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2015년 2월 2일 07시 50분 등록

언제나여행처럼_구달리뷰#41

이지상 지음

중앙 Books

 

1.저자에 대하여

 

여행작가이다. 1958년생으로, 1985년 서강대 정외과를 졸업한 후 몇 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1988년부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여행과 글, 사진을 벗삼아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 길을 갈 생각이다. 여행만 아는 벽창호가 되기 싫어서 사회생활의 폭을 넓히고 있으며 경기대학교, 세종대학교, 동원대학에서 여행과 문화에 관련된 과목을 3년 반 동안 강의했다. 

현재 경기대학교에서 여행과 여가에 대한 강의를 하며 젊은 학생들과 만나는 기쁨에 푹 빠져 있으며, 여행을 소재 삼아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해온 그는 대표작으로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슬픈 인도》《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언제나 여행처럼》《겨울의 심장》《슈퍼라이터》(공저) 등을 꼽는다.
그 밖에도 방송 활동과 함께 대학교와 여러 기관에서 강의를 한다. EBS 라디오의 ‘한영애의 문화 한페이지’, ‘세계 음악 기행’, ‘김민웅의 월드 센터’, ‘詩 콘서트’ ‘모닝 스페셜’ 에 출연해 여행 체험을 나눴으며, 세계일보에 ‘이지상의 세계 문화 기행’이란 칼럼을 매주 연재하기도 했다. 요즘은 KT&G 상상마당 ‘여행작가·여행칼럼니스트 과정’을 통해 글로써 꿈을 이뤄가는 이들을 만나고 있다

 

2.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의 저자 역시 20년 간 전 세계를 여행해 온 베테랑 여행가이다. 하지만 수많은 시간을 여행 현장에서 보내 온 그는 이 책을 통해 여행을 떠날 것을 주문하기보다 '언제나 여행처럼'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오래된 여행자가 전하는 이 메시지는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은 여행 없는 여행에세이다. 많은 인생의 선배들은 단 한 번 밖에 없는 우리네 삶을 가리켜 '나그네 삶'이라고 불렀듯, 삶은 하나의 긴 여행이다. 따라서 저자는 삶의 현장에서 여행을 그리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마음을 치유하며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갈 때, 인생을 더욱 충만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여행의 힘으로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라는 문제보다, 지금 이 곳에서 오늘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어쩌면 여행은 가방을 메고 나설 때부터 시작해 집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때 끝나는 게 아니라, 꿈꾸는 순간부터 시작해, 곱씹고 추억하고 이야기하고 그 모든 것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순간까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억의 맛이 희미해질 즈음 또다시 떠나고, 그렇게 ‘떠나고 돌아오고’를 반복해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그렇게 어느새 중독처럼 되어간다. 영혼은 왠지 그곳에 두고 온 것 같이 허전하고, 홀로 다닌 여행지에서는 외롭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현실에서는 오히려 외롭고 쓸쓸하다. 여행의 기쁨만이 아니라 여행 후의 이런 슬픔까지 맛 본 사람들은 가슴 속에 고민 하나를 안게 된다. 

 

 ‘이 외로움은 무엇이고, 왜 나는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는 것일까? 돌아와서도 정신은 왜 계속 방황하고 흔들릴까?

20년 간 전 세계를 여행하고 여러 편의 여행에세이를 쓴 여행작가 이지상은 이 고민을 너무나 잘 아는 ‘오래된 여행자’이다. 그리고, 떠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고 마음의 중심을 갖고 일상을 살아가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여행이라고 한다.

 

『언제나 여행처럼』은 그가 여행과 삶의 숱한 고민을 보다 깊이 있게,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넓혀 사유하고 얻어낸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우리가 여행에 있어 당연하게 여긴 수많은 감정들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이유들을 들려준다. 우리가 왜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는지, 그렇게 갈망해 떠났으면서도 어느새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지만 돌아오면 곧 흔들리는 까닭은 또한 무엇인지…….

 

『언제나 여행처럼』은 여행이 없는 여행 이야기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의 의미는 여행이나 사회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여행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데 있다. 떠나지 못함을 아쉬워 말며 상상의 힘으로 삶을 시처럼 살아간다면, 매순간이 여행이고 당신이 있는 그곳이 곧 여행지라고 힘을 실어 이야기한다. 결국 여행도 삶도 모두 마음에서 시작하기에 올바른 꿈을 꾼다면 언제나 자유로우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꾸는 꿈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울림 있는 한 마디로 글을 맺는다

 

3. 나를 무찔러온 장절

머리말

8
이방인은 자유로웠으나 종종 지독히 쓸쓸했다. 나는 왜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고 돌아와서도 정신은 안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가? 이 흔들림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글은 그런 고민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찾아온 흔적들이다
.
방랑과 방황, 그리고 노마드적인 삶은 인간의 숙명이었고, 흔들림은 인간을 효율성, 생산성, 기능, 수단으로 대하는 근대화된 사회에 대한 저항이었다.

 

9
이 글의 목적은 여행이나 사회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여행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데 있다. 길은 분명히 있다. 나는 사유와 상상을 통해, 공간 여행에서 시간 여행으로 가며 새로운 길을 보았다. 그리고 여행과 삶에 대한 인문학적인 태도로 접근했다.

 

여행자들은 이 시대의 첨병이다. 그들을 보면 세상의 흐름이 보인다.

 

I 여행의 유혹

 

여행은 너무도 매혹적이다. 모든 삶을 다 팽개치고 떠나고 싶을 만큼. 그래서 여행은 또 황홀한 독이기도 하다. 여행의 그 위험한 유혹들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존재의 숙명인가?

 

방랑과 방황은 무한에 대한 갈망

12

바람은 자유롭다. 바람이 되어 우주와 하나가 되는 황홀한 순간을 맛보는 순간, 이제 방랑과 방황은 길 잃은 자의 풀 죽은 행위가 아니라 생의 비의를 엿본 자의 당당한 노래가 된다.

 

13

처음에 입사해서는 이런 꽉 짜인 생활도 할만 했다. 모든 게 새로웠고, 배우느라 긴장했으며 사람 사귀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월급이 있었다. 그 당시 대기업 초봉은 남들과 비교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1년쯤 지나자 지겹고 권태로워졌다. 몸과 마음에서 물기가 쭉 빠져 나가버린 것만 같았다.

 

다만 어느 날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며 모든 것은 놀라움에 채색된 권태 속에서 시작된다. – 알베르 까뮈의 <시시포스의 신화>

 

내가 직장을 그만둔 이유도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 때문이었다.

 

14

무엇 때문에 나는 이런 똑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 배낭을 매고 무궤도 속에서 방랑하는 꿈, 그때 나는 그게 절실했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배낭을 맸다. 그리고 마음껏 세상을 방랑했다. 그 방랑의 시절 동안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희열 속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선택한 결정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 방랑도 긴 세월 속에서는 또 다른 궤도가 된 것이다. 낯선 곳에서 숙소를 찾고, 구경을 하고, 사람을 사귀고, 이런저런 사건을 겪다가 다시 떠나는 행위가 되풀이 되면서 어느 날 또다시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이 들었다. 권태는 놀랍게도 방랑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탕자의 쾌락이 아니라 무한의 세계였다. 자신이 사라지고 무한과 하나가 되는 그 해방감.

 

17

나의 속에 들끓는 열망과 불안함의 근원은 무엇인가? 방랑과 방황은 존재 자체의 숙명인 것이다. 존재란 자아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열린다. 그래서 존재는 늘 자신의 울타리를 넘고싶은 갈망에 시달리는 것이다.

 

18

사회는 존재를 서열화시키고, 계량화시키고, 규격화 시킨다. 자유로운 존재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으로서 존재한다.

 

그의 운명은 고되다. 어느 제도, 어느 가치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자신의 별을 찾아 평생 떠도는 운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떠돎보다 더 힘 드는 것은 그 떠돎이 일상이 되어 권태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19

미래의 불안과 세상과의 불화를 피하지 않은 채 끝없이 길을 가기로 했다. 그 길은 육체의 떠돎을 넘어서 그 어떤 사회의 가치, 제도에 나를 안착시키지 않는 정신적인 길이었다.

그러자 묘하게도 활기찬 삶의 생기가 다시 찾아 들었다. 그렇다. 삶의 생기와 힘은 어떤 고정된 하나의 위치, 하나의 상태, 하나의 경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에서 오는 것이었다.

 

떠나고 돌아오고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또 그걸 버리고 떠나는 가운데 생성하고, 소통하며, 새롭게 출발하는 흔들림이었다. 내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목적이나 의미가 아니라 흔들림에서 오는 강력한 포스였다.

 

흔들림에서 오는 강력한 포스force’? 이게 무얼까? 내 식으로 풀자면 내가 살아있다는 강렬한 느낌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생의 실체와 맞닥뜨리면 이럴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순간을 오래 유지할 수만 있다면

 

삶은 모험이다

20

모험가는 뒤에 있는 모든 다리를 끊은 채, 어떠한 상황에서도 길이 나타나 자신을 인도하기라도 할 듯이 안개 속으로 들어선다. –게오르그 짐멜

 

31

알을 깨고 싶다는 본능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내 삶을 내 책임하에 내 마음대로 끌어가고 싶다는 욕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며 낯선 세상을 향해 배낭을 매고 떠나는 행위도 그 중 하나이다. 살아오며 그러한 과장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뒤늦게나마 그 통과의례를 치르고 싶은 것이다.

 

직장을 다니며 돈벌이를 하면서도 내 삶을 사는 기분이 안 들었어요. 다리가 가려워 긁어도 청바지 위를 긁는 기분이었지요. 그러다 여행 떠났을 때의 기분은 가려운 살을 피가 맺히도록 벅벅 긁는 기분이었어요. 아프면서도 기가 막히게 시원했어요. 내 삶을 내가 산다는 짜릿한 기분이 들었지요.”

 

나에게 모험이란 이런 것이었다.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 거기서 오는 살아있음의 희열을 맛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많은 고통과 불안이 따른다.

 

33

비록 내가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다 해도 나는 진정한 내 삶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짜릿한 순간을 수없이 맛보았으므로 내 인생은 대성공이란 강한 의미 부여를 했다.

 

인생은 어차피 이리 가나, 저리 가나 고되다. 다만 자신의 행위에 끊임없이 의미 부여를 하며 삶의 에너지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 삶은 성공한 삶일 것이다.

 

한계와 고통의 극복

35

나 역시 여행길의 고통과 고난을 통하여 강하게 단련되어갔다. 3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가 내 인생의 절정기였다. 내 의지에 의해, 한계를 깨부수고 수많은 고생을 극복하고 길을 간다는 황홀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37

남들은 거지 같은 배낭여행자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두(수행자)같은 여행자다. 몸이 말라갈수록 정신은 맑아지고 있다.

 

나이로비 공동화장실의 변기에는 누런 똥만 가득 찼다. 물이 안 나온다. 악취가 진동한다. 겨우 맨 위층에 물이 나오는 곳을 발견했는데 이 곳도 더럽기는 매한가지다. 동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하지만 그곳 역시 변기 커버를 다 떼어버렸다. 남들이 본 소변 방울이 묻어있기 일쑤, 큰 거 볼 때는 변기 위를 발로 밟고 올라가 앉거나, 엉덩이를 들고 엉거추춤하게 서서 일을 보는 묘기를 부리거나, 더러움을 무릎 쓰고 간신히 앉아서 보아야 한다. 보고 나면 샤워를 해야 하는데 샤워기는 꼭지가 없고, 샤워기 구멍에서는 녹슨 물이 쏟아져 나온다. 바닥은 시커멓고 벌레가 기어 다닐 것만 같다. 늘 여행 다니는 나를 보고 부러워하겠지만 이런 곳에서 묵는 것을 안다면 과연 부러워할까?

 

38

흔히 말하듯 집 떠나면 고생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다. 엄살부리면 안 된다. 내 몸과 정신에 깃든 기름기를 빼야 한다. … 그래도 이곳은 너무하다. 똥은 마음 편히 눠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이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아 슬프다.

 

잔지바르 섬은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너무 더웠다. 밤에도 에어컨 없는 방에서 더위에 시달리다 보니 드디어 몸에 이상이 왔다. 온몸이 뒤틀리고 특히 등에서 가슴 사이의 근육이 너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구토와 설사가 계속 이어졌다. 예전에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왔다가 열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데 나도 그럴 것만 같다.

신기하게도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에서 에어컨 바람을 씌자마자 나는 살아났다. 감쪽같았다. 몸에 생기가 돌고 기내식도 맛있게 먹었다. 아마도 일사병에 걸렸던 것 같다. 무더위에, 빈약한 음식에, 열악한 잠자리에, 매일 과도하게 걸었다. 발바닥도 몹시 아팠다. 30대에는 이런 정도는 거뜬했는데 나이가 든 탓일까.

나이로비에 오니 선선한 가을 날씨였다. 이곳은 연평균 17도의 쾌적한 고원지대다. 배낭을 풀고 근처의 생맥주 집으로 가 닭튀김에 생맥주를 시켰다. , 이제는 살았구나!

 

40

터키 사람들은 좋다. 터키는 이 세계에서 가장 여행하기 좋은 길 위의 천국이다. 그러나 도둑놈과 사기꾼은 언제나 여행자들에게 달려든다.

 

42

여행길은 낭만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병과 도적과 사기꾼과 깡패들에게 늘 노출되어 있다. 나는 온갖 사건과 위험 속에서 단련되어 갔지만 또한 나의 한계,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점점 겸허해져갔다. 정말 하늘이 돕지 않으면 이 길을 갈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방어하고 조심해도 재수없으면 한 순간에 길에서 가는것이다.

 

44

나 역시 여행길의 고통과 고난을 통하여 강하게 단련되어갔다. 내가 만약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승승장구하며 인생을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나는 교만해 졌을 것이고, 강하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허약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불쌍한 사람의 아픔을 몰랐을 것이고,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를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진실되게 노력하고 또한 겸허해지는 인간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주의 중심을 찾아서

45

세상으로부터의 출고와 세상의 중심은 다 내 몸과 마음 속에 있었다. 내 몸이 신전이고 성소였다. 또한 성스러운 순간은 그 신전에 깃든 내 마음이 그리는 꿈이었다.

 

내 일생 중 가장 한적한 시간은 라다크 지방의 레라는 마음에서 보낸 한 달이었다. 레는 인도 히말라야 산맥 깊숙한 곳에 있는 해발 3500미터의 마을로 달나라처럼 황량한 곳이었다. 마을에는 개울물도 흐르고 나무도 있었지만 사방은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돌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46

레에는 모든 것이 맑았다. 공기도, 산도, 개울물도, 사람들의 눈빛도 모두 맑았다. 그곳에서 머무는 10여명의 여행자들은 머무는 곳은 달라도 식사시간에 모두 늘 식당에서 만났다. 나는 낮에 곰파(티벳 사원)를 보거나 마을의 왕궁을 방문하거나 축제에 참여해 사람들을 만나곤 했지만 대개는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별로 할 게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가장 좋은 곳은 식당이었다. 여행자들은 늘 그곳에 모여 여행얘기를 하고 정보를 나누고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어느날 티베트 막걸리인 창을 마시고 싶었다.

 

47

마치 수백 년 전 중세도시를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 혹시 창 마시는 곳 압니까? 동굴집이었다.

어두컴컴한 토굴 안은 아늑했고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48

토굴 술집은 나에게 단순한 술집이 아니었다. 그 곳은 나만의 은둔지요 도피처였다. 그 토굴 술집에 들어가 술이 취하면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편안했다. 그 곳에서는 시간도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종종 술이 취해 토굴 속 등잔불이 되어 나를 잊었다. 낮에도 마음이 동하면 그 토굴 술집에 갔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면 돌산에 올라가 싸늘하고 건조한 바람을 쐬며 히말라야 산맥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종종 저녁에도 그 곳에서 술을 마셨다. 밤에 그 곳을 나오면 10월의 얼음장 같은 찬 공기가 옷 속으로 파고 들었다. 숙소로 돌아오다가 가끔 허물어진 왕궁의 성벽 근처에 누워 수백 만년 전에 출발했을 별빛을 바라 보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 누워 바라보는 별빛은 황홀했다.

 

49

그 토굴 술집은 나에게 성소였다. 그곳에는 다른 현실이 있다. 그것은 마치 연애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처럼 자아가 무한의 세계로 녹아 드는 듯한 황홀경을 맛보는 공간이다. 그렇다. 나는 그 토굴과 히말라야 풍경과 바람과 칠흑 같은 밤 그리고 별빛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공간은 똑 같은 공간이 아니며 시간은 똑 같은 시간이 아니다.

 

50

나는 영원한 현재를 경험하고자 한다. 내가 만약 다시 그 곳 토굴 술집으로 돌아간다면 그 성스러움을 맛볼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첫사랑의 연인이 다시 만난다고 첫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그 짜릿한 순간, 그 달콤한 순간, 그 황홀한 순간은 영원히 흘러가 버린 것이다.

 

불현듯 나는 나 자신을 돌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의식해야 할 것은 성스러운 장소도, 순간도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 덧없는 것일 뿐. 세상으로부터의 출구와 세상의 중심은 다 내 몸과 마음 속에 있었다. 내 몸이 신전이고 성소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의 내 몸과 마음이었다.

 

나의 성소는 있는가?

 

카르페디엠과 운명에 대한 사랑

51

현재에 몰입해 그 속에서 자신을 훨훨 불태우는 것이다.

 

52

순환적인 시간관 속에서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준 농부들은 생의 포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세상은 계속 되풀이되는 것이기에 미래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에의 몰입이 더 중요했고, 생을 살 만큼 산 사람들에게 죽음은 생의 만족스러운 종결이 되었다.

 

53

나는 그 직선적인 시간관에 휩싸여 너도 나도 미래를 향하여 뛰며 경쟁하는 사회가 싫었다. 그래서 배낭을 매고 여행을 떠났다. 그 빠른 러닝머신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자유롭게 떠돌아 다니며 현재에 몰입했고 생의 포만감을 누렸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54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도 그것을 하다가 죽으므로 여한이 없노라 말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나는 글에서 찾았다. 그렇게 텅 빈 마음으로 몰락을 각오하되, 진정 하고 싶은 것 하나만 남겨놓고 거기에 다 바치기로 마음먹자, 오히려 현재를 긍정하는 마음이 강하게 솟구쳤다.

 

56

생명은 고상하고 깨끗한 신전에서, 혹은 엄숙한 학자의 연구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여인의 똥과 오줌이 나오는 구멍 사이의 구멍에서 나온다. 밭의 씨들은 똥과 오줌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다. 만약 세상이 이념형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것은 포르말린 냄새 가득 풍기는 병원의 실험실과 다를 바 없으리라. 그 깨끗한 곳에 생명은 없다. 더러움과 모순이 뒤죽박죽 섞여서 이루어진 세상, 그곳이야말로 더 신비로운 삶의 생기가 넘치는 세상이며.. 삶이라는 밭에서는 개똥밭에서 구르는 열정과 용기가 더 필요하다.

 

II

현실을 여행처럼 살아가기

 

가족이라는 굴레 가족이라는 힘

62

부모 자식간의 질긴 인연을 끊고 가,는 기분으로 떠난 나의 여행은 출가와도 비슷한 행위였다.

 

63

다만 허전하고 불안한 존재로서 뼈저리게 내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 관계를 통해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고 거기서 새로운 삶의 의욕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68

영혼의 결합은 둘째치고, 있는 가족조차 지키기 힘든 시대이다. 낱개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발버둥치기도 힘들어진 이 시대에 과연 결혼과 가족은 무엇인가? 여행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30-40대 중에 싱글이 많다. 나도 그렇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금방 세월이 간다.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다 보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쉽게 결혼하고도 싶지 않다. 그들의 의식은 늘 경계선에서 머물고, 한때의 황홀했던 자유에의 추억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69

결혼은 이렇게 안개속으로 불확실한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 불확실성 속의 세계에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게 만든 힘은 돈도, 밝은 미래도 아니었다. 그저 반성과 노력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갈등과 다툼 속에 12년째 살아온 지금은 텔레파시가 통할 정도가 되었다.

 

그 이유는 아이를 낳은 상태에서 내 여행과 글을 동시에 밀고 나갈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작정 저질러 놓은 여행하는 내 인생을 어떻게든 마무리짓고 싶었다.

 

심플 라이프의 당당한 자유

72

나에게 삶은 여행이고 세상은 수행의 장이다

 

73

한국은 어느새 고물가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인도에서 백 원 미만에 차를 마시다 보니 몇천 원씩 하는 커피를 도저히 마실 수 없었다.

돈도 벌면서 자유롭게 살기란 돈 많이 버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거기에는 현실적인 테크닉 못지않게 이 거센 물질의 유혹 앞에서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을 만들고, 내공을 쌓아야 하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20년 동안 직장생활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여행하고 글 쓰면서 살아갈 수 있는냐고 나에게 묻는다. 집에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돈을 아주 많이 번 사람일거라고 추측한다.

 

74

그렇지 않다. 늘 생계에 대하여 고민하면서 노력해야 할 처지다. 이러한 상태에서 나는 어떻게 버텨냈을까? 가장 큰 힘은 소비를 줄이는 데서 왔다. 나의 삶은 심플라이프 그 자체다. 내가 포기하고 체념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우선 아이가 없으니 육아비나 교육비에 대한 걱정이 없다. 자동차도 없고 에어컨도 없다.

 때문에 내가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1년에 몇 번 정도도 안 된다. 안 만나니 돈 쓸 일도 없다. 혼자 동네를 어슬링거리거나, 가변을 걷거나, 산길을 걷거나 벤치나 한강변에 앉아 햇빛을 쬐고 바람을 맞는다. 별다른 취미도 없다. 그저 걷고, 책보고, 생각하고 글쓰는 것이 다다. 그 단순한 시간 속에서 오히려 풍요함을 느낀다.

 

75

그 단순한 시간 속에서 오히려 풍요로움을 느낀다. 결혼 후에도 오히려 1년에 서너 달씩은 여행을 했고 1,2 주일의 짧은 여행도 했다. 홀로 다닌 적도 있었고 아내와 함께 다닌 적도 있었다. 이러 여행이 가능했던 것은 대개 절약하는 여행이었고 물가가 싼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돈이 종종 들어갈 때가 있다. 명절을 치러야 하고, 가끔 병원비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역시 해외여행이었다. 그래도 그것이 경험이 되어 다시 글을 쓸 재료가 되니 소모적인 것은 아니었다. 어쨌던 내 삶의 중심은 여행, , , 공부, 산책, 사색 등등이고 그 외에는 내세울 게 별로 없다.

 

이런 생활이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것도 부러워할 지 모르고 이제 사회에서 중견 혹은 CEO가 된 친구들 수준에서 보면 궁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보다 자유가 많다. 선택인 것이다.

 

76

세상 모든 일이 하나 얻는 게 있으면 하나 잃는 게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고물가 사회에서 생존의 비법은 첫째는 욕망 줄이기. 둘째는 그 줄인 욕망 속에서 한적하게 살 수 있는 심플라이프에 적응하기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관, 세계관을 만들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글로, 메시지로, 혹은 만남으로 가끔이나마 소통하는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내 삶을 당당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내공, 즉 가치관이었다. 나에게 삶은 여행이고 세상은 수행의 장이다. 마음을 다잡고 몸집을 줄인 상태에서 자유를 꿈꾸며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 저자의 여행, , , 공부, 산책, 사색 등 취향은 나와 비슷하다. 자유를 위하여 몸집을 줄여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삶의 방식을 배운다. 무엇보다 내 삶의 가치관을 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 열린 마음으로 주위와 소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목적을 정하고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세상과 소통하길 원하는 나의 방식과도 서로 상통한다.

 

카페는 도시 속의 오아시스

77

도시는 문화의 비극이 발생하는 현장이고, 카페는 그 문화의 비극을 완화시켜주는 장소다.

 

79

문화란 영혼이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다.

 

80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발소리가 말발굽 소리처럼 들려 쓴 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사회가 만들어 낸 규칙과 속도에 쫓기듯이 살아간다.

 

81

수다에 목적성이 없어야 더 즐겁다. 삶 속에서 나온 진실한 경험과 감동을 겸허하고 성실하되 유머가 깃든 형식 속에서 소통할 때, 문화의 비극은 극복될 수 있다. 한국의 대도시에서 카페가 많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생활이 빡빡하다는 것의 방증이다.

 

82

인도, 터키, 베트남에서도 몇백원 정도의 커피를 마시는 서민들이 즐기고 있었다. 그곳은 자본의 거품이 빠진 소박한 공간으로 거기에서 문화의 갈등은 완화되고 치유된다.

 

사람 만나 한두 시간 한적한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 캔커피 들고 마시며 얘기하는 것은 어떨까? 공원에서, 도서관 로비에서….

 

83

요즘 나는 산속의 카페에 종종 간다. 20분 정도 동네 산길을 걷다보면 동네 산길이 나온다. 거기에 앉아 홀로 혹은 아내와 함께 보온병에 담아온 따스한 커피를 마신다.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속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은 영혼의 소외와 결핍은 없다. 자연 속의 카페야말로 최고의 카페다. 세상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는 한적함과 인간의 체취가 남아 있다.

급변하는 세상일수록 나는 자연 속, 변두리의 누추한 곳,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붙은 곳,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그때 내 영혼 속에 깃든 씨앗들은 꿈틀거리며 발아를 꿈꾼다.

 

여행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나눔

84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고파는 장사꾼이 아니다. 남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자기 인격의 한 부분을 주는 것이다.

 

86

여행길에서는 신세지고 나면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가 손상된다. 때문에 여행자들은 심리적인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칼같이 더치페이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이내 터득한 나도 그 다음부터 더치페이에 익숙해져 갔다.

 

87

크레타에 머물 때 같은 유스호스텔에 묵던 이탈리아인과 스위스인과 어울려 길거리에 있는 숯불통닭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친구가 내 잔에 술을 따라주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 그동안 여행하면서, 서양 친구가 내 잔에 술을 따라주는 것은 처음이오.”

아니, 친구 잔이 비었는데 술도 안 따라주는 사람을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소.”

아하, 시칠리아! 그래요, 거기가 바로 이탈리아요.

 

89

마피아는 우리가 낯선 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오. 세상에 생존보다 숭고한 것은 없단 말이오!

 

93

각자 자기 음식을 준비해 오는 포틀럭 파티 등을 통해 서로 나눠 먹으며 소통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비용은 적게 들이면서 함께 누리는 기쁨은 증폭시키는 것이다.

 

94

사람은 사람을 피곤해 하지만 또 사람을 그리워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자기 자신을 사고파는 장사꾼의 관계가 아닌 관계는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홀로 보내는 시간이 더 충만할 때가 많고 그럴수록 가끔 인격을 주고받는 시간은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 소통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어떻게 교류하고 어울리며 소통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데, 따로 또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어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듯이 취미나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이는 소규모 클럽 같은 모임이 내게는 가장 바람직할 것 같다. 모임을 그것도 정기적인 모임을 구축하여 오래 같이 갈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여행의 징표와 유행

95

여행의 징표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거친 수염과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야수처럼 눈을 부라리고 다녔다.

 

98

지금이야 흔한 일이지만 15~16년 전 젊은 중국집 배달원들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녔었다. 유행이려니 했는데 그들의 말은 달랐다. “이렇게 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깔보지 못해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자신들을 또라이로 생각하고 무서워할지언정 깔보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랬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니 너희들 잣대로 함부로 나를 평가하지 마라. 그러다간 다친다는 경고인 셈인데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오해도 많이 했었다.

 

=> 몸에 문신을 넣고 다니는 사람도 이와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문신이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 내세울 것이 없는 자들, 혹은 일없이 어슬링거리는 백수 비슷한 자들은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대한 대비책으로 혹은 나는 너희와 다른 무엇이 있다는 다소 우쭐거리는 심리로 문신을 하여 조폭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목욕탕에 가면 이런 자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나도 상종을 꺼린다. 여하튼 이런 류가 상처받은 자기를 보호하려는 심리에서 작동되는 듯하다.

 

지도를 보는 여행자와 거울을 보는 여행자

102

지도를 보는 여행자는 떠나려는 어행자이고, 거울을 보는 여행자는 돌아오고 싶어하는 여행자다.

 

107

결국 나의 행위는 나와 같은 아비투스를 찾는 행위였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또 블로그에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즐거움과 고민을 함께 나누며 힘을 주고받았다. 거기에는 나이도, 학력도, 지역의 구분도 없었다. 다만 이들과 나는 여행, 방랑, 방황이라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아비투스를 가진 이들은 소수였고 파편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비투스들의 쟁투가 벌어지는 사회라는 장에서 우리는 경계인으로 숨죽이며 살고 있었다.

그때 내 글쓰기의 목표가 분명해짐을 느꼈다. 나는 불특정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향하여 쓰지 않고 같은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쓰기로 했다. 그런 이들이 좀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내면적 가치관, 세계관을 건설하는 것이 나의 행복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세월이 흐를수록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아비투스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 나도 역시 같은 아비투스의 여행의 꿈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을 게다. 아니면 누가 내 글에 관심을 가져줄까? 여행자로서의 내면적 가치관, 즉 내공을 쌓아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일단 여행자로 입문할 자격은 갖춘 셈이 될 것이다.

 

인간은 오랑 반다야야

109

내가 보기에 인간은 오랑 반다라야다. 인간은 도시에 대해 투덜거리지만 그 편리함과 고마움은 험한 자연에 갔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115

산타칸에서 미니버스로 1시간 20분 가량 달려 숭가이 키나바탕간 강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강은 560km로 사바주에서 가장 긴 강이었다. 보트를 타고 강을 달리는 동안 양쪽으로 우거진 정글이 이어져 있었고 인적은 뚝 끊겨 벼렸다. 2시간 30분을 달리는 동안 악어와 원숭이와 혼빌이라는 커다란 새를 보았다. 드디어 오후 5시쯤, 강의 상류에 도착하니 왠 소년이 마중을 나왔다. 그를 따라 10여분을 걸어가자 원두막 같은 가건물 몇 채가 나왔는데 문도, 창문도 없고 지붕과 난간과 거적때기 그리고 구멍 난 모기장만 있었다.

캠프 주변을 돌아보았다. 동물도 없는 단조로운 숲 속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야외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116

그곳에는 소년들 명 명이 거주하며 가이드를 해주고 요리도 해주었는데 빵과 스파게티와 야채 그리고 차를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보트를 타고 나이트리버사파리를 했다. 배는 고요한 어둠을 뚫고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갔고 가이드는 서치라이트 불빛을 강과 숲에 비추기 시작했다. 눈을 반짝이는 부엉이들, 박쥐들, 그리고 검은 강바닥에서 눈을 반짝거리며 머리를 내놓은 악어들이 보였다. 하늘은 청명했고 달빛은 밝았다. 시원한 바람을 타고 정글 어디선가 동물 우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태곳적의 어둠과 원시림이 어우러진 풍경은 신비롭고 낭만적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식수로 미네랄워터를 마시면 되었지만 문제는 샤워였다. 녹슨 드럼통에 담긴 강물은 거의 흙물 수준이었다. 기생충 감염 우려가 있다고 해서 온몸이 땀에 젖었어도 샤워를 할 수가 없었다. 잠을 자는 데도 문제가 생겼다. 모기장의 뚫린 구멍으로 모기가 들어와 앵앵거렸다. 말라리아 약을 복용하고 있던 나였지만 겁이 나서 바르는 모기약을 몸에 발랐다. 그런데 너무 발랐는지 어질어질하고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러지 않아도 말라리아 약을 먹어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난감했다.

 

117

잠은 한숨도 못 잤지만 시원하게 새벽사파리를 하고 아침을 먹고 해먹에 누워 책을 읽었다. 그런데 차차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아침 10시 밖에 안되었지만 뜨거운 지열이 오라오고, 습한 공기가 달궈졌다. 바람도 뚝 끊긴 상태에서 해가 높이 솟으니 숨이 막혔다. 거기다 모기까지 달려드니… 피할 데가 없었다. 막사 안이 시원한 것도 아니었고 모기장은 뚫려 있었으며 악어가 있는 강물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었다.

118

그런데 무더위에 점점 익숙해지자 차차 참아낼 만도 했다. 그리고 몸이 축 가라앉으면서도 의식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정글에서 가끔씩 들려오는 새와 원숭이 울음소리를 듣는 가운데 한낮의 더위가 지나고 오후 5시쯤 되자 천둥, 번개가 치명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기온이 떨이지며 시원해 지자 살만했고 정글속의 동물들도 활개를 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정글이 생기를 띠며 동물들이 합창을 하고 있었다. 내 몸도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며칠만 견디면 이 불편한 정글도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밤이 되자 문제가 생겼다. 밤이 되자 골이 아파왔다. 진통제를 먹어도 아팠다. 그리고 한밤중에 갑자기 추워지면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스웨터를 입어도 오한은 수그러들줄 몰랐고 설사가 나오고 토하기까지 했다.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난 후, 캄캄한 정글의 어둠을 바라보며 내가 어쩔 수 없는 도시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말라리아가 무서웠다. 한번 걸리면 고열에 시달리고 덜덜 떨다가 설사를 하면서 3일 만에 죽고마는 병이다. 결국 1-2주일 머물 생각으로 왔던 나는 이틀 밤을 자고 도시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코타키나발루에 오자마자 병원으로 가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말라리아는 아니었다.

119

급격한 무더위 속에서 잠을 자지 못하다 보니 몸의 조절기능에 이상이 온 것 같았다. 도시도 역시 더웠지만 피할 곳이 있었다. 나는 어어컨 바람이 감도는 시원한 카페로 가 커피향을 맡으며 일기를 썼다.

구멍뚫린 모기장으로 들어온 모기와 말라리아에 대한 두려움… 정글에 살던 소년은 모기들이 자신들은 잘 물지 않는다며 실실 웃었다. 정글을 이미지로 그리워하다가 정글의 현실에 견디지 못하고 23일만에 돌아온 나는 도시인이었다. 그것이 내 한계였다.

 

120

내가 도시를 싫어한 것은 오염되는 공기와 물 만은 아니었다. 과도한 밀도, 복잡한 체계, 바쁜 생활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난 한적한 자연을 그렸던 것이다.

 

121

숲속의 인간을 오랑우탄이라 부르니 도시의 인간을 오랑 반다라야라 부를 수 있겠다. 인간은 도시에 대해 투덜거리지만 그 편리함과 고마움은 험한 자연에 갔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123

상징체계가 사라진 드넓은 자연 속의 생명력을 원했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자유인 셈이다. 또한 그 자연 속에서의 생활이 힘들어질 때 문화적, 상징적 체계로 둘러싸인 도시로 컴백할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또 자유로움을 느꼈다.

 

역동적 뿌리내리기

126

역동적 뿌리내리기의 궁극적 목적은 어떤 목표지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흔들리며, 타자와 소통하는 가운데 존재를 싱싱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돌아온 여행자들은 방랑의 추억을 되새기며 의식이 흔들린다. 겉으로 보면 멀쩡하다. 그러나 종종 일상의 걱정과 권태 속에서 내 삶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허전함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127

그들은 다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그 장소에 다시 가보아도 그때의 감흥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그때 추락의 위기와 모험의 기회가 동시에 온다.

 

128

경계 없던 곳에 인간은 집을 짓고 문을 만들어 경계를 설정했다. 이전까지 그 공간은 자연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제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유한을 벗어나 무한을 접하는 느낌을 얻는다. 바로 여기에 역동성이 존재한다.

 

129

세상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 관습, 가치관의 억압이 있기 때문이다. 필요해서 만든 그것은 어느 샌가 인간을 억압한다. 결국, 방랑과 방황은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며 무한에 대한 본능적 갈망이되 그 강도를 높여주는 것은 인간이 만든 문과 같은 울타리다.

 

130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문을 영기를 갈망했고 그 열린 상태가 오래가자 오히려 권태를 느꼈다. 수많은 여행자들도 이런 딜레마에 빠져있다. 문안에서 달다가 문을 열고 나가는 자유를 맛본 이들은 계속 그 때의 희열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 만족도는 점점 떨어진다. 이때 그 희열을 회복하는 길이 역동적 뿌리내리기이다. 문을 닫고 들어와 이 세상 속에 살며 뿌리를 내려야만, 언젠가 문을 열고 나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130

산 속에서 수행하는 영원한 자유를 구하는 이들이 구속과 규율 속에서 얼마나 부지런히 살아 가는가?

떠남과 돌아옴, 고뇌와 희열, 유한과 무한은 하나가 없으면 하나가 존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공존하고 있으며, 이를 알아 차리는 것은 깨어있는 마음이다.

 

III 꿈꾸는 삶의 기쁨

 

십대들의 반항

 

139

거시적인 삶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부모가 먼저 갖고 아이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물질적으로 잘 살아야만 행복하다는 것은 철저히 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결과이며, 정신적 트라우마에 기인한 것이다. 살아가는 방법은 수없이 많고 욕망을 줄이면 길은 자꾸자꾸 트이게 마련이다. 10대들에게 꿈과 상상력은 꼭 필요하다.

 

142

학생도, 학부모도 선생님도 모두 힘든 시대다. 이 시스템에서 단번에 빠져나갈 묘책은 없어 보인다. 결국 방법은 계속 스트레스 받는 그들의 가슴에 바람구멍을 내 주는 것이 아닐까?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그들과 존재론적인 고뇌를 자꾸 소통하고 영혼에 불을 붙여야 한다.

 

149, 백수

백수가 되어 자유롭게 여행하던 시절, 나는 불안감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맛보았다. 그리고 종종 여행에서 돌아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방황하던 시절, 돈 못 버는 백수 생활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백수의 서러움과 무기력감, 불안감을 안다. 어쩌다 신문, 잡지, 방송에 여행가나 여행 작가로 소개되었지만 수입 면에서 보면 형편없을 때도 많았고, 또 집에 틀어박혀 몇 개월 동안 책 원고를 쓰거나 별 목적 없이 여행을 다닐 때면 완전 백수였다. 돈이 아쉬워 아르바이트로 여행사 일을 몇 개월 해 준 적도 있었지만 늘 잠재적인 백수 상태였다. 지금도 그렇다. 시간강사, 방송 활동, 신문 잡지에 원고를 쓰고 이런저런 여행기를 계속 내왔지만, 프리랜서라는 게 원래 늘 잠재적 백수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백수임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백수는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변방에서 저항하는 게릴라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노자, 장자, 부처, 예수가 모두 위대한 백수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밥벌이 한 적 있는가?

 

150

나는 무능이 용서받을 수 있고, 적게 먹고 빈둥거리며 놀고,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고, 상상 속에서 여유를 갖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그것은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세상이었기에, 한때 이 세상에서 도피하여 빈둥거리며 놀기도 했다. 어쩌다 일을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았다. 나의 에너지를 목적 없이 소모시키는 것이 지구상의 온갖 생물, 무생물을 풀가동시켜 생산에 동원하는 이런 무시무시한 체제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15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은 또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백수의 정신으로 돌아간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세계, 노는 세계에는 분명히 부지런히 뛰는 세계에서 얻지 못하는 광대무변한 세계가 있다. 세상의 어떤 이익과 기능에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만 참 존재가 보인다.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거리를 둔 무용지물이 될 때에 세상이 바르게 보인다. 그 백수의 세계는 바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잠시 나의 도피처가 된다.

 

152

치열하게 밥벌이를 위하여 고민하고 일하되, 가슴 속에 자신의 세계가 있다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2의 사춘기를 맞는 직장인

153

불확실성 속에서 고민하고, 꿈꾸고 상상하는 가운데 존재는 무한히 확장된다.

 

154

월급도 많았고 근무조건도 좋았다. 그런데 첫 월급을 받고 몇 일 되었을 때 그는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자신의 꿈 많은 청춘이 끝났다는 서러움, 이제 이 빡빡한 궤도를 따라가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감지하는 데서 오는 서글픔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미래가 열려있을 때 가슴이 설렌다. 불확실성 속에서 고민하고, 꿈꾸고, 상상하는 가운데 삶은 확장된다. 그런데 직장에 들어가 안정되는 순간 갑자기 미래가 덜컥 문을 닫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삶은 생기를 잃고 서러워 진다.

 

155

여행을 통해 책을 쓸 수도 있다. 한 나라 혹은 한 테마를 정해서 꾸준히 공부하고 반복 여행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것도 자신의 삶에 탄력을 줄 수 있다. 언젠가 은퇴를 한 후 떠날 긴 여행을 준비할 수도 있다. 그런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노력하면 직장생활도 한결 견뎌내기 쉬울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직장을 나오면 허허벌판이다. 자유롭지만 불안하다. 요즘같이 실업률이 높을 때 직장을 그만 두는 행위는 인생궤도를 다 바꿔놓는 행위다. 그 길을 가자면 가치관, 세계관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이걸 감수할 각오가 없다면 차라리 직장 속에서 삶을 활기 있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다.

 

157

먼 길을 가자면 자기 페이스가 필요한 법이다.

 

인생 이모작이 필요한 중년들

 

160

젊을 때는 현재가 불안해도 미래가 열려있다고 생각했는데, 40, 50대가 되자 세상이 닫힌 기분이 들고 점점 내리막길만 보였다.

흔리 하는 말로 사추기였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결심이 필요했다. 우선 몸의 살을 빼기로 했다. 긴 여행길 통해 단련된 나의 몸이 한동안 책 원고 쓴다고 컴퓨터 앞에 달라붙어 있다 보니 망가진 것이다. 체력도 저하되고 뱃살도 나온데다 신경은 예민해져 있었다. 독하게 음식을 절제하고 매일 두 시간씩 걷고 운동했다. 또한 요가를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2년 사이에 8키로그람 전도가 빠졌는데 정신에서도 기름이 빠져 쫄깃쫄깃해진 것 같았다. 주변의 상황은 변한 게 없었지만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 충분히 공감하는 대목이다. 운동은 우선 나의 기를 불어넣고 곧추세워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준다. 몸을 먼저 움직이는 것이 자기혁명의 시작이다.

 

163

현재의 내 문제는 여행이나 체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사유하고 해석하는 인식의 지평이 좁아서 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 50에 대학원 사회학과에 진학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온갖 얘기를 들었다. 지금 그거 해서 뭐에 쓰겠다는 거냐? 몸이 얼마나 힘든 줄 아니? 또 돈은 있어?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난 후 얻는 게 확실치도 않았고 돈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했다. 이 시점에서 내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지 않으면 나는 몰락할 것만 같았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164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왜 그토록 떠나고자 했으며, 또 돌아와서 방황하며 끝없이 새로운 세계를 그리는가에 대해 알았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다시 싱싱해 지면서 많은 의욕과 영감을 얻었다. 또 계속 배우는 자세로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한 것은 보너스였다. 이렇게 나는 중년의 위기를 탈출했고 이모작 준비를 했다.

 

165

종종 주변에서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할 게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나 역시 글과 여행에서 조금씩 지쳐갈 때 막막했다. 계속 비슷한 여행 얘기를 하기도 싫었고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의욕도 없었으며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 그러나 궁하니 통했다. 눈 앞에 보이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처음으로 돌아가 뜻을 세우니 길이 보였다.

 

166

인생 이모작의 씨를 뿌리며 저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자체가 내게는 행복이다.

 

175, 노후대책

추석 다음 날 콜라텍에서 노는 중년과 60, 70대는 과연 어떤 삶을 사는 것일까?

술 한 잔을 해도 몇만 원인데 2천원을 내고 열심히 춤을 추는 그들에게서 나는 유행보다는 갈 데 없는 중년, 노년들의 필사적인 ‘생존 의지’를 보았다. 들풀 같은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았다. 희망이 없는 가운데 불안감이나 허망함을 음악과 춤에 실어 보내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모습은 비장미까지 풍겼다.

나는 어떨까? 무위도식의 상태를 무위자연위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도를 닦을 것 같다. 있는 듯 없는 듯 햇볕을 쬐고 바람을 씌며, 나무처럼 혹은 술기운에 취한 몽상가처럼 꿈꾸듯이 세상너머에 있는 무한의 세계를 바라보며 살 것 같다.

이렇게 낙천적으로 생각하다 다시 발밑의 현실을 보면 우울해 진다. 돈 때문이다. 적게 먹고 적게 써도 기본적인 돈은 필요한 데…

 

176

자기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모든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결심, 그것이 나의 노후대책이다. 어디에 살 건 현재에 몰입하는 것, 이것이 노후전략.

 

IV 노마디즘과 상상력의 세계

 

183

원래 여행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며 자신을 찾아가는 행위였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돌아온 후의 여행자들의 형태다. 한번 여행의 맛을 본 여행자들은 늘 떠나려 한다. 첫 여행에서 맛본 달콤한 충격 때문이다. 그건 마약과도 같다.

“아, 속아 살아왔어. 이런 세상이 있는데…”

많은 여행자들이 첫 해외여행의 충격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나 역시 그랬다. 지구 위의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지구 위의 사람들은 제각각 다르게 살아가고 있었다. 떠돌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여행자들도 많았다. 그걸 보면서 내 안의 가치관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무중력 상태에서 자유인이 되었다.

 

뿌리줄기로 살아가는 노마드들

 

188

돈이 많아도 문제 있다. 물가 싼 나라에서 하인, 하녀를 두고 골프 치면서 사는 즐거움도 한때다. 그 한때가 지나가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일상의 삶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일상 속에서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었다. 그 속에서 생기를 찾지 못하면, 노마드들은 변방의 초라한 이주민 혹은 타락한 경계인 밖에 되지 않는다.

 

190

떠돎 속에서 소통이 아니라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우리들의 목표는 생존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이고, 우리들의 갈증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전신적인 것이다.

 

현대인들은 리좀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땅속줄기란 말로 다방향적으로 뻗어가면서 줄기에서 새로운 뿌리가 나와 새로운 개체를 형성하는 양치류 등의 줄기를 말한다. 우리는 수많은 자연 발생적 관계의 연결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92

나는 여행사와 접속하면 여행 인솔자, 대학의 학생들과 접속하면 시간강사, 아무 일없이 빈둥거리는 시간과 접속하면 백수 등 나의 정체성은 접속 대상과 상황에 따라 수없이 변신한다.

 

194

어디서든 자유롭게 접속하여 생존하는 용기있는 노마드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여행하는 노마드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첨병들이 아닐까?

 

241

이제 어디로 가지? 그때 공간이동으로서의 여행은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여행보다 초월을 꿈꾸었다.

다만 시선을 달리 함으로써 존재와 현실을 무한히 확장시키면서, 현실적이고 이분법적인 태도를 초월하고 싶었다. 그런 갈망 속에서 나에게 빛처럼 다가온 것은 상상의 세계였다.

IP *.101.168.17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