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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피로사회를 반성함
2015년 2월 5일
산호초와 색색의 물고기가 함께 노니는 따뜻한 남국의 바다, 그 강렬한 태양 아래 이케아 매장의 커튼보다 더 선명한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 구름이 떠다니는 천국, 저는 지금 그 풍경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발리는 무려 11년만입니다. 칠순을 맞은 아버지의 생신잔치 대신 온 가족이 한번 해외여행을 보자며 몇 년 전부터 벼르던 것을 실행하여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내외, 조카들과 우리 식구까지 총동원된 진짜 휴가여행을 온 것입니다. 발리는 지금 ‘우기’라더니, 햇볕은 쨍쨍, 리조트는 럭셔리 그 자체! 3년 모은 적금을 깬 값어치를 하려고 드는 지 정말 멋지더만요. 그래서 ‘나는 지금 발리다!’라며 친구에게 카톡질도 열심히 하였지요. 그런데… 발리에 와 있다를 짧게 표현하다보니 드렁큰타이거의 표효하는 랩으로 뱉어낸 ‘발라버려’의 그 발림을 당한 듯한 형국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덕택에 또 깨달음의 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모든 언어적인 실수는 우연한 게 아니다,라고 서문과 1장에서 늘 정신을 잃고 마는 정신분석학입문에서 프로이트 박사는 말씀하셨지요.
11년 전, 나는 발리에서 나를 아주, 완전히, 살벌하게, 발라버렸답니다. 때는 2004년 5월, 저는 임신 6개월 차의 몸으로 종종거리며 일과 첫째의 육아와 살림을 저글링하며 지내고 있었던 서른 초반의 열혈직장인이었습지요. 남편은 대전에서 직장에 다니던 차라 우리는 주말부부, 안 그래도 내 몸 하나 간수하기 버거운 허당 주제에… 전 그냥 제가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대전의 연구원에 다니게 된 남편이 걱정과 불안으로 망설일 때도, 아이 둘이 뭐 대수야. 까짓 거 어떻게든 안되겠어? 나 혼자 호기롭게 외쳤지요. 아쉽게도 시댁이나 친정이나 인생은 각자 사는 것이란 인생관을 공유한 신식 부모님들, 자식 농사를 손주까지 이어 지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셨던 지라 저는 그쪽으로는 다리 뻗을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저는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했지요. 그래서 부푼 몸으로 유난히 엄마를 타는 세살배기 아들을 시어머니보다 까다로운 도우미 손에 맡기고 신제품 출시와 노조 이슈로 날마다 일이 터지는 회사일을 막아내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땜빵 출장을 가게 되었지요. 원래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가 가기로 되어 있던 건인데, 갑자기 일이 틀어져 일정이 안 맞게 되자 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홍보팀에 폭탄을 넘겼습니다. 물론 그 홍보담당자는 배부른 저였지요. 그 사람 좋은 마케팅 매니저가 그렇게 진심으로 미안해하지만 않았어도 저는 좀 냉정하게 그 폭탄을 돌려보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임신 6개월 차, 워낙 저질체력에 심한 입덧이 지속되어 힘든 상태였던지라 비행기를 타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당시에 아이를 갖고 회사를 다니는 여성 자체가 워낙 드물다 보니 회사에선 그런 배려에 무지했고 저 역시 지금이라면 당연할 권리를 주장할 배짱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담당자 혼자 가는 출장이 아니라 회사의 중요한 고객이자 KOL인 중요한 의사양반들과 원래 내 담당이라 할 수 있는 기자까지 한 명 낀 일행을 ‘모시고’ 다녀 와야 하는 출장이었던지라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매니저가 한 명은 꼭 붙어줘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할 수 없이 출장을 가기로 결정한 다음 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 상태가 이상했습니다. 배가 자꾸 딱딱해지고, 다리의 붓기가 심해진 것 같았어요. 병원에 갔더니 아이의 심장박동 소리가 불규칙하다며, 그 출장 꼭 가야겠냐고 묻습디다. 당신이라면 안 가겠다고요. 저는 그때 의사가 회사 눈치 따위 보지 않고 인생을 편히 사는 사람이라 그런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나 싶었습니다. 클라이언트를 모시고 가야 하는 일정에 담당자가 빠지면 그 뒷감당을 어찌하라고. 임신이 핑계로 작용하는 것을 별로 보아주지 않던 분위기이기도 했고, 일단 내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든 핑계여서 저는 그냥 출장을 강행했습니다. 나 말고 누가? 라는 참 미숙한 초보매니저의 생각이었던 거죠. 회사는 원래 나 말고 누구든 대체할 수 있는 곳임을, 그땐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다행히 같이 간 기자와 의사는 첫 대면임에도 배부른 홍보담당자를 배려한답시고 가방모찌까지 해주는 친절한 양반들이라 저는 큰 탈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발리는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동남아가 처음이었지요. 외국 출장은 늘상 다녔지만 대부분 회사의 중요한 지사가 있는 유럽 도시의 공항-호텔-회사-공항만 왔다갔다하는 게 고작인 일정이었으니 이런 휴양지에 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난생처음 이토록 이국적인 도시에서 최고급 리조트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의사가 학회에 참석하고 기자가 취재를 할 수 있게 일정을 조율하고 이런 저런 회의에 참석하다 보니 2박3일의 일정은 훌쩍 지나갔습니다. 황홀한 석양과 바다로 이어지는 근사한 수영장을 갖춘 호텔 시설은 눈요기만 했지요. 그 멋진 풀장 옆 벤치에 앉아 칵테일이라도 한잔 마셔 보았더라면… 체크아웃하는 기자와 의사들의 뒤에서 혼잣말을 하며 떠나온 발리의 추억은, 공항에서 결국 탈진하여 휠체어 신세를 진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였습니다. 그 휠체어에 앉아있으면서도 내내 저를 배려하며 함께 다녔던 나이 지긋한 기자양반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발리에서의 제 마지막 기억입니다.
출장에서 돌아와서 다행히 저는 며칠 휴가를 낼 수 있었고, 뭐 하나 제 의사를 표현할 길 없어 심장박동 소리로 제게 항의하던 뱃 속의 아이는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뭐, 누구 하나 다친 사람 없었고 무사히 일도 마쳤으니 해피엔딩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다시 돌아온 발리의 기억은 제게 심각한 반성을 요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많이 잘못했다. 사과해.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남자들 군대 가서 축구한 이야기만큼 뻔한 일하는 여자들의 임신수난기를 늘어놓게 된 이유는 이겁니다. 모시고 다닐 기자도, 발표할 어젠더도 없이 다시 찾아온 발리에서 저는 성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조용한 풀장 벤치에서 책을 펴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지난 시절 제가 발리에서 한 짓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짓이었는지, 제가 자신과 가족을 얼마나 막 대하며 살았던 지를 돌아보게 되었던 겁니다. 그것은 바닥이 3중이라 눌러 붙지 않는다는 묵직한 테* 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아프고 얼얼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아직 안정화되지 않은 태아가 어찌될 지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 출장을 강행한 나는 과연 제정신이었던가. 다녀와서도 아이가 안정화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같은 행태를 반복하며 지냈던 저는 아이를 낳자마자 어마어마한 후유증을 겼었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몸이 약했고, 저도 스스로를 혹사한 대가로 몸과 마음이 다 힘들었습니다. 그 뒤로도 몇 년간, 저는 처음에는 아이를, 나중에는 저를 치료하느라 병원과 회사, 집을 오가며 곡예를 하듯 살아야 했습니다. 대놓고 힘들다 할 수 없어, ‘쿨함’을 가장하느라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어진 생활이 내게만 참혹했던 게 아니었음을 10 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달아 나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나는 나를 그렇게 막 대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에게 그렇게 가혹한 짓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엄마 고픈 큰 아이를 그렇게 애정에 고픈 상태로 놔두어서도 안 되었습니다. 나는 나에게는 물론, 어리고 제 한 몸 스스로 어찌 할 수 없는 내 어린 아이들에게 그런 야차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쉬운 소리 절대 안 하겠다며 입을 앙다물고 혼자 버티는 대신, 내 어린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든 누구에게든 도움을 요청하고 기댈 곳을 만들어야 했음을 이제사 깨닫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병신이었을까요?
뭔가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아니 집착이 나를 그렇게 몰아간 것일까요? 피로사회의 한병철은 말했습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저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 피로사회, 28P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 스스로 벌인 전쟁에서 정복하려는, 또는 죽여버리려는 대상도, 그 주체도 자신이라는 사실이 나를 섬찟하게 합니다. 나의 전쟁은 과연 끝난 것일까요? 나는 피로사회의 촘촘한 그물에서 드디어 빠져 나온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