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236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물 긷는 사람
이기철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오늘 하루 빛나는 삶을 예비하는 사람이다
내를 건너는 바람소리 포플러 잎에 시릴 때
아미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손으로 걷어올리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땅의 더운 피를 길어 제 삶의 정수리에
퍼붓는 사람이다
풀잎들의 귀가 아직 우레를 예감하지 못할 때
산의 더운 혈맥에서 솟아나는
새벽의 물 긷는 사람은
흰 살이 눈부신 아침 쟁반에 제 하루를 담아
저녁의 평안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나무들도 아직 이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른 새벽에
옷섶이 터질 듯 부푼 가슴을 여미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목화송이 같은 아이들과 들판 같은 남편의
하루를 예비하는 사람이다
물 긷는 사람이여,
그대 영혼의 물을 길어
마른 나뭇잎처럼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나의 가슴에 부어다오
나는 소낙비 맞고
가시 끝에 꽃을 다는 아카시아처럼
그대 영혼의 물을 받고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되련다.
-----
가슴 뛰게 하는 시다. 스승님의 글을 읽으면 가슴 뜨거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렇구나. 이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스승님이 생각난다. 이른 새벽, 새들도 잠 깨지 않은 시간에 더운 피 당신의 삶의 정수리에 부으신 스승님. 그 영혼의 물로 나를 보듬어 주셨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주 어렸을 때 우리동네에는 우물이 마을보다 아래쪽에 있었다. 엄마는 힘겹게 물을 이고 오르막을 오르셨다. 동네 여자들은 우물에서 만났고 또 흩어졌다. 그 물이 있어 하루를 살았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힘든 길을 오르내리며 물을 길어 온 엄마가 있어 지금도 내가 살고 있구나.
두 분처럼 이른 새벽에 물을 길어 올 수는 없더라도 아침 산책으로 빛나는 하루를 맞이하고 싶다. 그 걸음 걸음에도 어떤 정기가 있어 빛을 낸다면 여태 이불 속에 있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리라.
내 작은 빛이 그대가 피우는 꽃송이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098 | 가장 자유로운 시간. | 빈잔 | 2023.03.30 | 609 |
4097 | 내 삶을 지키기 위한 배움. | 빈잔 | 2022.12.27 | 611 |
4096 | 원하는 것(Wants) 과 필요한 것(Needs) | 빈잔 | 2023.04.19 | 629 |
4095 | 신(新) 노년과 구(舊) 노년의 다름. | 빈잔 | 2023.03.30 | 645 |
4094 | 나이는 잘못이 없다. | 빈잔 | 2023.01.08 | 649 |
4093 | 편안함의 유혹은 게으름. | 빈잔 | 2023.04.28 | 652 |
4092 | 원하는 것(Wants) 과 필요한 것(Needs) | 빈잔 | 2023.05.30 | 680 |
4091 | 변화는 불편하다. | 빈잔 | 2022.10.30 | 690 |
4090 | 정서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 빈잔 | 2023.03.08 | 699 |
4089 | 아름다운 인격은 행복이다. [2] | 빈잔 | 2023.01.17 | 751 |
4088 | 파스칼의 내기 게임. | 빈잔 | 2022.11.16 | 788 |
4087 | 노력하는 자체가 성공이다. | 빈잔 | 2023.05.05 | 795 |
4086 | 풋풋한 커플과 아이스티 한 잔. [2] | 그의미소 | 2023.01.06 | 821 |
4085 |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 | 빈잔 | 2022.07.07 | 924 |
4084 | 노인과 어른 [1] | 빈잔 | 2022.04.16 | 995 |
4083 | 강자와 약자. | 빈잔 | 2022.01.01 | 1332 |
4082 | 아름다운 끝맺음 | 빈잔 | 2021.12.06 | 1379 |
4081 | [14] 워크아웃 [1] | 오세나 | 2005.08.01 | 1396 |
4080 | 심판과의 싸움.. [2] | 김미영 | 2006.06.24 | 1399 |
4079 | 다름 다루기 [2] | 신재동 | 2006.01.31 | 1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