 또, 리드 대학 중퇴의 주 이유는 부모에게 가해질 경제적 압박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애플로 인해 갑부가 된 이후 잡스는 말 그대로 돈 많은 자아도취형 또라이였다. 예를 들면 애플에서 나올 당시, 옛 동거녀였던 크리스 앤이 딸 리사를 데려오자 잡스는 그 딸을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 "나는 무정자증이다."라면서 변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이 일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씹히고 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자기도 무지 쪽 팔려 하는 것 같다. 딸을 버려놓고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더 이상하긴 하지만. 그런데 정작 당시 개발하고 있던 PC는 '리사'로 지었다. '리사' 컴퓨터는 말아먹었지만(...). 이름을 딸 이름으로 지어준 걸로 봐서는 나름대로 멋진(?) 아버지라 할 수 있을지도...
잡스는 실패를 경험하고 많은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면서, 딸에게 다정한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다만 잡스가 리사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건 1991년에 로렌과 결혼한 이후(리사 10대 이후)였고, 리사를 받게 된 것도 리사의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키울 처지가 안 되자 딸(리사)만 잡스의 회사에 남기고 떠나서 그런 것이다. 비록 나중엔 딸을 키웠다고 할지라도 이런 잡스를 나쁜 놈이지 좋은 아버지라고는 할 수 없다.
'또라이 제조 조직'이라는 책에 따르면 잡스는 같이 일하기에는 괴로운 상사였다고 이야기된다. 그의 밑에서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확실히 일은 굉장하게 해내지만 부하직원들한테 자신의 뜻이 잘 전달이 안 되거나 자신의 뜻대로 일 처리를 하지 못했을 때 심하게 화를 내는 부류의 상사라고 한다. 일례로 애플 사에서 배달 운반용 차를 대량 구입했는데 이 차의 색깔이 애플사 건물의 색깔과 잘 매치되는 흰색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그가 떼를 쓰는 바람에 회사가 상당한 금액을 다시 들여 차의 색깔을 모조리 그가 원하는 대로 바꿔 주었다고 한다.
이런 잡스의 막장행보에 관해서는 윌리엄 사이먼 저 'iCon'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워낙 신랄하게 비판한 터라, 기껏 MS와 대립각을 세워 정의의 이미지(?)를 구축했던 잡스로서는 대단히 화가 나는 일이었는지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의 잡지를 맥스토어에서 다 치워버렸다고.
스티브 워즈니악과도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아직 잡스가 애플로 돌아오기 전 워즈니악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잡스에 대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잡스는 워즈니악이 애플의 주식을 부인이나 친구들에게 나눠줄 때 극구 말렸다고 한다. 애플은 창업자의 것이 아니고 주주의 것이고, 주식이 없으면 애플에게 워즈니악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당연히 물욕이 별로 없고 베풀어주기 좋아하는 워즈니악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주식 대부분을 나눠주었고, 애플의 주식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팔아 써버렸다. 워즈니악과 잡스의 관계는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드로이드 폰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자 그 선봉에 서 있는 HTC에게 멀티터치 지적재산권 분쟁도 걸었다. HTC의 뒤에 있는 구글과 한판 크게 붙을 기세.
예전에는 유닉스의 그래픽 UI 등에도 지적재산권으로 분쟁을 걸려 했지만 썬 측에서 '님들 MAC OS 기본은 우리 유닉스에서 따왔심 ㅋㅋ'이라는 한 마디에 꼬리를 내렸다.(여담으로 빌 게이츠도 오픈 오피스에 대해 재산권 분쟁을 걸려다가 윈도우 Java의 관련 기술에 대해 언급하자 쑥 들어가고 말았다.)
잡스의 뒤통수 치기 행각에 대해서 정리한 글이 있다. 극단적 표현이긴 하지만 사실만 담아놓은 이야기로, 잡스의 행각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한다.#
1991년 잡스는 조지 부시 행정부에 의해 대통령 수출 위원회에 영입이 거론되고 있었다. 때문에 인사 검증 목적으로 FBI가 잡스의 뒷조사를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FBI와의 인터뷰에서 잡스를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바로 옆집에 살던 이웃은 잡스에 대해 조용하고 잘난 척하지 않는 인물로 칭한 뒤 자신의 집 조경공사 때는 우리 집에 찾아와 공사 때문에 문제가 없는지 물어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지인들은 애플의 성공 이후 그는 때때로 정직성과 통합적 사고능력을 잃거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기도 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참고로 애플의 성공이란 복귀 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젊을 때의 첫 번째 성공을 말한다. 이 당시는 NeXT 사장 시절. 결국 스티브 잡스는 결격 사유 없음으로 결론이 나서 대통령 수출위원회의 위원으로 공직에 봉사했다.
이 시기에 황야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성이 변화하였는데, 그 과도기적 사건이 바로 광포해서 픽사의 창립멤버 중 하나이자 부사장이었던 앨비 스미스의 이름을 아예 픽사의 기록에서 말살한 사건이다. 애초부터 그는 그냥 잡스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잡스와 열렬한 회의나 논의를 하다 보면 항상 둘 사이에는 고성이 오가고 서로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할 정도로 맹렬히 싸웠다. 그래도 앨비는 하고 싶은 소리를 다 했고, 잡스도 앨비와 싸우면서도 앨비를 인정하고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러다 마지막 싸움에서 잡스는 앨비 흉내를 내며 조롱했고, 앨비는 절대로 타인이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룰이 있었던 잡스 사무실의 화이트 보드에 마구 글을 썼다. 이 싸움 이후 앨비는 사표를 냈고, 잡스는 사과하면서 회사에 남아달라고 설득했지만 거절당했다. 앨비가 퇴사한 이후 앨비의 이름은 픽사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소한 일에 이성을 잃고 광포한 것은 예전 잡스의 모습이지만 애초에 자신에게 대놓고 대드는 인물을 중요한 자리에 두고 그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싸움 후에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일은 이전의 잡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잡스는 본래 능력있는 인물을 알아보는 눈이 탁월했지만 그 뭣 같은 성격 때문에 많은 인물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넥스트의 1992년에서 93년간의 1년 동안 부사장급 9명 중 7명이 떠났을 정도. 하지만 이 시기에 인생의 암흑기를 겪으면서 잡스의 성격은 변화를 겪는다. 이 때의 변화에 대해서는 뉴욕 타임스의 "스티브 잡스가 황야에서 배운 것" 이라는 기사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전 잡스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자신이 지시하고 부하가 뭐라든 듣지 않았다. 그러나 잡스는 드디어 부하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기 시작했다.
단적으로 이전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오로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잡스를 띄우기 위한 소품에 불과했고 오로지 잡스를 위한 쇼였다. 하지만 복귀 이후 이런 모습은 없어지고 각 부분의 담당자들이 자기 파트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애플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디자인의 조너선 아이브, 관리의 팀 쿡, 소프트웨어의 스콧 포스톨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고,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협상의 에디 큐, 마케팅의 필 실러, 하드웨어의 밥 맨스필드라는 애플의 분야별 전문가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전의 잡스라면 이런 인물들의 건의는 다 묵살하고 자기 멋대로 아주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고, 잘된 모든 공은 자기가 차지했을 것이다. 또한 잡스의 독차지 때문에 사람들은 실무진들의 이름조차 몰랐을 것이다.
고난을 통해 인간성의 결함이 다듬어진 잡스에게 드디어 능력있는 인물들을 붙잡아 두고 조화시키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잡스가 죽자 포스톨은 제어가 안되기 시작해 축출되었고 맨스필드는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변한 점은 이전의 잡스는 뛰어난 인재를 집어내고 그에게 임무를 맡기기는 하지만 일이 진행되는 동안 사사건건 간섭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 고집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는데, 고난을 겪고 복귀한 이후에는 "믿지 못하겠으면 일을 맡기지 말고, 일을 맡겼으면 믿으라."는 경구에 충실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복귀한 이후 나중에 iMac이 되는 애플의 컴퓨터 라인업인 프로젝트 C1의 마케팅을 잡스가 마케팅 전문회사에 일을 맡겼는데, 이들이 iMac이라는 이름을 뽑아낸 뒤에 잡스를 만나러 갔다. 거기서 잡스는 애플에서 C1에 멋진 제품명을 지었는데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한다. 잡스가 보여준 이름은 필 쉴러가 지은 MacMan... 잡스는 이들에게 맥맨이 애플의 마케팅 부사장 필 실러의 아이디어라고 밝혀주었다. C1 마케팅을 맡은 마케팅 전문회사의 켄 시걸은 맥맨은 부적합하다 아이맥이 낫다고 말했지만 잡스는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서 다음 미팅까지 맥맨을 능가하는 다른 이름을 지어오지 않으면 맥맨으로 하겠다고 한다. 두 번째 미팅에서 잡스는 새로 마케팅 회사가 뽑아온 이름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전히 맥맨이 좋다고 하자 켄 시걸은 다시 아이맥을 제안했다. 잡스는 아이맥이란 이름이 싫지는 않지만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며 맥맨이 낫다고 말한다. 두번째 미팅 다음 날 잡스는 아이맥으로 결정 하자고 한다. 나중에 애플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잡스는 아이맥이라는 이름이 어떤지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고, 실제로 실크스크린으로 iMac을 C1에 프린트한 뒤 한동안 들여다 보기도 한 뒤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로서 iDevice가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의 고집불통 잡스였다면 스스로 뽑은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맥맨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고, 아이팟은 팟맨, 아이폰은 폰맨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황야에서 고행을 마치고 돌아온 잡스는 그 못된 버릇을 고친 것이다.
5. 트리비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곤 하지만, 이 사람은 '사업가'이지 절대 '개발자'가 아니다. 물론 IT분야를 제대로 이해하는 (뛰어난)경영자임은 사실인데 위의 FBI 보고서에는 '그런데 기술 부분에서는 좀 거시기...' 라는 평가도 있었다고.그러나 그가 이룬 업적은 결코 무시할수 없다. 입양아, 문제아, 명문대학도 아니고 그저 대학중퇴자인 그가 21세기 IT시장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그의 삶 자체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희망을 준다
연봉 1달러 CEO로 유명하다. 대신 주식(애플, 그리고 디즈니)이 있으니까. 애플, 디즈니 주식을 반 정도 매각해 약 5억달러의 이익을 얻었다. 게다가 추가적인 옵션까지...
2008년 건강 악화설이 돌자 애플 주가가 하락하고 사망 후에 실리콘 벨리자체가 순간 활기를 잃었을 정도로 많은 IT기업인들의 아이콘이었다.
아이폰 4의 수신률 불량 문제(왼쪽 하단을 잡으면 수신율이 현저히 떨어짐)에 대해, 개인 이메일로 "그렇게 잡지 않으면 될 거 아니냐"라고 대답한게 밝혀졌다.링크 개인 이메일이라면 시니컬한 성격의 잡스니 봐줄 만하겠지만, 문제는 저게 아이폰 문제에 대한 애플의 공식 입장임이 드러났다. 제안한 해결책이 그렇게 잡지 말든가, 범퍼 악세서리 사세요. 덕분에 여러 군데에서 신나게 까이고 있다. 그리고 모두의 우려대로 범퍼 무료제공으로 대충 때웠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서 나오는 내용으로는 이런 성의없는 대응이 아이폰4의 결함이 언론에서 과장된 바와 다르게 큰 문제가 아닌듯 보이기 위한 '계획된 대응'이었고, 결과적으로 아이폰4는 전작의 절반에 불과한 환불률을 보였다.
젊었을 때는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가서는 은행장의 넥타이가 촌스럽다고 솔직히(...) 말한다든가, 프랑스 대통령 주최의 오찬에 참석해서는 느끼한 프랑스 요리 말고 이탈리아 요리는 없습니까. 지난 주에 이탈리아에 가서 먹었더니 참 맛있던데하고 미테랑 대통령께 직접 요청하거나 하는 용자의 기질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대학시절부터 이미 공짜로 장거리 전화를 거는 기계장치인 블루박스를 제조해서 팔아먹었고[22], 심지어는 그걸 가지고 로마 교황한테 공짜 장난전화를 거는 용자짓도 한 바 있다. 하지만 정확히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작품이다. 심지어 교황한테 장난 전화 에피소드도 스티브 워즈니악의 유쾌한 장난 가운데 하나였다. 교황한테 전화는 걸었으나 시차로 인해 세벽 5시이기 때문에 교황이 잠자고있다고 대답이 왔다고. 모스크바 국제회담을 들먹거리며 목소리를 흉내내 가면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당시 둘은 그때까진 절친이었고 파트너였다.
한편, 존 스컬리에 의하면 잡스는 현실 왜곡장 뿐만 아니라 눈에서 레이저도 쏜다고 한다.
자가용으로 애용한 벤츠에 번호판이 없는 채로 다닌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국내에서는 이 이야기에 불법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지만 사실은 캘리포니아 교통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것이라는 워즈니악의 증언이 있다. # 이에 캘리포니아 교통당국은 따로 특혜를 주거나 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방법은 전기에서 밝혀졌는데, 새 차를 인도받고 6개월이 지나기 전에만 번호판을 달면 되는 캘리포니아법에 따라 6개월마다 새 차를 리스했다고 한다. 벤츠 SL55 AMG 차종을, 그것도 늘 똑같은 은색 차종을 6개월마다 새로 리스했기에, 합법적으로 번호판을 달지 않은 벤츠를 몰 수 있었다!
또 애플의 주차장 중에서 장애인 구역에 차를 대곤 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워즈니악에 의하면 애플 주차장에 세워둔 잡스의 벤츠가 털린 적이 있어서(…) 사무실 창문에서 잘 보이는 곳에 차를 대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 이에 애플 직원들은 차에 Park Different라 써진 쪽지를 붙여놓는 것으로 대응(...).
문명 5 확장팩에서는 위대한 상인으로 추가되었다. 등장하는 위인 계열 유닛 인물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사망한 사람일 듯.
애플의 성공신화가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는 싸장님들이 잡스를 성공지표로 삼고 "자네 잡스라고 아나? 스티브 잡스. 걔가 어떻게 성공했냐 하면 말야"라고 운을 떼면서 아랫사람들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붐이 일기도 했다. PC잡지 마이컴이나 컴퓨터 학습을 통해서 탈모 이전의 잡스부터 리얼타임으로 지켜봐온 한국 컴덕후들 입장에서는 무척 짜증나는 상황이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1983년 11월 당시 삼성 이병철 전 회장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회동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이 당시 이병철회장은 잡스를 만난후"굉장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젊은이"라고 평가했다.
또 잡스는 삼성전자의 매장에 매킨토시를 전시할 것을 제안했지만 당시 삼성은 PC보다는 반도체에 더 관심이 있던 상황이라 제안을 거절했다. 만약 이때 삼성이 이 제안을 승낙했으면 지금 대한민국의 IT시장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훗날 잡스 복귀 후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 했을때부터 지금까지 애플은 삼성과 좋은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6. 암투병과 사망
2010년 말에는 스위스로 병가를 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그의 건강이 우려되고 있다. 거기에다가 희귀암에 걸려 애플의 주가가 폭락해 버렸다. 나쁘게 말하자면 잡스의 건강에 따라 애플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제대로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병가에 대해서, 2011년 2월 17일 현재 병이 더 악화되어, 의사한테서 6주 시한부를 판정 받게 되었다는 루머가 올라왔다. 현재 인터넷에 기사가 퍼질대로 퍼지고 누리꾼들이 여러곳에서 술렁이고 있는 상황. 애플 측에서는 '노 코멘트'. 문제는 이 루머의 출처가 인콰이어러로 밝혀져 있었다는 것. 당연히 해외 언론에서는 이런 것은 출처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시했다. 얼마 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실리콘밸리 오찬에 참석하기로 하여 루머를 불식시켰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팅 예정 - ABC발 뉴스 게다가 같은 달에 캘리포니아에 자택 재개발을 신청했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6주 시한부인 사람이 집을 새로 지을 리가 있을까) 하지만 한국언론에서는 시한부설을 계속해서 반복 보도하더니 급기야 SBS와 MBC가 간판 뉴스시간대에 이걸 방송해버렸다. 나중에 SBS는 스스로도 쪽팔렸던지 "미국은 스티브 잡스가 영웅이기 때문에 보도 안 했던 것"이라는 개드립을 쳤다.
그리고 2011년 3월 3일 아이패드2 발표회장에 강림하여 "나 아직 안죽었다"고 전세계에 선포하였고, 잡스 시한부설로 위태위태하던 애플의 주가는 폭등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다만 후에 iOS 발표때 다시 등장했을땐 한층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와 주가가 다시 폭락해 버렸다...
WWDC 2011 첫날, 오전 10시의 발표회에도 재등장. 더욱 수척해졌다.
2011년 8월 25일, 결국 CEO직에서 사임한다고 밝히고, 대신 애플 이사회장으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CEO 사임 이후 최초로 언론에 공개됐다는 사진이 있다. # 다만 옷차림과 생김새, 출처를 생각할 때, 인콰이어러 6주 드립처럼 조작의 가능성이 농후하다.[29] 하지만 실제 사후에 공개된 잡스의 모습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
이 날 사람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인이 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다음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전 세계의 인사들이 남긴 추모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 "가장 위대한 미국의 혁신가 중 하나였다. 다른 생각을 할 만큼 충분히 용감했고, 자신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충분히 대담했으며, 실제로 해낼 만큼 재능이 있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잡스가 발명한 기기로 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는 것만큼 그에게 큰 찬사는 없을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 "스티브와 30여년 전에 처음 만나 서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동료이자 경쟁자, 친구로서 지내왔다. 나는 스티브와 일할 기회가 있었던 행운아였다. 스티브가 매우 그리울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 "스티브, 멘토가 돼 주셔서, 친구가 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신이 만들어 낸 것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 = "래리 페이지와 나는 비전과 리더십에 대한 영감을 찾기 위해 쿠퍼티노를 바라봤다." "스티브, 최고를 위한 당신의 열정은 내가 지금 이 메시지를 쓰고 있는 '맥북'을 포함해 애플의 제품을 만져 본 누구에게도 느껴졌을 것이다."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 = "내가 구글의 CEO가 됐을 때 잡스는 매우 친절히 대해줬고 건강이 안좋을 때도 그의 지식과 조언을 들려주느라 시간을 냈다. 구글 직원들과 내 심정은 잡스의 가족과 애플 직원들과 같을 것이다."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 = "전화를 걸어온 기자를 통해 부고를 접했을 때 존 레논이나 케네디의 피격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뇌리에서 가시지 않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특출한 경영 사상가였으며 높이 올라온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그가 기존의 발상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생각해 내는 데에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것이다." … "우리가 젊은 개발자였던 시절부터 그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었던 기술들을 시험 도입해보고 미래의 발전형은 어떤 모습일지를 탐구하는 데 열성적이었다. 당시 우리는 자본도, 경영을 해본 경험도 없이 부직업으로 돈벌이해가며 집에서 일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미래를 뒤바꿀 만한 아이디어만으로 전전긍긍하며 승부하는 다른 수백만의 젊은이들과 같았다." … "우리의 협력 관계는 양측 모두에게 득이 되었다. 초창기에 그는 나의 협력을 기대할 수 있었고, 나에게 있어서 그를 동업자로 얻은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운이 좋은 일이었다. 그는 경영인으로서 엄격하고 가차없었다지만 나에게는 항상 대단히 친절했고 좋은 친구였다. 나는 그를 그리워 할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들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유족들을 비롯해 그의 지성과 재능을 존경했던 모든 이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폴 를.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 "스티브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우리는 뛰어난 걸작들을 탄생시킨 기술계의 개척자를 잃었습니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 = "그는 지난 50년동안 미국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CEO였습니다.애플을 창업한 데 그치지 않고 첫 10년동안 회사를 성공기로 이끌기도 했을 뿐 아니라 이후에는 쓰러져가던 애플을 재건하는데 일조했죠. 그 위기를 이겨내고 오늘날 같이 큰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킨 건 역사상 그 어떤 미국 기업 내에서도 이루어진 적이 없는 일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스티브는 공돌이들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기술자인 동시에 예술가였던 스티브는 그 예술적인 부분들이 무엇인지 보여주었고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아름답고 간단한 상품이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란 사실을 간과했죠. "
존 라세터. 픽사 최고창의성책임자 = "스티브 잡스는 대단한 선지자이자 우리의 각별한 친구, 나아가 픽사의 미래를 비추는 빛이였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픽사의 잠재력을 알아봤고, 사람들의 상상 그 이상이 될 수 있을거라는것 역시 알고 있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화를 만들자는 우리의 말도 안 되는 꿈을 그는 믿어주었고, 그 대가로 요구한 것은 단 한가지: "잘 만들어달라"는 것 뿐이였다. 그는 픽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이유이고, 그의 용기, 진실성, 그리고 사랑은 사람으로서의 우리를 성장하게 해주었다. 그는 평생 픽사 DNA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의 아내 로린과 그의 아이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최고경영자 = "그는 믿을 만한 조언자일 뿐 아니라 좋은 친구였다. 잡스가 남긴 유산은 그가 만든 제품이나 구축한 비즈니스를 초월해 그에게 영감을 받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그가 변화시킨 삶, 그가 정의한 문화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매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한 시대를 정의하는 '오리지널'이었다. 디즈니는 가장 훌륭한 동반자를 잃었다."
루퍼드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 "오늘 우리는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자 창조가, 기업가를 잃었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최고경영자였다. 그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그동안 잡스 덕분에 받았던 엄청난 충격을 떠올려 본다. 그는 사람들이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를 접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주인공이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 "평소 존경했던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의 별세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 고인은 세계 IT산업에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을 이끈 천재적 기업가였으며, 그의 창조적 정신과 뛰어난 업적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고인의 가족과 동료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장 = "스마트폰이야말로 융합 기술의 아이콘이다. 우리가 지금도 토머스 에디슨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100년 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 이름은 모를지라도 스티브 잡스의 이름은 기억할 것이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 = "어릴적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그사람과 동시대에 살았기를 바랐던적이 있었다. 우리는 지구위에서 스티브잡스와 함께 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축복받았던 삶이다. 그를 기린다. 우리의 영웅이여, 우리의 영원한 맨토여"
이 외에 각종 IT 관련 업체들도 줄줄이 잡스의 부고에 대한 애도의 표시를 내걸고 있다.
사실은 아이폰 4s관련 정보를 입수한 삼성이 애플을 비웃었는데 하필이면 묘하게 잡스 사망일자와 겹친 것 뿐(…). 그리고 삼성도 최지성 부회장(CEO) 명의로 조의문을 발표하고 잡스의 장례기간 동안 기존 진행되던 소송에 대하여 함구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정말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한 웨스트보로 침례교회에서 레알 고인드립을 시전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했다. 그리고 리처드 스톨먼도 고인드립을 시전했다(...) 해가 바뀌어도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잡스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삼성전자 주식이 급등했는데 이는 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 주식이 오른 것과 함께 '시장에 눈물은 없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예시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덤으로 생전의 호적수였던 빌 게이츠가 각종 포털 사이트들의 검색어 목록에 올라갔다(……). 아이러니 하게도 잡스의 병명이 췌장암, 영어로 Pancreatic Cancer로, "PC가 잡스를 죽였다"는 장난 아닌 말장난이 해외에서 퍼졌었다.
불쌍하게도, 여러가지 의미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고인드립이 범세계적으로 마구마구 생산되었고, 또한 그의 죽음을 이용해서 악성코드를 퍼뜨리는 인간들도 있등장하였다. 'Steve jobs alive'같은 제목의 메일을 보내고 메일 안의 링크를 클릭하면 악성코드에 컴퓨터가 감염되는 식으로.
사망 직후 전세계에서 목빠지게 기다리던 스티브 잡스의 공식[31] 전기가 출간되었다. 책 자체는 2011년 11월 21일에 나올 예정이었지만 스티브 잡스 본인의 사망으로 인하여 집필 속도에 불이 붙음에 따라 한달이나 이른 2011년 10월 25일 전세계에 동시에 출간됐다. 제목은 Steve Jobs. 월터 아이작슨이 집필했으며, 이 작업을 위해 잡스 자신과 가족,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모든 접근 권한을 얻었다고. 출판도 안 된 상황에서 국내외 베스트 셀러에 올랐었다. 결국 출간 하루만에 가뿐히 1만 부 돌파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어판 번역이 구리다는 말이 제기되었다. 단 10쪽 분량에서도 오역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번역가 안진환씨가 촉박한 시간 때문에 자신이 운영하는 번역회사 직원들에게 대신 나눠서 번역을 시키고 자기 이름만 올려놓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출판사인 민음사가 카페를 통해 오역을 접수받고 재판때 수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번역서에 비해 이 책이 그렇게 번역이 나쁜 편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번역가들 모임에서는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몇몇 오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아니라는 정도로 의견이 모여졌다고 한다. 이보다 번역 엉망인 책은 수없이 많다. 이 정도면 너그럽게 넘어가자.
월터 아이직슨에 의하면, 아직 미공개 신제품에 대한 이야기 등 애플의 전략 사정으로 올리지 못한 내용이 많으며, 이는 나중에 재발간으로 보태겠다고 밝혔다.[33] 이 내용중에 계속 떡밥이 나오는 새로운 TV에 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도 은근 많다.
사후에 그가 대체의학에 의존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쳐서 죽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잡스는 2003년 10월 이미 췌장암 판정을 받았으나, 이듬해 3월까지 수술을 거부하고 정신수행, 식이요법과 침술 등으로 암을 고치려 했다. 잡스는 몸에 칼을 대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으며, 부인이 설득하고 난 뒤에야 겨우 수술을 받아들였다. 수술을 받아들은 뒤에도 자신의 병에 대해 치밀하게 공부한 뒤 치료법까지 지시하는 등 전문가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발견 당시에 췌장의 5%만 퍼져 있었던 암은 9개월 뒤에는 췌장 전체로 퍼졌고 수술을 한 뒤에도 전이가 계속 되어 결국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가 죽기전 만난 사람 중 빌게이츠도 있었는데, 집에 누워있던 잡스가 찾아간건 아니고 게이츠가 잡스를 찾아왔다. 평생 고집불통이었던 천하의 잡스도 죽을 지경이 되니 빌 게이츠의 개방적(분할적) 사업방식이 괜찮은 방식임을 인정했다. 게이츠도 자신은 개방적인 사고만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놓고보니 잡스가 고집한 엔드 투 엔드 방식도 나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건 잡스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앞으로는 애플의 그런 사업방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을 했고, 잡스 역시 게이츠의 사업방식을 인정하긴 했지만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적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을 것이라는 맞디스를 시전했다. [34] 또한 빌 게이츠의 부정적인 애플의 미래에 대해 그럴리 없을 것이라 단호히 말하기도 했다.
윌터 아이작슨의 집필한 자신의 전기에 대해 "내가 맘에 안들법한 얘기도 있겠지요?" 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 질문에, 아이작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잡스는 알았다고 한 뒤 "열받고 싶지 않으니 지금은 읽지 않겠습니다. 한 1년뒤에 읽어보지요. 그때까지 제가 살아있다면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두달 좀 안되어 잡스가 사망했기에 이 말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그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 "Oh wow. Oh wow. Oh wow."였다는 사실이 그의 여동생 Mona Simpson에 의해 확인되었다. #
사후 1주기인 2012년 10월 5일, 애플의 홈페이지 메인에 추모 동영상과 CEO 팀 쿡의 메세지가 게재되었다.
7. 그가 남긴 것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능력있는 CEO를 넘어 IT계를 주도한 인물이었고 또한 실적이 부진하거나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회사들을 뛰어난 창의력과 적극성으로 기업가치를 크게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곤경과 실패, 그리고 몰락 역시 경험했으나 이를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화려하게 재기했다는 점에 있어서 본보기가 될 만한 케이스. 암이 아니었다면 그의 열정과 성취욕으로 볼 때 노년까지 일선에서 왕성히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트렌드를 창조하고 자사 제품을 새로운 메인스트림의 정점에 올려 놓는 데에 성공함으로서 그의 탁월한 안목을 여러 번 증명하였으며 이런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마우스, GUI, 컴퓨터 그래픽스, MP3 플레이어와 앱 스토어, 터치 스크린 핸드폰, 태블릿 PC 등은 물론 그만의 발명품이나 유물은 아니지만, 이들의 상용화와 보편화를 가속화시키고 인지도를 대폭 높이는 데에 잡스가 크고 작은 기여를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2007년 등장한 아이폰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쉬운 인터페이스와 파격적인 디자인은 전세계 휴대폰 사용자들을 매료시켰고, 이후 출시된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그는 새로운 기기들의 단순함과 조작의 편리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능적이고 참신한 디자인을 선보여, 출시된 제품들을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하는 능력도 보여주었다. 또한 이미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 후발 주자로 뛰어들어서 단시간 내에 강한 입지를 구축하고 선구적인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던 것을 보면 그의 사업 능력이 상당히 비범함을 알 수 있다. 애플이나 자기 자신의 이미지 관리와 활용에도 능숙했으며, 20세기와 21세기의 IT시장 역사에 굵은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듯.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선 많은 아쉬움과 실망감이 있으나 그의 존재감과 안목, 기획력과 실행력은 독보적이었던 만큼 잡스를 역사의 저 너머로 보낸 애플이 어떤 행보를 보일 지가 주목된다.
애플 측 공식 반응.
애플은 한 명의 비전과 창의성을 함께 지녔던 천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습니다.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애플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
애플 이사회 공식 반응.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스티브 잡스가 5일 타계한 것을 전하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스티브의 명석함과 열정, 에너지는 우리 세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끝없는 혁신의 근원이었다. 세계는 스티브 덕분에 진보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로렌과 그의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놀라운 유산에 감사를 보낸다.
8. 매체
현재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는 두 편이 제작되거나 제작중에 있다. 애쉬튼 커처가 주연한 《잡스》(Jobs)는 조슈아 마이클 슈턴이라는 주로 인디영화를 찍었던 경력의 감독이 찍는 영화이며 전기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2002년까지의 이야기만을 다룬다. 처음에는 독립영화였으나 커처의 미칠듯한 싱크로율 덕분인지 애플 사에서도 간간히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2013년 선댄스 영화제에 공개되는것이 확정되었다.
Jobs의 한국개봉은 8월 29일로 확정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할리우드의 명망있는 각본가인 에런 소킨이 각본을 쓰고, 28일 후,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대니 보일이 감독을 맡게 된 소니 픽처스의 《스티브 잡스》라는 영화가 준비 중이다. 이 영화야말로 스티브 잡스 전기에 기반한 영화이며 스티브 워즈니악이 자문을 맡고 있는 어떻게 보면 진정한 잡스의 전기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잡스 역에 확정된 배우는 바로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에서 최고의 배트맨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크리스찬 베일이다!
위에 논의된 영화들은 둘다 잡스가 성인의 반열에 오른 후에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1999년작 "Pirates of Silicon Valley"는 잡스가 아직 자체 후광을 두르고 과거 세탁을 거친후 IT계통의 성인으로 올라서기 전이어서 그런지 나름 정직하게 만들어져 있다. 실제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마지막에 잡스와 게이츠가 서로 나쁜 놈이라고 소리지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 가끔 대한민국 케이블 TV에서 해준다.
일화
·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견과류와 물만 섭취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펩시에 계약차 들렀을 때 펩시 음료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 애플 설립 초기 당시에 펩시 사장인 존 스컬리를 애플에 영입할 때, 대기업의 사장자리를 버리고 신생기업으로 가기를 망설이던 스컬리에게 "인생 끝날 때까지 설탕물을 팔겠나, 나한테 와서 세상을 바꾸겠나?"(Do you want to sell sugar water for the rest of your life, or do you want to come with me and change the world?)라고 하자 존 스컬리는 망설임 없이 애플로 이적했다고 한다.
· 딸인 리사가 태어났을 때 부친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받아들였고, 애플 리사는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다.
· 연봉이 1달러인 최고경영자로 유명한데 이 1달러마저 연봉을 단 한푼도 받지 않을 경우에 노동법상 고용관계가 유지될 수 없기에 최소한으로 정해 놓은 액수이다.[9] 또한 회사로부터 봉급을 받으면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수 있다는 것도 한 몫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연봉 1달러 외에도 스톡 옵션이나 여러 가지 성과급 형태로 보상받고 있다.[9] 하지만 애플은 주주배당이 적기 때문에 실제 그의 소득은 디즈니 주식의 배당인 연 500억원 정도다.
· 경쟁회사였던 IBM이 '애플은 썩은 사과(애플)'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자 애플은 다음 날 '애플은 썩은 부분을 도려낸 사과'라고 기사를 냈고, 이때부터 사과를 누군가 한 입 베어 문 듯한 그림의 애플 회사 마크가 만들어졌다.
관련 서적
· 《iCon 스티브 잡스》, 윌리엄 사이먼 저, 민음사, 2005, ISBN 978-89-374-2547-9
·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저, 민음사, 2011, ISBN 978-89-374-8394-3
· 《I, STEVE》, 스티브 잡스 어록, 조지 빔 엮음, 쌤 엔 파커스, 2011, ISBN 978-89-6570-044-9
대표적 명언
·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 It's in Apple's DNA that technology alone is not enough. We believe that it's technology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yields us that result that makes our heart sing.(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 철학은 애플의 DNA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결과를 내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된 기술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 We're here to put a dent in the universe. (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위해 여기에 있다.)
· Our goal is to make the best devices in the world, not to be the biggest. (우리 목표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기기를 만드는 것, 제일 큰 놈이 되는 게 아니라.)
· Older people sit down and ask, 'What is it?' but the boy asks, 'What can I do with it?'. (늙은 사람은 앉아서 '이게 뭐야?'라고 묻는데, 소년은 '내가 이걸로 뭘할 수 있지?'라고 묻는다.)
·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ey can change the world are the ones who do. (자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 If you live each day as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매일 최후처럼 살면, 어느날 분명히 절대 될 것이다.)
· Do you want to spend the rest of your life selling sugared water or do you want a chance to change the world? (나머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꿔놓을 기회를 갖고 싶습니까?)
· I'm as proud of what we don't do as I am of what we do. (우리가 이룬 것만큼, 이루지 못한 것도 자랑스럽습니다.)
2. 내가 저자라면
스티브 잡스는 여태 내가 위인 전기에서 보아온 인물 중에서 인격 면에서 가장 인간적인 결점을 많이 소유한 인물로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잡스가 왜 이 시대의 아니콘이 되었을까? 우선은 그의 생애는 참으로 극적이란 것이다. "나름 혈통은 좋은 출생 - 서민 가정에 입양 - 특유의 기질로 성공 - 성격과 개인의 결함으로 나락으로 추락 - 전과 다른 면모로 화려하게 부활"이라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삶을 실제로 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잡스의 인간성은 그의 인생의 굴곡만큼이나 변화무쌍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그의 황야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그의 인간성이 변화이다. 그의 넥스트 시절, 1992년에서 93년간의 1년 동안 부사장급 9명 중 7명이 떠났을 정도로 그의 고약한 성격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인생의 암흑기를 겪으면서 잡스의 성격은 변화를 겪는다.
사소한 일에 이성을 잃고 광포한 것은 예전 잡스의 모습이지만 애초에 자신에게 대놓고 대드는 인물을 중요한 자리에 두고 그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싸움 후에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일은 이전의 잡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또한 이전의 프레젠테이션은 오로지 잡스를 위한 쇼였다. 하지만 복귀 이후 이런 모습은 없어지고 각 부분의 담당자들이 자기 파트를 주도할 수 있도록 했다. 고난을 통해 인간성의 결함이 다듬어진 잡스에게 드디어 능력있는 인물들을 붙잡아 두고 조화시키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말은 진실이다.
“인생3막에서 빛나는 성공의 주인공이 되도록 그를 단련한 것은 애플이라는 인생 1막에서 추방당한 사건이 아니라 바로 2막에서 경험한 화려한 실패였다”
다음으로 돋보이는 것은 그의 삶의 철학들이다.
“내가 잘하고 또 좋아하는 것은 재능 있는 인재들을 찾아내 그들과 함께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넥스트의 자금난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잡스에게 구원자가 나타나는 등, 잡스의 인생에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희한하게도 살 길이 열리곤 했다. 이는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으면 하늘이 돕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그의 생애는 한마디로 세상을 바꿀 빛나는 과업을 위한 매진이었다.
3. 내 가슴을 무찔러온 장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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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가 어디서 듣고 왔는지 애플의 로그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시 암호를 해독한 인물로 나중에 청산가리가 들어간 사과를 베어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영국의 컴퓨터 선구자 앨런 튜링에 대한 경의의 표시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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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전기가 완성된 후 그는 팰러앨토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 찾아와 경기를 쓴다면 자신만큼 흥미로운 주제도 없을 것 같다면서 다시 한번 나를 설득 했다 그 끈질김은 나를 당혹 시켰다 2009년 스티브의 아내 로렌 파월이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스티브에 관한 책을 쓸 생각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가 두 번째 병가를 낸 직후였다 나는 스티브가 처음 그 얘기를 꺼냈을 때 병에 걸린 줄 몰랐다고 그녀에게 털어 놓았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제게도 암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에야 전화를 했고 대외적으로는 계속 비밀로 했으니까요 나는 그 때 이 책을 쓰기로 맘 먹었다 스티브의 반응은 의외였다 집필 과정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 해서는 안되며 사전에 보여 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는 조건에 선뜻 응 하는 것이었다 이건 당신 책이니까요 읽어보지도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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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는 애플에 복귀한 이후인 지난 12년의 세월이 신제품 창출이란 측면에서 볼때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그의 목표는 빌 휴렛과 그의 친구 데이비드 패커드가 이룩한 것과 동일한 업적을 쌓는 것이었다 혁신적인 창의성이 충만하여 창업자들이 은퇴 한 후에도 오랜 세월 존속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 말이다
어릴 때부터 항상 저 자신이 인문학적 성향을 지녔다고 생각해 써요 그런데 전자공학도 무척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저의 영웅 중 한명인 폴라로이드사의 에드윈 랜드가 한 말을 읽었어요 인문학과 과학 기술의 교차점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에 관한 얘기 였는데 그걸 읽자 마자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결심 했지요
인문학적 감각과 과학적 재능이 강력한 인성 안에서 결합할 때 발현되는 창의성은 벤저민 프랭클린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전기에서 내가 가장 흥미로워 한 주제였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것이 21세기 혁신적인 경제를 창출하기 위한 열쇠라고 믿었다
나는 스티브에게 왜 나를 그의 전기 작가로 택 했느냐고 물었다 사람들 입을 여는데 소질이 있는 것 같아서요 뜻밖의 답이 었다 2 3 오리진 하자 그는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를 만나 보라고 1요 하기 시작했다 크기는 심지어 부인 저별과 옛 애인 들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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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어떤 것에도 제한을 두려 하지 않았다 자랑 스럽지 못한 일, 수치스러운 일도 많이 있었지요 예를 들면 스물세살 때 여자친구를 임신 시키고 그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라든지... 그가 말했다 하지만 뭐, 절대로 밝혀서는 안될 엄청난 비밀 같은 건 없으니까요
나는 40 차례에 걸쳐 그를 인터뷰 했다 내가 그를 방문한 18개월 동안 그는 갈수록 친밀감을 보이며 속 깊은 곳에 묻어 둔 얘기들을 털어 놓았 다. 가끔은 애플의 오랜 동료들이 스티브의 현실 왜곡 장이라 칭하는 일면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확인하고 더 구체화 하기 위해 나는 백 명이 넘는 친구와 친척 경쟁자 적수 동료들을 인터뷰 했다 이 프로젝트를 도운 그의 아내 로렌 역시 제약이나 통제를 가하려 하지 않았으며 출간된 내용을 미리 보자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스티브 의 장점뿐 아니라 결점도 대해서도 정직하게 써 달라고 신신당부 했다 그의 인생과 성격에는 극도로 지저분한 부분도 있어요 그게 진실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 것들을 눈가림 하려 해서는 안 돼요 스티브는 조작이나 왜곡에 능 하긴 하지만 놀라운 이야기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것들을 다 있는 그대로 얘기 했으면 좋겠어요
=> 조선 왕조실록의 기록 사관과 같은 독립성과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한 이 전기 작가도 지혜롭지만 그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 스티브가 이채롭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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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부분 스티브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너무도 강력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결국 종종 나는 라쇼몽 효과 즉 주관적인 기억의 잣대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현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상충되는 증언들은 공평한 균형을 가하고 출처들에 투명성을 부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책은 완벽에 대한 열정과 맹렬한 추진력으로 6개 산업 부분에 혁명을 일으킨 창의적인 기업가의 롤러코스터 인생 과 그의 불같이 격렬한 성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6개 산업 부분은 바로 pc 와 애니메이션 음악 휴대전화 태블릿 컴퓨팅 디지털 출판을 말한다 여기 일곱 번째 부문으로 소매상점까지 추가할 수도 있겠다 그가 혁명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 낸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는 웹사이트 기반이 아닌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디지털 콘텐츠의 대해서 새로운 시장의 문을 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세상을 변혁하는 제품을 내 놓았을 뿐 아니라 두 번째 시도 만에 지속 가능한 기업도 창출하였다
그의 dna를 물려 받은이 회사는 그의 비전을 추진하고 발전시킬 창의적인 설계자와 대담 무쌍한 엔지니어들로 가득하다 나는이 책이 혁신을 다룬 것으로 평가 받길 바란다 미국의 혁신에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모신 중인데 있대 푸른 세계의 공정성 채널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 경제를 고치고 가리고에서는이 시대의 스티브잡스여 말로 독창성과 상상력 지속 가능한 혁신 i 궁극적 아이콘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21세기에 가치를 창출하는 최선의 방법은 기술과 창의성을 연결 하는 것임을 알았다
1. 어린시절 - 버려지고 선택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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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라인 홀트 잡스는 2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해안경 비대에서 제대 하면서 동료들과 한가지 내기를 했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막 도착한 참이었는데 잡스는 2주안에 아내로 삼을 여인을 찾겠다고 내기를 건 것이다 키 180 cm 의 다부진 체격에 문신을 한 엔진 기술자 였던 그는 얼핏 제임스 딘을 닮은것 같았다. 그가 아르메니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상냥한 클라라 헤고피언과 데이트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외모 덕분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날 저녁 원래 만나려고 했던 친구들과는 달리 잡스와 그의 친구들은 차를 한 대 동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클라라는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열흘 후인 1946년 3월 잡스는 헤고피언과 약혼을 했고 그렇게 내기에서 이겼다 둘은 40년 후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때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렸다 클라라는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가 당시 터키 당시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피하여 아르메니아를 떠난 후 그 곳에 정착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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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젠 이전에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었다는 사실이 있었다 결국 클라라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데이트에 나갔고 거기서 잡스가 눈이 맞았던 것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전쟁을 겪으며 충분히 많은 흥분을 경험했던 그들은 그저 정착해 가정을 꾸리고 평온하게 살고 싶었다
폴 잡스는 중고차 세일즈맨으로 직업을 바꿨다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은 사람들의 자동차를 찾아 자물쇠를 따고 회수해 오는 일이었다 그는 그런 자동차들의 일부를 매입하고 고쳐 팔아서 비교적 괜찮은 삶을 꾸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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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 친엄마인 조앤 시벌 역시 위스콘신주 시골 지역의 독일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생 시절 시리아 출신의 무슬림 조교 압둘라파 존 잔달리와 사랑에 빠지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아빠가 부모 자식 간의 연을 완전히 끊겠다고 위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압둘라파 잔달리는 시리아의 걸출한 집 안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54년 여름 시블은 잔달리 와 함께 시리아를 방문했다 둘은 홈스에서 두달간 지냈고 시블은 그의 가족에게서 시리아 요리를 배웠다 위스콘신으로 들어 왔을 때 그녀는 자신이 임신 했음을 알았다 둘 다 스물 세 살이 였지만 결혼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블의 아버지는 당시 임종을 앞두고 있었는데 여전히 그녀가 잔달리와 결혼하면 부녀 관계를 끊겠다고 위협했다. 시블은 1955년 초 샌프란시스코로 향했고 그곳에서 미혼모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아이를 분만 시켜 조용히 입양 시키는 어느 자상한 의사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시블은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아이들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부부가 입양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티브잡스는 어느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정해져 있었지만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변호사 부부는 발을 뺐다 그 사내 아인 그래서 변호사가 아니라 기계에 대한 열정이 높은 고등학교 중퇴자인 엔지니어와 경리로 일하던 소박한 여자의 아들이 되었다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는 아이에게 스티븐 폴 잡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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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모님 은 그 일에 대해 아주 개방적 이었습니다 한 여자 아이가 그러니까 너네 진짜 부모님이 너를 원하지 않았다는 얘기야?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천천히 반복해서 말해 주셨어요 단어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어 가면서 말이죠
버림받음 선택받음 그리고 특별함. 이러한 개념 들은 잡스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으며 스스로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무엇을 만들든 완전히 통제하려는 그의 집착은 출생 직후 버려졌다는 사실과 그의 성격에서 직접적으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위 환경을 조종하고 싶어 하며 자기가 개발하는 제품을 자기 자신의 확장으로 간주 합니다.
스티브는 버림 받은 것과 그것이 자기에게 안겨준 고통에 대해 많이 얘기 했어요 그게 스티브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지요 비유하자면 그는 다른 드러머의 비트를 따라간 셈인데 자신이 태어난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속해 있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생부가 자신을 버렸을 때 나이와 똑같은 나이 23세가 되었을 때 스티브 잡스도 아이를 낳은 후 버리게 된다 나중에는 그 딸에 대한 책임을지지 만 말이다 아이의 어머니인 크리스앤 브래넌은 버려져 입양 되었든 일이 잡스를 깨진 유리로 가득하게 만들었고 그 행동의 일부를 설명해 준다고 말한다 버림 받은 사람이었기에 버릴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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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에 대한 중요한 의문 한가지는 그가 왜 때때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일부 사람들에게 거의 반사적으로 잔인하고 사악하게 구느냐 하는 겁니다 출생 직후 버림받은 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진짜 근본적인 문제는 스티브 인생에서 버림받음이라는 주제가 차지하는 비중이라는 얘깁니다
저는 항상 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부모님이 그렇게 느끼도록 해 주셨어요 반면 생부모에 대해 얘기할 때는 퉁명스러웠다. 그들는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이지요 무정한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래요 정자은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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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아이클로 주택에 대한 호감과 존경으로 인해 깔끔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 대중 시장에 공급하고자 하는 열정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멋진 디자인과 심플한 기능을 저렴한 가격과 결합하는 일을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그것은 바로 애플 컴퓨터가 애초부터 가졌던 비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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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대학교 의 공대 학장 프레더릭 터먼은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상업화 할 수 있는 민간 기업들을 위해 대학 부지 280만 m2 상당의 산업 구역을 조성 했고 덕분에 그 지역은 기술 혁명의 요람으로 탈바꿈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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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버림 받았다는 생각뿐 아니라 자신이 특별하다는 인식도 품고 자랐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성격 형성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그 특별 하다는 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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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한다면 그건 선생님들 잘못이지요 스티브 잡스는 학교에서 범한 잘못 때문에 부모님에게 벌을 받은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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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보다는 예수님처럼 살거나 예수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데 오직 신앙 그 자체만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기독교가 핵심을 잃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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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회사가 개발하고 있던 작은 컴퓨터 였다 나는 거기서 첫 데스크톱 컴퓨터를 봤어요 9100 a라고 불린 그것은 사실 계산기를 미화해 말하는 것이었지만 진정 최초의 데스크톱 컴퓨터 이기도 했지요 20kg 정도 되는 거대한 몸집 이었지만 정말 아름다웠어요 첫눈에 반해 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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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직원들 중에는 CEO에게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얻어낸 나대는 아이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 크게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고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얻어 낼 정도의 배짱이 대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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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15살 때 첫 자가용을 가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다시는 마리화나를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 하기를 원했지만 저는 약속 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전보다 더 자주 약에 취하곤 했지요 친구들과 공터나 자동차안에서 lsd도 가끔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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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잡스는 고등학교 2-3 학년 동안 지적으로도 꽃을 피웠다 전자공학에 광적으로 빠져 있는 부류와 문학과 창작에 몰두하는 부류의 교차 점에 선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음악을 많이 듣기 시작했고 과학이나 기술 분야는 물론이고 그밖의 책들로 더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세익스피어와 플라톤 등을 읽었는데 특히 리어왕이 정말 좋았어요 그는 좋아했던 다른 문학 작품으로 모비딕과 딜런 토머스이 시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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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레이저를 가지고 노는데 훨씬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자신의 스테레오 시스템에 거울을 부착해 놓고 레이저를 반사시키는 방식으로 파티를 위한 뮤직 라이트 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2. 뜻밖의 커플 - 두명의 스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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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콜럼 선생에게 수업을 듣던 시절 잡스는 우연히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졸업생 선배와 친구가 된다 고교시절 맥콜럼의 총애를 받던 워즈니악은 천재적 두뇌 와 장난기 덕분에 학교의 전설로 남은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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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날까지도 결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할 때 뿐, 아버지는 나아가 아들에게 지나친 야망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줬다 워즈가 잡스와는 다른 길을 걸어 간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둘이 만난지 40년이 된 2010년 워즈는 애플 제품의 어느 출시 이벤트에 참석해 자신과 잡스의 차이점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아버지는 늘 제게 중용의도를 지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스티브와 같이 나는 상류사회로 치고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없었습니다 제 꿈은 그저 아버지처럼 엔지니어가 되는 거 였습니다 부끄럼도 많이 타는 성격이어서 스티브처럼 기업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요
전자공학 꼬마는 여학생 보다는 트랜지스터 와 눈을 맞추는게 더 편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회로 기판을 들여다 보며 지내는 땅딸막하고 꾸부정한 사내아이로 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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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즈는 아버지가 구독 하던 전자공학 잡지를 집에서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특히 고성능 애니악과 같은 신형 컴퓨터들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 되었다 숫자 1과 0 만을 사용한 대수학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그는 그런 컴퓨터들이 매우 단순하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8학년때 워즈는 이진법 이론을 활용해 열개의 회로 기판에 100개의 트랜지스터 와 200개의 다이오드 200개의 저항기를 설치한 계산기를 만들었다 그 계산기로 그는 공군에서 개최한 지역 경연 대회에서 12학년 생까지 포함하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또래 청소년들은 갈수록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파티를 즐기는데 열중 했고 그럴수록 워즈는 더욱더 외톨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그렇게 노는 것이 회로를 설계 하는 일보다 더 복잡해 보였다 어느 시점에서 부턴가 한동안은 정말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았지요 워즈의 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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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학년 때 어느날 워즈는 전자 메트로놈을 하나 만들었다 그것을 시한폭탄처럼 학생 사물함에 설치해 놓았다 교장이 부리나케 그 곳으로 달려 갔고 용감하게도 폭탄을 가슴에 안고 운동장으로 냅다 뛰쳐 나가 전선을 제거하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이 출동했고 워즈는 소녀원에 수감 되었다 하지마 워즈는 거기서도 장난을 쳤다 수감 자들에게 천정 환 풍기에서 전선을 뜯어 감옥 창살에 연결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그렇게 해서 창살에 손을 대는 사람이 감전 충격을 받도록 장난을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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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으로 프로그래밍 언어인 포트란을 배우는 한편 최신 마이크로칩들의 사양을 공부했으며 그 부품들을 이용해 컴퓨터를 재 설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스스로 설정한 도전 과제는 되도록 적은 개수의 부품을 이용해 컴퓨터 설계를 복제하는 것이었다 방문을 잠가 놓고 방안에서 혼자 그 일에 매달렸지요 매일 저녁 그는 전날에 그려 놓은 것을 개선하기 위해 애썼다 3학년이 끝날 때 쯤에는 그는 달인이 되어있었다 그 무렵 기업들이 내놓은 실제 컴퓨터 들의 딱 절반에 해당 하는 칩들 만 가지고도 컴퓨터를 설계할 수 있었어요 물론 종이 위에 그린 설계에 불과 했지만요 어쨌든 열일곱살짜리들은 대부분 다른 방식으로 저 나름의 짜릿함을 얻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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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와 저는 만나자 마자 빌의 집 앞 인도에 걸터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눴지요 서로 저지른 장난질이며 직접 모방하거나 고안한 전자공학 설계에 관한 얘기를 말이에요 워즈의 회상이다 우린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개 다른 사람들한테는 제가 진행하던 설계에 대해 설명하는게 쉽지 않았는데 스티브는 바로 바로 알아 듣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맘에 들었죠 깡 말랐지만 강단이 있고 활기가 넘치는 친구 였어요 잡스 역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때까지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전자공학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워즈가 처음이었지요 만나자 마자 맘에 들었어요 저는 또래 보다 좀더 성숙한 편이었고 워즈는 자기 또래보다 좀 덜 성숙한 편이었으니 서로 비슷한 수준이 된 것이지요 워즈는 정말 머리가 좋지만 정서적으로는 저와 동갑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컴퓨터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공유했다 밥딜런 노래 가사 들을 수록한 브로슈어를 구입해서 밤늦도록 해석해 보기도 했고 그 노랫말들이 뭔가 창의적인 사고를 일깨워 주곤 했지요 그때 제가 소장한 콘서트 테이프를 다 합치면 100시간 분량은 넘었어요 잡스의 말이다
=>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이렇게 증폭되어 공부와 취미에의 열정을 불러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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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로젠 바움 이 쓴 작은 블루박스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그 기사는 프리커 와 해커들이 AT&T 네트워크 신호를 복제하는 방법으로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이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 기사를 읽은 나가다가 가장 친한 친구인 스티브 잡스에게 전화 해서 읽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지요 그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잡스 말고는 자신을 흥분을 공유할 친구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서관의 잡지 더미를 미친듯이 뒤진 기억이 나요 마침내 워즈가 그 주파수들 전부를 소개한 잡지를 찾아냈지요 오 세상에!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어요 열어 보니까 진짜 다 있더라구요 우리는 계속 정말이야 오 세상에 정말이네라고 외쳐 댔지요
그때까지 누구도 블루박스의 디지털 버전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지만 워즈는 그런 도전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그는 라디오 색 브랜드에서 나온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 등을 가지고 절대 음감을 타고난 음대생 한명의 도움을 받아 추수감사절이 되기 전에 디지털 버전은 완성했다 그 이전에든 그 이후로든 그보다 더 자랑스러운 회로를 설계해 본적이 없어요 저는 지금도 그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타고난 고안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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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일화는 바로 워즈가 헨리 키신저 흉내를 내며 바티칸에 전화해 교황을 바꿔 달라고 한 사건이었다 예 지금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진행중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지금 교황님과 전화를 좀 나눌 필요가 있다 이겁니다 저쪽에서는 지금 새벽 5시 30분이니 교황께서 아직 주 무신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통역을 맡은 것으로 보이는 중요한 분이 먼저 나왔다. 워즈가 키신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저들이 눈치 챈 것이지요
잡스는 블로 박수가 취미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만들어 팔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워즈의 동의를 구한 후 제가 전원 공급 장치와 키패드 포장 등등 제품의 나머지 구성요소들을 완성하고 갖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가격까지 책정 했지요 이는 나중에 두 사람이 애플에서 잡스가 맡을 역할을 결정 하는 셈이 었다 완성된 제품은 트럼프카드 두개를 합쳐 놓은 건 만 한 거 같다 부품에 들어간 돈이 대략 $40 었기에 잡스는 $150 로 팔기로 결정했다 한 100개 정도 만들었는데 거의 다 팔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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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블루박스가 없었다면 애플도 없었을 겁니다. 워즈와 저는 그 일로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우리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무언가를 상품화 할 수 있다는 확신까지 들었던 겁니다 작은 회로기판이 달린 장치 하나로 수십억 달러 가치의 사회기반시설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으니 그런 자신감이 생길 만도 했다 그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자신감을 주었는지 아마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워즈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 했다 어쨌든 그 일로 우리는 저의 엔지니어링 기술과 잡스의 비전을 합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힌트를 얻은 셈이지요 이들의 블루박스 모험은 곧 탄생할 파트너십에 하나의 원형을 마련해 주었다 그 원형에 따라 워즈는 멋진 고안물을 만들어내는 온 화한 마법사가 되고 잡스는 그것을 사용자 친화적인 하나의 패키지로 조합하고 출시해서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궁리하는 사업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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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여름 오두막 집을 얻어서 크리스앤가 동거할 계획입니다 부모에게 이렇게 선언 했다 폴 잡스는 격노했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리화나 문제로 싸운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이번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작별 인사만 남기고 나가버린 것이다. 브래넌이 그림을 그릴 때면 잡스는 시를 쓰거나 기타를 쳤다 잔인하면서도 깨어있는 사람이 었다고 할 수 있어요 참으로 이상한 조합이지만요
선불교와 채식주의 LSD로 영혼을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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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 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들은 최후통첩을 던지는 것으로 대응했다. 리드에 갈 수 없다면 아무 곳에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부모는 평소처럼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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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게 기억하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너무 무심한 태도로 부모님께 상처를 준 것이지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를 그곳에 보내기 위해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신 분들인데 따라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으니... 사실 제게 부모가 있다는 것을 누가 아는게 싫었던 겁니다 고아처럼 보이고 싶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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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콧키와 그 여자친구 엘리자베스 홈스 와 함께 보내기 시작한다 콧키가 처음 그녀를 데려와 소개하는 자리에서 잡스는 얼마를 주면 애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식으로 모욕을 주었는데도 그들의 관계는 나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히치하이킹을 하며 함께 태평양 연안을 여행 했고 삶의 의미를 성찰 하기 위한 전형적인 기숙사 감수성 훈련 그룹의 참여했으며 인근의 하래 크리쉬나교 사원에서 열린 종교 행사에 참석 했다 엘리자베스 홈스의 침실 윗쪽 다락방에 명상실을 마련하고 인도 그림과 듀리 깔개 양초 명상용 방석 등으로 공간을 꾸몄다 침실 천장에 다락으로 향하는 작은 문이 있었거든요 넓지는 않았지만 꽤 널찍한 공간이었지요 거기서 가끔 환각제도 복용하곤 했지만 대부분은 명상 하는데 이용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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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에 대한 잡스의 관심은 특유의 열성으로 그것을 받아 들이고 결국 자신의 인성 깊은 곳에 뿌리 내리게 했다 스티브는 선에 심취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접근 방식을 순전히 미니멀리즘적 미학과 강렬한 집중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다 선에서 온 겁니다. 직관적 이해와 자각이 추상적 사고와 논리 분석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선을 통한 그의 자각은 내면의 평정이나 마음이 평안 대인 관계의 원숙함 등을 충분히 수반 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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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에 들어가서 일주일이 지나면 정말 황홀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소화 시킬 게 아무것도 없는 데서 비롯되는 엄청난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몸 상태도 안팎으로 최상에 이르지요 당시 저는 어느 때나 벌떡 일어나 샌프란시스코까지 걸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었어요 채식 선불교 명상과 영성 환각과 록 음악 잡스는이 모든 것을 흥분된 상태로 넘나들며 깨달음을 구하는 당대 캠퍼스 하위문화의 특징이라 할 다중 충동을 채우려 애섰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영혼 주변에는 전자공학 괴짜 기질이 흐르고 있었다 언젠가 나머지 모든면모들과 놀라울 정도로 조화를 이루게 되는 그 기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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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첫 번째 구루를 만나다 그의 방에 들어갔다가 그가 여자친구와 한창 섹스에 열중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잡스가 되돌아 나오려고 하자 그는 잡스를 불러 세웠다 자리에 앉아 끝날 때까지 좀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극단적으로 자유분방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면을 걸듯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인 로보트 프리들랜드를 만나게 되었다 잡스는 그의 카리스마 적 특성 중 일부를 답습했고 몇년 동안은 그를 마치 구루처럼 여기며 따랐다 그를 돌팔이이자 사기꾼으로 보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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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추종자 들에게 땔감 물 말이 안돼 탈곡 쥬스 짜는 기계 와 나무 난로를 만들려고 지시하는 등 갖가지 상업 활동에 종사하도록 하고는 모두 무인 금 노력 봉사로 받아들이게 했다 모두 로버트의 농장을 위해 뼈 빠지게 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잡스는 몇 년 전 광산 이 야기한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져 곤경에 처했을때 프리들랜드가 자기에게 연락을 취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얘기 좀 잘해 달라고 부탁 하기 위해서 말이다 로보트는 항상 자신을 종교적 인물로 그렸어요 하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카리스마적 인물과 사기꾼의 경계선을 넘어서 버렸지요 젊은 시절에 영적 귀감으로 삼았던 인물이 나중에 상징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광산업자로 변한 모습을 접하는게 얼마나 어색한 일인지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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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도 몰랐고, 대학이 그걸 알도록 도와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이 평생에 걸쳐 저축한 돈만 축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퇴하기로 그래도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으로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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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실험 해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더드만은 등록금을 내지 않는 잡스가 수업을 청강 할 수 있도록 조치 했고 또 기숙사 에서 친구들과 지내는 것도 하락 했다 자퇴 하자마자 관심없는 필수 과목들은 체 쳐 놓고 흥미로워 보이는 수업만 골라서 듣기 시작했어요 과학 으로는 도착할 수 없는 심미적이고 역사적인 무엇, 예술적으로 미묘한 무엇을 느낄 수 있는 수업이 었어요 캘리그라피 수강은 잡스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 세워 놓으려고 시도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만드는 모든 제품에서 기술에 대한 멋진 디자인과 왜양, 느낌, 품위, 인간미 심지어 로맨스까지 결합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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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D는 심오한 경험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였지요 lsd는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저의 인식을 강화해 주었습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멋진 뭔가를 창출 하는 것,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역사의 흐름과 인간 의식의 흐름 속에 되돌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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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히피 녀석이 로비에 들어와서는 채용 해줄 때까지 나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고 하더군요 직원은 경찰 부를까요? 아니면 들어오게 할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데려 와 보라고 말했지요
생각해보면 리드 대학교 중퇴자를 고용한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알콘의 증언이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서 뭔가를 볼 수 있었지요 머리가 매우 좋고 열정적이고 기술에 대한 흥미가 대단했죠 나는 냄새 나 태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시넬의 증언입니다 분명 다루기 힘든 친구 였지만 왠지 마음에 들더군요 그래서 스티브에게 차라리 야간 근무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 봤지요 그것이 그 친구를 구제 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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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되어 있어도 잡스는이내 건방진 태도로 유명 해 졌다 제가 빛나는 유일한 이유는 다른 모두가 그처럼 형편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교만에도, 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잡스는 아타리의 사장을 매혹 할 수 있었다 스티브는 다른 직원들 보다 훨씬 철학적이였습니다 부시넬의 회상이다 더욱이 잡스는 아카리 개임들의 단순함이 주는 가치를 직관적으로 알아 봤다 그 게 임에는 설명서가 필요 없었다 마약에 취한 대학 1학년짜리조차 쉽게 사용법을 알 수 있었다 아타리에서 나온 스타트렉 게임의 유일한 사용설명이란 1 )25 센트 동전을 넣어시오 2) 크링온들을 피하시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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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게이에게 물었다 그럼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 게이는 이렇게 답했다 네가 아름다운 말을 보았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느낌이지 멋지다는 건 인정 하지만 자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 것 말이야 아름다움 자체만 있는 그대로 평가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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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참으로 똑똑한 선택이었다 듣는 순간 친근감이 느껴지면서도 쉽고 간단했다. 약간 엉뚱하면서도 흔히 먹는 파이를 연상시킬만큼 평범한 이름이었다 반문화의 기운이 살짝 느껴지고 소박한 전원 생활을 떠올리게 만드는 동시에 더없이 매혹적인 이름이었다. 그리고 애플과 컴퓨터라는 단어의 조합은 흥미로운 효과를 유발 했다 정말 엉뚱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머릿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름이었지요 결국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어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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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즈는 어떤 측면에서는 대단히 총명했어요 하지만 책만 파고드는 학생 같은 이미지도 있었지요 낯선 사람을 상대할 때는 상당히 위축되었고요 그래도 어쨌거나 우리둘은 훌륭한 파트너 이었어요 잡스의 말이다 잡스는 워즈의 공학적 천재성을 존경 했고, 워즈는 잡스의 비즈니스 감각을 존중했다 스티브는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도 전화 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재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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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통합 패키지 형 컴퓨터 애플 2
pc는 완제품 형태로 조립된 패키지 여야 했다 애플컴퓨터 의 다음 버전은 멋진 케이스 키보드 전원 장치 소프트웨어 모니터까지 갖춘 일체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의 통합 패키지형 컴퓨터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컴퓨터 조립 하기를 좋아 하고 변압기와 키보드를 어디서 어떻게 구매 해야 하는지 아는 소수의 컴퓨터 광들만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앞에 앉자마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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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워즈니악이 말했다 자네는 돈을 가져 갈 자격이 없네 아무것도 만들지 않잖은가? 잡스는 분 한 듯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성격상 그럴 만도 했다 그는 결코 감정을 속으로 억누르는 타입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잡스는 워즈에게 자신은 기꺼이 이 합자사업을 중단할 의사가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둘이 공평하게 50대 50으로 나누지 않으려면 그쪽에서 다 가지는 방법을 택하라고 하지만 워즈는 잡스와 공생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버지 보다 훨씬 더 잘 알았다 만일 잡스가 없었다면 워즈는 아직도 홈브루 클럽 모임에서 회원들에게 회로 기판 설계도를 공짜로 나눠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워즈의 천재성을 사업으로 연결한 인물은 바로 잡스였다 워즈는 잡스와의 파트너 관계를 깨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애플2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워즈의 뛰어난 회로기판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완전히 통합된 소비자 제품의 형태를 갖춰야 했고 그러자면 잡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했다
애플의 마케팅 철학 공감 집중 인상
밸런타인은 잡스에게 말했다 마케팅과 유통의 훤하고 제대로 된 사업 계획서를 쓸 줄 아는 전문가를 데려온 다음에 투자 문제를 이야기 합시다 평소에 잡스는 자신 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뭔가 충고를 할 때는 까칠한 태도를 보이거나 아니면 열심히 경청하거나, 둘 중 하나 였는데 이 경우엔 후자였다 잡스는 세 명만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밸런 타인은 거의 부탁을 들어 3명을 추천 했고 잡스는 그들은 모두 만나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마이크 마쿨라 하는 사람과 이야기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마쿨라는 이후 약 20년간 애플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 사람을 소개 받고 또 사람을 통해서 비즈니스는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니 상대방이 안된다면 대신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 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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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쿨라는 사업계획서 의 내용을 대부분 작성 했으며 소수 컴퓨터광들의 시장을 뛰어 넘는 사업을 구상 했다 그는 일반 가정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컴퓨터를 제공할 방법에 대해 얘기 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법을 정리하고, 가계부를 쓰며, 그렇게 컴퓨터를 활용할 날에 대해서 말이에요 마쿨라는 야심찬 포부를 품고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2년 내에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이 될 겁니다 우리는 하나의 산업을 탄생 시키고 있어요 이런 일은 10년에 한번 일어날 법한 일입니다 애플이 포춘 500대 기업이 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어쨌거나 마쿨라의 예견은 옳았음이 입증 된 셈이다 마쿨라는 회사 지분의 3분의 1을 받는 대신 최고 25만 달러까지 은행 대출 보증을 써 주기로 했다 애플은 주식 회사로 전환하고 마쿨라 와 잡스, 워즈가 각각 지분을 26% 식 갖기로 합의 했다 나머지는 다른 투자자들를 끌어 모으기 위해 남겨 두기로 했다 3사람은 마쿨라의 수영장에 있는 오두막에 모여 계약서에 서명했다 잡스는 회상한다 과연 마이크가 25만 달러를 다시 회수 할 수 있을지 저도 반신반의 했어요 기꺼이 리스크를 안고 뛰어드는 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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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 일에 뛰어 들어 야해 그는 워즈가 애플의 정식 직원이 된다고 해서 경영 세부 사항들을 챙기거나 엔지니어가 아닌 다른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설득했다 워즈는 회상 한다 바로 그게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예요 저는 조직도의 하단부에 그저 엔지니어로 머물고 싶었으니까요 그는 잡스에게 전화해 hp를 그만두고 애플에 몰두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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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쿨라는 잡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절대로 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회사를 차려서는 안된다고 여러분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쏘다 부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오래도록 생명을 주는 회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지요 마콜 나는 애플이 마케팅 철학을 종이 한쪽으로 정리했다 첫째는 공감이였다 고객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고객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집중이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일을 훌륭하게 완수 해 내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원칙은 인상이다 사람들이 기업이나 제품이 전달하는 신호나 분위기를 토대로 그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특정한 의견을 갖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원칙이다 사람들이 책을 판단 할 때 가장 먼저 기준으로 삼는 것은 표지다 우리가 최고의 제품 최고의 품질 가장 유용한 소프트웨어는 갖추고 있다 해서 그것을 형편 없는 방식으로 소개 하면 그것은 형편 없는 것으로 인식 된다 창의적이고 전문가다운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이 최상의 품질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게 된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애플tv 세상 밖으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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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입된 사장 스코티의 주요한 임무는 잡스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스코티는 대게 이 임무를 잡스 와 함께 산책하면서 수행 했다 스콧은 회상 한다 그와 처음 산책을 같이 할 때 좀 더 자주 목욕을 하라고 충고 했지요 그는 저한테 그럴 테니 당신은 채식주의 책을 읽고 살를 좀 빼시오라고 하더군요
145-146
액플2는 향후 16년간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며 600만대 가까이 판매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이 컴퓨터가 pc 업계를 탄생시킨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워즈는 이 놀라운 회로기판과 관련 운영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역사적 공로를 인정 받을 만하다 그러나 워즈의 고안물을 전원장치와 근사한 케이스까지 갖춘 사용자 친화적인 패키지로 변신시킨 이는 바로 잡스였다 또한 잡스는 워즈의 기계들을 중심으로 회사를 일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워즈는 놀라운 기계를 설계했지만 스티브잡스가 없었다면 아마 그 물건은 지금도 컴퓨터 애호가들에게 드나드는 상점에 만남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애플2가 워즈의 창조물이라고 여겼다 이것이 잡스로 하여금 자신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또다른 창조물을 만들도록 자극 했는지도 모른다
7. 크리스 앤과 리사 - 자신이 버림 받은 사람이었기에....
151
한지붕 아래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브래넌과 잡스는 가끔 잠자리를 함께 했고 몇 달 후 브래 넌은 임신을 했다 임신 하기 전 스티브와 저는 5년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죠 그래서인지 우리는 함께 오래 사는 방법도, 잘 헤어지는 방법 또 몰랐어요 그는 어느 순간 상대방에게 완전히 몰두 하다가 또 어느새 차갑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오싹할 만큼 냉정한 면이 있는 친구 였지요 잡스는 어떤 대상이 자신의 집중력을 흐트러 뜨리는 걸 원치 않을 때면 그냥 그 대상을 무시하곤 했다 브래넌의 임신 앞에서 그는 그냥 그 사실을 마음 속에서 몰아냈다 아마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콧키의 추측이다 그의 인생에는그것 말고도 다른 중요한게 계획들이 많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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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는 아기를 입양 보내는 짓은 절대 하지 말라고 제게 말했죠 묘한 아이러니가 하나 있다 잡스와 브래넌은 둘다 스물 세 살이었는데 조앤 시블이 잡스를 임신 했을때 조앤 시블과 압둘라파 잔달리도 23 살이었다는 점이다 잡스는 자신이 스물세살 때 현실과 책임감을 직시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전철을 비슷하게 밟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 했다 잡스와 브래넌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 되었다 브래넌은 감정적으로 대단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접시를 깨뜨리고 집안 물건을 집어던지며 닥치는대로 부수고 벽에다 목탄으로 괴상한 글씨를 써 놓고는 했다 그녀는 잡스의 무심하고 냉담한 모습에 더욱 화가 솟구쳤다고 한다 그는 대단히 깨어 있는 존재지만 한편으론 잔인했어요 정말 기묘한 조합이었죠
로보트 프리들랜드가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자기 농장으로 와서 아기를 낳으라고 했어요 잡스와 브래넌은 아기에게 리사 니콜 브래넌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브래넌은 말한다 잡스는 후에 저나 딸 아이와 얽히고 싶어하지 않아 했어요 브래넌은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양육비 소송 같은 것은 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부전자전 이라더니 이걸 두고 하는 말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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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샌머떼이오 법원이 잡스가 친부임을 증명 하고 그에게 양육비 책임을 부과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잡스는 어린애를 않은 나를 법정으로 불러내서 내가 문란한 여자이고 따라서 얼마든지 아기 아버지가 다른 남자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 했어요 리사가 태어나고 일년 후 잡스는 친자확인 검사를 받는데 동의했다 dna 검사 결과 잡스는 친부일 가능성 94.4 1 퍼센트라고 쓰여 있었다 캘리포니아 법원은 잡스에게 매달 양육비 385 달러를 지급하고 친부임을 인정 하는 서류에 서명을 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법원에서 그동안 브래넌에게 지급한 보조금 5850 달러를 상환할 것도 명령했다 잡스는 자녀 방문권을 부여 받았지만 오랫동안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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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나를 창녀나 걸레같은 여자로 몰아갔어요 책임을지고 싶지 않으니까 나를 창녀 이미지로 만든 거예요
세월이 흐른 후 잡스는 그때 그 행동을 후회했다. 그의 인생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한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는 제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그 때 보다는 현명하게 행동 할 겁니다
리사 문제가 일단락 되고 난 후 잡스의 삶에 약간의 변화가 찾아왔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더 성숙해 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마약을 끊었고 야채만 먹는 식습관도 바꿨다 선불교 센터에서 보내는 시간도 크게 줄였다 전보다 좀 더 단정하고 세련된 헤어 스타일로 바꿨고 샌프란시스코의 고급 남성복 점에서 양복과 셔츠를 구입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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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매트나 회사의 직원이며 폴리네시아인과 폴란드인의 피가 섞인 바바라 야진스키 하는 아름다운 여성과 사귀기 시작했다 잡스는 야진 스키 콧키와 함께 스탠포드 대학교 근처 펠트 호수에서 알몸으로 수영하는 것을 즐겼다 건방지고 반항적인 태도는 여전 했다 그는 식당에서 여종업원을 무시 했고 주문한 음식이 쓰레기 같다며 되돌려 보내는 일도 잦았다 집안에는 가구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심지어 침대나 의자 소파도 없었다 그의 침실을 장식한 물건은 바닥에 매트리스 아인슈타인과 마하라즈 지의 액자 사진 그리고 애플2가 전부였다
8, 제록스와 리사 -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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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애플이 parc의 기술을 가져다 쓰는 것은 it 업계 역사상 가장 의미 심장 한 도둑질로 간주되고 있다 잡스는 때때로 이것을 자랑스럽게 인정했다 요약하면 역사에 등장하는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접목해 활용 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지요 언젠가 잡스는 말했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 한 적이 없습니다 잡스는 제록스 경영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컴퓨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어요 최고의 기술을 손에 쥐고도 성공을 못했지요 제록스가 컴퓨터 업계 전체를 장악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구상과 창조 사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마련이다 혁신의 역사에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는 전체 그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것은 실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잡스의 애플 팀원들은 parc에서 목격한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현저하게 개선 했다 그리고 제록스가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것을 실제 제품에 구현 했다 parc 마우스는 모니터화면 상의 창을 끌어서 이동시킬 수 없었다 애플 엔지니어들은 창이나 파일을 끌어서 이동시킬뿐 만 아니라 그것을 폴더 안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개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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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록스 경영진이 parc 연구원들이 개발한 성과를 간과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제록스는 그것을 상업화 하려고 시도 했다 훌륭한 실행이 훌륭한 아이디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데 전형적인 사례 다 1981년 그러니까 애플의 리사나 매킨토시가 나오기 전에 제록스는 제록스 스타 라는 컴퓨터를 출시했다 이 컴퓨터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마우스 비트맵 디스플레이 창 기반의 방식 데스크톱 메타포 등을 통합한 제품 이었다 그러나 이 제품은 투박하고 느렸으며 가격이 비쌌다. 소매가 1만 6 천 불로 주로 네트워크 환경이 갖춰진 사무실을 타깃시장으로 삼았다 스타는 시장에서 실패 했다 판매량이 겨우 3 만대에 불과했다 잡스는 제록스 스타의 하드웨어 설계자 밥 벨빌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당신은 지금까지 인생을 낭비한거나 마찬가지예요 우리 회사에서 일해 보지 않겠습니까? 벨빌은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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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 겹쳐 보이는 화면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영역 이란 것과 관련된 복잡한 프로그램 코딩이 필요 했다 엣킨슨은 이것을 성공시키기 위해 전력투구 했다 parc를 방문 했을 때 분명히 이 기능을 목격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Parc 연구원들은 이러한 창 겹침의 구현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그들은 엣킨슨이 하는 걸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르고 덤비는 도전이 지닌 힘을 깨달았어요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조차 안 했기 때문에 결국 해 낼 수 있었던 거지요
=> 놀랍다 parc 의 시현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거기서 보았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넨 애플의 엔지니어들은 과연 천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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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자기 딸 이름을 붙인 컴퓨터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 잡스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마쿨라한테 버림 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무척 화가났습니다 마쿨라와 스콧은 내가 리사 프로젝트를 이끌 책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너무 분했습니다
9. 기업공개, 부와 명성을 모두 얻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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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기업 공개는 1956년 포도 자동차 공모 이래 가장 많은 투자자들이 몰렸다 1980년 12월 말 애플의 기업 가치는 무려 17억 9000만 달러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백만장자를 300명의 탄생 시켰다 대니얼 코키는 그 300명에 포함되지 못했다 기업공개 무렵에 그는 애플의 시급제 직원으로 계속 근무하고 있었다 저는 스티브를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제가 그를 생각한만큼 그도 절 생각해 줄 거라고 믿었지요 그래서 조르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콧키에게 스톡옵션이 돌아가지 않은 공식적인 이유는 그가 연봉제 직원이 아니라 시급제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창업멤버라는 점을 감안해 발기인주를 충분히 받을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잡스는 사업 초창기의 시절을 함께 했다는 감상적인 이유로 지분을 주지는 않았다
스티브는 의리가 없어요 앤디 허츠필드는 말한다 의리라는 단어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가까운 사람에게도 차갑게 등을 돌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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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건 내가 스톡옵션을 받을 자격이 없다거나 뭐 이런저런 설명을 전혀 안해 준다는 사실이었어요 콧키는 말한다 친구라면 그 정도 설명은 해주는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스톡옵션에 대해 물어 보면 스티브는 제 상사한테 가서 알아보라고 했어요 기업공개 이후 6개월쯤 지났을때 콧키는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매듭을 지어려고 용기를내어 잡스를 찾아갔다 하지만 너무나 차가운 잡스의 태도에 말문이 막 했다고 했다 기가 막혀서 눈물이 나오더군요 제대로 이야기로 나눌 수 없었어요 이제 우리의 우정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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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즈는 잡스와 정반대였다 주식 공개를 하기 전에 그는 자신이 가진 이천 주를 중간급 직원 40명에게 아주 낮은 가격에 팔기로 했다 그들 대부분은 나중에 집을 장만할 정도로 많은 돈을 손에 쥐었다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에게 자기 지분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워즈는 원래 사람들이 좋아 했지만 그 후에 더욱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너무 순진하고 어린애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잡스도 물론 그런 사람이었다 빈민의 사진이 실린 유나이티드 보잉 포스트가 애플 사내 게시판에 붙었을때 누군가가 그 포스터 밑에 이렇게 낙서를 해 놓았다 1990년 쯤 워즈의 모습
잡스는 상당히 약삭빠른 편이었다 그는 크리스앤 브레넌의 부양과 관련해 그녀와 딸에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기업공개 이전에 정하고 서명까지 받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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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의 잡스는 무료 2억 5천 6백만 달러의 자산을 가진 거부가 되었다 부에 대한 잡수의 태도는 상당히 이중적이었다 그는 반 물질주의를 지향하는 히피였지만 설계 한 기계를 무료로 나눠 주고 싶어 하는 친구의 고안물들을 상업적으로 활용했다 또 선 불교 신봉자로서 인도 순례 여행도 다녀왔지만 그 후에는 사업체를 설립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모든 태도와 가치관들이 서로 충돌하기 보다는 한데로 얽혀서 잡스란 인물을 만들어 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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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중산층 가정에서 살았기 때문에 굶을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리고 아타리에서 일할 때도 스스로 괜찮은 엔지니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으리라 믿었습니다 대학시절과 인도여행 때는 일부러 풍 족 함을 멀리 하고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도 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 했구요 가난한 젊은이였을 때는 그 나름대로 멋진 삶을 살았습니다 돈에 대해 걱정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엄청난 부자가 된 이후에도 역시 저는 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애플의 많은 사람들은 웬만큼 돈을 만지기 시작하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몰고 집도 여러 채 장 만 하 더군요 그들의 아내는 성형수술을 자꾸 해서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갔습니다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정신 나간 짓이에요 나는 돈이 내 인생을 망치게 만드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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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베푼 대상은 부모님인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였다 잡스는 부모에게 약 75만 달러 어치 주식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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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명예의 주인공이 되었음에도 잡스는 여전히 스스로를 반문화 히피라고 여겼다 여러분 중에 섹스 경험이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되지요 엘에스디를 해 본 학생은요 그는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에게 해 아쉬운 점을 말하곤 했다 잡스는 그들이 자기 세대 보다 더 물질 주의적이고 경력이나 취업에만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다 요즘 학생들은 이상을 추구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경영 수업만 열심히 받지 이 시대에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철학적인 문제들에 시간을 쏟고 싶어 하지 않지요 하지만 1960년대를 살았던 이상주의 바람은 아직도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10. 맥의 탄생, 혁명을 원한다고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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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가을 어느날 잡스는 레스킨에게 비용 보다는 늘 그가 강조하는 혼을 빼놓을만큼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일에 집중 하라고 조언 했다 욕심나는 기능부터 선정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먼저 가격 목표, 일단의 핵심 기능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및 가까운 미래에 가능한 기술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하여 레스킨는 제품에 대한 열정만 앞서 현실을 왜곡하여 보는 잡스가 못마땅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불가피 했다 특히 잡스가 1980년 9월 리사 프로젝트에서 손을 땐 후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부을 다른 대상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그랬다. 그 즈음 잡스의 레이더 망에 포착된 것이 매킨토시 프로젝트였다 대중을 위한 저렴한 컴퓨터, 단순한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깔끔한 디자인을 갖춘 컴퓨터라는레스킨의 비전는 그의 마음에 꼭 들었다 그리고 일단 잡스가 매킨토시 프로젝트 관심을 쏱기 시작한 이상 레스킨이 애플에서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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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는 뛰어 내려라 하고 말하면 사람들이 곧바로 자기 앞에서 뛰어 내리길 원하는 사람이 었어요 그리고 신뢰도 안 갔고요 또 자신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마치 후광이 비치는 사람을 보듯 자신을 숭상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잡스도 역시 레스킨을 못마땅해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프는 지나치게 거만 했어요 인터페이스에 대해서 쥐뿔도 몰랐어요 그래서 저는 앳킨슨 처럼 제프 곁에 있던 인재들을 데려온 다음 제 방식대로 일을 추진해서 리사보다 저렴 하면서 멋진 제품을 탄생 시키기로 결심한 겁니다
잡스는 분규를 막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하기 보다는 팀에 불안과 정치와 싸움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잡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대단히 즐겁습니다 또 저는 거의 아이디어와 실용적인 관점과 에너지를 존경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원하는 신뢰 넘치고 서로를 배려하는 편안한 근무 환경을 만드는 데는 그가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팀원들은 잡스가 변 덕스럽 고 신경질적이긴 하지만 카리스마와 영향력이 있다고 인정했다 우주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도록 이끌 리더십 말이다 잡스는 팀원들에게 레스킨이 몽상가의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실행가이며 따라서 맥을 1년안에 완성 시키겠다고 장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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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에게 보낸 스티브잡스와 함께 또는 그 밑에서 일 한다는 것은 이란 제목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 끔찍한 관리자입니다 저는 늘 스티브를 좋아했지만 그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 정말 고 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늘 약속을 어깁이다 이건 직원들 모두가 아는 한 마디로 흔한 농담과 같은 사실입니다 그는 생각 없이 행동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립니다 마땅이 인정 받아야 할 사람에게 공로를 돌리지도 않고요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그는 곧바로 그것이 형편 없고 심지어는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펨훼하기 일쑤입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만일 어떤 직원이 근사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스티브는 마치 그게 자기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 인 것처럼 말하고 다닙니다 그런 남들의 말을 가로 막고 끼어 들기 일쑤이고 상대방 말은 듣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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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스킨을 방으로 불렀다 마쿨라도 그 자리에 함께 했다 잡스는 눈물 흘리기 시작했다 잡스와 레스킨은 한 가지 점에서 만은 의견이 일치했다 서로 상대방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스콧은 일전에 리사 프로젝트는 카우치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잡스의 손을 들어주는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맥 프로젝트는 멀리 떨어진 건물에서 진행되는 변두리 프로젝트 였고 잡스를 그곳 책임자로 배정하면 애플 본관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스킨은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그들은 저를 달래고 뭔가 집중할 대상을 던져 준 셈인데 뭐 괜찮았습니다 잡스는 회사 간다 예전에 그 허름한 차고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어요 소외된 팀원들을 데리고 내 맘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레스 물러난 것은 불공정한 일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내 킨토 ca 운명이라는 면에서는 잘 되는 일이 없다 그의 계획 대로 1000달러 미만의 맥을 만들었다면 애플의 시장점유율을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는 기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잡스가 하는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즉 PC 업계를 완전히 재편 하는 제품을 내 놓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우리는 나중에 보면 가지 않은 길이 어떻게 했을지 충분히 추정할 수도 있다 이후 레스킨은 캐논사에 고용되어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했다 바로 캐논 캣이었다 그 제품은 완전히 실패 했지요 엣킨슨은 말한다 시장은 캐논 캣에서 등을 돌려습니다 반면에 스티븐는 훨씬 야무진 맥을 탄생시켰습니다 단순한 소비자 전자기기가 아니라 컴퓨팅 플랫폼을 탄생시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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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츠펠드는 잡스가 걸핏하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고 자기 생각을 강요하려 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를 두려워 했다고 한다 하지만 허츠펠드는 오히려 잡스 때문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잡스가 허츠펠드를 찾아가 대뜸 물었다 프로그래밍 좀 하나요? 맥팀에 진짜 실력 있는 친구들이 필요한데 당신 실력이 쓸만한지 모르겠군요. 물론이죠 라면서 굉장히 쓸 만 합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맥 팀이에요 빨리 따라오세요 매킨토시 보다 중요한게 어디 있어요 그는 작업 중에 있는 애플 2 도스 프로그램을 웬만큼 마무리 해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것 아니냐고 상황을 설명했다 시간 낭비 일뿐이에요 애플2 따위가 뭐가 중요하다는 거요. 애플2는 내년에 사장될 모델이란 말이오. 애플의 미래는 바로 매킨토시에 있어요 그러니 당장 맥 팀으로 갑시다 그러면서 허츠펠드가 작업 하고 있던 애플2 전원 코드를 홱 잡아당겨 뽑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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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가 사람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기준은 제품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 있는지 여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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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는 세상을 바꾸는 놀라운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열정과 집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제 마음을 돌려 놓기에 충분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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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맥 프로젝트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레스킨이 좋아하는 사과 이름을 딴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바꾸려고 했다 그는 컴퓨터를 정신을 위한 자전거라고 표현 해 온 터였다 인간이 자전거를 발명한 덕분에 독수리 보다 더 빠르면 서도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듯이 컴퓨터는 인간 정신의 능력 및 효율성을 한층 높여 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래서 어느 날 잡스는 지금부터 매킨토시라는 이름 대신 자전거라는 뜻의 바이시클을 써야 한다고 선언 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름은 안된다고 했지요 한달도 안되어 바이시클 아이디어는 패기 되었다
=> 자전거가 좋긴 좋구나 잡스도 그걸 알았다 근데 컴퓨터 이름으로 바이시클은 좀 거시기하네
11, 현실 왜곡장, 자신만의 규칙을 고집하는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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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도 채 남지 않은 기간이었다. 말도 안돼요 허츠펠드가 말했다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군요 트리븐은 그에게 잡스가 반대 의견을 절대 수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상황을 가장 잘 묘사 하려면 스타트랙에 나오는 용어를 빌려 야 합니다 스티브는 현실 왜곡장을 갖고 있어요 허츠펠드가 어리둥절해 하자 트리블이 좀 더 자세히 설명 했다 그 사람이 나타나면 현실이 더욱 유연해진다는 얘기죠 그는 사실상 어떤 것이든 상대방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요 그가 자리를 뜨면 현실 왜곡장도 서서히 걷힙니다 하지만 결국 그 때문에 현실적인 일정을 잡기가 어려워지는 거지요
스티브는 현실왜곡장에 빠지는 건 위험 했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그가 현실을 바꿀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었지요 거의 현실왜곡장은 카리스마 넘치는 수사와 굴하지 않는 의지 그리고 어떤 사실이든 당면 목표에 부합하도록 변형 하려는 열성이 뒤섞인 결과물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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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대단한 일을 성취하리라 기대함으로써 실제로 그렇게 해내도록 만들수 있지요 첫번째 맥 팀을 통해 A+ 수준의 직원들은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하고 B 수준의 성과를 용인 하길 싫어 한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맥 팀의 팀원 누구에게든 물어보세요 그들이 치른 고통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 할 겁니다 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얘기 한다 데비 콜먼은 회상한다 그는 회의 도중에 이렇게 소리지르곤 했죠. 이 머저리 도대체 제대로 하는게 없어 거의 매 시간 발생하는 일이 었어요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와 함께 일하는 행운은 아무한테나 생기는게 아니거든요
=> 열정을 쏟아 주는 능력,그가 아무리 다구치고 욕을 하고 난리를 쳐도 그러는 능력이 있으면 직원들은 따른다 오히려 감사 히 여긴다
12, 디자인, 진정한 예술가는 단순화에 목숨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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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단순한 스타일 우리는 실제로 뉴욕 현대 미술관에 전시될 만한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운영방식, 제품디자인 홍보 등 모든 것이 한가지로 귀결 됩니다. 단순하게 하자 정말로 단순하게" 애플 슬로건 첫 브로슈어에 실린 그대로 계속 유지 되었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잡스는 단순한 디자인이이라는 핵심요소가 제품을 직관적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믿었다 사실 디자인의 단순함과 사용의 편리함과 짝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디자인이 너무 매끈하고 단순하면 사용자가 겁을 먹거나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법이다 우리 디자인의 핵심은 사용자들이 제품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책상 위 와 같은 환경을 고려해 컴퓨터를 설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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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걸 50번이나 수정하라고 시켰어요 조앤 호프먼과 결혼한 맥 팀의 일원 알랭 로스만의 회상이다 소비자가 열자마자 쓰레기통에 버 릴 박스나 패키지의 외양에 집착에 가까운 정성을 기울였다니까요
진정한 예술가들은 작품에 사인을 남기지 그리고는 제도 용지 한 장과 펜을 꺼내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쓰게 했다. 그들의 서명은 모든 매킨토시 내부에 새겨질 것이다 45명의 차례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종이의 정중앙에 여백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이름을 소문자로 근사하게 휘갈겼다 그리고 나서 샴페인 건배를 제안했다 앳킨슨은 말한다 바로 그런 순간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작품을 예술로 보도록 한 겁니다
13, 맥 만들기,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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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키는 회상한다 친구 사이 라면 친구가 자신이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인할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지요 내친구가 자신의 딸을 부인하는 못난 놈이 되게 놓아두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그는 몹시 분노 했고 사생활이 침해 당했다고 느꼈죠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제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잡스를 진정 참담하게 한 것은 그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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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놓으면 맥은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컴퓨터가 될 것입니다 그는 맥과 리사가 호환이 불가능 할 것이라는 점도 인정했다 마치 리사를 죽음의 키스와 함께 출시하는 것과 같았다 리사는 실제로 서서히 죽어 갔다 2년도 채 안되어 생산이 중단 되었다 가격이 너무 비쌌어요 소비자 제품 전문 회사에서 대기업 용 제품을 판매하려고 했으니 잘될 리가 있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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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게릴라들이었고 사람들이 그걸 알기를 바랐어요. 맥팀의 베트랑들은 잡스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펴는 게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대로 알고 있는 얘기만 하면 잡스는 직원들이 이의를 제기 하는 것을 허용했고 미소를 지으며 존중해 주기까지 했다 그가 제시한 것을 조용히 무시해도 좋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날 경우 잡스는 그들이 반항아적 기질과 권위를 무시하는 의지를 높이 샀다. 결국 자기 자신도 역시 그런 부류였으니 말이다.
14, 스클리를 영입하다, 펩시 챌린지
257-258
우리가 지구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잠깐입니다 정말로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저도 물론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젊음을 아직 잃지 않았을 때 많은 걸 이뤄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261
하지만 결국 맥 가격을 둘러싼 갈등에서는 스컬리가 승리 했다 25년이나 지난 후에도 잡스는 그때를 떠올리며 속이 부글거리는지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 비싼 가격 때문에 매킨토시 판매량이 지지부진해지고 결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을 지배하게 된 겁니다 이 일로 잡스는 자신이 제품과 회사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호랑이에게 구석으로 몰랐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15, 매킨토시 출시, 우주에 흔적을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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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천 6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눈앞에 과거에는 한번도 보지못한 종류의 파격적인 광고가 펼쳐졌다 광고 말미에 스크린 속의 빅 브라더가 사라지는 모습을 군중이 공포에 찬 얼굴로 바라보는 동안 이런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 나왔다 1월 24일 애플 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우리의 1984 년이 오웰의 1984 년과 다른지 알게 될 것입니다
278-280
1984년 현재 ibm은 모든 것을 독차지 하려는 듯 보입니다 애플은 이런 ibm을 맞아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판매상 들은 처음에 ibm을 두 팔 벌려 환영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ibm이 미래를 지배하고 통제 할까봐 두려움을 느끼고 애플로 돌아 서고 있습니다 IBM은 모든 걸 독차지 하려고 합니다 또 업계를 장악 하는데 마지막 걸림돌인 애플을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과연 빅 블루가 컴퓨터 업계 전체를 장악하게 될까요? 현대의 정보시대를 조지오웰의 예견이 옳았던 걸까요? 질문에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강당이 암흑으로 변하며 무대 스크린에 1984 광고가 상영되었다. 광고가 끝나자 강당이 떠나 갈듯한 환호와 박수 갈채 가 쏟아졌다 극적인 연출의 귀재인 잡스는 어두운 무대 중앙으로 걸어 갔다 이제 여러분에게 매킨토시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3 점 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셔츠 주머니에서 꺼냈다.'혼을 빼어놓을 만큼 뛰어난'이란 글이 마치 사람이 손으로 직접 쓰는 것처럼 천천히 나타났다 그토록 멋진 그래픽 디스플레이를 접해본 적이 없는 청중은 숨을 죽이고 화면에 집중했다 흑 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래픽 패키지, 다양한 폰트, 그림, 체스게임, 스프레드시트 등이 등장했다. 사상 최초로 매킨토시의 목소리를 들어 보기로 하시죠. 그러자 매력적인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는 매킨토시입니다. 가방에서 나오니 기분이 좋군요. 손으로 들 수 없는 컴퓨터는 절대 믿지마라. 저에게 아버지와 같은 이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스티브 잡스 입니다.
281
매킨토시를 세상에 선보인 그날 파퓰러사이언스 기자가 어떤 방식으로 시장 조사를 했느냐고 잡스에게 물었다 잡스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시장조사 같은 걸 하고 전화를 발명했습니까?
=> 매킨토시를 벨의 전화 발명에 비유한 잡스의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이다
16,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 2 궤도의 교차
286-287
그들은 성격과 기질의 차이로 인해 반대편 극단으로 향했고 이것은 디지털 시대의 근본적 분할로 이어졌다. 완벽주의자 잡스는 모든 것을 통제 하기로 했고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적 성향에 탐닉했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하나의 매끄러운 패키지로 세밀하게 통합하는 디지털 전략의 모범이 되었다 게이츠는 비즈니스와 기술에 초점을 맞춘 영리하고 계산적이며 실용적인 분석가였다. 그는 마이크로 소프트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를 주저없이 다양한 제조사들에 제공했다. 30년후 게이츠는 인색하게나마 잡스의 훌륭한 점을 인정했다. 그는 기술에 대해 별로 아는게 없었지만 무엇이 통하는지에 대해서 만큼만 놀라운 직감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잡스는 그렇지 않았다 게이츠는 기본적으로 상상력이 없고.
뭔가를 창안한 적도 없지요. 그래서 이제 기술보다는 자선 활동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는 뻔뻔스럽게도 그저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기만 했지요.
294-295
저는 마치 어전에 불려가는 것처럼 쿠퍼티노로 갔어요 그리고 그에게 말했죠 윈도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에 사운을 건 겁니다
글쎄요 스티브 이 문제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들에겐 제록스라는 부유한 이웃이 있었는데 내가 텔레비젼 훔치려고 그 집에 들어갔다가 이미 당신이 훔쳐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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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스컬리가 소송을 걸겠다고 위협 했을 때 마이크로 스포트는 워드와 엑셀 그리고 여타 응용프로그램 들의 매킨토시 버전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위협하며 대항했다 그렇게 되면 애플은 끝장 날 수도 있 굴곡에 가까운 그래 확인 하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297
하지만 잡스의 심정도 이해할 만 했다 사실 당시에 애플은 창조력과 상상력이 더 풍부했으며 실현해 내는 방식도 더 품격 있었고 디자인 역시 더 뛰어났다 하지만 남의 것을 대충 모방하여 일련의 제품을 생산했다 해도 결국 운영체제 전쟁의 승자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이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일종의 심미적 결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가장 품질이 좋고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10년 후 잡스는 다소 교만하고 도가 지나치긴 하지만 약간의 진실이 포함된 불평을 내뱉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일한 문제는 미적 감각이 없다는 겁니다. 감각이 전혀 없어요 소소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중요한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지도 못하고 제품에 문화적인 요소를 별로 가미하지도 못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슬프네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 때문이 아닙니다 어쨌든 노력으로 얻은 결과이니까요 제가 문제 삼는 것은 그저 그들이 삼류 제품만을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17, 이카로스, 올라가는 것은....
303
스컬리를 고용한 이유가 잡스를 통제하기 위해서 였건만, 통제권을 잡은 쪽은 잡스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스컬리는 잡스에게 인정 받기를 갈망한 나머지 그에게 맞서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
304
그에게 맞서는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 되었어요. 그것도 대개는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을 놓고 긴장이 고조되는 통에 더는 못 참 겠더라구요
308
그를 상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보다 더 심하게 진상을 부리는 겁니다 그렇지만 가세는 잡스가 마음이 동할 때는 언제든 매력을 발산하는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309
매킨토시의 출시와 함께 달궈진 흥분의 열기가 가라앉은 후 그러니까 1984년 후반기부터 맥의 판매량은 극적으로 감소했다. 문제는 근본적인 데에 있었다. 맥은 화려하기는 하지만 속도가 심각할 정도로 느렸고 동력도 부족해 어떤 화려한 선전도 그런 약점을 감출수 없었다.
310
맥XL은 진정한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크게 화가 났어요 호프먼은 말한다 단순히 재고로 남은 리사들을 처분하려는 의도였어요. 잘 팔리 긴 했지만 그 끔찍한 속임수를 중단해야 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313
힌두교 경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첫 30년 동안은 당신이 버릇을 형성하고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은 버릇이 당신을 형성한다 참석하여 자리를 빛 내 주십시오
315
예술가로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고 싶다면 너무 자주 뒤돌아 보면 안됩니다 그동안 무엇을 해 왔던 어떤 사람이었든 다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잡스는 마치 자신의 인생이 곧 큰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 하는 것 같았다 그 인생을 실과 애플의 실이 정말로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기회가 될 것인가? 이제는 과거 모습의 일부를 버릴 때가 된 것일까? 정녕 안녕 나 이제 가야해와 함께 나중에 달라진 생각으로 다시 나타나야 할 때가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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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왜곡장을 무력화 하고 퇴사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알아냈어. 그냥 스티브의 사무실에 들어가 바지를 내리고 책상 위에 소변을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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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2 팀은 회사 사람들에게 하찮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애플2는 그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팔렸으며, 그 후로도 수년간 우리 회사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불만을 품은 워즈는 만능리모컨 기기를 만드는 새로운 회사를 출범시키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감상하는 버튼 몇 개만 설정하면 텔레비전과 스테레오 등 전자기기를 한꺼번에 조종할 수 있는 리모컨이었다. 그는 애플 2 부분 책임자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끝냈다. 보고 체계를 무시하고 그 사실을 직접 자신이 마쿨라나 잡스에게 알릴 만큼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느끼지 않았다. 그래요 저는 애플이 애플 2 부문을 소홀히 대한다고 느꼈어요. 애플은 지난 5년 동안 대단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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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디자인 방식이 다른 제품에 제공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워즈는 자신만의 공급자를 찾아 내야만 해요 애플의 공급자를 사용해선 안됩니다 그를 특별하게 봐줄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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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을 때조차도 곰 인형처럼 온순 했던 워즈는 다른 디자인 회사를 찾고 나서도 계속 애플의 대변인 역할을 맡기로 했다
321
잡스의 경우 스컬리가 제품을 최우선시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그는 제품에 대한 열정이 없었고 그것은 잡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저주스런 죄였다. 반면 스컬리는 사소한 기술적 변경 사항과 디자인의 디테일에 대한 잡스의 열정이 강박적이고 비 생산적이라 생각했다
18, 넥스트,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347-350 해적들 배를 떠나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가상 실험을 하는 방식을 택하지 그러세요? 버그는 그런 성능을 가진 컴퓨터는 너무 비싸서 대학 연구소의 제정으로는 마련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그는 뭔가 기회를 발견한 듯 큰 호기심을 보이더군요 잡스는 이미 얼마 전부터 대학교수들을 만나고 다니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워크스테이션이 어떤 것인지 알아 보고 있는 터였다 1983년 이래로이 영역에 관심이 있었다
고승연 개인용 워크스테이션을 보유하는 것이 대학 연구소 과학자들이 꿈이었다 그럼 컴퓨터인 빅맥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유닉스 운영체제를 탑재 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매킨토시 인터페이스를 가출 게이였다
빅맥 프로젝트가 취소되자 빅맥 칩세트를 개발해 온 리치 페이지 가 잡스에게 전화를 걸어 괴로운 마음을 토로 했다 이미 잡스는 볼만을 품은 애플 직원들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해 자신을 구해달라고 잡스를 종용하고 있었다
잡스가 애플 이사 회의 자리에서 밝힌 것은 새로운 회사 설립에 대한 계획이 없다 제 길을 찾아야 할 때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겨우 서른이니까요 고급 교육 시장을 위한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설명했다 설립할 회사는 애플과 경쟁 하지 않을 것이며 비 핵심 직원 몇명 만 데리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마쿨라는 잡스가 애플 직원을 데리고 간다는 말에 몹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꼭 해플 직원을 데려 가야겠소? 걱정 마십시오 애플에 없어도 아 쉽지 않을 하급 직원들이니까요 그들도 이미 떠날 마음을 굳혔습니다
스티브 이건 하고 하급직원들이 아니잖소? 서한을 읽은 스쿨라가 말했다 어쨌든 이직원들은 애플을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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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년 9월 17일 친애하는 마쿨라에게
우리는 많은 것을 함께 이룩했습니다 그러니 서로 우호적이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작별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355
잡스 사임이 공식 발표 되자 애플의 주가는 거의 7% 올라 상한가를 쳤다 동부의 주주들은 캘리포니아 괴짜들이 기업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늘 우려를 표했다 기술주 소식지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워즈니악과 잡스 모두가 애플에서 손을 떼었으니 주주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타리 창업자이자 10여 년 전 잡스의 조언자였던 놀런 부시넬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잡스를 대단히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애플은 기발한 영감을 어디에서 얻을 것인가?
스컬리 와 애플 이사회는 잡스에게 소송을 제기 하기로 했다 고소장은 다음과 같다
잡스는 애플에 대해 신탁 의무, 즉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지냈으면도 애플 이사회 의장 및 고위 간부로 재직하는 동안 애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척 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과를 저질렀다
1 애플과 경쟁할 사업체의 설립을 비밀리에 구상함
2새로운 경쟁 회사를 설립하여 차세대 제품군을 설계 및 개발 마케팅 하려는 애플의 계획을 부당하게 이용하려는 음모를 비밀리에 꾸밈
3 애플의 핵심인재를 비밀리애 꼬셔 냄
356
그는 애플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어요 잡스 새로운 회사에 잠깐 몸담았던 조애나 호프먼은 회상 한다. 스티브가 애플이 확고하게 선점하고 있던 교육 시장을 목표로 삼은 건 그가 옹졸하게도 앙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복수를 원했던 거지요. 애플 직원 5명을 꾀어냈다는 주장을 단호하게 일축하며 잡스가 말했다. “그 직원들이 저한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가구가 없는 거실에 모여 앉아 있는 기자들에게 잡스가 말했다 그들은 애플에서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였어요. 애플은 직원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경향이 있거든요. 잡스는 <뉴스위크>를 통해 자신의 입장과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내가 잘하고 또 좋아하는 것은 재능 있는 인재들을 찾아내 그들과 함께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든 남자가 첫사랑 여인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언제나 애플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공개로 당신을 도둑으로 지급하면 당신은 거기에 대응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직원4300 명을 거느린 25억 달러 규모의 기업이 청바지나 걸치고 다니는 6명 과의 경쟁을 두려워하다니 말도 안 된다.
잡스의 언론조작에 맞대응 하기 위해 스컬리는 워즈니악에게 연락해서 의견을 표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워즈니악은 그 주에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브는 얼마든지 무례하고 유해한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정직함을 신뢰할 수 없다.
357 독립 그리고 새 출발
잡스가 만난 최고의 행운은 우리가 그에게 애플에서 나가라고 한 일입니다 훗날 아서 록은 이렇게 말했다 엄하고 혹독한 사랑이 그를 더욱 현명하고 성숙하게 만들었다는데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357-358
잡스가 만든 새 회사는 일련의 화려한 제품을 선보이지만 시장에서는 실패를 맛본다. 이것은 경험을 통하여 배우는 값진 시간이었다. 인생3막에서 빛나는 성공의 주인공이 되도록 그를 단련한 것은 애플이라는 인생 1막에서 추방당한 사건이 아니라 바로 2막에서 경험한 화려한 실패였다.
358-359
“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고 당신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입니다. 내 디자인을 쓰든 안 쓰든, 그건 당신 마음이오. 하지만 난 여러 시안을 만들진 않습니다. 그리고 내 디자인을 쓰든 안 쓰든 비용은 지불해야 합니다.
잡스는 그래서 대단히 대담한 제안을 내 놓았다. 군소리 않고 무조건 십만 달러을 지불할 테니 죽이는 로고를 하나만 디자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둘의 관계는 아주 깔끔하고 명료했지요. 그는 예술가로서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순수성은 잡스의 최대의 찬사였다.
360
‘NeXT’라는 이름 말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1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이면서까지 집착에 가까울 만큼 로고를 중시하는 잡스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잡스에게 넥스트라는 이름과 로고는 세계적 수준의 감각과 정체성을 가진 사업체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370-371
로스 페로는 일레트로닉 데이터 시스템즈를 창업하여 25억달러를 받고 GM에 매각한 인물이다. 페로는 그의 일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가 빌 게이츠가 사업 초창기 자신을 찾아 왔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를 인수하지 않은 것이다. 페로가 잡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얼마전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업 공개를 통하여 10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은 상태였다. 페로는 엄청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기업을 눈앞에서 놓치는 실수를 다시는 하고싶지 않았다. 페로에게 금액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잡스와의 면담을 마친 후 페로는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기수를 선택합니다. 기수는 말을 골라서 잘 달려 주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 회사에 베팅하겠소. 그러니 잘해 보시오.”
=> 자금난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잡스에게 구원자가 나타났다.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으면 하늘이 돕는 것일까?
373-375 빌 게이츠의 독설
“메킨토시는 정말 독창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가 새로 만든 컴퓨터에서는 이렇다할 특이함을 느끼지 못하겠더군요.”-게이츠
잡스는 게이츠를 30분이나 로비에 세워두었다.“우린 맥 시절에 함께 협력했지요. 그때 어땠나요? 꽤 짭짤했잖아요? 이제 또 함께 할 기회가 생겼네요. 이번에도 멋질 겁니다.”
“넥스트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고요? 나라면 그 컴퓨터에 오줌을 갈기겠소.”
당신네 제품에 대한 시장이 웬만큼 생기면 그때 재고해 보겠소. 잡스는 분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사람들 다 보는 데서 서로 고함을 지르고 아무튼 대단한 한 판이었지요.
두 사람의 불화에는 사업철학과 관련한 근본적인 차이도 있었다.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통합된 엔드투엔드 방식을 선호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과 호환이 되지 않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반면 게이츠는 여러 회사들이 서로 호환이 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었으며 또 그런 관점 덕분에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제품은 비호환성이란 흥미로운 특징을 지닙니다. 그의 컴퓨터에서는 기존 소프트웨어를 구동할 수가 없어요. 컴퓨터 자체는 정말 훌륭합니다. 제가 호환 불가능한 컴을 만들려고 했다면 잡스만큼 훌륭한 만들어 내진 못했을 겁니다. 게이츠는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윈도우 표준 경쟁에서 실패했듯이 잡스의 엔드투엔드 통제 접근법 역시 결국엔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하드웨어 시장과 소프트웨어 시장은 별개라고 말했다.
=> 잡스가 왜 그의 작품들의 비호환성을 고집했을까? 그의 자만심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자신이 특별나고 최고라는 생각. 그래서 게이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최고의 예술적 경지의 작품이란 점도 그의 작품을 비호환으로 만드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인간관계 기술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잡스는 IBM이든 마이크로소프트든 고자세로 상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384
1989년 중반 드디어 네스트 컴퓨터가 정식으로 판매되기 시작했을 때 넥스트의 공장은 한 달에 1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춰 둔 상태였다. 하지만 실제 판매량은 한 달에 약 400대 수준이었다. 공장에 있는 근사한 로봇과 기계들이 대부분 놀았다. 그리고 넥스트는 계속해서 큰 적자를 내며 재정난에 시달렸다.
19, 픽사 – 기술과 예술의 만남
387 할리우드 문화와 과학기술이 공존하는 곳 픽사
애플시절 잡스가 창의성과 기술의 접목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케이는 자신의 친구 애드 캣멀을 만나러 가자고 제안했다. 에드는 조지 루카스 영화 스튜디오의 컴퓨터 부문 운영자였다.
그들이 하는 일을 보고 저는 완전히 반했어요. 그래서 스컬리에게 찾아가 애플을 위해 루카스의 컴퓨터 부문을 인수하자고 설득했지요. 하지만 애플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저를 쫓아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엇던 거죠.
388
잡스가 컴퓨터 부문의 상당 부분을 매수하고 회장직을 맡되 운영은 애드 캣멀과 스니스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루카스 필름 사람들을 봣을 때 그들이 예술과 기술을 결합하는 일에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앞서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게 제가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분야였고요. 잡스는 향후 면 년동안 컴퓨터가 100배 이상 더 강력해 질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애니메이션과 3D그래픽 본야가 굉장히 발전할 것이라고 믿었다. 루카스의 직원들은 엄청난 처리능력을 요하는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었지요. 저는 역사가 조만간 그들의 편에 서리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그는 픽사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에 대한 일련의 미래전망에 대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그의 현실왜곡장이 발현되면서 마치 부흥회 설교자가 최면을 걸 듯 했다.
389
잡스는 한동안 별다른 간섭없이 애드 캣멀과 스미스가 픽사를 운영하게 놔 두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이사회를 열고 잡스는 재무와 전략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 유별난 성격과 통제본능이 어디 가겠는가? 잡스는 곧 자신의 역할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390
픽사는 할리우드의 문화와 기술 분야의 문화를 모두 존중하는 곳이엇어요. 원래 수익은 하드웨어에서 발생하기로 되어 있엇다. 픽사 이미지 컴퓨터는 12만 5천달러에 판매되었다. 주요고객은 애니메이션 제작자자와 그래픽 디자이너였는데 곧 의료분야와 정보 분야에서도 특화된 시장이 발견되었다.
391
잡스는 픽사의 컴퓨터를 대중시장에 팔고 싶었다. 인간은 창의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영리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 도구의 발명자는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것이 제 관점입니다. 하지만 3만불짜리 픽사 컴은 일반인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고, 전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392
일반 소비자들은 사진처럼 생생한 이미지를 랜더링 할 수 있는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별로 원하지 않았다. 랜더맨은 인기를 끌지 못했다.
393
디즈니가 진행한 첫번 째 프로젝트는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을 자동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고, 결국 픽사가 그 계약을 따냈다. 픽사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CAPS)이라는 맞춤제작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개발했다.
393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애니메이션
원래 픽사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사업은 단지 부업에 불과 했다 짤막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팀의 주된 목적은 회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팀을 존 레시터가 운영 하고 있었다 그는 천사같은 얼굴과 태도 뒤에 잡스와 맞먹는 예술적 완벽주의를 감춰둔 인물이었다 9학년 때 그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역사를 다룬 애니메이션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그리고 그는 그때 평생 동안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발견했다
=> 존 레시터가 천직을 발견한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395-396
영화가 끝나자 룩소 주니어는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받았고 최우수 상을 받았다 우와! 잡스가 마지막에 소리쳤다. 이젠 알겠어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이제 알겠다고. 기술뿐 아니라 예술까지 담은 영화는 우리 작품이 유일했지요. 픽사는 매킨토시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결합을 중시했던 겁니다.
400
잡스는 돈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존이 하고 있는 일의 가능성을 믿었거든요. 그것은 예술이었어요. 존은 예술을 중시했고 나도 그랬어요. 그런 경우라면 언제든 지원 해야 마땅하지요. 장난감 1인 밴드 영화에 대한 레시터의 프리젠테이션이 끝났을 때 잡스는 딱 한마디 만 했다. 존 자네에게 부탁하는 건 한가지야.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줘.
401
자신을 믿어주는 잡스에게 감격한 레시터는 컴퓨터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은 픽사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디즈니로 이직하면 감독이 될 수 있겠지만 여기 남으면 역사를 새로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디즈니는 픽사와 영화 제작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레시터는 단편영화란 스토리텔링과 기술 활용 양면에서 진정으로 굉장한 물건이었지요. 픽사와 계약을 해서 디즈니를 위해 장난감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게 하면 된다고 판단 했어요
잡스는 그 때까지 자기 5천만달러를 집사에서 남원 상 했다 애플스 나올때 행궁 말했던 잘사니 절반이 넘는 돈이 없다 그럼 넥스트에서 여전히 손실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예지력 있는 직감이 그 자리를 차지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예술과 디지털기술이 결합하여 경우 1937년 월드 디즈니가 백설공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시점 이유로 애니메이션 영화계에 가장 의미있는 변혁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었다
402
자신이 더 지혜로웠다면 픽사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신경 쓰는 대신 애니메이션에 더 일찍 집중 했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수익을 안겨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픽사를 인수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삶이 저를 교묘하게 속여 그렇게 하게 만들었지요. 근데 그게 더 좋은 결과를 안겨 주었으니....
=> 그래서 삷은 오묘한 것 아니겠는가?
20, 보통 남자, 사랑이라는 두 글자
424 레지
무시는 일종의 학대이다 그녀는 잡스에게 큰 매력을 느꼈지만 동시에 배려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에게 당혹하기로 했다. 훗날 그녀는 그토록 자기중심적인 사람과 사랑을 한다는게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지 술회했다 벼려 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깊이 배려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라는 것이다.
426
레지는 이후에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대해 읽고는 그것에 대한 설명이 잡스와 완벽하게 일치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좀 더 친절하고 덜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건 마치 장님이 눈을 뜨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요. 그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이에요.
426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순수한 사람이었어요 뺨을 적시는 눈물을 훔칠 생각도 없이 그가 말했다 그녀는 어딘가 영적인 매력이 있었고 우리의 유대 감에도 영적인 요소가 있었지요.
427 인생의 반려 로렌 파월를 만나다
우선 똑똑 하면서 가식이 없어야 한다 잡스에게 맞설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해야 하지만 혼란을 극복 할 수 있을 정도로 평온해야 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독립심이 강해야 하지만, 잡스와 그의 가족을 위해 양보할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털털 하면서도 천사 같은 분위기가 감돌아야 한다. 또한 그를 다룰 수 있는 감각이 있으면서도 늘 그에게 얽매이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사람이어야 한다. 팔다리가 가늘고 금발이며 여유 있는 유머 감각을 가지고 유기농 채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티나 레지와 헤어지고난 후 1989년 10월 바로 그런 여인이 그의 인생에 나타났다. 그녀가 그의 강의실로 걸어 들어왔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해서 계획한 위에서 바라본 관점 강의시간 중 1회분을 스티브잡스가 진행했던 것이다. 파월은 경영 대학원 신입생으로 들어 왔다. 오른쪽을 보니까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어요. 그래서 강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잠깐 그녀와 얘기를 나누었지요.
428
그들은 정감어린 농담을 주고 받았다. 파월 자신이 추첨에 당첨되어 그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상으로 잡스가 저녁 식사를 사줘야 한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가 너무 사랑스러웠거든요.
교육 세일즈팀 보다는 그녀와 저녁을 먹는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녀의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오늘 저녁은 어떠냐고 물었지요. 그녀가 쾌히 승락했다. 아름다운 가을 저녁이 었고 그들은 팰러앨토의 채식 식당 세인트 마이클스 앨리로 갔다. 둘은 그곳에서 4 시간을 함께 있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 함께 한 셈이지요. 잡스의 말이다
=> 첫만남이다. 참으로 많은 여자들을 거쳐서 최후의 반려자를 만난 순간이다.
429
나중에 앤디 허츠펠트와 몇몇은 파월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잡스에게 접근한 것으로 추측했다. 로렌은 친절하지만 계산적인 면도 있거든요. 애초부터 잡스를 표적으로 삼았던 거 같아요. 그녀의 대학 룸메이트가 내게 말해줬어요. 로렌이 잡지 표지에 실린 스티브싀 사진을 보면서 그를 기어이 만나 볼 거라고 다짐 했다고 말이죠. 스티브가 그렇게 조종당한게 사실이라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겠죠. 하지만 파월은 훗날 그것은 무리한 억측이라고 주장했다.
내 인생에서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 난 딱 두명이에요. 바로 티나와 로렌입니다.
430
제가 얻은 교훈은 분명 했어요 언제든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돈에 대해서도 저는 그것이 자립하는데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하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골드만삭스에 취직해 채권 거래 전략가로 일했다. 크게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었어요. 하지만 그저 자본 행성에 기여하는 일일 뿐이죠. 그래서 그녀는 입사한지 3년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이탈리아 피렌체로 갔다. 거기서 8개월 동안 살다가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것이다.
431
잡스와 로렌은 식당에서 서로 다투고 따로 나갔고 로렌은 결국 스미스 아파트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9시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에 스미스가 문을 열 자 잡스가 서 있었다. 그는 직접 딴 야생화를 손에든 채 이슬비를 맞고서 있었다. 들어가서 로렌 좀 봐도 될까요 그럼 울었다 접수는 파월이 아직 자는 중이어서 그가 그냥 침실로 들어갔다. 잡스는 정오와 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캐서린 잠깐 와 볼래요. 그가 안에서 불러 셋이 침실에 모였다. 알다시피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여기 안 계시잖아요 당신이 로렌의가장 친한 친구니까 당신에게 허락을 구하는게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그가 말했다. 로렌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어요? 스미스는 침대에 올라가 잠시 생각했다. 너도 그러고 싶니? 그녀가 파월에게 물었다. 파월이 그렇다며 고개를 끄떡였다. 스미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저의 대답도 마찬가지에요. 그렇지만 그것으로 모든게 결정된 건 아니었다. 잡스는 무언가에 대해 한동안 광적인 강렬함으로 집중 하다가 갑자기 시선을 돌려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회사에서 그는 자기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그 밖에 다른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아무리 그의 관심을 끌어내려고 노력해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32
스티브는 그녀가 우주의 중심인 양 강렬하게 집중 하다가 돌연 냉정하게 거리를 두며 일에 집중 하는 행태를 반복해서 하곤 했어요. 그에게는 레이저 광선처럼 집중하는 능력이 있었어요. 그 관심이 누군가에게 향 하는 경우 그 사람은 그의 관심을 비추어 황홀하게 쬐게 되죠. 그러다 그것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고 나면 그 사람은 아무 소속감 남기 주는 거예요 노래 노선 매우 혼란 스러 질 겁니다 잡스는 잘 지내셔 방식과 성격 벌 파워 리 확실히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결국 기다림에 지친 로렌는 9월에 거의 집에서 나와 그랬어 그담날 잡스는 그녀를 찾아 와 다이아몬드 약혼 반지를 건넸고 그녀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12월 파워 접수는 바울을 데리고 들어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인 하와이의 코나 빌리지로 갔다 그곳이 파라다이스처럼 늦게 왔다 그럴 감동시키는 단순함과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해 12월 사월과 함께한 휴가는 특별히 더 즐거웠다 그들이 사랑한 충분히 무료 이건 이거 싶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런 좋은 보양식을 갖추어 다시 청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 결정을 재촉하는 또 다른 교수가 생겼다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파월이 임신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확히 언제 어디서 그렇게 됐는지 알지요. 잡스는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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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파월를 좋아했고 사랑했으며 존경했고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편안해 했다. 신비스럽지는 않아서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 인생의 현명한 동반 자가 되었다. 브래넌을 비롯해 잡스가 만난 여인들 대부분은 정도 이상으로 감정이 연약하고 불안정 했지만 파월한 그렇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운좋은 남자일 거예요. 로렌과 결혼 했으니 말예요. 똑똑해서 그와 지적으로 교류할 수 있고 또 그의 변덕과 격렬한 성격을 안정적으로 견딜 수도 있고요. 스티브는 신경과민이 없는 그녀를 티 나처럼 신비로스럽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줘. 로렌은 티나와 많이 닮았지만 성격은 완전이 달라요. 훨씬 더 강하고 안정된 그래서 결혼 생활이 잘 유지하는 겁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충실 했고 신실 했으면 결혼 생활에 으례 따르는 미묘한 감정적 다툼을 극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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