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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일 15시 49분 등록

개똥아 산아

 

혈액내과 진료를 마친 후 성당에 왔다. 오늘 혈소판 수혈이 필요한 지를 알아보고, 필요하다면 수혈 일정을 잡으려고 했지. 이 병원에 올 때마다 볼 일을 다 본 후에는 잠깐이라도 성당에 들른다. 성당에 앉아서 마음을 고른 뒤에 돌아가곤 해. 눈물을 흘리거나 감사의 기도를 하거나, 아니면 그냥 명상을 할 때도 있어. 나는 불자지만 성모님은 당신을 향해 관세음보살님을 떠올리는 나를 따스히 지켜보시며 곁을 주시는 듯 하다.

 

오늘도 환자복을 입고 여러 개의 수액을 달고, 휠체어에 앉은 채 누군가와 동행한 채 뒤에서 기도하는 분이 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분들도 여럿 계시다. 그 분들이 아프거나 가족 중 누군가 아픈 분들이 있는 분들이다. 살금살금 걸어서 앞 자리에 가서 앉았어. 손을 모은 채 앉은 채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어머니 품에 배와 뺨을 대고 매달린 아기가 된 이미지를 떠올리며 명상을 한다. 깊은 숨을 몇 번 쉬면서 미간의 긴장을 풀고, 백제 와당의 half smile을 흉내내어 본다. 나의 유도 이미지다. 관세음보살님 & 성모님이 나를 안아주시는 듯 하다. 

 

혈액검사를 했어. 백혈구 3400, 적혈구 9.8, 혈소판 10,5000 이라네. 지난번처럼 과배란 주사를 맞으니 혈소판이 2만 떨어졌다. 그래도 10,5000 이나 되는구나. 난자 채취를 위한 혈소판 수혈은 필요없다고 교수님이 단호하게 얘길 하셨어. 어찌나 기쁘던지. 좋구나. 정말 감사하다. 진료실에서 나오자 마자 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어. “혈소판 수치가 신기록 갱신했어요. 수혈 안 받아도 된대요. 당신 덕분이예요. 고맙습니다.인사했어. 그가 잘 해주고 맘 편하게 해주어 몸이 좋아졌고, 표정이 밝아졌다고 생각해. 여기 와서, , 백혈병처럼 무거운 병명으로 진료 오신 분들을 볼 때마다, 나의 병명을 이야기해주었는데도 한결같이 사랑하고 결혼한 그가 고맙다. 내가 두 번째 골수검사를 할 때 침대에 앉아 있던 그의 모습이 여기 동굴벽화처럼 남아있다. 내 기억 속에 고맙게 각인된 그의 모습을 되새기며 잘 하자 잘 하자 한다. 최근은 내 생애 최고의 혈액수치에 최고 밝은 표정이란다. 이건 부모형제와 지인들이 인정하는 바다.

 

나는 출생증명서, 사망진단서를 떼는 제증명창구에서 의무기록사본을 뗐구나. 병원은 생, , , 사가 함축된 장이구나. 내일 중간점검 갈 때 가지고 갈 거란다. 정말로 기쁘다. 나는 지금까지 혈액검사를 한 이후로 12만 대까지 혈소판이 올라간 적이 없었다. 8만 대였어. 이번에 3차 채취인데 혈소판 수혈을 안 받고 하는 최초의 채취구나. 혈소판 수혈 별 거 아니지만 비장해져서 말이다. 내일 가면 정확한 채취 날짜가 잡힐거야.

 

개똥아, 산아

 

태교신기에서는 스승이 10년 기르는 게 어미가 뱃속에서 10달 기른 것만 같지 못하고, 그것은 하루 아비만 하지 못하다는 말이 나온다. 수정되는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현들의 지혜다. 여자와 남자가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가 될 때, 양쪽에서 인연된 좋은 인연의 영혼이 아기로 인연된다고 하지. 악심으로 그 순간을 맞이하면 악연이 오고 말이다. 너희를 몸과 마음 건강하게 선연으로 만나고자 기도하고 준비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험관 시술을 통해 너희를 만나려 한다. 내 몸에서 수정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난자와 정자를 채취해서 체외수정을 한 후에 3일이나 5일 배양을 해서 이식을 하게 된다. 우리가 너희를 만나는 과정에 많은 의료진과 의료기술, 장비의 도움을 받는구나. 그분들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엄마 아빠의 팀이며 조력자들이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지금 난자들이 내 몸 안에서 자라고 있을 때 정성을 다하는 수 밖에 없겠지. 화내고 짜증내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기쁨, 감사, 사랑, 행복, 웃음으로 난자들을 기르는 것, 그리고 의료진을 한 팀으로 삼아 기도하고 감사드릴 수 밖에 없겠지. 남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말이다. 오늘 <아름다운 기다림>을 읽었어. 거기에 임신만을 목적으로 할 때 부부관계가 희생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조심해야겠다.

 

개똥아, 산아. 엄마와 아빠의 일은 우리의 몫이니 너희는 신경쓰지 말거라. 편을 들거나 재판관 노릇을 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이건 아이들은 말을 듣고 배우는 게 아니라 삶을 보면서 따라 배울 거니 내가 잘 해야 하겠구나. 나는 가급적 너희를 유일한 상담자, 친구로 삼아서 미주알고주알 여자로서 남자인 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지양한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엄마나 아빠의 편이 되어, 어린아이가 짊어질 필요가 없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 내 어머니는 나를 잡고 아버지에 대한 험담을 하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늘 사랑할 수가 있었다. 나 역시 그러리라 다짐해본다.

 

개똥아, 산아, 혈소판 수혈 없이 채취하게 되어 정말로 기쁘고 감사하구나. 이번에 채취되는 난자, 정자들에 너희가 있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준비하는 이에게 운명은 선물처럼 올 것을 믿는다. 곧 만나자. 사랑한다.   2015. 1.26 엄마가

 

 

PS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그리고 기도를 들으시는 고운 님들께 기도드립니다. 대학병원 성당에  왔어요. 범혈구 감소증이 보이니 3차 기관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세요.라는 진단서를 들고 맨 처음에, 이 병원에 온 건 성당 때문이었을 겁니다. 왠지 마음이 든든했거든요. 여기서 눈물을 드리고 가고 놀람도 놓고 가고, 기쁨과 감사와 안도를 드린 적도 있었죠. 혼자 입원해서 작은 수술을 받아야 했던 때는 새벽에 여기 와서 염불을 했었구요.

 

시험관 시술 시작한 후 처음으로 혈소판 수혈 없이 채취를 하게 되어 정말로 기쁩니다. 내일 진료를 준비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요. 저에게 아이를 기다리는 시험관시술의 기회가 있어서 정말로 기뻐요.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제 얼굴에 가득 피어난 미소를 당신께 바칩니다. 지금 제 난소에서는 난자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난소가 여러 개를 키워내느라 불철주야 수고를 많이 하고 있어요. 사랑과 기쁨 속에서 마지막까지 골고루 잘 영글도록 하나하나 물을 주고, 돌려가며 해를 보여주듯 길러주세요. 그리고 찬란하고 알찬 난자들이 생명의 열쇠와 힘차게 분열해갈 넉넉한 영양분을 저에게서 충분히 가져가 여장을 꾸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채취하시는 선생님을 비롯해 함께 하는 의료진, 여러 낯선 약품, 도구를 다루는 손들과도 함께 하여 주세요. 그 분들의 건강과 가정의 평안함을 살펴주세요. 그분들은 저의 팀입니다. 남편 역시 맹렬하고 반듯한 정자들을 길러낼 수 있도록 살펴주세요. 그는 교대근무로 힘들어요. 무엇보다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할께요. 제일 큰 스트레스는 부부관계에서 옵니다. 우리가 서로를 외롭지 안게 하도록 따스히 품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시험관이 필요한 우리의 운명에 동의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저희 가족을 옹호하여 주십시오. 개똥이와 산이를 몸과 마음 건강하게 선연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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