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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9일 10시 55분 등록

나무야나무야

신영복, 돌베개, 1996년 초판

2015. 1.  18


1. 저자에 대하여


아직 이분을 모를 때였을 것이다. 라디오 인터뷰였던 것 같은데 리포트가 서예에 대해서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은 그 질문에 공부하는 사람에게 서예를 마치 예술이나 되는 것 처럼 떼어서 말하는 것을 경계한다고 했던 것 같다. 공부하는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러다가 좀 잘 쓰게 된 것 뿐이라는 것이 말씀의 요지였는데 서예가로 불리는 것이 불편하다고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인터뷰를 들으면서 내가 평소 ‘작가’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문득 검색창에 선생의 이름을 넣었다. 선생은 이렇게 내게 오셨다. 


1941년 생이신데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신다. 앞으로도 긴 시간 동안 이렇게 활동 하실 수 있길...그리고 그 기간 동안 몇 권의 책을 더 남겨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스승이 귀한 세상을 살고 있다. 나는 그가 우리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스승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존경을 바친다.


당신처럼 절제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당신처럼 행동할 수 있길 바랍니다.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책 머리에


5p. 언덕에서 멀리 돌팔매를 하면 돌멩이는 둥글게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집니다. 공중에 둥근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돌멩이를 보면서 그것은 지구가 공처럼 둥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매우 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달리면 바람개비가 돌아갑니다.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도 그것이 공기의 무게 때문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만 지금도 생각을 그르치기는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그르치는 까닭이 지금은 단지 쉽고 어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훨씬 더 많은 이유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을 덮어둔 채 우리의 생각을 바로 세우기란 불가능 하다고 믿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쓰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쓰고 싶지 않은 말을 쓰지는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갑니다.

-> 현명한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재빠르게 맞춰나가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우직한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그나마 사람의 향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12p. ~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 _ 얼음골 스승과 허준.


허준의 이야기는 물론 소설가가 그려낸 상상의 세계이며,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거나 그것이 비록 사실은 아니라 하더라도 진실임에는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사실이라는 그릇은 진실을 담아내기에는 언제나 작고 부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실보다 진실이 더 위대하고 큰 힘을 발휘한다. 뽀로로와 친구들은 사이가 좋다. 뽀로로는 팽귄이고, 루피는 비버, 크롱은 공룡, 포비는 백곰이다. 팽귄이 백곰이랑 같이 살 수 없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지만 진실하지는 않다. 백곰이 팽귄을 잡아먹고 산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포비와 뽀로로를 등장시켜 설명하려 하지 말 일이다. 진실은 사실보다 크고 위대하다.


우리는 어차피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스승이기도 합니다. 이 배우고 가르치는 이른바 사제의 연쇄를 더듬어 확인하는 일이 곧 자신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스승과 제자의 원융圓融

-> 한 데 통하여 아무 구별 없음. 원만하여 막히는 데가 없음. 일체의 여러 법의 사리가 구별없이 널리 융통되어 하나가 됨.


옛날의 어머니들은 자기가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저마다 누군가의 자양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자모慈母라 하였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연쇄 가운데에다 자신을 세우기보다는 한 벌의 패션 의상과 화려한 언술로 자기를 실현하고 , 또 자기를 숨기려 하는 것이 오늘의 문화입니다.


화사한 언어의 요설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의 앞뒤좌우에 우리와 함께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으로써 깨닫고, 삶으로써 가르칠 뿐이라 믿습니다. 여느 해보다 청명하고 길었던 가을이 끝나고 있습니다. 등 뒤에 겨울을 데리고 있어서 가을을 즐기지 못한다던 당신의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9p. ~ 우리가 헐어야 할 피라미드 _ 반구정과 압구정


-> 반구정은 방촌 황희, 압구정은 한명회로 대비구조를 이룬다.

-> 伴반과 狎압은 벗한다는 뜻의 같은 의미.

-> 동의반어의 절묘한 비유.


반구정이 지금도 갈매기를 벗하며 철새들을 맞이하고 있음에 반하여 압구정은 이미 그 자취마저 없어지고

-> 남아있는 모습이 판이함을 그 주인들의 삶의 괘적과 닮아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은 명상, 현상으로 칭송되는가 하면 또 한 사람음 권신, 모신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다.


정치란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내고 키우는 일’

->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가 아니라 피라미드의 해체가 정치, 땅을 회복하고 노역을 해방하기 위해 모든 형태의 피라미드를 해체해야 한다고 믿는다.


분단의 제거야말로 민족의 역량을 최대화 하는 최선의 정치임을 이야기하는 듯 반구정은 오늘도 남북의 산천과 남북의 새들을 벗하고 있었습니다.


24p. ~ 당신이 나무를 더 사랑하는 까닭_소광리 소나무숲


생각하면 소나무보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하면서도 무엇 하나 변변히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소광리의 솔숲은 마치 회초리를 들고 기다리는 엄한 스승 같았습니다.


소나무가 없어져가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기어이 소나무로 복원한다는 것이 무리한 고집이라고 생각됩니다. 수많은 소나무들이 베어져 눕혀진 광경이라니 감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를테면 고난에 찬 몇 백만 년의 세월을 잘라내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 경복궁 복원을 위해 100년 짜리 100개를 벌목하면 만년, 300년 짜리 100개를 벌목하면 삼만년이 잘려나가는 것이다. 동계올림픽을 위해 기리왕산 원시림이 잘려나갔다.

없어도 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될 것들을 마구 잘라내고 있는가 하면 아예 사람을 잘라내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에 유일한 생산자는 식물. 동물은 완벽한 소비자, 사람은 그중에서도 최대의 소비자.


사람들의 생산이란 고작 식물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나 땅 속에 묻힌 것을 파내어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쌀로 밥을 짓는 일을 두고 밥의 생산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인간은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의 주체, 쌀로 밥을 하는 일이 생산이라니 참으로 오만하고 궁색하다. 


남산의 소나무가 이제는 더이상 살아남기를 포기하고 자손들이나 기르겠다는 체념으로 무수한 솔방울을 달고 있다는 당신의 이야기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30p. ~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_허난설헌 무덤


개인의 진실이 그대로 역사의 진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연마저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음으로써 대리현실을 창조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만날 수 있기는 갈수록 더욱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가치가 해체되고, 자신은 물론 자식과 남편마저 ‘상품’이라는 교환가치 형태로 갖도록 강요되는 것이 오늘의 실상이고 보면 아픔과 비극의 화신인 허난설헌이 설 자리를 마련하기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역사의 진실은 항상 역사서의 둘째권에서 다루어진다.


단단한 모든 것이 휘발되어 사라지고 디즈니랜드에 살고 있는 디오니소스처럼 ‘즐거움을 주는 것’만이  신경의 숭배를 받는 완강한 장벽 앞에서 작은 비극 하나에도 힘겨워하는 당신의 좌절을 기억합니다.


어린 남매의 무덤 앞에 냉수 떠놓고 소지 올려 넋을 부르며 “밤마다 사이좋게 손잡고 놀아라.”고 당부하던 허초희의 음성이 시비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36p. ~ 진리는 간 데 없고 ‘색’만 어지러이_백담사의 만해와 일해


-> 만해와 일해를 한자리에서 봐야 하는 심상. 백담사에 얽힌 역사의 무상함

-> 기막힌 대비


사람의 눈동자는 95%가 흑백을 인식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색깔을 인식하는 부분은 불과 5%에 불과


42p. ~ 미완은 반성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_ 모악산의 미륵


‘등’은 거부가 아니다.


미륵이 고난받는 중생의 부처라면 현란한 금동여래상과는 분명 다른 것이어야 했습니다. 


나로서는 개금된 미륵상에서 미륵이 실현하리라던 세계를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타인에게 인간적인 세상’을 읽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용화세계’의 이상이 고작 고봉쌀밥이라는 풍요의 세계였던가.


어떠한 것도 내부로 깊숙이 안아들여 자기 것으로 육화시키는 그 우람한 역량에 대한 신뢰가 내게 부족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미완은 반성이며 가능성이며 청년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그러기에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역경 64괘는 미완의 괘인 ‘미제’괘로 끝나고 있습니다. 괘사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 여우가 시내를 거의 다 건넜을 때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48p. ~ 일몰 속에서 내일의 일출을 바라봅니다._하일리의 저녁노을


강화학파 : 지행합일이라는 지식인의 자세를 준엄하게 견지하며 인간의 문제와 민족의 문제를 가장 실천적으로 고민하였던 학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여투다 : 돈이나 물건을 아껴 쓰고 나머지를 모아 두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환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서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대문이다. 

-> 지식인의 단호한 자세을 피력하는 글.


54p. ~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은 빛을 드러냅니다._이어도의 아침해


-> 가멸다 : 재산이나 자원 따위가 넉넉하고 많다.

-> 천혜의 관광 섬 제주도, 그러나 적거의 땅.


기쁨과 아픔, 환희와 비탄은 하나의 창문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풍경인지도 모릅니다.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은 빛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기와 지혜는 당신의 말처럼 ‘결합의 방법’입니다. 선량하나 나약하지 않고 냉철하나 비정하지 않고 치열하나 오만하지 않을 수 있는 ‘결합의 지혜’, ‘결합의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60p. ~ 한아름 벅찬 서울 껴안고 아파합니다._북한산의 사랑


산천이 ‘몸’이고 그 위에 이룩된 문명이 ‘정신’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지금의 서울은 참으로 참담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처난 몸이 거대한 머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가슴’과 ‘머리’의 조화라고 하였습니다.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이성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비로소 개인적으로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 ‘인간’이 됩니다. 이것이 ‘사랑’과 ‘이성’의 인간학이고 사회학입니다. 사랑이 없는 이성은 비정한 것이 되고 이성이 없는 사랑은 몽매와 탐닉이 됩니다.


가슴을 떠나는 것은 ‘질’을 버리고 ‘양’을 취하는 것이며 사용가치를 버리고 교환가치를 취하는 것.


나는 앞으로 더 이상 북한산을 오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산에게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염치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산에서 보는 서울이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66p. ~ 눈이 달린 손은 생각하는 손입니다._천수관음보살의 손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은 수많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철학을 우리는 이미 완성해놓고 있습니다.

... 그런 점에서 나는 조직이 망라하고 있는 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입된 수많은 손도 역시 신뢰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손은 누군가의 살아 있는 손이고 그 손에는 모두 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논리학인 수학은 언제나 등식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 ‘또 하나의 손’이 짐을 들어주는 손이 아니라 손을 잡아주는 손이기를 바랍니다.


72p. ~ 꽃잎 흩날리며 돌아올 날 기다립니다._잡초에 묻힌 초등학교


끝내는 징역살이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농촌 이후’가 떠오릅니다. 농돌이에서 공돌이로 그리고 범돌이로 그리고 다시 징역을 사는 징돌이로 전락해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쓸쓸한 교정을 무대로 펼쳐집니다. 가로막는 폭풍 앞에서 무참히 쓰러진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78p. ~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_온달산성과 평강공주


하나가 되는 것은 더 커지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을 생각하면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당나라에게 내주기로 하고 이룩한 통일은 분명 더 작아진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통일이 아니라 광활한 요동 벌판의 상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현대사회에서 평가되는 능력이란 인간적 품성이 도외시된 ‘경쟁적 능력’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낙오와 좌절 이후에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한마디로 숨겨진 칼처럼 매우 비정한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은,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산다는 것은 살리는 것입니다. 살림生입니다. ... 살림이란 ‘뜻의 살림’입니다. 세속적 성취와는 상관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84p. ~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_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과거’ 를 읽기보다 ‘현재’ 를 읽어야 하며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조의 주변에 결집한 세력의 사회적 성격은 무엇이며 그처럼 살벌한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기어이 복위를 도모했던 집현전 학사들의 충절과 명분은 얼마만큼 정의로운 것인가 하는 의문을 금치 못합니다.

전제왕권제가 조선시대의 효율적인 정치체제라거나 의정부집정제가 보다 민주적 합의제라는 논의도 결과적으로 어느 한쪽에 가담하는 것이란 점에서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政은 정正이고 권權은 균형均衡이라고 하였습니다.


금金 없이 권權이 설 수 없고 권權 없이 금金이 재 생산될 수 없기 때문에 금권의 야합과 세습, 그것은 고금을 통하여 변함 없는 정치적 주제라 하였습니다. 민생과 철학은 그것의 방편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90p. ~ 드높은 삶을 지향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십시오._새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


-> 주춧돌부터 그리는 목수와 융통성 없는 차치리의 이야기


‘위로’는 진정한 애정이 아닙니다. 위로는 그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함으로써 다시 한번 좌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낭만은 ‘관계의 건설공간’이란 말을 나는 좋아합니다. 우리들이 맺는 인간관계의 넓이가 곧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낭만의 크기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들의 일상에 내장되어 있는 ‘안이한 연루’ 를 결별하고 사회와 역사와 미래를 보듬는 너른 품을 키우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비록 지금은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발로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넓은 길, 넓은 바다를 만나리라 믿고 있습니다. 


95p. ~ 광화문의 동상 속에는 충무공이 없습니다._한산섬의 충무공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 있는 우상은 사람들을 격려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본질에 있어서 억압이다.


100p. ~ 헛된 시비 등지고 새 시대 예비한 고뇌_가야산 최치원


종일토록 비단을 짜면서도 한번도 비단옷을 걸쳐보지 못하는 ...


106p. ~ 빼어남보다 장중함 사랑한 우리 정신사의 지리산_남명 조식을 찾아서


수秀와 장壯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속성인지도 모릅니다. 이 둘 가운데 하나만을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수보다는 장을 택하고 싶습니다. 장중함은 얼른 눈에 띄지도 않고 그것에서 오는 감동도 매우 더딘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의 ‘있음’이 크고 그 감동이 구원久遠하여 가히 ‘근본’을 경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2p. ~ 목표이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_섬진강 나루에서


피는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에 피를 축내는 노동은 어떠한 달성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아니라는 글을 다시 읽습니다.


목표의 올바름을 선이라 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를 때를 일컬어 우리는 그것을 진선진미라 합니다.


118p. ~ 기부좌의 한 발을 땅에 내리고 있는 부처를 아십니까_백흥암의 비구니 스님


아무것도 설법하지 않는 백흥암의 정적과 무위는 그야말로 문자를 세우지 않는 침묵의 가르침이었습니다.


124p. ~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_석양의 북한강에서


‘거리’의 제거가 ‘인간관계’ 마저 제거함으로써 도리어 소통이 경색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로를 달려 마침내 도착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더욱 걱정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첨단과학은 인간이 어디로 향하여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없는 한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기술에 불과하다는 당신의 극언에 공감합니다.


아침이 되면 간밤의 꿈을 세숫물에 헹구어 내듯이 삶은 그 투박한 질감으로 우리를 모든 종류의 잠에서 깨어나게 할 것입니다.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깥에서 얻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 하는 한 그루 나무인지도 모릅니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鑒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鑒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 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어깨동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130p. ~ 사람과 산천 융화하는 우리 삶의 원형_강릉 단오제에서


조調는 글자 그대로 말씀言을 두루周 아우르는 민주적 원리이며, 화和는 쌀禾을 나누어 먹는口 밥상공동체임에 틀림없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최소함으로써 단지 갈등을 회피하려고만 할 뿐 관계 그 자체의 건설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으려는 ‘시민의식’ 의 왜소한 실상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으로 격하되고 커뮤니케이션은 다시 미디어의 문제로 귀착되는 ‘동굴의 이성’을 반성하게 합니다.


136p. ~ 평등은 자유의 최고치입니다._평등의 무등산


평등은 단지 차별의 철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이야말로 ‘자유의 최고치’이기 때문입니다.

-> 평등은 이상일 것이다. 나는 평등보다 공정과 공평에 대해서 생각한다.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무지와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오랜 역사를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142p. ~ 우리의 삶을 훌륭한 예술품으로 훈도해줄 가마는 없는가_이천의 도자기 가마


문화란 원래 ‘삶의 형식’입니다. 문文이란 무늬를 뜻하는 것이며 문화란 삶의 무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과학 위에 서 있으면서도 결국 ‘불맞이 굿’이라는 일견 비과학적 사고를 배제하지 않고 있는 태도가 내게는 귀중한 교훈이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과학에 대한 참된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불길의 경로와 온도의 변화, 도자기와 가마가 이루어내는 가마 속의 복잡한 곡면 그리고 그 곡면 속에서 일어나는 무궁한 변화와 우연에 대하여 과학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됩니다. 뿐만 아니라 기온, 습도, 바람 등 과학이 예측해낼 수 없는 과학 이상의 웅장한 세계가 엄존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 왜냐하면 자연이 자장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48p. ~ 역사는 과거로 떠나는 여정이 아니라 현재의 과제로 돌아오는 귀환입니다._꿈꾸는 백마강


남아 있는 유적들을 조립하여 과거를 복원하는 상상력이 아니라 그 과거의 모습으로부터 현재를 직시하고 다시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향하여 우리의 시야를 열어나가는 상상력임을 깨닫게 됩니다. 


154p. ~ 강물의 끈과 바다의 시작을 바라보기 바랍니다._철산리의 강과 바다


-> 모든 경계에는 하나의 끝과 하나의 시작이 닿아있다.


강물은 지향하는 목표가 잇는 반면 바다는 지향점을 잃은 물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 바다로 나와버린 물은 아마 모든 의지가 사라져버린 물의 끝인지도 모릅니다.


강물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물이되 엎어지고 갇히고 찢어지는 고난의 세월을 살아갑니다.


이곳 철산리 앞바다에 이르러서는 암울한 강물의 시절도 그 고난의 장을 마감합니다. 당신의 말처럼 이제 더 이상 목표를 향하여 달리는 물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바다가 됩니다. 달려야 할 목표가 없다기보다 달려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곳은 부질 없었던 강물의 시정을 뉘우치는 각성의 자리이면서 이제는 드넓은 바다를 면향하여 시야를 열어나가는 조망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강물의 치열함도 사실을 강물의 본성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땅으로 인하여 그렇게 달려왔을 뿐입니다. 강물의 본성은 오히려 보다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겸손과 평화인지도 모릅니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비로소 그 본성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며 가장 평화로운 물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고 평화로운 물이지만 이제부터는 하늘로 오르는 도약의 출발점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목표를 회복하고 청천 하늘의 흰구름으로 승화하는 평화의 세계입니다. 방법으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최후의 목표로서의 평화입니다.

-> 물의 본성을 닮은 인간. 그 본성대로 물처럼 바다에 닿으라.


3. 내가 저자라면


[내용요약]


<강의>를 읽으면서 1월이 오면 선생의 책을 섭렵하리라 맘 먹었었다. 시작은 <나무야 나무야>다.


이 책은 1995년 11월 부터 1996년 8월까지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기행문을 엮은 것이다. 먼저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담기 위한 대상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기획되었으나 직접 가 보고 나서야 대상 선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되돌아오길 여러번이었다고 한다. 그가 만는 세상이 궁금하다. 소소함과 궁벽을 만나서 길고 깊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의 탐색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길게 남은 책들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 떠난 여행이 편하지 않았음을 서문에서 고백하고 있지만 그의 글은 울림이 길다. 새기고 새길수록 다시 씹어야 한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벼운 글들이 아니다.


“ 글을 쓰기 위해서 떠난 여행은 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부담 없이 다시 떠나ㅗ고 싶습니다.그러면 글이 안되는 곳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키워드]


기행, 성찰


[차별성]


깊은 성찰.

키워드, 제목의 중요성, 뚜렷한 주제.


[목차와 구성]


제목만 모아도 책이 될 듯 하다.

이렇게 목차를 옮겨오는 것은 처음인 듯…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 -얼음골 스승과 허준
우리가 헐어야 할 피라미드 -반구정과 압구정
당신이 나무를 더 사랑하는 까닭 -소광리 소나무숲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줍니다` -허난설헌의 무덤
진리는 간 데 없고 ‘색’만 어지러이 -백담사의 만해와 일해
미완은 반성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모악산의 미륵
일몰 속에서 내일의 일출을 바라봅니다 -하일리의 저녁노을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은 빛을 드러냅니다 -이어도의 아침해
한아름 벅찬 서울 껴안고 아파합니다 -북한산의 사랑
눈이 달린 손은 생각하는 손입니다 -천수관음보살의 손
꽃잎 흩날리며 돌아올 날 기다립니다 -잡초에 묻힌 초등학교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온달산성의 평강공주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드높은 삶을 지향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십시오 -새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
광화문의 동상 속에는 충무공이 없습니다 -한산섬의 충무공
헛된 시비 등지고 새 시대 예비한 고뇌 -가야산의 최치원
빼어남보다 장중함 사랑한 우리 정신사의 ‘지리산’ -남명 조식을 찾아서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섬진강 나루에서
가부좌의 한 발을 땅에 내리고 있는 부처를 아십니까 -백흥암의 비구니 스님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석양의 북한강에서
사람과 산천 융화하는 우리 삶의 원형 -강릉 단오제에서
평등은 자유의 최고치입니다 -평등의 무등산
우리의 삶을 훌륭한 예술품으로 훈도해줄 가마는 없는가 -이천의 도자기 가마
역사는 과거로 떠나는 여정이 아니라 현재의 과제로 돌아오는 귀환입니다 -꿈꾸는 백마강
강물의 끝과 바다의 시작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철산리의 강과 바다


[감동적인 장과 절]


5p. 언덕에서 멀리 돌팔매를 하면 돌멩이는 둥글게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집니다. 공중에 둥근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돌멩이를 보면서 그것은 지구가 공처럼 둥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매우 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달리면 바람개비가 돌아갑니다.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도 그것이 공기의 무게 때문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만 지금도 생각을 그르치기는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그르치는 까닭이 지금은 단지 쉽고 어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훨씬 더 많은 이유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을 덮어둔 채 우리의 생각을 바로 세우기란 불가능 하다고 믿습니다.

->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배움이 크다. 그의 말은 늘 이런 식이다. 생각에 그치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강골진 그의 문체를 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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