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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8일 14시 56분 등록

갈림길에 선 그대에게

 

 

새벽에 창문을 열다가 내가 삼거리 갈림길에 살림집을 얻었다는 걸 발견했어요. 골목길 줄기지만 나는 환호했어요.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뭘 하고 싶어?’ 물음으로 떠올려본 나의 로망은 삼거리 국밥집의 개똥이 어멈이예요. 수월스님이 운영하는 삼거리국밥집에서 국밥 끓이는 중년 여자예요. 국밥집 삼거리는 세 나라의 국경이 있던 곳에 있어요. 온 곳, 가는 사연을 따지지 않고 자기 길로 잘 갈 수 있도록 맛있는 국밥 한 그릇씩 듬뿍듬뿍 담아주는 사람이예요. 직관적으로 집을 선택했는데 내가 살고 싶은 곳과 점점 비슷해져서 기분이 좋아요. 산으로 난 산책로드, 도서관이 가깝고, 베란다정원과 텃밭, 밥이 식지 않을 거리에 살고 있는 지인, 꽃을 가꿀 수 있는 돌출난간이 있고, 춤명상을 해도 층간소음 때문에 아래층 사람이 뛰어올라오지 않을 첫째 층이예요. 다만 이 집은 서북향이라 해가 안 들어요. 내 꿈 속의 집은 남향이고 시야가 시원해요. 그 집은 새벽푸른빛 속에서 새벽 일과를 마치고서 산에서 해뜨는 걸 볼 수 있어요. 지난 번 건물 입주자들은 모두 독신이었는데, 이 건물의 여섯 집 중 다섯 집은 아이를 기르는 살림집이예요.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는 아이에게 어부바를 해 주는 소리를 들어요. 인가에 살길 바랬는데 잘 됐어요.

 

며칠 동안 아침마다 선배에게 보낼 편지를 조금씩 쓰고 있군요. 새해가 오기 이틀 전 홍대입구의, 맥주와 안주는 맛없지만 벽화가 재미나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음식점에서 만났지요. 전 그날 망설여져서, 잣죽을 끓여서 시댁 전철역까지 갖다 주고 되오는 길이었어요. 죽통을 받아든 남편이 가는 게 좋겠다고 전철출구 골목을 가리키며 떠밀어주고, 선배가 전화를 여러 번 해주어 참석할 수 있었어요. 중간에 길거리에서 고기만두 사먹고 오뎅꼬치도 건져먹으며 어정거리다 간 거예요. 학교를 다닐 때는 물론이고 졸업하고서도 강기슭처럼 멀리 분리되어 있던 대학교 동문모임이었어요. 16, 18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이었어요. 돌아와서는 연결해 주어 선배에게 많이 고마웠어요. 선배는 예쁜 원피스에 부츠를 신고 고양이 펜던트를 달고 왔지요. 결혼한 이들과 안한 이들은 분위기에서 좀 차이가 있었어요. 선배는 아가씨기운을 펄펄 날리더군요. 유부녀들이 시댁 부모님 부양, 애들 맡기는 일로 이야기할 때 아가씨들은 연애를 주로 다루고요. 올해는 처음 보는 건가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얼굴 봐서 좋았어요. 내가 보기에 선배는 대학원, 외부 활동, 부장, 수업교사로서 등에 콩이 튀고 입에 단내가 나는 생활을 했던 것 같군요. 잘 견딘 걸 축하해요. 안쓰럽기도 했고요. 고생하셨어요. 잘해낼 거라고 믿었어요. 선배는 그제 우리집을 방문을 했어요. 3시간을 자고 외부단체에 강의를 다녀온다 했고, 입술이 부르터 있었고, 소파에서 잠부터 잤고, 녹두죽을 먹고 첫 번째 편지를 가지고 돌아갔어요. 오늘 두 번째 펴지를 써요.

 

인가가 아침잠을 깨기 전, 오늘치 새벽 푸른빛을 누리며 선배의 갈림길에 대해 생각해 봐요. 이미지를 떠올린다면요. 지금 선배가 있는 곳은 여러 갈래의 갈림길이 있는 공터 같아요. 자신이 온 길은 알고 있지만 그건 등 뒤에 있어요. 눈 앞의 길 중 어디로 가얄 지는 아직 몰라요. 모든 길은 안개에 싸여 있어요. 주인으로 길을 선택해서 가야할테죠. 어떤 가능성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갈림길 공터에 죽치고 앉아서 늙은 라푼젤처럼 되기, 자신이 정한 길로 끝장을 보지 않고 번번이 되돌아와서 아무 길로 갔든지 계속 걸었으면 닿았을 바다를 못 보는 경우, 남이 대신 선택해주길 기다리기가 상황의 희생자를 자처하는 태도인 듯 해요. 나 역시 나의 갈림길에 있어요. 나에게는 구본형변화경영연구원을 하고 관심분야의 첫 책을 내기까지의 기간일 겁니다. 2012년부터니 3년이 다 되어 가네요. 동서양의 고전을 읽으면서 칼럼을 쓰는 게 겉으로 주어진 과제였구요. 안에서 다룬 주제는 단일했어요. ‘자기탐색이요. 그건 통과의례의 시간이고요, 가장 나다운 나를 사는 길을 분별하고 선택해 걸어가는 과정이라고 나는 이해했어요. 아직 첫 책을 내지 못했어요. 책은 내가 혼자서 일기장, 블로그에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작가가 되었다는 자격증, 한 시기를 몸으로 뛰어 완료한다는 완주증, 새로운 출발신호 같이 느껴져요. 우리 나이가 갈림길을 제공하는 듯 해요. 중년기 전환이라고 부르는 것이요. 두 번째 스무 살, 두 번째 사춘기라고도 하지요. 그건 인생후반전을 좀 더 나답게 살기 위해 탐색하라고 주어진, 일종의 회색지대 형태의 선물이라고 나는 이해해요. 그제 선배는 길 하나를 이미 정한 사람처럼 말했어요. 남보다 늦었으니 후딱 가야한다는 급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런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선배에 대해 골똘히 걱정하고 있어요. 특히 갈림길에서는 속도보다는 바른 방향이 중요한 듯 해요. 선배가 길을 정한 것 같지 않거든요. 앞의 길은 크게 네 가지인 듯 해요. 첫째는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면 캐나다로 박사과정이든 석사과정에 가는 것. 둘째는 캐나다가 아니라 거기서 배워서 하려는 걸 한국의 공교육 안에서 실험하고 실현하는 일. 그건 장학사 같은 교육행정가의 길이겠고요. 셋째는 학교를 퇴직하고 외부 단체에서 실무자로 일하는 것. 넷째는 그냥 학교 교사로 살면서 세 번째 일을 병행하는 일입니다. 혁신학교의 창립 멤버가 되어 특수학급을 맡으면서 통합교육을 위해 일을 하는 것도 이 범주에 들 겁니다. 여러 갈래의 길은 혼란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보기에 선배가 대학원을 다니는 약 3년 동안을 갈림길시기로 보면 어떨까 해요. 이 시기가 네 가지 길 전체에 대한 준비기간, 선배 스스로에게 부여한 주유소의 시간으로 생각하면 좋겠어요. 좀 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원하던 대로 캐나다 배경이거나, 교사 학습연구년제였으면 더 좋았겠지요. 학교업무가 빠지고 지친 몸도 쉬면서 공부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어쨎든 일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는 걸로 흘러가고 있어요. 그렇다면 현실에서 목적지에 다다르는 새로운 길을 검색해서 갈 수 밖에 없는 거겠지요. 네비게이션도 그렇게 작동하죠. 분명한 사실은 대학원을 다닐 2년 반에서 3년 동안에는 지금 하는 일을 그대로 하고 있을 거라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갈림길에서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신화에게 지혜를 묻습니다. 선배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신화주제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리스신화에서 세 방향을 볼 수 있는 갈림길의 여신은 헤카테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관성을 보는 직관을 가졌어요. 중요한 길목에서 헤카테는 내면의 증인으로 조용히 존재해요. 전환의 문간을 지키는 여신이예요. 헤카테는 어렴풋이 빛을 내는 관이나 별 머리띠를 하고, 양손에 타오르는 횃불을 든 달의 여신으로 그려져요. 사람들은 그녀가 검은 개를 데리고 길을 어슬렁거린다고 말했어요. 세 방향으로 얼굴 하나씩 달려있는 조각상 헥테리온으로 표현되기도 했어요. 그녀의 활동시간은 해질 무렵이었어요. 낮에서 밤으로 가는 시간이죠. 그녀는 보통 자신의 동굴에 머물러요. 신화에서 동굴은 지하로 가는 입구, 생명의 세계와 죽은 자의 그늘을 잇는 통로입니다. 지하세계는 집단무의식과 개인무의식으로 비유되기도 해요. 꿈과 동시성에 주목하고, 의식과 무의식을 잇는 여러 가지 것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헤카테를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헤카테는 출산을 돕는 산파의 모습으로,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게 도와요. 조산사 헤카테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잉태하여 해산하도록 돕기도 하죠. 영매나 심령술사로 그려져요. 여성의 3단계를 말할 때 이름이 거론되어요. 처녀 페르세포네, 어머니 데메테르, 할머니 헤카테죠. 달의 상태를 의인화한 건 초승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만월의 여신 셀린느, 그믐달의 여신 헤카테입니다. 술을 따르는 처녀여신 헤바, 결혼의 여신 헤라, 길림길의 여신 헤카테로 하기도 하죠. 헤카테는 지혜로운 할머니로 이 모든 걸 수렴하는 듯 하군요.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중세 때는 마녀의 여왕, 유령의 여왕이라 불렸어요. 시인 사포는 그녀를 밤의 여왕이라 불렀죠. 신화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대낮에 지하세계로 납치된 딸 페르세포네를 찾으러 다닐 때예요. 딸이 유괴당하고 데메테르가 미친년처럼 먹지도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온 세상을 헤매다닐 때 헤카테가 처녀의 비명소리를 들었다며 태양신에게 물어보라고 조언해요. 헤카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도록 해요.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서 돌아온 후 헤카테가 페르세포네를 내내 동행했다고도 해요. 그건 지옥의 경험을 겪으면서 페르세포네가 헤카테의 지혜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겠지요. 그녀는 내면의 목격자이기도 해요. 다중인격을 가진 이들 안에서 인격이 교체할 때도 그걸 지켜보는 눈이 있다고 해요. 선배나 내게 갈림길을 수호하는 헤카테 여신의 지혜와 보살핌이 함께 하길 빕니다. 갈림길에 선 이들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인 동굴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한 듯 합니다. 기도, 명상, 꿈 관찰, 뭐든 직관과 접촉할 수 있고, 무의식의 지혜를 듣는 작업이겠지요. 명상의 방법은 다양하다고 해요. 어떤 이는 달리기를 하면서, 춤을 추면서, 산책을 하면서, 음식을 만들면서 명상을 해요. 꿈일기를 쓰고, 모닝페이지를 하는 게 나한테 맞는 방식인 듯 해요. 선배에게 맞는 것이 있겠죠. 찾아보시기를요.

 

갈림길 공터의 이미지는 윌리엄 브리지스의 중간지대의 개념을 상기시켜요. 그는 변화와 변환을 구분했어요. 변화는 새로운 도시로의 이주, 새로운 일자리로의 이직, 아이의 출생, 아버지의 죽음, 직장에서 경영자의 교체, 회사의 합병과 같은 상황적인 것이예요. 하지만 변환은 심리적인 것이예요.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내적, 심리적으로 일어나는 새로운 방향설정 혹은 자신에 대한 새로운 정의라고 할 수 있어요. 변환은 변화를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과정인 거죠. 변환이 없다면 변화란 단지 가구를 재배치하는 것에 불과해요. 흙으로 빚은 항아리를 불에 구워서 화학적으로 변성시키는 시간으로 나는 그의 변환개념을 이해했어요. 한 세계는 끝이 났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그 시기를 윌리엄 브리지스는 중립지대로 불렀어요. 그건 일종의 통과의례의 기간이기도 해요. 번지점프도 통과의례로서 시작되었다고 하더군요. 어떤 인디언 부족의 통과의례는 눈을 가린 채 며칠치 식량만 주고 숲으로 데리고 가서 혼자 풀어놔요. 소년은 순전히 혼자의 힘으로 찾아와야 해요. 그 시간을 통해 소년은 죽고, ‘어른 남자’ ‘부족의 전사가 한 명 태어나는 겁니다. 그는 변환을 겪는 이들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해요.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라, 완충장치를 만들어라, 행동을 위한 행동은 하지 마라, 나 자신을 돌봐라, 변화의 이면을 탐구하라, 이야기할 누군가를 찾아라, 변환을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 잠시 동안 비옥한 일시적 중단 상태에서 생활하고 해답을 갖고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하라 등이예요. 그는 중립지대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도 나름 제시하고 있어요. 1.중립지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당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라. 2. 혼자만의 시간과 장소를 찾아라. 3. 중립지대의 경험을 일지로 써라. 4. 자서전을 써라. 5. 당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 지 발견할 기회로 삼아라. 6. 오늘 당신 삶이 끝난다면 당신 삶에서 무엇을 고칠 것인지 생각하라. 7.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며칠 여행을 떠나라. 음미해 볼만하지 않습니까?

 

갈림길 공터에서요, 일단 빨리 길을 결정해서 움직이기 보담, 거기 머물도록 자신을 허용하는 게 매우 중요한 듯해요. 속도를 능력과 효율성의 척도로 생각하는 우리 시대에 머무는 걸 선택하는 데는 결단이 필요해요. 이 시기의 주된 일은 길 찾기겠죠. 어떻게 목적지와 방법을 찾을까요? 자기 탐색과 세상에 대한 공부가 절실한 때입니다. ‘진짜로 내 길을 찾아내려면 자기의 목소리를 깊이 듣고, 주변을 살펴여 합니다. 어느 길로 가든 쓸모 있는 기초체력을 기르고, 공통되는 징검다리를 놓고,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든 나에게 부어대고, 나를 먹이고 챙기고 채우는 겁니다. 앞으로 긴 여행을 해야 하니까요. 한 단어로 말한다면 그건 공부’, ‘충전’, ‘살핌일 겁니다. 선배는 대학원을 다니며 자신이 가장 원했던 공부로 자기에게 붓고 있으니 그 안에서 탐색이 있겠지요. 하루 8시간에서 12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있으니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도 쓸모가 있어야 할 테지요. 직장에서도 연구를 하면 어떨까 싶어요, 주어진 일꺼리의 업무가 아니라 선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직무로 가득한 영역이라고 이야기했던 걸 기억하시죠? 그러니 그 업무도 선배의 에너지를 쓰기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선배를 채울 수 있고, 재미나게 신나게 일할 수 있고, 그 조직 안에서 머물든 밖으로 나오든 필살기로 기를 수 있는 업무 분야예요. 이것의 현실적인 이득과 네 가지 길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전의 편지에 길게 이야기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선택과 집중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일단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에 동감해요. 현재처럼 여러 머리를 가진 채로는 어려워요. 머리를 잘라내야 하는 건 마땅해요. 그런데 어떤 머리를 잘라낼 건지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되어요. 선배는 지금 외부활동이라는 머리를 두고 업무부장을 자르려 하고 있어요. 근무시간 내의 직무보다 근무시간 밖의 것에 더 비중을 두려 하고 있어요.

 

머리를 자른다니 그리스신화의 두 괴물 메두사와 히드라가 생각이 나는군요. 메두사는 머리가 뱀인 괴물이예요. 아테나여신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사랑을 나눴다고(또는 겁탈당했다고) 아테나여신이 괘씸죄를 적용해, 아름다운 여인 메두사를 머리카락이 뱀인 괴물로 만들어버렸어요. 히드라는 헤라여신이 보낸 괴물인데요, 역시나 무수한 머리가 달려있어요. 두 괴물은 영웅에 의해 퇴치되어요. 메두사는 페르세우스, 히드라는 헤라클레스가 목을 베어요. 메두사의 목을 베는 건 공정이 복잡하니까 히드라 퇴치 이야기를 해 볼게요. 그리스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사자 가죽을 쓰고 몽둥이를 들고 조각과 그림에 등장하는 근육맨이예요. 12과업으로 유명해요. 괴물이나 야생의 동물을 퇴치하거나 생포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어요. 그의 두번째 과업은 독사인 히드라를 죽이는 일이었어요.

 

헤라가 진노해서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 히드라를 보낸 사연은 이러합니다. 이집트 출신의 다나오스는 형 아이킵토스가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자신의 딸 50명과 결혼시키자며 아들 50명을 보내자 조카 50명의 목을 베어 레르나의 호수에 던져버립니다. 억욱하게 죽임을 당한 아들 50명의 원한, 또는 신성한 결혼을 모독에 분노한 헤라여신의 진노로 헤라여신은 히드라를 레르나 호수에 보냅니다. 머리가 50개인 괴물 히드라는 여러 세대동안 골칫거리였어요. 여행객을 잡아먹었어요. 히드라의 목을 하나 자르면 잘려나간 목이 2개로 늘어납니다. 그래서 곧 히드라의 목은 100개가 되지요. 이거 뭐 나무도 아니고 순따기 하듯이 나네요. 헤라클레스는 이올라스의 도움을 얻어 히드라를 죽였어요. 죽인 방법은 두 가지로 전해져요. 100개의 머리 외에 진짜 머리를 베어 히드라를 죽였다고도 하고요, 또 다른 전승에서는 목을 벤 자리를 불로 지져서 머리가 다시 나는 걸 막았다고도 해요. 우리나라 민담에서 목을 자르면 두 개가 되는 괴물을 퇴치한 방법도 비슷해요.

 

저는 첫 번째 방법, 머리 중의 대빵 머리를 베어 퇴치했다는 데서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이거다 싶은 거예요. 나도 선배도 엄한 데다 힘 낭비하지 말아야 해요. 지지부진한 개평, 부록 머리들은 다 내팽개치고요 정말로 핵심적인 원뿌리 머리 하나만 공략해야 해요. 그리고 그걸 내가 댕강 잘라내야 괴물을 퇴치할 수 있어요. 괴물을 퇴치한다는 건 그 괴물의 힘을 내 안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예요. 모험을 떠난 기사가 용을 죽이는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나의 갈림길에서 구본형 선생님이 <맹자 (孟子)>에 나오는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을 들어 당부한 것과 통한다고 읽었어요. 불영과불행은 물이 흐르다 웅덩이를 만나면 그 웅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예요. 연구원 입학여행을 갔던 정선 아오라지에서 들은 말이라 각인되어 있어요. <마지막 편지>에서는 잡다하게 자신을 쓰지 말라며, 이렇게 뜻을 새겼어요. ‘작가가 되어 살아도 좋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매일 글을 쓰고, 그 글들이 페이지마다 연결되어 같은 방향으로 물길이 되어 흐르게 하라. 혹 커다란 웅덩이가 나타나 물길이 막히고 고여 더 나아가지 못할 때도 쉽게 던져 버리고, 다른 주제, 다른 영역, 다른 재미로 도망가지 말고 매일 그 커다란 웅덩이를 조금씩 채워 가거라. 그 거대한 웅덩이가 다 차면, 그때 비로소 호수가 만들어진다. 웅덩이가 클수록 호수도 커진다. 채우는 시간이 길수록 수량이 풍부한 호수가 되는 것이다.’ 나는 딴 짓 하지 않고, 어렵긴 하지만 재미난 신화주제에 대해 읽고 쓰는 것일 겁니다. 괴물 히드라의 핵심 머리가 선배한테는 뭘까요? 그동안의 사귐을 토대로 추측해봐요. 특정 단체의 이름이 아닌, 태도, 삶의 가치, 지향으로서의 운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건 나의 추정이고요, 선배가 대답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이 무엇이든 그 머리 하나를 선택하고 불영과불행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또 하나는 메두사와 히드라의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는 칼이 필요해요. 칼은 모든 창조신화에 등장해요. 아기 태어날 때 탯줄을 자르듯이요. 칼은 이성을 상징해요. 매우 이성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합리적, 현실적으로 통찰하는 게 필요해요. 선배가 감성이 발달한 사람인 걸 알아요. 감성과 함께 이성을 벼루어 써야할 때인 듯 해요.

 

저는 오히려 현재로서는 활동의 머리를 자르는 게 더 낫다고 보는 편이예요. 왜냐하면 선배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되는 운동은 남은 평생 동안 할 일이니까요. 그리고 현재의 그 활동은 근무외 시간에 할 일이니까요. 나침반이 가리키는 정북향, 길을 잃었을 때마다 참조하게 되는 별인 운동과 현재의 활동은 구분해 생각할 필요가 있는 듯 해요. 지금이 중간지대의 시절인 걸 감안해서요, 다른 변화는 주지 말고 대학원 과정을 나에게 집중하면 좋겠어요. 자신을 잡다하게 쓰지 말고 근무외시간에는 공부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는 대학원 공부를 포함하여 나를 위한 투자가 될 겁니다. 근무외시간에 다른 활동을 하면서 병행하기에 어려움이 많아요. 욕심이예요. 연구업무를 남기는 건 이것이 공부와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고요, 어차피 학교에 남아있어야 하는 3년간 임금 받는 자로서 마땅히 보내는 8시간 노동시간 중에서 할 수 있는 나의 필살기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4가지 길 모두를 대비할 수 있고요. 갈림길 공터, 중간지대에서 함 직한 일입니다.

 

선배. 나의 느낌은요 아직 길이 명확히 정해진 것이 아닌데 다른 모든 가능성을 끊어내고 황급히 한 길로 나서려는 성급함이 만져져요. 안타까와요. 부차적인 머리들을 자르고, 가장 중요한 것만 선택해서 갈림길 공터에 더 머물도록 자신에게 허용하면 좋겠어요.

 

 

 

 

참고문헌

 

<우리 속에 있는 지혜의 여신들> 진 시노다 볼린, 또하나의 문화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이윤기, 웅진지식하우스

<머리 아홉 달린 괴물> 이수출판사

<마지막 편지> 구본형, 휴머니스트

<필살기> 다산라이프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 윌리엄 브리지스, 물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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