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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30일 17시 51분 등록

<사람이 꽃이다> 박제균, 이하경 지음. 미래의 창

부제 : 십 년의 난임, 세 번의 유산, 우리가 마침내 아기를 갖기까지

 

1. 저자에 대하여


박제균 : 한양대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후 IT 분야 디자인을 했다. 10년간 난임을 겪었는데 지금은 지수 아빠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KBS 강연 100도시를 통해 소개되어 공감 온도 97도를 기록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현재 지수와 같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작가로 활동중이며, 최근에는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성폭력 예방회사 first comes love를 만들고 구체적인 활동을 계획주이다. 지은 책 <아빠가 읽어주는 이야기 내 친구 피노노> 있으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볼 수 있는 다수의 그림책이 있다.

 

이하경 : 성명대학교에서 디자인 전공 후 건축회사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다. 결혼 후 십년 동안 열두 번의 인공수정, 다섯 번의 시험관아기 시술을 했으나 세 번의 유산을 경험하고 아이를 갖는데 실패했다. 힘든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남편과 함께 중국 여행길에 오른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 기적적으로 자연임신을 하게 된다. 현재 그녀는 지수 엄마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새 인생을 살고 있는 남편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부부가 같이 쓴 책이다. 난임에 대한 책 중에서 당사자들이 쓴 거의 유일한 책. 저자 소개에서 유의할 점은 이 책이 난임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그것과 관련된 것, ‘이 책을 쓸만한 사람임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10개 내외의 꼭지글로 구성된다. 같은 제목으로 남편과 아내가 같이 쓰고 있다. 1장은 결혼하고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기까지의 상황, 2장은 난임병원을 찾아가 자연 인공수정과 과배란 인공수정을 합쳐 12번의 인공수정을 하던 때의 이야기, 3장은 난임부부에게 마지막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시험관시술로 3번의 임신, 3번의 유산을 하며 아픔을 겪는 과정, 4장은 세번째 유산 후 우울증에 부부가 말도 하지 않던 시기를 넘어서기 위해 같이 보름간의 중국베낭여행을 떠났고, 자연임신으로 결혼 10년만에 딸을 낳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추천사는 이 부부의 사연이 알려진 KBS 공감100도씨 강연의 PD가 썼다. ‘사람이 꽃이다는 제목은 딸을 낳은 뒤 모든 생명이 소중함을 배웠기 때문에 붙여졌다. 난임부부를 위한 안내가 부록으로 곁들여져 있다. 콩트식으로 구성된다. 감정을 설명하기 보담 장면을 담담히 보여 준다. 가르치려는 느낌없이 경험한 것을 담담히 말하는 수기에 가깝다. 

  1.  

추천의 글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는 바로 당신입니다
프롤로그 너를 기다린 시간, 96360시간

1
세상 모든 부부의 숙제
우리는 평범한 신혼부부, 남들과 다르지 않아요 | 아이는 좀 나중에 | 아이가 기다려지기 시작해 | 너희 무슨 문제 있니? | 기다리지만 말고 노력을 좀 해 보자고 | 한약을 먹을까? | 아이 낳는 도사들 | 우리 애 돌잔치에 와 줄래? | 언니, 나 임신했어 | 아이는 꼭 낳아야 하는 걸까?

2 긴긴 기다림의 시작
병원 문턱을 넘기가 왜 이리 힘든지 | 문제는 없다는데...... | 난임이란? | 여보, 오늘 일찍 들어와 | 시집살이 | 인공수정, 10퍼센트의 확률에 도전하다 | 우리, 운동하자 | 굿이라도? | 마지막 선택

3 아가, 우리는 인연이 아니구나
임신이 되었어요! | 어쩐지 불안하더니...... | 잠시라도 와 줘서, 고마워 |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 | 이번에는 정말! | 여기 병원인데, 하경 씨 남편 되시죠? | 태명도 없는 아가에게 | 술과 우울증 |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 태명은 초롱이랍니다 | 초롱아! 가지마 | 이젠 정말 끝이야

4 고마워, 너를 기다린 시간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 그래, 떠나자 | 중국, 그 드넓은 땅에 오직 나와 당신 | 마음 내려놓기 | 입양도 쉽지는 않아 | 조용히 날아온 꽃씨 | 가장 길었던 9개월 | 이것이 말로만 듣던 진통 | 최고의 만남! | 사람이 꽃이다

에필로그 딸을 위한 동화책, 그리고 새로운 도전
딸에게 쓰는 편지
덧붙임 힘들어하는 난임 부부들에게

 

2) 장점 및 보완점 평설 첫


첫째, 난임을 경험하는 남성의 마음, 입장이 잘 서술되어 있다. 난임에 관한 책은, 난임을 겪은 경험자가 썼든, 산부인과나 한의사가 썼든 여성을 타겟 독자로 삼아서 여성의 경험을 위주로 쓰여진다. 이 책은 부부가 함께 쓰는 형식이지만 주된 스토리 텔러는 남편이다. 남편의 입장이 먼저 나오고 아내의 글은 남편의 글보다 짧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 육아일기를 그림과 글로 그리고, 동화를 쓴 걸로 봐서 아마도 남편이 저술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 


55 우리는 결혼 2년차부터 난임치료를 시작해서 결혼 6년차 되던 해 마침내 시험관시술로 첫 임신에 성공했다. 우리 같은 고생을 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며 빨리 아이 갖기를 권했다. 우리의 첫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안아 유산되고 남동생 내외는 곧 임신을 하게 되었다좋은 마음으로 축하해주기가 너무 어려웠다. 남동생 내외도 우리의 그런 사정을 알기에 한동안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때의 심정을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당시 우리 부부의 아픔이 너무 컸기에 남동생 내외의 반가운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몇 달 후 우리 부부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난 뒤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내가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자 남동생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전화기 너머로 울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남동생은 아빠가 되었다. 정말 기쁜 일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부모님께서도 우리 부부 때문에 첫 손주를 본 큰 기쁨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다. 다음 해 두번 째 아이 또한 떠나 보내야만 했다. 이즈음에는 여동생이 결혼준비 중이었는데 우리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축하 인사도 제대로 해 주지 못했다. 가족들은 우리에게 전화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했고 가족들과의 소통은 점차 단절되기 시작했다.. 한참 지난 후 여동생이 첫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제는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여동생이 먼저 아이를 낳다니, 우리 부부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는 지 확신이 들지 않아 전화를 하지 못했다. 이런 내 마음이 화근이 되었는지 여동생은 자궁외임신으로 중절수술을 하게 되었다. 잠시나마 여동생의 임신에 불안함을 느꼈다는 사실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변 사람들의 임신과 출산이 점점 더 우리 부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되어 갔다.

  1.  

    72 “임신이 잘 되기 위해서는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잠자리 횟수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의사선생님이라지만 같은 남자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 입장을 배려해 주지 않는 아내에게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개인적인 부분까지 남에게 지적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불쾌했다. 78 배란일을 받아 임신을 시도하는 방법이 몇 번 실패로 끝나면서 나는 배란일에 맞춰 합방을 하는 이 방법이 차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관계를 맺는 것도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았고, 원할 때가 아니라 의사가 정해준 날짜에 의무처럼 하는 것도 나를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즐거움은 사라지고 좀 심하게 말하면 약간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14 “에비야, 엄마 아빠 왔다

    잠결에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아비라는 단어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어 잠을 깨웠다. 눈을 떠보니 시골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인 나를 보고 있었다. 부모님의 에비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구나. 내가 아빠가 되었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말을 무려 10년이나 기다려왔다. 잠에서 깨어난 아내는 어머니와 두 손을 맞잡고 한참이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그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깊은 감동이었던 것 같다.

     

    103 열두 번의 인공수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웃음이 사라지고, 싸움이 늘었다. 아내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짜증을 냈으며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울기도 하고 침울한 표정으로 하루 종일 거의 아무 말도 안 하기도 했다. 이런 때 나는 아내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둘째, 남편과 아내가 같이 쓰고 있어서 한 권으로 남성과 여성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다. 난임을 겪는 아내라면 남편의 입장을, 남편이라면 아내의 입장과 느낌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셋째, 난임을 겪으면서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깨달음처럼 얻었다. 그리고 이 부부는 삶의 난관을 통해서도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217 도종환의 시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는 시가 있는데 정작 나 자신조차 내가 꽃과 같은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수를 품에 안고 사람이 꽃이다는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과 같은 엄청난 전율이었다. ‘, 하나의 생명이라는 거이 이렇게 소중한 존재로구나.’

    커다란 깨달음

     

    218 이제 나는 길을 가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 지금 나와 같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수가 나에게 그렇듯 누군가의 꽃이라는 것을 안다. 지수와 우리 부부, 나의 가족들, 그리고 세상 사람 모두가 꽃처럼 아름다고 귀한 존재들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것이 내가 지수를 만나고 깨달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진리다.

     

    다섯째, 교훈이나 충고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장면을 담담히 보여준다.

     

    160 의사 선생님이 내 옆의 아내를 보더니 간호사에게 얼른 아내를 수술실로 옮기라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의사 선생님의 눈이 우리가 아니라 우리 뒤쪽을 보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우리가 걸어온 길 뒤로 붉은 핏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아내는 조금씩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온몸을 떨면서 울음을 터뜨렸다…”참 드문 일인데 태아가 사망한 것 같습니다.”

     

    보완점이라기 보다는 그냥 생각하게 되는 것. 이 책은 27 30살에 결혼해서 10년 만에 아이를 안은 경험을 이야기한다. 지난하고 긴 보조생식술의 경험이 드러난다. 더불어 습관성 유산의 아픈 경험도 이야기를 한다. 나처럼 만혼이라서 10년이나 아이를 기다릴 수 없는, 5년 안에 아이를 기다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끝이 나는 경우의 난임과는 상당히 입장이 다른 것 같다. 난임에 대한 학술적인 책들이 권하는 지지그룹이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개인적인 노력과, 부부의 노력만으로 터널을 걸어 나간다. 입양에 대한 고려가 어렵다는 말만 나오고 실제적으로 고려를 한 것도 아니다. 유산의 고통을 개인적으로 감당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만 접근할 수 밖에 없을까? 좀 더 적극적인 다른 방법들은 없는 것일까? 부부 개인들에게만 주어진 짐이 너무 답답했다. 


  2. 3) 감동적인 장절

  3. 생략

  4.  


3.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난임은 분명히 삶의 큰 난관이지만 그것조차 행보하길 원하는 우리의 의지를 꺽을 수는 없다. 대단한 성공의 이야기도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내가 지수를 기다린 눈물과 행복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 인생의 그 어떤 시간도 의미없는 시간은 없다. 지수 아빠 박제균 드림.

“~아빠 000”라는 이름이 가장 큰 무게로 다가온 때는 다운회의 월례 세미나에 갔을 때였다. 엄마, 아빠로서 강해진 모습. 우리 부부도 난임을 겪었기 때문에 엄마아빠라는 이름에 더 감격할 수 있을지도.   

 

  1. 세상 모든 부부의 숙제

     

    22 아내한테 당분간은 아이를 낳지 말고 신혼을 좀 더 즐기자고 했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사실 경제적인 문제였다. 지금 상황에서 바로 아이를 낳는다면 아직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내게 한꺼번에 닥쳐올 커다란 책임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31 어머니와 아내가 못마땅해하던 나의 젊은 시절 습관은 친구들과 밤을 새며 노는 것이었다. 나는 주 1회 정도 친구들과 당구나 게임 등을 하면서 건전하게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는 마치 내 생활 태도 전반을 지적당한 것처럼 느꼈다. 이 문제로 자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신혼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건 나의 남편에게도 여전한 행동. 하지만 나는 12시 넘어가면 어디서 누구랑 뭐하고 노는 지를 문자로 보내달라고만 했다. 나는 자느라 문자를 그 즉시에 보지 못하고, 남편이 안 들어온다고 잠을 안 잘 사람도 아니지만, 새벽에 일어나 안 들어 온 사람이 뻑치기를 당한 건 아닌가, 어디 골목이나 계단에서 얼어죽어 가는 건 아닌가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

     

    38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 딸 지수를 가질 때는 리트머스 종이처럼 생긴 배란테스트기를 사용했다. 생리를 시작한 지 10일 정도 후부터 매일 아침 소변일 이용해 배란일을 찾는 방법이다. 방식이 간단하고 정확해서 큰 도움이 되었다. 혹시 배란일을 찾고 싶은 분이 있다면 참고하시기 바란다.

    배테기. ‘참고하시기 바란다이런 식으로 일종의 성공 노하우, 또는 조언이 주어진다.

     

    41 주변에 아기가 생기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을 하면 많은 분들은 용하다는 한의원을 전국구로 가르쳐 주곤 하였다.

    맞아, 정말 전국구로 소개해준다.

     

    42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몸의 찬 기운을 다스리는 데는 한약보다 쑥뜸, 좌훈, 족욕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질병(난임) 휴직 1년차동안에 4번의 시술을 했다. 운동은 300배를 꾸준히 했다. 하지만 몸의 찬기운을 다스리는 건 못했다. 2년차에는 저런 걸 해야 하지 않을까? 블로그에 글을 올렸는데 이웃 중 한 분이 운동, 식이요법, 한의원 이런 걸로 시간표를 짜서 자신을 몰아부치기 보담, 가장 즐거운 것을 하면서 보내보라고 조언했다. 그녀는 바느질을 했다. 나는 며칠동안 그녀의 깊고 적절한 고마운 조언을 참구한다. 내가 궁금한 건 도대체 어떤 활동이 나에게 그녀에게 바느질의 자리일까 하는 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그걸 하는 동안 몰입하고 무한 기쁨을 누리면서, 시간이 후딱 가버리고, 100% 만족을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건 타고난 나의 원형과도 관련이 있을 거고, 원래 나란 사람이 생겨먹은 존재의 뿌리나 본바탕과도 관련이 있으리라.

  • 식물을 가꾸고 돌보는 일, 꽃시장에 가고, 내가 키우고 싶은 반려식물을 입양하고, 분갈이 하고, 화분을 고르러 가고, 물을 주어 기르는 일, 또는 그 식물들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 원산지와 잘 키우는 법을 알아보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일도 재미나리라. 일종의 원예치료 관련된 관심. 

  • 읽고 쓰는 일. 첫 책을 반드시 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면 써야 하는 시간에 자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분야의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글을 정기적으로 업로드 해서 나에게 마감을 주는 데가 있으면 좋겠다. 같이 읽고 코멘트를 해 주면 더 좋겠다. 책을 의무로 읽는 건 정말로 재미없다.

  • 꿈과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 그룹투사 꿈작업이든, 신화모임이든 나는 내가 느껴지는 대로, 상상이 일어나는 대로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 자연 속에 머무는 일. 숲이든 밭이든 산이든.

  • 마음 편한 사람들과 속을 터놓고 이야기 하는 것.

     

    43 그때 한의원을 다니면서 들인 비용으로 차라리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면 어땠을까?

    약보다는 음식으로 섭취하기. 음식의 틀을 잘 잡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아이를 가진다면 모유수유를 할 거고, 아이들의 입맛을 들일 테니 좋은 습관을 내가 먼저 들이면 좋겠다. 만약 아이를 안 가진다면 그래도 남은 삶 동안 건강하게 살아야 할테지. 운동을 좀 더 해야하는 건 맞는 일이다. 나는 1가지는 더 하고 싶다. 이유명호씨가 권했듯이 500g짜리 모래 주머니를 4개 사서 양 팔목과 발목에 걸고 걷기를 해도 좋겠지. 약은 안 먹겠다. 나는 대구 마리아 이성구박사님을 신뢰하여 올해는 죽 가리라. 그래서 만약 아이를 얻게 된다면 그분을 은인으로 알고 아이의 생일마다 카드를 보내리라.   

     

    55 우리는 결혼 2년차부터 난임치료를 시작해서 결혼 6년차 되던 해 마침내 시험관시술로 첫 임신에 성공했다. 우리 같은 고생을 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며 빨리 아이 갖기를 권했다. 우리의 첫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안아 유산되고 남동생 내외는 곧 임신을 하게 되었다좋은 마음으로 축하해주기가 너무 어려웠다. 남동생 내외도 우리의 그런 사정을 알기에 한동안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때의 심정을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당시 우리 부부의 아픔이 너무 컸기에 남동생 내외의 반가운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몇 달 후 우리 부부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난 뒤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내가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자 남동생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전화기 너머로 울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남동생은 아빠가 되었다. 정말 기쁜 일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께서도 우리 부부 때문에 첫 손주를 본 큰 기쁨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다. 다음 해 두번 째 아이 또한 떠나 보내야만 했다. 이즈음에는 여동생이 결혼준비 중이었는데 우리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축하 인사도 제대로 해 주지 못했다. 가족들은 우리에게 전화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했고 가족들과의 소통은 점차 단절되기 시작했다.. 한참 지난 후 여동생이 첫 임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제는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여동생이 먼저 아이를 낳다니, 우리 부부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는 지 확신이 들지 않아 전화를 하지 못했다. 이런 내 마음이 화근이 되었는지 여동생은 자궁외임신으로 중절수술을 하게 되었다. 잠시나마 여동생의 임신에 불안함을 느꼈다는 사실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변 사람들의 임신과 출산이 점점 더 우리 부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되어 갔다.

    읽으면서 그렇겠구나 싶다. 남성도 여성처럼 주변 지인들, 특히 나이가 어린 동생의 임신 소식에 질투, 죄책감을 느끼고, 그 사실에서 상처를 입는구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남성 입장에서 난임에 대해, 또는 유산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구나.  

     

    68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병원을 찾아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괜히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그 다음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 우리 두 사람의 부부관계나 각자의 정신 건강에 훨씬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더라고 한 살이라도 젊은 때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여러 모로 현명한 일이었다. 우리 부부는 요즘도 누군가 난임으로 고민하는 부부가 있으면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하는 편이다.

     

    70 “어머니, 병원에서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해요.”

    그래, 그것 참 다행이구나.”

    어머니와의 통화는 간단하게 끝났지만 나는 마음 속으로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 이제 우리 아기 문제를 제발 제 탓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며느리라면 누구나 공감할 문제. 몸이 차서 그렇다며 홍삼, , 생강차를 권할 때.

     

    72 “임신이 잘 되기 위해서는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잠자리 횟수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의사선생님이라지만 같은 남자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 입장을 배려해 주지 않는 아내에게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개인적인 부분까지 남에게 지적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불쾌했다. 

    여자들은 이 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게다가 산부인과 진료 의자를 괜히 굴욕의자라고 하겠는가? 몇 배나 힘이 들까? 못해도 10배는 힘이 들거다. 그런데 이건 생식에서 여성이 기여하는 바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남성은 정자로 유전물질 반쪽만 건네주며 끝이다. 여성의 난자는 수정란이 발생하는데 필요한 모든 영양성분과 더 많고, 큰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다. 오로지 여성의 미토콘드리아 추적을 통한 분석이 가능하다. 최재천 교수는 생식이 기여하는 데 남성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호주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헌재에 보냈다.

     

    78 배란일을 받아 임신을 시도하는 방법이 몇 번 실패로 끝나면서 나는 배란일에 맞춰 합방을 하는 이 방법이 차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관계를 맺는 것도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았고, 원할 때가 아니라 의사가 정해준 날짜에 의무처럼 하는 것도 나를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즐거움은 사라지고 좀 심하게 말하면 약간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84 부모님과 살림을 합친 지 3년 정도가 되었을 때 아내 몸에 붉은 발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발진은 곧 아내 몸의 절반을 뒤덮었고 병원에서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고민 끝에 다시 분가를 결정했다.

     

    85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문제가 나왔을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고, 특히 시부모님과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언니가 심하게 말렸지만 남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도 약간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가끔 그때 내가 좀 더 단호하게 내 의견을 밝히고 마음 편하게 결혼생활을 했다면 그 힘든 시간을 겪지 않았어도 되었을까? 나는 지금도 이 노래를 아주 싫어한다. “개굴 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모이긴 뭘 자꾸 모여. 그냥 각자 좀 살지! 난임이라는 문제 하나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시댁 식구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끊임없이 상처를 받았다.

    시부모와 같이 사는 건 아내로서는 부담이 되는 일이다. 특히나 난임처럼 중대한 스트레스원을 갖고 있는 아내에게 다른 스트레스, 또는 적응과업을 더 얹어주거나 스스로 얹는 건 별로구나.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를 집어치우고 내 맘 편한 게 최고다. 그래야 아이를 얻지.   

     

    92 처음 인공수정을 할 때는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서 시술을 받았다. 하지만 몇 번의 실패 후에는 남편의 정액을 들고 나 혼자 병원에 가서 시술을 받았다.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의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병원에 같이 가 주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이런 외로움을 아직까지는 겪지 않았다. 이게 만혼자의 특권. 아직 호르몬이 기능할 때 결혼하고, 난임병원까지 다닌다.  

     

    92 경관 점액 검사. 2~12시간 이내에 자궁 점액을 채취해서 생존해 있는 정자 수와 운동성을 살피는 검사. 환자분 점액에 남편 정자에 대한 항체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앞으로 자연임신은 어려울 것 같네요.

     

    93 자연주기식 인공수정을 다섯 번 실패하고 과배란식 인공수정으로 시술 방법을 바꿨다. 1년 넘게 시도했지만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거의 3년동안 약 열두 번의 인공수정 시술을 받았다. 모두 실패였다.

     

    98 아직까지 남편에게 고마운 것은 그때 회사 다니느라 많이 피곤했을 텐데 나를 위해 두말 없이 퇴근 후에 함께 산책해주고 주말에는 같이 산에 가 준 것이었다. 애정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남편의 나름의 애정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고 있는 남편 분들 중에 혹시 아내에게 힘을 주고 싶은 분이 있다면 아내와 함께 골목길 산책을 해 볼 것을 자신 있게 추천드린다.

    이런 식의 권고 좋으네. 그리고 아내들이 제일 좋아하는 운동, 또는 배려가 겨우 퇴근해서 저녁 먹고 같이 동네 산책하는 것이라니 남편들은 훨씬 마음이 가벼워지리라. 나도 같이 산책할 때가 제일 좋다. 아니면 같이 산에 가는 거든지. 인제는 그와 둘이서 산에 가고, 여행가는 게 제일 즐겁다.

     

    103 열두 번의 인공수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웃음이 사라지고, 싸움이 늘었다. 아내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짜증을 냈으며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울기도 하고 침울한 표정으로 하루 종일 거의 아무 말도 안 하기도 했다. 이런 때 나는 아내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우울증 아내를 지켜보면서 가장 힘든 건 무력감인 듯

     

    120 무엇보다도 아빠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했다.

    유산에 대한 반응 중 가장 큰 것이 무력감이라니. 이 책의 서술 주체가 남편 쪽에 많이 기운다. 그래서 남편의 마음을 알기가 더 좋다. 대부분의 난임책은 여성 입장에서 여성을 돌보기 위해 씌어진 것들이 많다.

     

    122 만약 지금 아기를 잃고 힘들어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당분간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조용히 지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주변에 유상을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아는 척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정 상대방을 위로해 주고 싶다면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다른 즐거운 일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어떤 식으로든 그때의 힘든 기억을 자꾸 들춰내는 것은 슬픔을 극복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유산에 대한 대처

     

    122 안녕, 아가야 잠시나마 우리에게 와 줘서 고마웠다.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렴. ..

    몇 달이 지나 직면할 힘이 생겼을 때 스스로

     

    처음이라 더 특별했던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기가 하느님 곁에서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카톨릭 신자인 엄마는 이렇게 기도로 마음을 다독였다.

     

    140 병원에서는 양수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면 나에게 문자를 보내 주고 혹시 문제가 있으면 남편에게 전화를 해 준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지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검사 때 이상이 있어도 양수검사 때 정상으로 나왔다고 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143 ‘어떻게 얻은 아이인데하느님도 나를 버렸어.’ 나도 아기와 함께 그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144 첫번째 유산과 달리 두번째 유산은 죄책감까지 느껴지는 일이었다. 염색체 이상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한 아이의 생명을 우리가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덜컥 가슴이 내려 앉았다.  

     

    145 절에서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날 남편과 함께 우리 아기를 위한 작은 의식을 치렀다.

    아가, 정말 미안하구나. 엄마 아빠는 정상인도 살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먼 훗날 우리를 이해해 주지 않겠니? 정말 미안하다, 소중한 아가야.’ 우리는 이렇게 기도한 후 절 뒤쪽에서 아기의 초음파 사진과 틈틈이 만들어두었떤 아기옷 등을 전부 태웠다.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우리의 아기를 부탁드렸다. 

     

    158 임신 5개월이 되도록 아기가 혹시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태명을 짓지 않았다.

     

    160 의사 선생님이 내 옆의 아내를 보더니 간호사에게 얼른 아내를 수술실로 옮기라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의사 선생님의 눈이 우리가 아니라 우리 뒤쪽을 보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우리가 걸어온 길 뒤로 붉은 핏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아내는 조금씩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온몸을 떨면서 울음을 터뜨렸다…”참 드문 일인데 태아가 사망한 것 같습니다.”

     

    169 결혼 후 약 9년 동안 지속된 난임과 반복된 유산은 나의 마음을 참 많이 병들게 했다. 특히 세번째 유산을 겪고 나서는 나 스스로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지고 앞으로의 인생보다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도 나의 모습에 지쳤는지 예전의 자상하고 따듯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시부모님이 하는 말에도 크게 상처를 입었다.

     

    188 중국 여행을 다녀온 뒤 부부 사이에 웃음이 많아졌다. 아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슬픔이었던 초롱이를 잘 보내주기로 했다. 두번째 아기를 보낼 때와 마찬가지로 육아수첩, 아내가 직접 만든 옷가지를 챙겨 불을 피울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았다. 물건들을 태우며 우리들만의 장례식을 치렀다.

    사랑하는 초롱아, 이제 엄마 아빠는 너를 보내주려고 한다. 너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너를 정말 사랑한다. 초롱아 엄마 아빠가 그곳으로 갈 때까지 부디 행복하게 지내렴.’

     

    200 가장 기억에 남는 태교는 수학 정석을 푼 것이었다. 아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해서. 그러나 머리에 쥐가 나서 얼마 못하고 그만 두었다. 내 생각에 좋은 태교는 뭐니 뭐니 해도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 같다.

    수학정석 풀이 정말 아닌 것 같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로 하리라.

     

    214 “에비야, 엄마 아빠 왔다

    잠결에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아비라는 단어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어 잠을 깨웠다. 눈을 떠보니 시골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인 나를 보고 있었다. 부모님의 에비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구나. 내가 아빠가 되었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말을 무려 10년이나 기다려왔다. 잠에서 깨어난 아내는 어머니와 두 손을 맞잡고 한참이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그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깊은 감동이었던 것 같다.

     

    216 사장님은 병원으로 출산을 축하하는 화환을 보내주셨다. 총무팀에서는 회사 창립 ld래 출산 축하 화환이 나간 것은 처음이라며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고마운 사장님.

     

    217 도종환의 시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는 시가 있는데 정작 나 자신조차 내가 꽃과 같은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수를 품에 안고 사람이 꽃이다는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과 같은 엄청난 전율이었다. ‘, 하나의 생명이라는 거이 이렇게 소중한 존재로구나.’

    커다란 깨달음

     

    218 이제 나는 길을 가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 지금 나와 같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수가 나에게 그렇듯 누군가의 꽃이라는 것을 안다. 지수와 우리 부부, 나의 가족들, 그리고 세상 사람 모두가 꽃처럼 아름다고 귀한 존재들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것이 내가 지수를 만나고 깨달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진리다.

     

    219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매일매일 행복하다. 나는 이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 지수가 태어난 지 50일부터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조금 있어 지수의 어린 시절을 그림으로 기록해 보기로 했다. 아내가 동화책으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내 주제에 무슨 책이냐고 웃어넘겼다. 지금 용기를 낸다면 나중에 지수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은 생각에 많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조금은 과감하게 동화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223 엄마 아빠는 우리 지수가 공부 잘하고 예쁘고 착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면 좋겠고, 자신의 꿈을 스스로 찾을 수 잇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 바란다.

     

    230 ‘여자가 자식을 못 낳으면 소박을 받는다’ ‘자식을 낳는 것은 어쨎든 여자의 몫이다.’ 같은 말은 하는 사람은 별 생각없이 할 지 몰라도 듣는 사람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는 말이다. 여자가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과정은 부부 두 사람의 공동 책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계쩍으로 30~~40퍼센터의 나임은 그 원인이 남자들에게 있다. 그러니 망약 어떤 문제가 느껴진다면 여자들만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두 사람 다 병원에 가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충고는 자제했다. ‘저희 부부는 하늘의 축복이 있어서 마침내 아기를 낳는데 성공했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아기를 가지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저희 부부가 난임을 겪으면서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나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여 난임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희의 경험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지금 난임 때문에 힘들어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저희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겸손한 자세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가 정리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것 역시 남편과 아내의 실명을 들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훨씬 인간적이고 조곤조곤한 느낌이다. 

  • 고정관념을 버리자 : 난임이 부부 모두의 문제임을 강조

  • 두 사람만의 해결책을 만들자.

  • 부모님 앞에서 서로 배려해주기

  • 남들과 비교하지 않기 :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태도가 중요

  • 우울증을 조심하자. 특히 여자들은 임신 실패, 유산 후 극도의 스트레스 경험. 집에만 있는 경험이 나쁨. 남편이 아내와 같이 있어주는 것. 해결해주려 하기 보담 잘 들어주기.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 같이 하기. 집안일 이외의 사회활동 하도록 하기.

  • 끝까지 포기하지 말기

  • 긍정적인 말만 하기

  • 관련 사이트에 가입하자.

      

    232 난임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나는 남자로서 상당한 위축감을 느꼈다. 남들 앞에서도 자신감이 없고 아내 앞에서도 움츠러 들었다. 부부관계도 차츰 부담이 되면서 아내와 있는 시간을 피하게 되었다난임이 절대 여자만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남자가 이 상황을 다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부부관계는 병원에서 권하기 보담 함께 있을 때 분위기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필요에 따라 장소를 바꿔보기도 했다. …이 모든 방법을 쓴 후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병원에 가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비용 때문에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난임 기간 동안 부부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생각해 본다면 병원에 가는 수고나 비용은 결코 아까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34 남편이 집안에서 보호자 역할을 해주지 모하면 아내는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으면 아들보다 남편의 입장으로 아내를 보살펴 주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잘 조율해 나갈 책임이 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가 터득한 요령은 부모형제 앞에서 아내를 묵묵히 챙겨주는 것이다.

     

    236 부모님들에게 난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드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드리는 것이 좋다. 우리 부부는 신문사나 의사 선생님의 말을 인용하여 난임이 어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님을 자세히 설명드렸다. 이렇게 객관적인 정보를 드리면 합리적인 부모임들의 경우는 당연히 쉽게 이해를 하시고 좀 옛날 분들은 신문사나 병원의 권위를 믿고 어느 정도 납득을 하신다.

     

    242 난임 기간동안 다음과 같은 일들을 실천했다.

    첫째, 좋은 음식을 규칙적으로 섭취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제 때 먹기 위해 노력했다.

    둘째,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반드시 운동을 했다. 남편은 야외에서 운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햇빛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비타민D가 정자의 수정 능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남편과 아내 모두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셋째, 일정한 시간에 잠을 충분히 잤다. 10시부터는 잠을 자는 것이 좋다.

    넷째, 상황에 따라 적당한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했다. 비타민c, 엽산, 아연-부부 같이. 전문가와 상의후.  

     

    248 내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한 방법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헬스, 단전호흡, 산책 등 몸 움직이기, 자격증 시험, 요리, 공예등 성취감 느낄 수 있는 일.

     

    249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건강한 마음을 만드는 일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250 난임으로 고생하다 보면 흔히 듣는 말이 포기하니 아기가 생겼다는 말이다. 경험자로서 자신있게 말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니 아기가 생겼다는 말은 포기는 절대 포기가 아니다. 그 열망을 단번에 버리기는 어렵다. 우리 부부도 여행을 다녀온 후 병원에 다니는 것만 안했을 뿐 아기를 가지는 것 자체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인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을 뿐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색만 하지 않았을 뿐 나름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이런 경우를 포기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건 그동안의 노력이 그제야 빛을 발한 것이다.

     

    251 나는 세번째 유산 후 주변 사람들에게 아기 갖는 것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의술의 힘을 더 이상 빌리지 않기로 했고 아이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기로 한 것뿐이다. 내 나름 배란일을 체크하고 건강을 챙겼다. 예전처럼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았다. 배란일이 되어도 남편에게 그날이라고 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분위기만 조성했다. 배란일에 좋은 관계만 이루어지면 좋고 안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세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경우에도 아무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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