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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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아 산아
남산 아래에서 더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는 도루를 하는 마음으로 집을 알아보았어. 부동산에서는 이미 나갔다고 하는데, 집주인과 구두로 가계약만 하고 아직 가계약금을 보내지 않았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도 집을 보겠다고 했지. 부동산에서 보여준 2군데 중에 남산에 더 가까운 집이었어. 방 2개에 주방과 거실이 있어. 아기 엄마가 집을 보여주네. 아기가 나가지 못하도록 욕실과 현관에 울타리가 쳐져 있었어. 그 집에 오래 살았댔어. 집이 마음에 들었어. 우리가 먼저 계약금을 보내겠다고 하니까 집주인은 이전에 말 나온 이가 이틀 정도 가계약금을 보낼 시간여유를 달라고 했다, 약속했으니까 내일까지 기다리겠다는 거야. 그 주인은 약속을 잘 지키는사람임에 분명해. 계약서를 쓰고 정식 계약금을 보낸 것도 아니고, 계약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소량의 돈도 아직 안 보낸 사람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니 말이야. 만약 우리와 인연이 된다면 우리와의 약속도 잘 지킬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기다리기로 했단다.
나는 팔딱거렸어. 그 집이 마음에 들었거든.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꿈을 명확히 써놓았기 때문에 그 집을 보자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어. 우린 우리가 꿈꾸던 그림에 더 가까워졌다고 흥분했지. 그 집은 남산공원 진입로에 있었어. 힐튼호텔과 소월로, 그리고 후암동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조금만 언덕을 올라가면 돼. 지금 사는 곳보다 전세가 3천 더 비싸긴 해. 남향의 방과 남향의 거실이 있었어. 아빠는 교대근무자라서 암막을 쳐놓고 낮에 잠을 자야하니까 북향 방도 하나 필요하지. 그런 방도 하나 있었어. 주방이 넓었어. 베란다가 없었어. 베란다 넓이를 비교한다면 결국 지금 사는 집과 평수는 비슷하다고 했어.우린 언제나 산 가까이 살고 싶어했어. 산을 향해 난 산책할 로드, 근처에 도서관, 밥이 식지 않을 거리에 지인, 텃밭과 정원이 있는 집이 우리의 로망이란다. 단독주택이라야 가능한 꿈이라면 단독주택을 살 돈을 모으는데 우리 시간을 다 써야겠지. 텃밭과 정원을 우린 2년동안 실험해왔어.천지의 봄을 내 집 앞 나무 한 그루의 새 잎으로 볼 수 있듯, 정원과 텃밭의 꿈 역시 전세집의 화분으로 지금 여기서부터 살고 있단다. 베란다 정원과 옥상 텃밭으로 방향을 돌렸어. 아빠는 그 집에서 한 달에 한 번 지인을 불러서 집에서 기른 상추로 삼겹살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살고 싶어해. 실내에서 상추가 잘 안 자란다는 걸 경험해본 그는 상추는 사다 먹기로 결론냈어.
집을 보고 난 뒤 나는 대학병원 내분비내과와 혈액내과의 진료를 보러 갈 일정이었어. 지난번 반복착상실패 검사 결과를 보면서 의사선생님이 조언한 걸 움직이는거야. 전철역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나는 아빠를 향해 팔딱거렸어.
"지금 당장 부동산 총각한테 돈 보내요. 집주인이 마음 변하거나, 그 사람이 돈 안 보내면 즉시 우리가 하게요. 안되겠어요. 내가 직접 말할께요."
내가 전화를 걸었단다. 아빠는 늘 '당신은 너무 질러'라고 말하거든. 나는 사실 즉흥적인 데가 있지. 하지만 준비가 덜 되었더라도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을 향해서는 냅다 뛰는 바람에 고생한 것도 있지만 좋은 게 더 많았단다. 놓치는 일이 적거든.
5시까지 외래진료를 보는 병원에서 분주히 왔다갔다 하면서 나는 계속 그 집이 포기가 안되는 거야. 기도가 막 되는 거야. 대기의자에 앉아서 기다리지 못하고 걸어다니면서 기도했어. "지금 저 집과 가계약을 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사람은 집 전세금의 10%인 정식 계약금도 아니고, 100만원이나 50만원 정도의 가계약금도 걸지 않을 만큼만 저 집을 원합니다. 이틀 여유를 주었는데 하루를 그냥 보낼 정도로 원합니다. 아님 다른 여건이 쉬 대답을 하지 못하게 하나봅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리 우리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의논을 해 보았기 때문에요, 저 집이 우리 로망 속의 그 집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어요. 우리는 지금 당장 돈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보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서 저 집을 먼저 마음에 들어한 그 분이 저 집에 살아야 할 절실한 이유가 우리보다 많지가 않다면 빨리 마음을 결정하게 도와주십시오. 만약 우리가 저 집에 살게 된다면 남산 아래에 살았던 보람이 있도록 남산에 더 자주 운동하러 갈거구요, 학교에 출근하듯이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남산도서관에서 노트북이나 책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도 출산하고 저의 첫 책도 낳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저 집은 서울역에서도 가까워서 대구로 KTX 타러 가기도 지금 집 보다 더 쉽습니다. 대구 마리아에서 아이들을 만나도록 이성구박사님이 도와주실 거예요." 몸이 달아서 중얼중얼 비나리를 바쳤구나.
결국 우리가 그 집을 먼저 가계약했단다. 부동산에서 잘 이야기를 했겠지. 가계약금을 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기다리지 않더라도 계약 위반이 아니라고 했겠지. 아니면 이사날짜까지 잔금을 지불하기가 저쪽 계약기간이 있어서 어려웠겠지. 집은 인연이 있어서 살게되는 듯 해. 진료를 다 보고 전화를 거니까 우리가 먼저 가계약금을 보냈다는거야. 집주인이 직장인이라 시간이 주말에만 난다고 해서 주말에 정식 계약서를 쓰기로 했단다. 다행히 우리가 살던 집 주인이 여유가 있어서 아직 계약 완료일시까지는 2달 반이 남았는데 바로 전세금을 내줄수 있다고 했어. 13평에 전세 살다가 2년간 모은 돈을 보태 15평 전세로 이사가는 건데 이렇게 기쁠 수 있을까? 이사간다고, 이사가면 초대하겠다고 함박 웃는 나를 보며 외할머니는 '제 손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살림을 조금씩 늘려가는 게 제일 재미나다. 2평 늘려갔으니 성공이다'고 마음을 읽어주셨어.
개똥아, 산아. 나는 새로 이사갈 집에 대한 설렘이 가득하단다. 남산의 우리나무 앞을 지나며 좋은 집이 인연되길 빌었는데 다시 가서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여기에 더 자주 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겠구나. 저 집에 살면서 남산도서관으로 매일 출근할 거란다. 점신은 도서관 백반으로 먹을 거야. 이거 내가 무지 좋아하는 메뉴다. 구청 직원식당 밥이나 대학교 학생식당 밥도 맛있는데 나는 도서관에서 종일 보내면서 혼자 먹는 구내식당밥 무척 좋아한다.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는 햇빛를 받으면서 일삼아 산책을 할거란다. 그럼 난포들이 더 잘 자라겠지? 새로 이사가는 그 집에서 대구로 병원을 다녀 너희가 우리에게 찾아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작년에 우리가 본 벚꽃을 너희와 함께 볼 날을 기대한다. 4월 우리 결혼기념일에 그 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너희가 내게 찾아와주었으면 좋겠구나. 아직은 둘이서 찍는 가족 사진 속의 너희는 뱃속에 든 모습이거나 유모차를 탄 모습으로 해마다 모습을 바꿔가겠지. 무사히 배불러, 즐거운 잉태기간을 보내고, 출산해서 너희를 안고와 이 집의 주소로 출생신고를 하게 되기를, 앵알거리는 신생아 울음이 퍼지길, 볕이 잘 들고, 옥상에다 빨래를 내다 널 수도 있는 이 집에서 너희들의 기저귀를 빨아널게 되길 기대한다. 너희가 찾아온다면 구립도서관의 어린이관에 같이 가고 싶구나. 거기를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책을 어릴 때부터 대여해서 읽어보면 좋겠구나. 남산의 야생화공원의 놀이터에 너희를 데리고 가서 그네를 밀고, 새로 난 꽃을 가리키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집 건으로 나는 꿈의 힘을 알게 되었단다. 미리 꿈을 꾸어본 사람, 특히 그것을 선명히 그려본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낚아채는 힘이 강해진다. 그게 그거인 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일종의 성공경험이었다. 이것이 너희에게로 가는 길의 디딤돌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더 많은 작은 승리들이 너희를 향하는 길에 디딤돌이 되어 주고 징검다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개똥아, 산아, 너희의 출생신고서에 기록될 집, 고향집이 될 새 집이 마음에 든다. 그 집을, 그리고 나를 안온한 보금자리로 가꾸어 너희가 마음놓고 깃들게 되길 소망한다. 사랑을 보낸다. 2014. 12.4 엄마가
ps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그리고 기도를 들으시는 아름다운 님들께 기도드립니다. 오래 마음고생하지 않고 전세를 구할 수 있었어요. 저는 좀 신이 났어요. 도루에 성공한 거니까요. 승리가 승리를 자기복제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길 바랍니다. 남편은 내가 신경을 많이 쓰고, '이번 기회에 1억쯤 대출을 내서 서울에 집을 하나 사자'고 며칠 노래하니까 로또를 샀다더군요. 돈이 적다고 투덜대는 걸로 느껴졌나봅니다. 병든 노모를 업고 한겨울에 이사를 가야했던 아버님 생각을 잠시 했어요. 얼마나 가장이 속이 상했을까요? 새 집은 환하고 깨끗하고, 무엇보다도 남산에 가까워요. 우리 두 사람 모두 마음에 들어합니다. 이 집에서 좋은 일이 있길, 저희가 화목하고 건강하게 살아나가길 기원드립니다. 아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너무 임신에만 목을 매는 듯 해서 저도 민망합니다만 저의 80%의 에너지와 관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저희 가족을 옹호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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