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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8일 23시 08분 등록

노는 법_구달칼럼#42

 

서문

 

나는 참으로 놀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발견한 최고의 놀이는 여행이었다. , 여행이라 이름 붙이기엔 좀 그렇지만 어딘가 쏴 돌아다니면 그저 좋았다. 그 자체가 내겐 놀이였던 게다. 신이 인간을 만든 목적도 그저 놀고 즐기며 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라는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마음이 즐거워 지듯이 신도 인간이 그렇게 잘 놀며 살아가면 보시기에 좋지 않겠는가.

 

눈부시게 하얀 백사장에 야자수들이 우거진 인도 남부 코친(Cochin)이란 바닷가 마을이었다. 그런데 마을의 집이라고 해봐야 자생하는 야자나무를 기둥 삼아 삼끈 같은 것으로 바닥을 엮고, 지붕은 얼기설기 커다란 야자수 잎이나 바나나 나무 잎으로 척척 덮으면 그만이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도 있어 마치 우리네 원두막 같은 구조라 아주 낭만적이었다. 사철 여름이니 옷이라고 입은 것은 아랫도리만 겨우 걸친 천 조각이 전부다. 주로 먹는 음식은 야자와 바나나인데 특식이 필요하면 통나무의 속을 파내어 만든 카누를 타고나가 바다에 지천인 물고기를 건져오면 되었다. 천혜의 자연 속에 살고 있지만 가진 것이라곤 자기 몸둥아리 밖에 없는데도 그들은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나는 세상에 그들처럼 잘 웃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놀고 웃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그들에겐 생활 자체가 놀이였다. 나무를 타고 올라 야자열매를 따고, 카누를 타고 나가 물고기를 잡으며, 도끼질로 나무를 패서 불을 붙이고 음식을 만드는 이 모든 일이 그들에게는 놀이 같이 보였다.

물론 그들도 문명이 만든 물건들을 좋아하긴 했다. 그 중 그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했던 물건은 야외용 카세트 데크였다. 낙천적인 그들에게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있는 이 물건은 그들에게 갈망의 표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것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두 노동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잘 놀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혼돈에 싸였다. 내가 잘 사는 건지 그들이 잘 사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저들보다 가진 것은 많을지 모르나 삶을 즐기는 방법에 있어서는 그들이 나보다 몇 수 위였다. 그들은 어찌하면 즐겁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 골몰하며 애써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적으로 천성적으로 잘 놀고, 잘 웃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원래 인간이 타고난 본성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욕심 없이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삶을 놀이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것으로 치면 우리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민족인데 무엇이 우리의 놀이 속성을 왜곡시켜 일벌레로 만들었을까?

물론 우리에겐 저들과 같은 천혜의 자연이 없어 먹는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경제를 지상과제로 여기고 박차를 가해 온 요 근래 몇 십 년 동안 우리의 민족성도 변한 것 같다. 우리에겐 잘 산다는 것이 경제적인 의미로 치우친 경향이 크다. 가진 것이 많아 넉넉한 살림을 이어 갈 수 있으면 잘 산다고들 한다. 그래서 모두들 잘 살기 위한 일념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니 일에만 매진하게 되고 그 결과 점차적으로 노는 법을 잊어갔다.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중요한 무엇을 빼앗긴 듯 인생이 공허했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걸 늦게나마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그저 먹기 위하여 태어난 게 아니라는 자각. 좀 적게 먹은들 어떤가? 내가 지금 행복할 수만 있다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도 저들처럼 천진하게 놀고 싶어졌다.

 

그럼 어떻게 노는 것이 잘 노는 걸까?

정말 중요한 일에 몰입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일이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을 뜻한다. 아닌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해 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여가학자 김정운의 말이다.

이 말에 공감한다면 가장 자기다운 재미를 찾아 노는 것이 잘 노는 것이리라. 소설가 김훈도 글이 안 써질 때는 그저 논다고 한다. 강가에서 자전거도 타고 연날리기도 하면서 논다. 그의 소설에 유달리 강을 묘사한 부분이 많이 나오는 것도 그의 놀이와 상관이 있는 것 같다. 강가에서 노는 것은 가장 김훈다운 놀이이다. 김정운은 지인들과뻥과 구라를 치거나 빈티지 오디오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의 구라빨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만하다. 노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근로 환경이 놀이나 휴식에 주어지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놀아본 놈이 잘 노는데 제대로 놀아본 경험이 없다 보니 어떻게 놀아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 문제다. 기껏 논다는 것이 폭탄주나 돌리고 노래방에 가서 광란의 무대를 만드는 것이 고작이다. 일년에 일주일쯤 주어지는 여름휴가도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통에 길은 주차장이 되고 휴가지는 북새통을 이루어 휴가길이 고생길이 되고 만다. 이런 휴가 풍습이 해마다 반복 되니 차라리 휴가를 반납하고 일에 매달리는게 좋겠다는 심정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명퇴나 은퇴로 일의 일선에서 물러난다. 제대로 놀아 본 기억도 없이.

평생 일만 하다가 퇴직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이제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뜨기가 고역스럽다는 게 이해가 된다. “, 또 하루가 주어졌는데, 오늘은 뭘 하며 지내나?” 이쯤 되면 이건 문제도 큰 문제다. 평생 놀아보지도 못한 사람이 평일 대낮에 거리를 빈둥거리면 알지 못하는 곳에서 화살이 날아들 것만 같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게 된다. 일에서 멀어진 이 때를 당하여서 비로소 노는 문제가 필생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나 또한 지금껏 제대로 놀아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나와 동류의 사람들, 놀기가 두려운 사람들, 주체할 수 없이 범람하는 시간의 홍수에 갈 곳 몰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 일생에 한번이라도 제대로 놀아보자는 심정으로 내가 선택한 놀이는 전국 해안일주 자전거 여행이었다. 제대로 하려면 두어 달 정도 걸리는 만만치 않는 거리다. 두루말이 시간을 낼 수 없는 직장인이라 주말을 이용해 이어서 여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일 년짜리 프로젝트가 된다. 다행히 누군가 전국해안을 52개 권역으로 나누어 자전거 여행코스 지도책을 펴냈다. 주말에 한 코스씩 여행을 하고 주중에는 여행기를 쓰면 좋겠다. 물론 여행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놀 거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이 책은 자연과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자전거와 하나가 된 몸의 기록이 될 것이다. 바람과 희롱하며 달리는 자전거는 그 자체로 신들린 길 위의 춤이다. ‘자전거와 함께 춤을이 신명 나는 춤판에 그대를 초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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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9 11:10:57 *.255.24.171

우와~~~~ 역전이라는 단어를 덜어내니 글이 훨씬 부드럽고 좋은데요.

마치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바람이 간지럽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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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0 14:51:03 *.196.54.42

아무리 그래도 난 도무지 마음에 안들어 ㅜㅜ

서문은 그냥 이쯤 해두고 교육팀 말대로 닥치고 써야 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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