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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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9일 00시 06분 등록

떠남과만남_구달리뷰#39

구본형 지음

 

1. 저자에 대하여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서기를 선언한 후 평일 대낮 거리를 빈둥거리다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을 맞은 채로 한 달 보름의 남도 여행을 떠난 저자의 심정이 손에 잡히듯 하다. 이 책은 저자의 홀로서기를 위한 하나의 상징적 의식인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낮술을 즐기는 건달의 세계에 입문하였는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산적처럼 수염을 기르고 어엿한 건달이 되어 금의환향한 저자가 그립다.

 

2. 내가 저자라면

 

책의 핵심

 

저자는 이 여행을 통해 20년 동안 직장생활에서 길들여진 관습을 버리고 들판의 이리가 되고자 했다. 우리를 나왔지만 홀로 살아가기가 두려운 짐승에서 진정한 야생의 늑대가 되고자 했다. 그러한 상징적 의례를 품은 여행으로 남도의 포구와 섬들 그리고 지리산 유역 등 남도의 산하를 주유하면서 곳곳에 스며있는 옛사람들의 자취를 더듬으며 함께 대화하고, 거치는 곳곳 마다의 여행의 정취를 담았다.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귀향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당당한 이리의 모습이 비친다.

 

-  책의 특징과 차별점은 무엇인가?

 

저자의 작품 중에서 최고의 서정적, 감성적 에세이이다. 여로에 선 외로운 나그네의 우수에서부터 새로운 변화경영의 전문가로 홀로서기 위한 각오와 사상을 변화의 관점에서 읽고 해석한 부분이 돋보인다. 특히 자연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인간은 본래 자연이니 자연으로 귀의해야 한다는 자연주의자로서의 저자의 견해가 아주 공감이 간다.

 

- 이 책의 구성은 탄탄한가일관성이 있는가신선한가?

 

자연과 옛사람의 흔적을 따라가며 온고이지신하는 저자의 개성 어린 서정적 문체가 아주 정감이 간다. 여행하면서 그때그때 쓴 기록들을 큰 카테고리 별로 재분류하여 책을 엮은 듯하다. 특히 광장으로 끌려온 성 이야기에 있어 태백산맥의 인용문은 시의적절하여 포복절도하게 만들뿐 아니라 금기 없는 저자의 필력으로 여행기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유분방하여 거칠 것이 없으면서도 마음에 매듭을 남기는 저자만의 개성이 살아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저자의 책 중 최고로 꼽고 싶다.

 

3. 나를 무찔러온 장절

 

4
실컷 돌아다니며 마음껏 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산과 강 그리고 바다와 햇빛이 가슴에 역력해 지면 거기 가 닿으리라 믿었다
.
마음 속에 넘쳐나면 그때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생각했다.

 

개정판 서문
8년 전 회사를 나온 후에도 한동안 나는 여전히 월급쟁이였다
평일 낮에 거리를 어슬링거리면 알 수 없는 곳에서 화살이 날아드는 듯 불안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보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품삯에 길들여진 직장인이었다. 내 정신은 야성을 잃어버렸다. 우리를 나왔지만 홀로 살아가는 것이 두려운 짐승 같았다
.
내 속에 숨어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꺼집어 내는 나만의 의식이 절박했다.

 

6
턱수염이 산적처럼 길어졌을 때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 후에는 대낮에 거리를 걸을 때 나를 꿸 듯이 날아들어 나를 불안하게 했던 화살들이 사라졌다. 나는 비로서 낮술을 마실 수 있는 건달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8
조금만, 아주 조금만 먹으면 되는데 날마다 너무 퍼먹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구나.

 

10
마흔여섯 살에 매일 아침 짐을 꾸려 여관문을 나와 커다란 배낭을 매고 날마다 두려움 속을 걸었던 그곳들이었다.

 

16
나는 여행을 통해 20년간 나를 지배해 온 관습을 버리려 했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 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정신적 압박감, 월급에 대한 안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유한 책임.

 

25
기차를 타면 씩씩거리는 가쁜 호흡을 느낄 수 있다.

 

28
두 번째 인생은 절대로 바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첫째, 더 자유로울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할 것이다. 둘째, 더 많이 배울 것이다. 셋째, 배운 것을 통해 기여할 것이다. 주제 넘지 말 일이다. 내가 만족한 나의 삶만이 이 땅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행은 생략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었다.

 

29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활동적이다. 철저하게 혼자 있을 때 가장 고독하지 않다. 이제 물리적으로 갈 수 없는 지리적 오지란 별로 없다. 마음 속의 오지가 더 넓다
햇빛이 들과 밭에 내리듯이, 산과 밭과 바다에 쾅쾅 쏟아지듯이. 거기에 무슨 효율이 있는가?

 

햇빛이 맑으면 걸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여도 좋다. 마음이 가면 내 발도 따라갈 것이다. 비가 오면 뒷 골목 흐릿한 술집에서 비를 보며 앉아있을 것이고, 그것도 싫으며 초라한 객지 여관에서 자다 깨다 하며 한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나에게 장대하고 아름다운 꿈이 있는지 물어볼 것이고..

 

31
섬진강을 따라 봄길을 걸으면, 나는 매화 꽃잎처럼 날릴 수 있다. 낮에 탁주 한 뚝배기 걸치고 이 길의 강둑을 따라 걷다 보면 내가 강물처럼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흔이 되기까지 매화란 그저 그림 속 책의 그거려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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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들지 않는 자신을 그 소주병처럼 버리고 갔을 것이다. 나뒹구는 소주병을 보면서 그날 그 어줍잖은 사람이 처진 어깨로 떠난 뒷모습을 본다. 어느 날 다시 돌아 오너라. 그래서 섬진강 둑에 버리고 간 자신을 되찾아 가거라. 소주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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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건물의 앞과 뒤는 모두 위로 올리는 격자문으로 되어 있었다. 모든 창들을 열어 놓으니 건물의 배를 뚫고 아름다운 산 중턱이 시원하게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건물을 액자로 삼아 초봄이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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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도 다르다. 키도 물론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나무는 그저 나무라고 생,,한다. 참 편안한 무관심이다
조금 내려가니 주막이 있다. 온전 11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탁주 한 사발이 없을 수 없다. 아주머니가 녹두 빈대떡을 부쳐왔는데 색깔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훨씬 맛있고 바삭거린다. 녹두빈대떡은 녹두로 만들어야 제 맛이 난다. 이 말처럼 쉬운 말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 쉬운 말이 여러가지 이유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집에는 6개월쯤 자란 흰둥이 한 마리가 문 입구에 매어져 있다. 순하기 그지없다

짖지도 않고 쌍꺼풀이 살짝진 눈으로 꼬리를 살랑이며 살살 웃는다. 살이 투실하고 털이 곱다. 잠시 함께 놀아 주었다. 순하다는 것은 자신도 편하고 남도 편하게 해준다.

 

39
낙안읍성에서 만난 대장장이, 평생에 걸쳐 연마한 솜씨 덕에 그는 그 자체로 빛나고 있었다.

 

41
강렬한 황톳빛이 주는 황소같은 힘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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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턱쯤에 무르익은 절정 상태의 남근바위가 서 있다. 굵기가 적당하고 힘줄이 불끈거리며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 영락없다.

 

43
자연 속을 거닐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피곤함이 사라지는 것은 내가 그들로부터 많은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팔영산장에 짐을 풀었다. 전라도 어디나 다 그렇지만 백반의 반찬이 스무가지나 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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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은 오르막이 좋다. 흙이 두텁고 좌우로 나무들이 올망졸망하여 친근하다. 아마 산동백인 것 같은데 확실치 않,은 상록수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흥겹다.

 

45
빠르게 걸으면 나이를 알게 되고 천천히 걸으면 주위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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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봉우리들이 어찌나 영준하고 야무져 보이는지 오르기 어려울 것 같더니, 산이늘 그렇듯 일단 속으로 들면 길을 내어 품어준다. 우리 한국 사람들 같다. 겉으로는 패쇄적이고 무뚝뚝하여 말걸기도 어려울 듯이 보이지만서로 친해지면 속을 내줄 것처럼 정이 뚝뚝 흐른다. 한국인 은 산과 같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이데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두기장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산 냄새가 난다.

 

50
나의 신부 영원히 사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영무 현우"라고 써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하트가 그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영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모래사장 위에서도 영원을 그리는 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매끈한 피부와, 웃음과 재빠른 몸놀림, 그 모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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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남자들에게 쫄깃한 꼬막과 여자는 같은 맛이다. 그 안에는 한국문학이 낳은 가장 고운 여인 중 하나인 소화가 등장한다. 부끄러움과 조용한 정열을 가진 청초한 여인이다. 조그만 어깨를 가지고 있고, 조신하고 하얀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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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다리에서 가장 가까운 여관에서 자기로 했다. 아직 초저녁인데 벌써 거리의불들은 꺼지고, 바람만이 좁은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초봄의 추위는 겨울과 그 맛이 다르다. 사람을 어쩔 줄 모르게 한다. 봄은 늘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며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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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불무장등 무착대는 아름답다. 선경이 따로 없다. 지리산 속에 있지만 지리산 답지않고 섬세하고 아름답다. 지리산 속의 설악같다.

 

57
우리의 삶이 아무리 고달파도 우리는 별인 것이다. 별처럼 많은 사람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앟지만 또 별처럼 빛나며 꿈꾸는 사람임이 좋다.

 

59
스님은 산속에 홀로 사는 일과가 적적하지 않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걸망 속에 보리 건빵 한 봉지와 물 한 병 넣고 나물과 약초를 캐러 다닌다. 하루종일 산 속을 헤매다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는데 언제 심심하고 적적할 틈이 있느냐고 한다. 나물은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고, 약초는 항아리에 넣고 술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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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착대 솔잎차는 천하일미다. 시암 스님은 아무 솔잎이나 쓰지 않는다. 무착대 용바위 위;에서 자란 솔잎만 사용한다. 그 솔잎을 따서 항아리에 넣고, 스님 말도 한국 최고의 물 - 움막 뒤의 석간수의 물맛은 정말 끝내준다. -을 넣어 발효시킨 솔잎차는 일품이다. 헉헉거리며 무착대에 오른 모든 사람에게 선선히 한 대접씩 퍼주며 그들이 시원해 하는 모습을 즐기는 그런 스님이다.

 

61
내가 시암 스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중같기 때문이다. 홀로 움집을 짓고, 씨 뿌리고, 약초 뜯고, 나물캐서 자기도 먹고 남에게도 선선히 준다. 누더기를 걸치고 살지만 막히는 것이 없고 소탈하다. 좋은 차를 타ㅏ고다,니는 중들이 차를 철배낭이라고 부를 때, 자신은 등에 걸망을 매고 걸어간다. 그래야 중이라고 믿고있는 그런 사람이다. 어찌 좋아하지 않으랴.

 

그래서 출가 이전을 잊고 세속을 잊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을 잊으면 그것은 더 이상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변질이며 타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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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을 머물다 무착대를 내려올 때 가랑비가 눈과 함께 섞여 내렸다줄곧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독 속에 누군가 며칠 다녀가고 다시 혼자가 되명 그때는 허전해 진다. 스님도 사람이라 그러리라. 괜히 공부하는 사람 곁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아 여간 미안하지 않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외로움도 공부이고, 유혹도 수양에 도움이 된다. 사람 사는 곳이 어찌 진공 속의 결백만이 득도이겠는가?

 

66
매화는 여러 덕성을 가지고 있어 선비들이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고 한다. 우선 나무가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다. 매화는 희귀하기 때문에 귀하고,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추운 시절에 먼저 꽃을 피우기 때문에 고고하다. 둘째는 늙은 모습이 아름답다. 늙어서 추해지지 않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바다. 노욕에 지지않고, 작은 일에 역정을 내지않고 살수 있다면 오죽 좋으랴. 나이 먹은 매화나무는 살지지 않고 말라있다
절제하고 자제한 모습이 보인다또 매화는 꽃봉오리가 활짝 벌어지지 않는다. 꽃과 여인이 같은 개념이니 그 다소곳하고 조신한 모양 때문에 찬사를 받았나 보다.

 

68
매화는 그 자태보다 더욱 귀한 것이 향기이기 때문이다. 매화의 향기는 코로 맞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귀로 듣는 향기다.

 

69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향기가 후각적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적 마음의 흐름에 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아름다움은 감각의 경계를 벗어난다. 그래서 내면을 닦는 것이다.

 

71, 운주사
설화와 기원이 그 절만큼 간곡한 곳 또한 없다.

 

73
여기저기 여러 모양의 크기로 흩어져 있기 때문에 석불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75
미륵님들은 
왜 누워 계시나
?
새빠지게 일하는 사람들
,
쉴 줄도 놀 줄도 모르는 사람들
 
좀 쉬라고,

 

76
우리 사회는 휴식을 창조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휴식을 게으름과 소비로 인식한다.

 

77
휴식과 놀이를 창조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화적 결핍은 기계적 번잡만을 양산할 뿐이다. 먹고살기는 하겠지만 미래가 없다.

 

78
공사바위라고 불리우는 커다란 바위 위에 서서 보아야 한다. 바위 앞쪽에 잘 파인 자리 하나가 있는데 한 사람이 앉아 아래를 내다보기에 안성맞춤이다.

 

79
좋은 곳이다. 바람이 대나무 숲을 지나는 소리도 듣기 좋은 곳이다. 혼자 갔다면 그 옆에 좋은 사람을 상상 속에 불러 앉혀두어도 좋다.

 

82
나이가 들면 몸이 가벼워진다. 뼛속의 진이 다 빠져나와 그렇게 가벼워지는 모양이다. 그 가벼움은 멀리서도 보인다. 바람에 옷자락이 날리는 것만 보아도 몸이 날아갈 만큼 가볍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 옛사람의 마음에 취하다

 

74

이곳이 적벽으로 불리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리고 옛사람들이 왜 술과 안주를 챙겨 달밤에 배를 탔는지, 그리고 그 일이 아주 그럴듯한 놀이인 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밀폐된 공간에서 술을 마시거나 얼큰한 김에 노래방에 가서 노래 몇 곡을 불러보는 것이 고작인 우리들이 따라갈 수 없는 유희가 아닐 수 없다.

 

ð  달밤에 배를 띄우고 풍류를 즐기는 것은 참으로 하고픈 일인데 자연을 등진 죄로 즐길 수 없는 놀이가 되었다. 하나 지금이라도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77

해남 두륜산 대흥사 아름다운 고찰과 청허당(서산대사)의 마음이 있는 곳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싶으면 두륜산 대흥사로 가보라. 매표소를 지나 절로 들어가는 길 주위에는 수백년 묵은 나무들이 지천으로 서 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아른다워지는 것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나무를 들겠다. 특히 수백 년 묵은 붉은 한국 소나무를 보면 웅장하고 늠름한 위용이 신령스럽게 느껴진다. 밑동에 가만히 손을 대고 위를 올려다 보면 힘찬 기가 느껴진다. 굵은 허리를 껴안으면 기걸한 장부와 함께 있는 것 같다.

 

80

도대체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은 생각지 않는구나.

 

86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자연이다. 사람 역시 그러하다. 자연은 또한 커다란 도에서 벗어남이 없다.

 

94

빛나는 우담화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고

펄펄 나는 금시조가

잠깐 앉았다가 날아갔네

 

ð  혜장선사는 평소에 다산을 사모하여 만나길 원했는데, 어느 날 노인과 함께 백련사에 들려 한나절 놀고 간 다산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놓친 다음 북암까지 쫓아가며 지은 시라고 한다.

 

95-104, 다산초당 천일각에 가면 그가 뒷짐을 지고 구강포를 바라보고 서 있네

자연만큼 변화무상한 것은 없다. 자연은 곧 생명이고 생명은 곧 변화다. 천일각에 앉아 구강포 바다를 바라본다. 3시가 가가워지고 있었다. 비끼기 시작한 햇빛이 천일각 바닥으로 길게 들어와 따뜻하다. 입고 있는 검은 바지에 햇빛이 쏟아져 봄볕을 쬐는 맛이 쏠쏠하다. 햇빛을 즐기며 기둥에 기대앉아 바람소리를 듣는다. 두께가 족히 10츠는 되어 보이는 송판으로 된 천일각 마루는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다. 청결한 마루처럼 매력적인 공간은 드물다. 발바닥에 닿는 두툼한 나무의 촉감이 더없이 좋다.

 

96

매미 허물 같은 육신을 이곳에 놓아두고 혼은 잠시 여유로운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구강포 뻘밭을 저렇게 반듯한 농토로 만들어 놓았나 보다. 쌀 몇 가마니 얻고자 그 좋던 개펄밭을 매운 것이 잘한 짓인지 모르겠다. 바다가 훨씬 더 경제성이 있다는 것을 어민들은 모두 알고 있다. 모르고 있는 사람은 관청에 있는 사람들뿐이다.

 

ð  자연을 살리는 길이 긴 시야로 가장 경제적이라는 것을 정책입안자들이 알아야 하는데.. 통탄스럽다!

 

97

다망한 일상에서 적소로 유배옴으로써 자신을 위한 겨를을 찾은 다산처럼..

 

98, 다산의 <율정이별>

띠로 이은 주막집 새벽 등잔불이 파르라니 꺼지려 하누나

잠자리에서 일어나 샛별 바라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

……

나 또한 어리석은 바보 아이

망령되이 무지개를 붙잡고 싶어했다네

 

100, 다산동암

다산이 이 작은 집 한 채를 얻어 거처하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편히 자고 일어나 정진할 수 있는 반듯한 장소 한 곳을 얻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보다.

 

103

그러나 그가 정치판에서 멀리 물러나와 이곳에서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우리 역사는 위대한 학자를 한사람 가지게 되었다.

 

1822년에 쓴 자찬묘지명에는 ()을 익히고 예()를 연구하여 모든 경서까지 미쳤는데, 한 가지를 깨달을 때마다 마치 신명(神明)이 말없이 깨우쳐 주는 것 같아 남에게 고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라고 했다. 그의 공부는 신명의 도움을 받아 그 깊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몸과 영혼을 다하여 한 가지 일에 깊이 몰입하니 원래 총명한 사람의 깨달음이 그 끝을 알 수 없게 되었다.

 

ð  신명이 돕는 공부, 이것이 참 공부가 아닌가! 제가 좋아하고 하고픈 오직 한 가지 공부에 깊이 몰입할 때 오는 유레카가 아니던가!

 

104

하룻밤 쉬어 갈 좋은 민박집 하나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초당 바로 밑에 농원이 하나 있다고 가르쳐 준다.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105, 옹기 칠량 봉황리, 가업은 이어가기 어렵고,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부드러움인가 하면 서릿발로 바뀌고, 분홍인가 하면 갑자기 얼어 가짓빛으로 변한다. 먼지와 흙바람인가 하면 나미의 날개가 짓는 팔랑거림이다. 강진장은 3일과 8일에 선다.

 

109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하나의 일을 아직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방황이다. 어떤 일에 깨달음을 얻어 밝아지면 자신이 곧 그 일의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110

바람이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을 통해 머릿속으로 들어가 하도 휘젓고 다녀 머리에 바람이 든 모양이다. 바람든 무처럼 물기는 다 빠지고 섬유질과 구멍만이 남아 머리가 휑해진 모양이다. 춥고 배고파 화가 난 게 우스워졌다.

 

113, 고금도 충무사 아무도 없는 늦은 오후 이곳에 오면 한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바람이 보리밭 위를 지나면 물결치는 초록빛 흔들림이 여간 곱지 않다. 보리밭에 바람이 지나는 모습을 보지 않고 봄이 왔다고 하지 마라. 따가운 햇살에 뭉클뭉클 살아나는 붉은 흙들의 건강한 발기를 보지 못하고 봄이 왔다고 하지마라. 덕동에 내려 충무사를 찾았다.

 

ð  약동하는 봄의 느낌이 고스란히 가슴으로 전해진다. 보리밭의 푸른 물결, 붉은 흙을 뚫고 피어 오르는 초목의 꿈틀거림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봄 여행이 좋은 것은 이러한 생명의 현장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115

대장이 만일 조금이라도 공을 이룰 마음이 있다면 대개는 몸을 보존하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적이 물러나는 그날에 죽는다면 아무런 유감도 없을 것이다.

5시에 이곳에 오면 충무공의 정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대가 그의 후예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117

명나라 진린은 거만하고 무례했지만 충무공을 알고부터 진심으로 탄복하고 마음으로 따랐다. 그에게서 최선을 다하는 한 인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공의 천재와 인품을 가장 잘 알고 지내던 타국인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지휘권을 충무공에게 양보하였고, 충무공도 전리품과 적의 수급을 명나라 수군에게 양보함으로써 진린의 명분과 공로에 인색하지 않았다. 진린은 후에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와 나라를 바로잡은 공이 있다고 하여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평시에 사람에 대해 이르되, “나라를 욕되게 한 사람이라, 오직 한 번 죽는 것만 남았다고 하시더니, 이제 와 강토를 이미 찾았고 큰 원수마저 갚았거늘 무엇 때문에 오히려 평소의 명세를 실천해야 하시던고. , 통제라….

 

121, 마량의 밤 여관에서, 외로움이 그리움으로

수염을 기르고 배낭 하나로 떠돌기를 바랐는데, 지금 이 방안으로 찾아드는 외로움은 무엇인가? 내일 짐을 싸가지고 서울로 올라갈까 하다가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에 웃고 말았다. 아이들도 아내도 보고 싶다. 만일 참으로 돌아갈 곳이 없어 떠도는 나그네라면 그처럼 외롭고 지친 인생은 없을 것이다.

 

ð  본격적인 여행을 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여행 중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외로움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건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홀로 떠도는 나그네는 분명 외로울 것이다. 그런데 집에서 출근하며 일할 때는 외롭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내면 깊숙한 곳은 외롭다. 단지 다망함에 심신을 맡김으로써 잊고 지낼뿐이다.

 

122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 일곱가지 무지개색, 미풍의 부드러움, 파도의 웃음, 양의 온순한 성질을 짜내어 여자를 만들었다고 하니, 그 정도만 만들어 놓았다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짓궂게도 다시 여자의 체내에 여우의 교활함, 구름의 고집, 소나기의 변덕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남자로 하여금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했다.

 

ð  짜잔~ 어찌 되었을까? 1년을 넘길 무렵 남자는 신을 찾아 하소연했다. 도저히 여자랑 살 수 없으니 여자를 다른 데로 데려가 달라고. 신은 남자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후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남자는 다시 신을 찾아 간청한다. 여자를 다시 데려와 달라고.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다고. … 남자는 아직까지 이 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네요. 여자를 데려가라 했다가 무르길 수없이 반복하며 늙어 간다네요 ㅎㅎ

 

128 마량

제주 등에서 기른 말을 싣고와 말먹이를 주던 포구라는 마량.

마량장은 3, 8일에 서는데, 차부 바로 앞에 선다. 대들보에 막걸리 주전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집에서 담근 막걸리라기에 한 사발 시켰다. 기대와 달리 약으로 발효시켰는지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괜히 객기부리며 꿀꺽거리며 다 마셔버리면 무척 골때릴 것 같아 그만두었다. 해장국도 신통치 않았다. 남도 지방 최악의 아침식사 였으나 옛 기억이 되살아 나는 오래된 주막같아 싫지는 않았다.

 

131

마량의 아침은 아무 볼거리가 없다. 여느 곳처럼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마량이 좋다. 맑은 햇빛, 바다, 필부들이 살아 가는 일상이 좋다. 마량의 아침은 아무 화장 없이 그렇게 햇빛 속에 있다.

 

132

산다는 것은 약간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망설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며 미련이며 우유부단함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것을 후회하고 그것이 차마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134, 위백규의 집 관산 방촌리

남도를 돌며 내가 발견한, 살고 싶은 마을 중 하나이다. 비록 엿날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는 않지만, 조야하게 개량한 한옥일지라도 집집마다 오래 된 매화 한 그루씩은 키우고 있다. 마을으 휘둘러 오르다 보면 산자락 아래에 위계환의 집이 나타난다. 집은 비어있다. 이 곳은 위백규의 생가이기도 하다.

 

3, 바다와 바람 그리고 길

 

141, 장환 낙조

휘적휘적 선착장 근처를 지나는데, 재수 좋게도 남도 최고의 일몰을 보게 되었다. 땅끝 사자봉 위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상상했지만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완벽한 일몰을 여기 장환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나무가 많은 예쁜 장환의 앞산이 이미 뚜렷한 실루엣으로 보이고, 멀리 천관산의 섬세한 바위가 흘러내리는 바다로 커다란 해가 넘어 가는데, 어찌나 찬란한지 감히 볼 수가 없다. 그 아름다움 위로 배 한 척이 떠 들어 오는데, 어부 하나가 능숙한 몸동작으로 그물을 걷고 있다. 시인이 되어 이 풍경을 읊고 싶었다.

 

장안사 천관산 코스

 

151금수굴

금수굴은 굴 안에 순금빛 물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위백규 선생의 6대손이라는 노인장이 말한 바로 그 물이다. 지금도 금빛 물이 바위 안쪽에서 배어나온다. 신기한 것은 이 금수굴의 모양이 여성의 음부와 똑같이 생겼다는 점이다. 가끔 있는 것처럼 비슷한 모양에 억지로 가져다 붙인 이름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촉촉하게 젖은 조신하고 쫄깃한 여성의 그것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금수굴 안의 벽을 타고 배어나오는 금빛 물이 여성적 오르가슴의 절묘한 절정을 느끼게 한다.

 

세 번째 코스는 금강굴을 지나 정상에 오르는 것인데, 이 길은 주능선의 오른쪽 끝에 자리한 환희대에 가장 가깝다. 안내판에는 이 바위에 오르면 누구나 가슴속 가득 환희를 느낄 수 있다고 쓰여 있으나, 왜 환희를 느끼게 되는지는 설명이 없다.

 

154천관

이별의 아픔을 가진 사람은 천관사에 와 바다를 보았으면 한다. 바다 너머 그리움을 보라. 인생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은 이곳으로 와서 바다를 보았으면 한다. 이곳은 그리움의 산이다. 양근암과 금수굴이 서로 다른 등성이에 있어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이곳은 그리운 사람들끼리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 가득한 산이다.

 

155동백

장천재 입구에는 넓지는 않지만 동백이 숲을 이룬다. 남도 어디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백이다. 아름다운 고목들이 흔한 것은 이곳만의 정취이다. 장천재 입구 오른편에도 동백 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자태가 특히 곱다. 보통 도백의 수피는 검은 색이 많아 칙칙한 기운이 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명 그루의 수피가 뽀얗고 매끄러우며 군살이 하나도 붙지않은 탄탄한 몸매를 지니고 있다. 나무기둥 하나로 매끄럽게 오르다가 지상에서 약 2미터쯤 되는 곳에서 허리를 틀고 우아한 팔 놀림으로 가지를 뻗고 있다. 짙고 윤기 나는 초록색 잎사귀를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처럼 흔드는데 그 속에 빨간색 꽃이 많지도 적지도 않게 피어있다. 밑에는 모가지째 떨어진 꽃들을 뿌려두고.

 

156장천오미

겨드랑이를 살짝 간질여주었더니 바람이 불어서 어쩔수 없다는 듯이 나뭇잎을 흔들며 웃는다. 날씬한 허리를 안았더니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는 품이 내가 좋은 모양이다. 나는 그들에게 장천(長川)오미(五美)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누가 누구인지는 나만이 안다.

 

숨겨놓고 혼자 즐긴다는 의미를 아는가? 벽장에 숨겨놓은 꿀단지여도 좋고, 바쁜 날 잠시 겨를을 내어 찾아가는 찻집이어도 좋다. 혹은 서가에 꽂혀있는 소년시절의 감명깊었던 책 한 권이어도 좋다. 마담이 괜찮은 술집이어도 좋다. 아주 어릴 적 왠지모르게 울고 싶을 때 저녁이 되어 어머니가 찾아 나설 때까지 숨어있던 자기만이 아는 작은 비밀 장소처럼 그런 치유의 은밀한 장소와 시간 없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겠는가?

 

157아내같은 동백

벚꽃은 화사한 화장을 하고 거리를 걷는 여인들 같다. 그러나 동백은 거리의 꽃이 아니다. 동백은 숲 속의 꽃이다. 숲속의 신비를 담고 있는 기품 있는 꽃이다. 20~30년만 돼도 보기 좋은 발랄한 나무가 아니라 오래 오래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나무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처럼.

 

159동백 기행

선운사 동백은 4월 말은 되어야 만개한다. 거제도 동백은 좀 더 일찍 만개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대학다닐 때 친구들끼리 우짜라짬 가진 게 변변치 않아 매번 이런 면류로 배를 채우며 돌아다녔다.) 하며 2월말 경에 그곳을 지난 적이 있는데, 그때 동백이 활짝 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거문도 동백숲도 잊혀지지 않는다. 4월 초쯤 둘째 해언이를 데리고 그곳을 갔는데 이미 동백은 다 떨어져 늦게 핀 꽃 몇몇을 보며 아쉬워했다.

강진 백련사 동백숲도 유명하다. 이번 봄 여행 때 적당하게 달려있는 꽃을 보았다. 남도에 오면 특별한 곳에서 동백을 찾을 필요가 없다. 지천에 널린 것이 동백이다. 고목에 피어있는 동백은 어디나 예쁘다. 한 그루가 피어도, 떼지어 피어 있어도 예쁘다.

 

행복의 이유

꿈은 또한 현실이다. 아마 다람쥐는 다람쥐 이외의 것이 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보다 더 행복할지 모른다. 저 한 쌍의 다람쥐들이 저렇게 미친듯이 유희를 하고 있는 이유도 행복해서일 것이다.

 

165초심 발심, 천관산 장안사

초심을 견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조금 익숙해지면 타성이 붙게 되는데, 그러면 내용이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된다. 이때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불가에서 이것을 발심(發心)이라고 부른다. 발심은 초심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개혁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개혁이 진부해 질 때 원래의 개혁으로 되돌아가기가 더 어려운 것과 같다. 인간의 습성이 고려되지 않은 개혁과 혁명은 허구다. 그것은 기만이요 망상이다.

 

176깨달음, 가지산 보림사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일을 하며 마음의 공부를 해야 한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다가 깨닫기도 하고, 햄버거를 주문받다가 혹은 사무를 보거나 강의를 하다가도 갑자기 깨달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연애한는 마음처럼 간절히 공부하면 깨달을 수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속인이 출가자보다도 공부를 많이 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76 초월 단순

내가 좋아하는 벗이며 선배인 종욱 형이 생각난다. 우스갯소리를 잘하며 아무데서나 방귀도 뿡뿡 뀐다. 그는 어떤 개념이나 야심도 초월하여 미소로써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을 경쾌하게 다룸으로써 그 생각에 예속되지 않으며 진지하면서도 또한 진지하지 않다. 그는 알고있는 지식을 소화하여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시킨다. 그래서 어떤 때는 단순하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단순하다는 것만큼 깊이 있는 것은 없다. 그는 세상에 속한듯하지만 자신에게 속해 있다.

 

4, 아무 계획 없이 아무 목적 없이

 

185 땅끝 사자봉에서 보길도 격자봉까지

상징을 빼면 인간의 정신은 빈약해 진다. 땅끝의 아름다움은 여기가 반도의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비장하고 단호한 정취를 갖게 만든다. 갈두향에서는 미처 이어지지 못한 바다 너머 다른 곳에 있는 세계로 건너가는 부두가 있다. 배는 길을 싣고 먼 바다를 건너 다음 기항지에 그 길들을 풀어 놓는다. 마침내 길들은 서로 이어진다.

 

ð  길에 대한 명상이 무르익은 구절이다. 길은 어디든 끝없이 이어진다.

 

186

보길도에 내려 민박집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보길도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먼저 윤선도 유적지를 죽 이야기 한다. 이어 송시열이 제주도 귀양가다 풍랑을 만나 잠시 보길도에 머물며 바위에 새겨놓았다는 시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먼저 한시를 한 구절 읊조린 다음 감정을 듬뿍 실어 번역해 준다. 준비된 여행 안내원이다. 청별항에서 통리까지 오는 10분 사이에 그는 요령있게 보길도의 볼거리를 브리핑했다. 내가 내릴 때는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20년 전 이곳을 다니러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세련됨이다.

 

187

통리해수욕장에서 물이 빠지고 있었다. 바다를 향해 왼쪽으로 목섬이 있는데 나무가 울창하다. 물이 빠져 나가면 해수욕장에서 이 섬까지 길이 열려 걸어서 갈 수 있다. 길목이 나타난다고 하여 목섬이라 불린다고 한다. 나는 걸어서 건너간 다음 바위를 타면서 섬을 한바퀴 돌았다.

 

188

보길도는 고산이 없어도 이미 아름답다. 멀리서 동천석실을 구경하고 부용동 입구에서 세연정에 잠시 들렀다.

 

190 공재 윤두서

눈빛이 어찌나 강한지 사람의 눈이라고 보기 어렵다. 강한 야생성이 느껴진다. 어떤 사람은 그의 눈에 불이 들어 활활 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표면이 아니라 사물의 내면을 끄집어 내어 그렸다. 그가 그린 자신의 얼굴은 외모가 아닐 것이다. 그의 마음일 것이다. 분노일까?

 

193 보길도 보옥리 뾰족산 이곳을 놓치면 보길도를 보았다고 하기 어렵다

이날 나는 운이 좋았다. 보길도의 서남단에 있는 뾰족산에 올라 허리에 구름을 감고 있는 한라산을 보았다. 1년에 겨우 20일 정도만 볼 수 있다는 행운이었다. 몽롱하고 흐릿하여 더욱 신비로웠다. 산은 신기루 같아 바다 위에 떠있는 듯 보였다. 저곳에는 신선이 살고있구나. 어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94

고요함이 너무 커 소음은 오히려 고요함을 가중한다. 시간이 멎은 듯하다. 일체의 미동도 없는 대낮, 내가 완벽히 쉬고 있는 듯 했다.

 

ð  아내는 이 같은 시골의 대낮 적막이 견딜 수 없이 싫어 도시로 나왔다고 했다. 허긴 피 끓는 청춘의 나이에야 이런 적막은 숨을 막히게 하는 것이었을 게다. 이젠 적막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그런 고적함을 찾아 같이 한 번 여행을 떠나볼까?

 

197

4월 맑음, 한라산 허리의 구름, 반짝이는 바다, 환함, 바다 위에서 배가 만들어낸 하얀 자국, 해안에 와 닿는 바다의 한숨, 하얀 포말, 동글고 예쁜 차돌, 하염없는 태만, 시간의 정지, 할머니와 나눈 쓸쓸한 대화, 바닷바람 속에서 마신 대낮의 맥주, 아쉬운 일몰, 푸른기가 살아 있는 해진 뒤의 하늘, 섬과 산들의 실루엣, 어두워지는 시간의 추이, 그때 그 어둠의 농도, 가끔 지나가는 차의 불빛, 적당한 피곤, 어두운 길에서 차에 태워준 작은 트럭 운전수의 친철…. 여행이 줄 수 있는 기대 요소들이 적당히 배합된 하루였다.

 

ð  여행 중 이런 식의 사생 스케치 메모도 참 좋겠다. 나중에 기억을 될 살려 글을 이어가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200 놀기

걷는 것은 노는 것이다. 앉아서 쉬는 것 또한 노는 것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저 구름처럼 자유롭다.

ð  과연 명문이다. 번쩍 내게 영감을 주었다. 내가 쓸 자전거 여행기의 제목을 노는 법이라 해야겠다. 내가 여행하는 진정한 목적은 놀기 위해서다. 진정으로 놀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기회에 정말 한 번 놀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친다.

 

202

내가 오늘 계획한 것은 산을 넘는 데 있다기보다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행복했고 더 바랄 것이 없다.

 

보길도의 바다를 느낄 수 있는 우럭, 민어, 장어, , 미역 등을 유성상회에서 부쳤다. 라면 박스에 담아 우체국에서 부치면 휙 하고 날아가 아내는 이 곳 바다를 서울 주방에서 풀어 볼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내가 남쪽 바다를 거쳐 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벼운 그리움으로 그녀의 손끝이 조금 떨릴 것이다.

 

ð  여행 중 싱싱한 토산물을 집에 부치는 것은 여행 중 나의 마음을 부치는 것이니 참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이전에 국토 종주하면서 문경 사과를 부쳤듯이 또 금강에서 젓갈을 부쳤듯이

 

203

학교를 마친 중고생들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탄 버스는 늘 경쾌하다. 계집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모습, 사내아이들이 짓궂게 장난치는 모습이 스치는 차창을 통해서도 금방 감지된다. 아이들은 인생을 어떻게 사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린다. 아이들처럼 사는 어른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조금 더 불행하다.

 

204

나도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역시 유리네 민박에 묵고 있다. 유리네 민박의 주인은 마을 이장이고 유리는 손녀 이름이다. 나는 천관산 밑 장안사 삼촌에게 이 집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어제 보옥리 뾰족산에서 만난 월마트 아가씨에게 이 집을 소개했고, 그녀는 갈빗집 아가씨에게 소개했다. 보길도를 떠나기 전날 객지에서 온 사람들은 늦게까지 물이 차오르는 해변을 별과 함께 걷고 있었다.

 

ð  여행 정보는 이렇게 유통된다. 현지에서 살아있는 정보를 얻는 방법이니 한번 써 먹어 봐야겠다.

 

204

그대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알면

남을 섬길 수 있으리라

남을 능히 섬겨내면

나를 섬길 수 있다

 

211 완도

강가 그 사람이 어찌 나를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느냐. 마음을 놓아라. 염려하지 말아라. 서서히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 합당한 도리이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ð  다산이 둘째 아들 학연에게 이른 말이다. 학연이 아버지의 귀양살이를 풀려고 한양의 권세잡이에게 애걸 하려 시도한다는 것에 대한 다산의 가르침이다. 다산의 세상사를 꿰뚫는 통찰의 눈과 이미 달관한 인품을 엿볼 수 있다.

 

218 완도의 장도 장보고

장보고가 의용의 인물이라는 것은 그의 귀국동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보고는 스스로 해적을 진압하겠다고 결심했다. 당나라 황제나 신라 왕이 할 수 없었던 일을 스스로 떠맡고 나선 것이다. 무용이 뛰어난 무인에 그치지 않고, 국제 정세에 관한 높은 안목을 가지고 꿈을 구현한 인물이라는 점에 장보고의 위대함이 있다.

군대란 전쟁을 하기 위해 조직된 소비적 집단이다. 이런 집단을 해상무역에 투입시켜 해상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은 장보고가 대단한 개척자였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227 남도 유감

왜 그럴까? 기준보다 미달로 팔게 되면 하루 장사가 재수없어진다고 믿어서일까? 말하자면 일종의 터부 같은 것일까? 새우 반 되, 매운탕 1인분 정도는 팔든 말든 대단찮은 돈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남도의 인심이 후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저 단순히 매운탕을 어떻게 2인분 보다 더 적게 끓일 수 있겠느냐는 통념 때문인 것 같다. 그보다 더 적게는 째째해서 팔 수 없다는 생각 같은 것, 그러니까 후덕하기 때문에 그렇게 적게는 끓일 수 없다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쨌던 나는 좋아하는 매운탕을 제대로 맛볼 수 없어 섭섭했다. 남도 유감이다.

 

228

심심하다는 것은 자기 속에 데리고 놀 자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늘 밖에서 친구가 될 만한 것을 찾는다.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섬까지 운항하는 배들은 거의 대부분 이렇게 차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차부선으로 대체되었다. 배의 2층 벽에 기대 앉아 또 바다를 보았다. 내내 남도 바다를 따라 다녔지만 보고 또 봐도 질리기 않는다. 가슴 가득 바닷빛이 푸르게 들면 푸른 얼굴로 서울로 돌아 가리라.

 

233

늑대는 사악한 짐승이라고 알려져 있어 늑대를 모조리 없애는 일은 좋은 일이었다. 미국의 한 젊은 산림청 직원은 평화로운 늑대 가족에게 라이플을 쏘아댔다. 늙은 늑대가 쓰러지자 가까이 다가간 그는 늑대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늑대의 눈 속에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것, 즉 산과 늑대만이 알고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 후로도 그 일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결국 알도 리오폴드란 이름의 그는 미국 자연 보호 운동의 주창자가 되었다.

 

235

떨어져 아스팔트 위에 누운 꽃잎들 위로 바람이 불면 모든 꽃잎이 일어나 마치 굴렁쇠가 구르듯 도로 위를 달린다. 어째서 그런 모양으로 구르는지 알 수 없지만 여간 신기하지 않다.

 

236 술의 운치

한참 햇빛 속을 걸어 목이 마르면 시원한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이 제격이다. 김치가 맛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것이 막걸리다. 하지만 동동주는 조심해야 한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동동주를 마시지 않는다. 술을 잘 담그기도 어렵고, 잘 익히지 않으면 뒤끝이 몹시 불쾌하다. 스쳐가는 집에서 내력을 잘 모르고 마시면 대개의 경우 반드시 다음날이 괴롭다.

가끔 운이 좋으면 더덕주나 매실주를 잘 고를 수 있다. 좋은 술이면 좀 무겁더라도 큰 것 한 병을 산다. 그리고 작은 물병에 옮겨담아 한 병은 배낭 깊숙이 넣어두고 또 한 병은 언제나 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둔다. 가지고 다니다가 하루 일정 중 최고의 경치라고 느껴지는 곳, 양말을 벗고 탁족을 할 수 있는 곳에서 한두 잔 하면, 그것처럼 좋은 것도 없다.

 

237

짧은 휴가가 끝나갈 때 우리는 과격해진다. 흥청거리는 버스 안이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화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봄이 지나가고 있다. 그들의 모처럼의 하루도 지나가고 있다. 내일은 다시 밭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놀이가 밤이 깊어질수록 야단스러워지는 이유는 어쩌다 한 번 쉬기 때문이다. 휴식의 절대 길이가 짧다 보니, 당연히 볼 것도 해야 할 일도 많다. 그러니 밤 늦도록 놀아야 하고 마셔야 한다. 혹은 새벽까지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다시 일로 복귀해야 할 날까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휴식이 휴식이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38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문화는 우리의 휴식 시간이 짧다는 것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짧게 끊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텔레비전 시청, 노래방, 그리고 짧은 여행은 향락적인 소비문화일 수 밖에 없다. 자유시간이 턱없이 짧기 때문에 클라이맥스는 빨리 맛보아야 한다. 뜸 들일 시간이 없다. 짧은 시간에 농축되어야 하기 때문에 진해야 하고, 따라서 야만적이고 과격한 몸짓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모처럼의 휴식은 또 다른 노동이 되고 만다.

 

바쁘다는 것, 그리하여 빨라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이것은 우리가 놀고 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는 쉽게 말해 잘 노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가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유시간이 부족하면 자기의 삶을 자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유한계급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문화사회란 그러므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자아의 실현을 위해 투여하는 사회이다.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율적인 활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문화사회인 것이다.

 

239 목포 볼 것도, 먹을 것도 많다

우리는 오후 늦게 목포 북항에 도착했다. 북항은 해물을 먹기에 좋다. 노점상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골라 음식점으로 가면 조리를 별도로 해준다.  

 

5장 아름다운 섬들

 

 

255 흑산도

목포를 떠난 페리선은 예리항에 닿는다.

모래미마을에는 서당이 하나 있다. 손암 정약전이 이곳에서 15년간 유배 생할을 했다.

 

257

창호지 문은 정감을 더한다. 창호지는 안과 밖을 차단하지 않는다. 달빛이 스미고, 방안의 정사가 그림자 지는 매미 날개 같은 가벼운 가림이고 매혹이다. 인간은 자연이고 자연은 곧 인간이다. 이곳.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마침 보름인 달빛 속에 누워 소년시절의 추억으로 늦게까지 뒤척이고 싶다.

 

258

나이를 먹는 것은 흙이 그리워 지는 것이다. 살면서 흙이 좋아져야 비로소 죽을 수 있다.

 

마을의 바닷가 끝에 위치한 이름 없는 민박집으로 가 점심을 함께했다. 한참 숭어철이라 숭어 한 마리를 회로 떠달라고 해서 농주와 함께 먹었다. 집에서 칡과 약초를 섞어 누룩으로 담근 농주가 일품이다. 모래미 마을에 와서 박찬식씨 집을 찾으면 된다.

 

259

이제 자원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어느 정도의 불편, 그리고 예기치 않는 경이야말로 이제 어디서도 찾기 힘든 것이 되어 버렸다.

 

263

인생은 길이다.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이다.

 

269 홍도

그래서 남자고 여자고 구녕에 초점을 맞춘다. 안내하는 사람은 특히 이 점을 강조한다. 구녕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배는 떠나갈 듯 흥겨워진다. 정말 여자의 그것처럼 생긴 바위도 있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한 남자가 내 각시 구녕하고는 틀리구망하고 외치자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와그르르 웃는다. 와그르르 와그르르 파도치듯 그렇게 웃는다. 파도처럼 푸르고 건강한 웃음이다.

 

270

성이 밖으로 끌려나와서도 들판의 햇빛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 조정래의 태백산맥 속의 한 장면을 기억하면 된다. 이 책에는 외서댁이라는 한국 최고의 섹시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해진 후의 들녁같고, 외딴 곳의 물레방아 같은 여인이다. 쳐다보면 자고 싶은 여인으로 만들어져 있다. 타고난 색은 어찌할 수 없다. 그녀가 남편이 죽은 후 입산하여 빨치산이 되었다.

 

, 이 씨부랄년아, 집구석에서 좆이나 뽈제 멀라고 입산해 갖고 재수대가리 없이 나서고 지랄이냐아!” 적진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외서댁의 응답이 뒤따른다.

 

, 이 씨부랄놈아, 뽈자도 뽈 좆이 없어 입산혔다. 니눔 좆대감지럴 뿌랑구가 뽑히게 뽈아줄팅게 욜로 당장에 올라 오니라, 올라와.” 부들부들 떨어대며 외치는 외서댁의 목청은 아까보다 훨씬 컸다.

 

이어 빨치산들의 웃음과 야유가 뒤따른다. 토벌대들도 킥킥 따라 웃는다.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있으면서도 웃게 만드는 것이 성이다.

 

272

포르노가 포르노에 불과한 것은 광장으로 끌려 나온 밀실이기 때문이다.

 

295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 역시 비극적이다. 그는 종속적이며 누군가가 시킨 일만 할 뿐이다. 하수인이 된다는 것은 몸은 몸대로 고되고 남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증오하게 되고 이를 견디기 위해 세속화 된다. 그의 내면 어디에도 스스로를 위한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에 기대고 권력에 탐닉한다.

 

296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을 창조함으로써 스스로 그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자기로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이 허락한 대로.

 

302

배낭 속에서 진도에서 사가지고 조금씩 마시다 남은 홍주를 꺼내 꿀꺽 한 모금 들이켰다. 40도나 되는 이 술은 속에서 무수한 불꽃들이 되어 장작처럼 몸을 뜨겁게 해준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 구름 속에서 구름이 꽃이 된 설화를 보며 나는 행복하다. 지초라는 풀을 넣어 빚은 홍주빛처럼 저절로 흥겨운 마음이 된다. 감탄은 자신을 잊게 한다.

 

312

세상에 나가 출세를 하는 것이 광명의 길은 아니다. 자유를 구속하는 족쇄와 사슬일 뿐이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몸을 자유롭게 할뿐아니라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314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317

21세기의 화두는 자연과 사람이다.

 

318

앞으로 자연을 자연으로 유지하는 나라가 부러움을 살 것이다. 이것은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산수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나라를 의미한다. 아름다운 나라는 공동의 선을 존중하는 나라이며 사회적 악의 창궐을 스스로 감시할 수 있는 나라다. 경쟁과 효율성 그리고 집단적 이기심 외에도 평등과 여유로움 그리고 공동 선에 대한 원칙이 지켜지고 균형을 잡아가는 사회다.

 

체제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무관심에 의해 사회적 죄악이 방조되고 만들어 진다는 것을 자각하는 사회야말로 위대한 사회다.

 

319

보존이 곧 혁명이라는 절대절명의 원칙이다. 자연은 곧 우리의 생명이며 숨통이다. 전라남도의 해안가와 섬을 다니며 느낀 것은 한국의 산수처럼 아기자기한 곳이 드물다는 점이다. 그러나 방방곡곡 탐욕이 스치지 않은 곳이 없다. 개발의 이름으로 손만 대면 훼손해 놓았다. 홍도의 한 마을은 콘크리트 덩어리로 싸바른 요새가 되어 있었고

 

 

319

나는 앞으로 휴식의 일환으로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생각하기 위해서 걸을 것이고 쉬기 위해서 걸을 것이다. 버리기 위해서 떠날 것이다, 힘과 정열을 얻기 위해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위대한 정신들을 만날 것이다.

 

321

휴식은 자신에게 선사한 따뜻한 시간이다. 자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 왜 우리는 늘 바쁘고 또 다른 사람을 바쁘게 하는가? 바쁜 사람은 바보다. 자신을 괴롭히고 남을 못살게 할 뿐이다. 휴식이 게으름이나 소비로 느껴지지 않을 때, 한 사회가 이에 진심으로 공감할 때, 우리는 보다 나은 사회에 살게 된다.

 

323

잘난 사람의 훈계 없이도 삶을 열어갈 자신과 배짱 정도만 있으면 된다.

 

326

책에 나오는 여행지를 돌아보며 8년 전의 비감함과 희망은 모두의 문제란 것을 알았다. 풍경은 여행의 목표가 아니었다. 풍경으로 비롯되는 인간과 삶의 문제가 곁들어져야 보이는 것이 의미가 되고 실천의 해법으로 바뀌는 놀라움. 풍경의 완성은 사람이었다.

 

327

막상 뛰어든 바다는 견딜 만했다. 죽음의 공포는 상상 속에서 키워진 허상이었다. 구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 구조선은 나의 소망대로 오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든 바다에서 살 길은 스스로 헤엄쳐 나가는 일뿐이었다.

 

327

스스로 얻은 밥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맛이 더 좋다. 발목을 잡고 억압했던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무엇이 두려워 나가지 못했던 것일까. 가진 것이 뭐 그리 대단해 놓지 못했던 것일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삶,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전부였다.

 

328

우리는 바로 짐 꾸려 떠나야 한다. 새로운 만남을 위해. 떠나지 못하는 자는 자폐의 삶을 산다. 이 세상의 반은 비어 있고 만나야 하는 인간은 60억이 넘는다. 보지 않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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