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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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을 바꿀 때마다 한번은 꼭 듣게 되는 소리가 있었다.
“‘어머! 가마가 두 개에요. 결혼 두 번 하겠네.”
도대체가 어디서 나온 근거 있는 소리인지 몰라도 나의 어린 시절, 결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던 때부터 이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래도 마음 속에 상처나 불쾌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예쁜 드레스를 두 번은 입겠구나!’ 정도의 생각으로 지나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미용실 원장 덕분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마의 존재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하나는 앞 가르마 길 바로 옆에 있어서 바람이 불거나 머리가 조금만 헝클어지면 바로 존재를 드러냈고, 하나는 뒷머리 정수리 부근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존재는 잊혀지지 않았다. 때로는 ‘정말 그 말이 사실일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썰은 웃음과 궁금증을 자아내기는 했어도 생각이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자라면서 나의 꿈은 명확하지 않았다.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초인종 소리에 대문을 열었을 때 서 있는 처음 본 얼굴처럼 낯설었다. 언제부턴가 TV에서 유행어처럼 번졌던 장래희망 중에 하나는 ‘현모양처’라고 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미스코리아대회에서 늘씬하고 이쁜 여인네들이 뱉어내서 그런가 그 단어는 어느 순간 행복의 나라로 가는 티켓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나도 현모양처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을 선택했을 때, 직장을 때려치우는 일에 아쉬울 것이 전혀 없었다. ‘아! 드디어 행복의 나라로 들어가는 구나!.’ 만화에서처럼, 영화에서처럼 결혼식이라는 것을 올리면 인생이 ‘짠’하고 바뀔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 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내가 의도한 방향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곳으로 몰고 갔으니까. 요술지팡이라고 생각했던 결혼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치러졌다. 처음으로 동화책 주인공이나 입을법한 면사포를 쓰고 드레스를 입어보았다. 생각만큼 떨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나는 일도 아니었다. 새벽부터 나가서 몇 시간씩 화장과 머리를 해야 하는 일은 평소 치장을 거의 안하고 다니던 나에게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 짧은 시간을 위해 하는 준비는 너무 번거로웠고, 내가 주인공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것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보다’ 정도의 통과의례라는 생각뿐. 어찌어찌 결혼식을 끝내고 기념촬영을 마치고는 폐백을 드리기 위해 한복으로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내가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결혼식을 기억하는 것은 이 웃기는 상황 때문이었다. 나를 도와주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식을 끝내고 온 나에게 말을 붙였다.
“식 잘 치르셨어요?”
“잘 모르겠어요. 잘 기억이 안나요. 좀 떨렸나봐요.”
“어머, 그래요. 그럼 다음 번에 할 때는 좀더 잘 하세요.”
“네~~?”
“어머, 아니 그게 아니고 내 말은….아이구 미안해요.”
아무리 농담이라도 금방 식을 끝내고 온 신부한테 건넬 말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나온 말에 아줌마도 적지 않게 당황을 하는 눈치였다. 폐백 때문에 정신이 없어 서로 어색한 웃음으로 넘겼지만, 웃긴 것은 시간이 지나도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실수라지만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순간적으로 스친 말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정확히 14년 만에 나는 다시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도우미 아줌마는 ‘둔갑술을 부린 헤라 여신일지도 몰라’ 엉뚱한 상상이 잠깐씩 스쳤다. 처음 혼자되었을 때는 다시 이런 시간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고된 결혼 생활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행복은 환상의 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짙어져 있었다. 그래서 결혼은 나에게 먼 나라 이웃나라처럼 가깝고도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한간에 떠돌던 ‘가마동수결혼설(?)’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이야! 요즘은 ‘가마가 한 두개 더 있어도 재미있겠다’ 발칙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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