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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9일 11시 59분 등록

Book Review

밥그릇 경전

2015 2 8

 

  1. 저자에 대하여

1961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고 제9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가 있다.

 

이덕규는 교실에서 길러진 시인이 아니다. 그에게도 시의 교재나 스승이 있다면 그것은 그를 키워낸 산과 들이다. 하여, 그의 시에서는 막 갈아엎은 전답의 흙내가 난다. 그렇다고 그가 유순한 농부시인이라거나 평화로운 전원시인이란 것은 물론 아니다. 반대다. 선한 이웃들을 위해 그는 선뜻 악역을 자처하고 나선다. ‘보통리 저수지둑이라도 무너뜨린다. 독 묻은 비수를 꺼내들고 감성의 벼랑 끝에 선다. 당연히 그의 시는 점잔을 빼거나 정물로 앉아 있기를 거부한다. 쟁깃날에 부딪치는 돌멩이처럼 불꽃을 내며 튄다. 하지만, 누가 모르랴. 이덕규의 시편 어느 것이나 순정 어린위악(僞惡)’의 몸짓들임을! – 추천의 말, 윤제림(시인)

 

1981 출발한실천문학의 시집 180번째로 이덕규(48)씨의밥그릇 경전 출간했다. 밥에 대한 시인의 날카로운 관찰과 철학이 담겨있다.

번째 시집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점, 노동의 소외, 농촌의 피폐한 일상 등을 묘사한 작가는 이번 시집을 통해 밥의 존재론을 펼친다. “저승법보다 무서운 !”(‘한판 밥을 놀다), “결국 사람은 모두 밥에게 먹힌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밥통의 떨림”(‘뚝딱, 그릇의 밥을 죽이다) 등이 작가가 탐구한 밥의 존재다. 자본주의에 대한 냉담한 시선은 여전하다.

 

*         *         *

이분에 대해서는 별 정보가 없다. 인터넷을 뒤져도 뭐 나오는 게 없다. 이 분 많이 가난할까? 이토록 진심으로 묵직한 시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시집을 냈어도 많이 팔렸을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은 흙의 아들, 대지의 아들, 이라는 추천사의 표현에 맞게 시들은 질박하고 거친 흙내음과 원초적인 감성이 뚝뚝 떨어지는 시들이다. ‘복상사같은 노골적인 제목이 아니어도, 시집에는 하늘과 땅을, 지게와 작대기를, 하여튼 대구를 이루는 자연의 그것들을 남녀의 정사로 빗댄 시들이 많다. 어떤 것들은 폭력의 냄새가 나는 남자의 행동을 원초적인 힘처럼 표현한 데가 있어 편치 않은 부분이 있지만, 크게 불쾌하지는 않다. 내가 주목한 것은 밥과 생명의 관계를 모색한 시들이다. 엄연하고 가차없는 목숨줄, 밥은 사람을 밥으로 삼고, 사람은 밥으로 생명을 잇고그 관계를 뚫어져라 직시하는 행위. 도망가지 않고 바라보면 그것이, 그 뗄레야 뗄 수 없는 생존의 굴레가 별도의 객체처럼 말갛게 떠오르는, 뚜렷하게 그려지는 그 순간까지 바라보는 행위가 그 시 안에 담겨 있어서 나는 얘들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전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에도 노동과 삶의 관계를 다룬 좋은 시들이 있을 거란 예감이 든다.
읽어보자.

  1.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밥그릇 경전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 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1]'그러는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는 짓. 온갖 짓을 다 하고 몸부림을 쳐도 무심할 수 없는 밥그릇의 무게와 밥벌이의 무거움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 그 어느 경지에 이르러야 제 맘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걸까. 저렇게 묻는 시인의 얼굴을 한번 들여다 보고 싶다. 나는 이 내용을 직장인의 의미 없이 힘에 겨운 밥벌이의 일상에 대입시켜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을까. 문득 이 책은 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글쓰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불경스런 잡념 따위, 그래도 떼어낼 수 없는 자의식과 좌절감과 의무감과 패배감과 뭐 수많은그러니까 결국 잡념을 죄다 싹싹 핥아먹는 개 밥그릇의 당위성과 순수함. 이건 정말이지 개 밥그릇이어야 한다.  

 

머나먼 돌멩이

흘러가는 뭉게구름이라도 한번 베어보겠다는 듯이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에서
수수억 년 벼르고 벼르던 예각의

날 선 돌멩이 하나가 한 순간, 새카만 계곡 아래 흐르는 물속으로 투신하는 걸 보았네


여기서부터 다시 멀고 험하다네

거센 물살에 떠밀려 치고 받히며 만신창이로 구르고 구르다가
읍내 개울 옆 순댓국밥집 마당에서

다리 부러진 평상 한 귀퉁이를 다소곳이 떠받들고 앉아 있는 닳고 닳은 몽돌까지

 

수수억년 벼르고 벼르던 예각의 날선 돌멩이가 물 속으로 투신하는 순간, 거기서 다리 부러진 평상 한 귀퉁이를 다소곳이 떠받들고 앉아 있는 닿고 닿은 몽돌까지 이르는 그 길. 이 시가 여는 시로서 맨 앞장을 차지하는 이유를 좀 알 것도 같다. 우리는 찌르고 벼르는 예각의 날선 돌멩이로 시작해 둥글넓적, 어느 풍경에 넣어도 모나지 않는 그런 몽돌이 되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가. 거센 물결에 떠밀려 치고받히는 세상살이의 가차없음, 만신창이로 구르고 구르는 밥벌이의 고단함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결과물로 남게 되는가. 몽돌의 의미를 되짚을 때다. 

 

한판 밥을 놀다

 

상갓집 마당 끝 절구통 위에 올려놓은 사잣밥을

순식간에 배 속에 털어 넣은 상거지가 오랜만에 뜨뜻해진 밥통을 흔들며

눈 덮인 논둑길을 엎어지고 자빠지며 달아나다가

한순간 휙, 돌아서서 이쪽에 대고 커다란 주먹감자를 날렸다네

 

그때 킬킬대던 어른들 사이

창검 비껴 차고 팔뚝 같은 쇠사슬을 어깨에 둘러멘 저승 식객 하나가

그 꼴을 망연히 바라보다 돌아서서

이제 막 밥숟가락 내려놓은 사람 앞세우고

시장타, 서둘러 떠나며 중얼거렸다네

 

오죽하면 사잣밥을 목에 매달고 다니면서 밥 버는 사람들이 있겠느냐

저승밥보다 무서운 밥!

 

어김없고 가차없는 밥의 무게. 밥그릇 하나 간수하기가 이리도 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메어사는데 죽기까지 이 사슬은 끊을 수도 없다.

 

뚝딱, 한 그릇의 밥을 죽이다

 

먼 들판에서 일에 몰두하다 보면 문득 허기가 밀려와

팔다리를 마구 흔들어댈 때가 있다 사람을

삼시 세끼 밥상 앞에 무릎 꿇려야 직성이 풀이는 밥의 오래된 폭력이다

때를 거르면 나를 잡아먹겠다는 듯이

사지를 흔들어대는 허기진 밥의 주식은 그러니까 오래전부터 사람이다

결국 사람은 모두 밥에게 먹힌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빈 밥통의 떨림

 

그러나, 우물처럼 깊고 어두운 바통의 고요한 중심에 내려가 맑은 공명을 즐기듯

먹먹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논두렁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느 순간

감쪽같이 배고픔이 사라지고 어떤 기운이 나를 다시 천천히 일으켜 세우는 것인데, 그 힘은

내 마음 어딘가에 마지막으로 밥을 제압하기 위해 비축해둔 또 다른 밥의 농밀한 엑기스인 치사량의 독과 같은 것이다

 

그 옛날 사나흘 굶고도 알 수 없는 기운으로 벌떡 일어나 품을 팔았던 어머니들처럼

수시로 닥치는 밥의 위기 때마다 마지막인 듯 두 눈 부릅뜬 채 막다른 곳으로 밥을 밀어 붙이면 비로소

밥은 모락모락 두 손 들고 밥상 위로 올라온다

그래 먼 들판에서 하던 일마저 끝내고

허적허적 돌아와 그 원수 같은 한 그릇의 밥을 죽이듯 뚝딱, 해치우고 나면

내 마음의 근골 깊은 절미항아리 속으로

낮에 축낸 한 숟가락의 독이 다시 꼬르륵, 들어차는 소리 듣는 것이다

 

때를 거르면 나를 잡아먹겠다는 듯이

사지를 흔들어대는 허기진 밥의 주식은 그러니까 오래전부터 사람이다

결국 사람은 모두 밥에게 먹힌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빈 밥통의 떨림

 

밥의 주식은 사람이고, 그러니까 사람은 모두 밥에게 먹히는 영원한 밥이다. 밥벌이와 밥그릇을 말하려 할 때마다 가차없다는 표현을 쓰게 된 뒤에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빈 밥통의 떨림이라는 표현이 척 와서 들러붙는다. 그렇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밥 없이 살 수가 있나. 살려면 밥을 벌어 먹어야지. 밥벌이가 생존의 가장 필수조건인 것이기에, 이걸 쥐고 있지 못한 자의 영원한 불안감을 어찌 해소할 수 있겠나굶어본 적도 없으면서, 나는 밥벌이의 부재가 두렵다. 남에게 밥을 의지한다는 것은개체의 주권상실이다. 그러니 어디, 월급쟁이가 기를 펴고 살겠든? 에효  

 

  1. 저자의 입장에서 다시

     

    나는 시를 쓸 재간도 없고 쓸 계획도 현재로선 전무하므로 저자의 입장에서 이 시집을 분석한다는 것은 능력 밖인 것 같다. 그저 한 지붕 아래 각각의 시가 모일 수 있는 동일한 주제의식을 이어나간 것만해도 그냥 대단해 뵈는 것이라. 목차는 아래와 같았고, 나는 그 중 4개의 시에 확 꽂혔다.  이 중 몇몇 구절은 어떻게든 인용하게 될 것 같다. 아래 4개의 싯구절들을 곱씹기 위해, 나는 노동의 새벽을 읽어야 하겠다.

 

결국 사람은 모두 밥에게 먹힌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빈 밥통의 떨림

 

  • 뚝딱, 한 그릇의 밥을 죽이다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 밥그릇 경전

 

여기서부터 다시 멀고 험하다네

거센 물살에 떠밀려 치고 받히며 만신창이로 구르고 구르다가
읍내 개울 옆 순댓국밥집 마당에서

다리 부러진 평상 한 귀퉁이를 다소곳이 떠받들고 앉아 있는 닳고 닳은 몽돌까지

 

  • 머나먼 돌멩이

 

오죽하면 사잣밥을 목에 매달고 다니면서 밥 버는 사람들이 있겠느냐

저승밥보다 무서운 밥!

 

  • 한 판 밥을 놀다

 

목차

1
머나먼 돌멩이/위대한 체온/밤의 검은 선글라스/강 건너 불빛/밥그릇 경전/칼과 어머니/낙지/장아찌/한판 밥을 놀다/뚝딱, 한 그릇의 밥을 죽이다/논두렁/꽃꿈/, 새여/마침표를 뽑다/선암사 56/한식(
寒食)/꽃과 같이 곱게 나비 같이 춤추며/저 흰빛은 다 어디로 가나첫눈/단편, 봄날은 간다/한밤의 실내악 삼중주/소낙비 안부/꽃이 꽃 속으로 들어가/, 1977/두고 온 사람/어떤 후일담/헌화/낫께서 나를 사랑하사

2
백로(
白露)/복상사(腹上死)/백로/찰떡궁합/작대기가 지게에게夫婦/지게가 작대기에게夫婦/연애질/합체/맛의 기원/걸림돌/오래된 질문/거름 내는 사내/알곡 추수하는 법/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문부호를 줍는 노인/지르박 권/간발의 차이/자일리톨껌/수갑(手匣)/여덟 번째 결혼식/맹물주사명의열전/명일(命日)/까치 누이/괘랑리 시편/이슬 아버지/식물도감을 던지다/

해설 - 김수이
시인의 말

책 속으로



[1] *조주선사와 어느 학인과의 선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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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4 17:09:46 *.47.55.101

밥에 대한 멋진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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