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자유

주제와

  • 승완
  • 조회 수 273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12월 23일 08시 40분 등록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겨울에 자란 나무는 더 단단하다    


겨울은 춥고 황량하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목(裸木)은 겨울의 풍경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에 겨울이 있듯이 인생에도 겨울처럼 힘든 시기가 있다. 어떤 이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겨울 속에서 보내기도 한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겨우겨우 버티고, 또 어떤 이들은 혹독한 시절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드물지만 오랜 겨울을 보내며 사유가 넓어지고 깊어져서 훌륭한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도 있다. 18년을 유배지에서 보내며 공부하고 제자를 키우고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비롯해 수백 권의 책을 집필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신영복도 그런 드문 예에 속한다.


신영복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 27살이었고, 그로부터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냈다. 교도소에서 청춘을 보내고 중년의 대부분도 그곳에서 보낸 것이다. 언제 출소할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을 그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신영복은 “20년의 수형생활은 ‘나의 대학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감옥을 일종의 ‘개인 대학’으로 삼은 것이다. 거기서 그는 노동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예를 익혔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성찰하며 글을 썼다. 그리고 출소 후에 책 한 권을 출간했다. 책의 제목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 책은 감옥 생활, 아니 ‘20년 대학 생활’의 기록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초판이 나온 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찾을 것이고, 아마도 20세기의 고전이 될 것이다.


세상은 넓고 복잡하다. 그에 비해 감옥은 좁고 단조로워 보인다. 그런 공간에서 오랜 시간 살며 쓴 글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명저(名著)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치열한 성찰과 실천, 그리고 넓은 사유에서 나온 글의 깊이 때문이다. 그의 글은 오랜 수감생활 동안 저자가 한 뼘 한 뼘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산은 18년간의 귀양살이 동안 수백 권의 책을 썼고, 미국의 자연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을 지내며 <월든>을 포함해 몇 권의 원고를 집필했다. 그에 비해 신영복은 20년 20일의 시간을 책 한 권에 담았다. 그래서 일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담긴 글 한 편 한 편은 책 한 권의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신영복은 말한다.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더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춥고 황량한 겨울과 같은 공간에서 스스로 찬란한 봄과 푸른 여름과 익어가는 가을을 만들어낸 정신과 실천의 바탕에서 자라난 결실이다. 나무는 겨우내 뿌리를 보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래야 봄이 왔을 때 새 움을 틔울 수 있다. 움이 터야 꽃이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다. 이번 겨울, 우리도 나무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감옥으로부터 사색>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유를 확장해 보면 어떨까.


홍승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kmc1976@naver.com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이름으로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12월 23일자 칼럼이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70259.html









IP *.34.180.245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74 꿈벗 봄소풍은 언제하려나 [28] [15] 운제김달국 2010.04.07 117538
3573 엑스터시 가설 바람95 2016.08.19 44453
3572 구본형 MBC TV 특강 - 11월 26일 수요일 1:35분 [6] 부지깽이 2008.11.24 38609
3571 Love Virus 그림엽서 신청하세요 file [1] 타오 한정화 2014.10.31 29530
3570 자연을 그.리.다. 생태드로잉 수업합니다! file 미나 2014.09.10 26485
3569 파일첨부 안되는 경우 참고하세요 file [20] [10] 관리자 2008.12.30 23914
3568 <내 인생의 첫 책쓰기>프로그램에 참여할 22기를 모집합니다 오병곤 2022.06.21 22362
3567 한쪽 방향으로만 도는 기어 file [1] [29] 한정화 2009.11.29 22007
3566 -->[re]사이트 개편에 적응이 안되네요^^ [1] 운영자 2003.01.22 21796
3565 연구원/꿈벗 리프레쉬 강좌 참여자 모집 [4] 부지깽이 2012.10.31 16771
3564 이직 이야기 3- 이직 후 적응이 어려운 다섯가지 이유 [2] [1] 교산 2009.02.12 16586
3563 MBC 다큐멘터리 가장슬픈 이야기 풀빵엄마... 강호동 2010.01.06 15341
3562 -->[re]사이상에서의 명칭(인격) 대해 [6] 테리우스 2003.01.26 15274
3561 책을 읽다 보니, [1] 구본형 2003.02.05 14999
3560 꽃동네에서 꽃은 떨어졌다 [2] [1] 꽃동네후원자 2003.01.29 14578
3559 <삼성레포츠센터> 글쓰기입문강좌 4주 [1] 한 명석 2014.12.11 14166
3558 20대를 위한 나침반 프로그램 안내 file [22] 박승오 2008.12.22 13663
3557 사이상에서의 명칭(인격) 대해 오태진 2003.01.26 13509
3556 책을 다시 읽으며........ [3] 이운섭 2003.01.28 13497
3555 자연의 마음으로 구본형 2003.02.03 13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