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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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크게 성공하기 전의 일이다. 무심히 TV를 보고 있는데 토크쇼에 싸이가 나와서 하는 말이 흥미로워 집중해서 본 적이 있다. 이미 중2때 자신이 외모로 승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싸이, 그는 그때부터 화술에 대한 책을 사모으며 여성에게 어필하는 화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 얼굴을 맞대면한 경우가 아니고 전화로라면 어떤 여자든지 5분 안에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즉석에서 여성 출연자를 상대로 싸이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이는 순서가 펼쳐졌다. 결과는 싸이의 승! 몇 번 대화가 오가지도 않았는데 상대역할을 한 여성이 “기분이 이상해요” 그러면서 마음이 동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 때 싸이의 노하우가 어땠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원칙에 의해 대화를 진행했으리라는 것은 유추해 볼 수 있다. 감정이입! 아마 싸이는 상대방 여성이 원하는 것을 발설하도록 유도하고, 자신이 그 욕구를 해소해줄 수 있음을 제시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이 장면이 떠오른 이유는 아들이 소개팅에 가서 까이고 온 탓이다.
워낙 조용하고 침착한 성품이라 혼자 하는 일은 어지간히 하지만 영 이성교제에 열심을 내지 않아 은근히 걱정이 되던 아들이 요즘 들어 소개팅에 관심을 보인다. 나름대로 분위기가 좋았는데 애프터에 실패한 날에는 그 후유증이 오래 갈까봐 마음이 쓰였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탄력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훨씬 적극적인 태도로 연달아 소개팅에 나간 것이다. 나는 원래 결혼지상주의자가 아닐뿐더러, 남자든 여자든 많이 놀아 본 뒤에 결혼을 하는 것이 좀 더 성숙한 결혼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던 터라 그런 아들의 자세를 두 손 들어 환영해 주었다. 그러면서 아직은 경험이 태부족인 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싸이의 저 장면까지 떠올랐던 것이다.
“니가 재미를 주면 여자는 동하게 되어 있어. 왜냐? 여자도 심심하거든. 그러니까 니가 여자를 리드할 수 있게 되면 그 때 여자가 나타날 꺼야. 그 때까지 너는 소개팅에 자꾸 나가서 계속 까여야 하는 거지.”
다행히도 아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퉁퉁거리고 골 부리기 일쑤였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만큼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 부터가 성숙의 징표인 듯해서 마음이 좋다. 아마 아들은 머지않아 데이트에 성공할 것이다. 별로 위해준 것도 없는데(나는 돌봄 위주의 엄마가 못 된다) 배려받는 데만 익숙한 대한민국형 아들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여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아는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무엇이든 가질 자격을 갖춰야만 갖게 된다는 진리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설령 내가 놓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건 철저하게 내 수준과 준비성의 발현인 것이다.
나는 오늘 하루 원하는 것을 향해 한 걸음 더 떼어 놓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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