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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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목: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 출판사: 에코의 서재 - 옮긴이: 고혜경 2.저자 : 로버트 A.존슨
Robert A.
Johnson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융연구소에서 수학한 미국의
정신분석가이자 심리학자이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강연자이면서 수많은 책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존슨은 꿈과 신화의 세계를 존중하고 무의식의 메시지를 따르는 삶이 얼마나 경이와 신비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게
되는지, 그리고 또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영성적인 자세로 산다는 것이 어떤지를 전 생애로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옮긴이: 고혜경 신화학 박사이며 꿈 분석가이다. 미국 퍼시피카대학원(Pacifica Graduate Institute,
Santa Barbara)에서 신화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오클랜드 창조영성대학원(Institute of Culture and Creation Spirituality, Oakland)에서 영성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샌프란시스코 국제문화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참조 http://www.yes24.com/24/goods/2491603?scode=032&OzSrank=2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진정한 성장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 칼 구스타프 융 << 들어가는 말 – 그림자, 새로운 삶의 가능성>> -7 이야기에서 참으로 경이로운 대목은 샘물이 항상 어디에선가 솟아 흐른다는 사실이다. 또 생명의 물을 찾으려는 용기 있는 지성인들에게는 저마다 시대에 맞는 맞는 모습으로
이 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삶의 용기를 내면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기 내어 찾아보자. 그러면 나에 맞는 형태로 이용할 수
있으리라 -8 인간의 영혼에서 이 기대치 않았던 원천 중 하나가 바로 그림자다. 다들
제것이 아닌 양 쓰레기 처리하듯 던져버리는 장소가 자신의 그림자다. 그러나 책을 읽는 과정에서 알게
되겠지만 이렇게 우리가 거부한 그림자는 아주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생명의 물이 언제나 무료이듯, 물의 일환인
그림자에게도 돈을 낼 필요가 없다. 당혹스럽겠지만 그림자는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수용하는 일은 심오한 단계의 영적 수행이다. 이
수행은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이므로 그 자체만으로 성스럽다. 이것은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체험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림자는 우리 곁에 있었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준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림자까지도 함께 볼 수 있어야 하리라. <<
옮긴이의 말 – 빛과 어두움, 그 창조적 통함 >> -10 칼 융은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 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 -10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밝히면 밝힐수록 어두움 또한 확대된다는 것이다. 융이 말하는
전일적이란 표현도 빛과 어두움 둘 다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성장한다는 말은 집단문화가 수용하는 것과 수용하지 않는
것을 가려내어 전자를 습관화하도록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수용하는 것은
자아가, 수용하지 않는 것은 그림자가 되는데 성장은 그림자 형성과 함께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림자란 한마디로 심리의
어두운 측면이다. 그것은 자아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 내면의
유쾌하지 않고, 수치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이다. ⇒워킹맘의 죄책감도 사회에서 수용하는 것과 맞물리는
것이 아닌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2 현재 우리는 그림자와 자아라는 두 대극적인 축으로 양분되어 그 사이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다. 저자는 이 둘 사이의 모순으로 인한 갈등과 회의로 자신을 고갈시키지 말고 창조적인 통합의
장인 역설을 찾을 것을 주장한다. 역설은 의식의 진화에 있어 가장 커다란 도약의 순간이다.
그러면서 역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하지만 심오한 이미지를 제공하는데,그것이 만돌라이다. << 1장 그림자 >> -19 페르소나는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인 동시에 우리가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페르소나는 심리적인 옷이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를 대변하듯, 페르소나는 진짜 자신과 주어진 환경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 자아ego는 진짜 본연의 자기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이자, 자기가
누구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신이다. 이에 반해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분이지만 우리가 보려 하지 않거나
이해하는데 실패한 부분이다. <그림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1 인류는 천재적으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이 과정에서 인류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특질은 조화롭게 발휘되지만 위협적으로 비치는 특질은 걸러진다. 이런 과정을 겪지 않는 사람은
소위 말해 ‘원시적’으로 남아 있게 되는데, 문명화된 사회에 이들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온전하게 태어나지만 우리가 타고난 자연스런 특질 중 어떤 부분은 살아 있도록 허용하고 또 어떤 부분은 계승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문명이다. 집단문화는 우리에게 어떤 특정한 양식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자기self에서 자아ego와 그림자shadow가
분리되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이런 분리가 유증되어 내려온다. 우리가 단순한 상태의 인간으로 머물러 있지 못하고 훨씬 복잡하고
세련된 인간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문명이다. 어린이는 문명화 과정을 견딜만큼 강해질 때까지 에덴동산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22 세계여행을 하면서 나는 각 문화권의 어떤 특질은 자아에 덧붙여지고 어떤 특질은 그림자에 부가되는지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다. 문화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그것이 인위적으로 구축된 구조라는 사실은 각 나라의 차이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24 자기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감추려고 애쓰는 것 보다 그림자의 고상한 면을 발견했을 때 이에 저항하느라 더 큰 에너지를
쏟는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벽장 속에서 해골을 끄집어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일이다. 그렇지만
그림자 속에 들어있는 금을 찾아내서 자기것으로 만들라고 하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보다, 심오하고 고결한 특질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할 때 혼란스러움은
훨씬 더 커진다. 우리 내면의 금은 숭고한 소명과 관련되어 있다. 일생을 살면서 어떤 시기에는 자신의 금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러나
내면의 금을 무시하는 것은 내면의 어두움을 무시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자기 안에 있는 금을 캐 드러내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심한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며 때론 중병을 앓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강하고 두려운 체험은 때때로 필요하다. 이는
우리 내면에 대단히 중요한 어떤 것이 오랜 시간 동면을 하여 개발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점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25 종교religion란 단어는 다시 연결하고, 원천과 하나되는 상태로 돌아가며, 분리된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동물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고양시키는 세계를 다시 하나로 연결하는 영적인 과제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명이 존재할 수 없다. 문명을 이룩한 다음에는 문화가
표방하는 이상과 덕목 때문에 상실하게 된 전일성을 찾아야 한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분리된 상태로 살아가게 되며, 진화가 거듭될수록 분리로 인한 고통은 커질 것이다. -25 일반적으로 삶의 전반부에는 기술을 익히고 가족을 돌보며 수백가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문화적인 과정을
익히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반면 삶의 후반부에는
전일성을 회복하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어린이와 같은 무의식의 상태이다.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도 어린이와 같은 상태인데 이때는 의식적이다. 어떻게 보면 삶이란 그저 무의미한 왕복여행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보상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생이란 진화의 과정은 수많은 상처와 고통을 기꺼이 견뎌낼 가치가 있다.
이 여정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재앙은 도중에 길을 잃어 여정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삶의 여정위에서 길을 잃을 채 오도가도
못하고 잡혀 있는 현대인들이 너무 많다. ⇒ 이제 더 이상 헤매이지 말고 해나가자. 스스로의 전일성을 회복해나가자 < 빛과 그림자의 균형 잡기 > -27 시소게임에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신이 부여한 온전한 특질은 하나도 버릴 수 없다는 점이다. 오직 시소의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옮기는 것만 가능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느 쪽이든간에 우리가 지닌 특질은 모두 진열되어야 한다. 한
하나라도 뒤로 숨겨서는 안된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한가지 법칙이 있다. 그것은 우리 문화가 무시하고 있는 끔찍한 진리로서, 사람이 평상심을 유지하려면 시소가 균형을 이룽어야 한다는 것이다. -29 우리는 파괴없는 창조를 바라지만 그것은 가능한 바람이 아니다. -32 독일어의 도플갱어 dopperlganger란 단어는 자신의 거울이미지, 혹은 자신의 반대라는 뜻이다. -33 잠에서 깨어마자 나는 이 검은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것은 짙은
안개 속을 걸으며 감싸안은, 불빛으로 생긴 내 그림자였다. 그 작은 불빛은 나의 의식, 즉 내가 가진 유일한 빛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비록 그것은 어두움에 비해 무한히 작고 미약하지만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이것은 나의 유일한 빛이다. - 융 << Memories, Dreams and Reflections
>> -34 자아와 그림자는 같은 원천에서 만들어지고 서로 정확한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빛을
밝히는 것은 곧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 없이 서로 존재하지 못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소유한다는
말은 신성한 자리인 내면의 중심에 도달하는 것인데, 이 방법 외에는 어떻게든 내면의 중심에 도달할 길이
없다. 이 과업을 성취하지 못하면 성숙해질 수 없고 또 삶의 목적을 발견할 수 없다. 인도에는 성인의 특질을 규정하는 단어가 셋
있다. 사트 Sat, 치트
chit, 아난다 Ananda가 그것인데, 사트는
삶의 존재론적 측면을 의미한다. 대개 시소에서 좌측에 위치하는 부분이다. 치트는 이상적인 가능성으로 대개 오른편에 위치 한다. 아난다는 지복, 기쁨, 깨달음의 황홀경을 뜻하는데 바로 이것이 시소의 중심축이다. 사트와 치트가 서로 짝을 이루고 이를 충분히 의식할 때 아닌다라는 삶의 기쁨 또는 법열을 느낄 수 있다. -35 작품의 생명력은 생기가 없는 일방적인 선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성의 다양한 측면을 다 포괄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36 긍정적인 일이 생길 때마다 반드시 이 일에 수반되는 그림자적인 측면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융은 종종 친구들에게 “최근에 끔찍한 성공을 거둔 적이 있어?”라고 묻곤 했는데, 이는 빛과 그림자가 아주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37 게다가 문명의 발달은 우리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기술 혁명을 이룬
우리는 세상을 편리하게 여행하고 일상의 힘든 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연구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오늘날 평범한 가족이 기계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일은 과거의 하인 28명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얼마나 경이로운 시대인가! 그러나 우리가 이룩한 효율적인 사회의 정반대편에는 권태와 외로움이란 그림자가 불가피하게 등장한다. ⇒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겪어야 할 큰 일중에 하나이다. 권태와 외로움. 문제는 더 커지고 있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하리라. -38 현대사회의 뛰어난 창의력은 이와 함께 수반되는 그림자를 인식하고 이를 현명하게 다룰 때만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상징적 행위로 삶의 균형 이루기> -39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소의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아름다움과 선함을 가꿀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의례를 통해 이 파괴적인 면의 실체를 인정한다면 용기를 가지고 이상을 실현하고 자기 일을 해낼수 있다. 무의식은 ‘진짜’행위와 상징적인 행위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이 말은 아룸다움과
선함을 추구하면서 이에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어두움은 상징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뜻이다. -41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창의적인 만큼 파괴적이어야 하고 밝은 만큼 어두워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든 이 어두움에 대한 값을
지불할 것인가는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한다. 창조적인 일을 한 다음에 곧바로 의례나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42 융은 사람의 정신을 사고, 감정, 직관, 감각의 네가지
기능으로 분류한다. -43 현대인을 위한 신학역시 새로운 강조점이 필요하다. 시대와 관계없는 기본법들은
여전히 적용되지만, 현대인이 전일성을 향해 나아가거나 균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남과 여, 성별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 삶의 어느 시기, 어떤 환경에 놓여 있든 간에 그림자를 존중하고
우리가 잃어버리고 무시했던 특질을 되찾아야 한다. -44 영국의 작가 겸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는 “고문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예술”이라 말했다. -44 파열된 우리 세계를 치유하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일 용기와 통찰을 지닌 개개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인류 내면에 있는 투사의 기제가 강하게 작용하면 외부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 자신의 그림자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하리라. 그리고 모든것의 시작은 자신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45 누구나 개인적으로는 전쟁을 비난하지만 집단이 되면 전쟁을 일으키는 쪽에 찬성한다.
이런 파괴와 혼란을 초래한 주체는 괴물 같은 이상한 존재들이 아니라 집단의 그림자였고, 우리
모두 예외없이 그림자 형성에 기여했다. -46 서구에 전해 내려오는 경구 중에 ‘만일 한두 사람만이라도 전일성을 회복한다면
전 세계가 구원될것’이란 약속이 있다. -48 우리 개개인은 순발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어두움을 회복해야만 그 어두움을 빛과 결합할 수 있다. 우리는 빛과 어두움, 전쟁과 평화 사이를 왔다갔다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 은총을 받았다. 이것이 진정한 신성함이다. ⇒ 여기서 말하는 순발력이란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림자 투사하기> -49 의식적으로 그림자 작업을 하지 않으면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이 책임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다. -50 우리가 내면의 어두움을 바깥세계의 몫으로 돌릴 때, 인간의 심리는 전일적인 것이 아닌 부분적인 것으로 머문다. 본래
의식 속에 동화시키는 것 보다 투사를 하는 것이 쉬운 법이다.
인간 역사의 어두운 장은
타인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전가할 때 펼쳐진다. ⇒ 그 동안은 너무 쉬운 선택을 하며 살아오고,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맞부닥치고 살아가야 하리라 -51 구약성서에도 사람들의 죄(그림자)를
몰아내는 방책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고대인과 중세인들도 그림자를 다루는 방편으로
우리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투사를 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현대인은 더 이상 이런
위험한 과정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가 오길 꿈꾼다면 의식의 진화가 요청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해야 한다. ⇒ 의식의 진화를 위한 그림자의 통합. 이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53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최고의 선물, 즉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다면 자녀들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덜어주라. 심리학적으로 말해 자녀에게 깨끗한 유산을 넘겨주는 것이 가장 위대한 상속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본인의 심리구조 안으로 되가져옴으로써 자신의
의식도 진일보하게 된다. 자기 내면의 심리구조 안에서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그림자는 전일성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 그동안 보여지는 것을 주려는데 신경썼더라면 이제는 나의 그림자를 덜어서 깨끗한
유산을 줄 수 있도록 해야겠다. -55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대한다면 너는 눈멀고 이 빠진 세계로 떨어지게 될것이다.” 여러분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다룰 수 있다면 그림자 투사를 거부하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복수의 악순환을 멈출 수 있다. 타인의
그림자가 노출된 곳에서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천재적인 능력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타인에게 자기
그림자를 내려놓을 권리가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자기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 -55 융은 원수에게 감사하라고 말하곤 했다. 이는 그들의 어두움을 통해 우리 자신의 어두움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56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개인이 지닌 상이한
두 가지 측면을 화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블레이크는 우리가 형상
form 을 원한다면 천국으로 가야 하고 에너지를 원한다면 지옥으로 가야 하는데 반드시 이 둘을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면의 천국과 지옥을 직면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창의력인것이다.
저서로는 『남성 (He)』, 『여성 (She)』, 『우리들 (We)』, 『내면작업 (Inner Work)』,『엑스타시(Ecstasy)』, 『여성성의 상실과 회복 (Femininity Lost and
Regained)』, 『자신의 그림자 받아들이기
(Owning One's Own Shadow)』, 『변형
(Transformation)』, 『천상의 여인과 함께 누워 (Lying with the Heavenly Woman)』, 『하늘과
땅 사이의 균형 찾기(Balancing Heaven and Earth)』, 『충만함(Contentment)』 등이 있다.
그의 최신작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는
융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어두운 존재, 그림자를 탐구한 심리분석서이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 괴테의 '파우스트', 남미와 동유럽의 민속신앙, 중세의 마녀사냥 등 역사, 신화,
종교,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며 그림자의 존재와 의미를 탐구한다. 그림자란 무엇이고, 어디에서 기원하며, 어떻게 축적되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고, 우리가 그림자를
받아들여 완성된 삶에 이르는 과정을 친절히 보여준다.
현재 국내 대학과 대학원에서
꿈과 신화 강의를 하고, ‘신화와 꿈 연구회’ 회장으로 꿈 그룹투사작업과 워크숍 팀을 이끈다. 저서로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가 있고, 번역서로 로버트
존슨의 『신화로 읽는 남성성, He』『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제레미 테일러의 『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