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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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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8일 20시 5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이 책의 저자 김형경은 1960년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강릉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경희 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추리 소설을 좋아했던 작가의 어렸을 적 꿈은 탐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탐정이 되기가 어려웠고, 꿈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남은 것이 작가였다. 성장기 때 책을 좋아한 작가는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국문과에 진학했지만 습작하는 시기에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녀의 동기는 류시화나 이문재 등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으로 스타였던 작가들로, 그녀는 그 친구들 사이에서 기가 많이 죽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작가로 하여금 책도 많이 읽고 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글을 쓰게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1983년 『문예중앙』에 시로, 1985년 『문학사상』에 중편 「죽음잔치」로 등단했다. 그녀는 국민일보 1억원 현상 공모 당선작인『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로 독자들의 뇌리에 `김형경'이라는 이름을 굵게 새겨 놓았다. 『새들은 제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80년대를 지나온 젊은이들의 사랑과 고뇌, 그리고 그 시절의 상처를 보듬고 현실을 살아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자신의 파란 많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그녀의 두 번째 장편인 『세월』은 작가가 30여년 동안 안으로만 삭이고 있던 '봉인된 시간'의 안쪽을 송두리째 뒤집어 보인 것. '그 여자'의 어머니 이야기와 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진 유난스러웠던 가족사며 성장기 소설이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서 김형경은 대조적인 여주인공 두 명을 통해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성에』에서는 사랑과 성, 유토피아 등 우리의 삶에 깃들어 있는 환상에 대한 주의 깊고 세밀한 고찰을 보여준다,

 

그녀는 주종목인 소설집 이외에도 심리에세이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내재한 감정의 실체와 근본에 대해 사색하는 책을 써 왔다. 40대 이후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난 후 2년 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람 사는 풍경과 내면을 들여다 보는 에세이『사람 풍경』을 출간하였으며 『천 개의 공감』에서는 저자가 이십대부터 접해온 심리학적 지식과, 실제 정신분석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관계 맺기에 절망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위로와 치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슬픔의 흐름이 막혀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금 슬픔의 강이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고자 쓴 『좋은 이별』까지 그의 심리에세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고 있다. .

 

2.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하나_기본적인 감정들

무의식 -우리 생의 은밀한 비밀 창고

23. 무의식을 산다. 그런 표현이 문법적으로 성립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분석을 받은 후 많은 사람들이 어떤 트라우마의 시기에 고착되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많은 부분에서 무의식을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유년에 형성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 이 세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 듯한 느낌, 춥고 어두운 골목에서 불 켜진 이웃의 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모두 유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유년에 만들어진 그것은 또한 객관적인 근거 없는, 유년의 환상이거나 착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착오가 생긴 데에는 엄마의 목소리가 중요했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25.
우리 삶의 중요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비밀 한 가지는 우리 대부분이 세 살까지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여섯 살까지 배운 관계 맺기 방식을 토대로 하여 살아간다는 점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인간 정신이 생후 3년에 이르기까지 60퍼센트, 여섯 살까지 95퍼센트 형성된다고 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다섯 살까지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신분석을 받은 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얼마나 정화가게 인간 정신을 설명하는 말인가 싶어 놀란 일이 있다. (‘참자기’, 제임스 F.매스터슨)

26 '
세상에는 완벽한 어머니도 없고 완벽한 자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참자기가 생겨나서 독특하고 자율적인 자기에 통합되기 시작하는 생후 첫 3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이 어린 시절의 사소했던 갈등의 잔재 때문이고 그 결과 창조성과 자율성, 성적 친밀감에서 경미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 '

27. 첫째 단계는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과 그 감정이 어린 시절에서 발단되었음을 깨우치는 일이다. 둘째 단계는 어린 시절을 우리에게서 떼어버릴 수 없듯이 그러한 감정들 또한 우리 자신의 일부임을 승복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셋째 단계는 몇 가지 제약을 가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그 감정이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거나 능력 발휘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힘겨운 일이기에 인내와 용기를 필요로 하며, 계속 반복되어야 한다.

어린 시절이 문제가 되는 사람이 성인이 되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 중에는 성을 포함한 사랑의 문제, 돈을 포함한 현실적 삶을 관리하는 능력, 생을 활기 있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놀이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실 그것은 생의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하고 핵심인 문제일 것이다.


사랑-모든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
32-33.
나는 페기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네가 얼마나 아름답고 총명한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지, 네 앞날이 얼마나 넓고 푸를 것인지에 대해 확신을 가지라는 내용을 담았을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녀의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을 키워주고 싶었다.

 

33. 생의 모든 문제는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프랑스 정신분석의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서 인간의 한평생은 거대하고 영원한 사랑의 과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곧 사랑의 역사이며, 모든 피면담자가 정신분석의를 찾아가서 하는 이야기도 결국은 사랑에 관한 것이고, 분석 치료조차 총체적이고 면밀한 전이와 역전이의 스토리라는 것이다.

36.
유치는 유아기에 제대로 된 애착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의 전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나를 갈망하면서도 내게 접근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내게 서운함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내게 투정하고 매달리는 대신 거리를 두었으며, 어느 순간 나를 향해 품었던 애착을 분노로 바꾸어버렸다
.
>>
사랑에 서툴렀던 나의 모습을 보는 듯


37.
생애 초기에 엄마와 제대로 된 애착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이 갖는 문제 중에는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이 있다. 애착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시기의 결핍이 정신의 일부로 형성되어 있어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38. 사랑의 진정한 위력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사랑할 때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면서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면으로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감정을 넘어서서 계속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통합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대상선택-타인을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과정
43.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전문 용어로는 '대상 선택'이라고 하며, 프로이트는 대상 선택의 기준을 의존적 대상 선택과 자기애적 대상 선택, 크게 두 가지고 나눈다.
의존적 대상 선택이란 말 그대로 의존할 대상을 사랑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아기가 엄마에게 그토록 애착을 품는 이유는 엄마가 먹을 것을 주고, 보살펴주고, 정서적으로 교류하며, 생존에 필요한 것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45.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앞을 볼 수 없는 남편과 걷지 못하는 아내의 한 몸같은 삶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부부는 서로의 눈과 다리 역할을 하며 어디를 가든 함께 다녔다.

아마도 그것이 사랑의 가장 핵심적이고 진솔한 속성이 아닐까 싶었다. 각자의 절박한 욕망을 얼마나 잘 충족시켜주는가,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사랑의 유지 여부가 달려 있을 것이다.

46.
자기애적 대상 선택의 특징은 우선 자기 이미지와 닮은 사람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점이다. 타인을 사랑할 때도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대상에 비친 자기 이미지를 사랑한다
.

분노-대상 상실의 감정, 혹은 돌아오지 않는 사랑

56. 자신의 욕망을 정직하게 표현하고, 그와 똑같은 정도로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며, 거절당했을 때의 감정을 성숙하게 처리하는 태도.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까짓 저녁 한 끼 같이 먹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59.
분노의 또 한 가지 속성에는 '자기애적 분노'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태생적으로 나르시시스트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이 소중하고 특별하고 선하고 정당한 사람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자기 이미지가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를 자기애적 분노라고 한다. 타인이 자기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화가 나고, 타인이 자신의 성취에 대해 비판하면 분노하고, 타인의 사소한 지적에 대해서도 저항감을 느끼는 것이 자기애적 분노다.

자기애적 사랑처럼, 자기애적 분노에도 상대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가 없다. 상대방은 그 사람을 모욕하거나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마음이 없었음에도 자기애적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분노밖에 볼 줄 모른다사업상의 거절에 대해서도 마치 자기 존재 전체를 거절당한 듯한 분노를 느낀다. 심지어 상대가 주겠다고 약속한 바 없는 사랑을 일방적으로, 근거 없이 기대했다가 그것이 오지 않는다고 분노하기도 한다.
>> 이 때문에 화를 낸 적이 얼마나 많던가.


63. '
화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아기다. 그윽한 마음으로 화를 끌어안아야 한다. '
틱낫한 스님의 ''에는 신경증적 분노에 대해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

63-64.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억압된 분노를 가지고 있다. 아기 때 엄마에게 표출하지 못한 분노뿐 아니라 성장하면서 그 감정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것을 알고 계속 분노를 내면으로 억눌러 감춘다. 그렇게 억압된 분노는 어떤 식으로든 간접적으로 표출되면서 그 사람의 삶을 공격한다. 자기 일을 미루거나 매사에 소극적으로 행동하기, 사람들을 피해 혼자있기, 타인과 세상을 의심하기, 높고 떨리는 소리로 말을 많이 하기, 습관적으로 불평불만 늘어놓기, 짜증스럽고 신경질적인 말투로 이야기하기, 타인의 말에 말꼬리 달기…..이런 것이 분노가 간접적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다. 의존성, 자기 희생, 속임수, 자기 파괴적 행동도 억압적 분노와 관계가 있다.

 

65. 분노가 자신의 감정의 일부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분노의 근원을 직면하고, 분노를 자신의 의식으로 통합시켜 체험하도록 한다.

이제 나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었다. ‘화를 잘 낸다함은 분노를 느낄 때 그 감정의 근원을 빨리 알아차리고, 화가 났다는 사실을 적대감 없이 상대에게 표현하고, 그런 다음 그 감정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분노는 누구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나의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분노의 본질에 대해 간결하고 명쾌한 정의가 하나 있다. 5분 이상 화가 난다면 그것은 나의 문제다.'화를 잘 낸다 함은 어떠한 분노도 5분 안에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울-정신의 착오, 혹은 마음의 요술 부리기

70.
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사랑이고 다음으로 중요한 감정이 분노라면 그것들의 연장선상에서 세 번째로 주의 깊게 돌봐야 하는 감정은 우울증이라고 한다.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들은 분노가 억압되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할 때 우울증이 생긴다고 보았다. 외부로 표출되지 못한 감정들이 내면으로 돌려져 자기 파괴, 우울증, 자살 등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우울증은 돌아오지 않는 사랑,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슬픔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76. 삶에 장애가 되는 사랑이나 분노의 감정이 유아기에 형성된 것이듯 우울증 또한 현실의 문제에서 생긴다기보다는 의식의 어느 부분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과 기타 정서장애에 접근하는 '인지요법'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기분은 우리의 '인지' 또는 생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바로 그 정신적 왜곡들을 정확히 가려내고 제거하여 기분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 치료법이라고 한다.
'
우울함을 느낄 때 당신의 사고는 부정성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그런 때는 자신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어둡고 침울한 용어로 지각한다. 당신의 정서에 혼란을 일으키는 부정적 사고에는 거의 언제나 커다란 왜곡이 포함되어 있다. 그 비합리적으로 뒤틀린 생각이 당신 고통의 중요한 원인이다
. '

77.
생각해보면 내게도 우울증이 찾아올 때면 의식의 왜곡 현상이 늘 함께 오곤 했다.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들끓어 올랐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다는 자기 비하감, 근거를 알 수 없는 죄의식,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 전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바로 그런 생각이 인지 왜곡, 즉 마음의 착각이며 유아기의 환상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우울증은 내 마음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난장판이며, 정신의 착오일 뿐이었다.
이제 나는 우울증을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틀림없이 이런 상황 중 하나다. 일주일 이상 운동을 하지 않았거나, 너무 오래 사람을 만나지 않은 채 틀어박혀 있었거나, 심하게 추위에 노출되거나 햇빛을 적게 쬐었을 경우이다.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20분 정도만 걷거나 달리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라앉고, 40분 정도 지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 시간쯤 지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솟아오른다. 이렇게 사소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깨닫는 데, 이처럼 손쉬운 대처법을 터득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게 가끔 약 오른다.

불안 -사랑하는 대상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89-90.
불안 장애는 많은 부분에서 원인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추측되는 원인 줄 한 가지는 유아기에 엄마의 사랑이 일관되게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과 분노를 번갈아가면서 내밀거나, 표면적으로는 사랑을 주는데 내면적으로는 질투나 분노를 투사하거나, 조건을 내세워 사랑을 주었다 뺐었다 하면 그것을 받는 아기의 마음에 불안이 자리잡는다.

 

90.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책가방에 온갖 책과 참고서를 그득 넣어 가지고 다니던 학창시절이나, 일거리가 없으면 허전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직장생활 시절의 버릇이 모두 불안감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 불안감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있었으니 그것은 생이 안정되면…”이라는 막연한 가정법이었다.

 

91. 생이란 본디부터 그렇게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소란스럽고 깨지기 쉬운 것이라는 것을. 본래 그런 삶을 유독 불안정하게 느꼈던 것은 내면의 불안정 때문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정상적인 삶조차 불안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내면의 불안감을 인식하고 수용하자 오히려 불안정하다고 느껴온 삶의 조건들을 파도타기 하듯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의 안정을 꿈꾸는 대신 어떻게 파도타기의 중심을 잘 잡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은, 적어도 내게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발견이었다.


공포-분노가 가면을 쓰고 다른 대상에게 옮겨진 것
98.
정신분석을 받고 깨달은 것은 그 폭발적인 공포의 감정이 모두 억압된 분노라는 사실이었다. 아기 때부터 억압되고 내면화된 분노는 다른 감정이나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포심이라고 한다.

_선택된 생존법들

의존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대상
113. “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식의 과도한 자주성이 의존성의 뒷면이라는 것이었다.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황황해할 때마다 어디 든든한 말뚝이 있어 마음을 묶어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 때는 말뚝으로 상징되는 것이 일종의 의존 대상이었을 것이다.

>> 나 또한 나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을 중시하면서도, 일견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를 강렬하게 바라고 또 혼자서 무엇을 해내는 것 자체를 외롭다고 느낄 때가 많은 것 같다.

 

116. 의존성의 가장 대표적 사례가 사랑이며, 사랑의 중요한 속성 또한 대상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일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사람이 연인과 헤어지면 가장 먼저 다른 연인을 찾는다. 그런 이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의 속성이 의존성이어서, 그는 늘 누군가 심리적, 정서적으로 의존할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117-118. 예전의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런 일을 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이타주의이며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나갔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존재가 쓸모 있고 인정받는다고 착각하기도 했고, 스스로 관대한 사람이라는 오인 속에서 그 일을 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이 내면의 고통이나 삶의 어려움과 맞서지 못한 채 관심을 외부로 도리는 방어적 태도였으며, 무엇보다도 억압된 의존성이 반대행동으로 표출된 거임을 알게 되었다.

 

119. 그 대신 한동안 내 몸과 마음의 건강, 내 욕망, 내 삶에 필요한 것을 보살피고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타인의 입장보다 내 입장을 먼저 생각했고, 부당한 의존성이 느껴지는 부탁, 심리적으로 저항감이 드는 청을 거절했다. 달라진 내 태도에 대해 나와 상호 의존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친구들이 분노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그들의 자기애적 분노일 뿐이어서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네 속에서 엄마를 부르며 투정하는 아기는 다른 누구도 보살펴줄 수 없어. 성인이 된 네가 스스로 보살펴야 해.

 

120. 라캉은 정신분석의 끝에서 피면담자가 느끼는 감정에 고립무원의 느낌이 있다고 한다. “아무한테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의존성이 극복되는 지점, 우리가 진정으로 독립할 때 맞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황인숙 시인의 시집 '자명한 산책'에 실린 첫 번째 시는 ''이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중독-의존성이 심화 극단화된 상태

134.
만약에 내게도 어떤 지독한 면이 있다면 그것은 금연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을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면의 그 모든 부정적인 면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내 것으로 인정했다는 점, 인정했을 뿐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점, 그 과정에서 외부의 부정적 반응과 부작용을 감수했다는 점.

 

135. 중독을 치유하는 일은 정신의 지층을 재배열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라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알코올 클리닉이나 금연 학교에 대해 다룬 내용을 보면 그 과정이 거의 자기 파괴의 지옥에 가깝다. 그것이 힘든 진짜 이유는 심리적인 해체가 선행되어야 하며, 절대로 돌아보고 싶지 않은 내면으로 들어가 유아기의 고통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쉽지 않을 때 전문가들은 차선책으로 부정적 중독을 긍정적 중독으로 바꿀 것을 권한다. 알코올 중독은 운동 중독으로, 흡연 중독은 독서 중독으로.

질투-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

147.
나도 큰소리로 화를 내거나 싸우고 싶은 때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고 하면 벌써 심장이 쿵쾅거리고 팔다리가 떨려서 거의 마비에 가까운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소리라도 지르려 하면 거대한 손이 울대를 누르는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폭력 앞에서 처하는 그 신체적 심리적 상태는 성인의 것이 아닌, 겁에 질리고 무력한 아기의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유아기의 어느 지점에 싸움하는 부모, 그 사이에서 죽음과도 같은 공포를 느낀 아기가 있는 것 같았다.

 

148-149. 전문가들은 질투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가치 있다는 느낌, 자신이 소중하다는 감정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자기 존중감이 확고한 사람은 불필요하게 가상의 경쟁자를 설정하지 않으며, 설사 환상 속에서 경쟁하는 일이 있더라도 쉽게 패배하지 않는다.

 

시기심-타인이 가진 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

155-156. 질투심이 세 사람 사이의 감정이며 그 심리적 배경이 '사랑 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 이라면, 시기심은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며 그 심리적 배경은 '상대방이 가진 것이 내게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159. 그 물건들은 내 필요가 아니라 내 결핍감이 원한 것이었고, 나의 욕망이 아니라 나의 시기심이 사들인 것이었다. 소비자의 시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상품을 광고하는 기업이, 잘 살아보세라고 부르짖으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달려온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것을 갖고자 달려나가는 이웃들이 시기심을 부추기기도 했을 것이다. 결핍감을 직면한 이후 그것이 거품처럼 사위는 것이 느껴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분열-세상을 반으로 축소시키는 태도
171.
이제 나는 특정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라고 표현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의 내면에 혹시 이런 목소리가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
'
나는 '좋은 사람'의 억압을 좋아해. 그 사람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억압하여 점차 무력한 사람이 되어가는 게 좋아. 그리하여 나를 공격하거나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점, 나의 경쟁자가 되지 않는 점이 좋아. 그가 마침내 암에 걸려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기뻐. '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담도 심리적으로 진실이었다. 남에게 욕먹는 사람은 자신의 부정적 내면을 억압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솔직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덜 고상해 보일지는 몰라도 심리적으로 불편하지 않고, 생의 에너지가 억압되지도 않고, 암에 걸리지도 않는 삶을 살 것이다.
>>
눈치를 보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 나답게 용기를 낸다는 것. 내가 지금 계속 생각하고 집중해야 할 덕목일 것이다.

 

172. 나는 오래도록 이타주의가 생의 소중한 덕목이며 미덕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타주의란 내면의 고통스러운 감정과 생의 어려움을 마주 보지 못해 그것을 외부로 옮겨놓고 타인을 보살피고 돌보는 방어기제일 뿐이라고 믿는다. 이타주의 방어기제는 특히 병리적 의존성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펼친다. 많은 정신 치료자들도 자신들의 직업이 일종의 병리적 증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다룸으로써 자신의 어려움을 피하는 방어적 태도라는 고백이다.

>>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해결책을 잘 내어놓고, 그들을 돕는 방법도 정확히 알며,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나 또한 그 자리에 함께 해주기를 바랄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것저것 다 퍼주는 삶을 살았던 예전의 내가 생각난다. 지금도 나는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해 예전처럼 과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지레 앞서 무언가를 도와주려 하는 모습도 여전히 남아 있다.

 

예전에 나는 좋은 사람, 이타적인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당위적 가치를 버렸다. 대신 나의 내면에 좋은 사람/나쁜 사람, 이타적인 사람/이기적인 사람, 정의로운 사람/비겁한 사람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스스로 정의롭다고 자처하는 사람을 만나면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느낀다. 정의라는 것 역시 입장에 따라 상대적인 가치이며 심리적으로 분열과 투사 방어기제, 나르시시즘, 도덕적 분노 등이 결합한 산물이 아닌가 의심해본다. 

 

173. 이제 나는 인간의 속성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한다. 한 인간의 내면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댄서와 화가,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어둠이 밀려오는 밤바다를 지켜보면서 울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네팔을 여행할 수 있는 사람과 여행할 수 없는 사람……이 모두 존재한다고.


투사-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타인에게 옮겨놓기
177.
우리가 타인에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은 대체로 투사일 경우가 많다. 타인의 이기적인 면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은 대체로 이타적인 사람이겠지만 그 사람의 내면에도 억압당한 이기심이 들어 있게 마련이다. 타인의 성적 방종에 대해 유독 분노하는 사람은 성적으로 도덕적인 사람이겠지만 그의 내면에도 바람둥이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수다스럽고 경솔한 사람을 경멸하는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도, 거짓말하는 사람을 경원시하는 정직한 사람도, 저마다의 내면에는 바로 그들이 인정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바로 그 부정적인 측면이 억압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난할 때 그 행위는 곧 자신에 대한 비난이 되는 셈이다.

187. 투사 현상을 통해 나 자신의 추악함과 나약함과 못남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나자 내 탓이라고 말하는 단계가 어디쯤인지 절로 알 것 같았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정신의 힘이 강해지면서 마음의 경계가 넓어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책임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어떤 외부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자리가 어디인지 짐작할 것도 같았다.

이제 나는 사람들이 탐욕스럽게 보이고 타인들이 나를 시기한다고 느껴질 때면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지나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타인의 소유물 중에서 무엇을 파괴하고 싶은가?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지금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똑 같은 심리적 이유로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내면을 타인에 쏟아부어 이야기하고, 내면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남에게 보이는 관심을 반만 줄여도 생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역시 게슈탈트의 말이다. 우리가 남에게 보이는 관심이란 대체로 시기심이거나 의존성이거나 투사의 감정 같은 것들의 결집이기 때문이다.


회피-자기 자신과 삶으로부터의 도피
191-192.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절집 요사채나 여행지 숙소를 좋아하는 마음에 도피나 방어 심리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의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이 없는 공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간, 너절한 일상이 주변부가 섞이지 않는 사유..... 낯선 숙소에 대해 생각하는 그 모든 수사들은 삶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의 말투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절에 드나들었던 저 이십대부터 낯선 도시를 떠도는 그때까지 간단없이 도피하고 있었던 셈이다. 삶으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192-193. 오래 전부터 나는 늘 낯선 곳으로 멀리 떠나기를 꿈꾸어 왔다.

비로소 모든 게 확연해졌다. 틀림없이 여행 습관이 일종의 방어의식이었다. 삶의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가지 못해, 내면의 고통과 직면하지 못해 어디론가 도망치고자 하는 행동이었다. 표면적으로 그 여행은 정신분석에서 알아낸 많은 것들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고 넘어서기 위한 완충지나 숙성기의 시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분석을 받으며 헤집어진 고통스러운 감정,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삶으로부터 멀리 도망친 행동이었다.
나중에 그런 방어의식을 전문 용어로 '회피'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상황,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라는 것이다
.

197.
성인 중에도 평소에 잘 웃는 사람, 민망한 상황을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분노를 체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웃어넘기는 사람은 웃음을 방어기제로 활용하는 셈이다. 타인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유머를 던지는 사람은 더 적극적으로 웃음 방어기제를 활용하는 사람이다.

 

197-198. 칭찬 역시 방어기제라고 한다. 칭찬에는 말로써 타인을 조종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말이 있지만 그 말에서 칭찬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칭찬이 아니라 인정과 지지이다. 칭찬의 심리에는 소극적 시기심과 적극적 방어의식이 숨어 있을 뿐이다.

198. 타인에게 충고하기 좋아하고, 남을 가르치는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의 심리도 방어의식이다. 그런 이들은 충고와 조언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을 지배할 수 있어야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이들은 타인들로부터 어느 정도 신망을 얻고 있어 상담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실천해야 할 덕목들을 타인의 삶에 충고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방어적이라고 한다. 유아기 때부터 외부의 고통스러운 삶, 상황, 감정으로부터 자아를 방어하며 그 기질은 평생 지속된다.

198-199. 정신분석을 받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맞닥뜨렸던 것 역시 방어의식이었다.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종류의 방어의식이 나의 내부에 있었으며 방어의식에 갇혀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는 듯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낯선 숙소에 머무는 듯한 삶, 저편 언덕에 닿지 않는 다리 위를 걷는 듯한 삶, 거대한 방패에 갇혀 있는 듯한 삶, 그 속에서 정신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생은 진퇴양난의 계곡에 방치되어 있을 것이다.
사랑의 반대말이 증오나 분노가 아니라 '무관심'이듯,
생의 반대말은 죽음이나 퇴행이 아니라 '방어의식'이 아닐까 싶다. 방어의식은 사람을 영원히 자기 삶의 바깥에서 서성이게 만든다.

동일시-타인을 받아들여 나의 일부로 만들기
213.
거리 예술가들의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과 자주 접하면서, 내면에 있던 예술가에 대한 환상을 자각하면서, 예술가에 대한 이미지에 긍정적인 변화가 왔던 것 같다. 그들의 충만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알게 모르게 내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것은 소설가로 사는 나 자신의 이미지에도 틀림없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동일시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콤플렉스-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의 근원

221. 남성 콤플렉스는 여성이 열등한 세력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르시시즘의 발로라는 것이다.

 

222-223. “콤플렉스는 부정적으로 발전할 뿐 아니라 긍정적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심리적 현상이다. 정신생활에 필요한 요소로서 극복하거나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그것을 끌어안고 사랑해야 한다. 콤플렉스를 사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수치스러워하고 숨기려 했던 그것이 의식 안으로 통합되는 순간, 좀더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이 나오게 된다. 콤플렉스가 내 것이 되면서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 J 모러스의 말이다.

콤플렉스를 처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콤플렉스를 숨기고 대신 다른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보상보다 더 근본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은 콤플렉스를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하지 못하겠으면 최소한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방법이 있다.

패션에서도 신체적 결함을 가릴 게 아니라 드러내라고 충고한다. 콤플렉스는 심리적 결함이 아니라 심리적 특별함일 뿐이다.


_긍정적인 가치들
자기애-퇴행과 성장으로 난 두 갈래 길
234.
나르시시즘의 가장 큰 특징은 근거 없이 자신이 선하다, 옳다, 정당하다고 느끼는 의식이며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다는 전능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237.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미래의 어디엔가는 이보다 더 나은 삶이 준비되어 있을 거이다.’ 그런 근거 없는 기대, 대책 없는 전망이 있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지금 이곳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고, 지금 이곳의 삶이 진정하고 유일한 내 몫의 삶임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삶을 간이역이나 야영 캠프쯤으로 인식했다.

그런 생각이 나르시시즘임을 인식한 것은 명리학을 공부하면서였다….내 몫의 삶이 고작 그런 모습이라는 사실을 한동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계속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모든 이들이 저마다 타고난 인성의 그릇이 다르며, 각자 삶의 몫이 정해져 있으며, 삶의 과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을 수용하게 되었다.

 

238. '나르시시스트들의 행동 특성들은 신체를 드러내는 것(노출증), 권력 있는 지위에 스스로를 천거하는 것(자기 과신), 음식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먹는 것(자기 중심), 대가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커다란 호의를 구하는 것(특별 대우), 친구의 어려움을 보면서 웃는 것(공감 결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이용하는 것(대인 착취) 등이 있다.

240. 자신에 대한 거짓 이미지를 깨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추악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하고, 그런 모습인 채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건강하고 진정한 자기애이다.

내가 저 먼지나 띠끌 같은 존재구나 싶어지면서 어느 순간 신 앞에 납작 엎드리는 마음이 되더라.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불교 용어에 마음을 항복받는다는 말이 있다. 그때 항복받는 마음도 자신이 옳고 선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나르시시즘을 굴복시키는 의미라 짐작된다. 선배가 납작엎드렸다는 상태, 오체를 땅에 대고 거듭 몸을 낮추는 절 동작, 그 모두가 병리적 나르시시즘의 극복과 관련된 행위가 아닐까 싶다.

정신분석을 받는 과정에서 나 역시 외면하고 억압했던 내면의 것들과 맞딱뜨렸다. 지금까지 이 책에 언급된 모든 부정적 감정들, 분노, 불안, 공포, 의존성, 시기심, 질투, 모든 종류의 방어의식이 고스란히 나의 내면에 있는 것들이었다. 내면에서 그 모든 추악하고 천박한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일은 충격이었고, 그것들을 내 것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에는 아무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은 더 힘들었다.

 

241. 나는 내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정의롭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며,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며…..그런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타인의 그런 점들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점이 더욱 만족스럽다. 인류는 인간만이 특별하고 위대하다는 나르시시즘을 깨며 발전해왔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의 발견이 그럴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불안, 시기심과 함께 인간을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대표적 감정으로 꼽힌다.


자기 존중-행복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느낌
245. “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장국영)

한 사람의 사랑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처럼 가슴 아픈 구절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사랑한다' 는 말은 '타인의 욕망에 대상이 되는 일에 지극한 만족감을 느낀다' 라는 뜻이고, 또한 '나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돌볼 줄 모른다' 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내가 사랑을 느끼는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며, 그리하여 내 사랑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본 일이 없다'는 뜻과 같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른다' 는 뜻과 닿아 있을 것이다.

248. 자기존중감의 정의(미국학자 나사니엘 브랜든) 

1. 우리 자신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며, 인생살이에서 만나게 되는 기본적인 역경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며,

2. 우리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주장할 자격이 있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249. 내게도 오래도록 자기애나 자기 존중감이 없었다. 내가 평생토록 힘들게 이겨내야 했던 감정은 나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무가치하다는 느낌이었다. 정신분석을 받은 후에야 그것이 나의 객관적인 실체와 다르며 유아기에 만들어진 착각임을 알았지만 그 전까지는 명백한 심리적 진실이었다.

 

253. 자중자애의 진정한 의미가 곧 자기애와 자기 존중이었다.

 

255. 나사니엘 브랜든은 자기 존중감이 천부적으로 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습득해서 터득해야 하는 삶의 기능이라고 설명한다.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 삶에 책임을 지며,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고독을 참아내며, 성실성과 정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이라고 한다. 자기 존중감은 또한 자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긍정적인 속성을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 없이 인정하며, 자신의 부정적인 속성을 열등감이나 자기 비하감 없이 시인하는 마음, 그것이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의 본질을 형성하는 토대이다.


몸사랑-몸이 곧 정신이고 육체가 곧 정체성이다
263.
그렇게 걸으며, 몸의 감각을 느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옷차림에도 변화가 왔다. 예전에는 노출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무릎 위나 등도 드러내 보았고,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도 입었다. 전에는 결코 선택한 적이 없는 얇은 레이스 원피스나 요란한 꽃무늬 의상을 선택했다. 오직 내 몸의 감각과 욕망에 충실하게 옷을 입었을 때 그 행위에서 다시 심리적인 해방감이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여행은 몸에 대한 억압을 벗고,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몸의 욕망을 수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268. 건강이 회복되고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문체는 곧 육체다라는 저 유명한 명제를 온몸으로 이해할 것 같았다. 육체는 문체일 뿐만 아니라 정신이고 정체성이기도 하다는 것을.

옛 선사들은 몸에 병이 들어오면 마음을 활짝 열어 병을 내보냈다고 한다.

 

269. 평범한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에 병이 들어올 때 몸을 보살피는 것이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햇빛 속을 오래 걷고, 슬픔이 밀려오면 한증막에 가서 땀을 빼고, 무력감이 찾아오면 야산을 뛰어오른다. 내게 한 가지 이분법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을 이렇게 나눌 것이다. 운동하는 사람과 운동하지 않는 사람.


에로스-생의 에너지이자 예술의 지향점
273.
정신분석을 받을 때 면담자는 내게 야하고 뻔뻔하게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이 성적 도덕적 억압의 뒷면이며 동시에 내 생의 모든 열쇠가 들어 있는 지점이라는 사실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야하고 뻔뻔해져야 한다는 명제를 삶의 당위적 목표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뻔뻔하게-유아적 환상 없이 세상 읽기

290.
명분보다는 실리, 도덕적 당위보다는 손 안의 이익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그 생존 방식이 바로 뻔뻔하게가 아닐까 싶었다.

 

296. ‘뻔뻔하게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난 후 내가 오래도록 반복해온 생의 서투름의 근본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아적 환상에서 비롯된 온정주의적 세상 인식이 문제였을 것이다. 세상을 보는 틀이 잘못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오류가 잦았을 것이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다고 서운해할 때 바로 그 내 맘이 잘못된 환상 위에 서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친절-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지켜보기
305.
타인에게 과잉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을 것이다. 상대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사기 치는 사람. 심리적으로 더 문제가 되는 사람은 후자이다. 그런 이들은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가 받고 싶은 보호와 관심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방식으로 친절을 베푼다.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돌아올 호의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면서 그 일을 한다. 인간에게는 호의를 베풀어놓고 상대가 그것에 대해 보답하는지를 지켜보는 무서운 속성이 있다고 한다. 오른손이 한 일에 대해 왼손이 보답받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동안 내가 베푼 친절에도 틀림없이 그런 속성이 있었을 것이다.

308.
인간은 본질적으로 늘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행위에도 당사자의 욕망이 배제된 행위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랑이나 헌신도, 친절이나 호의조차도. 내가 타인에게 베풀었던 친절의 본질을 알게 되자 타인의 친절에 대해 특별히 감동하지도, 불친절에 대해서 서운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이 조금 더 잘 보이니 세상이 조금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정과 지지-고래도 춤추게 하는 놀라운 힘

320.
칭찬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정이나 지지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칭찬은 우선 시기심의 다른 얼굴이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재능에 대해, 그것을 빼앗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 위해 칭송하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칭찬은 또한 말로써 타인을 움직이려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칭찬의 위력을 아는 사람들은 칭찬으로써 타인을 조종하는 생존법을 사용한다. 자기 존중감이 약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칭찬에 더 많이 황감해하고, 더 많이 지배당하기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비밀 한 가지는 모든 연애 선수들이 동시에 칭찬 선수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321.
인정 중독이 되는 이유는 유아기에 칭찬과 격려에 인색한 부모, 지지해줄 줄 모르는 냉담한 부모. 감질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는 부모의 양육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런 이들은 외부에서 오는 인정과 지지를 기대하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가 내면에서 인정과 지지를 기대하는 아기를 돌보고 격려해야 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지 정신치료'라는 책에 의하면 '지지'란 모든 형태의 정신 치료의 중요한 요소이며, 카운셀러에게 필요한 기능이라고 한다. 지지는 '판단하는 마음 없이 타인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 충고하고자 하는 마음을 누른 채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정의된다. 바로 그 지지의 태도를 자기 자신에게 돌릴 수 있으면 타인의 칭찬에 그토록 들뜨거나, 외부의 비판에 그토록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자기 중심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타인에게 이르는 가장 선한 길
330.
오래 전부터 예술작품을 대하는 나의 기준은 감동이었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어떤 작품을 대할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울림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그 울림이 심장이나 두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고, 그 자극이 감정과 신체에 어떤 파장을 만들 때, 그 떨림을 세밀하게 느껴보는 것이 내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었다. 바로 그 떨림의 지점에서 공감 작용이 일어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그림 앞에서 놀란 듯 걸음을 멈출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떨림을 느끼며 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을 때, 그런 때는 또한 무의식의 어느 지점과 조응하고 있을 것이다.

331. '
불길한 붉은 석양이 퍼지고 벌써 달이 떠올랐다. 해가 지는 쪽을 향해 배 위에 앉은 다섯 여인.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다섯 여인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부짖는 여인이 있고, 수평선 끝을 향해 아주 멀리까지 시선을 밀어내는 여인이 있고, 수굿한 태도로 간절히 기도하는 여인이 있다. 그 상황에서도 빼어나게 단정한 자세, 의연한 눈빛을 허공에 두고 있는 여인이 있고, 발치에 앉은 개를 쓰다듬는 여인이 있다. 여인들은 모두 옆모습을 보이고 있고 화면 앞쪽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개 한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엎드려 있다. 털에 더러운 먼지가 많이 묻은 개는 지쳐 보이기도 한다. 화면 위쪽에서부터 덮이는 어둠이 벌써 그녀들의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 '

332.
공감은 연민이나 동감과도 구분되는 감정이라고 한다. 연민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전제로 한 감정이고, 동감은 객관적 태도를 잃고 상대방에게 휩쓸리기 쉬운 감정이다. 반면 공감은 중립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는 것이라 한다. 한 인간의 비통, 애착, 공포, 분노.... 그리하여 인간이 그토록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느끼는 상태이다. 인정과 지지 역시 공감이 전제되어야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덕목일 것이다
.
자기 마음에 고요히 머물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에도 잠시 머물 수 있다. “ 어디서 읽고 옮겨놓은 건지 모르는 이 구절이 메모지 한켠에 있었다.

 

333. 타인을 이해하고 관대하게 대하고자 마음 먹을 때 우리가 사용하는 관용구 그 사람도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다.”라는 표현 역시 타인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공감의 상태를 지칭할 것이다. 인간의 부정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위대하고 힘겨운 긍정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모두 그러하다는 자각과, 그 자각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용기-절망 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는 능력

340. 낯선 도시에 도착해 지도를 펼쳐들면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도를 몇 등분으로 분할해놓고 하루에 한 구역씩, 그곳에 있는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관람할 때면 시간이 부족해 그냥 지나쳐야 하는 것들이 안타까웠다. 영어 속담에 호기심은 고양이도 죽인다는 말이 있는 나는 그 속담의 강렬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341. 가끔은 이 지독한 호기심 역시 나의 일종의 병적 증상이 아닌가 의심하곤 했다. 발달 단계에서 호기심은 두세 살 무렵에 가장 왕성하게 발현된다고 한다. 그 시기의 아기는 오감을 동원해 눈에 보이는 것을 인식하고, 세상을 탐험하기 위해 한사코 집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전문가들은 유아의 그런 호기심을 세상과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나의 지나친 호기심은 역시 그 시기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면에 성장을 멈춘 두세 살짜리 아기가 있어 여전히 세상을 탐험하러 나가고자 하는 게 아닌가 하는. 

342. 오래도록 용기란 두려움이나 저어하는 마음 없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어떤 일을 해나가는 힘을 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롤로 메이의 창조와 용기라는 책을 읽다가 용기를 절망 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해둔 구절을 만났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처음으로 그렇다면 내게도 용기가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344. '혼자 있다'라는 말이 거느리는 이미지나 울림은 그 진폭이 상당히 크다. 고독을 잘 이겨내는 강인한 인성의 소유자라는 의미부터 외롭고 청승맞은 사람이라는 인상까지, 세속을 벗어난 독야청청한 수행자의 이미지부터 세상의 흐름에서 소외된 인물이라는 이미지까지. 아마 '혼자 있다'는 말에는 두 가지 측면이 다 존재할 것이다.
'
혼자 있기'의 병리적 측면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극단적 방어의식, 또는 분노의 표현' 일 수 있다. 상처 입은 동물은 산의 가장 후미진 곳을 찾아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다. '
혼자 있기'의 건강한 측면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분리와 개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은 채 충만함 속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정신 건강의 중요한 척도라고 한다.
롤로 메이는 생의 각 국면에서 여러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홀로 존재하는 용기, 자신의 내면과 직면하는 용기, 선이나 도덕을 지키는 용기, 신체의 힘을 잘 사용하는 용기, 창조하는 용기, 그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감정의 동요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용기. 그는 어떠한 용기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은 모두 그 사람의 무의식적 공포를 감추기 위해 사용되는 단순한 허세라고 말한다. 용기가 없다면 사랑은 단순한 의존 상태가 되고 용기가 없다면 충성심은 획일주의가 되고 만다. 용기는 일체의 정신적인 덕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다.

변화-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의 방식 수정하기
352.
오래도록 나 역시 결핍감을 추진력으로 하여 살아왔을 것이다. 그 결핍감을 메우려는 욕망을 마음의 동력 장치로 삼아 현실적인 무언가를 성취해왔다. 질투는 나의 힘, 분노는 나의 에너지, 콤플렉스는 나의 추진력….다 맞는 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나르시시즘적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욕구, 일상의 어려움이나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멀리 떠나고자 하는 방어 의식…..그 모든 것이 뒤섞여 내 삶을 이끌어온 게 틀림없었다.

삶이 막다른 곳에 부딪친 이유도 거기 있었을 것이다. 모든 정신 에너지는 양날의 칼이기에 외부로 나아가는 만큼 내면으로도 향하여 알게 모르게 나 자신에게 해를 끼쳤을 것이다. 감정을 무겁게 짓누르고, 정서의 생기를 빼앗고, 창조성을 억압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아무리 성취해도 만족감이 없었고, 이유 없이 몸이 아팠고, 어쩐지 삶이 자꾸만 퇴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생의 에너지와 추진력이 되어주었던 바로 그 힘들에 의해 몸과 마음이 무너지게 되었을 것이다.

>> 나도 그래서 무너진 것이었을까?

 

353. 평생에 걸쳐 꿈꾸어온 '삶이 안정되면....'이라는 욕망은 내 불안감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생의 구체성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은 우울증의 한 증상일 뿐이었고, '생은 아름답지만 일상은 참 너절하다'는 생각은 일상이 안락하지 못하다고 느낀 유아기의 착오였을 것이다.

>> 내 길을 찾는다면이라는 생각도 하나의 오만, 혹은 핑계, 혹은 유아기의 착오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자기 이미지도, 예전의 삶의 방식도, 앞으로의 삶의 전망도 모든 게 흐릿하고 모호하기만 했다. ‘자기 개념이 곧 운명이라는데 바로 그 자기 개념을 잡아낼 수 없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상태, 오래도록 그런 상태에 처해 있었다. 삶의 방식과 관계맺기에 이런 저런 실험을 해보면서 동료나 선배 여성들의 삶을 더 유심히 보기도 했을 것이다.


358.
인간과 세상을 보는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삶의 태도에도 변화가 왔다. 유아적 환상에 가득 차 있던 내면 세계에서 빠져 나와 비로소 객관적 실체로서의 외부 현실을 인식하게 된 것 같았다.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는 대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타인을 돌보는 것으로 나의 가치를 삼는 이타주의 방어기제를 포기했다. 외부의 인정과 지지를 구하는 대신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훈련을 했다. 남의 말이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타인의 어떤 말이다 행동은 전적으로 그들 내면에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은 타인의 언행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타고난 존재라 믿게 되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과 정서의 여러 층위들을 더 세미하게 느끼고 수용하면서도 건강한 자기 중심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359. 물론 그 모든 심리적인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여전히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들으면 분노하는 남성 콤플렉스가 있고, 자신이 선하다는 나르시시즘이 있고, 스릴과 서스펜스 넘치는 영화를 보지 못하는 공포가 있다. 내면에서 맞닥뜨리는 질투나 시기심도 있고, 계속 소설을 쓰는 행위 뒤에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이제는 그것들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들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며, 그것들을 조절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자기 실현-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일
368.
샤갈과 마티스뿐 아니라 피카소까지, 그들의 창조성의 비밀은 내면에 있는 자아의 다양한 국면을 인식하고 통합하고 표출하는 능력에 있는 것 같았다. 두세 살 짜리 아이의 것과 같은 호기심, 반항기를 드러내는 청소년 같은 분방함, 깊은 사유를 보이는 중년의 진중함, 삶의 비밀을 간파한 노인의 지혜 등이 한 인간의 내면에 공존함을 이해하고, 그 모든 국면을 표출하는 행위인 듯했다.

전문가들은 그런 행위를 '자기 실현'이라고 칭한다. 억압이나 회피의 방어기제를 벗고,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도 깨뜨리고, 외부에 내보이는 페르소나도 벗고, 진정한 자신의 내면에 닿는 것, 그것이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라고 한다. 본성의 자기와 만날 때에야 빛나는 통찰과 창조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368-369. 우리 모두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살아간다. 새로운 업무를 시작할 때, 낯선 지방을 방문할 때, 필요한 물거늘 구입할 때도 창조성을 발휘한다. 생이라는 것도 60이나 70년쯤되는 시간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기획해서 사용하는가 하는 행위가 다름 아닐 것이다. 자기 실현이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 생을 보다 지혜롭고 풍족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엮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일일 거이다.

 

371. 관광객들에게는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고, 자신은 또 자신의 방식을 지키는 그 태도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들어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태도는 덤덤하거나 심심해 보였고, 자기네 나라 문화에 대해 과장되게 자랑하거나 특별한 것인 양 포장하지 않았다. 겸손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은 그녀의 표정은 좀전에 보았던 그들의 무덤덤한 신의 표정과 닮아 보였다. 과도하게 인간을 통제하지도, 신성을 과시하지도, 복종을 강요하지도 않는 그 신들의 모습이 바로 그녀의 견고한 정신의 뿌리가 아닐까 싶었다. ‘건강한 자기 중심이 바로 저것이겠구나 싶었고, 자기 실현이 완성된 상태도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372. 종교는 자기 실현을 이룰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절대자를 향해 자신을 낮추는 행위를 통해 가장 먼저 나르시시즘을 극복하게 한다. 또한 용기, 승화, 공감, 지지 등 많은 긍정적인 가치를 내면화 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 진정한 자신의 내면과 닿은 다음 정신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도 존재의 영속성을 인식하는 데도 종교만큼 든든한 이 없다. 열대 섬의 낯선 가이드 여성이 그들의 신을 닮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것을 내게 일러주는 것 같았다.

3. 내가 저자라면

1) 목차

저자는 총 3파트로 책을 구분하고 있는데 첫 번째 파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감정들에 대한 내용들이다. 타고난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어른이 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 두려움 등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그녀가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알고 또 느끼게 된 내용들을 위주로 구성한 것 같다. 두 번째 파트는 타고난 우리의 감정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 감정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나타난 현상들을 소개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이야기해준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우리가 균형감 있는 성인으로서 더욱더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성취해야 하는 덕목들을 소개하고 있다. 자기애, 공감, 용기, 자기 실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같은 구성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찾는 형식으로 독자가 책에 몰입하고 또 본인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을 구할 수 있어 좋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심리학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감정들을 키워드를 목차로 구성한 것이 전문적으로도 보이며 어떤 내용에 대한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기는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쓴 에세이의 장점을 살려 조금 더 부드러운 방식으로 감성적으로 분석해보는 것도 좋았을 듯 하다.  


2) 본받고 싶은 내용

여행의 경험들과 그곳에서 느낀 생각들, 저자가 실제 받았던 심리상담을 통해 느꼈던 내용들을 잘 버무리고 있다. 그저 여행에세이를 읽는가 싶으면서도 어느새 '나도 그랬었지' '아 나도 그래서 그런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겠금 독자가 공감을 하게 만들어준다. 즉 가볍게 책을 읽어나가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녀가 말하는 증상에 대해 공감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물론 때로는 그녀의 시각이 맞는걸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단순히 자기 생각만 개진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시각을 빌리고 있는 것도 그녀가 제시한, 혹은 선택한 해결책들에 대해 더욱 공신력을 보태준다.


3) 개선하고 싶은 점

저자는 다소 두루뭉술하게 본인이 가지고 있던 상처들을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 감정이 어떻게 다가왔고 그래서 어떻게 괴로웠고 결국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불명확한 부분도 있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기도 했다. 조금 더 자세한 사례들을 보여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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