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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3일 08시 40분 등록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겨울에 자란 나무는 더 단단하다    


겨울은 춥고 황량하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목(裸木)은 겨울의 풍경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에 겨울이 있듯이 인생에도 겨울처럼 힘든 시기가 있다. 어떤 이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겨울 속에서 보내기도 한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겨우겨우 버티고, 또 어떤 이들은 혹독한 시절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드물지만 오랜 겨울을 보내며 사유가 넓어지고 깊어져서 훌륭한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도 있다. 18년을 유배지에서 보내며 공부하고 제자를 키우고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비롯해 수백 권의 책을 집필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신영복도 그런 드문 예에 속한다.


신영복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 27살이었고, 그로부터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냈다. 교도소에서 청춘을 보내고 중년의 대부분도 그곳에서 보낸 것이다. 언제 출소할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을 그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신영복은 “20년의 수형생활은 ‘나의 대학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감옥을 일종의 ‘개인 대학’으로 삼은 것이다. 거기서 그는 노동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예를 익혔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성찰하며 글을 썼다. 그리고 출소 후에 책 한 권을 출간했다. 책의 제목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 책은 감옥 생활, 아니 ‘20년 대학 생활’의 기록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초판이 나온 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찾을 것이고, 아마도 20세기의 고전이 될 것이다.


세상은 넓고 복잡하다. 그에 비해 감옥은 좁고 단조로워 보인다. 그런 공간에서 오랜 시간 살며 쓴 글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명저(名著)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치열한 성찰과 실천, 그리고 넓은 사유에서 나온 글의 깊이 때문이다. 그의 글은 오랜 수감생활 동안 저자가 한 뼘 한 뼘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산은 18년간의 귀양살이 동안 수백 권의 책을 썼고, 미국의 자연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을 지내며 <월든>을 포함해 몇 권의 원고를 집필했다. 그에 비해 신영복은 20년 20일의 시간을 책 한 권에 담았다. 그래서 일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담긴 글 한 편 한 편은 책 한 권의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신영복은 말한다.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더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춥고 황량한 겨울과 같은 공간에서 스스로 찬란한 봄과 푸른 여름과 익어가는 가을을 만들어낸 정신과 실천의 바탕에서 자라난 결실이다. 나무는 겨우내 뿌리를 보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래야 봄이 왔을 때 새 움을 틔울 수 있다. 움이 터야 꽃이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다. 이번 겨울, 우리도 나무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감옥으로부터 사색>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유를 확장해 보면 어떨까.


홍승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kmc1976@naver.com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이름으로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12월 23일자 칼럼이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702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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