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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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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8일 22시 34분 등록

따뜻한 조직을 위한 꿈 #3_기술의 발전은 진보인가?

2014. 12. 28


8년된 노트북을 아직 쓰고 있다. 근래에 OS를 최신버전으로 올렸는데 이게 버거운 모양이다. 다른 프로그램들도 비교적 최신버전으로 올렸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비실비실 굼뜨기 시작하더니 요즘음 커서가 두줄뒤에서 따라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트북을 바꿔야 겠는데…그러다 문득 “노트북 팽팽 잘 돌아가면 뭐하나. 그만큼 더 일이나 하게 될 껄!” 


난 또래들 보다는 비교적 사무생산성이 좋은 편이었다.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따위의 프로그램들을 제법 잘 다뤘을 뿐만 아니라 포토샵이나 통계패키지까지 제법 다룰 줄 알기 때문에 발표자료나 교안, 보고서 따위를 비교적 빠르게 잘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그들의 일까지 더 해야할 때가 많았다.


4명이서 8시간 빡빡하게 돌아가던 공정에서 개선과 개선을 거듭하더니 드디어 생산성이 두배가 되었다. 4명은 이제 4시간만 일해도 이전에 8시간만큼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8시간 빡빡하게 일하고 있다. 그리고 물량을 줄여야 할 경우 두명은 일자리를 잃어야 할지도 모른다.


생산성의 개념은 아래같은 익숙한 모델로 설명된다.

산출 / 투입 = 생산성


이 모델에서

  1. 투입을 줄이고, 산출을 늘이거나

  2. 투입만 줄이거나

  3. 투입은 그대로 두고, 산출을 늘이거나

  4. 투입을 조금 늘이고, 산출을 크게 늘이거나 하면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여기서 최적조합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래야만 지속가능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은 자본에 부역하고 말았다. 부가가치가 없는 한 기술은 발전하지 않는다. 기술은 인간의 행복이나 지구환경의 보존과 같은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능률, 효율, 생산성과 같은 단기적이고 부분적인 최적화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탁기가 빨래를 하고 청소기가 청소를 하지만 우리는 노동에서 해방되지 않았다. 그 시간을 벌어서 더 생산적인 곳에 쓴다고 할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계속 노동을 한다. 오히려 우리는 새로워진 세탁기와 청소기를 사기 위해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새로 나온 세탁기와 청소기는 지난번 것보다 더 비싸다. 더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다. 십년전에 천원이면 되던 짜장면 한그릇이 맛도 양도 그대로인데 지금은 4천원이다. 물가는 계속해서 오르고(올라야 하고)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해야만 한다. 다시 인간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짜장면을 먹기 위해 일해야 한다. 


산업사회 이후로 폭발적인 기술의 발전이 있었지만 인간을 기아에서 구해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인간성을 고양시킨 것은 더더욱 아니올시다. 인간다움을 찾는 문제는 오히려 퇴행적이라는 것이 옳겠다. 하드웨어의 발전은(이것이 발전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인간을 달나라에 데려다 놓았지만, 우리가 달에 대해서 아는 만큼 옆집 사람을 알고 있는지 물어 볼 필요는 없는 것일까!


세상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경쟁은 치열해지고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요구도 점점 더 높아졌다. 기업에선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더니 이젠 ‘마른 수건도 다시 짜야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투입되는 자원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만이 다시 짜면 또 얼마간 어떤것이 더 나온다. 생각해 보라.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는가…이것이 혁신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잔혹이다.


인간의 발자국을 달에 남기는 것 보다 계수나무와 토끼가 살던 그 별로 남겨두는 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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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11:26:40 *.196.54.42

 참으로 피울선생 다운 글이란 느낌이 드네, 물론 나도 동감이 올시다. 

나도 '오래된 미래' 혹은 스콧 니어링이나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일기?' 같은 인간의 행복에 촛점을 맞춘 세계를 무지 동경하고 있다오.

생활여행자 같은 내가 추구하려는 삶의 방식도 이 자본산업세계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것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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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12:46:36 *.104.9.216
니어링이나 소로우 같은 분들을 동경하지만 목적함수가 결여되었고, 아니타 로딕이나 이본 취나드를 닮고 싶지만 그들처럼 도전적이지 못합니다. 나는 나처럼 변죽쟁이 방면에서 두각을 좀 ...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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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14:17:23 *.124.78.132

앜 ^^ 생산성 이야기...를 보니 저는 잠깐 시험의 악몽이 되살아나는데요 ㅋㅋ

피울님의 이런 주제의 글도 참 좋은 것 같아요. 따뜻한 조직을 위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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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16:11:06 *.223.38.212
이게 ...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맨날 이딴 이야기를 하고 살지요. ㅎㅎ
고백록이라고나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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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15:06:02 *.119.88.145

난 이번 책이 좀 싫었어요. 이젠 생산성이라는 말도 싫어져. 그런데 기획하고 팀으로 일하는 것은 너무 그립고...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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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16:09:28 *.223.38.212
효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바 목적함수를 달리 더 가치있는 곳에 두면 해법이 있을 것 같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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