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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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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2일 11시 34분 등록

어느 정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여자들이 접하게 되는 말이 있다. ‘결혼을 하면 시금치도 싫어 진다는 말이다. 이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왜 그런지 알기 때문에 가끔 쓴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시어머니와 같은 지붕에서 살고 있다. 몇 달 전에 아랫층으로 분가를 하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아침에 눈을 뜨고 방문을 열고 나가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분이 시어머니였다. 아침잠이 없으시기에 새벽 4시부터 일어나셔서 씻고 닦고 하시는 분이시다. 아들 내외가 깰까봐 씽크대에 행주를 깔아놓고 조심조심 뒷꿈치를 들고 부엌을 드나드셨다. 어머님은 그 시대의 어머님이 다 그러겠지만 인생의 낙이 오로지 자식에 국한되어 계신 분이다. 1 3녀를 두셨지만 그 중 유독 아들에 대한 사랑이 깊으신 분이기도 하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적을 수도 있는데, 나는 이 집에서 거의 아들과 동급의 취급을 받는다. 어머님은 가끔 나에게딸들보다 더 귀한 며느리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 말이 진심일까? 의심을 해본 적은 없었다. 어머님의 평상시 행동을 보면 충분히 느껴지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까지만 이야기하면 시집 잘 갔네, 복이 많네 등의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부갈등은 바로 그런 어머님의 애정관에서 시작이 되었다. 나는 지극히 독립적이고 나의 시간과 공간과 성향을 존중 받기를 원하는데, 어머님은 나를 당신의 틀 안에서 보호하고 키우려는 분이셨다. 어머님은 나에게도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머님이 언젠가는 나에게 병아리 같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이 감사하기는커녕 기가 막혔다. ‘어머니 저 마흔 세 살이에요.’ 라는 말을 몇 번이고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엄마가 되고 싶은 어머님께 상처를 드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키워진 나의 독립심은 어머님의 애정을 버거워했고 때로는 탈출욕까지 불러 일으키기도 했기에 드러나지 않는 갈등은 조금씩 커졌다. 어쩌다 한두 번이면 감당했을 테지만 매일 얼굴을 보고 사는 처지에 사사건건 나의 엄마가 되려고 하시는 어머님의 애정은 나를 반항아로 만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남편과 손자도 반항아로 만들었다. 어머님의 과보호는 가끔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2층으로 분가를 했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격상 화를 내지 못했기에 나는 가끔 새침하거나 퉁명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을 하곤 했다. 그런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을 강구한 것이었다.

어머님은 그렇게 모든 사람을 특히, 자식을 품 안에 품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셨다. 그렇게 강하고 자기 주관으로 75년을 살아오신 어머님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인공관절 수술을 하셔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겁이 많으신데다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풍월이 병원에 가는 것을 더 꺼리게 만들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진통제로 연명을 하시다가 그 마저도 말을 듣지 않으니 병원을 찾지 않을 길이 없었다.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의사와 상담을 하고, 그리고 입원하기까지 보름이라는 시간이 남았었다. 그 사이 어머님은 약간의 입맛을 잃으셨고 걱정을 사서 하시는 성격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하셨다. 수술을 두 번이나 해본 나로서는 이해가 가면서도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는 것이 법칙이듯이 시간은 느리게 가면서도 정확하게 우리를 그 날짜에 이르게 했다. 드디어 어머님께서 병원에 입원하시는 날이 되었다. 짐을 같이 싸고 병원으로 가서 입원 등록을 마치고 환자복으로 갈아 입혀드렸다. 그리고는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가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어머님의 인생이 같은 여자로서 지나갔다. 무릎의 연골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가족에게 충실하셨고, 비록 반항아 아들과 손자에 이어 반항아 며느리까지 두셨지만, 그것이 또한 가족을 지키는 힘의 근간이었음을 어머님의 무릎은 말해주었다. 그런 어머님을 생각하며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했다. 항상 강한 모습으로 일관하시던 어머님에게서 오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나는 당분간 어머님의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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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2 14:15:06 *.196.54.42

병아리에서 반항아 참치를 거쳐 결국은 엄마 참치가 되기까지

참치의 여정이 손에 잡히는 듯 하네요.

아무리 좋은 시어머니라도 한 지붕 밑에 산다면....?

장남이지만 서울에 직장이 있어 더욱 맘이 동했다는 아내의 솔직한 술회를 들으니

참치의 반항이 100분 이해가 되오 ㅎㅎ

고수의 한 수, 2층이사로 두 여자를 감옥에서 구했으니 이제 책만 쓰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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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2 14:27:04 *.255.24.171

저는 좋은 며느리는 아니에요. 아직도 반항기로 똘똘 뭉쳐있어요.

잠시 그것을 눌러놓을 뿐이지.ㅋㅋㅋ

감사합니다. 구달님은 항상 힘을 주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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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15:10:07 *.223.45.89
주제를, 결정하신 듯 합니다.
한길로 쭈~욱 걸어가시길~
멋진 출산(?),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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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7 23:16:22 *.255.24.171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응원은 항상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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