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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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여긴 경기도 파주, 서울에서 한 시간 이상 북쪽으로 운전해야 올 수 있는 곳이다.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변신한 우리 가족이 살기에 적합한 곳을 찾아 우린 이곳까지 왔다. 짐 정리는 뒷전에 두고 우산을 들고 혼자 집을 나섰다. 곧 철거해야 할 낡고 초라한 육교를 건너 한참을 걸었다. 골목골목 구멍가게와 철물점, 방앗간과 다방까지, 5일마다 장이 선다는 이 곳 시내는 80년대를 고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이사 다니는 건 무리라며, 그야말로 무리하게 은행대출을 받아 서울의 아파트를 샀더랬다. 남편이 출퇴근하기에 멀지 않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해도 늦지 않을 만큼 아침 일찍 문을 열어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유치원과 소아과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곳. 그곳은 서울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를 위한 맞춤형 아파트였다. 하지만 내가 직장을 그만두자 맞벌이에 최적화된 우리 집 살림살이를 외벌이에 맞추어 다시 정비해야 했고, 이자며 대출금 상환이며, 비싼 유치원비가 부담되었다. 그리하여 발품을 팔며 어렵사리 구한 우리의 보금자리를 다시 팔아야 했다.
버스도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이 곳에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한참을 걸었나 보다.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심해지는 팔의 통증 때문에 우산을 들기가 힘들어졌다. 터덜터덜 발걸음도 무거웠다. 이 곳엔 잠깐 들러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곳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다방에 들어갈 수도 없는 법, 때 마침 아담한 성당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좀 쉬어갈까?’
한창 시련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여인이 인적 드문 시골의 성당에서 기도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비 오는 평일 오전, 성당이 비어 있다면, 나도 들어가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기도를 드려볼 참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가리느라 모자를 뒤집어 쓴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용기 내어 성당 문을 열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고 나는 가장 앞자리에 앉아 기도했다.
‘이 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동안 알바를 서너 개씩 하며 공부했고 또 열심히 일했다. 참으로 열심히 살았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며 내 책임을 다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더랬다. 하지만 지금 내게 남은 건? 병든 몸뚱아리뿐이었다. 외벌이가 되면서 부담이 배가 된 남편과 바쁜 엄마를 두어 외로웠을 두 아이들, 붕괴 직전의 가정 경제의 아슬아슬한 살얼음 위에 해체 위기의 가족들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토록 붙들어두고 싶었던 나의 일, 세상과 연결된 끈은 내 손을 벗어난 헬륨 풍선처럼 멀리멀리 날아가버리고 없었다. 매달 정성껏 쏟아 부어야 겨우 가질 수 있었던 우리의 보금자리도 이젠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쳐 노력해봐도 인생은 늘 그렇게 나를 원점으로 데려다 놓았다.
기도를 마치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성당을 나오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았다. 그녀는 낯선 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 본 모양이었다. 얼굴을 들어보니 열 명 가량 되는 아주머니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은 성당에서 기도 모임을 하는 여성들로 지난 해 겨울부터 좀 특별한 기도를 시작했다고 했다. 낯선 이를 위한 구일기도(초대 그리스도 교회 때부터 지켜오던 54일간의 특별기도)를 해왔던 것이다. 바로 그 날이 구일기도 마지막 날이었고 기도실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나를 본 것이라 했다. 시골 마을의 작은 성당에서 낯선 이를 만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데다 낯선 이를 위한 54일 기도를 다 드리게 된 날 나타난 내가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갔다며 그녀들은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녀들의 특별한 기도가 나를 위한 기도였기를 바란다면서 내가 고민하는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되도록 나를 위해 계속 기도를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를 위해 기도를 하겠다는 그녀들을 뒤로 한 채 나는 도망치듯 성당을 빠져 나왔다.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 처음 맺는 인연을 그렇게 우는 얼굴로 맞고 싶진 않았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그저 그녀들이 오늘 일을 잊어주길 바랬다. 성당을 막 나오려는데, 내 뒤통수를 막 잡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당 벽 한 켠에 붙어 있는 전단지였다.
아이를 교육하기 전에 나를 먼저 교육해요
사랑스런 우리 아이가 멋진 아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지요. 훌륭한 아이는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군 처음부터 좋은 부모로 태어나나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 되는 거죠^^
‘꼬마책갈피’는 이런 부모가 되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기 전에 먼저 책을 읽는 부모
아이 잘못을 나무라기 전에 먼저 이해해 주는 부모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워도 주눅 들지 않는 부모
옆집 아이가 잘해도 부러워하지 않는 부모
대안교육의 길을 열어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 공부합니다.
어떻게 공부할까요?
어린이 책을 읽고 토론합니다
ㅡ물론 우리는 실수투성이 초보 토론가입니다
어른 책도 읽습니다
ㅡ왜 그렇게 반성할 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그림자극, 빛그림, 연극도 만들어 봅니다
ㅡ아니 내 안에 예술가가 있다니! 하면서 놀라실 거예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봅니다
ㅡ공부하다 보면 내 아이의 교육을 담당하는 창의적인 교육기획자가 될 수 있어요
성당 옆 공터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컨테이너로 만든 그 도서관에서 이 지역의 엄마들이 모여 책모임을 하는 듯 했다. 그 전단지는 그 책모임의 신입회원을 모집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지역 책모임의 여성들은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그들만의 장소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성당 소유의 공터와 컨테이너 사용권을 확보해야 했다. 삼고초려하여 얻어낸 공터와 컨테이너에서 그녀들의 세상을 만들어갔다. 먼저 엄마들과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만들고 월 만원의 회비를 모아 헌책방과 출판단지를 돌며 싼 값에 책들을 사들였다. 좋은 책들이 어느 정도 쌓이자 서가를 만들고 라벨링을 하여 책들을 관리했다. 지역 도서관이 없던 시절 이 지역 엄마들은 책을 빌리기 위해 아이들과 컨테이너 도서관을 들락날락했고 그렇게 입소문을 타면서 이 작은 도서관은 이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 한마디로 그 컨테이너는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서 만들어진 지역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지역 여성들이 뭉쳐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만든 작은 도서관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지역 어린이들에게 책을 이용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때론 공연장으로, 때론 지역의 현안을 논의하는 사랑방으로, 때론 벼룩시장이나 나눔 장터를 하는 행사장으로 사용되었다. 회원이 늘어나면서 그 곳은 ‘참여, 소통, 어울림’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지역 여성 커뮤니티로 자리잡았다. 그녀들은 직접 만든 작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공동 육아, 사교육 없는 자립 교육을 실현하고 있었다.
‘아!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그 동안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면서 또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나는 외국어로 해야 하는 의사소통에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언제 마주할지 모를 외국인 고객과의 만남에 대비해서 나는 출퇴근 시간을 영어 공부하는데 썼고 또 점심시간엔 회사에서 개설한 일본어 강좌를 들어야 했다. 2개 외국어 이상의 활용 능력은 필수였고, 외국어 구사능력은 인사고과에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자연스레 내 아이들의 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나는 외국어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에서 워킹맘들이 영어유치원과 일반유치원을 두고 고민할 때 나도 같은 고민을 했고,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조기유학을 보내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 함께 같은 고민을 했었다.
‘내가 너무 한쪽만 바라보고 있었구나.’
그랬던 나에게 이 곳은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지듯 나는 기꺼이 컨테이너 도서관에 풍덩 빠져 보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이 지역 책모임의 신입회원이 되었다. 선배 회원의 지도하에 가장 먼저 만난 책은 짐 트렐리즈의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이었다. 하루 단 15분만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보기로 작심했다. 신입 회원들과 일주일에 하루 날을 정하고 만나 그 주에 아이들과 읽은 책들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그림책과 어린이 책들을 만났다. 아이들과 나는 ‘깊은 슬픔은 별이 된다’는 권정생을 읽고,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는’ 버버러 쿠니를 함께 읽었다. 세상에서 ‘가장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로알드 달을 읽고, ‘뒤죽박죽 별장의 무척 힘이 센 꼬마 이야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읽었다.
아이들과 어린이 책을 함께 읽으며, 내 속에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진 아이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때쯤, 우린 존 가트맨과 최성애 박사의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을 함께 읽었다. 신입 회원들이 모여 무언가 새롭게 배우기 전에 우린 먼저 우리 속의 내면아이부터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것에 모두들 동의했다. 인식하지 못했지만 원가정에서 또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내 속으로 숨어버린 내면아이를 먼저 보살펴야 할 시간이었다. 모든 감정들은 느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긍정적인 감정만큼 부정적인 감정도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했다. 흐느껴 울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벌벌 떨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같이 울고 공감했던 그 때의 일들은 이젠 좋은 추억이 되었다.
컨테이너 도서관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내 아이들과 내가 책 여행을 막 시작했을 무렵, 남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남편은 ‘무노동무임금’의 원칙이 지켜지는 파업에 가담하게 되었다. 나는 살림살이와 생활비를 더 줄여야 했다. 나는 그렇게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되었다. 유치원도 학원도 그만둔 두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 나들이를 다녔다.
그래그래, 너희 집엔 대리석 계단과 아름다운 정원.
그래그래, 비단 옷과 번쩍이는 보석.
그래그래, 너희 집엔 맛있는 음식과 공손한 하녀들.
그러나 그러나, 우리 집엔 책 읽어주는 엄마가 있단다.
ㅡ 영국의 전래 동요 ㅡ
유치원비와 학원비를 아껴보겠다고 매일 발 도장을 찍었던 동네 어린이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직접 골라온 책을 읽어주며 나는 소통의 언어를 발견했다. 어린이 책으로 내 아이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했다. 엄마인 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그리워했었는지 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마음 속엔 가득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아름답고 진실한 언어들이 어린이 책을 통해 글과 그림으로 어우러져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엄마를 기다렸던 그리움이 너무 깊어져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변했던 아이들 마음 속 벽 또한 스르르 녹아 내렸다.
내 아이들과 가까워질수록 내 내면아이 또한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칼 융은 타고난 모습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아이를 가리켜 ‘놀라운 아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타고난 잠재력과 경이로움 또는 창조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의 저자 존 브래드쇼는 내면아이가 치유되어 자아와 통합이 이루어지면, 내면아이는 그 사람에게 새로운 재생과 원기가 되는 자원이 된다고 말했다. 내 안에 감추어져 있던 내면아이가 내 아이들과 만나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어냈다. 내 내면아이는 아이들이 원하는 방식을 잘 알아차렸다. 내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를 만난 듯 신났고, 우울했던 집안 분위기에도 활기가 찾아왔다. 제2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남편도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유치원도 학원도 다니지 않아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아진 아이들과 나는 다양한 책 읽기를 시도했다. 그림책, 어린이 책을 읽듯, 외국어로 쓰여진 동화책도 함께 읽었다. 이미 책을 좋아하게 된 아이들은 외국어로 쓰여진 책이라고 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진 않았다. 외국어 동화책을 읽는 방법도 똑같다. 아이들이 직접 골라온 책으로 먼저 그림을 보며 공감한다. 단어 하나하나의 뜻에 집중한다기보다 노래를 부르듯 리듬이나 운율을 살려 소리 내어 읽어본다. 우리말에는 없는 새로운 소리들과 새로운 활자들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색다른 재미를 느끼고 싶은 날엔 버스를 타고 큰 도서관에 갔다. 외국어 책들을 한아름 쌓아놓고 뒹굴 거리며 함께 읽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었던 외국어 유산도 함께 읽기로 가능한 일이었다.
꾸준한 책 읽기 습관은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초등학교에서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하며 나는 다시 세상과의 끈을 잡을 수 있었다. 내 아이들과 실험적으로 나눈 영어 책 읽기 노하우를 담아 완성한 커리큘럼으로 인근 5개 초등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기도 했고, 그 프로그램으로 경기도교육감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지금은 없어진 앨리스의 토끼굴, 컨테이너 도서관 정신을 이어 지역 여성들과 새로운 동아리 ‘그림책 여행가’를 만들고 책 읽어주기 활동도 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 곳 파주까지 이사오면서, 오랜 기간 서울생활을 하며 인생에서 이루어 놓은 얼마 되지 않는 것들마저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무리하게 대출받아 산 집과 애써 쌓아 올린 나의 커리어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그 두 가지를 포기하고 이 곳에서 찾은 것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단란한 가정과 건강한 아이들, 오랜 시간 잊고 살았던 나의 동심과 남편의 꿈 그리고 새로이 하게 된 나의 일이다. 어느 것이 더 소중하다 말할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은 고민할 것도 없이 후자를 꼽는다. 오늘도 우리 가족은 함께 도서관 나들이를 하며 소중한 가치들을 하나씩 되찾는 보물찾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