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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9일 10시 42분 등록

멍하이에서

2015. 1. 19


1월 7일 수요일 맑음.


늦은 오후 리장丽江을 날아 징훙景洪에 닿았다. 텐진天津서 날아 온 중국친구들이 마중을 나왔는데 타고 온 차들이 영화에서나 봄직한 으리삐까번쩍 오프로드 차들이다. 좋아하는 茶에 좋아하는 車까지 있으니 싱글벙글 기분이 좋다. 만년설 가운데 있다가 두어시간만에 만난 초여름의 후텁지근함도 괜찮다. 마중나온 친구들이 징홍시내에 있는 자신들의 會所로 안내했다. 열대의 이국적인 풍경에 잘 정돈된 별장촌쯤으로 보이는 이곳은 자본의 힘이 넘치는 중국의 일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빈속에 생차를 몇잔 쑤셔넣었더니 후달린다. 허기가 구름처럼 몰려왔다. 근처 야시장을 들러 망고주스 한잔씩 마시고 멍하이로 간다. 


내가 구름의 남쪽땅 윈난雲南 언저리를 그리워 하고 때때로 서성이게 된 것은 순전히 ‘푸얼차普洱茶’ 때문이다. 그러니까 십여년전 광둥廣東의 작은 도시 카이핑开平에서 뺑이치고 있을 때 푸얼차를 만났다. 습하고 더운 습생에 지쳐 늘어진 오후 ‘팡총’은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시커먼 찻물을 대접하곤 했다. 무슨 물인지도 모르고 마시기 시작했는데 편하게 마실 수 있었고 마시고 나면 이내 속이 편안해지고 짜증스럽던 기분도 가라앉았다. 이렇게 시작된 푸얼차와의 인연이 지금까지 맹렬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멍하이勐海는 푸얼차 생산의 중심에 있는 지역가운데 한 곳이다. 구름의 남쪽땅 가운데서도 가장 남쪽인 이곳엔 푸얼차의 역사와 함께하는 ‘멍하이 차창’이 있고 부랑산布朗山, 바다산巴達山, 난누어산南糯山, 멍송산勐宋山 등 푸얼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콩닥거릴 유명 차산들이 주변에 밀집해 있다. '차쟁이라면 멍하이 정도는 한번 찍고 가야하는 거 아냐!? 거기 가봤거든!' 그렇다. 수박겁데기를 혓바닥으로 싹싹핥아 혓바늘이 돋을지언정 그렇게라도 먹어봐야 하는 것, 멍하이는 적어도 이쯤은 되는 곳이다. 이 밤 나는 지금 렌지로버를 타고 난누어산을 넘고 있다. 이 산을 넘으면 멍하이다. 아! 설레임은 이래서 참 좋은 것이다.


난누어산을 넘어서면서 광활한 길을 달린다. 작은 시골 현으로 향하는 길치곤 넓어도 너무 넗다. 궁벽진 이 곳에 사람들이 차(정확하게 말하자면 古樹茶)를 찾아들면서 돈이 넘쳐난다는 것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휘황찬란한 간판들과 급하게 지어올린듯한 건물들이 옛 모습들과 뒤석여 있는 모습이 차라니 남루한만 못하다 싶다. 제법 큰 건물마다엔 KTV(노래방) 간판이 어김없이 번쩍이며 불야성이다.


로비에 십억짜리 의자가 덩그러니 드러 누운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길 건너에서 천원짜리 미시엔(쌀국수)으로 주린 배를 달랬다. 꼬치구이 한소쿠리 담아놓고 독한 빠이주를 쏟아 넣었다. 허기진 세포들은 몸속 구석구석으로 빠르게 알콜을 배송한다. 밤이 깊을수록 바람이 차다. 일행들이 하나 둘 숙소로 돌아가고 서넛 남았다. 바닥을 보이는 술이 아쉽다.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늦은 밤토록 멍하이와 만났다. 혼자였더라면 새벽에 닿았으리라. 하늘을 보니 별과 달이 드문드문 흐른다. 




[멍하이 차창]

보이차를 좋아하다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이 있다. ‘멍하이 차창’이다. 현대식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춘 차창으로서는 처음일 뿐만 아니라 현대보이차의 표준이라고 하는 ‘7542_보이차 이름’를 만들었다. 그뿐인가! 광둥사람들이 차를 익혀먹는 것에 착안해서 쇄청모차를 인위적으로 강제발효 시켜 만드는 숙차 제조기술을 1973년 최초로 성공시켜 양산을 시작했으며 보이차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바야흐로 살아있는 보이차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멍하이 차창은 지금까지도 보이차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다.



IP *.201.14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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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9 11:37:16 *.255.24.171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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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0 15:03:35 *.196.54.42

중국 차창 섭렵기 쯤으로 여행서를 써도 좋겠구만 피울선생^^

사진이 되니 그대가 훨 여행기에 어울리는 작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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