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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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절이 왔다. 12월에는 늘 그렇듯이 송년회 때문에 이리저리 다니기 바쁘다. 백수가 된 뒤로 그 모임이 적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 만도 않았다. 나에게는 언제나 기다려지는 송년회만 하는 모임이 있다. 연구원을 하기 몇 년 전에 한 동안 열을 올리며 만나던 사람들이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짐을 꾸려 같이 떠날 수 있었고 함께하는 시간이 항상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사진을 찍으러 전국을 누비며 밤을 낮 삼아 다녔다. 일을 하고 여가에 출사를 가는 것이 아니라 출사를 가기 위해 일을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가장 힘들어 하던 시절이었기에 나는 1주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을 그곳에서 얻어가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몰입의 세계로 인도해 짜릿하기도 했지만, 그들과 함께 지내며 웃는 시간 자체만으로도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 그 곳에서 나는 사진을 잘 찍는다기 보다는 먹보와 잠탱이로 통했다. 스페인에서처럼 차 내리면 먹고, 차 타면 자는 것을 출사 다니는 내내 되풀이 했다. 그래서 지금도 지명과 사진이 매치가 되지 않는 곳이 많다. 그들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 다녔고, 차가 서면 사진을 찍거나 먹거나, 쉬거나 셋 중 하나였으므로 나는 아무 생각 없이도 좋은 풍광과 음식을 만날 수 있었다. 나를 오래 본 사람이면 알게 되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굉장히 칠칠 맞다는 것이다. 나는 그 모임에 갈 때, 필요한 장비를 빼먹고 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사진을 찍으러 가는 사람이 메모리카드를 놓고 가거나, 배터리를 놓고 가거나 비가 온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비를 놓고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멤버들은 일부러 여벌로 내 것까지 챙겨오기도 했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많이도 놀렸다. 칠칠맞다는 둥, 나사가 빠졌다는 둥, 불량품이라는 둥. 하지만 그 놀림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에 싫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뻔뻔함과 웃음으로 대응할 수 있었으며, 그 때문에 우리는 또 웃었다. 그들과 같이 있으면 초등학생이 되었다. 나이와 계급을 떼고 만나는 이들은 많게는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났지만 우리의 대화 수준은 같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친구 그 자체였다.
나의 결혼을 계기로 그 모임은 흐지부지 되었다. 서로 처해있는 상황이 바뀌면서 출사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간간이 가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다 같이 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런 모임의 송년회가 얼마 전에 있었다. 지금은 추억을 곱씹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그 동안 같이 한 우리의 시간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언제나 풍성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다. 그래서 좋은 추억을 같이 나눈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아무리 오래 간만에 만나도 또 그 시절이 된다. 차를 타고 달리고, 추위에 벌벌 떨며 셔터를 눌러대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차 안에서 불편한 잠을 자는 상황들이 몇 번이나 이야기 속에서 꽃을 피운다. 그때는 정신 없이 다니느라 지금 이런 시간이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고, 항상 그렇게 같이 할 수 있을지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헤어짐이 있기에 그 시간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많은 음식을 먹어도 이야기와 웃음으로 소화가 되기에 과식이 두렵지 않은 그들을 만나고 오면서 데카상스의 얼굴들이 오버랩되었다. 11기의 예비설명회가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작년의 떨림과 설렘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변경연을 그리며 마음편지에서 위안을 받고 선망하던 시절도 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지난 추억을 곱씹자니 올해의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데카상스다. 그때는 힘들어도 지난 세월은 왜 그렇게 다 짧고 아련한지 모르겠다. 1차 레이스, 2차 레이스, 면접여행을 거치면서 그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면접여행에서 처음 만난 동기들은 ‘저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버거워 보였는데 지금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을 오가는 사이가 되었다. 언제인지 모르게 차곡차곡 빼곡하게 많은 추억이 쌓였다. 또 우리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기 힘든 모습도 이곳에서는 곧 잘 보여주곤 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망설였지만 지금은 가족같이 편안함으로 다가와 있다. 하지만 이 시간도 안녕이라는 말과 함께 더 아름다워 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11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자니 여러 마음이 오간다. 이제 곧 우리의 현역시절이 마무리 되면 이 화려한 시절을 11기에게 바톤을 내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연구원의 순리이고 진리이다. 지금은 매주 과제와 삶을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말이다. 며칠 남지 않은 2014년과 얼마 남지 않은 현역시절이 내 마음에 큰 방을 하나 만들었다. 나는 그 방을 쥐가 곳간 드나들듯이 들락날락 할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발걸음이 그 방을 향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 방에 들어서면 추억이라는 놈이 달려 나와 웃음과 그리움을 내어줄 것이다. 아~~~오래된 미래처럼 나는 벌서 우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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