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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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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5일 10시 15분 등록


나는 애호가다. 애호가와 전문가는 다르다. 전문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가진 사람’이고 애호가는 ‘어떤 사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애호가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다. 지식은 위대한 애호가가 되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보통 수준 이상의 애호가가 되는 데에는 좋아하는 마음의 정도가 중요하다.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만, 만남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을 눈앞에 대하다’는 뜻도 가졌다. 기실 우리는 사람들보다 사물을 훨씬 많이 만난다. 일어나자마자 안경을 만나고, 음식을 만난다. 출근하기 위해 옷을 만나고 가방을 만난다. 책과 볼펜을 만나고 교통수단을 만난다. 집과 사무실, 아니 세상은 온갖 만남의 장이다.

 

나는 애호가가 되어보지 못한 이들은 사물을 관찰하거나 일상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애호품을 늘려가는 것이 삶의 기쁨을 높이는 법이라고도 생각한다. 자신의 애호 목록에 ‘사람’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 애호가로서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애호 목록의 가장 윗자리에 사람을 두는 것이 곧 휴머니즘이 아닐까.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물론 싫어하는 것들도 있다. 나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거나 자기 애완견의 배설물을 오피스텔 복도에 방치하는 행위를 싫어한다. 록 음악은 내 스타일이 아니고, 헤비메탈은 싫어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에 관심을 둘 시간이 없다. 좋아하는 것들을 더욱 누리고 음미하는 시간으로만 삶을 채우고 싶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이 질문은 마법 같다.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그것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사랑의 묘약이라도 되는 듯, 그것을 더욱 아끼게 한다. 쓰다듬게 하고, 바라보게 만든다. 원래도 좋아했던 것이지만 더욱 예뻐 보인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어를 체험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전문)

 

애호가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애호의 정도에 따라 3단계로 나뉜다. 첫째는 관심의 단계다.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는가? 둘째는 감식의 단계다. 가치와 진위를 구별하는가? 셋째는 표출의 단계다. 삶으로 드러나는가? 서른 살의 나는 와인에 관심이 있는 정도였다. 자꾸 마시다 보니 좋은 와인을 구분하게 되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내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애호가는 어떤 것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친구라는 뜻의 그리스어 ‘필로스’는 애호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어떤 사람이 필로스+오이노스(와인)라 불리게 되면, 그는 와인에 관심이 있고 좋은 포두주를 감별한 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부분이 포도주와 얽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철학의 어원인 필로소피아=필로스+소피아(지혜)도 마찬가지다.

 

필로스는 아름다운 단어다. 관심을 넘어, 차이를 구별하고, 삶으로도 드러나는 정도로 좋아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필로스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 들어 나는 부쩍 커피의 필로스가 되어가고 있다. 예전에도 커피를 즐겼지만, 테이크아웃을 하기에는 커피값이 아까웠다. 최근 처음으로 테이크아웃을 했다. 커피 애호가가 된 신호였다.

 

애호가가 되니 맛, 풍류, 인생을 더욱 음미하게 된다. 음미하면서 순간을 붙잡는다는 것의 의미도 알아가고 있다. 새해 초,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필로스적인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물건, 장소, 가치, 인물, 예술 등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수십 가지를 생각해 냈다. 나는 그것들의 애호가다. 내가 애호하는 것들을 되살피고 보듬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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