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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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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9일 11시 58분 등록

 

2015년의 1월이 지나고 2월도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다. 한 해의 시작은 어찌나 큰지 가슴이 벅차지만 1달이 지나고 나면 그 벅찬 가슴을 고스란히 삶으로 녹여내지 못한 나의 하루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시점이다. 한 달이 지나면 나는 그 한 달의 실천으로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을 줄 알았는데 해마다 반복하는 일처럼 오늘의 하루도 일상이란 이름으로 그 특별함을 잃어버린다.

 

문득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창문에 블라인드가 올라갔지만 창 밖이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눈보라가 쳐서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회사 15층 회의실 창 밖으로 보이는 눈은 안개가 낀 듯 멀리 보이던 풍광을 하얀 눈으로 덮어버렸다. 약간의 안도감이 잦아든다. 아직 겨울이다. 아직 봄의 새싹을 기다릴 시간이 남아 있다. 다시 정신처리고 봄을 준비하자.

 

회사에서 회의를 10년 넘게 참석했지만 회사 내 직급이 올라갈수록 회의 분위기는 열띤 토론보다는 나보다 좀더 많은 정보와 경험을 갖고 있는 임원들의 훈계와 새로운 수명업무들로 가득 채워진다. 하늘에서 내린 흰 눈이 창 밖의 풍경을 가득 채우듯 나의 하루 일과를 가득 채울 일들이 회의 중에 가득 떨어진다. 일이란 끝이 없다. 아마 삶이 그 일과 같이 살지 않으면 끝날 것처럼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저 눈발처럼 일들이 쏟아진다. 그렇게 도 하나의 회의가 지나간다.

 

대기업은 잘 잡힌 체계와 프로세스로 복잡하고 고도화된 기술을 접목하여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기술의 수준이 높아지고 난이도가 높아질 수록 전체의 계통을 꿰뚫는 사람은 점점 희박해진다. 임원진들은 옛 시대의 기술로 오늘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은 최신의 기술을 판단해야 한다. 최신의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은 기존의 시장을 재편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이 시장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을 사용할 고객의 기술의 니즈를 뛰어 넘어야 한다. 고객은 늘 딴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새로운 니즈를 쏟아낸다. 그리고 늘 불만이다.

 

엔지니어로서의 삶은 기술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해당 분야의 기술이 더 이상 발전이 없으면 두 가지 위험이 존재한다. 해당 기술의 보편화로 희소가치가 떨어지거나 해당 기술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 그리고 기술이 심화될 수록 그 기술의 전체를 담당할 사람은 매우 극소수로 한정되고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분할된 특수 분야에 더 깊이 매진하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숲 속의 잠자는 엔지니어가 된다. 더 이상 숲이 보이지 않고 자기가 안고 있는 기술만 보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40세를 전후한 엔지니어는 가끔 자신의 발 아래를 쳐다보게 된다. 우선 엘리베이터에서 그리고 계단에서 그리고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서이다. 특별히 눈 둘 곳이 없이 서성이는 듯한 눈동자가 그 마음 가는 곳을 찾지 못해 발 아래로 곧 곤두박질친다. 가진 것은 몸 밖에 없다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이러면 당뇨병이라도 피할 수 있으려나? 이내 사무실 책상에서 책상 바닥을 내려다 본다. 갑자기 숨이 헉헉 막히고 벗어나지 못할 감옥 같다고 생각되어지는 순간 모든 책임도 모든 영광도 이제 쓸모가 없어진다.

 

2015년이 밝은지 한 달이 지나고도 10일이 지나고 있다. 올해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경영계획을 비웃듯이 쏟아지고 있다. 어째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닌데 일만 많아진다. 모두가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되어 영광을 안겨주면 좋으련만 새로운 일의 8할은 늘 실패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그 8할을 위해 인력을 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아니건만 쏟아지는 일들을 피할 길은 없다. 계획은 계획일 뿐 변경하기 위해 계획은 존재한다고 했던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모두들 헉헉대며 다시 경영계획을 수정한다.

 

40대 엔지니어는 오늘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수행할까? 고민한다. 고객이 원하는 니즈는 그가 생각했던 니즈와 늘 차이가 난다. 고객은 또 그들의 고객의 니즈를 쫓아간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오늘도 서로 꼬리 잡기를 하며 프로젝트 계획을 수정한다고 난리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내 변덕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들의 미래를 앞당기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세상을 움직이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오늘도 프로젝트는 늘 부족한 리소스로 위태위태하다. 그렇게 또 2월이 흘러가고 있다.

 

40대의 엔지니어에게 참신성은 이제 없다. 하지만 관록의 눈썰미와 기술적 감각으로 위험으로부터 프로젝트를 구할 능력은 탁월해진다. 하지만 그 능력은 새로운 시장과 기술을 만들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초라해질 수 있다. 자신 만만하던 패기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던 탁월함은 이제 아스팔트 위에 내리다 녹아버린 눈처럼 온데 간데 없지만 그자리 적시며 다음 눈이 쌓이게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40대의 엔지니어도 아직 Ing이다. 그의 인생이 그의 경력이 그의 일이 아직도 세상의 동맥에 힘을 주어 돌아가게 만들듯이 그들이 힘이 아직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관록의 기술과 리스크 관리를 무기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시장을 관리하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버지 세대에게서 이러한 보살핌을 받고 지금껏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이제 40대 엔지니어는 아버지와 같이 새로운 세대를 보살펴야 한다. 그들의 꿈이 펼쳐지기를 바라며 그들의 꿈이 녹아 없어지지 않게 그리고 세상을 뒤덮을 수 있게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40대의 엔지니어는 Ing이다. 엔지니어가 Ing이면 엔지니어링이 된다. 그들의 직업은 하루도 쉬지 않고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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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3 17:16:01 *.214.15.69


글이 편하게 읽히는군요. 좋습니다.

* 추신: 10기분들 북리뷰를 쭈~욱 훑어봤는데, 10기 웨버님의 글을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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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6 20:50:35 *.222.10.82

감사합니다. 지난 한해동안의 많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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