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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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며_구달칼럼#43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삶은 이타카를 향하는 도중에 있음을”
전국 해안을 돌며 자전거 포구기행을 하리라 작정하자 떠오른 시 구절이다. 이 여행의 의미를 짚어주는 싯귀로 나의 심금을 울린다. 여행 내내 되새기며 달려야하리.
강화도 역사 박물관, 여기서 포구기행의 닻을 올렸다. 이미 강화도는 친숙한 곳이었다. 일산 집에서 멀지않아 고구마 주말농장을 일구기도 하고, 망둥어 낚시도 하곤하던 우리의 놀이터요 쉼터이기도 하다. 이제 여기서부터 해안을 타고 북상하여 강화도를 일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해안을 타고 남하할 것이다. 전국 포구기행, 머나 먼 길이 되겠지만 가슴이 뛴다. 길이 아스라히 사라지는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해안 따라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길만 보면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낯선 길은 언제나 나를 유혹했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나의 중요한 인연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꿈같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길을 달리는 것만큼 내 몸을 알아가는 경험이 또 있을까? 나는 몸의 반응이 궁금하다. 직장에서 일할 때는 몸이 나와 분리된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몸보다는 주로 머리와 눈과 손가락을 쓰는 컴퓨터 모니터 앞의 작업으로 인하여 이들 외에 다른 몸의 지체들은 나와는 상관 없는 존재로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자전거 위에 오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온몸의 지체들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몸은 참 묘하다. 일을 안 시키면 머지않아 몸을 망치게 되고 또 혹사시켜도 탈이 난다. 그런데 혹사가 어떤 것인지 그 수준까지 일을 안 시켜보면 모를 일이다. 이번 여행을 혹사의 한계를 시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일의 강도를 서서히 높이면 몸은 점점 적응하고 단련되어 혹사하기가 불가능한 경지가 찾아오지나 않을까 하는 몸이 알면 안될 불경스런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이런 나의 불경스런 생각이 무리가 아닌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자전거 위의 내 몸은 대체로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바람 때문일 것이리라 믿고 있다. 자전거는 항상 바람을 데려왔다. 바람은 최고의 매력적인 자전거 동반자이다. 가끔 마파람이 몸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바람은 몸에 날개를 단 듯 자유의 길로 나를 인도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바람이 실어온 갯내음은 나를 단박에 바닷길의 황홀 속으로 내몰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 길을 달리노라면 내가 진정 인생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실감에 전율하곤 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나 결국 길은 길로 통한다. 살다 보면 마주치는 두 갈래 길에서 어느 한 길을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내게 처음 온 그것은 진로를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해양대냐 공대냐? 바닷길이냐 육로냐? 부모님과 선생님은 내가 육로를 택하기를 원했지만 난 사람들이 적게 간 길, 아니 내가 가고픈 길을 택했다. 이후, 그로 인하여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마도로스가 되었다. 청춘의 세월은 하염없이 바다 위에 띄워졌고 나는 조각배처럼 외로웠다. 마도로스란 낭만이요 하나의 직업일 뿐 여행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곤, 나는 육지에 말뚝을 박았다. 성실한 직장인으로 늙어가던 내게 어릴 때 꿈이 밤마다 찾아와 유혹했다. 나는 반항했다. ‘지금은 떠날 수 없다고. 가족을 먹여야 한다고..” 하지만 내게도 기어이 그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그런데 내가 찾은 돌파구란 것이 어이없게도 ‘자전거 포구기행’이었다. 이제 오래된 꿈을 시도해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못할 것을 나는 직감했다. 그것이 두려워 못하면 비겁한 삶이 될 것이고, 평생 가슴 뛰는 삶은 맛도 못 본 채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두렵지만 내 길을 열심히 가노라면 새로운 인연과 꿈,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을 믿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완전 연소시키며 사는 것이다. 나는 그 방편으로 안주 대신에 여행이란 자유의 길을 선택했다. 삶은 여행이고 세상은 배움의 장이 아니겠는가.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해 하고 재미 있어 하는 일을 실행하는 것일 게다. 참으로 다행스런 것은 자전거 여행이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이론적인 설명을 떠나 세상의 아이들이 즐기는 모습에서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며 성장한다. 아이는 재미있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자전거의 이런 재미는 속도, 스릴, 그리고 탈 것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자유감에서 비롯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재미있지 않으면 아무리 몸에 좋고 유익하다 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전거가 주는 그 엄청난 재미에다 여행과 건강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으니 이번 포구기행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시작한 일이라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달리는 자전거는 그 자체로 신들린 길 위의 춤이 된다. 이 춤은 내 마음을 정화시키며 새 날을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이기도 하다.
얼마나 달렸을까? 흐르는 강물처럼 자전거도 유유히 흘러간다.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은 노는 것이다. 가다가 쉬는 것 또한 노는 것이다. 시간을 타고 가므로 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저 구름처럼 자유롭다. 내가 여행하는 진정한 목적이 있다면 놀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일생에 진정으로 놀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기회에 한 번 놀아보라고 신이 내게 기회를 주신거야.
작년 이 맘 때였나 보다. 억수로 퍼붓는 비속을 헤치며 서울-부산간 자전거 국토종주에 나선 것이. 그 때는 홀로 외로운 늑대가 되어 수일간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렸지. 비와 바람, 구름을 친구 삼아 그렇게 마냥 나는 깃털처럼 자유로웠다.
인생에 무슨 답이 있겠는가. 살아가는 데는 바닷가 모래알만큼이나 다양한 길이 있을 테니. 지금 손아귀에 움켜 쥔 것을 버려야 다른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법. 많이 버릴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자유는 커진다는 진리를 알면서도 나는 왜 버리지 못하고 떠나지 못했던가. 진정한 행복을 위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다 버리고 오직 하나, 뜨거운 심장 하나 안고서 나는 달린다. 그 싱싱한 생동감을 맛보기 위해 나는 포구를 기웃거리며 비릿한 갯내음에 지친 몸을 추스르고 생기를 되찾는다. 깨끗하고 거룩한 신전에는 생명이 없다. 똥밭에서 생명은 나고 자란다. 개똥밭에서 구르는 열정과 용기만이 살아있는 생명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땀내나는 몸뚱어리와 더럽혀진 자전거로 생명을 찾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아있다는 느낌, 그 생생한 감동을 찾아서 나는 거침없이 해안길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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