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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1일 07시 44분 등록


개똥아 산아

 

오늘은 새로 산 노트북으로 편지를 쓴다. 아직 컴퓨터에 프로그램이 안 깔렸어. 문서 작업을 할 아무런 게 없네. 오로지 인터넷만 되어서 오늘은 인터넷 내 블로그에다가 글을 쓴다. 여기에는 음악도 들을 수 없고, 다른 건 아무것도 안된다. 오로지 글만 쓸 수 있을 뿐이다. 오늘도 아빠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나는 병원 투어를 할 거야. 대구 마리아에 자궁경을 전화로 예약할 거고, 제일병원에서 의무기록사본을 받고, 서울성모병원에서 내분비내과와 혈액내과 진료를 볼거야. 그러고서는 내일 가뿐한 마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떠날 거란다. 아빠와 둘이서 떠나는 여행이라 많이 설렌다.우리는 어제 이태원에서 저녁을 먹고 남산을 넘어 돌아왔어. 어제 저녁의 산책은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를 볼 작정이었지. 소월길의 그 풍경을 보고서 우리는 이 곳에다가 신혼집을 얻기로 했어. 처음 아빠의 집에 내가 인사 가던 날 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어. 그런데 우리가 너무 늦췄나봐. 이파리들이 다 떨어지고 없더라. 12월 1일에 상견례 날짜가 결정되었고, 인사는 11월 초순 쯤에 갔던 것 같구나. 걸어서 돌아오면서 집 이사갈 얘기를 했어. 계약은 2월 중순까지인데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돌린다고 하더라. 우리는 최적화시켜둔 이 집에서 나가야 할 것 같구나.

 

오늘은 남산 부부의 이야기,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해 줄까 한다. 아직 신혼집에 있을 때, 우리가 왜 남산 아래에 집을 얻게 되었는 지를 이야기하면 더 좋을 것 같구나. 이 집이 늘 그리울 것 같다. 방산시장에서 둘이 고른 꽃무늬 흰색 벽지, 베란다를 가리는 블라인드, 식물 배치 어느 것 하나 손길과 마음이 가지 않은 데가 없는데 말이다. 

 

우린 2012.1.26일에 만났어. 우리를 소개한 사람은 최**이야. 그는 우리 학교의 통합학급 선생님이고 나는 특수학급 선생이었지. 특수학급의 아이는 두 명의 담임을 가져. 우리 사이에는 한 명의 소년이 있단다. 거의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지. 최**하고 정##하고 나는 거의 동갑이었어. 학교에 오래 근무했지만 말을 트고 지내는 사이가 없었지. 그런데 우리는 말을 텄어. 근무하다가 솥뚜껑 오겹살집에서 셋이서 낮술을 먹었나 봐. "좋은 사람 있으면 얘 소개 좀 해줘" 정이 말했어. 최가 나더러 몇 가지를 물었어. 학교같은 거. 나는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했어. 지하철에 근무하는 사람이랬어. 그런데 마흔 넘어서 둘이서 소개팅하기가 쑥스럽더라고. 정과 최에게 같이 와달라고 부탁을 했어. 그래서 우리는 동인천 삼치골목에서 네 명이서 만났어. 학생의 배트 실수 때문에 나간 이빨을 치료하느라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 최가 같이 술을 마시고 막걸리와 삼치 값을 냈어. 정은 집에서 기다리는 두 딸의 저녁을 저희끼리 해결하라고 해놓고 나와주었지. 주로 여자들끼리 떠들고, 남자들끼리 떠들면서 익숙해지는 분위기였어. 아빠를 처음 본 인상은 '얼굴이 검네' 였어. 흙빛 얼굴, 흙빛 눈빛이라고 느꼈어. 밋밋하지만 작은 눈이 없어지도록 웃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어. 내가 신뢰하는 최가 나와 그를 모두 알고 있으면서 '두 사람 모두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함부로 소개 안해'라고 했던 말을 믿었어. 최가 자유공원 '파랑돌' 카페에서 차를 마시라고 터주어 우리 두 사람은 일어섰어. 아빠의 첫인상으로 더 강하게 각인된 건 그 카페에서 나눈 이야기야. 멀리서 인천항이 보였어. 불빛 야경이 멋졌지. 그가 "저건 야근하는 불빛이예요."라고 말하더라.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던 나에게는 눈을 샐쭉 뜨게 되는 경험이었어. 자기 생각과 느낌을 갖고 있으면서 좀 단순하고 행동하는 사람같았어. 나는 너무 졸려서 등받이 짧은 데 앉았다가 소파 자리로 옮기고 싶었어. 그가 그러자고 했어. 전철역에서 헤어지는데 그가 "연락해도 되냐?"고 물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했어. 그가 마음에 들었어. 그 날 밤 잠을 자다가 나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쌍가락지와 함께 금반지를 받는 꿈을 꾸었단다.

 

두번째 만남은 남산에서였어. 연락을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날씨 얘기나 하는 시시한 안부 문자를 보냈어. 그가 전화를 전혀 안 한 건 아니었어. 번번이 부재중 전화로 찍혔어. 그 때 왜 유독 남산이 가고 싶었는 지 모르겠어. 남산에 가고 싶다니까 그가 선선히 그러마 했어. 명동에서 만나 김치찌개를 먹었어. 내가 어찌해 볼 틈이 없이 그가 찌개를 퍼서 덜어주고, 불을 조절했어. 잘 한다고 하니까 다 뒷풀이에서 안주 불 조절하면서 닦은 실력이거라는 거야. 그 날이후로 나는 그와 있을 때 국자나 집게를 잡아본 적이 별로 없구나. 그 날은 55년만의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어. 나는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모자를 쓰고 또 모자 달린 털야상을 입었어. 그는 새로 이발한 머리 아래 귀가 빨간데 모자를 안가지고 왔어. 철도 파업이라 전철이 드문드문 다녀서 나는 제물포에서 서울행 빨강 광역버스를 타고 움직였어. 너무 멀었지만 남산에 꼭 가고 싶었어. 사람이 붐비는 명동에서 남산으로 올라 갔지. 케이블카 타는 데로 갔어. 거기서 그가 안내하는 대로 남산을 걸었어. 날이 너무 추워서 우리 밖에 안 보였어. 이런 저런 얘기를 했어. 좋아하는 것 10가지를 내가 물었어. 그가 10가지 말했고 나도 10가지 말했어. 돌아오면서 코레일에서 남편이 근무하는 동료와 통화를 했어. 그녀가 말하는 거야. 이 추운날 여자가 남산에 가고싶다고 해서 같이 가주는 남자면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거야. 그가 좋아하는 10가지는 사람, 삼겹살에 소주, 스노보드, 오토바이, 인라인 처럼 약간 위험이 따르는 놀이, 주성치식의 유머, 무한도전, 인간예 대한 예의(가 있는 사람), 책(전태일평전, 사람의 아들), '노인은 죽지 않는다'류의 영화, 산, TV를 보면서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 궁궐 같은 거였어. 내가 좋아한느 10가지는 노을, 쌈, 나무와 식물, 산, 공원 산책, 미술관,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 책, 하는 절과 가는 절, 집에서 혼자 시간 보내기 같은 거였어. 그는 자기 장점을 '착하다, 정실하고 꾸준하다, 즐겁게 살려고 한다'고 꼽았어. 나는 '좋아하는 일에 성실하고 열정적이다. 자기 정화와 치유, 측은지심이 있다'고 말했어.   

 

그 다음에는 내가 전화를 걸어서 그가 말한 10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제안했어. 그는 삼겹살에 소주를 좋아한다고 했거든. 내가 아는 가장 맛잇는 삼겹살집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내가 말했지. 그는 마장동에서 고기를 직접 떼어오는 더 맛있는 집으로 다음에 나를 데리고 가겠다는 거야. 사실 나는 삼겹살을 그닥 좋아하지 않을 때였지. 그와 남부터미널역 정토법당 근처 생고기집에서 만났어. 그날 사실 나는 약속을 취소할까 생각했단다. 왜냐하면 오전 6시부터 흐르기 시작한 코피가 오후 2시가 되도록 멈추질 않는거야. 3시에 멈춰서 차려입고 나선거지. 정순영은 왜 여자가 먼 서울로 가냐, 남자를 오라고 하라며 나를 동정했지. 삼겹살을 먹고 우리는 예술의 전당에 산책갔어. 거기 모짜르트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집이야. 거기 앉아서 차를 마셨어. 그 찻집의 테이블 위에 깔린 종이를 찢어서 나는 10가지 미션을 적었어. 우리가 계속 만나는데 서로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게 있으니까 그걸 하면서 만나보면 어떨까 내가 물었지. 

 

10가지 할 일은 이런 것이야. 일명 season1 지.

 

1. 영화보기

2. 미술관에 가서 기획전시 보기

3. 산에 가기

4. 한강에서 노을 보기

5.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놀기

6. 궁궐가기 - 비오는 날 경복궁, 꽃 피는 날 창덕궁과 종묘 보고 사직분식에서 두부찌개와 청국장 먹기, 아무날 덕수궁 가기

7. 보름날 밤 남산야생화공원에서 달 보며 술 마시기

8. 월미도에서 노다가 월미공원 산책하기

9.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종일 어슬렁거리기

10, 퇴근후에 중간지점에서 만나 평일날 식사사고 헤어지기

 

내가 하고 싶은 걸 적으면 그가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실행시키는 거지. 그걸하는데 거의 석달이 걸렸어. 이건 계속 만나볼까 어쩔까를 결정하는 과정이었어. 우린 이 사람이 결혼 상대자로 어떤가 알아보는 는 season 2로 들어갔어. 그때 정한 미션은 이런 거야.

 

1. 10대 풍광 만들어 비교하기

2. 지인 만나기 (친구, 가족 2팀 이상)

3. MBTI 성격유형 검사하기

4. 재정상태 보기

5. 건강 검진서 보기

6. 각자의 집이나 중요한 공간에 초대하기 

 

우습지만 저걸 다 했단다. 10대 풍광은 주안역의 부대찌개 집에서 교환했고, 재정상태는 술을 한 잔 하고서 주안역의 길가에서 길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얘기했어. MBTI유형은 내가 일반강사 자격이 있으니까 검사를 해서, 이태원의 이슬람사원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했어. 그는 야간 퇴근을 하고 와서 꾸벅꾸벅 졸면서 내 이야기를 들었어. 각자 집 초대와 지인 소개는 결혼 결정과 비슷한 속도로 흘러갔어. 나는 시칠리아 여행 다녀오는 길에 법우님과 만났고, 그는 직장의 지인 4인방을 생선내장탕집에서 소개했어. 건강검진서도 보았어. 그는 직장에서 온 정밀검진 결과서를 보여주었고, 나는 나의 지병들을 커밍아웃했지.  


결혼하기로 했어. 먼저 우리집에 인사를 왔어. 그 다음에 그의 집에 인사갔지. 외할머니는 아빠의 얼굴이 검은 게 마음에 안드셨어. 저건 분명 술독에 빠진 얼굴이라고, 간경화나 간암 걸린 사람처럼 저게 뭐냐고 했지. 결국에는 내가 부모님을 잡고 각각 두 번 울고불고 하고, 외할머니께 건강검진서를 복사해서 보내고서야 결혼 허락이 났어. 궤도 종사자는 정밀 검진을 받는데 약간의 지방간 소견 말고는 커다란 이상은 없었거든. 외할아버지는 "나는 내 자식을 믿네. 내 자식이 사랑해서 데리고 온 사람은 무조건 OK네." 하셨어. 그러고 나더러 "너는 한군하고 결혼하려면 한 가지만 약속해라. 시어머님을 니가 잘 모시겠다고 약속할 수 있으면 결혼 허락한다" 하셨어. 그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계신 어머님을 장인될 분이 먼저 거론하시는 걸 고맙게 여겼어. 할머니는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가서 절을 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셨어. "부족한 우리 아들을 좋아해줘서 고맙다. 쟤가 표현은 못하지만 한결같은 면은 있다. 그리고 엄마가 일을 해서 집안일을 잘 거들어 줄거다" 세 가지 이야기 하셨어. 아빠집에 첫 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 용산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늦었단다. 내가 매번 늦었는데도 그날은 날이 날이니만큼 아빠는 막 화가 나서 얼굴이 벌개져 있었어. 나중에 묻더라. "그날 안 올 생각을 했냐?"고 말이야 그러니까 그는 늦는 나를 보고 '이렇게 특별한 날 늦는 건 나하고 결혼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고 생각이 간 모양이야. 남산 소월길을 넘어서 약수동으로 가는데 그의 얼굴이 안 펴지더라. 결국에는 집 주차장에 차를 넣으면서 차 앞을 좍 긁었어. 새로 수리한 차를 또 수리하게 되었지. 그제야 나는 임박착수인 나와는 달리 그는 시간이 늦어지거나 계획이 변경이 되면 능률이 안 오르는 사람이라는 걸 실감했어. 곤두서 있던 두 사람이 남산을 넘어가면서 잘 물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를 보니 기분이 풀리는 거야. 거기서 부터 우리는 부드러워지기 시작했어. 나는 "여기서 살고 싶어요" 라고 진심으로 말했지. 일사천리로 거의 2주만에 집을 계약했어.

 

우리 상견례가 결정된 날은 12월 1일이야. 나는 그에게서 그 날 담배를 결혼선물로 받았단다. 그는 상견례가 결정되는 그 순간, 그러니까 회할머니에게서 결혼 허락이 떨어지는 그날부터 금연했어. 이십대초반부터 피우던 담배, 거의 이십년 넘게 피웠는데 단박에 끊어버린거야. 나는 결혼하자 마자아이를 낳길 원했어. 그가 고마웠단다.     

 

상견례를 종로3가 하누소에서 했어. 엄마 쪽으로는 부모님, 막내동생, 서울의 동생이 오고, 아빠 쪽으로는 할머니, 삼촌, 고모님이 나오셨어.      

 

나는 바다나 강물이 보이는 산에서 노을 질 때 청혼을 받고 싶은 로망이 있었어. 2013년 1월 26일날, 그러니까 결혼하기로 하고, 아미 양가 부모님들께 다 말씀드리고 인사도 마친 후에 그의 청혼 이벤트가 있었어. 그날 우리는 남산아래에서 밥을 먹었어. 그와 함께 남산을 올랐지. 남산 팔각정에서 노을 질 때 그가 잠자의 가슴 포켓에서 반지를 꺼냈어. 함께 해 주실 수 있냐고 물으면서 한 쪽 무릎을 꿇었지. 그건 도반반지였어. 두 개의 반지가 겹쳐진 일종의 태극무늬의 반지였어. 나는 기쁘게 예 했지. 그때 한강에 노을이 지고 있었어. 나는 지나가는 말로 했던 내 말을 기억해서, 도반의 링을 찾아내고, 그리고 거기서 청혼해주는 그가 고마웠어.      

 

2월 15일날 종업식을 하자마자 2월 16일에 살던 곳에서 이사를 나왔어. 거의 2주만에 이사갈 집을 보고, 이사업체에 견적을 받았어. 인사갈 때 반했던 남산 근처에 집을 얻기로 했어. 아직 나의 발령이 안 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조마조마했어. 나는 특수학교로 지원을 한 상태이지만 섬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었거든. 서울역 근처에 집을 얻었어. 우리는 그 전에 10대 풍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 우리가 살고 싶은 곳으로 공통되는 데가 '산, 도서관, 지인, 텃밭과 정원'이었어. 북한산은 너무 멀었어. 서울역은 인천으로도 다닐 수 있고, 지축에서부터 수서에 이르는 서울 어느 곳으로 아빠가 발령이 나도 괜찮은 곳이었어. 집을 급하게 알아보았어. 엄마가 살던 집의 계약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거든. 결혼식은 4월이지만 일단 학년도가 마치면 그냥 내가 먼저 우리 집으로 이사를 갈 작정이었지. 집은 그가 6천, 내가 6천 내어서 전세를 얻었고, 공동명의로 했어. 집주인은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이였어. 나와 동갑인 주인은 작은 남자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모피코트를 입었지. 월세로 한다는 걸 전세로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그리 된 거야. 신혼부부니까 집을 깨끗이 살게 될 거라고 복덕방에서 이야기를 했어. 입주 청소를 하는 날 그가 거의 혼자 와서 락스롤 집을 깨끗이 밀었어. 나는 도대체 입주청소를 하는 게 뭔지 몰랐지. 도배를 하기 전에 둘이서 방산 시장에 가서 벽지를 골랐어. 그냥 보면 흰색이지만 잘보면 꽃인 벽지를 골랐어. 포장이사를 했어. 2.5톤 이사 트럭이 왔어. 짐은 별로 없는데 식물들이 많아서 그렇대. 학교에서 기르던 것 까지 모두 집으로 옮겼었거든.

  

우린 2013년 4월 6일에 결혼했어. 결혼식장은 여의도의 교원공제회관이었어. 신혼여행은 발리였어. 그런데 나는 3월에 특수학교로 발령이 났고, 방과후 담당이라 거의 한달 내내 야근을 했어. 결혼식은 거의 모두 그가 준비를 했어.청첩장을 찍고 접는 것부터 해서, 신혼여행 때 입을 티셔츠를 고르는 것도 그가 했어. 단지 나는 이미 살림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전제품은 거의 사지 않았어. 우리는 소파 하나만 샀단다. 김치냉장고도 결혼한 후에 샀어. 이 집에서 2년을 살아간다. 남산을 넘어 출근하거나 퇴근을 햇어. 나는 도서관에 자주 가겠다는 공약은 잘 지키질 못했다.  

 

너의 아버지와 나를 어떻게 소개할까? 몇 년에 어디서 났고, 어느 학교를 다녔고 하는 일은 무엇이고, 종교는 어떻다고 해야할까? 이게 참 어렵구나. 이다음에 너희가 찾아오는 그 시점의 우리를 다시 소개하도록 할께.  

 

개똥아, 산아,

 

우리는 벌써 44세와 43세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다음 주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면 올해는 1달만 남게 된다. 지금 예상으로는 시험관 4차가 대구 마리아로 옮겨서 이 해 안에 이식까지 끝이 날 것도 같구나. 또는 이 해와 내년을 걸쳐서 말이야. 40대의 시험관 성공률은 거의 자연임신 성공률에 맞먹는다. 우리는 너희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꿈꾸는 아이들이 있는 가족 풍경은 정말로 뜬 구름이 아니라 내 마음의 풍경인 걸까? 나는 편지를 쓰면서 너희를 기다린다. 편지를 쓰면 나는 우리의 미래와 접촉하는 느낌이 들고, 곱게 잘 기다리고 싶어진단다. 우리가 42세와 43세에 만나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이리 급하게 서둔다. 만약 우리가 20대의 부부거나 30대의 부부라면 결혼 후 2년 정도는 가볍게 기다릴 수 있었겠지. 이틀 전에 용문사에 다녀오면서 우리는 '인연이 따로 있다'는 말을 실감했어. 잠깐 조금만 더 고생하자며 화이팅했단다.

 

우린 간절히 너희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단다. 그리고 다음 집을 생각할 때 개똥이와 산이의 고향을 고른다는 마음으로 부동산을 찾아다닌단다. 우린 여전히 산이 가깝고, 산책할 로드가 있고, 곁에 밥이 식지 않을 거리에 지인이 살고 있고, 도서관이 가까운 집을 알아볼거라란다.  전세대란이어서 어쩔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남산의 우리 나무에서 찍을 다음 결혼기념일 사진에 너희들이 나를 찾아왔으면 싶구나. 그리고 그 다음 해의 사진에는 가족이 찍혔으면 좋겠어. 너희는 유모차에 앉아 있거나 우리가 안고 있겠지. 다음 편지에서는 제주도 여행 다녀온 걸 이야기해주마. 그럼 잘 있다가 우리 건강히 반갑게 만나자. 개똥아, 산아, 너희에게 사랑을 보내며. 2014. 11. 24 월요일. 엄마가

 

 

ps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그리고 기도를 들으시는 모든 고운 님들께 기도드립니다. 전세 대란이라는데, 살던 집을 전세에서 월세로 돌린다고 집을 알아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전세금 오를 걸 대비해서 저축했던 3천 올려준다고 부동산 통해서 알아보았지만 집주인의 결정은 확고합니다. 하긴 우리가 얻을 때도 그이들은 월세를 놓을 작정이었어요. 그러니 이 교통좋은 집에 2년 잘 살았다고 감사의 기도를 하렵니다. 남산이 좋아서 남산 밑에 얻었던 신혼집에서의 시간은 인제 백일이 채 남지 않았어요. 우린 이 집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만약 서울역에서 더 멀어진 곳으로 간다면 KTX 타러 다니는 길이 좀 더 멀어지고 번거로와지겠지요. 아이들이 찾아온다면 저는 아마 질병휴직을 산전육아휴직으로 돌려서 계속 휴직중일겁니다. 그리고아이가 만 3살까지 기른 후에 복직을 하게 될 겁니다. 아이들이 만 3살 미만일 때 가장 중요한 고향은 편안한 엄마의 마음입니다. 엄마의 마음이 반석처럼, 태산처럼, 지구처럼 안온하고안정적이면 아이들은 그 튼튼한 기반 위에서 안정감을 가지고 자라난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부부관계가 바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환경일테구요. 어디에 우리 두번째 집이 정해지든 아이들의 집은 나와 남편의 관계이며, 엄마인 나의 마음입니다. 그 집이 안온하길 저는 바랍니다.

 

우리 부부의이야기라기인지 남산 밑의 우리집의 이야기인지 모를 편지를 썼어요. 미래의 아이에게요. 이 집을 떠나기 전에 꼭 써두고 싶었어요.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책에 보면 이 어머니는 다섯 아이에게 그 아이들이 태어날 때의 어머니와아버지의 나이와 상태,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태, 그리고 살던 집, 놀러 가던 집, 가지고 노던 인형들을 소상히 그리고 적어두셨어요. 이 집이 개똥이와 산이와 관련이 있는 집이 될 지 아닐 지 저는 모릅니다. 분명한 건 이 집을 가꾸고 아꼈던 마음으로 다음 집도 그러리라는 거지요.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아이들의 집으로서 내가 마음을 잘 가꾸어 나갈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꽃을 심고, 화분에 물을 주고, 벽에다가 행복한 장면의 사진을 걸듯이 나를 가꾸어나가길 바랍니다. 우리와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이 우리와 연결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그 집에 대해 더 소상히 꿈꾸어 보려고 합니다. 남산을 저리 좋아하니 우리는 남산 곁에 좀 더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남산댁이네요. 제가. 하하. 아이들을 지키고 보호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치뤄야할 비용을 다 치루고, 아이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초대할 수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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