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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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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1일 14시 42분 등록

 

어릴 적 외가에 대한 기억이 많지만 그 중에는 뒷간에 대한 것도 있다. 안방과 건너방, 부엌과 사랑채와 외양간과 헛간과 광이 감싸고 있는 안마당을 지나 밖으로 나가면 반질반질하게 다져진 바깥마당 저 편에 초가로 지붕을 얹은 뒷간이 있다. 뒷간의 구조는 단순하다. 벽돌 두 개가 놓여진 곳에 올라 볼 일을 보고, 옆에 쌓인 재를 덮으면 그만이다. 어른들이 삽으로 푹 떠서 한 쪽으로 던져 놓으면 착실하게 썩어서 다시 밭으로 돌아갔을 그것!


가끔 뜬금없이 그 뒷간 생각이 난다. 우리 살림살이가 갈수록 복잡하고 피폐해진다는 느낌이 들 때다. 대도시에서 집집마다 아침의식을 치르기 위해 허비되는 어마어마한 자원과 시스템을 생각하면 그 옛날 뒷간은 얼마나 단순하고도 효율적이었는지 사랑스러울 정도이다. 오스트리아의 기발한 화가 훈데르트 바써가 자연친화적인 집을 짓고 살며 발효되는 화장실을 사용했던 것이 인상적인데 가까운 곳에서도 그런 생각을 실현한 분이 있어서 반가웠다.


한겨레21’에 격주로 강명구교수의 반쪽 시골생활을 연재하고 있는 강명구가 그 사람이다. 수시로 비울 수 있는 통 위에 나무로 변기를 깎아 올려 놓고, 물을 내리는 대신 잔디 깎은 것이나 낙엽 말린 것을 뿌려주면 끝!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아 부엌 바로 옆의 보일러실에 두고 쓴단다. 식구들이 생산하는 것 만으로는 텃밭에 사용할 퇴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그들 부부는 대도시에서 무한정 버려지는 그것을 아까워 하고 있었다. 제주에 은퇴자가 아닌 3,40대 생활인이 대거 몰리고 있다고 하고, 귀농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요즘 나역시 언제고 자연 속에 기거하고 싶은지라 이런 사례를 보면 유심히 살펴보게 되는데, 이 분의 사례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우선은 세월이 돋보인다. 경기도 광주로 이주한 지 15, 야채와 고구마 등속은 물론 김장거리를 자급자족한다. 닭과 젖염소에 대한 욕심도 있었던 듯하니, 언제고 단백질원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삼시 세끼에서 이서진이 염소에게서 짠 우유를 가지고 리코타 치즈를 만드는 게 너무 쉬워보여 나도 따라 해 보면서 언젠가는의 리스트에 염소를 추가했던 터라 공연히 반갑다. 무슨 일을 15년간 해 왔다는 것은 적성에 맞고 성과도 있어서 만족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귀농을 선택하기도 어렵지만 그 안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일 텐데, 그 집에서는 15년간 차곡차곡 쌓였을 노하우와 재미가 솔솔 풍긴다.


말하자면 남편에게는 목공과 조경이요, 아내에게는 원예이다. 그에게는 유학시절 개라지세일에서 사 모은 공구가 있는 작업실이 있다. 비싼 공구를 가지고 그것 밖에 못 만드냐는 지청구를 듣기도 하지만 독학으로 목공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요즘 DIY 또한 열풍이지만 잘 가공된 목재를 가지고 짜 맞추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닌지? 그는 산에서 얻은 나무의 형태를 살려 쓸모를 찾아준다. 나무의 선택과 가공, 디자인까지 해야 하는 작업이니 이 쪽이 통합적인 사고와 전노동을 요하고 또 그에 상응하는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한 수 위다.


그녀는 물 주는 것을 놓쳐 선인장도 죽이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라틴어 속명을 읊어가며 씨앗을 주문하는, 원예의 잡식박사가 되었다. 아내가 꿈을 꾸면 남편은 몸으로 때워야 하는 머슴이라고, 그는 주목으로 담을 둘러친 30여 평 공간을 꾸며 아내에게 선사했다. 10여 년 전 그들 부부는 영국의 정원을 둘러 본 적이 있다. 그 때 이후 원예와 조경에 대한 안목과 애정이 훌쩍 늘어, 아내의 정원에 둘러 준 수벽도 그 산물이다. 수돗가에는 조선향나무로 수벽을 둘렀다.


그들이 자리잡은 곳은 어머님께서 먹이던 소의 우사가 있던 터라고 하니, 이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나의 언젠가는어디로?’에 부딪혀 멈춰 있는 탓이다. 작심하고 찾아 봐서 선택해야 하겠지만 본가의 터가 있다면 얼마나 쉬울꼬?^^ 몇 년은 여행을 중심으로 다양성을 맛보고, 그리고나서 갈 것인데 그들의 생활이 모델이 되어 준다. 요리조리 궁리하여 노동과 재미를 배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소의 배설물을 쌓아놓던 곳에 심은 느티나무가 자라나 숲을 이룬 곳에 의자도 놓고, 해먹도 걸어 놓았다. 느티나무에 새 순이 돋는 것을 올려다보는 봄날의 환희, 나무아래에서 닭백숙을 먹는 여름의 호사, 버석거리는 낙엽을 누리는 가을의 정취, 겨울 작업실의 호젓함이 모조리 그들의 것이다.


전에는 무언가 부러워지면 언제고 하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무엇이 하고 싶다면 그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을 하고 싶다면서 그 일에 대한 준비를 않고 있다면 그건 진심이 아니다. 자급자족의 삶을 실현하고 싶다면 오늘부터 몸을 움직이는 훈련이나 생활비를 줄이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오십 년을 살아내서 겨우 깨우친 비밀이다. 아니면 돈을 벌 계획을 신나게 벌리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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