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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2015.1.19
이 시간에 웬일로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기에, 받았다. 헤트헌터라, 참 간만이네. 모르는 사람이지만, 능란한 젊은 여인의 목소리에서는 최소한 10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시니어 컨설턴트쯤 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괜히 클라이언트는 비밀, 이라며 뱅뱅 돌리는 뻘짓도 하지 않는다. 이 좁은 업계에 부서장급이면 서로 다 아는 사이, 이 시기에 그 조건이면 이미 한두 개 후보로 압축되는 빤한 판이다. 3년 가까이 판을 떠난 주제에 이런 전화를 받으면 대번에 협상에 유리한 위치 점유 및 정보 습득을 위한 전투모드에 들어가는 업자 정신이라니. 음.. 나 아직 안 죽었구나. 그런데 이번 건은 좀 다르다. 없던 자리다. 새로 만드는 자리. 왜 그 회사에서 이런 포지션을 만들까? 그것도 이렇게 하이레벨에 리포팅라인은 아예 별도라면, 기존 인력과는 어떤 관계가 되는 거지? 갑갑할 수도, 홀가분할 수도… 뭔가 각이 안 나온다. 특이하네… 일은 글쎄, 하지만 그 자리가 왜 생기는 지는 궁금하다. 답답해서 그렇지 들어가면 정년까지 굴껍데기 속에 처박힌 속살처럼 절대 나오지 않는다는 회사다. 음… 이토록 보수적인 회사에서 왜 이런 잉여스러워 보이는 자리를 만드는 걸까. 혹시 칼바람 전야에 나팔수가 필요한가? 여튼 그 와중에 컨설턴트는 내게 이제 이사님은 부산에서 안 올라오신다는 소문도 있어서요…. 하고 조심스레 의중을 뜬다. 상황에 변화는 없으신 건가요? 이런 저런 말로 관심은 있는데 정보를 좀 더 캐오라는 메시지를 던진 채 다음 통화를 기약하며 전화를 끊는다.
상황에 변화는 없냐구… 에이, 하루에도 열두번 씩 변하는 마음인데 왜 변화가 없겠니. 혼자말로 궁시렁대며 카를 융의 기억 꿈 사상을 다시 연다. 내 마음 나도 몰러… 정말이지 어쩌다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 그만두었어도 그만둔 게 아닌 마흔 중반 전직 워킹맘의 방황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회사를 떠난 지 2년이 지나자 이제는 아득하기만 한 삽질과 출장과 야근의 기억들이 조금씩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마지막 기회인지도 몰라. 됐어, 회사 이름만 바뀔 뿐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지 않겠니? 그래도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벌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두는 것이 맞지. 돌아가도 4-5년이야. 이 판이 얼마나 조로(早老)하는 판인지 너도 알잖아. 그러고 또 다시 시작하려고? 내 속의 두 목소리 중 우세한 놈은 없다. 평소 이 상황을 정리해주거나 죽여주는 것은 그저 나의 게으름일 뿐이다. 놔두면 양쪽 다 시들해지며 이 상황을 바꾸는데 얼마나 많은 것들이 움직여져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모든 게 피곤해지는 시점이 오고, 그럼 그걸로 상황은 종료다.
어떤 의미에서든, 나는 여전히 도피 중이고 동면 중이 되는 것이다. 아, 젠장. 2년이나 지났는데 또 그 자리야! 내가 나한테 지겨워져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 아침. 내 숙제는 하나도 안 해놓고 한가롭게 국수나 먹으러 다녔구나, 무려 2년 동안! 안 되겠다. 누구든 만나러 나가야겠어. 이렇게 혼자 앉아 같은 생각에 뱅뱅 휘둘리지 말고 얼른 뛰어 나가야겠다. 카를 융 박사님은 재미나게 읽었는데 내 맘은 왜 이렇게 훍탕물인가… 이래 미련이 많아 가지고 다음 주제로 직장인의 밥그릇을 들쑤셔 보기로 한 건가? 융 박사님, 이게 제 무의식의 조종인가요? 전환관리와 직장인의 밥그릇이라는 대조적으로다가 의미심장한 두 주제 중 밥그릇을 택한 것도 그런 맥락인가요? 아, 몰라. 버스 타고 아무 데나 좀 다녀올란다. 가출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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