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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9일 10시 12분 등록

분노하라 Indignez Vous!


스페판 에설 저, 임희근 옮김, 돌베게, 2011.


1. 저자에 대하여


■ 스테판 에셀 Stephane Hessel ■

출생/사

1917. 독일 베를린 / 2013.2

활동분야

사회운동가, 저술가

 

• 발 자 취 •  

• 저 서 •

1924년 부모를 따라 일곱 살에 프랑스로 이주

1937년 프랑스 국적 취득

1939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입대함

1941년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에 합류해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

1944년 체포되어 부헨발트 수용소 수감. 교수형 언도 받고 극적으로 살아난 후 수용소 탈출

1946년 외무부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외교관이 됨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 유엔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를 역임

분노하라

참여하라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분노한 사람들에게

지금 일어나 어디로 향할 것인가

세기와 춤추다

2011년에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선정한 세계의 대표적 사상가

……

……


■ 편집자 후기 - 스테판 에셀, 그는 누구인가?


p45~50 스테판 에셀은 1917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란츠 에셀은 유대인 출신의 작가이자 번역가였고, 어머니 엘렌 그룬트 역시 작가이자 화가이며 음악애호가였다. 그의 부모는 1924년, 장남 울리히와 차남 스테판을 데리고 파리에 정착했다. 이런 가정환경 덕분에 이들 형제는 파리의 전위 예술가들을 가까이서 보며 자랐는데, 그중에는 다다이즘의 기수 마르셀 뒤샹, 미국 조각가 앨릭잰더 콜더도 있었다. 1937년 프랑스인으로 귀화한 스테판은 1939년 파리 윌름 거리에 있는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지만,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한다. 그는 군에 징집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체험하고, 페탱 원수가 프랑스 국가 주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목도한다. 1941년 5월 그는 런던으로 가서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하여 방첩・정보・행동 담당 총국에서 일한다. 1944년 7월 10일, 그는 파리에서 누군가의 밀고로 게슈타포에 체포된다. 에셀은 1997년 펴낸 회고록 『세기(世紀)와의 춤』에 이렇게 썼다. “고문받고 비밀을 발설한 사람은 쫓기지 않는다”라고. 고문-특히 물 담긴 욕조에 머리를 밀어 넣는 고문, 그러나 그는 이런 고문을 받으면서도 고문자들에게 모국어인 독일어로 말을 건네 그들을 당혹스럽게 했다-이 따르는 취조를 받고 나서 그는 1944년 8월 8일, 파리 해방을 불과 며칠 앞두고 독일 부헨발트 수용소로 보내졌다. 교수형을 당하기 바로 전날, 그는 극적으로 자기 신분을 같은 수용소 안에서 티푸스로 사망한 프랑스인의 신분과 바꿔치기한다. 이후 프레이즈 반 직공 미셸 부아텔이라는 새 이름으로 그는 독일 폭력기 융커52의 착륙장치를 만드는 공장 부근이 로틀베로데 수용소로 이감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억세게 운이 좋았던지 그는 회계부서로 배치된다. 그리고 탈출한다. 그러다 다시 잡혀 끌려간 곳은 도라 수용소로 V-1과 V-2가 제작되는 곳이었다. 나치는 여전히 이런 무기들을 동원해 전쟁에 이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중죄를 범한 수용자들을 따로 모은 징벌부대에 배속된 그는 다시 한번 탈출을 시도해 이번에는 성공한다. 때마침 연합군이 도라 수용소 가까이로 진격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파리로 돌아와 아내 비시아와 재회한다. 그들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게 된다.

    “이렇게 삶을 되찾았으니, 이젠 그 삶을 걸고 참여해야 했다”라고 ‘자유 프랑스’의 옛 전사는 회고록에 쓰고 있다. 1946년 외무부 채용 시험에 합격한 스테판 에셀은 외교관이 된다. 그의 첫 직장은 국제연합(유엔)이었는데, 마침 그 해에 유엔 부사무총장 겸 인권위원회 간사 직책을 맡고 있던 앙리 로지에가 그에게 자기 보좌팀의 팀장으로 일해달라고 제안한다. 스테판 에셀은 이 직책으로 훗날 세계 인권선언이 될 문안을 작성하는 위원회에 합류한다. 이 워원회의 위원 12일 중에 6인이 특히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 여섯 명은 다음과 같다. 엘레너 루스벨트(1945년 별세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부인이며 참여적 여성운동가로서 이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음), 중국인 창 박사(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장제스가 통치하는 자유중국 사람이었다. 그는 이 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세계 인권 선언에 서양적 사고만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레바논인 샤를 하비브 말리크(엘레너 루스벨트와 함께 이 위원회의 보고책임자를 맡았고, 종종 위원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원’이라고 소개된 사람), 프랑스인 법률가이자 외교관 르네 카생(인권 문제에 관해 프랑스 외무부에 자문을 구하는 일을 담당한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인권 선언의 여러 조항을 직접 작성했다.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국가가 이 선언으로 말미암아 그때까지 자기들이 식민지에 행사하던 주권이 위협받을까 저어하는 와중에도 과감히 이 선언의 내용을 썼다. 그는 인권에 대해 엄격하고 개입주의적인 입장이었다), 존 피터스 험프리(캐나다인 변호사 겸 외교관, 로지에의 측근으로서 400쪽에 달하는 인권 선언 초안을 썼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스테판 에셀(프랑스 외교관으로, 로지에의 보좌팀에서 최연소자이면서 팀장을 맡았다). 이만하면 이 위원회에 ‘자유 프랑스’의 정신이 얼마나 많이 깃들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유엔은 1948년 파리 샤이오 궁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세계 인권 선언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유엔에 신규 채용된 공무원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그중 대다수는 보수가 많은 자리를 탐내 ‘이상을 추구하는 주변적 인물들을 고립’ 시켰다고 에셀은 회고록에서 술회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에셀은 유엔을 떠난다. 프랑스 외무부는 그를 국제기구의 프랑스 대표부에 근무하도록 발령했다. 에셀에게는 이것이 뉴욕에 그리고 유엔에 잠시나마 복귀할 기회였다. 알제리 전쟁 기간에 그는 알제리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1977년 엘리제 궁의 비서실장 클로드 브로솔레트-BCRA의 국장을 역임한 피에르 브로솔레트의 아들-와 뜻이 잘 통하는 에셀에게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은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엔의 프랑스 대사직을 제안했다. 에셀은 프랑스의 국가 요직을 맡은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라는 것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와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는 ‘자유 프랑스’ 시절 런던에서 알게 되었고 그 후 1946년 뉴욕에서 재회했는데, 당시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파견된 프랑스 대표로 일하고 있었다. 에셀의 회고록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 내의 이 변화” 덕분에 그가 정식 외교관 지위를 갖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때 변화란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된 일이다. 에셀은 “그 변화로 말미암아 다국간 협력 부문만을 담당하던 전문가로서 정년퇴직을 2년 앞둔 외교관이었던 내가 프랑스 대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썼다. 이후 그는 사회당에 입당한다. “사회당에 들어간 이유를 나 스스로 물어본다. 왜 입당했느냐고? 첫 번째 답은 1995년의 충격이었다. 프랑스인들이 설마 자크 시라크를 대통령으로 뽑을 만큼 신중치 못할 줄이야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후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그는 첫 부인과 사별한 후 재혼한 아내와 함께 2008년과 2009년에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그곳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증언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나는 언제나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편에 서왔다.”

  

    93세의 노령에도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여기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사람, 스테판 에셀이 바로 그 사람이다.    - 실비 크로스만(앵디젠 출판사 편집인)




참고자료


알라딘, yes24 저자소개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머리말


p10 오늘날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것이 이러한 원칙과 가치들이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가 자랑스러운 사회일 수 있도록 그 원칙과 가치들을 다 같이 지켜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른바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 언론 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 결코 이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p11~12 레지스탕스가 제안한 것은 ‘파시스트 국가들의 모습을 본떠 구축된 전문적 독재에서 놓여난, 일반의 이익을 특정인의 이익보다 확실히 존중할 합리적인 경제조직’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공화국 임시 정부는 이 제안을 넘겨받아 추진했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독립된 언론이다. 레지스탕스는 이 사실을 알고 강력히 요구했으며 ‘언론의 자유, 언론의 명예, 그리고 국가, 금권, 외세로부터 언론의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레지스탕스에 이어 1944년부터 각계각층이 언론에 대해 줄곧 주장해온 바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바로 이 ‘언론의 독립’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레지스탕스의 동기, 그것은 분노


p15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정치계・경제계・지성계의 책임자들과 사회 구성원 전체는 맡은 바 사명을 나 몰라라 해서도 안 되며,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독재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p15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역사를 보는 두 관점


p17 무엇이 파시즘을 초래했는지, 프랑스가 무엇 때문에 파시즘의 침탈을 받았고 빗 정권이라는 괴뢰 정권이 세워졌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이렇게 혼잣말을 하게 된다. ‘가진 자들은 이기적인지라 볼셰비키 혁명을 지독히 두려워했다’고. 그들은 그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생각없이 행동했다. 그러나 만약 그때처럼 오늘날 행동하는 소수가 일어선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겐 반죽을 부풀릴 누룩이 생기는 셈이다.


p18~19 나는 남들보다 훨씬 오래 살다 보니 분노할 이유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이런 분노의 이유들은 어떤 감정에서라기보다는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났다. 나는 청년 시절 파리 고등사범학교 학생으로서, 학교 선배인 사르트르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사르트르의 저서 『구토』, 『벽』, 『존재와 무』는 나의 사상 형성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르트르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주었다. “당신은 개인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이것은 절대자유주의의 메시지였다. 어떤 권력에도, 어떤 신에게도 굴복할 수 없는 인간의 책임. 권력이나 신의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름을 걸고 참여해야 한다.


p20 나치즘을 피해 망명하던 중 1940년 9월에 자살한 벤야민에게, 역사의 의미란 재앙에서 재앙으로 이어지는 저항할 길 없는 흐름이었다.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


p21 맞다. 분노의 이유가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명령하며, 누가 결정하는가?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흐름들을 샅샅이 구분한다는 것이 늘 쉬운 일만은 아니다. 우리의 상대는 이제 하나의 작은 특권 계층만이 아니다. 어느 작은 특권 계층의 행동쯤이야 우리가 명확히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상대는 광활한 세계이며, 그 세계가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더 강력한 상호연결성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은 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알려면, 제대로 들여다보고 제대로 찾아야 한다.


p22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p22 이미 우리가 식별할 수 있는 커다란 도전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 사이에 가로놓인,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격차. 이는 20세기와 21세기가 낳은 새로운 폐해다. 지금 세계의 극빈층은 하루에 2달러도 채 벌지 못한다. 이 격차가 더욱더 벌어지게 방치할 수는 없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여는 촉발되어야 한다.

    둘째, 인권, 그리고 지구의 현재 상태. 프랑스가 독일 점령으로부터 해방된 후, 나는 세계 인권 선언의 문안을 작성하는 데 참여했다.


p23 세계 인권 선언에 영어권 국가의 대표들이 제안한 ‘국제적’이라는 말 대신 ‘보편적’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르네 카생 덕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이 당시에는, 인류를 겁박하던 전체주의의 위협에서 해방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p25 여기서 세계 인권 선언의 제15항을 인용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개인은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제22항도. “모든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국가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에 힘입어, 각국의 조직과 경제적 형편을 감안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그 인성의 자유로운 계발에 필수불가결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의 충족을 성취함을 근간으로 한다.”

    이 선언이 지니는 효력이 그야말로 선언적인 것에 그칠 뿐 법률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떻든 이 인권 선언이 1948년 이래로 강력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식민 지배를 받던 민족들은 이 인권 선언에 힘입어 독립투쟁을 벌였으며, 이 선언은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해나가는 그들에게 정신적 토대의 씨앗을 뿌려준 셈이었다.


p26 나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주변을 둘러봐요. 그러면 우리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주제들―이민자, 불법체류자, 집시들을 이 나라가 어떻게 취급했는지 등등―이 보일 겁니다. 강력한 시민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구체적 상황들이 보일 겁니다. 찾아요. 그러면 구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 관한 나의 분노


p27 오늘날 나는 주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관해 분노한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바로 분노를 자아내는 원천이다. 2009년 9월 리처드 골드스톤이 가자 지구에 대해 쓴 보고서는 필독할 만한 글이다.


p30~31 하마스가 이스라엘 스데로트 시에 로켓포를 발사하면 효과가 있는가? ‘없다’가 답이다. 그런 행동은 포를 쏜 쪽의 대의명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자 지구 주민들의 이런 몸짓을 보고 격분에 의한 행동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분노가 끓어 넘치는 상태를 ‘격분'이라고 한다면, 폭력이란 도저히 용납 못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내린 유감스러운 결론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해한다면, 테러리즘이 격분을 표출하는 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격분은 부정적 표현이다. ’도에 넘치게 분노‘해서는 안 되며, 어쨌든 희망을 가져야 한다. 격분이란 희망을 부정하는 행위다. 격분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희망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경우에, 격분 탓으로 그것을 농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폭력, 우리가 가야 할 길


p32 사르트르는 1947년에 이렇게 썼다.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이든, 폭력이란 일단 실패라는 사실을 나는 수긍한다. 그러나 이 실패는 피할 수 없는 실패다. 왜냐하면 우리는 폭력의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에 의거하는 행위 자체가 자칫 폭력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수단 또한 폭력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나는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비폭력이 폭력을 멈추게 하는 좀더 확실한 수단이라고.


p33 사르트르 자신도 결국 말년에는 테러리즘의 의미에 대해 물음표를 찍고, 테러리즘이 꼭 있어야만 하는지를 의심했다. “폭력은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폭력의 힘을 빌리는 이들을 단죄해야 하는가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테러리즘은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다. 이때 효과라는 개념에는 비폭력적인 희망이 들어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폭력적인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런 일은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에 나오는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라는 구절에서나 가능하리라. 정치에서는 폭력적인 희망이란 없다. “끔찍한 지금의 세계가 기나긴 역사의 발전 속에서 보면 그저 한순간일 뿐인 이유를, 숱한 혁명과 봉기를 이끈 주도적 함의 하나는 언제나 희망이었음을, 내가 미래를 생각하면서 여전히 그래도 미래는 희망이라고 보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p34 압제자와 피압제자 양측이, 압제를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더 이상 테러리즘의 폭력이 없게 된다. 증오가 너무 많이 쌓이도록 놓아두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p34 현대의 여러 사회들이 서로 이해하고 끊임없이 인내한다면 충분히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권을 발판으로 삼아야 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는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의 분노를 촉발해 마땅하다.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만큼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평화적 봉기를 위하여


p35~37 서양인들의 ‘생산 위주의 사고방식’은 세계를 위기로 이끌었으며, 그 위기로부터 탈출하려면 ‘항상 더 많이’라고 외치며 앞으로만 질주하는 태도와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이러한 질주는 비단 금융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윤리, 정의, 지속가능한 균형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때다. 더없이 심각한 위험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p38 '분노하라‘고 호소하는 이 글을 어떻게 끝맺으면 좋을까? 프랑스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의 개혁안 발표 60주년을 맞아, 레지스탕스 운동과 자유 프랑스 투쟁(1940~1945)에 동참한 노전사로서 우리는 2004년 3월 8일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분명 “레지스탕스에 동참한 형제자매들의 희생과 파시즘의 야만에 맞선 여러 나라의 단결 덕분에 나치즘은 궤멸되었다. 그러나 그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불의에 맞서는 우리의 분노는 여전히 그대로 살아 있다”고.


p38~39 이러한 위협은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21세기를 만들어갈 당신들에게 우리는 애정을 다해 말한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고.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 저자와의 인터뷰


p54 우리 아버지, 앙리 피에르, 그리고 나, 이 세사람 중에 우리 어머니 헬렌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바로 나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내가 더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주 일찍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의무라도 지우듯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네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수 있는 법이야. 그러니 항상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려고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언젠가는 정신분석 전문가한테서 이런 말까지 들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신인줄 아시나 보네요"라고. 물론 이건 농담이겠고, 아무튼 어머니의 사랑과 행복으로부터 큰 힘과 희망을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훗날 어떤 곤경에 처했을 때도 이 힘과 희망만은 결코 잃은 적이 없습니다.


p66 참여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중에 가장 간단한 것은 어느 한 정당을 지지함으로써 확실히 참여하는 방법입니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으려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자기 뜻에 맞는 정당에 투표를 통해 지지를 표명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권하지 말고 꼭 투표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형태의 참여입니다.


추천사 - ‘분노’와 ‘평화적 봉기’가 세상을 바꾼다(조국)


p71~72 분노는 삭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삶의 지혜가 널리 퍼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분노하라!”라는 직설적・선동적 메시지는 생경하게 들릴 수 있다. ‘마음공부’를 통하여 수시로 일어나는 심화를 직시하고 가라앉히는 것이 중요함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음공부’가 ‘공분(公憤)’과 의분(義憤)의 불씨를 마음속에서 꺼버리는 것을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화의 뿌리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일 때는 그 공적인 원인을 해결할 때만 화는 사라진다. 사실 세상의 진보는 불의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시민이 세상일에 관심을 끊거나 냉소를 보내면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걸을 때 세상의 불의는 승승장구하며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p72 민주화운동의 기본 동기는 실로 분노였다.


p74 비록 정치적 민주화로 대의민주주의가 확립되었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한가. 대의제 민주주의 안에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없는 약자와 소수자 집단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현재의 대의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투표를 하여 대표자를 뽑는 기회를 가졌다고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의제가 엘리트나 강자가 자신의 지배를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정당화하는 장치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p78 과속경쟁 사회는 구성원을 항상 불행하게 만든다. 구성원 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사회는 부정의한 사회다. 이제 ‘앞’만 아니라 ‘옆’과 ‘뒤’도 보는 사회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때 “윤리, 정의, 지속가능한 균형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p79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현재의 상태를 묵인, 방조하겠다는 의사의 다른 표현이다.


p79 현실에 대한 냉소, 무관심, 거리두기만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옮긴이의 말 - 어느 행복한 투사의 분노


p81 “분노할 일을 넘겨버리지 말라.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여,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되라”고.


p81 보편적인 권리, 기본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도록 부디 분노하라고. 감정적인 외침이 아니라 ‘참여의 의지’로부터 자연스레 우러나는 결기 어린 외침이다.


p82 레지스탕스 정신은 먼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레지스탕스’는 동사 ‘저항하다’의 명사형이다. 분노할 실마리를 잡아서 분노할 줄 알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 저항할 줄 알되, 마음속에는 비폭력의 심지를 곧게 세우고 참여하여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창조하라는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 ‘분노하라’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머리말

레지스탕스의 동기, 그것은 분노

역사를 보는 두 관점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

비폭력, 우리가 가야 할 길

평화적 봉기를 위하여

주(註)

편집자 후기 - 스테판 에셀, 그는 누구인가?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 저자와의 인터뷰

추천사 - ‘분노’와 ‘평화적 봉기’가 세상을 바꾼다(조국)

옮긴이의 말 - 어느 행복한 투사의 분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 투사이고 외교관을 지낸 93세 노인이 외친 연설을 출판사의 적극적인 권유로 책으로 만들어 엮은 것이다.

 글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연설을 토대로 책으로 묶은 것이다 보니 전하는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고 글 역시도 매우 짧다.

 저자가 전하는 핵심은 프랑스가 처한 지금의 현실에 대해 분노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고 호소한다.

 

■ 감동적이었던 장절

  

이 책은 ‘글’의 문장력 때문에, 전하는 메시지 때문에 흡인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오늘날의 사회를 살다보면 한번쯤 듣게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100세에 가까운 노인이, 젊은 시절 나치에 맞서 투쟁하고 수용소를 전전하며 목숨을 잃을 뻔했던 당사자가 오늘날의 현실을 보며 전하는 메시지이기에 더 울림이 크다.

 또한 저자가 단지 지난날 나치에 대항한 레지스탕스였다는 이력만으로 이런 메시지를, 이런 말을 했다면 또 어떠했을까. 저자는 이후에도 외교관 활동을 했고 유엔에서 비서직을 맡아 1948년에 세계 인권 선언문의 초안 작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를 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사회에 관심을 쏟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아프리카 노동자 교육협회를 창설했고, 1996년에는 80세의 나이로 교회를 점거한 이주노동자와의 협상주재에 나서기도 했고 환경문제, 인권문제 등등에 관심을 쏟으며 관심을 쏟는 만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저자이기에 울림이 큰 것 같다.


■ 보완점


 연설을 묶은 책이라 지극히 짧다. 연설문을 엮은 것이라 밝혔으니 내용이 지극히 짧은 것이 수긍이 간다. 다만, 연설의 내용인데도 전하는 메시지가 확실하고 내용이 불충분하지 않다. 또한 힘이 있다.

 거기에 저자인 스테판 에셀에 대해 소개하고 특히 인터뷰를 통해 저자의 인생과 메시지를 더 이해하게끔 해주고 있다.







분노한 사람들에게 - 공감하라! 행동하라! 세상을 바꿔라!

원제 An Die Emporten Dieser Erde!


스페판 에설 저, 유영미 옮김, 뜨인돌, 2012.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한국어판 서문 ; 아직은 악(惡)과 고통의 시대 공감과 참여로 세상을 바꾸십시오!


p5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적 수단을 통해 성공적인 글로벌 사회로 나아가려면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를 묶어 주는 것은 인권의 보편적 실현, 민주적 참여, 모두를 위한 복지의 원칙에 부합하는 전 지구적 평화라기보다는 악과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빈곤과 정치적 불의가 증가하는 한, 분노하고 참여하는 것이 옳습니다.


p6 참되고 평화로운 글로벌 사회의 진정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또한 책임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새 책 『분노한 사람들에게 : 공감하라! 행동하라! 세상을 바꿔라!』의 메시지입니다.


p7 "무엇으로 시작할 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마지막을 두려워한다네!“


여는 글 ; 공감 가득한 반항아 (롤란트 메르크)


p11 스테판 에셀은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를 가진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30쪽밖에 되지 않는 책으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에셀의 확신에 찬 말과 태도는 시대정신을 건드리고 개개인의 필요와 만난다. 의기소침한 사람들과 냉소적인 사람들에게 에셀은 용기를 낸다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p12 나는 에셀이 그의 저서 『분노하라』와 『참여하라』에서 밝힌 생각들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시키려 하는지 알고 싶었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상호 의존’이란 무엇인가? 아랍의 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 시대의 새로움은 무엇인가? 어떤 위험과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가? 그의 확신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가?


p13 에셀에게 대화란 마틴 부버 혹은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마찬가지로 단지 내용을 설파하는 수단이 아니다. 상대방과의 대화는 에셀에게 아주 본질적인 일이며,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모든 것에 깃든 대화원칙을 실현하는 형식이다. 에셀에게 말은 내용일 뿐 아니라 형식이며, 그의 말에 담긴 내용은 확신에 차 있고, 따뜻하며 신뢰감을 주는 그의 목소리로 들을 때 비로소 완전히 이해가 된다. 에셀은 글뿐 아니라 살아 있는 말과 자유로운 사고의 교환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우리 시대의 소크라테스다.


p14 그렇다. 에셀은 분노와 참여를 호소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 비폭력적이고 사려 깊은 행동을 옹호한다. 이것이 나치에 대항해 투쟁했던, 그리고 인류가 이미 이룬 것들 중 민주적 수단이 분노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확신하는 이의 견해다. 그는 인류가 이룬 소중한 것들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그 가치들을 수호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p14~15 그는 뛰어난 외교관인 동시에 문학 애호가로서, 아주 다양해 보이는 것들을 한데 모은 줄 안다. 그에게 문학은 인간의 마음에 이르는 왕도이다. 문학은 철학과 정치, 이성과 오성이 실행해야 하는 것들을 제시한다. 문학은 철학의 반대가 아니라 철학이 깃들 수 있는 그릇이다. 강단 철학이 아니라 에셀이 높이 평가하는 임마누엘 칸트적 의미의 철학, ‘세계철학’, 마음의 정점에 있는 철학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철학은 그저 공허하거나 따분해진다.


p15~16 발터 벤야민은 『파사주(Passagen-Week)』에서 “거지가 있는 한, 신화는 존재한다”라고 썼다. 그 말을 “거지가 있는 한, 유토피아는 존재한다”라고 고쳐 써 보면 어떨까! 그것은 벤야민뿐 아니라 그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스테판 에셀의 모토이기도 하다. 분노한 시민이라고 에셀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말’의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지어다. 경험으로 충만한 복잡함은 단순함으로 회귀한다고. 상황이 복잡하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용인해 주는 면죄부가 아니라고.


p16 『분노하라』이후에 이 땅의 분노한 사람들에게 주는 스테판 에셀의 새로운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을 바꿔라! 공감을 가지고, 진정한 글로벌 사회의 시민이 되라. 삶을 변화시켜라!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가? 지금까지 삶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이 땅의 분노한 사람들에게 고함! (스테판 에셀의 취리히 연설 / 2011. 10. 27)


p27 우리 레지스탕스 투사들은 2차대전 후반기부터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 당파를 가리지 않고 프랑스의 모든 레지스탕스가 이런 프로그램을 외쳤고 좌파, 중도파, 우파가 모두 힘을 합쳤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목적을 위해 모였고, 전쟁이 끝나면 이런 가치들을 수호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p28 나는 파리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될 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1948년 12월 10일이었죠. 그리고 같은 해, 이스라엘은 유엔에 의해 국가로 인정받아 국제무대로 나왔습니다. 유엔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유엔이 비로소 그 일을 가능하게 했지요. 2차대전에서 있을 수 있는 최악의 일, 홀로코스트를 겪어야 했던 불운안 유대인들이 이제는 나라를 가져야 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일에 모두 ‘찬성’했습니다.


p29 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표방하며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중요한 기본 가치들을 수호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아무도 그들을 지켜 주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공정한 선거를 실시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지만, 몇십 년간 지속되어 온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아랍 전쟁 동안 유례없는 끔찍한 추방을 당해야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일을 아랍어로 재앙을 뜻하는 ‘나크바’라고 부르지요. 우리는 이제 이런 일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해야 합니다.


p30 나는 프랑스어 단어에 들어 있는 ‘존엄(dignite)'이라는 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 자신의 품위와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가치들이 어딘가에서 무시된다면 ’분노해야‘ 합니다.


p36 현재 전 세계는 아무런 대안 없이, 신자유주의 자본만이 판을 치는 듯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아주 강하고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기에 이제 더 나빠질 일밖에 없어 보입니다. 어제 우리의 모든 정부들이 브뤼셀에 모여 해결 방법을 모색했지만 여전히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아직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해결 방법이 발견되기를 바라야죠.


p38 좋은 정부를 가지고 있든, 아직 힘이 넘치든 상관없이, 미국이건 이스라엘이건 스위스건 한 나라만을 위한 해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어떤 나라도 전체 글로벌 사회와 연결되지 않고 혼자서 해나갈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특성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특성을 알아야 하고, 시대적 과제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일단 분노해야 합니다. 만족은 좋지 않습니다. 너무 만족스러우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죠. 그럼 나약해집니다. 활력을 얻고 성장하고자 한다면 지금의 위험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어떤 투쟁이 필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또한 동료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2. 지금은 깨어날 때 (앙드레 마티 & 취리히 청중들과의 대담)


p42~43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나의 수감번호로군요. 10 003! 게슈타포에게 체포된 건 물론 좋은 일이 아니었어요. 누구나 이젠 끝장이구나 생각하는 상황이었죠. 난 한 동료의 배신으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게슈타포의 고문에 못 이겨 나의 정체를 밝히고 말았죠. 나는 1944년 7월 10일 파리에서 체포되었고, 한 달 동안 모진 고문과 심문을 당한 후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어 10 003이라는 수감번호를 받았어요! 그 번호를 받은 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모두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었죠.



p47~48 마티 : 에셀 씨, 당신은 세계인권선언에 엄청난 중요성을 부여하고 계시죠.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인권선언의 실행에 우선순위를 둔다든지 하는 강제성은 없는데요? 이런 상황이 약간 실망스러우십니까?

    에셀 : 아니오. 이런 특별하고 놀라운 내용이 무조건 현실에서 이미 실현되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이런 내용은 희망이고, 목표이고, 강령이기도 해요! 현재 뉴욕에 모여 팔레스타인에게 국가 자격을 부여할지 말지를 논의하는―아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요. 팔레스타인이 인준 받을 수도 있다고 봐요―139개 유엔 회원국 중 그 언 나라도 인권선언에 완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쪽저쪽 치고받고 전쟁을 하면서 형제자매들처럼 산다고 할 수는 없겠죠? 아직 많은 나라들이 그러고 살아요!


p51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책의 제목은 상당히 선동적이지만 책을 마지막 세 페이지까지 읽어 보라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비폭력적으로 분노해야 하며,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정확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겐 넬슨 만델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바츨라프 하벨,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등 위대한 모범들이 있지요.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만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죠.


p54 오늘날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최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비정부기구, 즉 NGO에 참여하는 방법이죠. 국제사면위원회, 국제인권감시, 인권연맹 등 많은 NGO가 있어요. 한 나라, 혹은 여러 나라에 지부를 두고 있고, 아탁(ATTAC, 금융거래과세 시민연합)처럼 훌륭하게 네트워크화가 이루어져 있는 기구들도 많지요. 아탁의 의장 수전 조치는 최근 『Leurs Crises, nos solutions(그들의 위기, 우리의 해법)』이라는 멋진 책을 썼습니다.


p56 이집트에서도 선거의 길이 열렸지요. 분노가 확산되어 일단 독재자를 타도하고 보려는 곳이든, 스페인처럼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만족이 표명되는 곳이든 간에 다음 걸음은 헌법이나 새로운 선거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61~62 청중 : 자신의 인도주의적 전통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우방이며 이스라엘과 무역을 하고, 심지어 군사협력까지 하는 스위스 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그것 때문에 화가 납니다! 그에 대해 하실 말씀은요?

   에셀 : 우리의 정부, 그 중에서도 최고를 자부하는 정부들은 늘 무기를 팔고 싶어 해요. 돈벌이가 되니까요. 그렇다면 누구에게 무기를 팝니까? 물론 친구들에게 팔죠! 그런데 이스라엘과 친구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좋은 관계를 가진 나라인데? 따라서 그냥 무기를 팝시다!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다음에 그들이 이 무기로 무엇을 하는지, 누구에게 그 무기를 겨누는지를 정확히 본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정부들이 인권침해를 감지하고도 슬쩍 넘기는 걸 용인해서는 안 돼요. 이스라엘 같은 나라가 이런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합니다.


p71 현 상황은 아주 위험합니다. 우리는 현재 은행의 위기, 시장경제와 금융경제 위기 가운데 있어요. 위기는 아직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못한 금융권력의 부상과 더불어 다시금 내셔널리즘 그룹과 파시즘을 배경으로 하는 그룹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게 될 날이 곧 올 것입니다. 즉 신자유주의 경제가 종식되고,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밀턴 프리드먼의 대항마로 다시금 부상할 날이 멀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p75~76 내셔널리즘과 이슬람 혐오증, 앞으로 있을 새로운 반유대주의의 부상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행동방식은 인류사에서 언제나 있어 왔지요. 누구 책임일까요? 최근 우리 사회의 경우는 교육제도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 남보다 강해지는 것, 다른 사람을 이기고 살아남는 것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었어요.

    나는 늘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지난 몇십 년간 이기심이 거의 부추겨지다시피 했습니다. 경제계에서는 경쟁이 너무나 중요해졌죠. 젊은이들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최상의 일자리를 얻으려고 안간힘을 써요. 그렇지 않으면 무능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때문이죠.


p78 프랑스의 문필가 몽테스키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는 좋지만 가족에게 나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가족에게 좋지만 조국에게 나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안 된다고 말한다. 내 조국에는 좋지만 이 세계에 나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안 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자세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올바른 세계시민의 자세라 할 수 있겠지요.


p79 "저항, 그것은 창조이며 창조, 그것은 저항이다!“ 텍스트 속에서 읽지 않으면 굉장히 추상적인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무슨 뜻일까요? 창조는 언제나 저항에 부딪히고 저항은 뭔가를 창조할 때만 실현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마티 씨를 비롯한 귀한 청중들과 작별을 하고자 합니다. 자, 다시 일어나 저항하고 창조합시다!

 

3. 공감하라! 지속적으로 항의하라! (롤란트 메르크와의 대담)


p85 메르크 :상호 의존된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강조하면 세계속 인간의 지위와 인간에 대한 요구 목록도 변화하게 됩니다. 2011년 말, 프랑스어로 출판된 『Tous comptes faits...ou presque(전부...또는 거의)』에서 당신은 “분노는 첫 단 추다. 필요하지만 불완전하다.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생각과 시각이 필요하다!”고 쓰셨습니다. 함께 대화를 해나가면서 새로운 시각을 얻고, 당신 속에 있는 새로운 생각들을 더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p88~92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일어났고 다른 국가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특정한 세계 질서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계 질서를 특징짓는 커다란 위험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막대한 부이고 하나는 전대미문의 빈곤입니다. 월가 점령시위대의 “우리는 99퍼센트다”라는 슬로건은 그 점을 풍자하고 있어요. 커다란 빈부격차는 우리가 극복해야만 하는 위험입니다.


p92 새뮤얼 헌팅턴이 주장한 ‘문명의 충돌’, 즉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할 거라는 생각은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아요. 가령 튀지니의 엔나흐다 정당이 이슬람주의가 아니라 이슬람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즉각 강조했던 것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그것은 각 사람의 필요, 또한 세계시민 각각의 필요는 어디서나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핵심적인 메시지는 “이제 인간의 기본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따라서 식량의 생산과 분배와 관련한 문제들, 경제와 건강과 교육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독재자든 민주주의자든 간에, 통치자들이 이를 명심하지 않는다면 분노를 사게 될 것입니다. 모든 시민들의 상당히 일반화된 분노를 말이지요.


p93 우리의 문제는 글로벌한 것들입니다. 그에 반해 분노는 지역적이에요. 하지만 분노의 총합은 뭔가 글로벌한 것을, 글로벌한 문제와 위험을 시사하지요.



p95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9.11 이후 서구는 이슬람과 알 카에다를 두려워했어요. 이슬람 국가들은 우리 눈에 위험하게 보였지요. 그들이 알 카에다 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서구 지도자들은 “그래도 우리와 의사소통이 잘되는 독재자들이 이슬람 국가들을 다스리는 편이 더 낫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러면 이슬람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정확이 이런 끔찍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두려움은 더 이상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죠.


p99 하지만 혁명적인 열광은 없을지라도, 나는 나의 책들이 인간들의 마음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용과 사랑과 존경에, 예술과 문학에 대한 열광에 말을 걸고 부추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처럼 한편으론 자녀들이 미래에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녀들이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기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p100 분노와 참여는 내게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은 분노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노하지 않는 한 완전한 인간이 아니에요. 그러나 분노와 참여는 시작일 뿐입니다. 단지 시작일 따름이지요. 우리는 분명 용인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또한 새로운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다른 세계는 시대 경험에서 탄생하지요.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자식입니다. 그런 시각을 가지면 작은 것에 연연하기보다 커다란 전체를 염두에 두게 되죠. 그리고 거기서 내가 ‘문턱’이라 부르는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우리는 공감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던 옛 세계와 공감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 사이의 문턱에 살고 있어요.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 이것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사회 참여를 진전시켜 줄 것입니다.


p101 분노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생각, 즉 세계적인 사고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중 위기 속에 있어요. 우리가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한, 이런 위기들은 우리를 꼼짝 못하게 가두고 우리는 거기서 헤어나지 못할 겁니다.

    위기는 심각합니다. 그걸 극복하는 건 우리의 인간성에 내가 ‘공감’이라 칭한 측면을 도입하고 강화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여, 공감, 감정이입, 이해심―한마디로 인류의 단합―입니다.


p105 열정은 공감보다 더 강한 말이지요. 열정은 공감을 포함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공감은 열정보다는 좀 더 겸손한 개념입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를 불쌍히 여길 줄 알아요. 우리는 자신에게 없거나 충분하지 않은 것들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또한 다른 사람에게 없거나 충분하지 않은 것 때문에 괴로워할 줄도 알지요. 자신을 위한 목표 이상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있어 공감은 만족하지 않는 감정이에요. 공감은 반항하고, 돕고자 해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보고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 단합하는 것이죠.


p108 타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들에 감정이입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살았던 시대와 달리 우리는 글로벌 사회에 살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공감만이, 반복하건대 단지 공감만이 국가들 간에 연대의식을 북돋울 수 있지요.


p109 그냥 분노하라는 말로는 그것을 알리지 못해요. 존엄없이도 화를 낼 수는 있지만, 존엄이 침해되는 것을 볼 때만 의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늘 지적하는 차이지요.



p117 나는 개혁이 느낌과 공감에 좌우된다고 봐요. 그래서 이제 철학을 논할 때가 아니고 인류학을 논할 때라고 말합니다. 순전히 사색으로만 일관하는 건 우리에게 더 이상 필요치 않으니까요.


p124 다행히도 오늘날 우리들은 세계경제에 대해 약간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알고 있지요. 그러므로 정책방향을 전환하여 복지를 강화하고, 경제를 다시금 사회적으로 뿌리내리게 할 절호의 시기입니다.


p125 부의 재분배가 필요해요. 어떤 나라건 그냥 너무나 많이 가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조세정책의 개혁이 필요해요. 하지만 세금을 거두는 것뿐 아니라 거둔 세금을 어디에 쓰는지도 무척 중요합니다. 무기, 마약, 원자력 발전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는지…….

    경제정책 역시 많은 돈이 개개인의 이익으로 연결되도록 방향 전환을 해야 합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달라질 수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고르바초프가 바랐던 ‘경제안전보장이사회’ 같은 것이 필요해요. 가난한 이는 넉넉해져야 하고 소수의 특권층, 즉 과도하게 특권을 누리는 이들은 특권을 잃어야 합니다. 프랑스 혁명 때 귀족과 성직자 특권층들이 그랬듯이 말이죠.


p129 내가 지상의 분노한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마침내 새로운 방식의 사회 발전을 이룩하라는 것입니다.


p141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공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현 정부는 우리의 공감이 필요하지 않아요. 공감할 만한 행동을 보이지 않으니까요. 유대인에 대한 공감과 감정이입은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공감과 감정이입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차이를 강조해야 합니다. 유대인에 대해서는 그들의 운명을 최대한 동정하고 공감해야 해요. 그들은 내내 소수민족 박해라는 고통스런 역사에 시달리다가 결국 쇼아를 겪어야 했죠.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서는 의무를 지게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의무가 있거든요. 유엔의 도움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부가―그 국민이 아니라―이런 좋은 관계를 깨뜨리기 위해 온갖 것을 다한다면, 다른 국가들이 이 나라를 여느 비슷한 나라들처럼 엄격하게 취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p149 오늘날의 질문은 글로벌 착취로 얼룩진 세계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글로벌 공동체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겁니다. 우리는 상호 의존적이고 상호 연대하는 세계 공동체를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하고, 우리 눈에 보이는 인류의 기본문제들과 싸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재화 분배의 부당함과 자연을 다루는 방법의 부당함. 이 두 개의 기본문제는 줄곧 제기되어 왔지만, 이제는 정말로 깊이 연구해야 할 세계사의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p152 생각은 자유로워요. 생각은 무한까지 떠돌아다니죠. 오늘날 인간성의 개혁과 세계의 개혁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모두는 스스로 창조자라는 생각을 해야 해요. 그리고 계속 창조하기 위해 저항해야 하고, 계속 저항하기 위해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해요. 그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p154~155 시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물론 약간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안에 시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는 그리스어 ‘poein'에서 유래하는데 ’창조하다‘라는 뜻이지요. 우리 안에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는 낡은 인간성에 저항할 수 있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인간성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추천사;글을 읽기 전에 그의 삶을 읽어라!-거세된 분노를 일으켜 세우는 늙은 투사의 육성(홍세화)


p161 ‘세상 앞에 함부로 나서지 말라!’ 학교와 회사가 모두 병영의 질서로 구조화되어 있고 명령이 지배하는 시대에, 웃음은 말할 것도 없고, 분노는 감추어지거나 더 바람직하게는 삭제되어야 할 인간의 감정이었다. 이런 한국 사회도 많이 달라졌다. 이것 역시 질서와 명령을 뚫고서 폭발한 분노(항쟁으로 나타난) 덕택임은 물론이다.


p166~167 "매일 아침 세계의 모든 일에 끼어들어, 때로는 아주 선동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당신을 몰아가는 원동력은?“ 그는 ‘인간의 마음’이 지닌 중요성으로 답한다. ”인간은 나빌 변신할 수 있는 애벌레와 비슷하다. 분노하지 않는 한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라는 에드가 모랭의 비유를 인용하면서, 우리는 이 세계가 변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얼굴에서 공허한 웃음을 지우고, 우리를 옥죄어 온 불안을 던지고 분노한 얼굴로 세상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스테판 에셀의 다음과 같은 말을 언제나 기억할 일이다.

    “자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가? 아직 우리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3. ‘내가 저자라면’


■ ‘분노한 사람들에게’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한국어판 서문 ; 아직은 악(惡)과 고통의 시대 공감과 참여로 세상을 바꾸십시오!

 

여는 글 ; 공감 가득한 반항아 (롤란트 메르크)

 

1. 이 땅의 분노한 사람들에게 고함! (스테판 에셀의 취리히 연설 / 2011. 10. 27)

 

2. 지금은 깨어날 때 (앙드레 마티 & 취리히 청중들과의 대담)

 

3. 공감하라! 지속적으로 항의하라! (롤란트 메르크와의 대담)

 

추천사 ; 글을 읽기 전에 그의 삶을 읽어라! -거세된 분노를 일으켜 세우는 늙은 투사의 육성 (홍세화)


분노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이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분노하라고 해서 분노했고 분노한 사람들에게 다시 저자는 이러한 메시지를 전한다. 공감하고 행동하라고. 그래서 세상을 바꾸라고 말한다. 이 책은 또다시 저자의 연설을 글로 바꾸었고 다른 학자들과 청중들과의 대담을 함께 묶어 만든 책이다.

 1부에는 저자의 연설문으로 저자의 신랄함이 나타나며, 2부 「지금은 깨어날 때)」에서는  앙드레 마티와 청중들과의 대담으로 인류의 현안들에 대한 일관된 신념이 나타난다. 3부 「공감하라! 지속적으로 항의하라」에서는 롤란트 메르크와의 대담으로 역사, 철학, 문학, 예술을 넘나드는 해박하고 독창적인 사유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 감동적이었던 장절

  

스테판 에셀의 말은 군더더기가 없고 핵심을 명확히 하고 있기에 읽기에 편하다. 또한 그것이 연설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저자의 얘기에 빨려 들어갔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현재 서구사회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정확히 집어내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오랜 시간 활동한 이의 확신과 사회에 대한 통찰과 관심이 묻어난다. 똑같은 말을 한다 해도 ‘스테판 에셀’이니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의 삶과 함께 저자가 말하는 목소리에 감동하게 되는 것이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경험에 대해 사람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같은 말을 전하는 것에서 울림이 다른 것이 오로지 스테판 에셀이 말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에서의 울림이 그러했던 것, 스페인으로 이어진 것,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겠는다.


■ 보완점


스테판 에셀이 전하는 메시지는 한결같기에 또다른 이야깃거리가, 있을 수 있긴 하겠지만, 이전의 메시지보다 강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엔 대안이 따라야 하는 것이니 메시지에 대한 삶의 철학들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분노하라와 마찬가지로 연설이라는 짧은 분량을 책으로 만들어 내다 보니 느껴지는 아쉬움을 위해 여러 대담을 싣고 있다. 이런 대담 덕분에 이 책의 아쉬움이 달래 진다. 자칫, 스테판 에셀을 앞세워 책팔워먹기로 호도될 뻔한 출판사인데, 이런 노력들 덕분에 그 점은 쉽게 가라앉혀진다.

 특히 한국어판에서는 신자유주의에 관한 사진이 있다. 사진작가인 이상엽, 정택용 씨의 사진이다. 저자가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오버랩되며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시각적으로도 각인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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