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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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여행_구달칼럼#44
무릇 여행에는 3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시행하고자 하는 여행을 상상으로 시뮬레이션 해보며 계획한다. 그 다음으로 실제 여행을 하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반추하고 정리하면서 여행기를 써서 마무리한다.
소래포구를 다녀 간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강화도와 영종도는 하루씩 날을 잡아 일주하고 나면 소래포구가 이번 포구기행의 시작점이 된다. 예전에 두어 번 소래포구로 라이딩한 추억이 있으니, 그 추억을 되살리고 자전거 포구기행을 준비하는 단계로 오늘은 일산에서 구봉도까지 상상여행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일산을 출발하여 자전거 전용도로가 깔린 아라뱃길과 굴포천을 타고 올 때는 신선노름이었다. 하지만 곧 굴포천을 벗어나 부천 시내를 관통하여 송내역을 넘어야 인천대공원에 이르러 소래포구로 갈 수 있다. 부천 같은 복잡한 도시를 관통하는 것을 나는 무척 싫어했는데 막상 와 보니 뜻 밖이었다.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대로를 따라 줄지어 있는데, 친환경으로 설계한 덕분에 대로와 분리된 수로를 만들고 수로 따라 자전거 길과 산책로를 만든 게 이색적이다. 부천 하면 서울과 인천 사이에 끼인 열악한 공업도시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여기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부천시청이 지척이니 분명 시가지 중심을 통과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괘적한 주거환경이 놀랍다. 부천 시가지를 통과하여 도착한 송내역이 참 묘한 곳이었다. 인천대공원으로 가려면 송내역을 넘어야 갈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철길을 건너는 건널목이 따로 없다. 엘리베이터로 역을 넘어 반대 방향으로 가니 이 역을 기점으로 많은 버스들이 회차하는 모습이 보였다. 송내역은 부천시의 교통의 요지였다.
송내역 정면으로 난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3km쯤 가면 비루고개가 나오는데, 서울외곽순환로의 장수IC가 있는 지점으로 대로를 사이에 두고 인천대공원과 접경을 이룬다. 인천대공원의 지척에 있지만 들어가는 입구를 몰라 고갯마루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한 떼의 라이더들이 바로 아래 오른쪽으로 난 샛길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하, 이런 곳에 입구가 숨어있다니!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들이 올라오는 길을 따라 포물선을 그리며 내려가니 도로 아래로 인천대공원으로 들어가는 토끼굴이 숨어 있었다. 지리를 잘 모르는 낯선 지역에 가면 라이더들이 좋은 길잡이가 된다. 그들이 많이 몰려 다니는 길이 최적의 자전거 길이 되는 것을 나는 수많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침 토끼굴 입구에는 ‘버드나무집’이라는 그냥 척 봐도 맛집임을 알 수 있는 추어탕과 보양탕 전문 식당이 있다. 텃밭이 딸린 일반 집에 음식점을 냈는데 텃밭에는 각종 채소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울도 담도 없는 입구에는 포도나무의 우거진 잎사귀 터널이 대문을 대신했다. 마침 점심 식사 때라 한 떼의 등산객 무리들이 벌써 판을 벌이고 있었다. 처음에 혼자 여행할 때면 식사시간이 가장 문제였다. 홀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여간 고역스럽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것도 즐기게 되었다. 나도 라이더가 되어 간다는 반증인가? 그래도 막걸리 마실 때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술은 역시 잔을 부딪쳐야 제 맛이 난다.
토끼굴을 통과 하는데 인천시둘레길 알림판이 붙어있다. 공업도시 인천이라 뭐 볼 것이 있을까 했는데 무려 둘레길 코스가 9개나 된다. 인천관내의 관모산과 거마산, 소래산과 소래포구 등 그리 높지 않은 산들과 습지를 잇는 걷기 좋은 길들을 잘 닦아 놓았다. 나도 여기서부터 소래포구까지 장수천을 따라 가는데 이 길이 둘레길이다. 장수천은 소래포구 앞의 갯골로 빠져 서해에 이른다. 한 때 일산에서부터 소래습지 생태공원을 통과하여 물왕저수지와 광명, 안양천을 거쳐 다시 일산까지 120km의 일주 코스를 만들어 하루 동안에 달린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포구기행이니 소래포구에서 해안을 타고 남하할 계획이다. 오이도에서 시화방조제를 거쳐 대부도, 선제도, 영흥도를 여행하고 다시 돌아 나와 궁평항에서 화옹방조제를 타고 아산만으로 넘어 가게 될 것이다. 소래포구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서해 섬 여행의 기치를 올리는 셈이 된다.
소래포구에 들렀으니 막회에 소주 한잔 해야 정석인데 점심 먹은 지 얼마 안되니 대신 소래 역사관 관람을 해 본다. 증기기관차, 소래역, 어시장의 풍경 등이 추억을 불러온다. 특히 옛날 역사 안의 풍경 중 난로 앞에 앉은 할머니 상이 내 눈길을 끌었다. 보따리 안고 딸내집인가를 방문하러 가는 할머니 상을 모형으로 만들어 두었는데 어찌나 사실적인지 꼭 살아있는 사람 같다. 왜 갈수록 이러한 사라진 옛 모습들이 그리워 지는지 모르겠다. 오래될수록 좋은 것은 친구와 술뿐만이 아니라 풍물도 세월의 때가 묻어야 좋은 것인가. 요즘 국제시장 같은 영화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방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스럽기도 하다.
소래철교는 수인선이 생기면서 역사적 유물이 된 것을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게끔 발판도 깔고 난간도 세워 보존해 두었다. 여기서 바라보는 포구의 풍경이 가슴을 뛰게 한다. 수많은 어선들이 서로 기대어 물이 들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포구에 가면 이런 어선들의 풍경이 단연 압권이다. 볼수록 친근감이 간다. 썰물이라 지금은 뭍에 배를 깔고 누워있지만 물이 들어오면 곧 생생하게 살아나리라는 어선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런 풍경은 그냥 바라만 봐도 삶의 의욕이 인다.
소래어시장에서 소래철교를 건너 우회전하면 바로 월곶포구, 오이도를 거치면 일망무제의 시화방조제다.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오이도의 빨간등대와 생명의 나무를 지나치면 시화방조제 12.7km, 양쪽으로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며 달리는 자전거 전용도로도 최고 수준이다. 이전에 자동차로 이 곳을 지나칠 때, 자전거로 방조제를 달리는 라이더들을 부러워하며 나도 기필코 자전거를 타고 이 방조제를 건너고야 말겠다고 벼르던 것이 이제야 소망을 이룬다. 감개무량하다. 자전거는 바람을 많이 탄다. 바람 방향에 따라서 울고 웃기가 엇갈린다. 특히 바닷가에는 항상 바람이 불기 마련인데 맞바람 일지라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가급적 상체를 숙여서 바람의 저항을 덜 받도록 노력하지만 일단 코스가 정해지면 바람방향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나 같이 반시계 방향으로 우리나라 해안을 일주하겠다고 나선 라이더에게는 바람 방향을 고려하여 코스를 짤 수도 없고, 그냥 죽으나 사나 짜인 코스대로 달릴 수 밖에 없다. 이 때는 바람을 즐기는 것이 상책이다. 시화방조제야말로 바람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코스가 아닌가. 10km가 조금 넘으니 30km가 넘는 새만금방조제에 비하면 짧은 코스다. 중간의 작은가리 섬에는 전망대가 있는 쉼터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의 들리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주말이라 특히 사람이 붐비는 곳이라 이곳을 그냥 통과하여 구봉도에 이르렀다. 건너편에 선재도와 영흥도와 함께 그 사이를 잇는 영흥대교가 보인다. 섬에서 섬을 바라보지만 여기는 구봉도란 섬이 아니고 육지 같은 생각이 든다.
이름도 아름다운 구봉도(九峰島)는 아름다운 봉우리가 아홉 개로 되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도에 붙은 반도 같은 땅에 섬 島자가 붙어있어 연유를 알아보니 간척지로 연륙화된 섬이란다. 구봉도는 대부해솔길 1코스가 있는 최고의 비경지로 낙조전망대와 할배/할매바위로 불리는 선돌, 개미허리 아치교 등이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구봉도에 있다는 바닷가의 그 외로운 소나무를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 대부도는 해안 바닷길로 한 바퀴 도는 해솔길이 모두 7코스로 총 74km에 이른다. 이름 그대로 바다가 보이는 소나무 오솔길로 걷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자전거로 가능한지 한번 실험해봐야겠다. 가는 길의 경치는 눈물 나게 아름다운데 항상 머물 시간이 모자란다. 며칠씩 해안을 타고 쭉 내려가면 좋으련만 일을 위해 다시 상경해야 하니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다. 다음 주말을 기약하며.
여행은 자유다. 그 느낌을 누리려고 이렇게 종일 서해안을 타고 남하해 왔지만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도 전에 시간이란 보이지 않는 사슬에 걸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는 자유의 비상을 위한 예행연습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여행으로 내가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